-
-
마광수 살리기
강준만.남승희 지음 / 중심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십년쯤 전 마광수 교수가 구속되었을 때, 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즐거운 사라>를 읽은 선택받은 사람이었던 나는 그 책이 명성에 비해 하나도 야하지 않은 것에 화가 났었을 뿐이다. 그렇긴 해도 나 역시 '대학교수가 뭐 이따위 책을 쓰냐'던 사회의 통념에 전적으로 동의했고, 그의 구속에 분노하지 못했다. 몇년이 지나 장정일이 구속되었을 때,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읽다가 팽개친 경험이 있던 나는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마광수가 구속된 것에 비추어 보면, 장정일이 구속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지금은 안다. 그게 얼마나 유치한 마녀사냥이었는지를. 최근 몇년 사이 책을 좀 읽으면서 각성을 한 탓이다. 하지만 마광수의 동료 교수들이 재임용 탈락을 건의한 걸 보면 몽매함 속에 빠져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직도 많은 것 같다. 우리가 군부독재를 물러가라고 외쳤던 이유가, 그리고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고 요구하는 까닭이 바로 표현의 자유를 얻기 위함이 아니던가? '소설의 목적은 금지된 것을 파헤치는 것이고, 과거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요,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꿈꾸기(50쪽)'라는 자신의 소설관대로, 마교수는 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위선에 정면으로 도전했고, 끝내 그 희생물이 되었다.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면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였을 마교수를 '자유주의의 투사'로 만든 것은 다름아닌 우리 사회, 이 땅의 억업기제는 그가 꿈꿨던 소박한 자유나마 지켜주지 못했다.
장정일이 구속된 후 <천국의 신화>를 쓴 만화가 이현세가 법정에 끌려가는 수모를 겪었고, 영화 [거짓말]의 상영이 몇차례 연기되어야 했다. 몇년 전에는 서갑숙이 쓴 <나도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가 한차례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우리 사회는 마광수가 구속되던 십년 전에 비해 별반 나아진 게 없는 것 같다. 인터넷에서는 도저히 눈뜨고 못볼 포르노들이 범람을 하고, 수많은 러브호텔들이 불야성을 이루는 사회에서, 성담론은 여전히 탄압의 대상이다. 이 숨막히는 위선, 마광수가 저항한 대목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서갑숙 파동이 날 무렵, '얘 엄마가 어떻게 그따위 책을 쓸 수가 있냐'고 거품을 물던 내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난 그 책이 매우 배울점이 많은 책인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떤 부분이 그리도 마음에 안드냐고. 놀랍게도 그 친구는 그 책을 읽지 않았단다. '내가 그런 책을 왜 읽냐? 안읽어도 뻔한데' 그렇다. 읽은 사람은 '이게 뭐가 야하냐'고 하는 반면, 읽지도 않은 사람들이 '포르노야!'라며 거품을 무는 거다. 비판을 할 때 하더라도 최소한 읽고나서 비판하면 안될까?
처음에는 담담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지만, 이내 빨간펜으로 줄을 쳐가면서 읽기 시작했다. 새겨들어야 할 좋은 말들이 워낙 많아서다. 특히 마광수의 애제자라는 남승희의 말은 내게 많은 깨우침을 줬다. 그것 말고도, 코드가 맞는, 이뻐하는 제자와 장시간 대담을 한 건 마광수에게 많은 즐거움을 선사하지 않았을까? 마광수님이 하루빨리 기운을 차려 십년전처럼 명강의를 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십년 전에 마녀사냥을 당할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게 지금은 너무도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