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매트릭스 읽기
이정우 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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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트릭스]가 나온 뒤, 이를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책들이 여러 권 나왔다. 일전에 읽었던 <매트릭스로 철학하기>도 그 중의 하나다. 그렇다면 작년 말에 출간된 이 책, <철학으로 매트릭스 읽기>는 이전에 나온 책들과 어떻게 다른가? 머리말을 보면 이 책이 세상에 나와야 할 필연성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선 이 책은 국내 소장 철학자들에 의해 씌어졌다...인문학 텍스트의 경우에는 원래부터 우리 식의 사고에 의해서 우리말로 씌어져야 할 필요성이 너무나도 크다]

일견 동의하면서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이들이 말하는 철학이란 것도 다 서양에서 건너온 사상이 아닌가? 장자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간 저자도 있긴 하지만, 저자 대부분은 비트겐슈타인이나 샤르트르 같은 외국 철학자들을 언급하고 있던데 '우리말로 씌어져야 할 필요성'이 무슨 말이람?

이 책의 두번째 필요성은 다음과 같다. [기존의 책들에 수록된 글들은 모두 매트릭스 1편에만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매트릭스> 전체를 총괄하는 내용을 담기에 부족한 면도 없지 않다]

그 말대로 이 책은 <매트릭스>2편까지의 내용을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책들이 1편에만 국한되어 독자들이 '갈증을 느꼈'다면, 몇달만 기다렸다가 3편이 나온 뒤 이 책을 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안그래도 저자들 중 한명은 '매트릭스가 3편에서 ..이런 쪽으로 결론이 날 것인가. 아마도 이러이러하게 끝날 가능성이 가장 높다'라는 말을 하기도 해, 3편을 두번이나 본 나를 허탈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 책이 나온 것은 2003년 11월 5일, 내 기억이 맞다면 이날은 3편이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날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3편이 개봉된 뒤 1-3편을 차분히 분석하기보다는, 3편의 개봉과 동시에 책을 냄으로써 판매에 도움을 주는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럴 거면 '전체를 총괄하기에 부족하다'며 이전 책들을 비판할 일은 아니라는 거다.

계속 딴지만 걸었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전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철학자들이 써서 그런지 지젝 등이 쓴 <매트릭스로 철학하기>보다는 훨씬 잘 읽혔고, 공감하는 대목도 꽤 있었다. 난 매트릭스 자체를 파괴해야 할 악으로 설정한 영화의 구도에 별 생각없이 동조했지만, 저자의 다음 말도 일리가 있다. [매트릭스가 허구라는 사실과 통제라는 사실만으로는 그것을 파괴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도출되지 않는다. 허구라 하더라도 그것이 완벽하게 현실을 대체할 수 있다면 매트릭스는 인간의 보다 풍요로운 삶을 위한 대안일 수도 있다...프로그램에 의한 통제가 곧 행복과 선택의 말살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매트릭스의 존재 가능성을 확률로 계산한 대목에서 현기증이 나는 등 미흡한 부분도 없진 않지만, 머리말에서 밝힌대로 '이 기획이 이번 한권의 책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충분히 분석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중문화 작품에 대해서...이런 시도를 계속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를 가져봄직하다. 철학이란 게 저 높은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삶 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있는 것이며, 그런 것들을 찾아내 알기쉽게 풀어주는 게 철학자의 할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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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이트 시즌
스티븐 킹 지음, 이창식.공경희 옮김 / 대산출판사(대산미디어)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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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세 때 <캐리>를 발표하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스티븐 킹, 전에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를 읽었으니 나로서는 이 책이 그의 두번째 책이다. 자자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스티븐 킹은 내가 그리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가 배송료를 면제받기 위해서거나 한권만 시키기 미안해서였던 것 같다. 올해처럼 책 한권만 시켜도 배송료가 무료였다면 아마 안골랐지 않았을까? 난 왜 스티븐 킹을 싫어하는 걸까? 어릴 적에 스티븐 킹이 쓴 책으로 맞은 기억이 있던가?

이 책에는 '라마즈 호흡'과 '파멸의 시나리오'가 담겨 있는데, 난 '라마즈 호흡'을 먼저 읽었다. 의사가 가르쳐준 칙칙폭폭 호흡을 머리가 잘린 상태에서도 계속 수행함으로써 아이를 구한 산모 얘기인데, 이걸 읽고 나서 난 다른 한편을 읽을까 말까를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파멸의 시나리오'는 초반의 지루한 부분을 빼면 제법 재미있어, 다행이었다. 그 소년이 왜 그렇게 살인마가 되어야 하는지 이해는 안가지만, 나치에 복무한 사람들을 끝까지 찾아다니면서 역사의 심판을 내리는 이스라엘 애들이 부럽기 그지 없었다. 친일파의 후손들이 기득권 세력을 점하고, 반성은커녕 민족지 운운하면서 자신의 행위를 강변하는 우리의 현실은 정말이지 가슴 아프다.

스티븐 킹을 싫어하는 이유가 뭔지 생각해 본 결과 이런 결론을 얻었다. 책은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믿는 내 가치관이 그를 싫어하는 이유인 듯 싶다. 내가 '해리 포터' 시리즈를 안읽는 이유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그러니까 내 생각은 스티븐 킹이나 조앤 롤랭의 책들은 책으로 읽기보다는 영화로 보는 게 더 적합하다는 것인데, 사실 난 영화로 만들어진 '해리 포터' 시리즈 두편을 아주 재미있게 봤고, 스티븐 킹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쇼생크 탈출' 역시 감명깊게 봤다. 영화에서 구현된 스펙터클을 책이 전하는 건 한계가 있는 바, 이번에 내가 재미없게 읽은 '라마즈 호흡'이나 그래도 괜찮았던 '파멸의 시나리오'도 영화로 봤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분들의 서평을 보니, 다들 재미있게 읽었단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 되어야 한다는 내 가치관이 킬링타임용 책들을 폄하하고, 그런 책들이 주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닐런지, 반성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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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살리기
강준만.남승희 지음 / 중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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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쯤 전 마광수 교수가 구속되었을 때, 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즐거운 사라>를 읽은 선택받은 사람이었던 나는 그 책이 명성에 비해 하나도 야하지 않은 것에 화가 났었을 뿐이다. 그렇긴 해도 나 역시 '대학교수가 뭐 이따위 책을 쓰냐'던 사회의 통념에 전적으로 동의했고, 그의 구속에 분노하지 못했다. 몇년이 지나 장정일이 구속되었을 때,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읽다가 팽개친 경험이 있던 나는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마광수가 구속된 것에 비추어 보면, 장정일이 구속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지금은 안다. 그게 얼마나 유치한 마녀사냥이었는지를. 최근 몇년 사이 책을 좀 읽으면서 각성을 한 탓이다. 하지만 마광수의 동료 교수들이 재임용 탈락을 건의한 걸 보면 몽매함 속에 빠져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직도 많은 것 같다. 우리가 군부독재를 물러가라고 외쳤던 이유가, 그리고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고 요구하는 까닭이 바로 표현의 자유를 얻기 위함이 아니던가? '소설의 목적은 금지된 것을 파헤치는 것이고, 과거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요,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꿈꾸기(50쪽)'라는 자신의 소설관대로, 마교수는 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위선에 정면으로 도전했고, 끝내 그 희생물이 되었다.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면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였을 마교수를 '자유주의의 투사'로 만든 것은 다름아닌 우리 사회, 이 땅의 억업기제는 그가 꿈꿨던 소박한 자유나마 지켜주지 못했다.

장정일이 구속된 후 <천국의 신화>를 쓴 만화가 이현세가 법정에 끌려가는 수모를 겪었고, 영화 [거짓말]의 상영이 몇차례 연기되어야 했다. 몇년 전에는 서갑숙이 쓴 <나도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가 한차례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우리 사회는 마광수가 구속되던 십년 전에 비해 별반 나아진 게 없는 것 같다. 인터넷에서는 도저히 눈뜨고 못볼 포르노들이 범람을 하고, 수많은 러브호텔들이 불야성을 이루는 사회에서, 성담론은 여전히 탄압의 대상이다. 이 숨막히는 위선, 마광수가 저항한 대목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서갑숙 파동이 날 무렵, '얘 엄마가 어떻게 그따위 책을 쓸 수가 있냐'고 거품을 물던 내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난 그 책이 매우 배울점이 많은 책인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떤 부분이 그리도 마음에 안드냐고. 놀랍게도 그 친구는 그 책을 읽지 않았단다. '내가 그런 책을 왜 읽냐? 안읽어도 뻔한데' 그렇다. 읽은 사람은 '이게 뭐가 야하냐'고 하는 반면, 읽지도 않은 사람들이 '포르노야!'라며 거품을 무는 거다. 비판을 할 때 하더라도 최소한 읽고나서 비판하면 안될까?

처음에는 담담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지만, 이내 빨간펜으로 줄을 쳐가면서 읽기 시작했다. 새겨들어야 할 좋은 말들이 워낙 많아서다. 특히 마광수의 애제자라는 남승희의 말은 내게 많은 깨우침을 줬다. 그것 말고도, 코드가 맞는, 이뻐하는 제자와 장시간 대담을 한 건 마광수에게 많은 즐거움을 선사하지 않았을까? 마광수님이 하루빨리 기운을 차려 십년전처럼 명강의를 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십년 전에 마녀사냥을 당할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게 지금은 너무도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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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매듭은 누가 풀까
이경자 지음 / 실천문학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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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관련 책들은 꽤 읽는 편인데, <절반의 실패>로 명성이 자자한 이경자님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외면해온 게 미안해 이번에 구입한 <그 매듭은 누가 풀까>를 서둘러 읽었지만, 읽고 난 느낌은 그다지 상쾌하지는 않았다. 내가 기대한 것은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의 어려움이었지만, 그리고 이 책 역시 그런 내용인 것 같기도 하지만, 복잡다단한 내면세계가 주를 이루다 보니 읽는 내내 머리가 어지러웠다.

우선, 난 이 책의 주인공 손하영의 불행에 별로 공감이 안되었다. 유명세를 얻고 있는 모 대학 무용과 교수, 45평 아파트에서 남편과 두 딸이랑 함께 산다. 무용과라는 곳이 미모와 몸매가 전제되어야 하니, 손하영은 여러 모로 가진 자였다. 게다가 남편도 너그럽기 그지 없다.
[결혼 초에 정인호(남편)는 아내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타협안을 내놓았다. 살림은 가정부가 하고, 아이들도 가정부가 돌본다. 다만 집안 행사에는 참석해라 (45쪽)]
이 정도면 이해심 많은 남편 아닌가? 하지만 손하영은 이 최소한마저 지키지 않았다. '시아버지 제삿날을 잊은 며느리. 제사에 참석한 날보다 잊은 날이 훨씬 더 많았다. 대부분 공연이거나 회의거나 연습이었다'

이래놓고서는 다른 남자-한두명이 아니다-와 자고, 걸핏하면 이혼 생각만 한다. '혼자 살지 못할 것이 없었다....' 하영은 남편이 자신에게 무관심하다고 투덜대지만, 내가 보기에는 남편이 더 불쌍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남편 역시 다른 여자가 있었지만, 그게 하영의 무분별한 성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고 본다.

또하나. 아이들을 가정부가 키운다고 해도 최소한 할 도리는 해야 하지만, 하영은 이런 식이었다.
[아이들은 어머니를 자신에게 돌려놓으려고 애를 썼다...하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냉정했다. 비켜! 귀찮아! 저리가!...아이들은 어머니를 조금씩 미워하고 버리기 시작했다 (317쪽)]

그래놓고서는 아이들이 자신을 미워한다고 속상해 하고, 히스테리를 부린다. 책을 읽어감에 따라 그런 것들이 하영의 어린 시절, 즉 지극히 폭력적이고 무능한 아버지와 돈을 벌어오면서도 늘 매를 맞는 어머니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해는 안갔다. 왜 그 복수를 자기 남편과 아이들에게 하는 걸까? 같이 고생한 자기 어머니와도 불화하는 걸 보면, 안타깝기까지 하다.

하여간 난 하영의 태도가 시종일관 이해가 안가고, 폭포를 보더니 갑자기 해탈을 하는 마지막 장면은 더더욱 얼떨떨했다. 저자가 이런 책을 쓴 이유는 뭘까? 교육적인 가정에서 자라야 인격이 성숙된다는 것인지, 무용하는 여자는 한번 더 생각해보라는 것인지,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되려면 가정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인지?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그래도 가진 자인 남성으로 태어나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여성주의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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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 2004-05-19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군요; 나는 위의 두 분처럼 '추천안함'을 선택하려고 '추천하기 버튼'을 누른 건데, 이젠 그 기능이 사라진 모양이죠?

정말 몰이해스러운 건 이 평을 쓴 분이시네요.

1. 등 따습고 배부르면 고민을 가지면 안되나요? 그럼 남자들은 뭐가 그렇게 모자라서 밖에서 여자를 찾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그러죠?
2. 시댁 제사 안 챙기는 것만 흠인가요? 그 남편은 친정 제사 챙기나요?
3. 왜 하영의 성만 무분별하죠? 남편의 바람은 당연해요?
4. 왜 애는 하영만 길러야 해요? 남편은 애들 아버지 아닌가요?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그 짐을 다 그녀에게 떠맡기는 게, 실제 현실에서 그런다고 해도 온당한 건 아니잖아요.
일하는 남편은 가정일에서 손떼도 되고 직장여성은 힐난받아야 하다니. 끔찍합니다.

마태우스 2004-05-19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샐리란 사람이 이경자의 <그 매듭은 누가 풀까>에 대해 내가 쓴 리뷰를 보고 코멘트를 남겼다. 평소 더한 비난도 웃으며 받아들이는 내가 이 코멘트를 보고 왜 그리 기분이 나빴는지, 나도 이해할 수 없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이 코멘트에 대해 나답지 않게 공격적인 메일을 그에게 날렸다는 것. 스스로 답을 한다면, 아마도 이럴 것이다. 여성주의에 대해 조금 안다고 생각하는 내가 그런 류의 힐난을 듣는 것이 나로서는 억울했을 테고, 그게 이런 무시무시한 메일로 나타났겠지. 사실 난 이경자의 그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내가 그 책의 주인공 손하영에게 했던 비난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걸 감안해도 이번 코멘트를 난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샐리의 코멘트에 출근하는 내내 기분이 안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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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님

서재활동을 별로 안하는 님의 성향으로 볼 때, 코멘트로 답을 달면 님이 못보실 것 같아 메일로 보냅니다. 솔직히 답도 하기 싫었지만, 그게 예의라고 생각해서 답을 드리니, 읽고 또 답을 주시든, 아니면 아예 읽지 마시든 좋으신 대로 하십시오.

알라딘에서 님의 이름을 이따금씩 봤습니다. 300편이 넘는 리뷰를 쓰신 대표적인 독서가시니, 여기저기 다니다보면 님의 흔적을 발견할 때가 있지요. 전 책을 많이 읽은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환상이 있습니다. 실제로 알라딘서 서재활동을 하면서 만난 알라딘 분들은 평균적인 네티즌의 수준을 넘어서는 분들이더군요. 글도 잘쓰고, 예의도 바르고. 알라딘에서 마이리뷰에 코멘트를 달게 해준 건 바로 그런 믿음 때문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님의 코멘트를 보니, 읽은 책의 권수가 많다고 꼭 훌륭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님의 질문은 제게 딴지로 읽혔고, 글 전체에서 짙은 혐오감이 느껴지네요. 코멘트의 목적이 대화라고 할 때, 이 글이 과연 대화하기 위한 것인지 의문이 갑니다. 여성주의는 남자를 적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여성의 정신으로 이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저로서는, 님의 딴지가 영 뜬금없습니다. 과연 님은 제가 리뷰를 쓴 이경자의 책을 읽으셨는지, 읽었다면 제대로 읽으신 건지 의문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님의 코멘트입니다.

[정말 몰이해스러운 건 이 평을 쓴 분이시네요.
1. 등 따습고 배부르면 고민을 가지면 안되나요? 그럼 남자들은 뭐가 그렇게 모자라서 밖에서 여자를 찾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그러죠?
2. 시댁 제사 안 챙기는 것만 흠인가요? 그 남편은 친정 제사 챙기나요?
3. 왜 하영의 성만 무분별하죠? 남편의 바람은 당연해요?
4. 왜 애는 하영만 길러야 해요? 남편은 애들 아버지 아닌가요?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그 짐을 다 그녀에게 떠맡기는 게, 실제 현실에서 그런다고 해도 온당한 건 아니잖아요.
일하는 남편은 가정일에서 손떼도 되고 직장여성은 힐난받아야 하다니. 끔찍합니다]

2번부터 답하겠습니다. 전 제사가 없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죽은 사람을 위해 산 사람이, 그것도 특정 성만 허드렛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 아버님의 제사 때 누나나 여동생이 오지 않는 게 서운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의 제사 제도는 분명 잘못된 겁니다. 그렇다고 현실의 구조적 책임을 하영의 남편에게만 돌려서는 안되지 않을까요? 남편은 말합니다. 다른 건 다 안해도 좋으니, 집안행사에만 참석해 달라고. 하지만 하영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게 그다지 무리한 요구가 아닌데 말입니다.

3번. 전 남편의 바람이 당연하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남편의 불륜이 "하영의 무분별한 성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고 본다"라고 썼습니다. 마찬가지로 하영의 불륜은 남편의 불륜을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가정을 갖는다는 건 서로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노력한다는 의미일 테지만, 하영은 그걸 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남편두요. 하영을 언급한 이유는, 그녀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랍니다.

4번. 전 양육이 어머니의 책임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둘 다의 책임이죠. 책에서 보면 남편은 아이들과 함께 하려고 무지 애를 씁니다. 하지만 하영은 애들을 학대하죠.
[아이들은 어머니를 자신에게 돌려놓으려고 애를 썼다...하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냉정했다. 비켜! 귀찮아! 저리가!...아이들은 어머니를 조금씩 미워하고 버리기 시작했다 (317쪽)]
나중에는 애들만 보면 히스테리를 부립니다. 이게 애 엄마로서 온당하다고 보시는지요? 이건 부모로서 최소한의 의무도 다하지 않는 것이며,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어릴 적 학대받은 전력이 있다고 해서, 자신의 자식에게 그걸 되풀이하는 게 옳다고 보시는지요?

마지막으로 1번. 전 남자나 여자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거, 아주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진 여자라고 고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 고민이라는 게 가정에도 충실하면서 나오는 거였으면 설득력이 있겠지만, 가정을 내팽개치고 그러고 있으니 뜬금없게 들립니다. 아이에도, 남편에게도 정을 붙이지 못한다면, 결혼생활을 유지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요? 자유롭게 살고 싶다면 애당초 결혼하지 말던가, 갈라서든지 하는 게 아이들 성장에도 좋을 텐데요. 그리고 이 책에는 남편의 하자-나중에 바람을 피우긴 하지만-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하영이 저렇게 되었다는 식이 아니죠. 제가 알 수 없는 것은 그 부분이고, 그건 제가 남자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님한테 "끔찍하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님의 끔찍한 코멘트에 대해 이걸로 답을 드립니다.

마태우스 드림

샐리 2004-05-19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비추천을 하기 위해 눌렀다가 '비추천' 기능이 사라진 걸 알고 놀라서 위의 코멘트를 달았습니다만, 그렇다면 그냥 그 말만 남기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코멘트를 수정하려고 들어오니 벌써 긴 답글이 달려 있군요.
먼저 아 다르고 어 다른데 타인의 서재에 남기기엔 적절치 못한 어조를 쓴 것 사과드립니다. 졸린 새벽에 님의 글을 보고 화가 났습니다만, 그게 신중하지 못한 언사의 변명이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보시기 전에 고치려고 했습니다만 이미 보셨군요. 답글을 일단 남기고 차후에는 원래의 의도인 '추천 버튼 잘못 눌렀는데 비추천이었어요'를 알리는 덧글만 남기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님의 리뷰를 읽고 지독하게 기분이 나빴습니다. 당시 제가 왜 그렇게까지 기분이 나빴는지 잘 몰랐었는데, 님이 다신 덧글을 보니 조금은 알 듯 합니다. 인용하자면,

Q: <이 코멘트를 보고 왜 그리 기분이 나빴는지>
A: <님의 질문은 제게 딴지로 읽혔고, 글 전체에서 짙은 혐오감이 느껴지네요.>

제가 이 리뷰를 읽고 느낀 감정도 그랬습니다.

Q: <이 리뷰를 보고 왜 그리 기분이 나빴는지>
A: <이 리뷰는 제게 하영에 대한 딴지로 읽혔고, 글 전체에서 하영에 대한 짙은 혐오감이 느껴지네요.>

였습니다.

그러니까 작품 해석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래놓고는' '그래놓고는' '히스테리를 부린다' 등, 무조건 하영이 나쁘다!는 식의 어조를 구사하는 데 화가 났습니다. 하영의 상황을 전혀 이해해주려 하지 않고 무조건 꾸짖고 탓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른데 이 리뷰에서 느껴진 것은 하영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보다는 혐오감이었습니다. 감정이 전염되듯이 저도 혐오감을 느낀 것이지요. 그런 어조가 리뷰에서 느껴졌기에, 님은 덧글에서는 <여성주의는 남자를 적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여성의 정신으로 이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저로서는>라고 하셨지만 원래의 리뷰를 읽다보면 맨 마지막에 쓰신 <여성주의는 어렵다> 라는 말은 전혀 덧글의 맥락으로 와닿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성주의는 골치아프다, 까다롭다'라는 부정적 어조로 들립니다. 리뷰에서 계속된 것은 '여성'인 하영에 대한 비난이니까요. 만약 정말로 님이 덧글에서의 의미로 여성주의를 리뷰에 언급하신 거라면 의도가 전달되기 어렵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그 하영에 대한 비난은 하영이 여자라는 이유로 더 증폭된 듯이 보입니다. 가령 제가 시댁 제사 친정 제사 예를 든 건 제사라는 제도가 옳고 그르냐는 걸 논하려는 게 아닙니다. 공평성 문제입니다. 일이 바빠서 친정 제사를 가지 않는 남편은 비난받지 않지만 일 때문에 시댁 제사를 빠지는 여자는 '최소한도 안 했다'고 비난받아야 하는 게 끔찍했습니다. 소설속 사람들인 시댁과 남편에게 비난받은 것이 아니라 독자인 님, 현실의 남자에게서 비난받아야 하는 것이요. 현실의 구조가 하영의 남편에게만 짐지워져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걸 읽는 독자도 '그래, 그러니 하영만 잘못했어'라고 하는 건 가혹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님의 글에서 <손하영은 여러 모로 가진 자였다>와 연계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가졌다고 해서 고민하면 안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 비판이 하영에게 머무르는 게 아니라 '가진 여성들의 배부른 고민'에게까지 확장되는 것으로 읽힙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인 <저자가 이런 책을 쓴 이유는 뭘까? 교육적인 가정에서 자라야 인격이 성숙된다는 것인지, 무용하는 여자는 한번 더 생각해보라는 것인지,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되려면 가정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인지?>까지 읽다보면 일하기에 전업주부만큼 가정을 돌볼수 없는 여성 전반에 걸친 혐오감으로까지 확장되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났고요.

애들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는 게 온당하냐고요. 물론 온당하지 않지요. 하지만 어렸을 때 겪은 폭력의 대물림이라는 게 혼자 힘으로 쉽게 극복될 수 있는 성질은 아니지 않습니까? 현실적으로도 가정폭력은 대물림되는 경우가 더 많지요. 물론 그게 옳은 일이라는 게 아닙니다. 그녀가 잘 했다는 게 아니라, 유독 한쪽에만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시는 것 같아서 껄끄럽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위에서 시댁 가는 문제는 '현실의 구조가 그러하니 하영이 잘못했다'고 하신 님께서 이 문제는 '현실이 그러해도 하영이 혼자 극복해야 한다'고 하시는 게 좀 가혹하게 보입니다.

...길어졌습니다만, 애초에 같은 말을 해도 어조를 골라서 덧글을 달아야 했다는 반성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정하려고 들어왔는데 늦어버렸죠;;

이정도면 제 입장에 대한 답변이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고 건강하십시오.

마태우스 2004-05-19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샐리님/의외의 답글-답글이 달릴지 몰랐다는 말-에 놀랐습니다. 하지만 우린 상대에 대해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이 없이, 벽에다 대고 얘기하는 수준의 답글들을 달고 있는 듯하군요. 더이상 계속하는 건 의미가 없는 듯하니, 그만 합시다. 이 말만 하죠. 글을 오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화를 내는 건 건강에 좋지 않을 듯 싶습니다.

샐리 2004-05-20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마디만 더 드리죠. 오독 운운 하셨는데, 제 코멘트 다시 읽어보십시오. 어디에 '덧글이 달릴지 몰랐다'고 되어 있나요? 수정하려 와보니 '벌써' 달려있었다고 했지, '덧글이 달릴지'를 '몰랐다'고 한 적 없습니다. 본인부터 <오독을 넘어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는 일>은 삼가신 연후에 남을 훈계하려는 듯한 말을 하시는 게 좋을 듯 하군요.
옛날에 어떤 시인이 수능에 나온 자기 시에 관한 문제를 풀지 못해서 쩔쩔맸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자신의 의도가 100% 남에게 전달되는 건 원래 불가능하더라도, 저말고도 비추천이 두분 더 계셨죠. 저 혼자 그쪽의 의도를 이상하게 읽은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왜 그렇게 글을 읽었는지 근거도 들어가며 성의껏 말씀드렸는데, 그쪽에서는 본인부터 오독을 하며 비아냥조로만 말씀하시니, 그쪽이야말로 윗글에서 말씀하신 의사 소통의 뜻이 별로 없으신 듯 하군요. 정말로 님의 뜻이 남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면 그건 님의 전달법에도 문제가 있는 겁니다. 마태우스 씨야말로 의사 소통을 원하신다면 일방적으로 벽문을 닫고 무례한 글을 날리는 건 좋지 않습니다. <님의 코멘트를 보니, 읽은 책의 권수가 많다고 꼭 훌륭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라는 말은 마태우스 씨 본인에게 들려드려야 할 듯 하네요. 이만 하지요. 초장부터 '샐리란 사람'운운하는 무례한 언급을 참고 열심히 답변을 쓴 저만 시간낭비한 바보가 된 느낌이니까요.

한마디 더, 저는 님께서 본인 글에 이런 식의 덧글들이 달리는 걸 별로 좋아하시지 않을까 해서 원하신다면 제 글도 지우고 코멘트란을 깨끗이 하자고 한 것입니다만, 관심이 없으신듯 하네요. 원하지 않으신다면 그냥 내버려두겠습니다.

마태우스 2004-05-23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백-
갈수록 태산이다. 답글이 달릴지 몰랐는데 답글이 달려서 놀랐다는 내 말을, 지 멋대로 해석해서 저렇게 쓰다니. '샐리란 사람'이 뭐가 무례하다는 걸까.

messier1023 2008-10-18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동학대 여성문제 인간행동 사회화 복지에 관심이 많은 교수님으로부터
이 책을 추천받아 알라딘에 들어와 리뷰를 읽었습니다
마태우스님 리뷰를 읽고 나니까 썩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저도 주인공 하영과 비슷한 입장이어서 이해가 되어 한 번 읽어볼까 했었는데...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저자가 이런 책을 쓴 이유는 뭘까? 교육적인 가정에서 자라야 인격이 성숙된다는 것인지, 무용하는 여자는 한번 더 생각해보라는 것인지,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되려면 가정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인지?> 이 글을 보았을 땐
마태우스님은 원만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존중받고 칭찬 격려 받으면 그것들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일 것 같습니다. 이해가 안된다고 하시는 걸 보면^^ 하영은 복수라기 보다 그렇게 길들여진게 아닐까요?^^;
조금 아쉽습니다.
 
대폭로 -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 교수의
폴 크루그먼 지음, 송철복 옮김 / 세종연구원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폴 크루그먼이라는 유명한 경제학자가 쓴 글을 모은 거지만, 내용을 보면 경제보다는 정치얘기가 주를 이룬다. 게다가 크루그먼 특유의 냉소적이고 해학적인 문제가 어우러져, 나처럼 경제를 모르는 사람도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가 있다. <대폭로>라는 제목처럼 이 책은 현재 백악관에 있는 조지 부시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주는데, 부시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또라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

크루그먼에 따르면 부시 일파가 바라는 나라는 '국내적으로는 아무런 사회 안전망도 없으며, 자국의 의지를 해외에 강요하기 위해 주로 무력에 의존하며, 그 나라의 학교들에서는 진화론을 가르치지 않지만 종교는 정말 가르치며, 선거란 단지 형식에 지나지 않는(9쪽)' 나라다. 하지만 부시는 이런 것들을 숨겨가면서 자신은 못가진 자들을 위한 대통령으로 위장하는데, 이런 위장이 가능한 것은 제도언론의 존재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미국인들의 정치적 수준이 지극히 낮은 탓이리라.

예컨대 부시는 대선을 치루면서 세금인하를 주장했는데, 그 이유란 '연방재정의 엄청난 흑자 때문'이었다. 하지만 부시 집권기와 더불어 경기침체가 찾아오고 연방재정은 극심한 적자로 돌았는데,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포기해야 할 세금인하를 부시는 계속 추진한다. '경기가 안좋으니 세금을 인하해야 한다'면서. 부시는 '세금인하의 혜택은 못가진 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했지만, 정작 깎이는 세금은 연봉 30만달러 이상의 사람이 내는 소득세와 1% 미만의 사람에게 부과되는 상속세, '레이거노믹스'로 불렸던 '공급위주 정치학'을 신봉한 레이건은 그래도 솔직하기라도 했지만, 부시는 미련할 뿐 아니라 위선적이기까지 하다는 게 크루그먼의 주장이다.

그러고보면 극우세력은 어디나 다 비슷한 것 같다. 우리나라의 극우세력도 '변화된 환경에 대해 계획을 바꾸는 방식으로 절대 대응하지 않'으니까.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졌을 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라크는 안전하다!' 하지만 막상 한국인 노무자 두명이 피살되자 그들은 이런 말을 한다. '이렇게 이라크가 위험하니, 전투병을 보내야 한다!'고.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지 결론은 어차피 하나였던 셈이니, 백날 토론을 해봤자 소용없던 거였다.

다음 말도 경청할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씩씩하게 이야기한다고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 위험을 감수해야만 용기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알고보면 애국심을 소리높여 주창하는 거물급들 가운데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은 사람은 충격적이게도 얼마 되지 않는다 (300쪽)]

북한에 대해 호전적인 자세를 보이고, 심지어 '전쟁 한번 해요'라고까지 말했던 모 정당 의원들이 자신은 물론 직계가족의 병역면제 비율이 굉장히 높다는 사실은, 극우세력은 어디나 마찬가지라는 통념에 확신을 더해준다. 이 책을 읽고나니 부시의 재선이 끔찍하게 여겨진다. 그러고보니 올해가 미국 대통령 선거, 신을 참칭하며 나쁜 짓만 일삼는 부시에게 신의 심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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