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과 사상 29 - 4.15 총선을 보는 세 개의 시선
강준만 외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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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달마다 나오는 <인물과 사상>이 벌써 29권째다. 그 꾸준함도 놀랍지만, 나로 하여금 전혀 다른 삶을 살도록 만들어 준 고마운 책인지라 이 책을 볼 때마다 애정이 샘솟는다.

이번 책의 부제는 '4.15 총선을 보는 세개의 시선'으로, 총선에 대한 강준만, 고종석, 김진석의 글이 실려있다. 민주당 분당에 지속적으로 저주를 보냈던 강준만의 다른 글들에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다소 냉정하게 쓰여진 이번 글은 그래도 공감이 갔다. 열린우리당의 창당은 '정치도박'이고 그나마도 폭력적 방법에 의해 달성되었다. 그걸 인정한다 해도, 난 고종석의 다음과 같은 말에 훨씬 더 동의한다.

[나는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행태에 실망햇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참여정부의 파산을 팔짱 끼고 보 수는 없다는 쪽이다. 그것은 재작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의 우리의 선택을 무화하는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행태가 지금 아무리 실망스럽다 할지라도,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이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최악의 노무현도 최선의 이회창보다 나았다(64, 72쪽)] 고뇌와 자기성찰을 담고있는 고종석의 이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난 책값이 아깝지 않다고 주장하련다.

언제나 내게 큰 깨달음을 주는 홍윤기, 그는 이번에도 날 즐겁게 해줬다. 원자력발전의 위험성을 이처럼 명쾌한 논리로 드러내주는 글이 또 있을까 싶다. 그는 복잡한 통계수치를 인용하지도 않으면서, 원전센터 측의 주장 속에 담겨진 허구를 찾아냄으로써 손쉽게 그 주장을 반박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홍윤기가 당대를 떠나 <인물과 사상>에 합류한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당대와 결별한 것이 본인에게는 아픈 상처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 밖에도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와 김기덕의 '나쁜남자'를 비교해 페미니스트들의 편향된 시각을 고발하는 강성률의 주장에 어느 정도 공감했고, 정재은 감독의 '그 남자의 사정'에 관한 정승화의 비판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강준만의 글을 많이 못보게 된 게 아쉽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지만, 다양한 필진에 의해 씌여진 주옥같은 글들을 읽을 수 있게 된 기쁨이 조금 더 크다. <인물과 사상>은 분명 업그레이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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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부터 말했잖아
악셀 하케 지음, 조원규 옮김, 토마스 마테우스 뮐러 그림 / 북라인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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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의 리스트를 통해 <내가 전부터 말했잖아>를 읽게 되었다. 그분은 '웃다가 죽으리라'는 리스트에 이 책을 올려 놓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잔잔한 미소가 나올 뿐 죽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아마도 이건 얼마 전에 읽은, 역시 독일 작가에 의해 씌여진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탓이 아닐까 싶다. <세상은>에 나오는 유머의 강도가 너무도 셌기 때문에, 웃음의 역치가 올라가 버린 것 같다. <세상은>의 얘기들이 너무도 기가 막혀 웃음 말고는 다른 감정을 유발시키지 못한 반면, 이 책의 주인공은 나와 같은 소시민이며, 그래서 공감과 동정이 간다.

예컨대 이 책에 수록된 <내 손이 나를 떠났을 때>는 베르베르의 <나무>에 나오는 이야기를 연상케 하는데, 베르베르의 것이 엽기적이고 공포스러운 것이라면, 이 책의 저자인 악셀 하케가 그리는 손은 따뜻한 친구 같다. 이 책의 이야기들이 대체로 다 그런 식인데, 주인공은 하고 싶은 말도 못하는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니곤 한다. 그의 행동이 내게 공감과 잔잔한 미소를 불러일으키는 건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있어서가 아닐까.

주인공이 아내와 가끔씩 한다는 게임은 권태기에 빠진 부부들이 한번씩 해봄직하다.
[가끔씩 파올라(주인공의 아내)와 나는 게임을 한다. '우린 지금 막 사귀었어요'라는 게임이다. 우리는 이제 막 알게 되어 저녁 극장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사이인 척한다. 나는 매점에서 땅콩을 산다. 포장을 뜯으며 내가 말한다. '땅콩 종류가 심장병 있는 사람한테 좋다더군요' '심장 쪽이 좋지 않으신가봐요' 파올라가 묻는다.

나: 당신 옆에 앉아 있을 때만 그래요
그녀: 땅콩 종류는 정력에도 좋다네요.
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안먹는 거예요.
....영화가 끝나고 나는 파올라에게 집에 데려다주어도 되냐고 묻는다. 그녀가 허락을 하면 우리는 곧 우리집 건물 앞에 서게 된다. '아, 당신도 여기에 살아요?' ...우리는 놀란다(96-97쪽)]

정말 잔잔한 미소가 떠오르지 않는가? 모르긴 해도, 악셀 하케는 파올라와 재미있고 단란한 삶을 꾸려나가고 있으리라고 본다. 아무리 외모, 외모 해도, 인생을 더불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와 약간의 유머가 아니겠는가. 아마도 하케는 좋은 남편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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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남자들만 산다
고은광순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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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 폐지를 위해 애쓰고 계신 고은광순님은 여성억압적인 현실을 내게 가르쳐준 스승이다. 용기가 없어 부모성 함께쓰기에 동참하진 못하고 있지만, 고은님이 하시는 모든 말에 동의하고, 고은님이 원하는, 부부가 나란히 같이 가는 사회의 도래를 진심으로 바란다. 일제의 잔재라고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라, 호주제가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아직도 많은 여성들을 옭아매고 있기 때문에 없어져야 한다는 말은 전적으로 옳지만, 우리나라에서 이 법이 없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호주제보다 더 시대착오적인 마초들이 남성들의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호주제에 관해 토론을 해보려 해도 잘 안되는 이유는, 호주제를 사수하고자 하는 사람들 중 설득력 있게 호주제의 존치 이유를 말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심규철 의원의 말이다.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불편해도 좀 참으면 안되나?' 최병국 의원은 한술 더떠서 호주제 폐지가 '민족사에 대한 도전'이란다. 나이든 사람이 그러는 건 이해해줄 구석이 없는 건 아니지만,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한술 더뜬다. 이 책에 소개된 네티즌의 견해다.

[남자가 우생학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지저긍로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헌법상의 여성에 대한 교육의 의무를 전면 삭제하고 처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남편에게 주는 법을 명문화시켜야 할 것이다(166-8쪽)]

이런 사람들과는 토론 자체가 애당초 불가능하다. 말도 안되는 논리에는 해학과 조롱이 필요한 법, 고은님은 그 부문에서 아주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고은님의 말이다.
[일부 남자들이 한국남성들의 '노는계집 밝힘증에 대해 습관적으로 둘러대는 변명이 있다. 남성이 여성보다 성욕이 스무배나 강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회교문화권에서는 남성에 비해 여성이 열배나 민감한 성감을 갖고 태어난다고 믿는단다. 그들이 여성들의 가장 민감한 성감대인 클리토리스를 거세하는 할례를 하는 것은 남성들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우리도 그 방법을 써보며 어떨까?...남성들의 성욕을 일으키는 호르몬을 분비하는 샘을 수술로 제거하여 1/20만 남겨두면 어떨까?(40쪽)]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난 소리내어 웃었다. 하지만 내가 이 얘기를 마초 친구에게 했더니, 그는 대번에 이렇게 대답한다. '맞아! 아랍처럼 해야 돼! 일부다처제' 이럴 수가. 마초와 깊은 대화를 하면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호주제가 없어지면 가정이 파괴될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그는 호주제가 없는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가정을 유지하는지, 호주제가 있는데도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왜이리 높은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성(姓)을 가진 집안이 전체의 절반도 안됐다는 사실도, 호주제의 발상지인 일본에서는 이미 호주제가 철폐되었다는 설명도 그에게는 소용이 없다. 그들은 앵무새처럼 외칠 뿐이다. '호주제가 없어지면 가정이 파괴된다!' 이런 걸 보고 우이독경이라고 하던가. 외국 기관에서 발표한 경쟁력 순위가 2-3위만 밀려도 나라가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우리 언론들이 우리나라의 여성권한척도가 해마다 최하위에 가깝다는 발표에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는 이유는 우리 기자들 중에도 마초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에는 왜 이렇게 마초가 유난히 많은 걸까? 이렇게 가다간 우리나라가 '동방마초지국'으로 불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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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영화와 시선 6
이성욱 외 지음, 연세대미디어아트연구소 엮음 / 삼인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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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서울관객만이 아닌, 전국관객을 집계하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예전에는 꿈도 못꿨던 '500만 관중돌파'가 심심치 않게 이루어진다. 영화 '친구'는 그 와중에도 우뚝 솟은 별로, '실미도'에 의해 기록이 깨지기까지 3년간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 800만, 대한민국 사람 여섯명 중 한명이 그 영화를 봤다는 얘기다. 떠들썩한 소문에 밀려서, 난 거의 마지막으로 800만 대열에 합류했다. 어두컴컴한 극장에 혼자 앉아 그 영화가 대박을 터뜨린 비결이 뭔지를 연구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난 도대체 뭐가 그토록 많은 관객을 끌어들였는지 알 수 없었다. 유오성의 연기가 일품이긴 했어도, 줄거리로 보면 그저그런 조폭얘기, 의리얘기가 아니던가.

연세 미디어아트연구소에서 펴낸 <친구>를 읽은 이유는 풀지 못했던 그 궁굼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보고자 한 까닭이었다. 그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왜 800만 관객이 그 영화를 선택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그 책을 통해 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저자 중 한명인 김정선의 말이다.

[고전적 갱스터는 애당초 목표가 자기 세계의 정상에 오르는 것이다. 그에게서 보스에 대한 충성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1990년대 중반 한국의 삼류깡패는..자기파괴적인 일인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그가 꿈꾸는 미래는...보스로부터 예쁨을 받아 출세하는 것이고, 보스에게 온 힘을 다해 충성을 바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하지만 '넘버3'의 태주(한석규 분)는..두목의 의중을 간파하고 배신을 선택함으로써...살아남는다...]

그렇다면, 깡패영화의 계보 속에서 '친구'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의 말을 조금 더 들어보자.
['친구'는 두 인물을 통해 구축하는 성공의 욕망(장동건)과 인간됨을 향한 욕망(유오성)의 충동에 있어 후자의 손을 들어주는 데 반해 1990년대 중반의 한국 갱스터 영화는 성공이 인간성을 어느 정도 희생해서라도 성취해야 할 절대과제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정리하면 다른 갱스터 영화들과 달리 '친구'에서는 일종의 전복이 이루어지고 있다(128-130쪽)]

유오성은 친구를 잔인하게 죽였는데 무슨 인간성이냐, 하고 물을 수 있겠다. 하지만 상택처럼 '삶의 색이 완전히 다른 친구는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삶의 색이 비슷한 친구는 친구이기 전에 경쟁자(100쪽)'임므로 둘 중 하나는 어차피 죽어야 할 운명인 것이다. '내는 니 시다바리가?'라는 유명한 대사는 둘 사이의 사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실린 글들이 대체로 다 유익했지만, 상택과 유오성, 장동건을 '욕망의 삼각형'이란 이론을 통해 분석한 대목은 매우 흥미로웠다. '나는 사랑의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가능케 하는 경쟁자를 사랑한다!' 내용이 어려워 멀미가 나기도 했지만, 남자들간의 의리라는 것도 따지고보면 동성애라는 말은 맞지 않는가? 이제 내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내리련다. 800만 중 절반 가량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친구'를 보지 않으면 대화에 끼지 못해서 극장을 찾은 건 아닐까? 뭐가 좋다면 우 하고 달려가는 우리의 성향이 800만의 신화를 만들어 낸 것이리라.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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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 박재영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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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작가는 외과 레지던트다. 우리나라의 레지던트들은 박봉에 무지하게 바쁜 일상을 영위하느라 책을 쓸 여력이 전혀 없을 테지만, 미국의 레지던트는 좀 다른가보다. 우리나라가 4년인 데 반해 미국은 8년을 하는 걸 보면, 거기선 레지던트가 거의 스탭과 동등한 게 아닌가 싶다. 작가는 꼼꼼히 환자의 자료를 챙기며, 환자의 퇴원 후에도 쫓아가 경과를 관찰하는 열의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현장감이 넘치고,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재미있다. 문장력 또한 뛰어나며, 전문용어도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등 독자를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첫장을 펴자마자 흠뻑 빠져들어 정신없이 읽어내려갔는데, 책 곳곳에서 작가의 고뇌와 성찰이 엿보인다.

예컨대, 교육병원의 딜레마에 관한 부분을 보자. '최상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환자의 권리는 의사의 수련이라는 목적보다 분명 상위에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실습대상이 되는 것은 싫어하면서 숙련된 의사를 원한다. 하지만 만일 누군가를 훈련시키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모두의 몫이다(39쪽)' 그러면서 작가는 아무 연고도 없는 힘없는 사람이 피해를 보는 현실에 마음아파한다.

레지던트 초년병 시절, 자신의 실수를 기술해 놓은 대목도 재미있다.
[각도를 유지하는 데만 골몰하다가...쇄골을 정통으로 찔러버렸다. '욱!' 환자가 신음소리를 뱉었다. '죄송합니다' 내가 말했다...나는...다시 시도했다. '윽!'이번엔 너무 얕았다. 다시 쇄골 아래로 찔러넣었다. 역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너무 뚱뚱해서 그런 거야, 나는 속으로 불평했다...나는 S에게 주사기를 건네고 옆으로 비켜섰다...너무나도 쉽게 들어갔다...나는 완전히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25-26쪽)]

이밖에도 검사상에는 나타나지 않는데 환자는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 환자와 의사 사이에 치료방법을 선택함에 있어서 누가 결정권을 가져야 하는지, 의사의 실수는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작가는 깊은 성찰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의사에 대한 감정이 그다지 좋지 않다. 의사들이 보여준 행태가 그렇게 만든 측면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의사와 환자간의 진솔한 소통이 없어서일 것이다. 예컨대 돈이 없어보이는 환자를 걱정해 '그 검사가 좀 비싼데, 하시겠어요?'라고 말했던 어떤 의사는 자기를 무시했다고 펄펄 뛰는 환자로부터 수모를 겪어야 했는데, 이런 것들도 모두 신뢰의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겠는가. 바쁜 건 알지만 우리 의사들도 이 책처럼 진솔한 책들을 많이 쓴다면, 그래서 그 책들이 많이 읽힌다면, 의사가 지금처럼 적대시되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우리 모두는 잠재적 환자고, 의사와 환자는 모두 서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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