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 박재영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03년 6월
평점 :
이 글의 작가는 외과 레지던트다. 우리나라의 레지던트들은 박봉에 무지하게 바쁜 일상을 영위하느라 책을 쓸 여력이 전혀 없을 테지만, 미국의 레지던트는 좀 다른가보다. 우리나라가 4년인 데 반해 미국은 8년을 하는 걸 보면, 거기선 레지던트가 거의 스탭과 동등한 게 아닌가 싶다. 작가는 꼼꼼히 환자의 자료를 챙기며, 환자의 퇴원 후에도 쫓아가 경과를 관찰하는 열의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현장감이 넘치고,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재미있다. 문장력 또한 뛰어나며, 전문용어도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등 독자를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첫장을 펴자마자 흠뻑 빠져들어 정신없이 읽어내려갔는데, 책 곳곳에서 작가의 고뇌와 성찰이 엿보인다.
예컨대, 교육병원의 딜레마에 관한 부분을 보자. '최상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환자의 권리는 의사의 수련이라는 목적보다 분명 상위에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실습대상이 되는 것은 싫어하면서 숙련된 의사를 원한다. 하지만 만일 누군가를 훈련시키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모두의 몫이다(39쪽)' 그러면서 작가는 아무 연고도 없는 힘없는 사람이 피해를 보는 현실에 마음아파한다.
레지던트 초년병 시절, 자신의 실수를 기술해 놓은 대목도 재미있다.
[각도를 유지하는 데만 골몰하다가...쇄골을 정통으로 찔러버렸다. '욱!' 환자가 신음소리를 뱉었다. '죄송합니다' 내가 말했다...나는...다시 시도했다. '윽!'이번엔 너무 얕았다. 다시 쇄골 아래로 찔러넣었다. 역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너무 뚱뚱해서 그런 거야, 나는 속으로 불평했다...나는 S에게 주사기를 건네고 옆으로 비켜섰다...너무나도 쉽게 들어갔다...나는 완전히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25-26쪽)]
이밖에도 검사상에는 나타나지 않는데 환자는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 환자와 의사 사이에 치료방법을 선택함에 있어서 누가 결정권을 가져야 하는지, 의사의 실수는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작가는 깊은 성찰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의사에 대한 감정이 그다지 좋지 않다. 의사들이 보여준 행태가 그렇게 만든 측면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의사와 환자간의 진솔한 소통이 없어서일 것이다. 예컨대 돈이 없어보이는 환자를 걱정해 '그 검사가 좀 비싼데, 하시겠어요?'라고 말했던 어떤 의사는 자기를 무시했다고 펄펄 뛰는 환자로부터 수모를 겪어야 했는데, 이런 것들도 모두 신뢰의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겠는가. 바쁜 건 알지만 우리 의사들도 이 책처럼 진솔한 책들을 많이 쓴다면, 그래서 그 책들이 많이 읽힌다면, 의사가 지금처럼 적대시되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우리 모두는 잠재적 환자고, 의사와 환자는 모두 서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