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6월 10일(목)
마신 양: 소주-->맥주--> 소주

지난 월요일, 화요일 난 술을 마시지 않았다. 마시자는 친구가 있었지만 차갑게 거절했다. 이유는? 어제의 한판을 위해서. 어젠 내가 알라딘 다음으로 잘가는 사이트의 오프모임이 있었다. 여자 둘, 남자 넷이 모였는데, 그중 한 여자분이 술을 무지하게 잘했다. 전에 만났을 때도 그 여자분 때문에 거의 도망치다시피 집에 갔으니, 이번에는 명예회복이 절실했다. 그녀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달라는 의미에서, 모 인터넷 사이트에 그녀가 썼던 글을 옮겨본다.

[-2박 3일, 네병의 소주와 두병의 맥주를 마셨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웬종일 싸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했는데, 가끔 저는 저의 체력에 스스로 놀라기도 합니다. 난, 터미네이터여

-캐치원에서 하는 섹스 앤 더 시티 시즌6편 마지막회를 보며 술을 홀짝거렸더니 소주도 금새 떨어지고 맥주는 훨씬 전에 바닥났고 술이 모자랐지만, 배달되는 곳이 없어서 그냥 잤습니다

-여자 셋이 야심한 밤에  맥주와 와인, 소주를 마시며 이 으리으리한 러브호텔 품평을 했다.  동양최고의 시설이라 극찬을 하며... 새벽에 그녀와 나의 친구는 골아떨어졌고 나혼자 소주를 글라스에 따라마시며 또 스프링 노트에 뭔가를 끄적거려봤다]  

-지금 시간은 5시 25분. 3월 19일 ,2004년 오전... 새벽 5시 반까지 술먹다가 집에 들어옴.
어제는 새벽 4시까지 음악하는 친구의 작업실에서 김치찌개 끓여서 소주를 마셨습니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라 참 달았습니다

-내가 수능시험을 끝내고 연짱 18일 마셨어 혹은, 고시 끝내고 연짱 28일 마셨어, 그 정도는 아니지만 요즘은 어쩌다보니 연짱 술마실 일이 생기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폰 부스 Phone Booth> 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다운받아 읽다가 술마신지 너무 오래된것 같아서리 아빠가 반주로 잡수시다 남긴 소주 반병을 낙지젓과 치즈를 뜯어먹으며 몇자 적어봅니다

-1차 감자탕과 소주
오후에 도봉산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온 그녀는 컨디션땜에 아주 조금만 마셨고 그와 내가 소주세병을 나누어 먹었다.  그녀의 남친이 말한다. “윽, 소주가 너무 달아...”
2차-둘둘치킨과 생맥주
3차-교정에서 캔맥주
4차-이화주막, 생맥주, 쥐포...]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그녀-알파라고 하자-도 나처럼 "일정한 기간마다 술을 마셔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소유자며, "한번 마시면 뿌리를 뽑는 스타일"이다. 그러니 내가 어찌 긴장하지 않겠는가. 어제도 날 보자마자 "오늘 집에 가지 맙시다! 4차까지 가는거야!"라고 거듭 말한다. 당근 쫄았다. 사실 난 전날 잠을 잘 못자서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기차에서 내릴 곳을 지나쳐 종착역까지 갔겠는가. 청소 아저씨가 깨워서 일어나보니 승객이라곤 아무도 없었다는.... 치사한 인간들, 내리면서 나좀 깨워주지. 특히 내 옆의 아저씨는 창가쪽에 앉았으면서 어떻게 날 안깨우고 내렸을까. 내가 기차 안에 갇히길 바라면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내렸으리라. 하지만 피곤할수록 술은 더 단 법, 술은 달기만 했고, 난 알파와 연방 잔을 부딪히면서도 평정을 잃지 않았다. 이런 나의 기세에 눌린 알파는 2차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연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3차, 씩씩하게 소주 한병을 다 비운 나와는 대조적으로, 알파는 소주 두잔을 무려 한시간 동안 먹었고, 마지막까지 심판으로 남았던 또다른 여인은 내가 이겼다며 내 손을 들어 줬다. 언제나 먼저 뻗어버리던 내가 누군가를 이긴 건 실로 오랜만이다. 사람들은 그런다.
"술내기가 가장 무식한 내기"라든지, "그거 이기면 기분 좋냐?"라고. 하지만 무식하든 아니든 술내기야말로 가장 스릴있고 짜릿한 경기이며, 이기고 난 기쁨은 오래도록 지속된다. 내가 패배했을 때 알파를 피했듯, 그녀 또한 날 당분간 두려워하겠지. 어제는, 분명 기쁜 날이다.

* 참고로 신촌에는 기와장을 여러개 깨면 상품을 주는 무식한 좌판이 벌어지고 있다. 힘이라면 뒤지지 않는 내 동료가 기와장 16개를 한번에 깨서 시계랑 음악 나오는 기계를 탔다. 기와장이 다 깨졌을 때 아주머니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는...

** 새벽 1시 반에 들어가고도 아침에 일찍 출근한 내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오늘 오전도 어제에 이어 겁나게 열심히 일했다. 월요일날 발표할 게 있는 탓에... 내게도 가끔 이런 일이 생긴다! 음하하. 그리고...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4연전이 예정되어 있다.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맘 속으로 빌어본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소굼 2004-06-11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그 기와장깨는 곳은..젤 좋은 상품이 시계와 음악기계인가요?;

메시지 2004-06-11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술마시고 기왓장 깨는 것 재미있더라구요. 몇 장을 깼냐구요? 너무 많이 마셔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뻔뻔스럽게. 말하면 창피하거든요)

로렌초의시종 2004-06-11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제가 밤늦은 시간에 거처로 돌아올 때면(대부분은 일찍 돌아오지만요^^;) 항상 도중에 있는 편의점 맞은편 길가에 펼쳐진 그 기와장 깨기를 봅니다. 물론 전 한번도 해본적이 없지만요. 전에는 여기저기 돌아가면서 하나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계속 그 시간이면 거기서 터잡고 하는 것 같더라구요^^ 창서초등학교 앞이었던가......
아무튼 마태우스님 축하드려요 적립금 11주 연속에 과장 승차에 방송 계속 출연에 좋은 일뿐이네요. 하례드립니다~^^

마태우스 2004-06-11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렌초의시종님/아, 그게 보편적인 레져로 자리잡았군요! 창서초등학교 앞 맞습니다!!! 그리고...적립금 11주 연속은 아직 모릅니다. 더 열심히 해야죠.
메시지님/흐음...남자들은 술먹고 뭔가를 부수고 싶은 욕망이 있는 모양이군요. 전 오락실에 있는 펀치 기계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그리고 기와장 못깬다고 부끄러울 거 없습니다.
소굼님/30장 깨면 양주 한병 주더라구요. 근데 어제 기와장을 격파했던 친구의 말에 의하면 30장을 깨는 건 불가능하다더군요.

panda78 2004-06-11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항. 그렇군요. 마태우스님,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는 쳐 놓으셨나요? 길이길이 기려야죠!
역사적인 승리의 날을-- ! 빰빠라밤 빰빰빰 빰빠라밤---!!

진/우맘 2004-06-11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를 이기니 좋다, 뭐 그런 얘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책 잘 받았어요~

마태우스 2004-06-11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아니어요, 전 진우맘님 뒤에서 조용히 따라가기로 했어요. 신경쓰지 말고 저 추월하세요!
쥴님/와, 저를 바르게 인도해 주시는 쥴님이다! 칭찬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근데 그 사람 참 나쁜 사람이죠?
판다님/하하, 저보다 님이 더 좋아하는 듯... 그녀를 꺾었으니 이제 당분간 적수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일시: 6월 9일(수)

누구와?: 친구와

마신 양: 술일기에 쓸 정도는 된다.

 

오늘은 간만에 일을 좀 했다. 내가 좋아하는, 지극히 단순한 일이었지만 근로의 기쁨은 언제나 큰 것, 오전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밥맛이 좋기까지 했다. 이 얼마만에 느끼는 희열인가!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주간 서재 순위를 보니 내가 무려 31위, 11주 연속 5천원이 위태롭다. 잽싸게 마이리뷰를 하나 쓴 뒤 페이퍼를 하나 쓰려고 머리를 굴렸다. 뭘 쓰지 생각하는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내게도 이럴 때가 있을까, 하고 스스로 놀란다. 생각이 안날 때는 서재 마실이 최고, 여러 군데를 다니다보니 노래방에 대해 써야겠다는 깜찍한 생각을 했다 (플라시보님의 글에서 힌트를 얻었다. 개인적으로 감사드린다).

내게도 신곡에 목을 매던 시절이 있었다. 길보드를 사서 들으며 신곡을 연마하고, 노래방에서 불러보면서 내 것으로 만들었다. 그런 노래들은 대개 가사까지 다 외워 버려, TV 화면도 안보고 부르며 가사를 외운다는 사실을 뽐내곤 했다. 그당시 난 한물간 노래만을 부르는 사람을 비웃었고, 그에게 보란듯이 노래방 목록의 맨 뒤페이지에서 노래를 골랐다. 모든 신곡을 다 부를 줄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신곡 중에서 그저 서너곡만 불러도 주위 사람들의 눈은 충분히 휘둥그레졌다. "너무 젊어보여요!" "멋있어요!" 노래를 부르고 나면 내게 쏟아지는 찬사였다.

하지만 그런 시절은 갔다. <화장을 고치고>를 마지막으로, 난 신곡취입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도 '귀찮아서'일 것이다. 테이프를 돈주고 사는 것도, 그걸 레코더에 끼워 플레이를 누르는 것도.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난 내가 비웃던 그런 사람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어져 버렸다. 젊은 애들이 부르는 몇만번대 번호의 노래들을 난 더 이상 알지 못한다. "저런 노래도 있나?"는 표정으로 그들의 노래를 감상할 뿐.

그렇게 되자, 예전과는 달리 노래방을 가는 게 꺼려진다. 가만히 앉아 쥬스만 마시면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내가 노래를 안부르고 있으면 괜히 미안해하며, 내게 한곡 부르라고 권하곤 한다. 그냥 듣기만 하는 게 난 훨씬 더 좋은데... 지도교수와 함께 있을 때는 흥을 돋우기 위해 내가 어쩔 수 없이 불러야 하는데, 내가 부르는 한물간 노래들은-그나마도 몇번씩 부른 적이 있는-분위기를 다운시키기만 할 뿐이다. 노래라는 게 역사성을 띈 게 아닌지라 지금이라도 테이프를 사면, 그래서 신곡 몇 개만 연습하면 다시금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지만, 정말이지 만사가 다 귀찮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건, 노래방에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노래방에서 가만히 앉아 감상만 할 자유를 얻는 것이다. 말과는 달리 그건 그다지 쉬운 건 아닌가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진/우맘 2004-06-10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들은 얘기. 차인표가 신애라랑 노래방을 갔답니다. 차인표는 신나게 신곡을 뽑는데, 신애라는 옛날 노래만 몇 곡 부르더랍니다. 그 상황에서 차인표가 느낀 것....
'아, 나는 바깥에서 일하고 어울려 놀면서 신곡을 섭렵하는 동안, 아내는 살림하고 아이 키우느라 이젠 이런 것에 관심을 못 두었구나....아내에게 미안해라....'
이런 글이 어디엔가 떴대요. 그 후 네티즌들이 <차인표 짱>을 외쳤고....
전 우리 서방님을 보면 그런 기분이 듭니다. 부르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트롯을 부르는....마누라는 편한 세월 사는데, 서방님은 집안 경제 챙기고 힘든 직장 생활 하느라 저리 되는구나....싶어서. 흑흑. (진/우맘 짱, 하라고 쓰는 글은 아닙니다.^^;)

starrysky 2004-06-10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노래를 못 부르기 때문에 노래방에 가는 것도 싫고, 억지로 끌려갔다 하더라도 나는 좀 가만 내버려두고 자기들끼리 놀아줬으면.. 싶은데 굳이 노래를 시키더군요. 느무 싫어요. -_- 차인표가 그 얘기하는 거 저도 TV에서 봤어요. 멋진 사람인 것 같아요. (잘은 모르지만.. ^^)
그리고 마태우스님 저한테 추천해주신 '목욕탕에서 등 밀어주는' 얘기 쓰시라니까요. 저는 씻기 귀찮아서 목욕탕엘 안 가기 때문에 창작의 밑바탕이 되어줄 꺼리가 없답니다. ^^
(한마디 덧붙이자면, 마태우스님 페이퍼에서 '일했다'는 글 처음 읽은 것 같아요. 기념비적인 날입니다)

이파리 2004-06-10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화장을 고치고> 어려운데...^^
님의 노래 한 번 들어보구 싶군요.
전 가수 몇 사람만 팝니다. 그들이 신곡을 내면, 한 두어 달 정도 있다가... 노래방을 가지요.*^0^*

플라시보 2004-06-10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흐흐. 제 노래방 글을 보고 소재를 얻으셨다구요? 님이 제공하신 기생충을 이것으로 보답했다고 믿으면 너무 뻔뻔스러운가요? ^^ 아. 그리고 참고로 저도 이제는 노래방 책을 뒤에서 부터 보던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가요가 나오는 프로도 잘 안보고 어디가서 듣지도 않으니 별 수 없더라구요. 님의 심정 십분 이해합니다.

마냐 2004-06-10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방이 어느날부터 고문이 되는 거....나이가 든다는 증거라 하던데...암튼, 세상에 할 일은 많고 읽을 책도 많고, 볼 영화도 쌓이는데..어느 세월에 최신곡까지 섭렵하는지 신기한 사람들도 많더군요.

아영엄마 2004-06-10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음치라서 노래방이란 간판 자체가 고문입니다..ㅠㅠ 울 남편은 노래 즐겨 불러서 연애할 때 따라가긴 했어도 노래는 딱 한 번 부르고 그 이후로는 안 부른다고 끝까지 발뺌하기.. 그것도 고역이었죠... 어쨋든 노래방 안 가본지도 정말 오래 됬네요..

로렌초의시종 2004-06-10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방 가서 노래부르는 건 진짜 좋아하는데 요즘은 같이 갈 사람이 없다죠ㅜ ㅜ 사실 저로써는 같이 노래방 갈 사람 정도면 꽤 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아무래도 조금은 망가지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사람을 고르는 탓도 있지만요. 뭐 신곡 연습을 딱히 하는 건 아닙니다만 좋아하는 가수들 것 정도는 항상 들어두죠, 장르가 한정되어 있어서 탈이지만^^;

마태우스 2004-06-11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렌초의 시종님/나중에 직장 다니면 갈일이 지겹게 많지 않을까요? 그때를 위해 열심히 연습해 두시길...
아영엄마님/호오, 저랑 같은 과군요. 미모는 대개 노래를 잘부른다는데, 님은 의외군요.
마냐님/그러게 말입니다. 읽을 책도 밀렸고, 마실 술도 밀렸는데 신곡까지 커버하긴 제가 무리죠.
플라시보님/감사합니다. 님의 격려는 언제나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이파리님/<화장을 고치고>가 뭐가 어렵습니까. 최대한 애절하게 부르면 됩니다. "나같은 여자를 왜 사랑했는지 왜 떠나야 했는지...."
스타리님/
-기념비적인 날 맞습니다^^
-등밀어주는 거 말고 다른 소재를 제공하겠습니다
-노래 부르기 싫은 사람은 안시키면 좋겠어요. 근데 아무도 안부르면 썰렁해지지 않을까요?
진우맘님/차인표는 잘생긴 것이 인간성까지 좋단 말입니까. 볼수록 괜찮은 배우 같긴 해요.
 

 

 

 

 

 

일시: 6월 6일 (일)
마신 양: 생맥주 왕창--> 소주, 취해서 잠깐 졸기까지...

소재에 목마른 사람에겐 모든 일이 다 소재로 보이듯이, 내게 있어서는 친구의 어떤 제안도 다 술로 귀결된다. 저녁을 먹자는, 어찌보면 지극히 평범한 말도 내게는 "술한잔 하자"는 말로 들린다. 야구를 보러가자는 제안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많은 관중을 끌어들이는 기아-엘지전을 보러 야구장에 갔다. 예전에는 야구장에 갈 때마다 팩소주를 사가지고 가든지, 아니면 빈 물병에 소주를 가득 채워서 갔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난번에 야구장에 갔을 때, 야구장 내에서 생맥주를 컵에 담아서 파는 걸 확인했기 때문.

그간 야구장에 술 반입이 안됐던 것은 술에 취한 사람들이 행패를 부렸던 어두운 과거에서 기인한다. 특히 밤경기처럼 누가 사고를 쳐도 잘 안보이는 경우에는 그런 일이 더더욱 빈번했다. 오래전 고교야구가 인기 절정이던 시절 야구장에 갔는데, 근처에 있던 응원단간에 감정 대립이 있었다. 급기야 그들은 가지고 있던 것을 던지면서 싸웠는데, 병들이 위아래로 날라 다니는 모습은 매우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걸 보면서 난 "저 많은 소주를 다 마셨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엘지와 해태가 맞붙었던 어느날, 해태가 개박살이 나자 흥분한 관중들이 뭔가를 던졌다. 다른 건 다 이해한다. 하지만 어떻게 국물이 들어있는 사발면을 던지나. 난 용케 안맞았지만, 낙하지점에 있던 관중은 옷을 다 버린 채, 위를 보면서 험악한 동작을 취했다. "어떤 xx야?" 두산 경기를 볼 때, 엘지가 일방적으로 이겨서 관중이 많이 빠져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 간간히 비가 내렸었는데, 술에 취한 게 확실한 관중 한명이 위에서 계속 비닐우산을 쪼개서 던지는 거다. 다들 피하는 와중에 나 혼자만 남아-우산으로 막으면서-경기를 끝까지 봤는데, 그런 사태가 벌어지는데 청원경찰은 왜 가만히 있는지 모르겠다. 미국 야구를 보다보니 경기를 방해하는 관중은-예컨대 경기장에 난입하거나 플라이볼을 건드리는 등-가차없이 끌려나가던데...

하여간 그런 슬픈 역사 때문에 야구장에 술 반입이 안되었던 거지만, 이제 컵으로나마 맥주를 파는 걸 보니 팬들의 관전의식이 좀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난 경기장 내에서 떳떳하게 맥주를 마신다. 몇잔째인가를 사는데 뒤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이러신다. "쟤 좀 봐, 또마셔!" 후후, 내가 취해서 행패라도 부릴까 걱정하시는 모양이다. 술에 취하면다들 괴물로 변하지만, 내가 부리는 꼬장이라봐야 기껏해야 자는 것밖에 더있나. 대충 6잔 정도 마신 것 같고, 나가서 저녁을 먹으면서 소주를 마셨더니 아주아주 기분이 좋았다. 어제 하루는 그렇게 흘러갔다. 술과 야구와 함께.


댓글(7)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weetmagic 2004-06-07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립금10주 기념, 특별 이벤트 때문에 술일기가 주목 받지 못하고 있군요..
여튼. 일등~!!!

groove 2004-06-07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야구장에 술도파는군요이제 근데 컵라면 국물에맞으면 기분이 매우 그지같겠군요-_-!
저희집앞이 야구장있는것같던데 집앞이 야구장이라도 한번도 야구경기를 직접가서 본적이없군요 흐흐

nugool 2004-06-07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구장에서 술 마시는 거 그 기분 끝내 주는 거 저도 압니다...^^ 파란 잔디밭에 하얀 공은 날아가지요.. 시야는 시원하게 쭉 뻗어 있지요.. 서방이 워낙 야구를 좋아해서 저도 야구장 자주 가는데요, 작년에 가니까 아닌게 아니라 생맥주를 팔더만요... 맥주 팔기전에는요.. ㅋㅋ 일단 제 가방에 있는 소지품들을 서방가방에 죄다 넣고 제 가방에는 팩소주 캔맥주를 잔뜩... 왜 제가방이냐!! 남자들 가방은 입장할 때 가끔 불심검문하듯 검사도 했잖아요. 게다가 제 서방은 한술하게 생긴 외모인지라.. 자주 검문을 당했거든요. 그러니.. 검문당할 일 없는 제 가방에... 술을 잔뜩...사서 들고 들어가서는 몰래 홀짝 홀짝~~ 그 맛 아주 끝내 줬습니다... ^^ (헌데.. 이벤트 응모를 해야할 텐데... 문제를 보니 엄두가 안납니다.. 영광의 사진문제에 등장한 것 만으로 만족해야할 듯 싶습니다. ^^;;;)

kimji 2004-06-07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구장은 제법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야구장에서 술을 마셔본 적은 없네요.^>^
아, 응원하는 팀은 두산이기 때문에 가끔 이벤트에 당첨되면 맥주를 선물로 받아오기는 했네요.
음, 저도 기회가 되면 생맥주와 함게 야구를 즐겨야겠습니다. 썩 괜찮을 듯 싶네요. ^>^

마태우스 2004-06-07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굴님/오호라, 역시 님은 낭만이 뭔지 아시는군요! 친하게 지내도록 합시다!
kimji님/흠, 님이 야구장에 자주 오셨단 말이죠. 앞으로 두산 쪽에서 미녀를 보면 혹시 김지님이 아니냐고 물어봐야겠어요^^
groove님/안맞아봐서 모르지만, 아마도 죽고싶을 겁니다. 집 근처가 야구장이시라니, 오가다 우연히 마주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sweetmagic님/감사합니다. 안그래도 이 야심작에 아무도 관심을 안가져서 속상해하고 있었거든요.

두심이 2004-06-07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서재에 오면 술냄새가 납니다. 술한잔하고 온 오늘은 더 술냄새가 나는군요..아이고..취해라. 지금..꼬장부리는 겝니다. ㅋ......알라딘 대표주자 마태우스님에게 이리 술꼬장을 부리면 쫒겨날라나?.. 님의 글을 읽고 산 사다리 걷어차기 아직도 못읽고 있습니다. 너무 진도가 안나가요.. 이거..확실히 꼬장맞네..초면에 실례많았습니다.

플라시보 2004-06-08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야구장에는 아주 어렸을때만 가 봐서 거기서 술을 마시는 그 맛을 알지 못하는게 안타깝습니다. 너굴님 말씀을 들어보니 꽤 재밌을것 같은데...
 

일시: 6월 4일(금요일)

마신 양: 맥주--> 더 센술--> 좀더 센 술...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일거다. 느낌이 이상해 가슴께를 만져보니 젖이 하나 더있다. 무지하게 놀랐다. 떼었더니 금방 떨어졌다. 휴우 하고 안심하려다, 불길한 예감에 등을 만져봤다. 뭔가가 나 있다. 무서워진 난 엄마를 부르면서 어디론가 마구 달려갔다.
나중에 그 병은 수두로 진단되었다. 온몸이 너무 가려워 장갑을 끼고 잤고, 학교도 이틀인가 쉬었다. 나 때문에 온 가족이 다 수두에 걸렸지만, 나처럼 증상이 심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그게 원래 그렇다는 건 한참 뒤에야 알았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분이 피부병의 일종인 건선에 걸렸다. 배에 뭔가가 우둘투둘하게 나서 보기도 안좋고, 본인도 무지하게 괴로울텐데, 아쉽게도 그건 치료법이 마땅치 않다. 자외선을 쏘기도 하고 약도 나와 있지만, 획기적으로 좋아지는 건 없는 것 같다. 내 동창 하나도 건선으로 고생하는데, 치료법을 강구하느라 외국 논문을 무수히 읽다보니 건선에는 박사가 되었단다 (참고로 그는 정형외과다). 내 매제는 아토피라,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마가 뻘겋게 되는데, 심장병이나 간질환 같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그게 보는 사람에겐 더 안쓰럽다.

피부에 병이 생기면 죽는 일은 드물지만, 뭔가가 생기면 공포스러운 게 또 피부다. 예컨대 두드러기 같은 게 나면 얼마나 무서운가. 저절로 없어지는 게 아니라면 피부 질환은 대개 마땅한 약이 없다. 의사들 사이에서 피부과 사람들이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 돈만 많이 번다고 비난받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난 피부가 그리 좋지는 않지만, 병원 신세를 질 정도로 고민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내 남동생만 해도 심한 여드름으로 한번에 십이만원인가 하는 박피술-난 그걸 사이비로 본다-을 여러번 했는데, 지금도 동생은 그 흔적이 생생히 남아 있다.

내가 아는 여자 중 피부 때문에 콤플렉스를 가진 여자가 있다. 미모고 지적이며 유머까지 갖추었으니 피부가 조금 나쁜 게 뭐가 문제겠냐만은, 그게 또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피부 안좋은 미녀가 좋냐, 피부 좋은 추녀가 되길 원하냐"는 내 질문에 그녀는 단호히 후자를 선택했다. 그걸 그녀만의 특수성으로 단정지은 나는 만나는 여자마다 거기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놀랍게도 6명 중 다섯명이 '피부가 좋은 추녀'가 되겠다고 답을 했다. 물론 내가 만나는 여자들이 다 미녀들이라 추녀들이 받는 설움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여자에게 있어서 피부의 중요성은 남자인 내가 느끼는 것보다 더 큰 모양이다. 피부 때문에 일반 화장품을 못쓰고 무지하게 비싼 화장품을 써야 하는 것도 그중 하나란다. 과히 좋지도 않지만 관리마저 잘못해 얼굴 여기저기에 자국이 무수히 난 내 얼굴을 바라보면서 난 이렇게 중얼거린다. "내가 남자길 정말 다행이야. 여자였다면, 아마 비관해서 세상을 등지고 숨어살았겠지"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갈대 2004-06-05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저기 자국도 많은 피부지만 그래도 피부병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사실 저는 여자를 볼 때 피부가 깨끗한지부터 봅니다.
저 같은 남자들 때문에 여자들이 피부 걱정을 많이 하고 비싼 화장품을 잔뜩 바를 수밖에
없는 건 아닌지...

진/우맘 2004-06-05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피부 안 좋은 미녀 하고 싶은데...TT

마태우스 2004-06-05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흠...그럼 일곱명 중 다섯분으로 바꿔야겠군요^^
갈대님/호오, 님은 피부를 보시는군요!! 피자 때문에 데어서 그러신 게 아닌지요^^

2004-06-05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K②AYN-쿄코 2004-06-05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피부 좋은 사람 부러워요~ 특히 피부가 하~얀 사람들..~
뽀샤시한게 너무너무 이뿌더라구요~~ 친구중에 그런 친구 있는데 쿄코는 너무 부러웠죠.
ㅜ0ㅜ..;;

연우주 2004-06-05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피부 너무 안 좋아서 고민이랍니다. 제 피부도 장난 아니죠. 확 밀어버리고 싶습니다..ㅠ.ㅠ

이파리 2004-06-05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피부도 좋은 미녀 할래요~*^0^*(철없고 욕심 많은 이파리!)

밀키웨이 2004-06-05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돌연 생각나는 몇년전 시아부지 멘트.

시동생이 처음으로 지금의 동서를 데리고 집에 인사시키러 온 날이었습니다.
한상 거나~~하게 차려서 식사하고
여자들(시어머니, 동서, 저)과 시동생은 상에 둘어앉아 커피 마시면서 하하호호 웃었는데
시아부지는 쑥쓰러운지 안방에 들어가계셨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동서 가고 나서 하시는 말씀.
"피부는 좋더라"

아니, 언제 피부는 살펴보셨으며 둘째 며느리자리 처음 선보시면서 하시는 멘트가 피부라니!
저하고 시어머니 꽈당꽈당 @@@

메시지 2004-06-06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내가 만나는 여자들이 다 미녀들이라"
혹여 모든 여자분들을 다 미녀로 생각하시는 것은 아닌지...... 전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중이예요.

nugool 2004-06-06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에, 피부가 고우면 이미 반은 먹고 들어 간 거다 뭐 그런 내용을 가진 속담이 있다는데... 자세한 표현은 생각이... 하여튼 그래서 일본 여자들이 하얀 피부에 더 열광을 한다는 얘길 들은 적 있어요... 어쨌든 고운 피부는... 모든 여자들의 소망이죠. 제 친구중에 이목구비는 영 별로인데 백옥같은 피부로 한몫하는 애가 있는데.. 나이가 먹으면 먹을 수록 빛을 더 발하는 걸 보면... 역시 여자는 피부인가 봅니다. 헌데 아토피, 건선.. 다 무서워요... 엊그제에 무슨 티비 프로그램에 피부병에 특효인 터키의 신기한 온천... 얘기가 나오던데... 건선환자들... 정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더군요.

마냐 2004-06-06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아토피도 인생의 벗삼아...수양과정에 필요한 자극 정도로 삼아...살아갈 수 있습니다. 비록 평생 '단 하루만이라도 피부미인'이라는 허망한 꿈을 버리지는 못하겠지만.

플라시보 2004-06-06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미녀는 아니지만^^ 피부가 좋지 않기 때문에 님의 친구분의 심정을 백분 이해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피부가 고우면 50점은 먹고 들어간다. 그렇습니다. 여자에게 있어서 피부란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얼굴이 좀 못생겨도 아기처럼 보송하거나 아니면 파리가 미끄러질듯 매끈매끈한 피부를 가지고 있다면 못생긴 얼굴이 별로 단점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때 부터 피부가 좋지를 않아서 고생을 했는데 병원 신세를 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늘 피부 때문에 고민을 해 왔습니다. 그나마 흰 피부라 다행이지 검은 피부에 피부까지 나쁘면 더욱 최악이었을 것이란 점을 위안삼아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20대 초반에는 주변인 중에서 피부가 최악이었는데 계속 관리를 하니까 좋은 피부 믿고 관리 전혀 안한 친구들 보다 지금은 제 피부가 차라리 나은것 같습니다. 적어도 주름은 하나도 없으니 말입니다.

로렌초의시종 2004-06-06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피부의 중요성을 십분 인정한다해도 저로써는 역시 마태우스님 말씀대로 다들 추녀의 괴로움이란 걸 본격적으로 경험해보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어느정도의 추녀인지의 정도의 차이는 있습니다. 지금보다 조금만 못생겨지고 피부는 지금보다 200% 좋아지기를 바랄 수도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저도 아토피인데 정말 가끔씩은 너무 힘들어요ㅡ ㅡ 팔에만 있는 여드름 자국들때문에 긴팔 입기도 신경쓰이고 그래서 박피술......하려고 했는데, 사이비라 말씀하시니......(의사선생님 말씀이시라 무시도 못하겠구 ㅜ ㅜ)

groove 2004-06-06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피부안좋은추녀 여기한마리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ooninara 2004-06-06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부도 안좋고..미녀도 아니고..흑흑..어제도 찜질방가서 다른 아줌마들 옷벗은거 (또 에로로 간다) 보니..백옥은 아니라도 희끄므레한것이 보기에도 좋은데..난 시꺼멓고 빈티나는 피부에다..이것 저것 잘도 뾰로지가 나고..닭살 피부라서 만지면 거칠거칠하고..우리 남편이 불쌍해...
얼굴도 손톱만한 뾰로지가 주기적으로 나고..조그만 놈들은 매일 나오고..그래서 비싼 화장품 써도..나고..어떻게 하라구????

마태우스 2004-06-07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피부에 대해 고민이 많으시군요! 로렌초의 시종님은 아토피라... 수니나라님은 뾰로지가 주기적으로? 참, 그때 말씀하셨었죠! 올해부터는 다들 피부가 좋아지길 빌겠습니다. 너굴님이 "여자는 피부"라고 하시는 걸 보니...
참, 메시지님, 제 주위에 미녀가 많은 것에 대해 전문가들이 분석을 했는데요, 제 눈이 낮다는 설도 그중 하나에요^^
밀키웨이님/'피부는 좋더라'...정말 피부가 중요하긴 한가봅니다.
우주님은 왜 또 이러십니까. 밀어버리신다니..
K②AYN-쿄코/처음 뵙겠습니다. 좀더 좋은 글로 만나뵜어야 하는데, 피부 얘기로 상처를 준 듯... 죄송.
 

 

 

 

 

 

일시: 6월 3일(목)
누구와?: 딴지일보 사람들과
마신 양: 맥주--> 소주, 겁나게 취했다.

부제: 인터뷰

삶에 있어서 내겐 어떤 뚜렷한 원칙이라는 게 없다. 어쩌면, 있는데 그럴싸한 말로 포장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이룬 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나란 놈은 다른 사람이 궁금해할 그런 사람은 결코 아니다. 학교 와서 일 조금 하고, 인터넷에 글쓰는 거 주로 하고, 밤에는 술을 마시는 단조로운 삶에 궁금할 게 뭐가 있담? 인터뷰란 특정한 개인을 드러내는 좋은 방법이지만, 난 그리 좋은 인터뷰 상대가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주엔 세 번이나-이메일 인터뷰를 포함해서-인터뷰를 했다. 매우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월요일에는 모 잡지의 '젊은 과학자' 시리즈, 목요일에는 딴지일보와 흥신인터뷰를 했고, 금요일에는 나를 좋게 봐주신 어떤 분의 추천으로 알라딘에 관한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내가 했던 말들을 대충 헤아려 적어본다.

월요일: 취재기자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든 인터뷰였다. 이전에 인터뷰를 한 '젊은 과학자'들이 신의 손이라 불릴만큼 연구를 잘했다면, 과히 젊지도 않은 난 실험이라고는 남들 다 쉽게 하는 것조차 결과가 안나오기 십상이었으니까. 게다가 실험실은 좀 깨끗한가. 일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아침부터 설쳤지만, 사진기자 분의 마음에 들기엔 역부족이었다.
"비이커 좀 더 갖다 놓으세요. 거기다 물도 담고..." "저 접시도 몇 개 더 있으면 좋겠는데..."
내 사진은 그렇게 조작되었다.

참고로 취재기자 분은 '서민의 법칙'에 관심을 보였다. 내가 하는 건 물론이고 일부만 참여하거나 심지어 보고만 있어도 실험 결과가 잘 안나온다는 그런 법칙 말이다. "그런 게 어디 있어!"라고 핀잔을 줬던 모 교수도 나와 일년을 같이 있더니 그 법칙을 인정했다는... 기자의 말이다. "서민의 법칙, 그거 깨셔야죠!" 얼떨결에 "네"라고 대답을 했지만, 내 이름이 들어간 법칙을 내가 깨면 마음이 아프지 않을까?

목요일: 딴지일보에 나를 인터뷰해달라고 하는 요청이 이따금씩 있었단다. 계속 무시했는데 꾸준히 들어와서 할수없이 하기로 했단다. 그런 경우는 십중팔구 한명이 아이디를 바꿔가며 메일을 보내는 것일텐데, 누굴까?

원래 알던 기자가 인터뷰를 해서 아주 편안했는데, 내가 딴지에 연재했던, 그래서 책으로 출간되었던 건강동화에 관한 질문이 많았다.
기자: 책은 많이 나갔나요?
나: 그럼요, 제가 한 400권 샀죠! 음하하하.
기자: 다른 작가들도 다 그러나요?
나: 여기저기 돌려야 하니, 다들 한 100권 정도는 살걸요? 그래도 저처럼 많이 사는 경우는 드물 거예요.
기자: 왜 사라고 안하고 돌리는 거죠?
나: 제 책을 누가 사겠다면 굉장히 미안해요. 그래서 그냥 제가 주겠다고 해버리죠..

금요일: 알라딘에 관한 인터뷰였다.
기자: 알라딘 마을이 여타 인터넷 동호회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나: 인터넷을 하다보면 익명을 빙자해서 무례한 말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알라딘 분들은...일정 수준 이상이 되는 분들이 주를 이룹니다. 그 중에는 제가 감히 범접할 수 없을만큼 글을 잘쓰는 분들도 많구요. 그분들의 글을 읽으며 배우는 게 아주 많습니다. 게다가 알라딘에는 따뜻함이 있습니다. 누가 속상하다고 하면 위로나 격려가 줄을 잇고, 잘된 일에는 수많은 축하가 따릅니다... 속에 있는 얘기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점이지요.
기자: 서평을 쓰실 때 특별히 유의하시는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나: 소설의 경우 줄거리를 노출시키지 않도록 하는 거죠. 줄거리 빼고 뭘 써야 하는지 난감했는데요.... 책과 관련된 경험이랄지, 책에서 느낀 점 등을 쓰고 있어요. 에세이나 인문사회과학 서적 같은 경우는 인상깊은 구절을 인용해서 거기에 대한 제 소견을 쓰기도 하구요. 참고로 전 알라딘에서 서평을 잘 못쓰는 사람으로 낙인찍혀 있답니다. 
기자: 서평 블로그의 활성화에 대해 의미 부여를 한다면?
나: 제가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친구를 사귈 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너무도 좋은 분들을 알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지요. 그곳이 아니었다면 제가 어디서 그런 분들과 무더기로 친구가 될 수 있었겠어요? 기자님도 해보시면 아마 푹 빠지실 걸요
기자: 기사에 선생님의 본명을 써도 되는지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나: 제가 맨날 알라딘에서 글쓰는 거 들키면 안되니, 본명보다는 그냥 닉네임인 마태우스를 써주시면 안될까요?

일도 잘하면서 알라딘을 평정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지막 말을 하면서 느낀 생각이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연엉가 2004-06-05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님의 글을 읽을때마다 님의 맴이 굉장히 따시다는 것을 느낀다.^^^

비로그인 2004-06-05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쫙쫙쫙!! 마태우스님도 좋은분이예요~ ^^(아직 잠이 덜깼나~^^::)

로렌초의시종 2004-06-05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쓰한 마태우스님의 마음이 느껴지네요....^^ 그런데 정작 술 드신 이야기는 거의 없네요???

진/우맘 2004-06-05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마태님....이심전심....
마지막의 그 이메일 인터뷰는 저도 했거든요? 그런데, 기자님이 우리의 메일을 받아 보시고는 심각한 표절의혹(?)에 고민하셨을 듯...어쩜 그리 저랑 똑같은 말씀을 하셨담??^^

갈대 2004-06-05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같은 질문을 던진 기자의 책임이 크죠^^;

*^^*에너 2004-06-05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하고 배려심 깊은 분일꺼 같아요. ^^

마냐 2004-06-05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언젠간 저두 마태우스님 인터뷰를 해보고 싶어요. 넘 재밌을 거 같구...인터뷰에 취해서 술도 거나하게...ㅋㅋㅋ

플라시보 2004-06-05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근데요. 님 주변 사람들은 전부 마태우스라는 별명을 알고있지 않을까요? 마태우스하면 서민. 서민하면 마태우스 이런식으로..^^

호랑녀 2004-06-05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딴지일보 총수가 방송진행을 한다던데, 방송에는 안 나가시나요? 혹시 나가시게 되면, 꼭 미리 말씀해주세요 ^^

panda78 2004-06-05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요, 마태우스님, 마태우스라는 닉네임은 어디서 나온 거에요? @.@
물만두님이 궁금해 하히던데.. 혹시 물만두님의 추측대로 "테리우스라고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고"? ^^;;;

chaire 2004-06-05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 님의 마태우스 님 인터뷰 찬성!^^ 그리고 판다 님, 마태우스 : 마침내 태어난 우리들의 스타, 라는 뜻의 줄임말이구요, 아마 대학교 때 조교장 하던 시절에 붙은 별명이라지요..^^

아영엄마 2004-06-05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은 인터뷰도 줄줄이 하시는군요.. 음... 혜영이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서재에 영 안들리시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아셨대요? ^^;; 병원갔더니 급체(소화불량)인 것 같다니 음식 조심하면서 수분 보충에 신경써 주면 될 것 같다네요.

마태우스 2004-06-05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어머나, 제가 님 서재에 얼마나 자주 가는데요!! 그리 말씀하심 섭하죠^^
카이레님/대신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님같은 고수가 그런 일을 하시니 제가 너무 황망합니다.
panda78님/전 저를 잘 알기 때문에 테리우스라고 자신을 주장하는 망발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자꾸 그러심 판다님을 '전지현이다'라고 해버릴 겁니다!!
호랑녀/호호, 사실은 나가고 있지만, 절대 말 안하겠습니다. 워낙 못해서 언제 잘릴지 모르거든요.
플라시보님/님의 격려는 언제나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마냐님/님과 술을 마실 수 있다면, 제 영광이겠죠. 하지만 님은 이미 은퇴하시지 않았나요?
에너님/제가 서재에서 만드는 이미지에 속지 마옵소서. 사실은 그리 좋은 놈이 아니랍니다. 에너님이야말로 깜찍하고 착한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갈대님/제게 인터뷰하는 사람 중 진짜 궁금해하는 걸 묻는 분이 없더군요. "일 하나도 안하면서 안잘리는 비결이 뭐유?"
진우맘님/우리 생각이 같다는 건, 다른 알라디너 분들도 다 마찬가지라는 소리구, 높은 충성도를 입증하는 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로렌초의 시종님/술일기는 술을 통해 사회를 보는 겁니다. 음하하하. 딴지 인터뷰 때문에 술을 마셨다는 얘기죠. 호호.
폭스바겐님/님이야말로 정말 좋은 분이죠!! 적이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는 마태우스.
책울타리님/님의 코멘트를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합니다. 형님!

클리오 2004-06-05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데없이 출현입니다만, 가끔씩 님들의 글만 훔쳐보는 저로서도, 옆 사람과 알라딘의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일정 수준 이상'... 이라든가 '책 읽는 사람들의 품성' 등에 대해 이야기한답니다. 다들 그런 비슷한 마음이 있기에, 알라딘 따뜻한 사람들만 모이는거겠지요.. 다른 게시판들은 들어가기가 두렵답니다. ^^

nugool 2004-06-06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겁나게 취하기 전에 있었던 일들이죠? 그뒤에 어떤 인터뷰가 더 있었는지는... 음... ^^;; 친구들이 와서 한잔하고 우르르 몰려가고 남은 술 끌어 모아 마시면서 이제 서재 순방입니다..ㅋㅋㅋ 음.. 이거 마태우스님께 나날이 애정이 생겨가는데요? ^^;;;

마태우스 2004-06-07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lio님/원래 제가 인터넷에서 쌈질만 하는 전사였는데요, 여기서 살다보니 화초로 변했어요.
nugool님/저두 너굴님께 나날이 애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