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6월 10일(목)
마신 양: 소주-->맥주--> 소주
지난 월요일, 화요일 난 술을 마시지 않았다. 마시자는 친구가 있었지만 차갑게 거절했다. 이유는? 어제의 한판을 위해서. 어젠 내가 알라딘 다음으로 잘가는 사이트의 오프모임이 있었다. 여자 둘, 남자 넷이 모였는데, 그중 한 여자분이 술을 무지하게 잘했다. 전에 만났을 때도 그 여자분 때문에 거의 도망치다시피 집에 갔으니, 이번에는 명예회복이 절실했다. 그녀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달라는 의미에서, 모 인터넷 사이트에 그녀가 썼던 글을 옮겨본다.
[-2박 3일, 네병의 소주와 두병의 맥주를 마셨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웬종일 싸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했는데, 가끔 저는 저의 체력에 스스로 놀라기도 합니다. 난, 터미네이터여
-캐치원에서 하는 섹스 앤 더 시티 시즌6편 마지막회를 보며 술을 홀짝거렸더니 소주도 금새 떨어지고 맥주는 훨씬 전에 바닥났고 술이 모자랐지만, 배달되는 곳이 없어서 그냥 잤습니다
-여자 셋이 야심한 밤에 맥주와 와인, 소주를 마시며 이 으리으리한 러브호텔 품평을 했다. 동양최고의 시설이라 극찬을 하며... 새벽에 그녀와 나의 친구는 골아떨어졌고 나혼자 소주를 글라스에 따라마시며 또 스프링 노트에 뭔가를 끄적거려봤다]
-지금 시간은 5시 25분. 3월 19일 ,2004년 오전... 새벽 5시 반까지 술먹다가 집에 들어옴.
어제는 새벽 4시까지 음악하는 친구의 작업실에서 김치찌개 끓여서 소주를 마셨습니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라 참 달았습니다
-내가 수능시험을 끝내고 연짱 18일 마셨어 혹은, 고시 끝내고 연짱 28일 마셨어, 그 정도는 아니지만 요즘은 어쩌다보니 연짱 술마실 일이 생기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폰 부스 Phone Booth> 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다운받아 읽다가 술마신지 너무 오래된것 같아서리 아빠가 반주로 잡수시다 남긴 소주 반병을 낙지젓과 치즈를 뜯어먹으며 몇자 적어봅니다
-1차 감자탕과 소주
오후에 도봉산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온 그녀는 컨디션땜에 아주 조금만 마셨고 그와 내가 소주세병을 나누어 먹었다. 그녀의 남친이 말한다. “윽, 소주가 너무 달아...”
2차-둘둘치킨과 생맥주
3차-교정에서 캔맥주
4차-이화주막, 생맥주, 쥐포...]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그녀-알파라고 하자-도 나처럼 "일정한 기간마다 술을 마셔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소유자며, "한번 마시면 뿌리를 뽑는 스타일"이다. 그러니 내가 어찌 긴장하지 않겠는가. 어제도 날 보자마자 "오늘 집에 가지 맙시다! 4차까지 가는거야!"라고 거듭 말한다. 당근 쫄았다. 사실 난 전날 잠을 잘 못자서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기차에서 내릴 곳을 지나쳐 종착역까지 갔겠는가. 청소 아저씨가 깨워서 일어나보니 승객이라곤 아무도 없었다는.... 치사한 인간들, 내리면서 나좀 깨워주지. 특히 내 옆의 아저씨는 창가쪽에 앉았으면서 어떻게 날 안깨우고 내렸을까. 내가 기차 안에 갇히길 바라면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내렸으리라. 하지만 피곤할수록 술은 더 단 법, 술은 달기만 했고, 난 알파와 연방 잔을 부딪히면서도 평정을 잃지 않았다. 이런 나의 기세에 눌린 알파는 2차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연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3차, 씩씩하게 소주 한병을 다 비운 나와는 대조적으로, 알파는 소주 두잔을 무려 한시간 동안 먹었고, 마지막까지 심판으로 남았던 또다른 여인은 내가 이겼다며 내 손을 들어 줬다. 언제나 먼저 뻗어버리던 내가 누군가를 이긴 건 실로 오랜만이다. 사람들은 그런다.
"술내기가 가장 무식한 내기"라든지, "그거 이기면 기분 좋냐?"라고. 하지만 무식하든 아니든 술내기야말로 가장 스릴있고 짜릿한 경기이며, 이기고 난 기쁨은 오래도록 지속된다. 내가 패배했을 때 알파를 피했듯, 그녀 또한 날 당분간 두려워하겠지. 어제는, 분명 기쁜 날이다.
* 참고로 신촌에는 기와장을 여러개 깨면 상품을 주는 무식한 좌판이 벌어지고 있다. 힘이라면 뒤지지 않는 내 동료가 기와장 16개를 한번에 깨서 시계랑 음악 나오는 기계를 탔다. 기와장이 다 깨졌을 때 아주머니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는...
** 새벽 1시 반에 들어가고도 아침에 일찍 출근한 내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오늘 오전도 어제에 이어 겁나게 열심히 일했다. 월요일날 발표할 게 있는 탓에... 내게도 가끔 이런 일이 생긴다! 음하하. 그리고...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4연전이 예정되어 있다.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맘 속으로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