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빠져 영화를 너무 등한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들어 술은 벌써 37회를 마셨으면서 영화는 그의 반의 반의 반도 보지 않았으니, 이러고도 내가 '영화팬'이란 말인가?

그래서 고른 비디오가 <핫칙>이다. 2002년에 나왔는데, 젊은 여자애가 갑자기 30대 남자의 몸을 갖게 되면서 겪는 일을 다룬거다. 그런 영화가 어디 한둘인가. 우리나라에서 만든 <체인지>도 그런 류고, 프랑스에서는 개가 사람으로 변한 영화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내가 기대를 접어서인지, 영화는 의외로 재미있었다. 30대 아저씨로 분한 배우가 여자 연기를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잘하는 통에, 간간이 미소를 지으면서, 때로는 폭소를 터뜨리면서 104분을 보냈다.

난 그 남자주인공이 <해리가 샐리를...>에 나온 빌리 크리스탈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찾아보니 아니다. 롭 슈나이더라나? 그래도 낯이 익은 것 같아 출연한 영화를 알아봤더니 <잠망경을 올려라>와 <저지 드래드>에서 본 기억이 난다. <나홀로 집에2>에 나온 도둑도 이사람이란다.

배우 얼굴은 왜 이렇게 헷갈리기만 한 걸까? 빌리 크리스탈과 헷갈리다니, 역시 난 안된다. 주인공 여자는 <무서운 영화>에서 본 듯해서 찾아봤더니, 놀랍게도 맞다! 그래, 완전한 바보는 없다. 나도 할 수 있다! <무서운 영화>에서 놀라는 표정이 참 인상적이었지. 그땐 흑발이었던 것 같은데? 뭐, 그렇다 치자.

하여간 이 영화는 이쁘고 공주병에 걸린 여자가-별로 이쁘지도 않더만-못생긴 남자의 몸을 갖게 되면서 그간 저질렀던 자신의 만행을 반성하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줄거린데, 이 영화의 설정을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이쁜 외모=공주병도 모자라 남 엿먹이는 사람, 후진 외모=자신을 반성하고, 착하게 살아가려는 사람', 그러니까  내가 친구들로부터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 게 다 내 외모 덕분인가보다. 

사실 난 멋지고 못된 것보다는, 안멋진 대신 착한 게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 착한 것이 안이쁜 외모의 부산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내 외모가 하위 5%라고 너무 좌절만 할 일은 아니다. 그 외모 덕분에 내가 겸허할 수 있고, 착하게 살아갈 수 있으니까. 영화를 보고나서 내 겉모습에 대해 조금은 너그러워진 것이 영화의 소득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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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2004-04-24 0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11살 짜리 여자 조카애땜에 이 영화를 5번 이상은 봤을거예요. 적어두 부분 부분. 제 조카는 대사까지 다 외우더군요. 그래 그렇게 영화 공부 하는것두 좋지 하면서 나두 같이 보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재밌어서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근데 이걸 누구한테 추천받지도 않고 고르는 어른들이 있을까 했는데.. 혹시 "영계" 가 제목에 들어가서 고르셨나요?^^
 

 

 

 

 

 

* <천국의 계단>을 보느라 너무 힘들어, 한동안 드라마를 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는 사이트에 김여정이라는 분이 쓴 이 글을 읽고나니 갑자기 드라마에 대한 욕구가 용솟음치는군요. 이렇게 보고 싶게 글을 쓰면 어떡하란 말인지...

-------------------------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방송되는 프로그램중에 드라마가 가장 후지다고 생각한다.

남매인줄 몰랐던 남녀가 서로 사랑하다 비극적 운명에 질질 짠다던지(진주목걸이)

가난한 남자친구를 버리고 돈 많은 남자에게 간 여자(애정만세),불륜(성녀와 마녀)

첫사랑의 남자가 시누이의 남자가 되어 나타난다던지(회전목마)

요즘 트랜드니까.. 연상녀와 연하남의 연애이야기(천생연분,사랑한다 말해줘)

천편일률적인 캐릭터의 악녀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재수없을정도로 착하고,별 노력안해도 일 잘풀리고, 남자 많이 꼬이는 신데렐라 투성이의 여자들이 등장하는 아침드라마,일일드라마,주말드라마를 보면 하품이 절로 나온다.

 

세상이 얼마나 많이 달라지고,개개인의 인생도 얼마나 버라이어티해진 세상인데 드라마는 10년전이나 20년전이나 구태의연하다.

얼마전 드라마를 보는 개개 풀린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작품이 있으니 <네멋대로 해라>의 인정옥작가.차기작을 기대하고 있다.

 

암튼 많은 작품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거짓말><바보같은 사랑>그리고 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노작가의 3대 역작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외에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작품들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재미있어지고 있다. <꽃보다 아름다워>는 어떤 코미디보다 재밌는 명장면들도 많다.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이 드라마를 본다.

예상을 번번이 빗나가는,가슴을 예리하게 그어대는 칼날같은 대사는,그리고 명배우들의 연기는 가끔 숨이 멎을정도다. 같은 칼날이라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는 상대를 겨누는 칼이라면 노희경작가의 칼은 자신을 향한다. 해하지 못해 자해하는, 그래서 많이 슬프고 짜안한 바보같은 사람들이다.

 

거의 바보나 다름없는 엄마(고두심)의 남편(주현)은 일찌감치 젊은 여자와 살림나서 애까지 낳아 살고 있으면서 뻔뻔하다...엄마는 남편의 첩에게 신장까지 기증하는 작태를 연출한다.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안주면 내 자식들한테 달라고 할거 아니예요? 난

다 줄거예요. 그 사람들 내 배까지 갈라서 얼마나 잘 사는지 두 눈 똑바로 뜨고 볼거예요"

 

그런 엄마에게 억척스런 이혼녀 큰딸 미옥(배종옥)이 있고,유부남 애인을 둔 딸 미수(한고은),엄마를 애인처럼 생각하는 백수 아들 재수(김흥수)가 있다.

 

미옥은 착한 영민(박상면)의 구애를 받지만 영민의 고향으로 인사갔다가 애 딸린 이혼녀가 빽도 돈도 없으면서 총각 교수하고 언감생심 결혼하려한다며 박대를 당한다. 그 집구석 식구들에게 나물무쳐

밥해올리고 소밥 주면서 그녀가 혼잣말 하는 대목이다..

 

씬 11  영민부의 시골집+부엌, 전경, 어스름한 저녁.


        미옥, 힘들게 큰대야에 물을 가지고 나와 소죽통에 물주고, 한숨쉬고,


미 옥 : (소 보며) 내가 시아버지 될 사람을 만나러 온 건지, 널 만나러 온 건지 모르겠다.


        인써트 - 소 물을 먹으면,


미 옥 : (작게 웃으며) 잘두 쳐먹네..우적우적우적우적...(하고, 웃고 가는)

 

그러나 영민의 사랑은 변치 않는다. 미옥의 생선가게 주변 마트 아줌마들이 미옥에게 주제도 모른다며 동네방네 소문내는걸 알고 영민의 복수가 시작된다.

 

카메라, 야채코너로 가면,

영민, 야채를 심각한 표정으로 구경(?)하고 있고, 마트아줌마, 그런 영민을 보며 서있다.


마트아줌마: (영민을 관찰하듯 보며) 뭐 드릴까요? 교수님?

영 민 : (심각하게, 야채 하나 하나를 가리키며) 이건 얼마예요?

마트아줌마: 한단에 천오백원이요.

영 민 : (다른 거 가리키며) 이건요.

마트아줌마: 4백그람 한근에 이천원.

영 민 : (다른 거 가리키며) 이건요?

마트아줌마: 두단에 천원.

영 민 : 이건, 이건, 이건. (하며, 가리키는)

마트아줌마: (왜 그런가 싶은, 어리둥절한)

영 민 : (아줌마 밉게 보며) 왜 말씀을 안하세요. 이것들 얼마냐구요?

마트아줌마: 왜 살 것도 아니면서 자꾸 물으세요?

영 민 : 제가 살지 말지 아줌마가 그렇게 잘 아십니까?

마트아줌마: (눈치보며) 그럼 살 거예요?

영 민 : 안삽니다. 기분 나뻐서. (하고, 가는)

마트아줌마: (황당한) ?

영 민 : (가면서, 궁시렁) 열 받지? 내가 매일매일 열 받게 해줄 거다, 못된   여편네. 지가 뭐야? 씨.

 

엄마 영자(고두심)는 결국 신장을 주기로 합의하고 아빠 두칠(주현)을 고깃집에서 만난다.

얼마전 고깃집에서 영자는 나 몰라라하고 첩에게만 익은 고기를 권하는 두칠를 보며 총각김치에 우걱우걱 밥을 먹었었다.그런데 두칠이 영자에게 신장을 준다는게 고마워 고기를 사주는 장면이다.

이 장면이 가장 많은 눈물을 뽑아낸다. 고두심의 열연과 주현의 연기에 몰입하게 되는...

 

 씬 65 고기집 안.


아버지, 고기를 구워 엄마의 그릇에 놔주며,

 

아버지: 고기가 연하다, 많이 먹어.

엄 마 : (덤덤한) 내 배 가를라니까 되게 미안은 한가보네, 고길 다 사주고?

아버지: (맘 아픈) ..먹어.

엄 마 : (눈가 그렁해 보며) 여보.

아버지: (보는데, 눈가 붉은)

엄 마 : 나한테..미안하다고 해.

아버지: (눈가 그렁해지며, 차마 못보고) 미안해.

엄 마 : (눈가 그렁해) 고맙다고도 해.

아버지: 고마워.

엄 마 : (눈물 흐르는) 빌어.

아버지: (눈가 손 등로 닦고, 엄마 보고, 두 손을 모으는)

엄 마 : 당신, 내가 아팠어도 재건엄마 찾아가 부탁했을까?

아버지: 그럼..

엄 마 : 나 그 말 믿어두 돼?

아버지: (고개 끄덕이는) 믿어두 돼.

엄 마 : 그래두 미워.

아버지: (맘 아픈, 고개 끄덕이는)

엄 마 : 당신 마누라가 있으니까, 좋지? 아쉬울 때 뭐든 들어주고.

아버지: (맘 아픈) 말이라고 하냐, 좋지. 근데 난 니 남편 아니다...니 자식이다, 내가. 니 자식.

엄 마 : (울먹이며, 맘 아픈) 용서 못할지도 몰라. 죽는 날까지 미워해도, 당신 나한테 뭐라 그러면 안돼.

아버지: (고개 끄덕이는)

엄 마 : (꺽꺽 대며, 우는) 나쁜 놈.

아버지: 더 욕해.

엄 마 : 당신 재건엄마랑 나 수술할 때 재건엄마만 보면 안돼, 나두 애들 땜에 살아야 하니까,

           나두 챙겨 줘요, 어.

아버지: (고개 끄덕이고, 눈물 닦고) 볼 일 보고 올게. 먹고 있어라.

엄 마 : (가는 아버지 보고, 고기 먹는, 자꾸 눈물이 나는, 손등으로 눈물 닦고, 억지로라도 먹으려 하는)


씬 66 건물 뒤쪽 벽.


아버지, 쪼그리고 앉아 고개 숙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가만있는, 울음을 참는 듯하다. 그러다 손 내리고,

아버지: (눈가 그렁해, 작게 허허로운 혼잣말) ........개새끼, 개새끼, 김두칠이 이 개새끼...(하는데,

            눈물 주룩 흐르는)

 

이날은 내가 <태극기 휘날리며>를 본 날이었는데 태극기보다 더 많이 울었다.

바보같은,하지만 이상하게 끌리는 다섯커플의 사랑이야기,여러분도 시간되면 함 보세요.

일욜 재방송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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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3-02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희경이 드라마를 정말 잘 쓰는 모양이네요. 전 추천글 여기저기에서 무척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감정이입하면서 같이 우울해지거나 슬퍼지거나 진심으로 가슴이 애리고 싶지 않아서 보지 않습니다. 진솔한 드라마는 그렇게 마음을 아프게 하지요.
나중에 노희경이 또 드라마를 쓰고, 그때 제가 고시 공부에서 벗어난다면, 그때 보려구요.

2004-03-02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ulkitchen 2004-03-02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또..검은비님..우리 의리 이거 거의 조직 분위기 아닙니까? 저도 드라마 같은 거에 의리 되게 지키는 편인데..ㅋㅋ 저도 이 드라마, 저희 엄마가 보고 계셔서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가 아마 고두심 수술하고 나서였는데, 엄마한테 대충 줄거리를 듣고서는 무슨 이런 복장 터지는 드라마를 다 보냐고 뭐랬던 기억이 납니다. 아, 근데 이 글을 읽으니 가슴이 찡~하군요..

2004-03-02 1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4-03-02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꽃보다 아름다워를 간혹 봅니다. 물론 천생연분을 더 많이 봤지만요. 노희경 작품이 재밌긴 엄청 재밌는데 너무 슬퍼서요. 보고 나면 사는게 짠하게 느껴져서 행복할때 아니면 잘 안봅니다. 요 얼마간 일 때문에 힘들어서 별로 행복하질 않았거든요. 그래서 부러 좀 피했습니다. 그래도 저기 묘사된 장면들은 다 본것 같네요.

mannerist 2004-03-03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를 속 터지게 본 이후, 노희경 작가 드라마 빼놓지 않고 보지요. 허준 보느라 '바보같은 사랑'놓친 건 천추의 한이지만요. 그러고보면 노희경 작가도 지지리 재수없는 편입니다. 거짓말은 세상끝까지에 밀리고,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도 무언가에 치이고, 바보같은 사랑은 허준에 박살나고. 아마 시청률 평균 1%를 기록했다죠. -_-

제 생각에 그녀의 드라마가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이야기의 축이 한쪽으로만 쏠리지 않는 다핵적인 구성이 산만하지 않게 이끌려 나가는거라 생각합니다. 감성적인 대사보다도요.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에서는 중심축 배용준-김혜수 커플 이외에 갱년기 김혜수 부부, 배용준 동생 커플, 셋집 사는 부부, 배용준 이모 등등이 나름대로 서로 다른 모습의 사랑을, 삶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담아냈지요. 이게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절정에 달한 듯 합니다. 주인공'들'이라고 하는수밖에 없잖아요. 키득

생각난김에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에서 가장 뭉클했던 부분 찾아 올립니다.

재호 : (눈가 붉어져, 힘주어 말하는) 내가 신형이 그 사람한테 보여 주고 싶은 모습은
전처럼 건강한 모습이 아니예요.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그 여자 때문에 버티려고 하는... 바로 이 모습이예요.
진숙 : (맘 아픈) ?!
재호 : 이모.
진숙 : (보면)
재호 : (눈가 그렁해, 이 악물고 힘주어 말하는) 내가 그 여잘 사랑하는 건, 내 인생을 사랑하는 거야.
그래서 난 포기할 수 없는 거구. 내말 믿어요. 이모가 날 안 믿어주면, 누가 날 믿어주겠어요.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에서 생략된 목적어는 '서로'가 아니라 '우리의 인생을'이라더군요.

사비나 2004-03-04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허준보느라 <바보같은 사랑>을 놓친게 천추의 한이 되었는데 나중에 심야에 재방송을 해주더군요.그때는 빼놓지 않고 밤마다 베갯잇을 적시며 봤습니다.그때 참 배종옥이라는 배우 조하하게 된거 같아요.<거짓말>에서도 멋있었지만 <바보같은 사랑>에서는 정말 이뻤습니다.내가 데리고 도망가고 싶을만큼...<꽃보다 아름다워>가 끝나면 어쩌나...다음 드라마는 언제나 볼수 있을까..조바심 내는 나날입니다.
 

평론가들의 정의는 좀 다르겠지만 내게 있어서 좋은 영화란 그저 주인공에게 동화되어 그들의 고통과 기쁨을 내 것인양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잘생기고 돈많고 싸움질도 잘하는,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권상우같은 사람 말고,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러니까 <와이키키>에 나오는 음악가처럼 여기저기서 찬밥 취급을 받는 사람이 주인공이라면 더더욱 좋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버스 정류장>은 내게 '좋은 영화'일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중반까지는 참 재미있게 봤다.

주인공으로 나온 김태우는 남들과 떨어져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외로움을 자청하는 것 같지만 몸파는 여자를 찾아 외로움을 달래곤 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학원강사인 그는 고3인 김민정을 사랑하게 되는데, 차는커녕 면허조차 없던 그가 "드라이브하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잽싸게 운전면허 시험을 보는 장면은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준다. 나도 김정은이 술한번 같이 마셔준다고 하면 연구 열심히 할지도?

그런데 김민정이 애를 밴 걸 고백하고, 같이 애를 지우러 간다. 김민정은 밤새 울지만 김태우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 있다. 그리고는 김민정이 떠나는데, 나중에 다시 만난다. 서로 연락을 기다렸다나. 그리곤 갑자기 김태우가 쪼그리고 앉아 오열을 하고, 그런 식으로 영화가 끝난다. 난 김태우가 왜 우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갔다. 이해가 가야지 공감을 하고, 공감을 해야 뭔가 진한 감동을 느끼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울음이 너무 뜬금없어, 난 김태우가 오버이트라도 하는 줄 알았다. 도대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뭘까? 아무리 삐딱한 남자도 이쁜 여자만 보면 넘어간다?

대개의 감독들은 데뷔 작품이 다 훌륭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기 때문이라는데, 이미연 감독은 미리부터 롱런을 의식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영화를 만든지 모르겠지만, 애써 긍정적인 면모를 찾자면 김민정이라는 미녀를 알게 된 것 정도? 영화가 개봉했을 때 보고 싶었었는데, 그때 참길 잘했다. 이 영화의 OST가 무지 잘팔리다가 영화가 개봉함과 동시에 안팔리기 시작했다는데, 그 이유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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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3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4-02-23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동생은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는데요, 이제 무슨 얘기가 좀 시작되려나-했더니 끝이더라나요. 그래도 뭔가 있을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한번쯤 더 봐볼까-하는 생각을 남기더라는데...한마디로 묘한 영화인거 같네요~ ^^
 

난 좋은 영화를 이렇게 정의한다. 두번 봤을 때도 재미있는 영화. 두번째로 볼 때가 오히려 더 재미있었던 <매트릭스 1편>은 그런 의미에서 좋은 영화고, 처음엔 재미있게 봤지만 비디오로 빌려볼 땐-그때가 초저녁이었음에도-졸리기 그지없던 <매트릭스2>는 그저 그런 헐리우드 액션 영화인 거다. 한달 전, 난 <실미도>를 보면서 '이런 재미있는 영화가 있다니' 하는 마음을 가졌었다. 하지만 그 이후 그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비판글들을 읽었던 터라, 두번째로 본다면 영화에 몰입되어 느끼지 못했던 비판받을 부분들을 볼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내가 <실미도>를 다시본 건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1천만이 봤으니 대한민국 영화관객의 거의 대부분이 봤을 터이지만, 어제 만난 사람들은 웬일인지 한명도 그 영화를 안봤다. 보고싶은 영화가 <말죽거리>밖에 없었던 난 그쪽으로 몰아가려 분위기를 띄웠지만, 남은 세명 중 두명이 그 영화를 봤다기에 인간성 좋은 내가 대승적으로 양보해 버렸다. 극장에서 한 영화를 두번 보는 건, 여러 여자를 사귈 때인 90년대 초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난 또다시 그 영화에 몰입되었고, 쉴새없이 밀려오는 감동의 물결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처음 볼 때와 달리 부대원들이 죽을 땐 눈물까지 났다. 술을 먹고 봐서 그런가... 버스 안에서 서로 나가라고, 그러니까 자기들의 협박에 의해 끌려온 걸로 하자고 얘기할 때, 부대원들은 하나같이 운명을 함께하겠다고 한다. "한번 쫄다구는 영원한 쫄따구죠" 그러자 2조 조장이 설경구에게 이런다. "야, 저새끼들 못만나고 뒤졌으면 억울해서 어떡할 뻔했냐" 그게 감동적이었다 그런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단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주변 사람들 중에 못만났으면 억울했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는 생각. 넓게 보자면 내가 알고지내는 대부분의 사람이 해당되겠지만, 어려울 때 나와 운명을 함께해줄 사람에 한정한다면 그다지 떠오르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하긴,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고, 나만이 가진 운명에 왜 남들이 동참한단 말인가.

세상이 실미도를 욕할지라도, 내게 그 영화는 '좋은 영화'다. 실미도야 울지마라, 오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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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16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인상적인 대사에서 나와 운명을 함께해줄 사람은 누가 있을까- 까지. 전 왠지 한숨이 나오는데요. ^^ 실미도를 보면서, 울릴려고 한 장면에서는 울고, 웃길려고 한 장면에서 웃는 나를 보며, 어쩜 이렇게 기획의도대로인지 부끄럽기도 했지만. 어쩔수 없던걸요~하지만 두번 보긴 좀 무서워요~^^;
 

어느 분이 내게 그랬다. "혹시 영화평 쓸 때, 일부러 못쓰는 거 아니어요?"

나름대로 열심히 쓴다고 생각하던 터였기에, 그 말을 들었을 때 조금 당황했다. 사실 내가 영화를 보고 쓰는 글은 감상문일 뿐, 영화평은 아니다. 영화평론을 할 때 갖춰야 할 능력으로 영화의 메시지를 그럴듯한 수사로 포장할 수 있는 인문학적 베이스가 있어야겠지만, 핵심이 되는 것은 영화와 거리를 두고 봐야 한다는 것일게다. 거리를 띄고봐야 영화의 장.단점이 객관적으로 보일텐데, 난 영화에 몰입해버리니 '재미없다' '말도 안된다'로밖에 쓸 수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난 영화평을 쓰고픈 마음은 없다. '단점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눈에 불을 켜고 영화를 본다면 영화가 주는 재미를 느낄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내가 취미로 영화를 보는 데 비해 그들은 직업상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쓴다. 아무리 좋은 일도 업으로 하면 재미가 없는 법, 그러니 신문지상에 실리는 영화평들이 호평보다는 비난이 많은 게 아닐까?

<태극기>를 봤다. 남들이 대충 다 격찬하는, 별점 평점이 무려 9.28씩이나 되는 <태극기>를 난 어떻게 봤을까? 이해가 안갈지 모르지만 난 별반 재미없게 봤다. 중간에 두번이나 시계를 봤으며, 잔인한 장면들이 너무도 많아 시종일관 손으로 눈을 가려야 했다. <라이언일병>을 볼 땐 펑펑 울었지만, 이 영화를 보고나선 한줄기 눈물만 비쳤을 뿐이다. 거리를 너무 띈 건지, 술이 덜깨서 그런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상한 놈인가보다.



영화 속에서 장동건과 원빈은 형제다. 만약 실제로 둘이 형제라면, 그 어머니는 좋아서 매일같이 한강다리 위에 올라가 춤을 출거다. "정신이 어떻게 된 게 아닌가" 하던 사람들도 사정을 듣고나선 그 어머니를 이해하겠지. 어차피 상상이니까 외연을 조금 더 확장시켜, 첫째가 장동건, 둘째가 원빈, 세째가 권상우라면? 으아... 너무 무서운 상상인 것 같군!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고, 지금도 지구상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어쨌든간에 전쟁은 비극이다. 이념에 따라 남북이 갈라져 싸운 6.25는 우리 민족에게 최대의 재앙임에 틀림없다. 그 전쟁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깊은 상흔을 남겼는데, 이산가족 문제도 그 하나고, 남북의 화해협력이 어려운 이유도 거기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초대대통령이라고 무조건 국부는 아니다. 입만 열면 북진통일을 주장하고, 전쟁이 나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자던 사람이 전쟁준비는 하나도 안해놓은 것도 어이가 없지만, 막상 전쟁이 터지자 제일 먼저 도망가놓고 "서울을 사수하겠다"는 말로 국민들을 속인 건 용서할 수 없는 범죄다.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었을 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인민군에게 부역한-밥을 짓고 어쩌고 하는 행위를 부역이라 했다-사람들을 모조리 잡아죽인 것 역시 국부가 할 짓거리는 아니었다. 그런 그이니만큼 전쟁의 와중에 국회의원들을 협박해 발췌개헌을 단행, 장기집권의 틀을 다진 것은 별로 놀라울 게 없다. 사람들은 말한다. "공과 과를 모두 말하자"고. 난 이승만에게 지금 열거한 '과'를 능가할 공이 뭐가 있는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공과를 잘 따지자는 사람들이 군부독재가 끝나고 집권한 대통령들의 공에는 인색하고, 별거 아닌 과를 뻥튀기해 비난하는 건 더더욱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극장 문을 나오는데 생각이 났다. 일년에 국경일이 며칠인데 태극기 한번 단 적이 없는가 하는 생각이. 태극기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다가오는 3.1절엔 나도 태극기를 휘둘러 봐야겠다. 어디 있는지 찾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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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2-15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론가들의 영화를 보는 태도에 대해 500% 동의합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평론이 감성을 좀먹는 경험을 했기에...

실은, 전 피아노를 전공할 뻔 했는데, 예술계 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향상 음악회'라는, 같은 학년 친구들 앞에서 연주를 하는 시간이면 친구들의 연주에 대한 평가를 노트에 적어야 했었구요(터치가 어떻다, 표현이 어떻다..), 유명 음악인의 연주회에 가면 이사람 음악에서 무얼 배워야 하나 귀를 세우고 듣곤 했구요, 친구나 지인들의 연주회에 가면 '친구가 실수를 하면 어떡하나..' 맘졸이면서, 응원하면서 들었답니다.
몇 년을 이러다 보니 음악을 순수한 음악으로 들을 수가 없게 되어버렸답니다. (나만 그런건지도..)

요즘은요? 음악을 거의 듣지 않지만... 어쩌다 피아노 학원에서 들려오는 초등학생이 치는 간단한 소나티네에도 참 아름답다는 느낌, 저정도 치느라 수고 많았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전공자들이 들을 수 있는 아름다움을 전공자는 들을 수 없다니, 참 아이러니하죠?

작년에 피아니스트 겸 대학 교수로 있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저희 동기들 중에서는 꽤 인정받는 친구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때는 왜 내가 치는 소리가 내 맘에 그렇게도 안들었는지 몰라. 지금 생각하면 그정도 칠 때 좀 더 즐기면서 했을 수도 있었을텐데, 아쉽다'고 했더니, 그친구가 하는 말...
'난 지금도 내가 치는 음악이 맘에 안들 때가 많아'

참으로 어려운 길, 빨리 바꾸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