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는 항구다>를 보았다. 난 영화를 볼 때 노트를 펴고 인상적인 대사나 느낀 점을 대충 적어 놓는데, 이럴 수가. 노트를 잃어버렸다! 이런 걸 대략 '낭패'라고 하는 모양이다. 가뜩이나 머리도 나쁜 내가 노트 없이 어떻게 감상문을 쓴담? 유식한 사람들이야 영화에 담긴 철학 같은 걸 리뷰에 남기니 상관없겠지만, 난 "이러이러한 대사가 맘에 들었다"는 식의 리뷰로 버티는 사람이 아닌가. 노트를 찾아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만사가 귀찮아서 그냥 쓰기로 했다. 혹시 아는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리뷰가 나올지?(물론 나도 믿지 않는 소리다)
1. 목포
목포는 나와 인연이 많은 곳이다. 굴에서 나오는 기생충이 있는데, 그걸 가지러 목포에 숱하게 드나들었다. 기차를 타고 목포까지 간 뒤 배를 타고 압해도로 건너가서, 주민 한분이 미리 따놓은 굴을 아이스박스에 싣고 다시 서울까지 왔으니, 하루종일 기차만 타는 거다. 그땐 내가 책과 담을 쌓을 때라, 스포츠서울을 다 보고나면 할 일이 없어, 무료함을 이기기 위해 잠도 자고, 가끔씩 글도 썼다. '노래방 폭파사건'이란 글도 그때 썼는데, 극단적인 반일주의자가 노래방을 일제의 잔재로 단정, 노래방을 하나씩 폭파하는 내용이었다. 그게 써클지에 실렸을 때는 대단한 반향을 얻었지만, 그와 비슷한 글들을 모아놓은 첫 소설집은 엄청난 욕을 먹었으니, 주위 사람의 반응을 너무 믿으면 안되는 법이다. 아무튼 굴을 가지러 가는데 하루를 몽땅 날리는 것은 영 비효율적이라는 의견이 나와 그때 막 생겨난 택배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었는데, 그 뒤부터는 전화 한통이면 굴이 학교까지 배달되었다. 그러면 나는 하루종일 칼을 가지고 굴의 껍질을 까야했고, 그런 다음엔 거기서 기생충을 골라 쥐한테 먹이고 그랬다(신안군 쪽 굴만 기생충이 있으니, 이 글을 읽고 굴을 안먹겠다고 결심하는 분이 없기를 바란다).
우리 누나도 목포 출신의 매형과 결혼을 했다. 사돈 어른은 아직도 목포에 사신다. 영화를 보면 목포가 조폭들의 소굴인 것 같지만, 기차역 근처에서 여러번 자본 나는 한번도 위협을 느꼈던 적이 없다. 그래도 목포가 항구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신안군의 여러 섬에서 목포까지 배가 많이들 드나든다. 사람들은 우리가 버스를 타듯이 배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목포는 항구다>는 그런 곳에서 촬영이 되었다.
2. 조재현
<천국의 계단>에서 악녀로 나온 김태희는 동네 할머니들로부터 "나쁜 x"이라는 욕을 들었단다. 생각이 짧을수록 드라마와 실제를 구분하지 못하는 법인데, 나도 그렇다. <진실>에서 악녀로 나왔던 박선영과 <토마토>의 악녀 김지영을 아직도 싫어하는 이유는, 그녀들이 드라마 주인공을 너무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쁜 남자>에서 여자를 납치해 윤락가로 끌고간 조재현을 내가 좋아할 리가 있겠는가? 이 영화로 인해 조재현이 매력있는 남자임을 알게 되었지만, 매력 있으면 뭐하나. 인간이 되야지...
3. 차인표
차인표나 장동건은 잘생긴 배우의 대명사이다. 이런 배우들의 약점은 "연기보다는 얼굴"이라는 고정관념이 박혀있다는 것. 하지만 이 둘은 조연도 마다않는 투혼을 보인 끝에 제법 연기를 잘하는 배우로 성장했다. 잘생긴 애는 뭘 해도 멋진 법, 재벌2세로 나와도 멋있지만, 조폭 두목도 충분히 멋있다.
4. 패러디
이 영화에는 다른 영화에서 본듯한 장면들이 몇 번 나온다. 영화 자체의 설정도 <무간도>스럽고, <엽기적인 그녀>의 한 장면이 나오며, <친구>에서처럼 달리기를 하는 씬이 등장한다. 차인표와 조재현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달려가는데, 그 표정과 동작이 어찌나 웃긴지 보는 내가 다 유쾌해졌다. 그거 말고도 몇몇 영화장면이 나오는데, 아까도 말했지만 노트를 잃어버린 관계로...
5. 메시지
이 영화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폭이나 형사나, 머리가 좋아야 성공한다.
-보스급 조폭이라면 형사보다 낫다.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조폭도 사랑에 빠지면 바보가 된다. 차인표의 신나하는 모습이란...
6. 단점
-검사라는 직업에 대한 감독의 이해가 부족하다.
-챔피언이 된 조재현, 방어전은 왜 안하는 걸까?
-웃기려고 엄청 오버한다.
7. 결론
안봤으면 후회할 뻔했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지만, 난 재미있게 봤다. 어쩌면 그건 목포에 대한 추억이 남달라서 그럴지도 모른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