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를 봤다. 원래 볼 생각이 없었는데 맥스무비 사이트의 별점평균이 8.8인걸로 보아, 뭔가 있을 것 같아 봐버렸다. 과연 재미있었고, 잔잔한 감동과 더불어 유머까지 선사해주는 좋은 영화였다. 문제는 요즘 내가 너무 피곤하다는 것. 고3도 아닌데 하루 4시간도 못자는 게 말이 되는가? 일하면서 그렇다면야 보람이라도 있겠지만, 이건 순전 노느라, 그 와중에서 알라딘도 평정하느라 그러는 거니.... 밤 10시 거였는데 안자려고 버티다가 결국 자버렸다. 사람이 거의 없어서 의자 손잡이를 다 올려놓고 누워서 봤던 게 문제였다. 막판 20분을 못보고 같이 본 미녀한테 설명을 들었지만, 그게 어찌 영화가 주는 감동을 대신할 수 있으랴. 역시 영화를 보기 전날엔 잘 자고 볼 일이다.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몇가지만 써본다.
1) 고두심
전도연의 엄마로 나오는 고두심은 영화 속의 남편과 그리 잘 지내지 못한다. 하지만 그 둘이 처음 만난 순간에는 그러지 않았다. 먼 발치에서 모습만 봐도 가슴이 콩당콩당 뛰고, 손만 닿아도 감전이 된 듯 찌릿찌릿하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난 뒤 고두심에게 남편은 그저 짐스럽고 무능한 존재일 뿐이다. 그런 걸 보면 확실히 연애는 결혼보다 재미있다. 그럼에도 사람들 대부분이 결혼을 선택하는 걸 보면, 결혼에는 연애가 갖지 못한 무언가가 있나보다. 그게 무얼까. 데이트 후에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 것? 편안함(이건 남자만이잖아!)? 성?(하지만 30대 이후엔 별로던데...)
2) 박해일
박해일은 무진장 멋지게 나온다. 그가 어찌나 멋지던지, 그가 연기한 우편배달부 직업도 멋지게 보일 정도. 박해일은 귀공자 타입이다. 피부가 희고, 눈썹이 굵으며 얼굴은 사각형이다. 하이라이트인 눈은 선해 보이고 투명하게 빛나는데, 그윽한 미소까지 담기면 안넘어갈 사람이 있을까 싶다. 그래서 그는 백마탄 왕자가 어울린다. 한가지 궁금한 점. 그렇게 멋지게 생긴 남자가 왜 화성에서 그런 일을 벌였을까? 그리고 왜 연상인 배종옥에게 그렇게 집착했던 걸까.
3) 전도연
전도연이 나오는 것도 그렇지만, 영화의 컨셉은 <내마음의 풍금>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그보다 열배는 더 재미있다. 제주도, 해녀, 그리고 우리에게 정겨운 옛날 집들... 헐리우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우리에게만 향수를 제공하는 그런 영화. 그래서 난 스크린쿼터제를 적극 지지한다. 우리 영화의 중흥은 스크린쿼터제 때문에 왔고, 유지되고 있으니까. 그게 없다면 <인어공주>같은 영화는 만들어지지도 않았을테고, 만들었다 해도 우리에게 상영될 기회를 갖지 못했을 거다.
4) 김부선
야한 것에 굶주렸던 대학교 2학년 때, 난 학교 근처의 동시상영 극장에서 <애마부인3탄>을 보았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3탄의 주인공으로 씨름선수와 한창 연애를 하던 멋진 여인이 바로 김부선일거다. 당시에는 염해리라는 가명을 썼고. 영화 등장인물에 김부선이 나왔길래 어디 있나 찾았다. 세상에나, 김부선은 전도연의 동료로, 별반 매력없고 뚱뚱한 여자로 출연했다. 세월의 힘이 무서운 것이라기보다, 사람들의 무관심이 그녀를 그렇게 만든 건 아닌지. 김부선을 보면서 뜬금없게도 인생무상을 느끼게 된다.
5) 결론
나더러 평점을 매기라면, 9.0을 줬을 거다. 최첨단이 동원되지 않아도 아름답고 기억에 남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교훈을 던져준 좋은 영화였다. 너절하게 설명을 하지 않았던 것도 영화의 매력이라 할만하고, 우연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고두심과 전도연의 빛나는 연기도 칭찬받아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