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자무식 유아독존, 좋은 제목인 것 같다.
러시아에서 참혹한 사태가 발생했단다. 테러범을 진압하려다 수백명이 죽었다나. 정말이지 누가 테러범인지 모를 일이다. 어이없는 일은 내가 그 사실을 어제 아침에야 알았다는 것. 그나마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그냥 러시아에서 사람이 많이 죽었는데, 테러와 관계가 있더라 하는 것 뿐. 요즘 난 달랑 한겨레 하나만 본다. 먼저 스포츠란을 보고, 사설.칼럼에 재미있는 글이 있으면 보고, 나머진 안본다. 뉴스를 안본지는 20년이 넘었다. 그러니 자식을 물에 던지고 자살한 아버지를 비롯해서 퇴직금 5천만원을 로또에 투자했다가 목숨을 끊은 부녀 얘기처럼 남들이 화제로 삼는 엽기적인 사건들에 대해 “그게 무슨 얘기야?” 하고 뒷북을 치기 일쑤다.
십년 전에도 그랬다. LA 폭동이 왜 났는지 그때의 난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그때 우리집은 조선일보를 봤다. 아니 어쩌면 동아일보였는지도 모른다. 난 그 두 신문이 나쁜 신문이라는 것도 몰랐다. 어차피 스포츠란만 읽었으니까. 그것도 부족해서 스포츠서울을 탐독했고, 퇴근길에는 일간스포츠를 줄을 쳐가면서 봤다. 그때는 사회에 대한 고민이란 게 없었다. 여자친구랑 잘 되어야 할텐데, 오늘 교수님들이 일찍 퇴근했으면 좋을텐데, OB가 이겨야 할텐데 따위가 내가 했던 고민의 전부였다.
97년, 강준만을 접하고 대오각성한 뒤부터, 난 봐야 할 게 많아졌다. 스포츠신문을 줄치면서 읽었던 그 정성으로 조중동과 한겨레를 읽었고, <말>지를 읽었으며, 월간 <인물과 사상>을 읽었다. <아웃사이더>의 독자가 되었고, 참여연대 회원에게 보내주는 <참여사회>를 읽었다. 일년에 5만원의 구독료를 내고 언론비평지인 미디어오늘을 보기 시작했다. 그 시절 내가 한달에 다섯권밖에 책을 읽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조중동과 한겨레, 하루에 신문 4개를 보는 것은 벅찬 일이었다. 이틀만 밀려도 신문들은 살인적인 양이 되어 내 앞에 쌓였다. 그럴 때면 난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신문들을 해치워 나갔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조선일보가 얼마나 나쁜 신문인지를. 동아일보는 조선일보를 따라함으로써 2등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을. 중앙일보는 그래도 좀 변화의 기미가 보인다는 것을.
인터넷을 하게 되면서, 난 조중동을 인터넷으로 읽기 시작했다. 명색이 안티조선인데, 안티조선 티셔츠를 입고 테니스를 치러 가는데 집에서 조선일보를 구독한다는 게 말이 안됐으니까. 인터넷으로 보니까 기사는 안보고 칼럼과 사설만 보게 되었지만, 어차피 조선일보의 나쁜 점은 거기 다 있는 게 아닌가. 가끔씩 독자마당에 조선일보를 비난하는 글도 올리고 그랬었던 시절이었고,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 의해 안티조선 사이트에 퍼날라진 것을 확인했을 때는 참 기분이 좋았다. 그러고보니 프레시안도 가고, 오마이뉴스도 갔었다. 대선 때는 서프라이즈의 글들도 열심히 챙겨 읽었었다.
그로부터 2년, 난 하나씩 하나씩 보던 걸 줄여 갔다. 언제부터인가 난 조중동을 보지 않는다. 오마이에도 안간지 오래다. 안티조선도 안가고, 몇 달 전부터는 진보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말>지도 끊었다. 아웃사이더는 잔뜩 밀려 있고, 엊그제는 드디어 미디어오늘마저 끊었다. “저 외국 가거든요”라고 거짓말을 해가면서. 그러고보니까 달랑 남은 건 한겨레 하나, 그나마 스포츠란만 위주로 보니 갈수록 아는 게 없어진다. 십년의 여정을 거쳐서 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이 상태로 몇년만 지내면 난 다시금 나밖에 모르던 지난 시절로 돌아가지 않으련지 걱정이 된다. 하지만 사람은 한번 편해지면 되돌리기 힘들고, 어찌된 것이 갈수록 시간이 없다. 게다가 세월은 좀 빠른가. 9번째의 달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보면 세월의 빠름이 무섭기까지 하다. 그냥 날 믿으련다. 지금 아무것도 안읽는다 해도, 뭔가를 열심히 읽어온 지난 몇 년의 시간들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고. 그 시간들은 내가 이기와 탐욕에 빠지는 걸 막아줄 거라고....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하얀마녀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 별은 북극성이 아니라 금성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