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가 쓴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이 책은 그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인천 지역의 야구열기를 되살렸을 뿐 아니라 <슈퍼스타 감사용>이라는 멋진 영화를 만들어내는 토대가 되기도 했다. 그 <슈퍼스타 감사용>을 어제 봤다. 1등만이 살길임을 외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평범하게 살다가 사라져 간 한 선수를 조명하는 건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1승 15패의 처참한 성적을 거둔 감사용을 선택한 것은 매우 탁월한 선택인 듯하다. 내가 아는 감사용은 12연패로 투수부문 최다연패 기록을 보유한 선수라는 것 뿐인데, 그가 야구 동호회에서 뛰던 선수라는 건 나도 몰랐다. 아마 때 아무리 잘했어도 주전이 보장되지 않는 작금의 상황을 보면 원년의 프로야구가 얼마나 헐렁했는지 알 수 있을게다.
그당시 난 프로야구의 광팬이었다. TV는 물론 다 봤고, 낮경기는 수업시간에 라디오로 들었다. 그래서 당시 기록은 지금도 줄줄 외울 정도인데, 증명을 위해서 몇가지만 말하자면 백인천이 .412로 타격 1위, 윤동균이 .342로 2위, 장태수가 .336로 3위를 했고, 김봉연이 22개로 홈런왕, 김성한이 타점왕(75개? 자신없다), 김일권이 도루왕(51개?)을 차지했었다. 그래서 난 박철순이 22연승의 빛나는 기록을 세웠다는 것, OB가 삼미에 16전 전승을 거두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영화 속에 나오는 야구선수들의 이름도 모조리 안다. 영화를 참 정성스럽게 만들었다고 생각한 것은 박철순 역을 맡은 공유나 양승관, 윤동균, 백인천 역을 맡은 배우들도 다 실제와 닮았기 때문이다. 포수였던 금광옥이 이혁재와 닮았는진 모르겠지만, 그가 나와서 영화가 더욱 재미있었던 것 같다.
이혁재: 감독니--임. 작전을 주십쇼!
감독: 쳐라!
영화 속에서 19연승을 거두던 박철순은 감사용과 선발 맞대결을 벌인다. 그해 전기리그에서 박철순은 18승 2패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는데, 연승의 초창기를 제외하고는 동점 상황인 경기 후반에 투입이 되어 구원승을 넙죽넙죽 챙겼을 뿐, 선발로 9회까지 완투를 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최근 일은 잘 기억 못해도 옛날 일은 또렷이 기억하는 내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영화 속에 나오는 것과 같은 경기는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런 것에 딴지를 걸기엔 영화가 너무 감동적이고 재미있었으니까 말이다. 영화 중간에 눈물이 흘렀고, 그 눈물은 끝까지 멈춰지지 않았다. 그밖에 느낀 점을 간략히 써본다.
-감사용의 형 이름은 ‘삼룡’이다. ‘일용’과 ‘이용’은 어디 갔을까. 참고로 전원일기에서 ‘일용엄마’로 나왔던 김수미가 감사용의 엄마로 나온다.
-이범수는 어느덧 그가 나왔다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극장을 찾게 만드는 배우가 되었다. 이 영화에서도 그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해설자로 나온 사람은 이병훈이라는 LG 선수인데, 선수시절에도 웃기는 행동을 많이 해 ‘개그맨’으로 불렸다. 실제로도 모 방송사의 해설을 맡고 있는데, 수비가 안좋아 평범한 외야 플라이도 다이빙 캐치하곤 했던 그를 생각하면, 그가 “아 저건 잡아 줘야죠!”라고 말하는 건 좀 웃긴다.
-삼미의 에이스인 인호봉은 그놈의 징크스 때문에 여자 팬티를 입는다.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인호봉은 <달마야 놀자>에서 침묵수행을 하던 스님으로 나왔었다. 반가웠다.
-감사용과의 대결에서 박철순이 7회 동안 3점을 내줬을 때, 감독이 묻는다.
“너 오늘 왜 그렇게 컨디션이 안좋아?”
보통 투수가 7회 동안 3점을 주면 잘던진 거지만, 당시 1.86(1.84인가?)의 경이적인 방어율을 기록했던 박철순이라면 그런 말을 들을 만한다. 박철순은 그해 22연승의 대기록을 수립하는데, 롯데전에선가 연승 기록이 깨질 때 가슴이 찢어졌다.
재미와 감동이 어우러진 멋진 영화, 나처럼 야구를 잘 모른다 해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알면 더 재미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