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제목의 고수는 영화의 고수와 별 관계가 없습니다...
** 이 글은 그저께 썼는데, 오늘사 올려요. 안올라가더군요..
오랜 시간동안 나에게 부담을 주던 우리 학교 평가가 오늘사 끝났다. 그냥 집에 들어가기보단, 드디어 자유인이 된 걸 자축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영화 <썸>을 보는 것, 시간대가 맞은 신촌 그랜드극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많이 놀랐다. 영화 상영 십분 전인에도 관객이라곤 내가 전부였으니까. 갑자기 내가 극장을 통째로 빌려 자축을 하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고, 말도 안되게 가슴까지 설렜다. 난 아무도 안들어오기를 바라기까지 했는데, 5분쯤 전에 남녀 커플이 들어오는 바람에 설렘의 시간은 끝이 나버렸다. 궁금했다. 아무도 안오면 영화를 틀어줄까? 아마 그럴 것이다. 중간에 들어오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다음 상영시간도 맞춰야 하니까.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시작 직전에 들어온 여자 둘이 날 상념에서 벗어나게 했다.
“여긴 저희 자린데요?‘
자리를 비껴주면서 난 피식 웃었다. 그녀들이 지극히 당연한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하는 게 웃긴 것이 아니라, 넓고도 넓은 좌석들 가운데 하필이면 그 자리에 앉은 나 자신이 우스워서. 혼자 보는 것도 쪽팔린 일인데, 자리에서 쫓겨나기까지 하니 약간은 서러웠다. 영화를 본 소감을 간단히 말해본다. ‘간단히’는 물론 교장선생님 버전이다.
-난 <썸>이 ‘합계’를 뜻하는 ‘sum'인줄 알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니까 ’some‘이었다. 다 보고 나서도 제목과 영화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 영화를 본 이유는 뭘까. 그래도 내가 신뢰하는 사이트인 맥스무비의 별점순위가 무려 7.99였기 때문. 혼자 본 걸 보면 일말의 불안감은 있었나보다. 재미있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미녀와 같이 봤을 테니까 말이다. 결과적으로 난 별점에 속았다. 별 다섯을 주고 ‘또보고 싶다’고 쓴 애들이 모두 알바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알바라기보다는 멋지게 생긴 고수라는 배우가 좋아서 영화를 본 애들이리라. 그러니까 난 고수 팬들에게 속은 거다. 진정한 팬이라면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가 나와도 영화가 후지다면 비판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것 같긴 하다.
-영화의 초반은 엉성했다. 그다음엔 계속 엉성했다. 조금 지나니 심하게 엉성했다. 나중에는 산만했고, 상황 파악이 안됐다. ‘줄거리를 모르면 내용을 절대 알 수 없다’는 네티즌의 말처럼, 별반 비범하지 않은 내 머리로는 영화의 스토리 전개를 따라잡을 수 없었고, 그 결과 영화에 빨려들어가지 못한 채 계속 겉돌기만 했다. 영화보면서 했던 생각들이다.
‘확 나가버릴까’ ‘오늘 저녁엔 라면을 먹자’ ‘아니 가다가 제육덮밥을 사먹는 게 낫겠다’
-여자애는 계속 데자뷰를 경험하며, 깜짝깜짝 놀란다. 별로 깜찍하지도 않은 애가 놀라기만 하니 집에 가고 싶어졌다.
-자동차 추격씬이 여러번 나온다. 처음 건 봐줄 만한데, 두 번, 세 번 계속되니까 하품이 나왔다. <매트릭스2>를 따라한 듯 역주행 장면도 나오던데, 그땐 한숨이 나왔다. 애꿏은 차만 부쉈다...
-<텔미 섬싱>의 감독 티를 내려는지 감독은 막판에 반전을 시도, 전혀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설정한다. 물론 영화와 계속 따로 놀아온 나는 그런 반전에도 시큰둥했다. 패거리 여럿이서 싸움질을 하는데 누가 우리편인지 알아야 응원을 하지....
-이건 스포일러. 하지만 어차피 다들 영화를 안볼거니 스포일러가 있다한들 어떠하랴. 고수는 결국 범인을 때려눕힌다. 총을 든 상대를 주먹으로 몇 대 때리고 여자를 구하러 간다. 매우 당연하게도 범인은 정신이 들어 고수에게 총을 쏜다. 아, 왕짜증. 좀 확실히 제압을 하지 그랬니. 여자에게까지 총을 겨누는 범인, 그 순간 정의의 형사가 총을 쏴서 범인을 죽인다.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절묘한 타이밍의 조화. 이런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엔 내가 너무 산전수전 다 겪었다. 이것보다는 오늘 낮 평가가 끝나고 지적사항을 얘기할 때가 훨씬 더 박진감이 넘쳤다. 행여나 내 얘기를 할까봐-기생충학교실은 실험실이 왜 그모양이냐??-어찌나 걱정을 했는지...
이정도 했으니 볼 사람은 없으리라 믿는다. 고수의 골수팬이라면 모를까, 이런 영화는 외면해 줌으로써 감독을 응징하는 게 옳은 길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