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영화 중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는 바로 <레옹>이다. “과연 뤽 베송이야!”라는 찬사가 나오게 하는 그 영화는 사실 소아애증(pedophilia)을 다룬 영화이기도 하다. 정신과 책에 의하면 ‘사춘기 이전의 소아(대개 13세 이하)와 성활동(대개 성기희롱, oral sex)을 하는 행위 또는 그 환상이 성적 흥분에 되풀이 애용되는 또는 유일한 방법이 될 때“를 소아애증이라고 하는데, 영화의 주인공 레옹이 여기에 해당된다.
레옹은 열두살배기 마틸다에게 호감을 느끼며, 걸핏하면 자기 집 열쇠구멍을 통해 마틸다를 훔쳐본다. 그러면서도 레옹은 소녀가 테러범같은 경찰에게 쫓겨 자기집 문을 두드렸을 때 소녀를 구할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며, 구해주고 난 뒤에도 다음날 떠나라고 매정하게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레옹이 소녀를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이어린 소녀를 좋아한다는 것에 스스로 죄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온 행동일 것이다. 레옹을 사랑한다는 소녀의 고백을 계속 외면한 것도 그런 맥락인데, 죽음이 임박한 순간 레옹은 소녀에게 “사랑한다”고 고백을 함으로써 그간 억눌러 왔던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네이버에 의하면 소애애증의 원인 중 하나가 “대인관계를 맺을 용기와 기술이 없기 때문에 비교적 쉬운 대상인 어린이를 선택한다”고 되어 있는데, 레옹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레옹이 19살 때 끔찍한 경험을 하는데, 자신이 사귀던 여자의 아버지가 레옹을 반대하고, 결국 딸을 총으로 쏴 죽이기까지 한 것. 레옹은 그 아버지를 죽이고 도망치며, 그 이후 단 한번도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없다. 그런 레옹에게 마틸다는 숨겨져 있던 사랑의 감정을 불러냈고, 냉혹한 프로 킬러인 레옹은 감정이 흔들려 실수를 하기도 한다 (가슴에 총을 맞았다).
영화가 레옹과 소녀의 사랑을 워낙 아름답게 그려서 그렇지, 그 둘의 사랑은 사회적으로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마틸다가 호텔 프론트에 가서 레옹이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며, “우린 애인 사이예요”라고 했을 때, 호텔 주인은 무지하게 놀라고, 결국 경찰을 동원해 그들을 호텔에서 쫓아내지 않는가? 딸을 가진 부모라면 소아애증 환자가 주위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불안해할 것이다. 나 역시 어린애들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짜증이 난다. 현재 소아애증은 정신병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DSM-VI의 진단 기준은 다음과 같다.
A. 최소 6개월간 13세 이하의 어린애에게 성적인 환상을 갖거나 성적 행동을 하는 경우
B. A의 행위로 인해 고통받거나 사회적, 직업적으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
C. 가해자가 최소한 16세 이상이거나, 대상 아이보다 최소 다섯 살 연상인 경우(예컨대 10살 짜리가 3살 짜리를 성적으로 괴롭히면 소아애증인 거다. 단 사춘기 후반에 12-13세인 사람과 성적으로 관계를 맺는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
마틸다가 나이에 비해 성숙한 여아라 해도, 레옹은 분명 A, B, C의 모든 기준을 충족하는 소아애증 환자다. 이런 생각을 잠깐 해보자. 소아애증은 전부 나쁜 것일까? 나이 차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레옹과 마틸다는 분명히 서로를 사랑하며, 둘의 사랑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동성애가 한때 질병으로 인식되다가 지금은 아닌 것처럼, 어린애를 만나야 성적 흥분을 느끼는 사람도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이해되어야 할까? 레옹은 마틸다가 같이 자자며 자신의 침대에 올라왔을 때조차 그녀에게 손 하나 대지 않는 놀라운 자제력을 보이는데, 이런 레옹에게 누가 돌을 던지랴.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미성숙하고 판단력이 떨어지는 어린애의 감정을 사랑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걸까? 레옹이 그녀를 좋아하는 건 맞지만, 마틸다가 레옹에게 품는 감정이 과연 사랑일까? 폭력적인 아버지, 무관심한 어머니와 언니들 사이에서 사랑을 애타게 갈구했던 마틸다가 그래도 자신을 따뜻이 대해준 레옹에게 끌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며, 그걸 ‘사랑’으로 미화할 수는 없다고 본다. 레옹이 자기 욕구대로 마틸다에게 손을 댔다면 마틸다가 계속 레옹을 사랑할 수 있을지 의문이며, 계속 레옹 곁에 있는다 해도 그건 참아내는 것에 불과할 뿐, 즐기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러니 피해를 주지 않는 소아애증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소아애증 환자들은 희생자에 대한 지배와 통제의 욕구에서, 혹은 성적 무능함을 그런 식으로라도 극복해보자는 차원으로 일어난다고 하는데, 이놈의 나라에서는 ‘지배와 통제의 욕구’를 가진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유아성폭력은 무지하게 빈발하고 있다. 다음 통계를 보자.
-전국 82개 성폭력상담소의 올 상반기 13세 이하 성폭력피해 상담건수는 2천568건으로, 하루 평균 14명에 해당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상담건수인 2천130명 보다 20.6% 증가한 것으로, 피해자 가운데 6세 이하 유아가 671명이었다 (2002.10.3 연합뉴스)
하루 평균 14명이나?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래가지고서야 딸 가진 부모들이 어디 맘편히 살겠는가? 여성주의 저널 ‘일다’의 박희정 기자의 말마따나 “아동성폭력 사건은 목격자나 증거 확보가 힘들다는 특성이 있다” 나이어린 아이의 진술에만 의존해야 하니 피해 아동이 받는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며, 진술의 일관성이 떨어져 가해자가 무혐의 처분을 받는 사례가 빈발해 왔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아동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 의무적으로 비디오로 진술을 녹화하는 ‘진술녹화제’를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단지사건’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의붓아버지에 의한 유아성폭력 사건에서 재판부는 피해아동의 ‘비디오 진술’을 증거능력이 없다고 기각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다른 사례다.
[수원지법은 20일 놀이방에서 여아를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용인 모 놀이방 운영자 양모씨(63)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미성년자 강제추행죄를 적용, 징역 1년을 선고했다....놀이방에서 양씨는 C양의 옷을 벗기고 신체를 더듬었다. 또 특정 신체부위에 자신의 신체와 막대기로 여러 차례 추행을 가하기도 했다. 말을 잘 듣지 않을 경우 무자비한 폭행을 가한 것도 여러번이었다.... 다른 많은 아이들이 양씨로부터 각종 추행을 당했으며 그중 한 아이는 C양과 비슷한 정도의 추행을 당했다]
엄마에게 아이가 얘기를 해도 “귀여워서 그러겠지”라며 넘어가는 수가 많지만, 어릴 적의 성폭력이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아이가 그런 말을 할 때는 좀 귀를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다. 내 주위에도 어릴 적 그런 식의 성희롱을 당한 여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직업이 신부라고 해서 방심해서는 안된다.
[...대책위는 “ㄱ씨가 괴물놀이를 하자며 아이들을 관사로 데려가 옷을 벗기고 온갖 방법으로 성추행했다”며 “아이들의 주장이 일관되고, 현장 확인 결과 아이들이 들어갈 수 없는 관사 내부 구조가 아이들의 말과 일치했다”고 주장했다...ㄱ씨에게 성추행 당했다는 ㅇ양의 부모는 “아이가 유치원에 나가면서부터 난폭해지고 밤에 잠을 자지 못하며 ‘도깨비 성직자가 손이 없어서 입으로 성기를 만져’ 등 이상한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ㅇ양은 현재 미술을 통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ㅇ양 외에도 현재 정신과치료를 받는 어린이는 4명이 더 있는데, 대책위는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피해어린이는 10여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한겨레 2003-06-11 기사에서 무단 전재)
또한 “모르는 사람보다 친척이나 아는 사람에게 피해를 입은 경우가 두 배 이상 많”다고 하니,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너무 믿을 건 못된다. 거짓말을 잘 못하는 아이들을 믿어야지, 아니라고 발뺌하는 ‘아는 사람’을 믿어서야 되겠는가. 우리나라에서 유아 성범죄가 빈번히 일어나는 이유는 신고율이 낮고 처벌에 이르는 일이 많지 않아서인만큼, 아이를 돌보는 어른들이(원래' 엄마들이'였는데요 따우님의 충고를 받아들여 이렇게 고쳤습니다)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어젯밤 SBS에서 방영한 <레옹>을 보면서 했던 생각이다.
참고문헌
1. 최신정신의학, 민성길 저, 일조각(1999)
2. Comprehensive textbook of Psychiatry/VI , by Kaplan & Sadock, Williams and Wilkins Co.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