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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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란 사람들이 좋은 책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은 하지만 실제 읽지는 않는 책이라죠(마크트웨인) 1984는 하버드대를 비롯해 미국 유명대학의 필독서로 추천되는 책이고 TIME,Newsweek 같은 잡지에서도 항상 추천목록에 오르는 책입니다만 실제 이 책을 읽어봤냐고 물어보면 아직 못읽었다는 대학생들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마크트웨인식으로 생각하면 1984는 확실히 고전입니다.

상당히 섬세하게 짜여진, 작품 전체 곳곳에 뿌려진 복선들, 완벽한 작품을 쓴 조지 오웰은 이런 생각을 지니고 스스로가 사는 것이 무척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고통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계, 모든 정보가 통제되어 보여지고 들려지는 것만 받아들여야 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실재라고 믿어야 하는 세계, 조지 오웰이 상상한 30여년 후의 세계가 단순히 상상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주변에 현존했고 지금도 세계 어디에선가 진행되고 있을 세계라는 점이 너무나 끔찍하게 다가오네요.

소설속 인물 오브라이언을 통해 자꾸 되풀이되는 이 말은, 특히 윈스턴을 고문할 때 마치 "너의 과거나 의식은 모두 없애버리고 그곳에 있는 검은 것은 다 없애라"하면서 결국에는 윈스턴이 사랑하는 사람까지 배반하게 만들며 윈스턴을 통째로 새로 만들어 새로운 곳에서 만나자고 합니다.

소설 속 과거를 검은 곳이라 말하면서 조지오웰은 그가 살고 있던 현실을 잘 꼬집어 내었고, 고문을 통해 인간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본질을 다 던져 버렸죠. 그리고 나서 말합니다.

“승리를 얻었다. 그리고 그(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되었다.”

검은 것을 다 던져버리고, 나의 밑바닥을 다 던져버리고 다시 체제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만나겠죠. 윈스턴은 굴복해버린 자신의 모습이 죄스럽고 그로서 사랑을 부정한 자신을 자책하지만,

그러한 심정자체도 진정한 인간이 아니라면 느끼지 못할 감정이지요

책은 음산하고 무겁고 가슴 저며 오는 그런 내용이었고 무한 영감과 또 소름돋는 처절성을 느낄 수 있었어요. 역사기록마저 조작, 변조되고 소리소문없이 증발되는 사회, 일거수 일투족 감시당하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사회, 정상적인 소수는 미쳐버리지 않고서는 살수 없는 이곳에서 세뇌당하고 모진 고문을 견뎌내려 하지만 결국 흡수되고 변화하는 윈스턴의 모습을 보면서 마지막 책장을 덮었습니다.

읽는 내내 마음이 괴로울 정도의 내용이 지속되어 가슴 한쪽이 서늘할 정도로 공포스러웠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의 소련의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려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확연히 들어나는 소설이긴 하지만 기술되어 있는 그 내용을 읽어나감에 있어서 그냥 소설 속의 내용으로 그치지 않고, 이미 1984년은 수십년 전에 지나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러한 세계가 존재할 수 있고, 바로 지금 우리세계에도 일부, 일부의 내용은 언뜻 사실처럼 보이는 이야기에 차마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현실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는 듯한 기분에 휩싸여 있습니다.

동물농장에서 보였던 우화적인 표현은 아주 사라지고 극사실적인 표현을 무미건조하게 기술하여 오히려 그 섬뜩함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진 듯 합니다.

보통 어떤 책을 읽던지 마지막 장을 덮으면 속 시원하고 기쁘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읽는 내내 마음이 괴롭더니 마지막까지도 마음을 무겁게 하네요.

끔찍한 내용을 담고 있긴 하지만 1984를 읽는 내내 저는 감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 장씩 읽어갈때마다 생각할 거리가 정말 많았기 때문이에요 작품과 관련해서 과거, 현실, 미래에 대해 끝없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어떤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v게 바로 고전의 힘이 아닌가 싶네요

조지오웰이 이 책을 1948년에 탈고했다고 하고 얼마 후 1950년에 사망했습니다. 그 당시 그가 내다본 1984년의 모습은 참으로 서글프고 무시무시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입장에선 미래 SF소설쯤 하나를 쓴 것 같은 느낌일 텐데, 그 시간들의 역사를 아는 현재의 우리로선 그가 보여준 이 선지자적인 식견에 감복할 따름입니다.

거의 마지막에 윈스턴의 회상 속에서 보았던 장면, 엄마가 빗속을 뚫고 가서 사온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잠시나마 배고픔과 지루함을 잊고 마치 혁명 이전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엄마하고 동생하고 마음껏 웃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에서 참 찡했어요

조지 오웰의 소설은 동물 농장 밖에 안 읽었지만, 이 작품이 훨씬 더 인상적이네요. 동물농장에서는 시니컬함이 있다면, 1984는 절실함이 묻어나는 책인 것 같아요.

읽으면서도, 지금의 현실 세계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점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어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충격적이었고 은근히 무섭다는 생각도 참 많이 들었습니다

정말 극한에 상황에 놓였을 때 육체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억압으로 인간이 어떻게까지 무너질 수 있는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새삼 확인한 듯합니다. 그래서 너무 슬픕니다.

모순과 불합리, 폭력과 증오로 뒤덮인 세계에서 오직 권력만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의 횡포와 통제 아래 인간이 지켜낼 수 있는 인간성이란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가슴을 답답하게 합니다. 마지막엔 그저 빈껍데기 같은 존재로 남아버린 인간의 모습에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작가가 정말 천재라는 생각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꿰뚫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책장을 덮고 난 후에도 여운이 많이 남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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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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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 말을 들으면 참으로 묘해지면서 기분이 들떠집니다. 누구라도 사랑은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처음에 '사랑의 기술'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남녀 간의 애뜻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할 때 필요로 하는 기술이 적혀 있는 책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사랑에는 보호, 책임, 존경 등 많은 것들이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남녀간의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었죠  사랑의 대상에는 남녀간의 사랑 말고도 형제간의 사랑인 형제애와 어머니와 자식간의 사랑 또는 아버지와 자식간의 사랑, 자신을 돌볼 줄 아는 자기애와 종교에 대한 믿음이 강하고 신적 존재에 대한 강렬한 사랑 역시 사랑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사랑의 대상을 크게 모성애와 성애, 자기애, 신의 사랑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종종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랑과 마찬가지로 부모에 대한 사랑도 자기애에 기반을 두고 이루어지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부모의 사랑에도 자기애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감각, 분리와 슬픔의 감각은 생각의 과정에서 탄생합니다. 사랑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생각의 과정이 멈출 때 뿐입니다. 생각은 불가피하게 소유의 느낌을 기릅니다.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질투심을 배양하는 소유의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질투심이 있을 때 당연히 사랑은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질투심은 사랑의 표식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질투심은 생각의 결과입니다.그것은 감정적인 내용의 생각의 반응입니다. 소유하거나 소유 당했다는 느낌이 가로막힐 때, 그 자리를 질투심이 차지합니다. 그것은 생각이 사랑의 역할을 하여 모든 문제와 슬픔을 발생시키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사랑의 최대의 걸림돌입니다. 생각은 '있음'과 되어야함'간에 분리를 일으킵니다. 이 분리에서 도덕이 나옵니다. 도덕과 부도덕은 어느 것도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사회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 도덕 구조는 사랑이 아니고 시멘트와 같은 경화과정입니다. 생각은 사랑을 창조하지 못하며 사랑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자기애는 부모를 사랑하는데 있어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타인을 사랑하는데 있어서도 그 기반이 된다고 합니다. 사랑은 결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며 누구든지 자기 혼자서 몸소 겪어야 하는 개인적인 경험이며 자신 스스로가 능력을 만들며, 자신의 감성과 사유 속에 이루어져야 행복한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채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데 남을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을까요?그것은 거짓된 사랑입니다.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은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시대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영화에서도 소재로 쓰입니다. 성애는 다른 사람과 완전히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융합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갑작스럽게 왔다가 일시적으로 사라져 버리는 그런 감정이 아닙니다. 요즘 세대들에게 있어 잘못된 성애는 육체적인 사랑행위가 사랑이라는 포장에 의해 잘못된 인식이 널리 퍼져 가는데
그 사랑에 대한 믿음이 어디까지가 진정한 사랑인지 궁금해집니다. 
 마지막으로 종교에 대한 강렬한 믿음 즉 '신에 대한 사랑'은 인간 내면에 있는 정신적 지주로서 인간의 원초적인 유대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종교의 발달은 인간과 자연과 하나의 세계라는 일치감에 비롯되었으며 우리는 자연을 버려서도 안 되며 자연을 황폐화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옛날 단군신화에서도 엿 볼 수 있듯이 "토템"은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신이라 할 수 있으며, 인간은 스스로 만든 사물에 자신의 정신과 힘을 쏟아 부어 숭배한다는 것입니다. 시대가 거듭되고 지금의 종교적 신은 정의와 진리와 사랑의 원리이며 신에 대한 사랑은 사고를 통한 신에 대한 지식이 아닌 신과의 일체성을 경험하는 강렬한 감정적 행위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안되는 점도 많았고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사랑도 문제점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나의 잘못된 시각을 바로 잡아주는 올바른 사랑의 관념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성숙한 성찰적 사랑이야말로 자기를 되찾고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처음 만난 둘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참으로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하지만 둘의 사랑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은 일시적일 수 있으며 그 동안 그들이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반증해줍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서로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면 무관심으로 그리고 이기주의적으로 변모하기 쉽습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의지와 행동입니다. 의지가 없이는 행동이 이루어질 수 없고 행동이 없는 사랑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사랑은 감정의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한다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랑이라는 것은 몸으로 실천할 때 비로소 그 완성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현대 사회가 시장의 교환 원칙에 지배 받고 있고, 따라서 인간의 가치도 결국 경제적 교환 가치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평가받지 못하고 그 사람의 이용 가치에 따라 평가되는 현실은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지혜도 '돈'으로 환산되고 아름다움도 '돈'으로 환산되고 정의도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참된 자아를 상실한 것이 사랑을 상실한 원인이라고 진단합니다. 이러한 자아의 상실 따라서 사랑하는 능력의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설교나 도덕적 교훈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누구나 사랑이 없는 인간관계의 황량함과 처참함을 절감하고 있고 사랑의 회복이 긴급하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이러한 상태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사랑이 자연적인 일이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이제는 기술적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적어도 사랑을 천부적인 능력으로 보지 않고 훈련과 인내와 습득이 필요한 능력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현대적으로 큰 의의를 갖는 책인 듯 합니다.

 저자가 보여주는 사랑의 실상과 기술이 우리에게 사랑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생각할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둘 수 있습니다.

술술 쉽게 넘어가는 책은 아니지만, 사랑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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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감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2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 옮김 / 민음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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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고, 영화도 보고 하면서  너무 재밌어서 다른 작품을 읽게 되었습니다. 역시 오스틴 답게 18-19세기 중산층 사회의 모습을 사실적이고 자세하게, 화려하고 정확한 문체로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오만과편견 에서처럼 제가 기대하던 다아시같은 훈남은 전혀 없었고, 엘리자베스처럼 똑부러지는 스타일의 똑똑하고 당당한 여자도 없어서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엘리너는 너무 절제됬고, 마리앤은 너무 자기맘대로고, 브랜든 대령은 그나마 나았지만, 자신이 사랑한 여자랑 닮았다는 이유로 첫눈에 반해버린 건 조금 개연성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남의 일에는 똑부러지고 반듯하지만 사랑에 빠지면 마리앤 못지않게 감정에 치우치는 엘리너와
사랑에 빠지면 앞뒤 분간 못하고 온리 사랑만을 외치며 남들은 안중에도 없는 철없는 마리앤의 공통된 단점은 아마도 남자 보는 눈이 없다는 점이지 않을까 싶네요.

약혼녀가 있으면서도 엘리너에게 호감을 갖고 우유부단함때문에 질질 끄는 남자 에드워드와 여자를 한낱 노리개로 생각하면서 흥청망청 놀고먹다가 먹튀하고 낭비벽까지 있는 윌러비까지.
그럼에도 작가는 이 두 남자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며 수많은 팬을 양산해내는 마성의 브랜든 대령을 포함시켜놓았습니다.

마지막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다행이지만, 솔직히 엘리너와 브랜든 대령이 이어지길 바랬습니다. 감정에 치우쳐 남은 안중에도 없고 얼굴만 예쁜 마리앤보다는 엘리너가 훨씬 나으니까요
기본적으로 오만과 편견과 비슷한 느낌도 있지만, 이 작품은 캐릭터가 많아서 읽기 힘들었네요.
오만과 편견은 캐릭터가 몇몇으로 확고하게 정해져 있어서 캐릭터 분석하는 맛도 있었는데,
이성과 감성은 자매의 이야기는 많이 나오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자매와 이어진 남자들인 에드워드와 브랜든의 대시도 그렇게 많이 부각되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아시와 빙리 같은 매력적인 남자를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그런 캐릭터는 없었습니다.
대체로 미적미적 사건이 이어지다가 절로 흘러가 각자 커플이 성립된 듯한 느낌도 지울 수가 없네요.그래도 두 자매가 생각하는 방식과 가치가 달랐던 만큼 각자 보여주었던 사랑이 달랐다는 점은 볼만 했습니다.
감성을 대표하는 마리앤과 이성을 대표하는 엘리너, 두 자매의 러브스토리를 보다보면 역시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적절하게 분배하여 사랑을 하는것이 올바른 정답인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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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8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종길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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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지 이렇게 오랫동안 계획했던 책도 참 드문 듯합니다. 워낙 어떤 면으로는 악명이 높은 책이라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제인에어로 잘 알려진 샬롯 브론테보다  더 유명한 작가가 바로 이 에밀리 브론테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아서 코난 도일 경의 바스커빌가의 개가 우선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배경묘사가 특히 두 작품이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코난 도일이 폭풍의 언덕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나름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의 주홍색 연구의 작품 구성도 폭풍의 언덕을 읽고 감명받은 작가가 그 플롯을 많이 빌린 것이라 합니다.  이미 한 작품에서 그 흔적을 보여줬으니, 다른 작품이라고 영향을 받지 않았으리라는 법은 없겠죠.

내용을 들어가면, 굉장한 막장 드라마입니다. 그것도 마치 아침드라마가 연상되는듯한 악역으로만 가득 찬 막장드라마입니다.
'정상'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릴 정도로 극을 달리는 스토리와 캐릭터들이었습니다. 스토리까지도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데, 인물들이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비틀리고 꼬여있는지, 일반의 범주에 들어가는 캐릭터가 없었습니다. 거의 대여섯명의 인물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멍청하거나 삐뚤어졌고, 폭력적이며 병적이었습니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가계도가 복잡해서 조금 고생했습니다. 당장에 캐서린도 둘이 나오고 린턴도 여기저기 등장하는데다가 회상으로 접근하기에 가계도를 따로 찾아가며 읽어나갔습니다. 일단 그부분만 어떻게 해결한다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전 원래 등장 인물  이름 외우는거 정말 못하는데, 이 책은 엄마와 딸 이름이 똑같고, 몇 안되는 등장인물들의 혈연 관계가 얽혀있어서 더 힘들었습니다. 가족관계도를 몇번이나 들춰봤는지..
넬리와 캐서린, 히스클리프, 에드가는 모두 비슷한 나이 또래고. 넬리는 두 남자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도 그들을 손아귀에 넣고 쥐락펴락하는 캐서린이 부럽기도 하고 못마땅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하인이면서도 캐서린에게 고분고분하지 않고 말도 툭툭 던지고 그랬다고 하네요. 여느 하인처럼 자신의 주인님이 사랑에 성공하도록 도와주는게 아니라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오해하도록 일부러 놔두기도하고, 캐서린이 아플때도 일부러 에드가에게 알리지않기도 하고요
작가가 남긴 단 한권의 소설이라고 해서, 순정의 대명사로 불리는' 히스클리프'의 이름 덕분에,
호기심도 많이 생기고 꼭 한번은 읽고 싶었던 작품이었는데 읽게 되서 기쁩니다. 너무 힘겹게 읽은 책이라 더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쉽게 시작했다 쉽게 끝내는 사랑이 난무한 요즘 시대에는 이해하기 힘든 감성이지만, 격정의 이야기였습니다. 순정이란 것, 사랑이란 것, '좋아한다'는 마음으로 시작된 그 아름답고 순수한 감정들이 잘못되면 어떤 결말을 맞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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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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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가 유명인의 자살을 다룰 때마다, 나라 전체에 자살률이 올라간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습니다. 흔히 ''베르테르효과'라고 하죠

1774년 이 책이 발간된 직후, 약 40명의 젊은이가 베르테르와 비슷한 방식으로 자살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으로 이탈리아와 덴마크와 같은 국가에서는 이 책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 베르테르는 귀족은 아니나, 지식인으로서 부족함없이 살아옵니다. 그런 베르테르가 사랑에 빠진 여인은 안타깝게도 약혼자가 있는 여인이었죠. 더군다나 그 약혼자는 베르테르보다 더 나은, 그 여인에게 있어서도 그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베르테르는 로테를 찾아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누며 많은 것들을 함께 합니다. 그럴수록 베르테르의 사랑은 깊어가고 더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결국 로테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게되고, 결국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비관하던 그는 권총으로 자살을 하게 됩니다.  베르테르의 감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러나, 혹자는 그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선택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안타까움이 남기도 합니다.
 단지 불륜의 상대를 소유하지 못해 죽음을 선택하는 젊은이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베르테르의 선명한 자의식은 부조리한 시대와 삶을 노려보고 있었고, 베르테르를 슬프게 한 것은 로테가 아니었죠. 로테가 있는 삶, 로테가 있는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랑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이루지 못한 사랑은 실패한 사랑일까요? 젊은 시절을 제법 지나온 지금의 저로서는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젊은 베르테르는 자명한 실패가 두려워 쉬운 길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릅니다.아마도 베르테르의 방식으로는 사랑에 성공할 수 없었을테죠 그것이 영원한 청춘을 사는 방법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겠죠.

세밀한 심리묘사가 인상적인 작품. 읽는 내내 베르테르의 감정변화를 눈 앞에서 본 기분이었습니다. 그만큼 슬픈 이야기이고, 두루 읽히는 권장도서로 꼽는 책이기도 한데, 가볍고 술술 읽히지 않았습니다. 베르테르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처음 접하는 형식의 책이어서 생소하기도 했고, 내용 파악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이 작품은 괴테가 25세 때인 1774년, 불과 14주 만에 완성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괴테를 순식간에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어 버립니다. 괴테가 유명세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인지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 괴테는 작품 속 주인공인 베르테르와 비슷한 경험을 했고 자살하는 친구를 보며 충격을 받은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상황으로 인해 괴테는 14주 만에 엄청난 작품을 써 내려간 것입니다.
 이 작품은 괴테를 유명하게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고전의 반열에 올라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있는 작품입니다. 좋은 작품이란 읽는 사람과 읽는시기에 따라 받는 감동이 다른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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