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간의 세계 일주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20
쥘 베른 지음, 정지현 옮김, 천은실 그림 / 인디고(글담)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제겐 세계여행이란 먼 나라 이야기일지로 모릅니다. 하지만 때때로 꿈 속에서 세계 여행을 가보곤 하는데, 아는 나라라고는 고작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이곳 저곳 찾아보곤 합니다.

당분간 여행을 자제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펼쳐든 책, 책을 통해 실제로 세계 여행을 한 것처럼 느낄 수 있을까요?

1872년 영국, 막 근대화의 바람이 불어온 시기에 학술적 연구와 토론을 위해 만들어진

혁신클럽.규칙적인 생활로 유명한 영국의 신사 필리어스 포그는 어느날 혁신클럽의 친구들과 잉글랜드 은행의 도난사건을 두고 대화를 하던 중, 범인이 세계로 도망가서 잡힐 것인가, 쉽게 빠져나갈 것인가에 대해 논쟁을 벌이게 됩니다.

더이상 범인이 도망칠 곳이 없다는 친구의 반론에, 포그는 ‘80일이면 세계를 일주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답하고 결국 이 대화는 사상 초유의 내기인 '80일간의 세계일주'의 도화선이 됩니다. 포그는 혁신클럽 회원들에게 2만파운드라는 큰 돈을 걸고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어마어마한 내기를 하게 됩니다.

한편, 포그의 하인이 해고당한 직후, 프랑스인 장 파스파르투가 새로운 하인으로 들어오게된 시점이라 포그는 파스포르투와 80일의 일정을 목표로 세계를 일주하는 계획을 세우고 여행을 시작합니다. 포그일행이 길을 떠난 후 잉글랜드 은행의 범인 몽타주가 포그와 흡사한데다가 포그가 때마침 세계일주를 하기위해 영국을 떠난다는 사실을 입수한 영국경찰의 픽스형사가 포그를 은행절도 용의자로 확신하고 그의 뒤를 쫓아 세계를 돌게 되면서 벌어지는 각국의 이야기와 헤프닝들이 작품의 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당시 기준으로는 혁신적인 스토리지만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나 일부 국가들만 중심으로만 주인공들이 다녀가서 사실상 전체적인 '세계'가 묘사되지 않았다는 점은 좀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시대를 앞서간 상상력과 뛰어난 필력, 묘사력은 정말 전설적이었습니다. 당시 배경이 되는 시대가 1800년도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세계를 '일주'한다는 것만 해도 굉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서로 교류하고 있고 210개국도 넘는 나라들이 서로들 간의 존재를 알고 회합을 맺어가고 있고, 우주, 심해 등 제 3세계를 향한 끝없는 개척정신과 도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혹은 '세계화'의 도전을 다시한번 되새겨보는 좋은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세계 일주 코스는 런던을 출발해 파리-이집트 수에즈 -예멘 아덴-인도 뭄바이, 캘커타-싱가포르-홍콩-일본 요코하마-미국 샌프란시스코, 뉴욕으로 갔다가 다시 영국의 리버풀을 거쳐 런던으로 되돌아오는 긴 여로였습니다. 그들의 여행에는 끊임없이 뜻밖의 변수들이 끼어들었습니다. 무엇보다 큰 변수는 포그를 은행 강도로 의심하여 여행 기간 내내 쫓아다닌 픽스 형사였죠

또 다른 큰 변수는 언론의 오보였습니다. 영국에 보도된 인도 횡단 철도의 완공 기사가 실은 잘못된 정보였던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코끼리를 타고 정글을 지나던 포그 일행은 남편이었던 늙은 추장의 장례식에서 산 채로 화장을 당하게 된 여인 아우다를 구해주게 된다. 이후 아우다는 끝까지 여행에 동행합니다.

그 밖에도 돌발변수들이 계속 일어납니다. 미국 횡단 중에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대륙횡단 기차를 습격하고, 기차를 놓친 포그 일행은 돛 달린 썰매를 타고 이동하기도 합니다.

리버풀로 갈 땐 배의 연료가 떨어지자 타고 가던 화물선의 나무란 나무는 죄다 석탄 대신 때어가며 항해해야 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세계 일주를 다 마치고 리버풀에서 런던으로 가는 기차를 막 타려 할 때였다. 그 마지막 순간에 그만 픽스 형사가 포그를 은행강도 혐의로 체포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잠시 후 진범이 3일 전에 이미 잡힌 것으로 밝혀지고 풀려나긴 했지만 기차를 놓치는 바람에 런던에 5분 늦게 도착합니다. 포그는 이로써 내기에서 지게 된 것이죠 그러나 여기서 마지막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반전의 계기는 여인 아우다인데, 그녀는 내기에 져서 재산을 몽땅 잃게 된 포그에게 오히려 청혼을 했습니다. 돈이 아니라 포그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파스파르투가 목사에게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러 갔을 때, 목사는 다음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주례를 해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때서야 파스파르투는 자신들이 동쪽으로 날짜변경선을 넘어오는 바람에 하루를 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파스파르투에게서 그 얘기를 들은 포그는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달려가 극적으로 약속시간 3초 전에 리폼 클럽에 들어가고, 마침내 그는 내기에서 이겼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여인까지 얻게 됩니다.

주인공 포그는 인간으로서 최고 수준의 치밀함과 정확성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이를 타개하는 담대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러나 ‘80일간의 세계 일주’란 목표는 그런 포그조차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론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자는 도처에 통제 불가능한 변수들이 도사리는 여행길에서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단 3초의 차이로 성취해내게 이끕니다.

이 작품은 겉으로만 보면 돈이 여행을 이끌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돈내기로 시작된 세계 일주 여행이 위기 때마다 돈에 의해 난관이 돌파되다가 마침내 포그가 내기에 이김으로써 여행 중에 썼던 막대한 돈을 되찾게 되는 단순한 내용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사실 여기엔 돈의 가치를 훨씬 뛰어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본질적 가치가 숨겨져 있습니다.

작품이 쓰여진 시대의 유럽인들이 가진 사고방식의 한계 때문에 곳곳에 보이는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이 좀 거슬리기는 하지만, 흥미와 긴장감만큼은 역시 최고였습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 홀로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 증명한 포그씨의 용기와 추진력은 큰 자극이 됩니다.

책을 통한 세계 일주가 훗날 내가 배낭 여행이나 세계 여행을 할 때 좋은 여행 길잡이가 되어주길 기대해봅니다.

 

‘명망 있는 신사‘가 이제 ’은행 강도‘ 신세로 전락했던 것이다. 경찰은 다른 회원들과 함께 개혁 클럽에 보관되어 있던 필리어스포그의 사진을 철저하게 살폈다. 그것은 경찰 수사 결과에서 밝혀진 은행 강도의 인상착의와 하나에서 열까지 똑같았다
- P52

"픽스씨, 그 말이 전부 사실이라고 해도...우리 주인어른이 정말 당신이 쫓고 있는 강도라고 해도...저는 전혀 믿지 않지만... 난 그분을 위해 일하는 하인이고...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이 얼마나 친절하고 너그러운 분인지는 내가 잘 압니다. 그러니 절대 그분을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세상의 돈을 전부 다 준다고 해도요."
- P201

비록 겉으로는 냉정해보이지만 매일 온갖 정성을 다해 자신을 보살펴주는 포그씨에게 그녀는 정을 느끼고 있었다. 포그 씨에게 느끼는 감정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 스스로도 잘 모른채 그저 감사의 마음이라고 생각할 뿐이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포그 씨에 대한 감정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 P294

필리어스 포그는 내기에서 이겼다. 그는 80일 만에 세계를 일주했다. 80일간 세계 일주를 위하여 온갖 이동 수단을 활용했다. 증기선, 기차, 마차, 배, 상선, 썰매, 코끼리까지. 이 괴짜 신사는 여행 내내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고 정확한 모습을 보였다. 과연 그가 세계 여행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이 여행이 그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을까?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로 만들어 준 아름다운 아내를 얻은 것을 제외하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세계 일주에서 얻을 수 있는 충분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P39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3
알베르 카뮈 지음, 유호식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치사율이 매우 높은 전염병이 마을에 몰아칠 때 인간들은 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합니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마을에 있는 자신의 사랑하는 이를 보기 위해서 섬을 탈출하기 위해 애를 쓰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무슨 짓이던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살아남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알제리의 오랑시에는 페스트가 만연하자 오랑시는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됩니다. 모든 것이 봉쇄된 한계 상황 속에서 역병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도시는 커다란 혼란에 빠집니다. 의사 리유와 지식인 타루는 혼란에도 불구하고 질병과 싸움을 벌이며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의사라는 자신의 사명감과 다른 이유없이 자신 앞에 있는 환자들을 살리겠다는 의지만 있을 뿐입니다. 그 외에도 타루는 보건대를 스스로 조직합니다. 그리고 페스트가 심해져 사람들이 장례 절차도 없이 땅에 묻히기 위해 수송되어 질 때 사람들은 전동차에 꽃을 던집니다. 먼저 떠나는 이에 대한 인간애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페스트라는 부조리에 각자 나름대로 반항합니다. 희망을 가지고 행동을 합니다. 그것이 부조리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게 됩니다.

파리에 아내를 남겨 둔 채 아랍인의 생활상을 취재하러 오랑시에 들렀던 신문사 특파원 랑베르는 탈출을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리유와 함께 페스트퇴치작업을 벌입니다. 파늘루 신부는 페스트를 신의 형벌로 생각하고 기도에 전념하지만 결국 페스트에 감염되어 사망합니다. 그리고 타루도 페스트에 희생됩니다. 그리고, 리유는 그의 아내도 병사했다는 전부를 받습니다.

드디어 목숨을 걸고 페스트와 싸운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페스트는 완전히 퇴치되고 오랑시는 해방의 기쁨에 휩싸입니다. 열차는 다시 들어오고 랑베르의 아내도 오랑시를 찾아와 그와 플랫폼에서 감격의 재회를 합니다.

소설 속에는 의사, 공무원, 저널리스트, 죄수, 종교인 등 수많은 인간군상이 등장합니다.한다. 페스트라는 질병 앞에 인간은 다양한 형태로 자신을 표출합니다. 의사 리유처럼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헌신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수백 마리의 쥐가 이상한 증상을 보이며 떼죽음을 당하며 죽어나가는 현상을 보고서도 오직 수거하여 소각하라는 명령만 내리고 낙관하다가 페스트를 초기진압하지 못한 무능한 공무원들도 있습니다. 그러한 시당국의 안이한 대처에 분노하며 항의하는 리유로 인해 시당국은 페스트로 확정을 지을 수는 없다면서도 방역대책에 소극적으로 나서게 됩니다. 마치 2015년 메르스 발생당시 초기 대한민국 방역당국의 현상을 다시 보는 듯 했습니다.

반면, 전염병의 와중에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역경에 처했을 때 자신이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도 인간의 모습이지만, 그 과정을 극복하고 타인을 위해서 몸을 내던지는 것 또한 인간군상의 한 면이라는 것을 작가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부의 대응이나 언론의 반응, 시민들의 피해 등을 살펴볼 때 지금의 우리 모습과 별다를바가 없어 보였고, 페스트로 인한 사람들의 절망이나 자포자기, 무질서와 타락한 모습이 자주 등장하지만, 한편으로 인간에 대한 믿음 또한 잃지 않았습니다.

고전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메시지가 주는 감동과 공감이 있는 듯 합니다.

작가는 우리에게 ‘삶은 부조리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부조리를 응시하여 인식하고, 이겨내기 위해 서로 도와야 하지 않을까’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p165-166 그러나 서사시 같은 어투나 수상식의 연설 같은 어투 때문에 의사는 매번 짜증이 났다. 그런 따뜻한 마음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쯤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런 마음은 인간들이 자신을 인류와 연결해주는 어떤 것을 표현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상투어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언어로는 예를 들어 그랑이 매일같이 기울이고 있는 작은 노력들을 드러낼 수 없기에, 페스트 속에서 그랑 같은 사람이 의미하는 바를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다. 이따금 자정에 이제 인적이 끊긴 도시를 둘러싼 깊은 침묵 속에서 잠시 눈이라도 붙여볼까 하고 자리에 누우면서 의사는 라디오의 스위치를 돌려보곤 했다. 그러면 세계의 저 끝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가로 질러서,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서투르게나마 연대의식을 표현하려고 애쓰는 우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랑! 오랑!’ 그러나 그 음성은 연대의식을 표현하면서도 동시에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진정으로 고통을 나눌 수 없다는 끔찍한 무력감을 증명하듯 보여주고 있었다. 후원하는 목소리가 바다를 건너와도 소용없고, 리외가 주의를 기울여봐도 소용없었다. 목소리가 곧 웅변조로 높아지면서, 그랑과 그 웅변가를 서로 낯선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본질적인 거리가 더욱 뚜렷이 드러났다. ‘오랑! 오랑! 천만의 말씀.’ 리외는 생각했다. ‘함께 사랑하거나 함께 죽는 거야.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어. 그런데 그들은 너무 멀리 있단 말이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로 시작되는 이 책은 그 앞을 도무지 짐작하거나 예측할 수 없게 만듭니다. 책의 제목처럼 독자가 마치 '이방인'이 되어버린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고, 독자는 주인공을 이해할 수 없고, 주인공 역시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 독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은 듯 합니다.

주인공 뫼르소는 북아프리카의 알제에 사는 평범한 하급 샐러리맨입니다. 양로원에서 죽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다음 날, 해수욕장에 가서 여자친구인 마리와 노닥거리다가 희극영화를 보면서 배꼽을 쥐는가 하면 밤에는 마리와 정사를 가집니다. 며칠 지난 일요일에 우연히 불량배의 싸움에 휘말려 동료 레이몽을 다치게 한 아라비아인을 별다른 이유도 없이 권총으로 사살합니다.

재판에 회부된 그는 바닷가의 여름 태양이 너무 눈이 부셔서 사람을 죽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속죄의 기도도 거부하고 자신은 과거에나 현재에도 행복하다고 공언합니다.

과연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중의 하나라고 할 만한 고전입니다. 저자는 인간에게 있어서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숙고를 요구하고 있으며, 사회와 인간의 존엄성과의 근본적인 대립 관계를 아주 명확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짧은 소설이지만 한번 읽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내용이 상당히 심오하고 난해하고 숨겨진 뜻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알베르 카뮈가 말했듯이, ‘소설은 설명하는 게 아니라 제시하는 것’이므로, 그의 의도를 단순하게 한가지로 정의내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아마 2~3번 더 읽어봐야 할 것 같고,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느낄 듯합니다.

하지만, 이방인이 보여주는 일관된 진솔함을 통해, 우리는 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회보다 우선시되고, 사회가 바라는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다소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주인공 뫼르소처럼 주류에 편승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비주류의 삶은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무리속에 억지로 끼어든 이방인의 삶과 같다’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조금 뒤에 마리는 나에게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나는 대답했다. 마리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 P44

나는 사장의 비위를 거스르고 싶지는 않았으나, 나의 생활을 바꿔야 할 하등의 이유도 찾아 낼 수 없었다. 곰곰 생각해 봐도 나는 불행하진 않았다. - P51

사람들은 내가 말이 적고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난 별로 할 말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말을 안합니다."하고 나는 대답했다. - P77

지내려면 물론 길게 느껴지지만 날들이 어찌나 길게 늘어지는지 하루가 다른 하루로 넘쳐 나서 경계가 없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하루하루는 그리하여 이름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 P91

그때 나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아는 얼굴을 찾아서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마치 같은 세계의 사람들끼리 서로 만난 것이 즐겁기만 한 무슨 클럽에라도 와 있는 것 같다는데 주목했다. 또, 내가 어쩐지 침입자 같고 남아도는 존재인 것 같다는 기묘한 느낌도 들었다. - P95

간수는 잠자코 있으라고 말하고 조금 있더니 ‘변호사들은 모두 그런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것도 또한 나를 사건으로부터 제쳐 놓고 나를 무시해 버리는 것이고, 어떤 의미로는 그가 나 대신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벌써 그 법정에서 아득히 멀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 P116

서로 떨어져 있는 우리의 두 육체 이외에는 이제 아무것도 우리를 서로 이어 주고 서로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 없었으니, 어찌 내가 그러한 사정을 알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그렇다면 그 순간부터 이미 마리의 추억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을 것이었다. 죽었다면 마리는 더 이상 나에게 관심의 대상이 못 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내가 죽은 뒤에 사람들이 나를 잊어버린다는 사실도 나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 일은 생각하기 괴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 P128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 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주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 뿐이다. - P135

엄마는 종종 사람이 결코 전적으로 불행해지는 법은 없다고 말을 하곤 했다. 나는 감옥 안에서, 하늘이 물들고 새로운 날이 내 감방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면, 그 말에 동의하곤 했다. 왜냐하면 실제로 내가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을 테고, 그러면 내 가슴이 터져 버렸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 P1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4살이 된 한스는 독일 어느 시골 라틴어 학교의 학생입니다. 그는 언제나 1등을 차지하는 우수한 소년으로, 총명해보이는 이마, 빛나는 눈동자, 품위 있는 몸가짐으로 언제나 사람들에게 사랑과 믿음을 받고 있습니다.

주에서 주관하는 시험에 합격하면 신학교에 입학하여 대학을 갈 수 있지만, 그것은 극소수의 학생에게만 허용된 험난한 일이었습니다. 한스는 매일 밤늦도록 공부하며 시험에 2등으로 합격합니다.

한스는 신학교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거둡니다. 한스는 ‘하이르너’라는 소년과 친하게 되는데, 그는 한스와는 달리 자유분방하고 고대건축과 조각에 깊은 조예가 있는 시인이었습니다. 한스는 그에게 마음이 이끌립니다. 그러나 신학교의 엄격한 교육은 하이르너에게는 큰 고통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학교 규칙을 어기고 선생님에게도 반항을 하는 불량학생으로 낙인이 찍힙니다.

한스는 그와 가깝게 지내지만 자신도 불량 학생으로 생각될까봐 점점 그와 거리를 둡니다. 한스는 그와의 우정을 배신했다는 생각으로 고민하지만, 겨울이 되어 두 사람은 다시 우정을 나눕니다. 그러나, 하이르너는 신학교를 탈출하고 결국 퇴학당합니다. 한스도 열등생으로 낙인이 찍혀 학교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한스는 사람들로부터 예전의 사랑과 관심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던 중, 죽음의 그림자에 이끌려 나골트 강에 몸을 던집니다.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인 소설로 알려져있는 작품이자, 헤르만헤세가 성장소설의 대명사라는 말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인 듯 합니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가 학업이라는 막중한 무게를 두 어깨에 짊어지고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한스의 모습에서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고, 100년도 지난 시대의 교육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획일화된 잣대와 교육제도, 입시와 교육열 등 사회 현상이 이 소설속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유에 대한 꿈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질서라는 수레바퀴 아래 깔려 희생된 어린 영혼을 지켜주지 못한 어른으로서 반성하게 됩니다. 아울러, 삶의 수레바퀴 속에서 하이르너처럼 자의적으로 자기만의 수레바퀴로 뛰어내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한스는 자신이 하일브론의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제 막 눈뜨기 시작한 남성다운 혈기가 그저 낯설고, 초조하고, 피곤하기만 한 상태로 어렴풋이 이해될 뿐이었다... 자신의 죽음을 부르는 나뭇가지에 추파를 던질 때만 해도 한스는 작별을 고하는 자의 애절한 우월감을 가지고, 지금과 다름없는 사람들과 사물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금 과거로 되돌아와 놀라움에 미소 지으며 잃었던 현실을 되찾은 것이다.

* 한스는 정신을 가다듬고, 열심히 일을 계속해 나갔다. 소년 시절의 장난기어린 놀이를 그만둔 뒤로 이제껏 무엇인가 눈에 드러나는 유익한 물건을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기쁨을 맛본 적이 없었다...한스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동의 찬가를 듣고 또 이해했다. 그것은 적어도 초보자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고, 산뜻한 매력을 풍기는 것이었다. 한스는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존재와 인생이 커다란 선율에 어우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미안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1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인공 싱클레어는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그의 가정은 신앙심이 깊고 평화로우며 부모나 누나들 또한 사랑으로 충만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장하면서 어두침침한 뒷골목, 역한 냄새가 나는 방 등 집에서 보지 못한 또다른 어두운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는 같은 반 친구였던 포악한 성격의 크로마에게 잘 보이기 위해 거짓으로 꾸며낸 엉뚱한 무용담을 하게 되는데, 이 일로 인해 크로마에게 갖은 협박과 위협을 당합니다. 이대에 의젓하고 지혜로우며 이상한 마력을 지닌 데미안이 나타나서 싱클레어를 위해 크로마를 물리쳐 줍니다. 이때부터 데미안은 진정한 친구이자 스승으로서 싱클레어에게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이별하게 되고, 사춘기를 방황과 술로 허송하게 됩니다. 이때 한 소녀의 등장으로 싱클레어의 방황은 멈추게 되고 지난날을 반성하면서 자신의 삶을 그림으로 승화시켜 나갑니다. 소녀의 초상화를 그린 싱클레어는 그림을 데미안에게 보내고, 그에게서 선과 악, 신과 악마를 한몸에 지닌 신으로서 영혼의 요구를 억제하지 않는 아플락사스를 언급한 편지를 받게 됩니다. 이때부터 싱클레어는 자신의 내면 세계에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됩니다. 그의 영혼 속에 한 운명의 여인이 들어와 있었고, 그것은 데미안이었습니다.

싱클레어는 대학에 진학하고 아플락사스적인 운명의 여인을 찾는 것이 그의 삶의 목표가 됩니다. 그러던 중 데미안과 그의 어머니인 에바부인을 만나게 되는데, 에바부인을 보는 순간 그가 꿈꾸던 여인임을 직감하고 운명의 여인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참전하게 됩니다. 전쟁에서 부상당한 싱클레어는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실려갑니다. 정신이 들었을 때 싱클레어는 그의 옆에서 데미안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데미안은 그에게 에바부인의 키스를 전해줍니다. 그 후 싱클레어는 다시 깊은 잠이 들고, 깨어났을 때 데미안은 없었습니다. 싱클레어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고통에서 해방된 진정한 삶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중학교 때인가 한번 읽었다가 30년도 넘어서 다시 읽어본 책입니다. 이런 내용이 있었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내용이 기억이 안 나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문구는 바로 ‘새의 알’입니다. 알속의 새는 밖을 동경하지만 그런 세상을 만나려면 자신을 둘러싼 두꺼운 알을 깨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을 타파할 때 그 새는 또다른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이겠죠.

감수성이 풍부한 주인공 싱클레어의 성장과정이 세밀하게 그려지고 있고,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올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두 소년의 이야기는, 세월이 흘러도 전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듯합니다.

억압된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또, 싱클레어의 관념적 방황을 따라가다 보면 과연 지금까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나에게 데미안과 에바는 있었던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데미안과 에바는 곧 싱클레어였고, 자신을 찾는 여정은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가 스스로를 도와서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74 다른 쪽이 사나이인데다 제 색깔도 분명해. 그는 자기 처지에서 보면 그저 듣기 좋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이따위 회개를 비웃고 그냥 제 길을 끝까지 가니까.지금까지 분명히 자기를 도와준 악마한테서 비겁하게 마지막 순간에 등을 돌리지 않는 거지. 그게 바로 제 색깔이고 성격이야.

p78-79 그렇게 똑똑한 말은 아무 의미가 없어. 전혀 없지.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질 뿐이야.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건 죄악이야. 사람은 거북이처럼 자신 속으로 완전히 기어들어갈 줄 알아야 하는데."

p110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p129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날기를 포기하고 차라리 정해진 규정의 손길에 붙잡혀 보행자의 길을 걷기를 선택하는 거야

p136우리가 어떤 인간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 모습 속에서 우리 안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미워하는 거지. 우리 자신 안에 없는 것은 우리를 자극하지 않는 법이니까.

p163-164인간은 자기 자신과 하나가 아닐 때만 두려움을 갖는 법이야. 자기 자신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거지. 그러니까 자기 안에 있는 모르는 존재를 두려워하는 사람들끼리의 공동체인 거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