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집 큰 생각 - 작고 소박한 집에 우주가 담긴다
임형남.노은주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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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과 노은주의 책을 또 읽게 됐다. 얼마 전 읽었던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라는 책이 참 마음에 들어서다. 최갑수와 이병률의 그랬듯, 이른바 한번 '필이 꽃히면' 그 작가의 책은 가리지 않고 읽게 되는 것 같다. 지금껏 그 선택에 후회해 본 적은 없으니, 사람과 사람의 좋은 만남이란 것이 비단 얼굴을 마주 하고, 얘기를 나눠야만 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임형남+노은주 라는 표현이 참 재밌으면서도 정겹다. 이렇듯 서로를 마치 하나인 것처럼 존중하며, 때로는 의지하며 사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일일텐데, 아마도 이들 부부는 천생연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서로의 마음이 같으니 가능한 일일 것이다.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끼리 시너지 효과를 거둔, 아주 긍정적인 사례로 보아도 좋겠다.

 

이 책의 초판 1쇄가 나온 것이 2011년 11월이니 4년이 지나고서야 이 좋은 책을 읽게 됐다는 아쉬움이 크다.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발품을 팔아서라도 한번쯤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그 유명한 '금산주택'을 가봤을텐데 말이다. 작고 소박한 집에 우주가 담긴다는 말에서 이 부부 건축가의 땅과 사람, 그리고 집에 관한 깊은 철학적 성찰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나는 건축에 대한 재능이 전혀 없는 사람이지만 집 짓는 공상을 많이 하곤 한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머릿 속으로 지었다 부숴버린 집이 아마도 수백 채는 되지 않을까. 현실의 나는 내 이름으로 된 땅 한 평, 집 한 채도 없는 무소유의 삶을 살고 있지만, 내 상상력은 어느 경치 좋은 곳에 으리으리한 기와집을 짓기도 하고, 옥상에 수영장이 있는 멋진 저택을 그려 보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그저 공상일 뿐, 실현될 가능성도 없고, 또 그런 집을 지을 필요도 없다. 임형남+노은주가 고민하듯 나 또한 나에게 맞는 적합한 집의 크기에 대한 고민이 있다. 현대인들에게 있어 집이라 함은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사회적 신분이나 위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지표 쯤으로 치부되고 있다.

 

그런 이유로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아도 무리해서 큰 평수의 아파트를 사고, 남들보다 비싼 고급 승용차를 구매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그러하고, 또 그런 소비활동을 통해서 개인들이 행복하고 만족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 자체를 비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소비의 끝이 과연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다.

 

금산 진악산의 넓은 품과 마주하고 있는 금산주택은 안방과 손님방, 최소한의 부엌과 화장실, 그리고 서재가 되는 다락방을 담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지은이들이 자신들의 건축의 표본으로 삼고 있는 안동 도산서당의 구성을 그대로 닮은 것이다. 물론, 이들이 평소 품고 있는 건축에 있어서의 철학적 이상을 실현할 수 있었던 데에는 건축주의 이해와 전폭적인 지지가 있기에 가능했음은 당연하다.

 

금산주택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름난 해외 전문지에 소개되기도 했고 건축 전문가로부터 큰 호평을 받기도 했다. 책에 소개되어 있는 사진과 도면을 통해 본 금산주택에 대해서는 각자의 평가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건축가의 시각도 다양할 것이고, 작은 집에 우주를 담는다는 철학적 투영 또한 그 판단이 엇갈리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원칙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집이란 우선 집이 놓여질 땅과 주변의 자연을 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공상의 편의와 건축가의 전문적인 시각도 반영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집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살게 될 사람을 최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 전제들이 충족된 이후에야 비로소 작고 소박한 집에 우주와 같은 큰 생각이 담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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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길 위에 서서 - 백가제해 강역으로의 시간여행
차준완 글.사진 / 문예바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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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지은이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겠다. 차준완이라는 분의 글과 사진으로 채워진 '백제의 길 위에 서서'라는 책은 북카트에 담겨진 지 한참만에 나와 만날 수 있었다. 신라의 땅이라 볼 수 있는 경상도에서 발붙이고 살고 있는 내게 백제라는 이름은 묘한 끌림을 준다. 그런 이유로 좀더 빨리 이 책을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백제를 향한 그리움이 이 책의 시작이자 끝이다. 저자 차준완의 백제에 대한 관심과 잊혀진 제국에 대한 의문의 갈증이 이 책을 만들어 낸 원동력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주요한 유적과 명소의 탐방 기록을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해왔다고 하니 실로 대단한 인생 역정의 결과물을 비로소 세상에 내놓게 된 것이다.

 

나 또한 우리 땅의 구석구석을 열심히 돌아다니려 노력 중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차준완처럼 어떤 대상을 특정해 놓지는 않다 보니 그 행선지는 중구난방이다. 어떨 때는 산세 좋고 조용한 강원도의 산사로 떠나기도 하고, 불현듯 비릿한 포구의 바다 내음이 끌리면 전라도의 땅끝을 향해 무심코 내달리기도 하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그 떠남의 지향점이 분명하지 못하다는 한계가 분명 있다. 물론, 여러 곳을 자주 다니다보면 그 중에서 하나의 교집합을 만들어 낼 수도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해도 특별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전문적인 공부까지 곁들이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 속을 괴롭히는 하나의 난제가 생긴 꼴이다.

 

지은이의 간단한 약력을 살펴보면 그가 이토록 잘 만들어진 한 권의 책을 펴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서울시립대 건축공학과를 나온 그는 여러 회사를 다니며 건축에 종사했을 것이고, 현재는 어떤 회사의 부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고 한다. 분명 어느 대학의 교수이거나 학교나 연구소에서 전문적인 연구를 한 사람은 결코 아니다. 누구든 하나의 존재에 몰입되어 파고들면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하나의 증거인 것 같아 흐뭇한 기분이 든다.

 

그의 책 속에는 그 오래 전 백제의 강역이었던 여러 고을이 소개되어 있다. 백제의 전성기를 함께 누렸던 석탑도 있고, 천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고찰들과 그 흔적들도 담겨 있다. 그 범위와 내용의 방대함은 수십년 세월동안 그가 흘린 노력의 반증이라 여겨 본다. 내가 이미 다녀본 곳들이 여럿 눈에 띌 때마다 반가운 마음 감출 수가 없다.

 

아직 가야 할 곳이 많은 내게 이 책은 좋은 안내서가 되어 주었다. 꼼꼼히 읽어 보고 그가 알려준 백제의 아름다움을 찾아 많이 다녀보려 한다. 그저 자랑삼아 여기 한번 다녀왔다는 기억을 남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 많이 보지는 못할 지라도 한참을 멈추어 서서, 말하지 못하는 오래된 것들과의 대화를 시도해 봐야겠다. 새로운 책을 준비하는 내게 좋은 자극제가 되어 준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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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8 2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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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9 18: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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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9 18: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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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31 19: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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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 옛 공간의 역사와 의미를 찾아 떠나는 우리 건축 기행
노은주.임형남 지음 / 지식너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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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다시 태어난다면 해보고 싶은 것이 건축가로서의 삶이다. 물론 현세의 나의 능력과 재주로는 감히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란 것도 잘 안다. 그러기에 빼어난 건축을 자유자재껏 만들어 내는 뛰어난 건축가들과 오랜 세월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며 하나의 풍경이 된 명품 건축들을 보며 경탄을 마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모자란 것을 채우러 오래된 건축들을 보러 다니곤 한다. 얼마나 많은 발품을 팔아야 건축이 지닌 아름다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지 기약은 없다. 하지만 끊없이 이어지는 발걸음을 통해 예기치 못했던 놀라움과 경탄은 물론 치유의 즐거움까지 맛볼 수 있으니 마치 더듬이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곤충마냥 깜깜이로 떠나는 답사 여행이 고난의 길인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처럼 문외한이 아닌, 전문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우리 땅의 건축물들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 질문에 해답을 얻으려 한권의 책을 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1999년부터 가온건축을 운영하며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는 노은주, 임형남 부부 건축가의 발길과 시선을 따라 걸어 가보려 한다.

 

옛 공간의 역사와 의미를 찾아 떠나는 우리 건축 기행이라는 부제가 붙은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라는 책은 다분히 전문적이다. 그 전문성에는 비단 그들의 전공인 건축 뿐만 아니라 음악과 문학 등 예술의 전방위적인 면까지 아우른다. 하긴, 건축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철학과 예술에 관한 고차원적인 지식과 식견이 요구되는 것이 당연하다.

 

이 책은 크게 여섯 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첫번째 왜 그 곳은 그토록 사랑받을까? 에서는 종묘와 소수서원, 영주 부석사와 공주 마곡사, 경주 감은사탑을 소개하고 있고, 일상의 재발견, 집을 이루는 것들에서는 옥천 이지당, 정읍 김동수가옥, 강릉 선교장과 공주 루치아의 뜰이 다채로운 설명과 단정한 사진과 함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은이들이 세번째 장에서 지극히 주관적인 한국 최고의 건축으로 손꼽고 있는 것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집 산청 산천재, 안동 병산서원과 도산서원, 회재 이언적의 흔적을 살필 수 있는 경주 독락당,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안 내소사와 담양의 소쇄원이 그것이다. 여섯 곳 모두 몇번씩 다녀온 곳이기에 읽으면서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무엇이 최고의 건축인가 하는 것이 각자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기에 섣불리 단언하기 어렵겠지만 여기에 소개된 곳 모두가 최고의 이름이 결코 아깝지 않은 곳이란 것만은 확실하다.

 

보이지 않는 시간을 순례하다는 제목으로 소개된 곳들이 유달리 기억에 오래 남는다. 비어 있지만 가득 찬 역설의 미학, 합천 대동사터는 지금이라도 당장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꿈틀 댈 정도다. 마음에 두고도 지금껏 가보지 못한 익산 왕궁리 절터나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경복궁와 덕수궁에도 큰 끌림이 느껴진다.

 

지친 몸과 마음을 보듬어 주는 곳으로 담양의 식영정이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담양에 갈 때면 늘 식영정 마루에 한참을 앉아 시원한 바람에 몸과 마음의 땀들을 식혔던 기억이 있기에 다른 어느 곳보다 식영정 이름 석자가 반가웠다. 누군가에게 여행지 추천을 받게 되면 늘 제일 앞자리에 내놓는 것이 바로 담양의 식영정과 소쇄원이기에 공감의 폭이 더욱 컸을 것이리라.

 

모처럼 좋은 책을 만나게 됐다. 대부분이 한번쯤은 다녀온 곳들이라 더욱 정겹고 따뜻하게 다가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급하게 사진 몇장 남기고 수박 겉핧듯 지나치는 답사 여행이 아니라 이들 부부 건축가의 발걸음처럼 제대로 보고, 온전히 마음에 담을 수 있는 그런 시간들로 가득 채워야 겠다는 마음가짐을 또 한번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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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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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는 내가 읽은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두번째 책이다. '피로사회'라는 책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 책도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하지만, 피로사회라는 제목에서 그가 던져주고 있는 화두가 단적으로 드러났듯, 투명사회 역시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의 단적인 특징 중 하나를 그는 '투명'이란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일견 생각해 보면 '피로'라는 단어에 비해 '투명'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음침한 뒷골목의 어느 폐쇄된 공간에서 벗어나 밝고 오픈된 공간으로 옮겨진 듯한 기분이다. 기존의 비밀스런 결정과정과 거래들에서 많은 비리가 양산된 사례를 우리는 많이 보아 왔다. 그다지 훌륭하지 못했던 과거의 관행들이 어쩌면 우리를 '투명사회'의 강박으로 몰아 넣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의 저자인 한병철 교수의 지적과 같이 요즘 '투명성'이란 단어는 도처에서 그 위력을 드러내고 있다. 정치,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 전방위적인 면에서 투명성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많은 정보의 자유, 더 높은 효율성을 가져다 줄 것으로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투명성이 신뢰를 낳는다는 것이 오늘날의 강력한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철저한 믿음 속에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신뢰가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는 사회에서 투명성을 요구하는 수준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누구나 원하는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신뢰에서 통제로의 시스템적 전환이 일어난다는 중요한 사실을 지은이는 독자들에게 일깨워 주려 애쓰고 있다. 결국 그의 결론은 투명사회는 곧 통제사회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투명사회를 나타내는 다른 표현들이 많이 등장한다. 긍정사회, 전시사회, 명백사회, 포르노사회, 가속사회, 친밀사회, 정보사회, 폭로사회, 통제사회들이 그런 것들이다. 단어 자체만으로 보자면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있지만 모든 표현들은 결국 투명성이 지배자의 통제 수단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피로사회에서 이미 그는 현대 성과주의 사회의 폐해를 낱낱이 지적한 바 있다. 투명사회에서도 무한 경쟁을 통한 자발적 착취의 서글픈 자화상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 책은 '투명함'을 통해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자신의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전시하며 스스로 디지털 통제사회를 완성해 나가는 현대인에게 던지는 철학자의 소름 끼치는 경고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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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여행 - 내가 꿈꾸는 강인함
정여울 글.사진, 이승원 사진 / 추수밭(청림출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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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정여울은 베스트 셀러 작가다. 굳이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이란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녀가 이 유명한 책의 지은이란 것 쯤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런데 '베스트 셀러' 작가라는 선입견이 작가 정여울의 진면목을 가리고 있었음을, <그림자 여행>이라는 에세이를 읽고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림자 여행'이라는 제목이 감성을 자극한다. 그저 어렴풋하게 추축했던 것처럼 그녀가 말한 '그림자'란 저마다의 마음 속에 드리우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선명하게 자리잡고 있는 다양한 마음들을 지칭한다. 고로, 그림자 여행은 우리들 내면을 고스란히 들여다 보는, 심리학적 진단이 곁들여진 재미난 여행이 될 수도 있겠다.

 

정여울 작가가 마음 속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 자신이 상처가 많아서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내 안에 빛이 있으면 감추고 있어도 스스로 빛이 난다고 하지만, 그 빛의 뒷편에는 그만큼의 크고 선명한 그림자가 자리잡을 수 밖에 없다. 어떤 삶을 살아도 그림자는 생기게 마련이지만, 보통 우리는 그 그림자를 애써 무시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의식을 조작하기도 하는 것이다.

 

내면의 상처를 직시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치유하고자 하는 사람들만이 자신의 그림자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다는 전제만 성립한다면, 그 그림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형태와 농담이 다양할수록, 그 사람의 인생도 풍부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책 속에 담긴 수많은 글 가운데 유독 마음을 치는 것이 있다. 내 삶은 정말 내가 선택한 것일까 하는 물음으로 시작된 이 글은 왜 한번도 자본가가 되어 보지 못한 사람들이 자본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인 지, 왜 한번도 권력의 중심에 서 보지 못한 사람들의 권력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인 지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그녀는 레나타 살레츨의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라는 책을 통해 '모든 것을 나 스스로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 자본주의의 신화는 허구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의 주체적인 선택이었다고 믿었던 것들이 어쩌면 주변 사람들이나, 사회의 시스템이나, 혹은 '타인의 시선'이라는 무언의 압력에 굴복한 수동적인 적응은 아니었는 지 되물어 보고 있다.

 

나 또한 그 질문에 온전히 나 스스로의 선택이었다고 답할 자신이 없다. 그녀의 주장이 조금은 과격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우리는 선택의 자유를 누린 적이 없었다. 결국 잘못된 현실 또한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니 네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무서운 장치가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결국 우리가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기에 있다. 그녀는 결코 우리에게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냉소와 패배감만을 가르치려 하진 않는다. 오히려 대학생들이 질소 과다포장 문제를 비판하며 과자 봉지 만으로 뗏목을 만들어 한강을 건넜듯, 나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에 공감하고 연대함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그림자 여행'을 통해 작가 정여울이 얘기하고 싶었던, 우리 독자들이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가치있는 결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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