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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선 기독교 - 공적 신앙이란 무엇인가
미로슬라브 볼프 지음, 김명윤 옮김 / IVP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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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주의 시대에 기독교 신앙은 갈수록 사사화(privatization)되고 있다. 이는 사회학자 피터버거(Peter Berger)가 『종교와 사회』(The Sacred Canopy: Elements of a Sociological Theory of Religion)에서 사사화를 현대 사회의 흐름 가운데 하나로 지적한 바와 같다. 기독교 신앙이 갈수록 개인주의적으로 변함에 따라서, 기독교는 공적 영역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더욱 분리주의적으로 반응한다. 기독교의 핵심적인 진리인 사랑과 용서, 평화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협소한 사회적 이슈(동성애나 낙태 등)에 크게 목소리를 낸다. 기독교가 기여해야 하는 더 많은 영역이 있음에도(사실상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목소리를 내는 것 같이 보일 때가 많다. 겉으로는 거룩하게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내적으로는 자신들의 유익과 만족을 위해서만 신앙을 도구화하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광장에 선 기독교』의 1부에서 볼프는 ‘왜 인간은 개인의 신앙에만 집중하는가?’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다. 그는 하나의 종교가 공공 생활에 침투하는 전체주의적인 입장과 모든 종교를 공공 생활에서 배제하는 세속적인 입장 모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볼프는 기독교가 ‘예언자적 종교’가 되어야하는데, 그러한 기능을 상실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를 그는 ‘기능 장애’라고 말한다. 그는 신앙이 사람들의 삶과 사회적인 현실을 형성하는데 완전히 실패했음을 강조한다. 여기서 우리는 볼프에게 귀한 통찰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예언자적 종교에 '상승'과 '회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상승'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며, 메시지를 받는 수용적 사건이다. 반면 '회귀'는 신적 메시지가 세상 가운데로 선포되는 것이다. 문제는 '상승'과 '회귀'가 심각한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지점도 된다는 것이다. 볼프는 ‘회귀’의 기능장애로 해야 할 것은 하지 않는 ‘나태’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는 ‘강요’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어떠한 현상이든 그 상태를 정확한 용어로 ‘명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볼프를 통해 우리는 기독교인들이 범하고 있는 죄의 모습을 분명하게 이름 붙일 수 있고, 이를 통해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 그동안 추상적으로만 여겨왔던 기독교인들의 그릇된 행태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힘을 가진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그렇기에 성경에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다양한 모습 가운데 극히 일부의 모습인 정의로운 하나님의 이미지만을 받아들인다. 정작 십자가에 달린 예수, 겸손한 예수, 섬김의 예수를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가장 큰 통찰을 얻게 되었다. 인간은 거룩하여져야하고 하나님을 닮아야하지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 중에 하나가 폭력을 동원하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힘으로 지배하며 강압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를 따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따르고 싶고 쉬운 방식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사회현상은 복잡다단하다. 그 가운데 대처하는 우리의 행동양식도 매우 다양하다.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해야 하는 과제는 시대의 흐름에 비판없이 대처하여 전적으로 문화를 수용하거나, 분리주의적으로 대처하여 사회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들이 해야 할 행동은 비판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 사회에서 지혜롭게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것이다. 또한 그 가운데서 우리의 중심에 십자가와 그리스도가 있어야 함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면서도, 공적 영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적절한 참여를 모색하고 함께 대화해야 함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프는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대안을 제시하고 참여할지에 대한 통찰을 적실하게 주고 있다.


2부에서 볼프는 본격적으로 ‘왜 우리가 공적신앙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다원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가야 할지 힘겨움을 느낀다. 그들은 나름의 대안으로 세상과 분리되어 세상 문화를 적대시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이는 보수적인 신앙관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주로 택하는 방법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적당히 세상의 문화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대체로 자유로운 신앙관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문화에 별다른 거리낌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공적영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목소리를 내고, 어떠한 방법과 모습으로 참여를 할 것인가는 최근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는 탄핵정국과 촛불혁명 가운데서 새로운 민주주의의 대안을 실제로 보여준 대한민국의 최근 상황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다수 기독교인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하면서 정작 기득권의 입장을 대변했던 몇몇 지도자들의 그릇된 행동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의 공적 참여에 대한 성경적 대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떠한 방법을 제시해야 할까? 볼프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자신이 속한 곳에서 그 곳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키면서도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주어진 문화 가운데서, 그 문화를 조금씩 변혁시키는 것이다. 리처드 니버(H. Richard Niebuhr)가 『그리스도와 문화』(Christ and Culture)에서 제시하는 다섯 가지 유형도 결국 시대의 흐름 가운데 어떻게 적절하게 문화에 대응할지에 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대안은 고정되고 불변하는 대답이라기보다는, 그 시대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적절하게 응답하는 자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프는 다원주의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 시대에 가장 적절한 대답이 무엇인지에 대해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접근 방법으로 응답하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통해서 『광장에 선 기독교』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 이전에 신학자로서의 올바른 자세를 배우게 된다. 즉 시대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모습과 치열하게 배우고 알아가려고 하는 자세를 엿보게 된다.


볼프를 통해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점은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적이면서도, 종교와의 대화에 열린 태도일 것이다. 그는 신앙인들이 다른 종교의 경전에 대하여 ‘해석학적 호의’를 베풀고 서로 선물을 교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종교간 대화의 방식은 배타적인 태도를 버리고, 상호 이해하며 경청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볼프는 종교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다원주의를 제안하면서, 공적 영역에서 세속적인 문화가 아닌 각 종교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각 종교는 진리의 문제에 대해 일단 유보하고, 사랑과 관용을 통해 공적영역에서의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갈수록 한국사회에서도 종교간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볼프를 통해 공적 영역에서 기독교가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하며, 어떤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내적으로 진리에 발붙이고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외적으로는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와 존경의 마음으로 대화와 소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공적 영역에서 세속적인 문화와 갈등과 경쟁을 부추기는 분위기를 타파하고, 연합과 상호 이해와 사랑함이 더욱 인정받고 강조되는 세상으로 변혁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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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정의 - 정의로운 사랑은 가능한가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지음, 홍종락 옮김 / IVP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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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 1932년 1월 21일 ~)를 처음 만난 때는 2010년 11월이었다. 당시 철학이나 신학에 무지했기에『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1가 매우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의 글에서 지적 깊이만큼이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를 통해 추상적인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 더욱 구체화되고 명료화되었다. 사회 곳곳의 부조리와 구조악에 관심이 많으신 하나님에 대해서 새롭게 깨달았으며, 그러한 죄와 소외로부터 자신과의 연합을 꿈꾸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월터스토프는 알빈 플란팅가(Alvin Plantinga)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 기독교 철학자다.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과 미학을 공부하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30년간 모교인 칼빈 칼리지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그의 학문적 경력은 세계적 명성이 있는 두 강좌에 연이어 초빙된 것에서 절정을 이룬다. 첫재는 옥스퍼드 대학의 와일드(Wilde) 강좌(1993-94)였고 다음 해엔 인문 과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스코틀랜드 성 앤드류 대학의 기포드(Gifford) 강좌(1994-95)의 연사로 선발되었다. 그는 분석 철학 전통에 서 있으며, 미학과 인식론, 그래고 해석학을 섭렵하고 사회 철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특별히 월터스토프의 철학은 전통과 현실의 대화를 기본 골격으로 하며, 실천과 이론을 조화를 모색한다.2


'정의'에 대한 그의 관심은 1983년에 출간된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Until Justice and Peace Embrace, Ivp 역간)로부터, 2008년에 'Justice: Rights and Wrongs' 에서 더욱 구체화된다. 『사랑과 정의』서문에서도 밝히지만 앞의 책 『정의』(Justice: Rights and Wrongs) 집필을 계획하면서 정의와 사랑의 관계를 논하기 위해 한장 정도의 분량을 할애하려고 했으나 한권의 책이 필요함을 느꼈고, 2011년 『사랑과 정의』(Justice in Love, Ivp 역간)를 집필하게 된다. 2013년에 그는 정의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과 과정을 보여주는 자전적인 책『하나님의 정의』(Journey towards Justice, 복있는 사람 역간)를 낸다.


『사랑과 정의』에서 저자는 정의와 사랑이 긴장관계라고 생각하는 것은 두 가지 명령을 잘못 이해한 것에 기인했음을 밝힌다. 따라서 그의 목적은 이러한 사랑과 정의의 명령을 이해하는 올바른 길을 제시하려고 하는 것이다. 


서론에서 그는 안녕 증진의 세 가지 규칙을 말한다. 그것은 곧 이기주의, 행복주의, 공리주의다. 이러한 규칙의 특징을 제시하면서 그는 각 관점에 대해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 뒤에 대안으로서 '아가페주의'를 제시한다. '아가페주의'는 많은 사상가들이 주목하지는 않았다. 월터스토프는 이 운동의 탁월한 구성원으로 키에르케고어(Søren Aabye Kierkegaard)와 함께 니그렌(Ander Nygren)과 칼 바르트(Karl Barth),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폴 램지(Paul Ramsey)를 꼽는다.  


아가페 사랑은 무엇인가? 바르트는 교회교의학 4권의 두번째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In agape-love a man gives himself to the other with no expectation of a return, in a pure venture, even at the risk of ingratitude, of his refusal to make a response of love, which would be a denial of his humanity"3 결국 아가페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이며,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니그렌은 아가페 사랑은 결국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불어넣어져야만 가능하다고 말하며, 케에르케고어는 아가페 사랑을 우리의 의무로 생각할 때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월터스토프는 '아가페주의'의 기여를 많은 부분 인정한다. 하지만 '아가페주의'를 주장한 많은 신학자들이 '사랑'과 '정의'를 뚜렷하게 대립시키고 분리시키려고 했던 부분에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한다. 특히 그는 니그렌이 말하는 정의를 배제시키는 아가페 사랑에 반대한다. 또한 니버가 말하는 아가페 사랑과 정의의 충돌이 일어날 때는 현실적으로 사랑보다는 정의를 선택해야한다는 관점도 비판한다. 저자는 오히려 사랑을 자비로 해석하는 고전적인 아가페주의의 대안으로 배려(care)로서 사랑의 개념을 제시한다. 이것을 통해 그가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사랑 가운데 행하는 정의'이며, '정의 가운데 행하는 사랑'이다.


그는 그의 논증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기존 철학과 신학에서 보여주는 한계점을 비판하는데 그치지 않고, 3부와 4부에서 용서와 칭의의 문제를 다룬다. 이 지점이 이 책이 보여주는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는 로마서를 새롭게 해석하면서 라이트(N. T. Wright)를 중심으로 하는 새관점학파와 유사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풀어낸다. 그는 로마서에서 다루는 것은 정의의 문제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존재 자체를 받아주셨고, 우리의 죄과를 묻지 않으시고 용서해주셨다. 이것이 곧 '정의'이며, '칭의'다. 하나님의 사랑은 공정하다. 월터스토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의로운 사랑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해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야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월터스토프의 정의와 사랑에 대한 관점이 볼프(Miroslav Volf) 관점과 유사함을 보게 되었다. 볼프 또한 그의 책 『베풂과 용서』에서 용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배제와 포용』에서는 배제와 포용의 관계를 통해 정의와 사랑의 문제를 다룬다. 특히 그는『배제와 포용』3장에서 용서는 정의를 긍정한다고 말했다. 이 책의 추천사에서 볼프는 아주 짧게 그의 책을 추천한다. "니콜라스 월터스토프는 자신의 권위 있는 전작 『정의』의 논의를 잇는 『사랑과 정의』를 통해 정의의 진정한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철학과 신학의 개념을 오가며 논의가 진행되기에 다소 어려운 부분이 많다. 하지만 천천히 정독해나가다보면 그동안 우리가 모호하게 생각했던 부분들에 대한 확실한 정리와 함께, 새롭게 고민하고 해석해야할 지점들을 보게 된다. 우리의 신앙은 명제적이며 추상적인 차원에서 끝나서는 안된다. 내세적이며 개인적인 구원으로 만족해서도 안된다. 우리의 신앙은 더욱 실제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실천적이며 현실적이어야 한다. 우리의 구원은 더욱 편만하게 사회와 세상을 품을 수 있어야한다. 기독교 신학과 신앙에서 핵심적인 '사랑'과 '정의'의 문제에 새롭게 관심가지고 정리해보려는 독자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 Nicholas Wolterstorff, Until Justice and Peace Embrace, 홍병룡 역,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 (서울: Ivp, 2007).
  2. 신국원,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샬롬을 위한 테오리아를 지향하는 기독교 철학자", 『하나님을 사랑한 철학자 9인』 (서울: Ivp, 2009), pp. 223-252.
  3. K. Barth, Church dogmatics. Vol. 4. Part 2: The Doctrine of Reconciliation, ed. T. F. Torrance, trans. G. W. Bromiley (Edinburgh: T&T Clark, 1958), p. 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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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예배학
존 제퍼슨 데이비스 지음, 김대혁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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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제퍼슨 데이비스 (John Jefferson Davis) 는 1975 년부터 고든 콘웰 신학교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 에서 조직 신학 및 기독교 윤리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복음주의 교회들의 현 상태를 진단하고, 이후에 성경적이고 신학적으로 복음주의 교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의 신앙을 판가름할 수 있는 잣대는 무엇인가? 기독교 신앙의 실재는 반복되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만나고 있고, 그 만남을 통해 우리의 존재와 삶이 변화하고 있는가하는 것일 것이다. 예배는 우리의 신앙에 있어 핵심이며,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여러 예배를 참여한 후 실제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예배에 하나님이 계시는가? 이 예배를 드리는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하나님을 실재하시는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생생한 인식이 있는가?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실재가 없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한 인식과 반성으로 이 책이 탄생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예배 그룹의 분류와 기준은 예배학자들마다 각기 다르다. 이 책이 저자는 미국 내 복음주의 하위문화를 여섯 그룹으로 간단하게 나눈다. '복음주의 좌파'는 짐 윌리스(Jim Wallis)와 토니 캠폴로(Tony Campolo)를 중심으로 하는 복음주의의 사회적 책임을 소명으로하는 그룹이다. '대중 종말론적 예언파'는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에 기원을 두는 세대주의 진영이다. '카리스마파와 오순절파'는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 베니 힌(Benny Hinn), 피터 와그너(Peter Wagner) 등이 중심이 되는 성령의 능력과 임재를 중요시 여기는 그룹이다. '윌로우크릭 버전'은 '구도자 중심 교회'라고 할 수 있는데, 구도자에 친근한 예배를 기획하고 그들의 철학에 관심을 보이는 그룹이다. '이머징 교회'는 브라이언 맥라렌(Brian McLaren), 랍 벨(Rob Bell) 등이 이끄는 그룹인데, 더욱 초월적이고 신비적인 경향을 보인다. '개혁주의 정통파'는 핫지(Hodge), 워필드(Warfield) 등의 구 프린스턴 파에 뿌리를 두면서, 정통 장로교와 미장로교 같은 교단과 웨스트민스터와 같은 신학교 교단까지 이어지는 광범위한 그룹이다. 데이비스는 각각의 전통과 그룹이 가진 장단점에 대해서 밝히면서, 어떻게 각각의 강점을 취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는 다음 세대의 복음주의와 그들의 예배는 "구원론에서는 개혁주의일 것이고, 신학의 이해에서는 삼위일체를 믿으며, 교회가 가지는 가장 높은 우선 순위로 예배를 이해하는 측면에서 송영적일 것이고, 회중의 삶에서 성령의 임재와 은사를 확인함에 있어서는 은사주의적일 것이며, 마지막으로 예배의 고대-현대식 형식의 측면에서 예전적일 것이다"라고 대안을 제시한다. 특히 더욱 중요한 것은 "깊고, 두텁고, 다른" 속성으로 구분되는 교회에 대해서 그는 강조한다. '깊은' 교회는 수적인 성장보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깊게 만나는 교회이며, '두터운' 교회는 더욱 두터운 상호관계와 헌신을 특색으로 하는 교회다. '다른' 교회란 교회의 존재론, 신학, 예배, 도덕적 행동에서 당당하게 그 문화와 구별되는 교회를 뜻한다.


이러한 논의를 중심으로 저자는 2장에서 복음주의 교회의 예배의 회복은 예배의 참여자인 하나님, 교회, 그리스도인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을 요구한다는 점에 대해서 말한다. 3장에서 그는 진정한 예배는 성령의 권능 가운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실재적이고 인격적으로 만나는 예배임을 강조한다. 4장에서 그는 성찬신학을 새롭게 조명한다. 주의 만찬에 대한 신약적 이해와 함께 반복적이고 빈번한 성찬 실행의 중요성을 말한다. 5장에서 그는 앞에서 논한 교회 예배의 갱신을 위해 교회 지도자들에게 예배 갱신을 실행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신학적 성찰 없이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필요와 욕구에 맞추어진 예배를 강조하는 그룹을 많이 보게 된다. 혹은 그 반대로 한 사람에 대한 세밀한 관심없이 그 동안 해왔던 익숙한 방식을 아무런 고민과 질문없이 되풀이하며 생명력 없는 교회의 예배도 종종 보게 된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우리 신앙 생활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예배'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고민에 적절한 질문을 던져줄 것이다. 또한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줌으로 생동감 넘치는 예배를 실제적으로 어떻게 적용하며 구체화할지에 대해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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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뿌리
한나 앤더슨 지음, 김지호 옮김 / 도서출판100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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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저자'다. 간혹 새롭거나 잘 알지 못하는 저자일 경우에는 출판사를 본다. 신뢰할 수 있는 출판사일 경우 믿을만한 저자의 책을 출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경우가 꼭 이와 같다. '한나 앤더슨'은 이전에 들어보지 못했고, 검색을 해도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얻지 못했다. 도서출판 100은 이 책을 포함해 네 권의 책을 출간한 신생 1인 출판사이지만, 각 권의 내용이나 출판의 방향성 등이 분명하고, 그 결과물도 훌륭했다. 그래서 어떤 의심도 없이 마땅히 '좋은 책'임을 확신하며 첫 장을 펼쳤다.

이 책의 첫 이미지는 따뜻하고 부드럽다. 표지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차분해진다. 이전의 책들에 비해 두께가 있으나, 그럼에도 무겁진 않다. 한 손으로 들고 보기에 알맞은 크기와 무게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한나 앤더슨'은 버지니아에 있는 아름다운 블루리지 산맥에 살고 있으며, 목사인 남편과 함께 시골에서 목회사역을 하고 있다. 또한 세 명의 자녀가 있고, 신앙과 문화, 믿음의 삶에 대해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있다. 

책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겸손한 뿌리'는 '겸손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는 책이다. 더하여 나무와 꽃의 이미지와 습성을 통해 겸손이 어떠한 특징이 있는지를 연결하여 말하는 독특한 책이다.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직접 꽃과 나무를 재배하면서 경험한 다양한 사건들을 통한 묵상과 통찰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 경험에서 우러나온 통찰은 압권이다. 성경을 해석하여 적용하는 부분에서도 깊고 세밀하다.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관점은 책을 놓을 수 없게 하는 이 책의 묘미다.

서문과 1장부터 이 책은 반짝인다. 작가의 경험으로부터 시작하여, 마태복음 11장 28절("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을 해석해간다. 평온은 결국 그분의 겸손함을 배움으로 시작한다는 놀라운 통찰과 함께 말이다. 이 책에서 줄곧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위치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지만, 그 분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지음 받았다는 것을 늘 잊지 않아야한다. 그 사실은 오히려 우리에게 큰 위안과 평안을 허락한다. 

저자의 신학적 성찰의 핵심은 이러하다. 우리의 불안과 동요 가운데 놓여있는 교만을 직시하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한 전제 가운데 겸손은 우리를 비로소 자유롭게 한다. 스트레스와 성과와 경쟁의 반복 가운데서 참된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 바로 겸손이다.

매 장마다 겸손은 다른 이미지와 특성을 가진다. 저자의 그림언어를 통해 매 장을 넘길 때마다 우리는 겸손에 대한 더욱 풍성한 이해와 놀라운 비전을 발견하게 된다. 겸손은 우리의 자세나 태도를 뛰어넘는다. 우리의 전존재와 인격의 변화를 통해서 참된 겸손에 이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통해 우리는 참된 겸손을 배워간다.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하며, 우리의 나약함을 제대로 인식할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과의 참된 관계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작점은 바로 겸손이다. 그렇기에 겸손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첫 단추임과 동시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열매 맺게 되는 마지막 결실이다. 

이 책은 신학적 통찰이 번뜩이면서도 따뜻하고 풍성하다. 많은 현대인들이 불안과 초조, 우울함과 좌절감과 싸우고 있는 듯하다. 그리스도인들조차도 광야에 있는 것만 같은 외로움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 모든 분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면서도 올바른 방향설정을 도와줄 수 있는 선물과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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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비유
케네스 E. 베일리 지음, 오광만 옮김 / 이레서원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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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베일리(Kenneth Bailey)의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비유』는 본래 Poet & Peasant의 번역서로 이전에 『시인과 농부』로 번역되었던 책이다. 저자 베일리 박사는 부친이 아프리카 지역에서 선교사로 계셔서, 이집트, 수단, 에티오피아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본인도 선교사가 되었다. 그는 이집트, 레바논,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사이프러스 등에서 교수 생활을 하면서 중동에서의 오랜 생활을 바탕으로 신약성경을 중동의 눈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는 기존에 서구의 관점에서 성경을 읽어왔던 것을 탈피하여, 신약성경이 쓰여졌고 읽혀졌던 그 때 당시의 상황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 문맥 가운데서 성경을 읽어야만 성경의 원래 메시지를 더욱 명확하게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중동에서의 오랜 경험은 그의 주장이 단순히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명제로 머물지 않게 해준다. 성경의 본문을 더욱 입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여러 책 중 Poet & Peasant은 베일리 박사를 세상에 알린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누가복음의 비유 중에서 네 개의 본문을 택해서 팔레스타인 농부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중동의 농촌 문화와 더불어 이러한 비유들의 문학적 양식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이 비유들이 가진 핵심적인 메시지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많은 논란과 다양한 견해가 있는 누가복음 16장 1-8절의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문화적이고 문학적인 자신의 해석학적 틀에서 명쾌하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는 부분은 이 책의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방법론의 문제를 다룬다. 2부는 1부에서 제시한 방법론을 가지고 누가복음 예루살렘 여행 기사 속의 비유 네 편과 시 두 편을 분석한다. 특히 눈여겨 볼 것은 1부에서 제시한 방법론이다. 베일리 박사가 비유 연구에 사용한 해석방법론은 "동양식 주해"다. 


이 방법론의 핵심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중동의 농경문화를 이해함에 있다. 이러한 이해가 예수님의 비유를 해석함에 필수요소가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동양어 역본들의 사용이다. 번역은 그 문화권의 정서를 반영한다. 그렇기에 베일리 박사는 아람어와 콥틱어 역본 등을 통해 팔레스타인 주변의 문화가 반영된 번역을 통해 세밀한 해석들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비유의 문학적 구조이다. 이는 이미 많은 학자들이 강조한 부분이지만, 베일리 박사는 더욱 명쾌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또한 유대인들의 삶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문학적 기법인 대구법과 수미상관법을 더 세밀하게 적용하고 발전시킨다.


이러한 해석학적 방법론을 통해 저자는 누가복음 16:1-13, 11:5-13과 누가복음 15장을 분석하고 있다. 그 동안 우리가 해석하고 적용했던 부분들도 있지만, 저자는 본문을 더욱 구체적으로 분석하며, 자신의 해석학적 방법을 하나하나 적용시킨다. 예수님의 비유에 대한 다양한 학자들의 해석과 저서들이 있지만, 베일리 박사의 이 책은 필수적으로 구비해야할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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