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두려워할 유일한 것은 느림이 아닌 ‘멈춤‘이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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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우주와 인류의 궁극적 의미 비아 문고 14
키스 워드 지음, 한문덕 옮김 / 비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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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나약함과 한계는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납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소소한 행복을 누리다가도 크나큰 시련이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사고나 질병은 뜻하지 않은 순간에 찾아옵니다. 최선을 다하여도 합당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유한한 우리는 무한한 신을 요청하게 됩니다. 간절한 기도는 신에 대한 기대를 표현하는 인간의 몸부림일 것입니다. 신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경험하는 최악의 순간에 절로 신을 외치는 순간이 있습니다. 제발 도와달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신을 생각할 때 처음으로 떠올리는 이미지는 여러 작가들이 표현한 형상이나 그림입니다. 성공회 사제이자 종교철학자인 키스 워드(Keith Ward)는 이 책 『신: 우주와 인류의 궁극적 의미』에서 신에 관해 생각하려 할 때 그동안 보고 들었던 신의 형상을 지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합니다.


저자는 신의 무한성을 언급하면서, 신을 보이지 않는 정신이나 인격체로 보는 대신 한계가 없는 하나의 실재로 생각해 보기를 요청합니다. 그리하여 유한하고 한계가 있는 인간과는 다르게 제한이 없고, 무한한 실재를 상정합니다. 바로 이 실재가 '신'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상 우리는 '신'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은 우주도 아니며, 우주에 속한 그 어떤 유한한 것과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신은 우주 바깥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한 무한한 신은 인간의 어떤 언어나 이미지로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정확한 묘사는 어렵지만 중요한 진리를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는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시(詩)나 회화, 음악 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을 묘사할 때 우리는 시의 언어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시는 사물을 보고 느끼는 태도와 방식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신에 관한 언어는 살아 있는 역동성이 있습니다. 예배와 기도, 찬양의 언어가 그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에 관한 언어는 어떤 관점, 세상을 태하는 태도, 세상을 향한 헌신과 반응을 담고 있습니다. 비록 바로 이해할 수 없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우리의 이해는 점점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습니다.


신을 있는 그대로 묘사할 수 없지만, 이 세상과 관련지어 신에 관해 무언가는 말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신이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을 통해 신의 본성을 유추해 보려고 합니다. 신의 존재를 탐구하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유한한 이 세계의 특성에서 일반적인 법칙을 파악해 보는 것입니다.


저자는 신을 존재의 궁극적 원인이자 합리적 설명이라고 주장합니다. 과학적 탐구로 주위를 둘러볼 때 경험하는 것은 모든 것이 일관된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신은 이성적이며, 사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존재입니다. 모든 것의 최초 원인으로서 만물은 신에게 의존합니다.


더불어 신은 우주와 인류가 추구해야 할 목적과 가치를 제시하는 존재입니다. 저자는 인류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 가치로 행복, 창조성, 지식, 사랑을 언급합니다. 우주는 의식 있는 존재가 이러한 가치들을 생성하고 이끄는 무대입니다. 신의 목적은 이런 가치들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제한된 언어로 무한한 신을 담아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 세상이 신을 조금이나마 담아내고 표현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일에 개입하시는 신에 대해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방식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는 신을 마음 열어 경험해 보는 것은 우리의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건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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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기도 - 그리스도교 기도의 처음과 끝 비아 문고 12
제프리 그린먼 지음, 한문덕 옮김 / 비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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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도하는 방법과 그 내용을 잘 알지 못합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을 위한 기도가 우리의 욕망으로 대체될 때가 많습니다. 너무도 자주 우리의 탐욕이 투영됩니다. 자신의 안전과 만족, 유익을 위한 행위가 기도라는 이름으로 자행됩니다.


물론 우리의 필요가 기도 가운데 포함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의 최우선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목적에 우리를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간구하며, 성도인 우리가 맡은 바 사명을 충실하게 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는 개인과 공동체가 올바로 기도할 때 얼마나 큰 힘과 풍성함이 있는지를 경험하게 해줍니다. 교회의 오랜 전통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도로 '주님의 기도'를 위치시켰습니다.


리젠트 칼리지의 총장인 제프리 그린먼(Jeffrey Greenman)은 이 책 『주의 기도: 그리스도교 기도의 처음과 끝』에서 복음서와 기독교 역사,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주의 기도'에 대해 간명하게 정리합니다. 주의 기도를 통해 기도의 방법과 내용을 충실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주의 기도'의 위치를 살펴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마태와 누가의 문맥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마태는 이 기도를 산상수훈의 정중앙에 위치시킴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에서 핵심임을 강조합니다. 누가는 하나님 나라 선교의 기초로 주님의 기도를 제시합니다.


이렇듯 주님의 기도는 성경에서 매우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주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이 기도를 가르쳐 주셨을까요? 저자는 이 기도가 제자들을 위한 가르침이었음에 주목합니다. 즉,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제자들이 자신들의 욕망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초점 맞추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저자는 주의 기도를 하나씩 자세히 살펴봄으로 그 내용에 담긴 보다 깊은 뜻을 탐구합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오기를 간절하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우선되지만, 그 가운데 신실하게 그의 뜻을 위해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도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을 먼저 구한 하나님 나라 백성은 그제야 우리의 가장 절실한 필요를 구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기도는 아닙니다. 우리 삶을 위한 최소한의 간구임과 동시에 연약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살아갈 수 있게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식의 조급하면서도 우리 필요 중심의 기도가 만연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교회의 전통과 성경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주님의 기도로 돌아가야 합니다. 화려하고 그럴듯한 무엇이 아니라, 묵묵히 하나님 나라를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주의 기도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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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의 마지막, 특별한 열흘
배성혜 지음 / 좋은땅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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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우리를 상상하게 합니다. 팍팍하고 고단한 현실의 짐을 잠시 내려놓습니다. 잠시이지만 이야기가 들려지는 순간에 염려와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풍성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집니다. 듬성듬성 드러났던 빈 공간이 이야기로 가득 채워집니다.


더하여 좋은 이야기는 우리를 그 이야기 안으로 동참하게 만듭니다. 마치 그 시간, 그 장소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웃고 웁니다. 조용히 그들 곁에 있습니다. 그들과 눈 마주치고 함께 대화를 나눕니다. 함께 햇살을 맞고, 포옹하며, 감격을 나눕니다.


성경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야기 장르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닙니다. 공동체의 상황에 맞게 그 순간 가장 필요한 내용을 여러 장르를 통해 전달합니다. 전기나 편지, 역사적인 서술 등을 통해 우리는 복음의 좋은 소식을 재구성하기도 합니다.


재구성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시대와 문화, 언어의 차이는 당대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달되지 못하게 하는 장벽입니다. 하지만 배성혜 작가는 이 책 『사도바울의 마지막, 특별한 열흘』에서 성경(text)과 배경(context)을 섬세하게 분석하여, 현재의 독자까지의 공백을 충실하게 메꾸어줍니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인해 성경은 새로운 옷을 입고 우리에게 들려집니다. 사도들의 행적은 보다 입체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딱딱했던 문자 속 성경 인물들은 생기를 얻어 실존하는 인물과 같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곳곳의 유쾌한 장면들의 배치로 인해, 죽음을 앞둔 사도들의 이야기는 오히려 더욱 생동감이 넘칩니다.


더불어 우리의 언어와 문화가 곳곳에 등장하니 그 현장감이 더욱 살아납니다. 가령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15)"는 속담이나, 다섯 사도가 흥분하여 "강강술래(73)"를 한다는 대목과 '부름받아 나선 이 몸, 나의 죄를 정케하사'를 부르는 사도들(253, 390)을 보며 동일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은 한국 저자가 가진 힘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각자의 경험을 풀어냅니다. 누가가 들려주는 데오빌로 이야기는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으로 빚어낸 이야기는 성경의 이야기와 공명을 이루며, 풍성하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우리에게도 어느새 데오빌로는 사도들의 든든한 지지자로 새겨집니다.


베드로와 마가를 통해 듣는 성령 세례 이야기로 우리는 그때 당시 마가의 다락방으로 초대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이 강하게 쏟아부어지는 경험입니다. 그때 당시의 분주함, 설렘과 기대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성령 세례가 임하던 그때의 흥분과 혼란, 감사와 찬양의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마주하는 누가의 기록은 이렇듯 여러 사도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때로는 성경에서 미처 파악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과 복잡한 배경 등이 묘사됩니다. 바울이 눈물과 자책 가운데 들려주는 스데반 집사의 이야기와 헤롯과 야고보에 대한 이야기 등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관찰자의 시선에서 사도행전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사도행전을 대하게 됩니다. 사도들은 각자의 시선에서 자신이 경험하거나 들었던 사건을 말합니다. 이를 통해 보다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이 연출됩니다. 우리는 보다 선명하게 그들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사도들의 이야기는 그리움에 잠기게 하기도 하며, 서로를 향한 사랑을 불러일으키게도 합니다. 슬픔과 기쁨, 두려움과 평안이 공존하는 그 공간에서의 열흘. 이후 순교의 현장들. 작가의 이야기는 성경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며, 그 이야기가 우리와 동떨어진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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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사르의 구원 이야기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김관희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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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구원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구원의 확신에 대한 물음과 설명이 많이 뒤따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너'의 구원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개인주의적인 신앙은 철저하게 나만의 구원에 몰두하게 만듭니다. '너'와 '우리'에 대한 질문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이웃의 구원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의 구원에 대해 자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랑이신 하나님의 자비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가톨릭 신학자이자 '신학적 미학'이라는 신학 체계를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보다 더 풍요롭고 아름답게 표현하기를 원했던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Hans Urs von Balthasar). 그는 이 책 『발타사르의 구원 이야기』를 통해, 모든 사람의 구원 가능성에 대해 자신의 논지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저자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 즉 구원과 멸망이라는 가능성은 분명하게 공존한다고 강조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전략입니다. 인간은 사랑과 희망, 선을 위해 살아야 하며, 끊임없이 그러한 삶을 위해 분투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 최종적으로 맡겨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을 토대로 하여 신학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일하심에 근거해 우리는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이끄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희망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인간은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바랄 수 있는지에 대한 중차대한 질문입니다. 발타사르는 분명히 성경에서 모든 사람의 구원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도 하고, 지옥을 암시하는 표현들도 많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발타사르는 두 가지 상반된 언명이 존재함을 전제합니다. 심판 아래 놓인 인간이 이 두 가지의 언명을 종합하거나 취합할 수는 없습니다. 저자는 보편적 구원과 하나님의 자비와 정의라는 주제를 성경과 역사적인 주장들을 통해 새롭게 조명합니다.


성경에서 표현되고 있는 심판과 지옥에 대한 언급을 통해 우리는 최종적 권한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있음을 다시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며, 거룩하고 건전한 두려움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반면 또 다른 측면에서 여러 말씀을 통해 저자는 보편적인 구원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간청과 기도를 드리라는 권고가 있는 이유 또한 이것이 유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는 교회의 정당한 기대이며 거룩한 믿음입니다.


교부들과 신학자들의 입장도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의 두 관점을 모두 포괄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사랑을 더 우위에 두거나, 자비에 대해 더 강조할 수 있더라도 결국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정의를 모두 베푸시는 분이심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는 결국 희망을 통해 통합됩니다. 초자연적인 희망은 모든 경쟁과 대척을 덮어버립니다. 우리는 희망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되며, 그분의 정의를 보게 됩니다. 그 정의가 곧 사랑과 다르지 않음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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