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빙글리와 불링거 기독교고전총서 19
두란노아카데미 편집부 지음, 김유준.서원모 옮김 / 두란노아카데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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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독일어 사용 지역에서 개혁자들의 대표인 츠빙글리는 빌트하우스(Wildhaus)에서 관리의 아들이라는 좋은 환경 가운데 1484년 1월 1일에 태어났다. 베센(Wesen)의 지구장(dean)인 숙부의 후원으로 그는 교육의 여정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는 바젤에서 인문주의자인 베텐바하(Thomas Wyttenmach : 1472-1526)의 가르침을 즐겨 받았는데, 츠빙글리는 이 교수에게서 성경의 유일한 권위, 오직 속죄의 대가로서의 그리스도의 죽으심, 면죄부의 무가치성 등에 대해서 배웠다. 이 같은 교육의 영향으로 츠빙글리는 자기 자신이 기독교신앙의 최초와 초기의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인문주의자가 되었고, 인문주의자들과 더불어 당시 가톨릭교회의 미신들을 비판하였다. 그는 루터처럼 죄에 대한 고민, 복음을 통한 은혜와 신앙에 의한 사죄를 깊이 경험하지 못했다. 그의 종교적 태도는 작센의 개혁자인 루터보다 지적이고 도덕적이고 좀 더 과격하였다.


취리히에서 메그레는 츠빙글리에게 프랑스아가 신학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복음주의 운동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는 츠빙글리에게 어떤 의구심과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프랑스 궁정에 그의 신앙에 대한 분명한 진술서를 제출하라고 조언했다. 츠빙글리는 메그레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1531년 초여름 「신앙의 주해」를 작성하여 대성당 학교의 그리스어 교수이며 츠빙글리와 절친한 친구인 루돌프 콜린 편으로 프랑스 궁정에 보냈다. 


「신앙의 주해」는 사도신경 위에 세워졌는데,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사도신경을 자신의 본질적인 정통 교리를 증명하기 위한 기초로 받아들였다. 예를 들어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그의 주제는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사도신경의 모든 항목을 다루지는 않았고 그의 목적과 적합한 항목만 특별히 다루었다. 따라서 그는 성령에 대해서 전혀 말하지 않았다. 반면 그는 가장 논쟁적인 주제인 성찬에 상당한 관심을 쏟고 지면을 할애했다.


흥미로운 특징은 명백한 인문주의적인 색채이다. 우리는 이것을 신론에 대한 처음 단락에서 곧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츠빙글리는 성경적이고 기독교적인 자료만큼 고대 철학에서 많은 것을 끌어낸다. 츠빙글리가 고전 철학에서 발견한 개념과 논증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고전철학을 적용하는 그 하나님은 성경의 살아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며, 그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그분의 계시와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모든 신앙을 끌어낸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창조자 하나님과 피조물로 구분하여 이와 같은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는 신론의 관점에서 인성과 신성의 구분이라는 내용으로 적용된다.


츠빙글리의 하나님 관념은 절대자 관념과 연결된다. 그가 유일신 사상을 주장하는 논증은 성경에 의존해 있다기보다는, 하나 이상의 절대자를 인정한다는 것은 논리적인 불가능이라고 보는 데 더 의존해 있다. 츠빙글리는 “성경에서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알지만, 이들은 피조물이나 다른 신이 아니라 셋이 모두 하나요, 한 본질이요, 한 우시아, 즉 실존이며, 한 힘과 권능, 한 지식과 섭리, 한 선과 호의이며, 세 이름과 인격이지만 모두 그리고 각자는 같은 한 하나님이게 됩니다”라고 말하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논증했다. 


츠빙글리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을 강조하는 키릴로스파의 관점보다는 양성의 구분을 강조하는 네스토리오스파의 관점보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분의 신성에서 어떤 것도 빠지지 않아 그분은 참으로, 고유하게, 본성적으로 하나님이시며, 또한 그분의 인성은 신성으로 들어가지 않아, 그분은 죄를 지으려는 성향만 빼고는 참으로, 고유하게, 또한 본성적으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하나님이신 면에서는 모든 면에서 아버지와 성령과 더불어 하나님이시므로, 인간적인 연약함의 요구 때문에 신성의 속성 중 어느 것도 잃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사람이신 면에서 그분은 모든 면에서 사람이시므로, 인간의 참되고 고유한 본성에 속하는 모든 속성들을 가지고 있고, 죄를 지으려는 성질만 제외하고는 신성과의 결합 때문에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츠빙글리는 주의 만찬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만찬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너그럽게 주신 하나님의 모든 것을 가리키며,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시고 돌보고 복되게 하신 구속하신 그 사랑으로 형제들을 즐거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츠빙글리와 루터는 기독교 교리들의 대부분에 있어서 서로 용납했지만 성만찬에 대해서는 그럴 수 없어서 개신교 진영의 분열을 초래했다. 루터에게 있어서 “이것은 나의 몸이다.”라는 문자적 진리였다. 루터는 성만찬에서 전(全)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사죄의 약속을 경험적으로 보증받는다. 네덜란드의 법률가인 호엔(Cornelius Hoen)은 일찍이 1521년에 “This is my body.”가 아니라 “This signifies(가리킨다 혹은 의미한다) my body.”라 하였다. 이 주장이 1523년에 츠빙글리에게 영향을 주어 제정의 말씀에 대한 그의 상징적 경향의 이해를 확고히 해주었다. 그 이후 츠빙글리는 성만찬에 그리스도의 육체적 임재-이런 의미에서 실재적 임재-를 거부하였고, 그것의 기념적 성격과 믿는 자들의 회중을 한데 묶어 주님께 대한 충성을 약속하는 의미를 강조하였다.


츠빙글리는 행위의 근원은 믿음이 되어야 하며, 믿음이 있다면 그 일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일이 된다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배역으로 가득 차 있으며,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일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게 모독이 된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부터만 온다. 따라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모든 일의 표준으로 하나님의 뜻을 바라본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거스르는 일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법과 무관해서 행해지는 일을 거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 없이 행해지는 일, 즉 말씀과 하나님의 뜻 없이 행해지는 모든 일은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죄다. 죄라면 그것은 하나님이 몹시 싫어하는 일이 된다. 하나님의 뜻 없이 행해진 행위는 믿음 없이 행해지는 것이요, 믿음 없이 행해진다면 그것은 바울의 판단에 따르면 되이며, 그것이 죄가 되므로 하나님은 그것을 싫어하신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


루터가 성경이 금하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 허용하려고 한 데 반해, 츠빙글리는 성경이 명하지 않은 것은 모두 금하려 했다. 이것은 로마주의의 모든 잔재를 훨씬 더 철저히 벗겨내는 것을 뜻했다. 루터는 바울의 복음과 직접 간접으로 상충되는 것만 배척하려고 한 반면에, 츠빙글리는 에라스무스보다 한술 더 떠서 초대 교회의 형태와 구조까지도 회복시키고 싶어했다.

 


츠빙글리의 신학과 개혁은 현재의 개신교회와 상당히 흡사한듯하다. 그의 신학은 매우 성경적이면서도 당대의 철학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당시의 정황에서 어떻게 성경적으로 교리들을 설명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듯 보인다. 우리의 신학과 목회도 결국 지금의 정황(context)에서 어떻게 진리(text)를 선포하는가하는 고민이다. 츠빙글리의 삶과 사역, 신학을 돌아보며 끊임없이 사고하고 학문하면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교리와 신학을 정리하고 설명하려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 또한 더욱 치열하게 학문하며 경건하게 하나님을 알아감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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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민족의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고함 교회의 바빌론 포로에 대한 마르틴 루터의 서주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논설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39
마르틴 루터 지음, 황정욱 옮김 / 길(도서출판)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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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루터의 95개 논제가 세상에 공표된 후 그와 로마교황청 사이의 간격은 좀처럼 메워지질 않았다. 1518년 10월 아우그스부르그(Augsburg)에서 열린 추기경 카예탄(Jakob Cajetan de Vio)의 심문은 루터를 회유 내지는 굴복시키는데 실패했다. 1519년 잉골스타트의 요한 엑크(Johannes Eck)와 라이프찌히(Leipzig)논란을 벌이면서 루터는 교활한 엑크의 잔꾀에 말려들어서 성경의 권위는 교황이나 회의의 권위보다 우위에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교황과 회의믜 미움을 사게 되었다.


루터는 이제 실로 싸움터에 깊숙이 들어서게 되었고, 그의 사상도 급속도로 명료하게 되어 갔다. 울리히(Ulrich von Hutten) 같은 인문주의 지지자들도 루터가 교황청과의 국가적인 분규를 영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고 그를 지원하고 있었다. 루터는 자기의 사명을 적그리스도로 간주되는 교황 한 개인보다는 오히려 교황청으로부터 조국 독일을 구출하는 것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사태가 급박하게 진전되어가고 있을 때 작센주의 젊은 귀족인 밀티츠(Karl von Miltitz)는 로마 교황청과 루터진영 사이의 중재를 자청하고 나섰다. 로마 교황청과의 전적 단절을 원치 않았던 루터는 밀티츠의 요구대로 자시의 종교개혁운동의 신학적 근거를 밝히는 신앙에 관한 소책자 한권을 저술한 후 이를 유화적인 편지형식으로 된 헌사와 함께 교황에게 보낼 것을 약속했다.


루터는 1520년에 3개의 중요한 논문을 썼다. 「그리스도인의 자유」(The Freedom of a Christian),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보내는 글」(Address to the German Nobility), 「교회의 바벨론 포로」(The Babylonian Captivity of the Church)이다. 이 중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1520년 11월 20일경에 밀티츠와의 약속에 의해 출판된 책이다. 당시 독일 안에 교황의 교서가 한참 공포되고 있는 동안, 이를 구상하여 내놓을 수 있었음은 참으로 그의 험난한 생애 중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에서 루터는 두 가지 핵심적인 명제를 가지고 글을 전개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은 자유로운 만물의 지배자이며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다.” “그리스도인은 충실한 만물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되어 있다.” 이 두 가지 상호모순되는 자유와 예속이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영적이고 육적인 두 본성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영혼에 따르면 그는 영적이고 새롭고 내적인 인간이라 불리우며 혈과 육에 따르면 그는 육적이고, 낡고, 외적인 인간이라 불리운다.(2,4단락)


“기독교인은 아무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가장 자유한 만물의 주이며, 동시에 기독교인은 모든 사람에게 종속되는 만물의 가장 책임있는 종이다.” 기독교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 아래 얽매여 있지 않고, 그리스도와 새로운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자유하다. 그리고 기독교인은 그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그리고 그의 이웃에 도움이 되도록 사랑으로 묶을 수 있기 때문에 종이다. 이러한 문맥에서 루터의 이신칭의 사상이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또한 만인제사장론도 잘 드러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장자권 및 그것의 영예와 품위를 소유하고 계셨던 것처럼 그분은 (이제) 그것을 당신의 모든 신도들에게 분여해 주시는고로 그들은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왕들과 제사장들이 될 수 밖에 없다(20).” “그리스도께서는 제사장이 육적으로 백성을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구하는 것처럼 우리들이 영적으로 서로를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수 있는 (자격을) 우리에게 얻어주셨다. 그리스도인은 그의 왕권을 통해서 만물을 지배하며 그의 제사장직을 통해서는 하나님께 영향력을 행사한다.(21)


이와 같은 맥락에서 루터는 카톨릭 교회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성직자여도 수도사여도 믿음이 없으면 아무런 덕이 없는 것이라고 본다. 믿음이 없으면 외적인 일은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세속적인 일을 하더라도 믿음이 있으면 성직자들보다 낫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만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다. 루터는 이웃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충만할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본다. 


결국 복음이란 한 편으로는 인간이 전혀 의가 없고 무가치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말씀(율법의 말씀)과 나는 구원 받을 수 없는 존재인데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받았음을 알게 하는 말씀(복음의 말씀)이다(11,12).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이고 이를 통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의롭게 되는 것이다. 이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가 없다. 카톨릭은 외적인 경건과 덕을 강조하고, 직무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반해 루터는 믿음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중요치않다라고 이야기한다(5,6).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믿음의 관점에서 보고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유롭다. “너의 멸망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네 앞에 제시하시고 그분의 살아있는 위로의 말씀을 통해 너에게 말씀하게 하신다. 너는 굳은 믿음으로 그를 따르며 용기있게 그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그 신앙 때문에 너의 모든 죄악들은 사함을 받게 될 것이고 모든 너의 파멸은 극복되어질 것이며 너는 의롭고 참되며 평화롭고 경건하게 되고 모든 계명들을 성취하게 될 것이며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게 될 것이다”(8)


오늘날에도 믿음은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루터의 신학은 우리에게 유효하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상처에 얽매여있거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염려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조차 참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누리는 여러 방편들이 그리스도인의 올무가 되어 의무처럼 느끼거나 율법이 될 때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다시금 복음 앞에 서야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사함과 충만은 우리를 능히 변화시킬 수 있으며, 우리를 의롭고 참되며 평화롭고 경건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우리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다면,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하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품고 사랑하며 선을 행할 것이다. 우리의 외적 모습은 내적 자유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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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야곱 DNA - 축복을 갈망하는 현대인의 이중적 욕망
김기현 지음 / 죠이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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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여정 가운데는 기쁨과 확신, 기대와 설렘도 있지만 고통과 아픔, 좌절도 존재한다. 또한 삶의 곳곳에서 하나님의 뜻과 나의 욕구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순간이 존재한다. 나는 과연 신실하게 이 여정을 살아내고 있는가하는 의문이 우리에게 늘 따라다닌다. 


이럴때 우리는 성경에서 우리와 동일한 모습으로 살아갔던 인물들을 대하게된다. 믿음의 삶을 살았지만, 그들의 삶 곳곳에서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들을 보며, 위로와 도전이 되기도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본받고 싶은 성경인물을 택하라고 한다면 누구를 택할까? 아마 야곱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닮은 성경인물을 택하라고 한다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야곱을 택할것이다. 

야곱은 인간의 욕망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 서있다. 그는 거룩하지만 세속적이며, 영적이지만 육적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이 이중성에 대해서 인식해야하며, 특별히 자신이 철저한 죄인이며, 연약한 존재임을, 도움이 필요한 존재임을 깨달아야한다. 

다윗도, 예수님도 심한 고통 속에서 구더기만도 못하다고 탄식했다. 자신이 그러했기에 우리 예수님은 버러지와 구더기 같은 사람들을 귀히 여기신다. 어부, 세리, 여인, 죄인…. 하나같이 좀 있다 하는 사람들 눈에는 지렁이 같을 게다. 그건 단지 사람들 눈에 비친 모습일 뿐 진실이 아니다. 스스로 그런 존재가 되어보신 그분에 따르면 그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내면에는 하나님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몸소 버러지가 되어보신 분, 그래서 버러지 같은 야곱을, 버러지보다 못한 나를 그분이 사랑하신다. 이것이 은혜다. 아, 하나님의 은혜! (P.33)
 
김기현 목사님의 '내 안의 야곱DNA'는 야곱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의 이중적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축복과 성공을 갈망하는 우리의 모습을 정직하게 표현한다. 한 인물에 대한 비판과 정죄가 아니라, 우리 또한 그러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겸손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야곱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기에 야곱의 마지막이 더 기대되고, 그의 결말이 더 궁금해졌다. 또한 그 여정의 끊임없는치열한 싸움, 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살아가는 과정이 너무 궁금했다. 나는 이 지점에서 위로와 소망을 얻게 된다. 
 
나그네 여정은 한걸음에 다다를 수 없다. 즉, 단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다시 벧엘로 올라가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은 야곱이 이스라엘 되는 것이 한방에 끝나지 않는다는 진리를 상기시킨다. 얍복강 나루터의 하룻밤 씨름이 야곱을 단번에 바꾸지는 못했다. 하나님은 긴 시간동안 반복적으로 야곱의 인격을 조련하고 담금질하신다. 야곱의 생애를 보면, 그는 참 속물적 인간이면서도 거룩한 인간이다. 질길 정도로 잘 변하지 않지만, 그래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했다. 그가 변하지 않는 모습에서 위로를, 그가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에서 소망을 얻는다. 야곱같은 우리, 야곱보다 못한 우리, 야곱보다 더한 우리에게도 위로와 소망이 있다. (P.232) 

야곱은 결국 축복받는자에서 축복하는자가 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던 그 사명을 이루게 된다. 결국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 우리의 사명 또한 그것이 아니겠는가? 나를 통해 다른 사람이 축복받고, 우리 공동체를 통해 많은 사람이 유익을 누리게 되는것. 땅에 떨어지고 더럽혀진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는 것. 감사와 찬양으로 그분께 무릎꿇게 되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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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되신 하나님 시리우스 총서 7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지음, 이은재 옮김 / 한들출판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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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셀무스(Anselm)는 1033년 이태리에서 출생하여 노르만디에 있는 베크(Bec)수도원에 가담하여 초기 수도원 부흥에 기여했다. 그는 베렝가(Berengar)와 란프랑(Lanfranc)에게서 사상적으로 영향을 받았고, 후자를 승계하여 1093년에 켄터베리의 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힐데브란트(그레고리 7세)와 동시대 인물로서 힐데브란트가 교황청을 빛낸 것처럼 기독교 신학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는 베크수도원에서 여러 작품들을 썼고, 영국의 왕들에 의해서 추방당한 상황에서 대륙에서 더 많은 작품들을 썼다. 


그의 많은 저작들 중 <인간이 되신 하나님(Cur Deus Homo)>은 대화 형식으로 기록된 글이다. 전체 작품은 안셀무스와 그의 제자요, 후에 베크의 수도원장이 된 보소(Boso)와의 대화로 이어지고 있다. 안셀무스는 “우리가 인간이 되신 하나님에 대해 믿는 바를 하나님 자신이 원하셨다고 고백하게 될 때에 무엇이 당신의 이성에 거슬린다는 말인가?”라고 물은 후에, “간단히 말하자면 가장 높은 곳에 계신 분이 낮은 곳으로 낮추시었고, 전능하신 분이 무엇인가 많은 수고를 하시었다”라고 대답하였다.


당시에 대화체로 쓰여진 철학책과 서적은 있었지만, 신학책은 거의 전무했다. 안셀무스는 신학책에 ‘대화’라는 방법을 접목함으로써 성경과 전통이라는 권위에 호소하기 보다 이성에 호소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신앙을 가진 신자들을 상대로한다면 권위에 호소할 수 있지만, 비신자들의 입장과 관점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고, 소통하고자한다면 신앙을 전제하지 않고 논리적인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설명해야한다. 그러하기에 대화체는 비신자를 아우를 수 있는 유익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는 옛 가르침에 문제를 제기하되 모든 전통을 뛰어넘어서 자신의 개념과 언어로 표현하려 하였다.


그는 어거스틴의 신학사상에 크게 빚지고 있었으나 나름대로 창의적 신학을 전개하였다. 그의 철학과 신학은 극단적인 실재론의 입장을 취했다. 안셀무스는 신앙내용을 이성으로 검증하려 했다. 그는 성경과 교회의 신학전통이 믿음에 의해서 수용되고, 나아가서 믿는 자의 이성에 의해서 설명되고 증명된다고 보았다. 예컨대 하나님의 본성, 삼위일체 하나님, 그리스도의 성육신, 죽음, 부활 등이 신앙의 이성에 의하여 설명되고 증명된다는 것이다. 안셀무스는 어거스틴의 ‘나는 알기 위해서 믿는다’라고 하는 명제에 이어 ‘지성을 추구하는 신앙’이라는 명제를 제시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신학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시도를 가리켜 스콜라주의(Scholasticism)라고 한다. 엄격히 말해서 그 용어는 학교들에서 가르쳐지는 내용이라는 뜻이지만, 좀 더 좁은 의미에서는 단정 곧 명제(thesis, 정<正>)로 시작하여 거기에 비판적 의심 곧 반명제(antithesis, 반<反>)를 대입한 뒤 논리적 추론에 의해 결론 곧 종합(synthesis, 합<合>)을 얻는 형태의 기독교 신학을 뜻한다. 안셀무스는 변증법적 설명으로 교회의 교리를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안셀무스는 <인간이 되신 하나님(Cur Deus Homo)>에서 성육신과 구속을 논한다. 안셀무스는 하나님께서 악마에게 속전을 지불하고 인간을 속량했다고 하는 고대교회의 교리를 거부하고 만족설을 제시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우주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업신여겼으니, 하나님께서 이 죄를 그냥 두시면 창조세계 전체의 질서를 깨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만족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이다. 이 만족은 범죄를 충분히 배상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죄는 인간에 의해서 저질러졌기 때문에 만족도 인간에 의하여 주어져야 한다는 것인데, 인간은 죄인인 고로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바를 드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만족’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인간이어야 하지만 인간이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이신 분이 이것을 할 수 있다는 요청을 발견한다.


안셀무스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인간이 하나님께 지은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는 이 회복이 이루어질 수 없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죄에 대한 대가는 너무나 엄청나서, 인간 홀로 그 빚을 졌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그 빚을 지불해 주실 수 있기 때문에, 동일하신 한 인ㅍ격체, 즉 동시에 사람이고 하나님이셔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인격의 연합 가운데 인성을 취하셔야만 했던 것은 필연적입니다.”


안셀무스의 이러한 생각은 당시 중세 사회의 구조와 사상을 반영한다. 안셀무스의 사상에서 핵심적인 것은 하나님의 명예에 대한 손상이다. 이러한 ‘명예’는 기사도에서 보여진다. 경제 발전과 도시 문화의 부활이 가져다 준 부산물은 세련된 삶이었다. 이런 경향의 한 측면이 기사도였다. 기사도의 핵심은 개인의 명예였다. 명예를 얻으려는 사람은 반드시 명예를 얻기에 부합해야 했다. 그 시합에는 규칙이 있었고, 규칙을 어겨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기보다 차라리 패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또 한가지의 핵심 사상은 보속개념이다. 이는 당시의 봉건적 죄관에 기초를 두었다. 죄의 경중을 그 죄를 범한 상대의 지위에 따라 평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무한히 크시기 때문에 그분에게 저지른 죄는 무한히 크다. 그런 죄는 무한한 보속 곧 속죄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런 죄를 저지른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그 죄값을 치르기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것도 인간이어야한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은 고안해 낸 바로 그 안셀무스가 여기서는 무한한 죄인인 인간의 구속이라는 고통스러운 문제를 가지고 씨름했다.


이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안셀무스의 신학방법은 충분히 값지다. 그는 1권의 2장에서 보여지듯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기보다 함께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2권의 22장에서 보소는 이렇게 답한다. “성경에서 인용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치에 닿는 추론만으로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교도들까지도 납득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분 자신이 새로운 언약의 토대가 되셨으며 구약의 진리를 입증하셨습니다” 안셀무스의 신학방법은 신앙이 없는 비그리스도인들에게 논리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속성과 성육신 등 기독교 교리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많은 유익이 있다. 


그러나 안셀무스의 대속론은 하나님의 공의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십자가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충분히 조명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안셀무스는 값을 치룬다는 보속의 개념을 강조하다보니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의 삶과 사역을 통합시키지 못하고 있다. 


 

안셀무스의 <인간이 되신 하나님>을 통해 당시의 시대정황에서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려고 하는 겸손함과 열린태도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진리를 소유하고 있기에, 다른 사람은 가르침을 받아야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함께 진리를 알아가고 탐구하고자 노력했다. 또한 그는 자신보다 현명한 누군가가 더 명확한 대답을 해줄 수 있기를 기대했다. 더불어 기독교의 핵심교리에 대해 추상적이고 명제적인 표현이 아니라, 더욱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대화하고싶다는 소망과 그것을 위한 치열함을 기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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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와 함께하는 기독교 여행
톰 라이트 지음, 김재영 옮김 / IVP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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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와 함께 하는 기독교 여행은 비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쓰인 책이다. 물론 기존의 그리스도인들도 이 책을 통해서 새로운 관점을 접하고 자신의 신앙을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는 책이다. 특히 1부의 내용은 기독교의 핵심 진리로 들어가기 전에 모든 인간이 가진 욕구들과 갈망들에 대해서 포괄적이고 논리적으로 기술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가 생각났다. 그 이유는 1부의 도입부분과 2부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절대적인 진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특히 ‘순전한 기독교’가 양심과 도덕률에 대해서 절대신에 대한 유무를 판가름했다.


 ‘톰 라이트와 함께하는 기독교 여행’은 진리, 영성, 관계, 아름다움으로 절대신에 대한 유무를 판가름한다. 즉 우리가 갈망하는 진리와 영성, 관계와 아름다움이 결국 하나님께로 이끌어 주는 하나의 매개체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톰 라이트는 2부와 3부에서 지속적으로 이 이미지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2부에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성령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3부는 좀 더 깊이 있게 기독교 신앙으로 들어가는 예배와 성경, 기도 등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이 책은 신앙의 근거가 약한 그리스도인에게 아주 적절한 책이다. 다소 철학적이고 어렵게 적혀있는 책이긴 하지만 조금만 집중하고 본다면 톰 라이트의 논리에 빠져드는 책이다. 참으로 귀하고 대단한 책이다.

 

현 시대에 이렇게 논리적이고 철학적으로 접근했을 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하지만 결국 누군가에는 이러한 작업과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나 또한 논리적으로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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