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갈나무 투쟁기 - 새로운 숲의 주인공을 통해 본 식물이야기
차윤정.전승훈 지음 / 지성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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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늘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
우리에게 고기를 주는 동물, 우리에게 식량을 주는 열매에 대해 애정을 표현해왔다 .
이 책은 신생아 도토리가 어미 신갈나무로부터 떨어져 나와 곤두박질 치며 멀리 멀리 아주
먼 곳으로 굴러가면서 삶을 시작하는 얘기로부터 100세에 (상징적인 나이) 삶을 마감하기까
지를 신갈나무의 시선으로 그린 것이다 .

숲에 간다 .
숲에 가고 싶다 .
숲에서 그 아름다운 나무들이 가진 끈질긴 생명력과 눈물겨운 투쟁기를 읽다보면 나 역시
어느 날 나무처럼 그렇게 분해되어 세상의 먼지가 되리라는 걸 예감한다. 그리하여 오늘 내
가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그 모든 사랑과 욕망이 허수였다는 걸 깨닫게 된다 .

나무란 처음 발을 내린 곳에서 생을 이어가는 운명이다 .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겸허한 자
세가 우주를 이어간다. 그러니 제발 나무를 그대로 내버려 두어달라.그것이 사랑이다 .

<...몸의 어디에도 치명적인 조직을 만들지 않는 것 , 그리고 어디서나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복병을 배치하는 것 , 이거야말로 나무가 오랜 세월 지구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기
본 힘이다- 92 쪽 >
<...신갈나무는 더이상 잎에 투자하지 않는다.물론 공로는 인정하지만 우선 정리해야 할 것이 잎이다 . 나무는 예우 차원에서 벌어지는 구차한 미련의 결과들이 얼마나 비효율적이며 또한 복잡한 부패의 고리를 만들어내는지 잘 알고 있다 .
신갈나무는 단호히 더이상의 미련은 갖지 않는다.그래서 엽록소도 만들지 않는다.가련한 노병은 초록을 잃어버리고 그래서 엽록소도 만들지 않는다 -105 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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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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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는 반동을 부른다 . 진보와 반동은 손을 잡고 온다 . 역사의 흐름은 때로 분류奔流 가 되지만 , 대개는 맥빠지게 완만하다. 그리하여 , 갔다가 되돌아섰다가 하는 그 과정의 하나하나의 장면에서 , 희생은 차곡차곡 쌓이게 마련이다. 게다가 , 그 희생이 가져다 주는 열매는 흔히 낯두꺼운 구세력에게 뺏겨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 헛수고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런 희생없이는 , 애시당초 어떠한 열매도 맺지 않는
것이다 . 그것이 역사라는 것이다 . 단순하지도 직선적이지도 않다 .
(서경식/나의 서양미술 순례/창비/p91에서)


'옥중서한집(야간비행)' 을 쓰신 서준식님의 동생이 서경식입니다 . 일전에 구입해놓고 못
읽던 책인데 크기가 작아서 문득 손에 들었더니 읽어지더군요 . 그는 스무 살 시절에 한국
에 유학생으로 간 두 형이 감옥에 갇히는 바람에 그 뒤 20 여 년을 형 들 옥바라지하는 일
로 보내게 됩니다 . 외세다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그는 미술에 특별한 취미가 있었던 것
도 아닌데 부모가 돌아가신 1983년에 허탈해하는 여동생과 함께 벨기에 뷔르셀을 기점으로
1990 년까지 프랑스 , 스페인, 독일 , 이탈리아 , 미국, 캐나다 같은 곳으로 미술관과 박물관
순례를 합니다 . 물론 여비가 넉넉지 않아 늘 춥고 피곤한 상태지만 그는 서양의 명화들을
보며 자신의 가족사와 가족이 그렇게 되기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조국의 처지
를 생각해봅니다 .
누구나 찬탄해 마지않는 그림들을 보고도 그는 그것을 민족사 혹은 가족사의 관점에서 바라
봅니다. 그 유명한 스페인 쁘라도 미술관을 둘러보고도 그는 그림에 막연히 경도되기 보다
는 식민제국을 거느렸던 스페인 무적함대의 16 세기를 돌아보며 제국의 오만함을 반추해봅
니다 . 그림이(혹은 예술이 ) 보여주는 경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 그의 결론은
...위대한 예술이란 동시에 위대한 선전물이다 ..(p81)인 것 같은데 맞다고 생각합니다 .
당시엔 영화를 누렸던 레온보나같은 화가가 지금은 이름조차 남아있지 않은 걸 보고 역사
에 있어서 수구의 퇴영이란 당연한 귀결이라고 느끼기도 하지요 .

*캄뷰세스왕의 재판(헤랄드 다비드)을 보고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리는 작자의 고독하고 힘
겨웠던 젊은 날과 삶을 다시 생각해보는 가을이 될 것입니다 . 개인적으로 누리고 싶은 행
복을 조국의 권력자들이 함부로 휘두른 칼날에 난도당한 서형제의 한스러움, 그러나 그것이
학문 혹은 인권운동으로 거듭나는 것을 보고 다시금 기운 내서 살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해
봅니다. 전망이 반드시 밝은 것은 아니지만 역시 오늘을 살아낼 책임이 저에게는 있으니까
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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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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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 소설을 처음 읽었다 . 아니, 염소를 모는 여자를 읽었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지 않았
다 . 도대체 염소는 뭐람...그런 생각을 하고 지나쳤던 것 같다 .
이 소설을 읽은 까닭은 기혼녀인 한 친구가 홀연히 찾아온 늦은 연정에 몸살을 앓으면서 자
기가 읽어보았더니 어떻더라고 하기에 도서관에서 빌려 손에 들었던 것이다 . 나 역시 한
때 자연스럽지 못한 연사를 겪었지만 (믿거나말거나^^)이건 단순히 연사 혹은 불륜이라기엔
껄끄러운 삶의 방식이었다 .

어디에서 보니 이렇게 써있다

불륜의 뒤에야 “처음으로 머리 끝까지 피가 운반되는 신선한 생기”를 느끼는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의 주인공 미흔도 그렇다. 그들은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생의 관습
적인 틀, 일상이라 불리는 올가미를 풀어던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가출’하려 하거나 ‘탈
주’한다.

듣기 좋으라고 그렇게 썼지만 나는 이 주인공 여자 미흔이 왜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 명쾌하
게 이해할 수 없었다 . 미흔은 평온하게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와 함께 살다가 어느 날 남편
이 외도를 한 사실을 알게 된다 . 그러니까 미흔의 일탈은 남편의 외도로부터 시작된 셈이
다 .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으로부터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를 껴안고
있다가 기회가 되니 그 역시 불륜에 발을 디뎠다는 얘기다 . 나 역시 결혼 경험이 있었던
여성이지만 남편이 바람을 폈다고 해서 그걸 수삼년이나 껴안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아무것
도 (!이것이 문제다 ) 하지 않고 식물처럼 살아간다는 게 좀 기이했다 . 이 소설 속에는 가
정 밖에 모르던 여자가 남편의 외도를 계기로 (물론 단순한 외도라기 보다는 상대 처녀가
임신, 낙태까지 했다고 집으로 찾아와 모멸을 주었다-한 마디로 '싸이코'인데 남자들은 바람
을 피울 때 그럴 염려가 있는 여자들은 좀 피하는 게 좋겠다 -.-;;들키지 않을 상대를 고르
라^^) 자기 삶 전체를 돌아보고 자기 삶이 어리석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 내가 보기엔 그
여자가 남편을 뜨겁게 사랑해서 배신감을 느꼈다기보다는 자신에게 찾아온 예기치 않은 불
행에 대해 대처할 능력이 없는 정신적으로 허약한 여자라고 느낀다 .


부부가 살면서 둘이서 정조를 지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이란 그렇지 않다 . 잡은
고기 먹이주느냔 남성도 있고 훔친 사과가 맛있다는 남성도 있으며 남의 떡이 커보인단 남
성도 물/론/ 있다 . 그거야 성의 취향이니 누가 뭐랄 수가 없다 . 여성도 마찬가지다 . 지금
사십대 여성들이야 아무래도 남편 아닌 남자와 살 섞는걸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도록 교육받
고 살았지만 젊은 처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 미용실 교양지를 다 믿을 순 없겠지만 기혼
녀들도 남자친구 정도는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남자친구 혹은 애인과 혼외정사 경
험이 있다고 고백하는 드물지 않다고 한다 .뭐 가장 공평한건 '스와핑' 일 수도 ^^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를 환기하고 지나가야겠다 . 부부 한 쪽이 한 쪽의 성에 대해서
혹은 애정에 대해서 지루함을 느끼거나 관심이 없어졌을 경우도 반드시 정조를 지켜야 하는
냔 문제다 . 그건 아주 개인적인 문제이므로 타인이 왈가왈부할 필요는 전혀 없다 . 다만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남편은 '사고 ' 같은 것이었다고 항변하는데 아내는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 그리하여 식물처럼 살다가 이주해간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내가 보기엔) 전문 작
업꾼^^인 남자를 만나 열정적으로 몰두하게 된다 . 그러니까 주인공 여자도 남편의 외도를
이해해야 할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 그러나, 전혀 남편을 이해한다는 기미가 없다 . 주인공
은 주인공 나름의 색다른 연애를 할 뿐이다 (불륜이라고 쓰고 싶지 않다!)
아내의 연애와 남편의 연애는 전혀 별개의 것이며 아내는 남편이 외도를 하지 않았더라도
그 우체국 남자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 왜냐면 그토록 멋진 남자니까 -.-;;

나는 이 소설을 읽고 ..전경린이 왜 이 소설을 썼는지 생각해보았다 . 그리고 과연 이렇게
사는 여자들이 이 땅에 몇 % 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 개연성이 없는 이야기면 신선하기
나 하던지 발상이 전아하던지 아님 지구 끝까지 둘이 가서 산화해버리던지 (둘이는 교통사
고를 당해 망신만 당하고 헤어지게 된다)

더 이상한 건 ...나는 그 여자가 왜 그 우체국 남자에게 매달리는지 료해^^가 가지 않았다 .
그냥 연애전문가라면 들키지 말고 만나던가 그 생애 단 한 번뿐일 고귀한 사람이라면 좀 참
던가 늦게 만난 사랑에 대한 깊은 아픔이라면 때를 기다리던가 (기다려봤자 결국은 지루해
지는 경우가 많지만 -.-;;)아니면 법적 절차를 밟아 뭐 어떻게 하던가 .

평자들이 혹은 식자들이 이 소설을 어떻게 말하는지는 모른다 . 다만 내가 읽어보았을 때
연애에 무지 서투른 여자가 밥 먹고 살기가 힘들지 않아서 공연히 일 한 번 저지르다가 들
킨 이야기가 아닌가 싶을 따름이었다 . 이 철저히 반(反)일상적인 여자에 대해서 연민을 느
끼며 이 여자는 나 같은 여자를 만나 한 열 번 정도 웃고 떠들면 우울증이 치료되지 않았
을까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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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그 해 여름 사계절 아동문고 56
김정희 지음, 강전희 그림 / 사계절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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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근리 ,그해 여름을 읽고

 

4년 전 ,은실이가 핏물로 갈증을 달래던 그 노근리 굴 근처 에 가 본적이 있다 . 경부선이 지나가던 철로 밑 터널...벽과 천장에 난 총탄 자국을 누군가가 페인트 스프레이로 표시를 해 놨다 . 그때만 해도 노근리 문제를 입에 올리기 꺼리던 시기였다 . 정말 미군들이 우리 양민들을 불러내 이렇게 총질을 해댔단 말인가, 속으로 치밀어 오르던 눈물을 참느라 이를 악물었다 . 이게 있을 수도 있는 일인지 지금도 나는 잘 모르겠다 .

은실이는 순박한 소녀다 . 이웃에 좋아하는 오빠가 있고 가족은 화목하다 .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가족들은 이 전쟁에 대한 상식도 정보도 없다 . 그런데 어느 날 미군들이 이 마을 사람들을 소개시켰다. 마을 주민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집을 비우고 노근리로 갔다 . 그리고 굴속에서 총알 세례를 받았다 . 나오지도 못하게 하고 아무런 변명도 해명도 없이 몇 날 며칠 그들을 학살했다 . 어른, 아이, 여자, 노인, 아무런 기준도 없었다 . 그것은 지옥이었다 . 은실이는 그 상황을 겪었다 . 그 해 7 월에.
문제는 왜 그랬나 ? 하는 점이다 .

왜 그랬을까 ? 우리나라 어떤 사람들은 왜 그런지는 몰라도 지난 일은 거론하지 말고 돈이나 벌어 잘 살자고 한다 . 돈을 벌어 잘 사는 건 나쁘지 않다 . 나도 돈을 벌러 다니며 잘 살고 싶다 . 하지만 지난 일을 그냥 잊자는 말은 가해자나 피해자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할 말이 아니다 . ‘ 잊자’ 는 말은 용서하는 말이어야 하며 이 말은 은실이와 그 가족들이 아니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 은실이는 그 굴속에서 총알 세례를 받았으며 몇 날 며칠 시체에서 풍기는 악취를 견디며 핏물을 마시며 구더기를 씹어 먹었다 . 사십 대 어른인 나도 감당할 수 없을 악몽을 십 대 여자 아이가 겪어야 했다 . 이런 일을 ‘잊자’ 고 말하는 사람들은 바보이거나 인면수심이다 .

우리나라가 그동안 겪은 많은 고난 가운데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같은 전란 와중에 외국 적군에게 당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세금으로 운영되는 군대나 경찰이 국민을 학살하는 것은 절대로 풀 수 없는 ‘공포 호러 미스테리’다 . 뿐만 아니라 우리를 도와주러 왔다는 연합군이 500여 양민을 모아놓고 무차별 난사를 했다는 게 기록에도 나온다 .

“역사를 증언하는 작전일지가 발견됐다. 미국국립문서보관서에 있는 미 제1기병사단 5기병
연대에서는 다음과 같은 6.25 참전 작전일지가 담겨 있다.

[1950년 7월 26일 01시 35분 5기병연대 2대대장이 연대장에게]

"우리 대대 근처에 있었던 주민들 50여명이 산에서 나아 후방으로 갔다. 일부는 소달구지를
끌고 갔다. 그들은 아무런 무장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사격을 하지 않았다.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즉시 답변을 요구한다."

[1950년 7월 02시 00분: 연대장이 2대대장에게]

"소달구지와 함께 가고 있는 주민들을 포위하라. 반복한다. 그들을 포위하라."

["반복한다. 그들을 포위하라"]

이 작전일지에는 그 후 주민들의 '운명'에 관한 보고가 나타나 있지 않다. 포위한 피난민들
을 어떻게 하였는지 생략된 채 다른 사항들만 채워져 있다.
그러나 이 작전일지는 그들의 존재 자체를 미군의 문서 속에서 확인했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

이런 일들을 어린 은실이가 기억하고 있다 . 어린 은실이는 친구와 언니, 엄마, 동생이 이유 없이 죽은 걸 잊지 못하고 해마다 7 월이 오면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이 자료에는 50 여명이라고 나오지만 사실은 500 여명이며 은실은 이 사실을 확연하게 기억하고 있다 .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조용히 잊자고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 알 수는 없지만 이 사실이 밝혀지면 좋을 게 없는 사람들과 이런 사실에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는 사람들 일 것이다 .

과거를 밝힌다는 것은 다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 과거를 복기하는 것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됐으며 잘못을 어떻게 풀어가겠다는 말과 한 가지다 . 이 동화는 아이들이 읽기에는 끔찍하다 . 심성이 여린 아이들은 이 동화를 읽고 악몽을 꿀 수도 있다 . 하지만 이런 역사적 과오가 진실이며 이 진실 속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 발견한다면 이 동화는 아주 훌륭한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

은실아!네 상처를 어떻게 하면 치유할 수 있겠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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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마음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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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읽히기 전에 내가 먼저 아이 책을 읽곤 한다 . 그래서 하이타니 ㄱ ㅔ ㄴ지로 작품은 네 편 읽었다 . 태양의 아이, 모래밭 아이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 그리고 소녀의 마음......

그런데 ‘소녀의 마음’을 들고 읽는 순간 가슴이 철렁, 했다 . 가스리처럼 우리 집에 사는 소녀도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일까 싶어서 .

나 역시  아이 아버지와  따로 살기로 결심했을 때,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것이 가장 걱정스러웠다 . 이  세상에 이혼이 몇 퍼센트이건 그건 상관없다 . 다만 내 아이가 제 아비, 어미의 이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깊게 생각해야만 했다 . 그러나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는 오만 사천 가지 사유가 생겼을 때 마음으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
 아이 아비는  아이를 데려가기를 원했다 . 아이를 주지 않으면  헤어질 수 없다고  했다 .  나는 그가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걸 알았고 아이 아비는 아이를 데려갔다가 사흘 만에 다시 데리고  왔다 . 혹시라도 다시는 아이를 볼 수 없을까봐 가슴 졸이던 나는 눈물을 흘렸다 . 끝까지 살아내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과  아이가 이제 다시는 제 아비와 함께   단란한 추억을 만들어가지 못할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 이었다 .

 이 책을 읽으며 그 날이 떠올랐다  . 돌아온 아이를 안고 눈물을 흘리던 그 날 . 
 세상에는 수많은 부부가 있고 또  헤어지는 많은 부부가  있다 . 한국 땅에서 바다 건너   있는 일본 땅, 거기서  미네코와 만조가 헤어졌다 .  그리고 가스리는 그런 부모를  바라보며 컸다 .  엄마는 미술대 교수니까 외피는 멋진 여성이다 . 하지만 이혼 후에도 단지  딸만을 바라고 사는 그런 평면적 성격의 여성이 아니다 . 그런 엄마가 불만스러워서  가스리는 엄마에게  당돌하게 대들곤 한다 . 또 가스리는 아버지 만조를 만나러 간다 . 판화가인 아버지는 역시 아키코란 여성을  사귀고 있다 .  우리나라 이혼 부모 밑 자녀들은  많은 경우 새엄마 후보와 마찰을 빚는다 .   하지만 가스리는 그렇지 않다 . 어느새 가스리는 부모가 이혼한 뒤 따로 살아가야 한다는 걸 이해한 셈이다 .
 내 아이는 열여덟 살이 된 지금까지도 , “ 엄마! 난 새아빠 필요 없어 . 우리 둘이만 살아!” 하고 다짐을 두곤 한다 . 그런 면에서 보면 가스리는 훨씬 심리적으로 성숙한 아이다 . 하지만  그만큼 가스리는  아픔을 속으로 삭이는 셈이다 . 아버지에게 가서 자게 된 날 , 아키코와 아버지가   자는 방을 통과할 수  없어서 그냥 옷에다 오줌을 싸고 마는 가스리를  보면서 나는 나직하게 울었다 . 가여운 것...의젓한 척  하지만 가스리는 아키코라는 존재가 낯설고 어려웠던 것이다 . 그것을 의연하게 참느라고 그 어린 것 마음이 얼마나 타들어가듯 쓰라렸을까 ?

가스리가 사귀는 우에노 역시   평탄한 가정에서  자라는 속편한 아이가 아니다 . 우에노는  알콜 중독인 어머니에게 마구 퍼붓는다 . 하지만 그건 우에노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 남들이 보기엔 어색해도 우에노는 그렇게  어머니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 만일 견디기 어려웠다면 어차피 우에노는 문제아니까 도망쳐 버렸을 것이다 . 그렇게나마 어미니를 사랑하는 우에노 역시 어린 마음에 상처를 입으며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것이다 . 얼마나 마음 아픈 현실인가 ? 어른들에겐 비밀이 있다는 걸 10 대 어린 아이들이 눈치 채야 한다는 게.......

그뿐이 아니다 . 가스리는 엄마의 애인 ‘구니오’ 아저씨가 엄마를 떠나는 걸 지켜보면서 태연한 척 해야 했다 . 그리고 엄마가 또 가정 있는 남성과 사귀는 것을 보고도 감당해야  했다 . 어쩌면 미네코는 감성이 풍부하다 못해 넘쳐서 어린 딸이   마음 다칠까봐 배려하기에 앞서 그 자신의 문제만으로도 감당 못해 헐떡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 이건 어미와 딸이 그냥 자리가 바뀐 것 같다 .  언젠가 ‘ 가족의  탄생’ 이란  영화를  보았다 . 거기서도 보면   선경의  엄마 매자는 그냥 어린 선경을 키우며 다소곳하게 살기보다는 여러 남자를 편력하며 자기 마음 가는대로 산다 . 그걸 견디지 못한 선경은 집을 나와 혼자 산다 . 그러나 시시때때로 엄마를 찾아가  마구 퍼 붓는다 .  꾼 돈 635 만원을 갚으라고도 하고 가정있는 남자의 사생아를 낳은 엄마를 경멸하고 쏘아붙이기도 한다 . 엄마는 나를 모른다고 . 엄마가 나에 대해 뭘 아느냐고 . 엄마는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니까 좋으냐고 . 하지만 선경도 엄마를 사랑한다 . 다만 자신을 더 사랑해달라고 투정을 부리는  것이다 . 그래서 엄마가  암으로 죽자 엄마가 남기고 간  가방 속에서 나온 어린 날의 자신의 물품들을 보면서 몸을 새우처럼 구부리고 우는 선경은 가스리와도 닮아 있다 .  선경은 어린 사생아 동생이 남자 자기  자식처럼 정성들여 키운다 .

일본에 사는 가스리나 한국에  사는 선경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 이 아이들은 아버지가 없는 자리에서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면서  성숙해지는 것이다 . 가스리는 아버지가  살아가는 세상도 이해하려고 애 쓴다 . 정분 때문에 괴로워하는 엄마와  자기 세계를 지키려고 사랑하는 아키코를 떠나보내는 아버지를 동시에 이해하느라 가스리는 얼마나 힘겨울까 ? 그래서 가만히 가스리 손을 잡고 말해주고 싶다 .

- 가스리! 네가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한 가지 더, 어른에겐 비밀이 있단다 . 처음에는 좋아서 혹은 죽고 못 살 정도로 사랑해서  결혼하는 거란다 . 하지만 인간이란 이상하게도 살다 보면 함께 사는 게 그냥 그래지거나 혹은 절대로 같이 못 살 정도로 견디기 힘들어지는 순간이 오기도 한단다 . 그래도 그냥 참으면서  여생을 함께 사는 부부가 더 많지만 가끔은 네 부모나 나처럼  차라리 헤어져서 사는 게 서로에 대해 그나마 좋은 기억을 간직할 수 있는   좋은 선택이 되기도 한단다 .
 자식들의 마음은 생각해 봤냐고 ? 당연히 생각해봤지 . 안 그러면 어른이 아니다 .  하지만 어른들도 때로는 사는 게 힘겹고 지루하며 어린애처럼 아무렇게나 저질러버리고 후회하는 일도 많단다 . 네가 더 커서 나중에 어느 순간에 너의 부모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순간이 올 거야 . 아이들처럼 어른들도 때로는 사/는/ 게 /무/섭/단/다 .
 네가 건너가는 성장이라는 사막은 그 다음 여정에 샘물이 있단다 . 이런  아픔을 겪지 않고 크는 아이들보다는 네가 훨씬 깊고 서늘한 기쁨을 알 수 있단다 .그러니까 가스리, 엄마와 아버지를 너그럽게  안아주기를 바란다 .

언젠가 내 아이도  어미와 아비가 따로 사는 게 더  좋다는 걸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 지금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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