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M    


1. 발견자 : 일본 오키나와의 류큐대학 히가테루오 교수


2. EM이란 무엇인가?

EM이란 유용한 미생물(Effective Microorgainisms)이란 영어의 머릿자이다.

EM은 그 미생물이 만들어 낸 효소나 생산물에 의하여 인간의 세포나 동식물의 세포를 활성

화하는 작용을 한다. 또한 동식물의 몸 안에 있는 유해한 균을 유용한 균으로 변화시키는

일도 한다. 과잉(지나친)산화나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방지물을 썩지 않도록 한다. 자연계

의 소생과 붕괴의 두가지 방향 가운데 소생의 방향성을 갖는 미생물을 많이 모은 것이다.


3. EM 안에 들어 있는 균의 종류 (약80종)

① 유산균 : 유기물의 부패를 방지하고 유선발효 시킨다. 작물의 유효한 양분이 된다. 김

치, 요구르트에 많다. (특징 : 부패균 억제)

② 효모균 : 비타민이나 생리활성 물질을 만들어 식물이나 기타 유효균의 활성화를 증진시

킨다. 술, 빵, 식초 만들 때 쓰인다.

③ 사상균 : 메주에 많이 쓰인다.

④광합성 세균 : 유해물질을 비타민 및 영양분으로 합성하는 유효미생물균의 주역으로 빛

을 이용하여 식물의 영양분을 만든다.

⑤ 방선균 : 항생물질을 생성시켜 곰팡이 및 병원균을 억제시킨다. 메주에 많다.

소생형의 미생물(EM)들이 만들어 내는 분비물에는 아미노산이나 유기산, 다당류, 비타민

등 동물 식물의 영양이 되는 것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4. EM의 효능

① 농업 - 벼농사, 밭작물, 과수, 꽃 재배시에 무농약 ․ 무화학비료 농업을 실현할 수 있

고 수확량이 증대되며 꽃이나 과일은 색깔과 맛, 모양이 좋다.

② 축산 - 양돈, 양계, 육우, 낙농시에 축사의 냄새를 없게 해주며 가축의 건강을 증진시

키고 분뇨를 비료화할 수 있으며 고기와 계란 등에 품질이 향상된다.

③ 환경 정화 - 급수시 화장실, 정화조, 가정 내의 악취를 없애주며 가정의 하수나 연못,

개울, 바다의 물을 정화시킨다.

④ 의료 등 다방면에서 효능을 발휘한다.



▨ 뜨물 발효액 만드는 순서


① 쌀 씻은 뜨물(1-2-3차 혼합해서)을 1.5ℓPET병에 80% 채운다.

② EM원액을 20cc, 당밀 10cc를 ①번에 섞는다.

③ 상온에서 10-14일 정도 숙성시킨다.

④ 숙성후에 냄새는 새콤한 향이 난다.

     ※ 물은 생수나 지하수로 한다.



▨ 뜨물 발효액 사용법


1. 주방

- 발효액으로 설거지를 하면 개수구에 물때가 없어지고 구멍이 막히지 않는다.

- 가스렌지 주위의 벽은 기름이 튀어서 더러워져 있다. 이곳에 발효액을 100배

  희석해서 뿌린다. 타일 틈에 붙은 때에도 사용한다.

- 행주 사용후에도 200배 희석해서 사용한다.

- 칼, 도마, 목재나 프라스틱 도마 등 찌든 때와 검은 곰팡이가 부착되어

  씻어도 잘 안 닦이는 곳에 요리를 마친 뒤 200배 희석해서 사용한다.

- 냉장고 서랍 속의 야채, 육류, 어류 등 각양 각색의 냄새가 가득 차 있는

  곳에 200배 희석해서 사용한다.


2. 방, 거실


- 생활 장소로서 많은 사람이 출입하고 먼지가 나기 쉽고 담배나 매트 냄새가

  마음에 걸린다. 외출 전 발효액 300배 희석해서 뿌려 두면 돌아왔을 때

  아주 맑고 깨끗한 공기로 변해 있다.

- 카펫트는 진드기 등 기생충이 붙어 살기 쉬운 곳이다. 카펫트가 촉촉해질

  정도로 300배 희석해서 뿌린다. 이렇게 하면 마른후에는 이상할 정도로

  포슬포슬해서 촉감이 좋다.

- 양복장은 곰팡이가 나기 쉬운 장소이기 때문에 구석구석까지 발효액을 뿌려

  주는 것이 좋다. 양복 입을 때 기분도 좋고 햇빛에 널 필요도 없고 곰팡이도

  방지된다.


3. 목욕탕, 세탁, 화장실


- 목욕한 물에 300배 희석해서 다음 날 집안 이곳 저곳 청소용으로 사용한다.

  탕벽 때도 깨끗이 떨어지고 물빠짐, 끈적근적한 때도 빠진다.

- 머리 감을 때, 목욕 마지막 헹굼으로 사용한다.

- 세탁기에 세제와 함께 2뚜껑 사용한다. 세탁물에 때가 잘 빠지고 세탁기에도

  때가 묻지 않는다.

- 화장실에도 300배 희석해서 사용하면 냄새가 사라진다.


4. 현관, 사무실, 차

                   

- 현관의 냄새는 300배 희석해서 사용하면 냄새가 깨끗이 없어진다.

- 신발장은 신발을 넣어둔 채로 300배 희석해서 사용하면 냄새가 없어짐과

  동시에 구두도 반짝반짝하게 광이 난다.

- 차 안에도 300배 희석해서 사용하면 담배냄새도 없어지고 공기도 맑아진다.


※ 가정에서 사용하는 린스, 퐁퐁, 락스, 피죤에 대용하면 물을 살리고 우리를 살게 한다.









                            

▨ EM비누 만들기(간단)




준비물 : 식용유 18리터, 쌀뜨물 발효액 6리터, 가성 소다 2.8kg, 도깨비 방망이




만드는 방법 :

                   

1. 쌀뜨물에 가성소다를 녹인다.(꼭 쌀뜨물에 가성소다를 녹일 것)

2. 다 녹았으면 식용유를 부으면서 도깨비 방망이로 5~10분 정도 돌려준다

  (도깨비 방망이의 강한 회전력으로 가성소다가 완전히 반응하여 가성소다의 양을 줄이고

   쌀뜨물 발효액의양을 많이 늘릴 수 있다)

 

* 손으로는 깨끗한 식용유(급식소)와 오래 사용한 기름(닭집)에 따라 가성소다의 양을 달리

  했으나 도깨비 방망이로 기름의 구별없이 모두 같은 양으로 만들 수 있다.




▨ EM비누 만들기(2) -




준비물 :

  저급 폐식용유(닭집) - 가성소다3kg, 쌀뜨물 발효액 4.5리터, 폐식용유 18리터

  고급 폐식용유(가정,호텔,급식소)  - 가성소다4kg, 쌀뜨물발효액 4리터, 폐식용유 18리터




1. 쌀뜨물에 가성소다를 섞어 잘 저어준다.

   이때 고열과 가스가 발생하므로 통풍이 잘 되는 장소에서 하고 마스크를 쓸 것

   또 가성소다가 피부에 닿으면 따끔거리므로 반드시 장갑을 낀다.

2. 가성소다가 다 녹으면 폐식용유를 넣는다.

   이때 불순물이 안들어가도록 걸러주면서 넣는다.

3. 모든 배합이 끝나면 30~40분 정도 잘 저어주다가 비누를 떨어뜨려 점도가 있으면 완료

   색깔은 연한 카라멜색(고급), 연한 초컬릿색(저급)이다.   

4. 비누를 틀에 붓고 통풍이 잘되고 가끔 해가드는 음지에서 건조한다.(보통 3일후에 분리)

5. 비누를 틀에서 분리한 후 한 달정도 건조시킨다.(위험물질인 가성소다를 휘발시키기위해)




✐주 의

- 장마때나 비가 오는 날에는 비누제조를 하지 않는다.

- 반드시 쌀뜨물에 가성소다를 넣는다.

- 금속 그릇은 사용하지 않습니다.(가성소다와 격렬하게 반응)

- 5일 이내에 건조가 완료되지 않으면 배합비율이나 기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EM비누의 장점

- 빨리 굳고 제조후 분리가 쉽다.

- 세척력이 강하고 헹국때 물소비량이 적다.

- 세탁시 거품이 잘나고 헹굴때 거품이 쉽게 제거되는등 수질에 오염부하량이 거의 없다.

- 잘 물러지지 않는다




✐EM비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

- 하천의 퇴적오니 및 악취발생을 억제한다

- 계면활성제의 분해를 촉진한다.

- 환경정화능력을 향상시킨다.




✱가루비누 만들기

- EM비누를 강판에 갈아 만든다.

- 용도 : 세탁세제

                            

✱액체비누 만들기

- 가루 비누를 쌀뜨물 발효액에 약 8 ~10배정도 희석시켜 잘 섞는다.

- 용도 : 샤워시 비누대용, 주방세제와 혼합사용(1:1), 샴푸와 혼합사용(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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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소다란 무엇인가?(소다=중조=탄산수소나트륨)

  소다는 바다나 땅속, 생물체의 몸속에 존재하는 약알칼리성의 천연 미네랄 물질로

  화학명칭은 탄산수소나트륨(NaHCO3)로 영어로는 Baking Soda, 일본어로는 중조,또는 소다라고 한다.

  바닷물은 항상 약알카리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물속에 들어온 오염물질을 좀더 쉽게 분해하도록 돕는다.




2. 소다, 베이킹 소다, 베이킹 파우더 의 차이점

   • 소다 : 공업용을 통칭하고

   • 베이킹 소다 : 소다와 성분은 같으나 식용이 가능함. 과자 케이크에 사용

   • 베이킹 파우더 : 소다에다 다른 성분을 첨가해서 소다의 단점을 없앤 것




3. 베이킹 소다의 작용 - 소다의 가장 중요한 작용은 뭐니뭐니해도 중화작용이다.

  1) 연마작용

   - 베이킹소다의 미세한 입자가 긁어내는 효과를 가짐

    (물품의 표면에 상처를 입히기전 오염부분만 녹여서 제거)

2) 중화작용

   - 주변에서 보는 오염이나 때는 대부분 지방산이라는 산으로 되어있는데 약알칼리성인 베이킹소다가

    이 산성물질을 중화시키며 때를 수용성염으로 바꿔 물걸레로 쉽게 제거된다.

3) 연수작용

   - 베이킹소다는 물에 녹으면 물속의 금속이온을 흡착해 물을 부드럽게 한다

4) 강력한 탈취 흡습작용

   - 썩는 냄새나 몸에서 나는 냄새는 대부분 산성이다.

    이들은 약알칼리성인 소다가 중화시킨다.

    악취중 알칼리성인 것이 있는데 화장실냄새, 생선 비린내, 담배냄새등이다.

    하지만 이때도 소다가 냄새분자를 끌어들여 어느 정도 냄새를 없앨수 있다.

5) 자연적인 발포, 팽창작용

   - 베이킹소다는 밀가루 반죽속에 들어가 있는 산(우유, 초코렛, 레몬즙, 꿀등...)과 반응하여

    물과 이산화탄소(CO2)를 발생시키는데 이를 이용하여 빵과 과자를 만드는데 이용한다.




3. 베이킹소다를 사용하는 여러 방법

   • 용액으로 만들때 - 1리터의 물에 4스푼의 소다를 섞는다.

   • 젤로 만들때 소다와 물의 비율을 3:1로 반죽한다.

   • 스폰지를 이용할 때 - 물에 젖은 스폰지에 소다를 뿌려서 사용한다.

   • 소다 가루를 사용하려는 부위에 직접 뿌려 젖은 스폰지로 닦아준다.




4. 실제 우리 생활에서 소다의 활용

  1) 부엌에서

   ① 채소/과일 세척

    - 채소나 과일중 껍질이 단단한 것은 베이킹소다를 골고루 뿌려 문지른 후 물로 씻어주고

    - 잎채소나 딸기 포도등의 껍질이 약한 과일은 베이킹소다 용액을 만들어 헹구듯이 씻어준 뒤

      깨끗한 물로 더 헹굽니다.

   ② 눌어붙거나 탄 냄비

    - 베이킹소다를 한 스푼 정도 물에 녹인후 탄 냄비를 넣고 15분 정도 끓여줍니다.

    - 잘 지워지지 않는 묵은때는 그릇을 물에 적신 후 베이킹 소다 가루를 표면에 골고루 뿌리고

      하룻밤정도 놓아 두었다가 닦아주면 됩니다.

   ③ 유리그릇

    - 젖은 스펀지에 베이킹 소다 가루를 뿌린 후 닦아주면 지워지지 않는 물때도 깨끗이 지워집니다.

   ④ 플라스틱용기, 도마의 냄새제거

    - 김치통이나 반찬그릇에 배어있는 냄새는 베이킹소다 용액으로 세척하거나

      심하면 하룻밤 정도 담가두었다가 씻으면 냄새가 없어집니다.

   ⑤ 씽크대 배수관

    - 매주 1회 잠자기 전 베이킹 소다를 2스푼 씽크대에 뿌려주고 다음날 따뜻한 물을 흘려주면

      냄새를 제거합니다.

   ⑥ 전자레인지나 냉장고의 탈취제

    - 종이박스에 소다가루를 담아 한쪽에 두면 훌륭한 탈취제가 됩니다.(2~3개월에 한 번씩 교환)

   ⑦ 생선구울 때 냄새제거

    - 생선 그릴 바닥에 소다 가루나 소다수를 넣고 생선을 구우면 생선냄새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⑧ 가스렌지 후드

    - 소다가루를 뿌려서 살살 문질러 주거나 잘 안 지워지면 소다넣은 물에 삶습니다.

2) 화장실에서

   ① 변기, 세면대 청소

    - 소다가루로 닦습니다.

   ② 곰팡이, 물때

    - 소다를 뿌리고 몇 시간을 둔 뒤에(하룻밤이면 더욱 좋음) 구연산을 뿌리며 솔로 닦아냅니다.

   ③ 빗, 브러쉬

    - 더운 소다수에 2시간 정도 담가둔 뒤 닦습니다.






3) 세안이나 목욕할 때

   ① 세수할 때

    - 소다 한 스푼 정도를 풀어 세안하면 각질제거 효과가 있습니다.

   ② 손, 발 세척

    - 각종 작업으로 더러워진 손이나 굳은 살이 있는 발을 씻을 때 소다가루를 사용합니다.

   ③ 소다 양치법

    - 치약에 소다가루를 묻혀 닦으면 훌륭한 구강청정제가 됩니다.

   ④ 아토피 피부환자들의 목욕에

    - 목욕물에 소다와 전분을 섞어 목욕을 하면 효과가 있습니다.

   ⑤ 겨드랑이 냄새제거에

    - 소다가루를 조금 겨드랑이에 묻혀주면 땀냄새를 제거합니다.

4) 거실,현관,청소에

   ① 옷장의 습기제거

    - 종이봉투나 넓은 종이 상자에 에센스오일을 한 두방울 떨어뜨린 소다를 담아

      옷장 한 구석에 놓아두면 방충 방습 방취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② 카펫, 아이 오줌 싼 이불, 애완동물냄새

    - 카펫이나 아이가 실례한 이불에 넓게 소다가루를 뿌린 후 청소기로 빨아들인다.

   ③ 벽이나 가구에 생긴 자국

    - 소다가루를 젖은 스펀지에 묻혀 살살 문질러 주고 깨끗한 천으로 닦아 마무리한다

   ④ 신발장

    - 소다가루를 종이봉투나 박스에 담아 칸칸마다 놓으면 냄새가 제거되고

      신발에도 소다가루를 뿌리고 털거나 주머니를 만들어 신발속에 넣어둔다

5) 세탁하기

   ① 소다를 녹인 물에 빨래를 담근다.(저녁에 빨래를 하려면 아침에, 아침에 하려면 전날 저녁에)

   ② 세탁물을 세탁기에 넣고 소다물도 같이 넣는다. 

     미리 뜨거운 물에 녹인 세제를 넣는다. 이때 세제는 보통 사용량의 30%정도만 넣으면 된다.

   ③ 마지막 헹굼에 2%구연산 한 컵을 넣어준다.

     구연산은 소다를 중화하고 세탁물을 부드럽게하고 정전기 발생도 감소시키는 유연제 역할을 한다.

        * 소다 적정량 - 저수위 : 소다 한 컵

                    중수위 : 소다 한 컵 반

                    고수위 : 소다 두컵

        * 여름철 빨래에서 냄새가 날 때 소다만 넣고 살짝 돌려준 뒤 하룻밤 정도 그냥 두었다가

          세제를 넣어 빨래를 하면 냄새가 안납니다.

        * 면생리대, 기저귀를 빨 때 소다 녹인 물에 담갔다가 빨면 삶는 효과를 가진다.

5. 소다사용하기 TIP

  • 소다를 사용한 후에는 꼭 산성액으로 중화시켜 줍니다.(식초, 구연산)

  • 탈취제로 썼던 소다는 청소나 빨래할 때 재사용하면 됩니다.




6. 소다의 효과를 더 확장시키려면

  • 소다는 알칼리성으로 산성에 대해 작용하는데 변기의 암모니아 냄새, 생선냄새, 세면대의 물때와

    같은 알칼리성에는 구연산이나 식초가 훨씬 더 효과가 좋다.

    - 부엌 : 생선이나 음식냄새를 제거하거나 유리컵, 수도의 물때를 제거할 때, 도마를 소독할 때

    - 화장실 : 변기의 냄새를 없애거나 세면대, 샤워기의 물때를 없앨 때

    - 담배냄새 : 외출한 옷, 차안에 밴 냄새를 없앨 때

    - 세안이나 세탁후 : 얼굴이나 머리카락, 의류에 남아있는 비누찌꺼기를 1%미만 구연산수로 중화

  • 에센스 오일이나 허브를 함께 사용하면 탈취, 방충, 아로마 효과를 얻을 수 있다.

    - 화장실 : 곰팡이가 생기기 쉬우므로 강력한 살균효과가 있는 티트리 같은 오일을 함께 사용

    - 옷장, 욕조 : 진정, 항염증, 항균, 방충작용이 있는 라벤더, 시더우드 같은 오일첨가

    - 거실 : 벌레나 모기등 벌레의 침입을 막고자 할때 페퍼민트(3세 이하 사용금지)같은 오일 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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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군대에서 축구하기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얘기가 남자들

군대에서  축구한 경험이라는데...




학교 다닐 때 복학생들 보면 대개

우월감 같은 걸 보여준다 .

우리는 이렇게 힘들게 군대 다녀왔는데 너거들 가이나들은

뭐 한 게 있냐 ? 그런 거 ......

그런데 나는 딸이 있지만 진짜 군대 대안은 모병이 아니라면

남/녀 똑같이 1 년씩 가는 게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

여자들이 약하다구 ? 약한 여자도 있고 약한 남자도 있으니

남녀 다 튼튼한 경우는 징병을 하고

갔다 오면 가산점 공평하게 주기 .

그리고 대체 복무 허용하면 될텐데 실행 안되는 까닭은

게으르거나 무책임한 국회의원들 책임!




2. 신의 아들 후배




이 청년은 신검 받으러 갔는데 80 년대 초반,

환한데 있다가  실내로 들어가서 어질어질한데 시력검사하더라나 .

그래서  안보여서  안보인다고 했더니 면제!

이 후배는 지금도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 가장 싫어한다 .

좋아하는 건 ?

어쩌다 참여한 가투에서 어설프게 잡혀서

남대문경찰서 유치장에서 의식화되어 나온 뒤

미문화원 들어갔던 서울대 친구랑 시국 토론하기 .

아마 김민석이랑 같이 들어갔던 듯 .







3. 무용담 작렬 후배




복학생으로 나타난 이 청년.

대구에서 얼마나 신나게 군대생활 했는지 입만 벌리면

무용담이 우수수...

그런데 얼마 뒤 나타난 복학생이 학회중간에 그를 발견,  반가워하며

“ 여~ 남재규~ 너 대구경찰서 전경이었지 ?

취사반에서 밥했잖아!”

국문과 학생들 다 꽈당!




4. 신의 아들 아는 오빠

독실한 크리스천인데 말하자면 양심 때문에 총을 들기 싫어했다 .

그 오빠는 충분히 그럴 사람이었는데

어쨌든 군 생활을 간신히 하던 중

그 폭압과 신에 대한 소명감때문에  어느 날 귀대하지  않았다 .

그래서 여차저차한 결과 남한산성에서

무지막지한 고초를 겪고 나온 뒤 진짜  신의 아들이 되었다 .

요즘은 아름다운 목회를 하는데

아름다운 이유는 ?

교회 신축공사한다고 건축헌금 절대로 안 모은다 .




5. 진짜 군대생활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포병이었다 .

빛바랜 사진도 있다 .

근데 비극은...

아버지는 남한에서 국군,

월남하지 아니한 아버지 형제들  즉 삼촌들은 아마도

북에서 인민군이었을 듯......

아버지 다리에는 파편을 맞고 그걸 어설프게 수술해서

지렁이가 꿈틀거리고 지나간 듯한 자국이 있다 .

아버지는 식판 쇠기름 묻은 거 닦기 힘들어서

국을 주면 안 받았고 한다 ...@@

나도 비린내 나는 그릇 닦기 싫어서

생선요리란 걸 안한다 ....




6. 친구 아들




친구아들은 아주 진상이었다 .

얼마나 지긋지긋하게 속을 썩였는지

이 녀석이 입대하는 날 부부가 만세를 불렀단다 .

아, 이제 우리는 2 년 동안 휴가야, 하고 .




근데 며칠 후에 돌아왔다는 거다 .

신검을 다시 하니까 뭐가 잘못되어서 집에 가라고 했다는 거다 .

그래서 이 부부가 다음 날 아침 부리나케 차리고 애를 데리고

다시 가서 그 판단이 오류라는 걸 확인시키고 다시

나라를 지키게 하고 왔다고 가슴을 쓸어내려서

다 기립박수를 쳐줬다 .




7 . 기어코 문무대에




지금도 그 제도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예전에는 남학생들은 교련으로

1 학년인지 2 학년 때 “문무대 ”  라는 걸 갔다 .

학생들이 1 주인가 2 주인가 병영에 입대해서 군체험을 하고 오면

나중에 그 일수만큼 차감해주는 데 그게 교련 점수에 들어갔다 .

물론 예비역이나 면제자들은 그걸 안 간다 .

그런데 우리 과에 <나>라는 남학생이 군면제여서 그걸 안 갔는데

나중에 문제가 생겼다 .  이 남학생이 알고보니 <전과자 > 여서

면제를 당한 건데 전과자라도 문무대는 간다는 거다 .

그래서 이 남학생은 나중에 후배들이랑 문무대를 갔다 .

교무과에서 말하길 ...우리 학교 역사상 그런 일이 처음이어서

그런 행정 착오가 생긴 거란다 .

<그런 전과자>가 처음이라는...나중에 무슨 전과인가  물어봤더니

고교시절에 동네 소년 조폭이어서 폭력혐의로 ...그래서

그는 <블랙맨-검정고시->동문회에 나간다는...




8. 군대 다녀오면 사람 된다 ?




흔히 사람들은 군대 다녀오면 사람된다고 하는데

헬스 아줌마들 토론에 의하면

그것도 사람 나름이라는.......^^




그래서 가끔 아들 군대간 새 아파트 이사가고 싶다는

아주머니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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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도시에 갔다가 돌아오면 늘, 안정감을 느낀다 . 익숙해서 그렇기도 하지만깨끗하고 조용한 도시다.  특별한 아름다움은 아니지만 수원은 오래된 품격을 가진  도시라고 느낄 만하다 .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76 년에는 확실히 조용한 도시였다 . 76 년 무렵엔 20 만이던 인구가 이제는  100만이나 되었고 토박이 보다는 이주해 온 사람들이 더 많은 도시가 되었다 . 하지만 특별히 수원을 떠나고 싶다거나 수원이 사람 못살 데라고 느낀  적은 없다 .




우리 아버지 고향은 개성이다 . 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폭격을 피해 남하해서 수원에 자리잡은 건 ‘10 전투 비행장’ 에 일자리를 잡아서라고 들었다 . 물론 그 당시 일자리가 번듯한 게 있을 리 없고 미군부대 식당  종업원 즉  하우스보이 노릇을 했다고 한다 .  그리고 이제나 저제나 고향에 돌아가기를 기다리던 아버지는  다시는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7 년 전 돌아가셨다 .  수원 서민병원 병실에서 .  그리고  아주대병원 영안실에서 장례를 치르고 연화장 납골당에서 개성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으시다 .




나는 수원에서 40 년 넘게  살았다 . 대학 다닐 때와 결혼 뒤 잠시 이천에서 산 것을 빼 거의 수원살이를 한 셈이다 .   지금은 화성이 세계 문화유산이라고 여기를 답사하는 사람도 생겼지만 (!) 내가 어렸을 때 화성은 그냥 놀이터였다 . 나는 어린 시절 줄곧 북수동 , 신풍, 장안동에서 살았다 . 최근에 화서동 아파트로 입주를  했지만 돌아가신 어머니 소망대로 성안에서만 산 셈이다 (!) 어머니는 어쩐 일인지 사람은 반드시 성안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에 서문 근처 신풍동과 장안동에서 살았을 때는 서문이 우리들 놀이터였다 . 




지금은 옹색하게도 느껴지는 동네지만 그때는 자연 환경이 좋은  놀이터였다 . 그때는 누구나 서문 위에 올라가서 놀곤 했다 .아니면 공심돈에서 누가 목매달아 죽어서 귀신이 나온다고 가슴 두근거리며 들여다 보기도 했다 .  아이들은 서문 누각 위에서 내려오는   계단 난간을  미끄럼처럼 타고  내리는 놀이를 하곤 했다 . 바로 밑에 동생 란이가 세 살 때인가, 하루는   난간을 미끄럼타고 놀던 란이가 미끄럼을 시작하자마자 균형을 잃고 굴러 떨어졌다 . 그런데 서문 근처 바닥은 넓적한 자연석으로 모자이크되어 깔려 있었는데 거기 바로 떨어졌으면 머리가 깨져 죽었을 것이다 . 그런데 당시는  그 근처에  솜틀집이 있었다  .때마침    솜틀집 주인이 서문 누각 계단 아래에  나무 반자(문짝)을 펴놓고 거기에 튼 솜을 펼쳐놓고 말리곤 했다 , 다행히 란은 펴말리던 솜 뭉치위에 떨어졌다 . 그래도 머리 어디에선가 피가 흘렀다 . 나는 놀라서 란을 흔들다가 마침 동네 미용실에서 고데를 하던 어머니를 찾아  뛰어갔다 . 어머니는  “ 엄마! 란이가 서문에서 떨어졌어요!” 하는 비명을 듣자 머리에 고데를 하던  한지 조각을 그대로 붙인 채 내달아왔다 . 어깨에 두른 분홍색 케이프가 황금박쥐  망토처럼 펄럭거렸다 .




어머니는 동생 란을 안고 도립병원까지  울면서 뛰어갔다 .  당시에 도립병원은 지금 행궁자리에  경기 간호전문학교와 함께 있었는데 그 오른쪽엔 경찰서 건물이  있었다 .  어머니가  동생 란을 안고 서문서부터 지금 제일교회자리인 도서관을 거쳐 법원자리였던 선경도서관 앞을 거치고 신풍학교 앞을 거쳐 도립병원까지 뛰어갈 때 나는 동생이 죽을까봐 그리고 그 애가 죽은 다음  동생 제대로 데리고 놀지 못했다고 혼날까봐 가슴 조이던 공포를 기억한다 . 119 구급차가 없었던 건지 거기에 연락할 수단이 없었던 건지 아무튼 인간 구급차 어머니는  피 흘리는 딸을 안고 뛰었다.




그리고 동생은 다행히 죽지는 않았지만  열 살이 되어보아야 사람이 될지 알 수 있다는 의사 진단처럼 입이 짦고 마른데다 약하고  암기력 부족한 아이로 자랐다 . 하지만 그냥저냥  중학교에 다니고 고등학교는 멀찌감치 영신여고를 다녀서 그때  추락 경험이  아무래도 두뇌활동에  일종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하는 짐작을 하게끔 했다 .  평준화가 되기 전 당시 영신여고는 학업보다는 자유로운 청소년기를 보내는 학생들이 선택하는  학교였다 .병약한 란을  유달리 사랑하던 아버지는 영신학교 덕분에 우리 둘째딸이 ‘고녀’를 졸업했다고 좋아하시곤 했다 . 내 동생이 영신여고 1회 졸업생이었다 .




3 학년 때부터 화홍문 근처 북수동에 살았는데 거기서 화홍문과 북문 , 성벽은 우리들 놀이터였다 . 68 년 무렵에 화홍문에는 깨끗한  물이 흘렀고 68 년에 태어난  막내 동생 기저귀를 화홍문에서 흘러내리는 수원천 물에 빨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 어머니는 양력 12 월에 지금은 없어진 김종훈 산부인과에서 서른아홉 노산으로 아기를 낳았다. 서울서 해산구완을 오신 이모님이 빨래방망이를 꽂고 엄마와 아기 빨래가 든 빨래 함지를 이고 화홍문 아래로 가셨다 . 나는 눈길을 걸어 그 뒤를 따라갔는데  그다지 춥지는 않았다 . 빨래돌을 찾아 자리 잡고 앉아  어머니  개짐을 물에 헹구니 붉은 핏물이 물에 흩어지며 흘러가던 기억이 선연하다 . 




그때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많은 부녀자들이 빨래함지를 이고 나와 거기서 빨래를  했다 . 여름이면 아이들이 거기서 멱을 감고 장마통엔 화홍문 일곱 수문이 미어지도록 수량이 넘쳤다 . 우리는 그곳을 ‘냇갈둑’ 라고 불렀는데  어느 핸가는 홍수가 나서  냇갈둑 제방이 넘칠까봐  사람들이 모두 나와 서서 구경하던 게 떠 오른다 . 설마 그 냇갈둑이 무너질 거라곤 생각안했다. 그러나   평이한 나날을 보내던 아이들이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내가 다니던 신풍학교 근처가 지금은 상전벽해가 된 것을 본다 .   지금 우체국 맞은 편 자리가 70 년대 당시엔 시외버스 터미널이었다 . 용인에 사는 고모님댁에 가기 위해 거기서 시외버스를 타곤 했는데 그 터미널 화장실 냄새가 지금도 기억난다 .  가뜩이나 비위가 약한 나는 버스에서 내리면 멀미가 나서 곧 토하고 싶은데 화장실에 가면 버스 매연 냄새에 잘 씻겨내려가지 않은 오물 냄새가 아주 복잡한 구성으로 어린 내 속을 복대겼다 . 나는 거기서 실컷 토하고 입가심도 제대로 못한 채 터미널 옆 낚시점과 그 근처 점포들 풍경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 그런데 수원서 오랜 산 친구들도 터미널 얘기를 하면 잘 기억하지 못한다 . 그건 내가 만들어낸 기억일까 싶기도 하지만 우체국 옆 동아약국 이층에 있던 동아치과에 갈 때마다 터미널 냄새를 아주 오래 기억하던 걸 보면 조작된 기억은 아닐 것이다 .




신풍학교가 곧 헐릴 거라는 소문을 들었다 . 그래서 동창들이 반대를 한다는 둥 남창학교랑 통합을 한다는 둥 바람이 실어온 소문들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 어린 시절에 낙남헌을 교무실로 이용하던 일도 있는데 시대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질 것이다 . 나와 내 동생들과 내 딸까지 졸업한 신풍학교가 없어지면  좀 서운 할 것이다 . 그처럼  넓어보이던 운동장과 소풍날과 운동회날만 비가 오게 하던 이무기 전설어린  느티나무도  베어버릴 것이다 . 운동장 가에 선 은행나무가 가을이면 아름다운  황금빛 은행잎을 떨구던 기억도 소멸 될 것이다 . 그러나 모든 걸 인력으로 막을 수는 없고 어떻게든  달라질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담에 내 딸에게 혹은 내 딸 자식들에게 들려줄 수원 이야기는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




어디를 가더라도 누가 ‘어디 사람’ 이냐고 물으면 나는 ‘수원 사람’ 이라고   대답한다 . 그리고 깨끗하고 조용한 도시라고 , 한 번 와 보시라고 한다 . 그리고  누구나 이 도시에 한 번 와보면 참, 조용하고 깨끗하구나 하는 인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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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배추에게 문자가 왔다 . 둘째가 태어났다고 ...

이 수상한 시절에 태어나다니 괴롭겠구나 .

하지만 부모가 반듯한  사람들이니 제대로 살 수 있겠지 .

특히 아비가 착하고 능력있는 사람이니까...

 

내 딸도 이날 태어났다 . 1990년...

그애가 태어나던 날은 좀 추웠다 . 애 낳을 준비가 안 된 나는

미혼모처럼  혼자 병원에 가서 몸을 풀었다 .

 

그리고 18 년 후 .

오늘 딸에게 말했다.

내년부터는 네 생일 날 엄마에게 고깃국을 끓여주고 상을 차려다오 .

너를 낳느라 애슨 엄마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날로 삼으리고 .

딸은 알았다고 한다 .

알아서 알았다고 하는 건지

아니면 자본 앞에서 굴복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

 

6,000원짜리  티라미슈 케익을 사다놓고

촛불을 밝히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애낳느라 애썼어/ 애낳느라  애썼어

사랑하는 우리 엄마 / 애낳느라 애썼어 !"

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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