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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식당에서 일하던 남성 종업원의 성폭행을 피하려다 3층에서 떨어져 숨진 아내의 주검을 수습하러 서울에 온 재중동포 남인수씨가 8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숙소에서 아내의 영정 사진을 보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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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24일 밤, 서울 강남구 양재동 ㄱ한정식집에서 보조일을 하는 재중동포 김아무개(40·여)씨는 여느 때처럼 가게 정리를 끝내고 식당 구석 쪽방에 지친 몸을 뉘였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같은 식당 종업원(28)이 식당 문을 몰래 열고 들어와 김씨를 흉기로 위협하며 성폭행을 시도했다. 격렬하게 저항하던 김씨는 3층 창문을 열고 몸을 던졌다. 김씨는 두개골 골절로 사경을 헤매다 열흘 만에 숨졌다. 이 식당에서 일한 지 채 한 달이 안 돼 벌어진 일이다. 중국에서 달려온 남편 남인수(41)씨는 “이전에도 ‘식당에서 자는 게 불안하다’고 했는데 그 놈의 돈 때문에 …”라며 가슴을 쳤다.
지린성 옌지가 고향인 김씨가 한국에 온 건 아들(15) 때문이다. 아들은 나면서부터 뇌성마비를 앓아 중복 장애를 갖고 있다. 김씨는 한 달에 1천위안, 우리 돈으로 20여만원 가량이 드는 특수교육을 꼭 시켜주고 싶었다. 남씨는 “아내가 아들한테 글과 숫자라도 가르친 뒤 가게라도 하나 차려주면 여한이 없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이태 전 한국에 올 때부터 줄곧 ‘식당 잠’을 잤다. 숙박비와 교통비 부담을 크게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적잖은 동료 동포들이 성폭행 위험 등 때문에 고시원이나 쪽방에 거처를 마련했지만, 김씨는 “그 돈이면 아들을 특수학교에 보낼 수 있다”며 마다했다고 한다. 김씨의 주검은 숨진 지 한 달 넘게 삼성서울병원 안치실에 갇혀 있다. 수술비 3천만원과 주검 안치 비용을 해결하지 못한 탓이다. 중국 국적인 김씨는 정부의 범죄피해자 구조 대상이 아니다. 김씨만큼이나 가진 게 없는 가해자한테 배상을 요구할 형편도 안 된다. 남편 남씨는 “한많은 세상 털고 가는 것조차 이렇게 힘들지 몰랐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단체들은 “국내 서비스 업종에서 보조일을 도맡다시피 하고 있는 재중동포 여성들 상당수가 업소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성폭력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한다. ‘재중동포의 집’ 김해성 대표는 “최근 여성 재중동포 33명을 설문조사했더니 이 가운데 19명이 ‘성적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며 “동포 여성들 사이에 ‘식당 등 업소에서 먹고 자면 위험하다’는 말이 돈 지 오래지만, 가해자들이 가족에게 알린다고 협박해 입을 막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강남 고시원 방화·살해 사건 희생자 여섯 가운데 셋도 근처 식당 등에서 일하는 재중동포 여성들이었다. 김 목사는 “동포 여성의 생활 기반 자체가 안전과 범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우려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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