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랬던가 하루키는 단편 소설 작가라고 불릴 만큼 단편을 너무나 잘 써낸다고. 이 단편도 너무나 좋아서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의 장점은 식탁 앞에 서서 식빵을 먹을 때 꺼내 읽어도 읽을 수 있을 정도인데 내용이 좋아서 식탁 앞에 계속 서서 읽게 되는 소설이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조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내용이다. 조카는 한쪽이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딱히 불편한 건 없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스치는 풍경들. 버스 속 이질적으로 보이는 노인들의 모습과 조카와의 대화. 조카가 치료를 받을 동안 친구의 여자친구를 병문안 갔던 일을 떠올린다. 거기서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이야기를 듣는다.


당시에는 잊지 못할 것 같은 일들도 시간과 함께 점점 퇴색되어 간다. 어떤 기억은 너무나 어렴풋하여 내 기억이 맞나 싶을 때도 있고 무심하게 스친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를 때도 있다. 그 속에 누군가의 나도 속해있다. 나는 그저 스쳐가는 한낱 먼지와 같은 존재로 남을지도 모르고 내내 기억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 단편의 리뷰를 너무나 잘 적은 작가(라고 하겠다)가 있다. 조선대 국문과 2학년 학생으로 이 단편과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그리고 작가 유년의 기억을 토대로 쓴 글이다. 이 리뷰는 2017년에 쓴 글이니까 당시 국문과 2학년이었던 김연우 작가는 지금쯤 좀 더 나은 작가가 되어 있겠지.


이 소설을 관통하는 문장은 [인디언을 보았다는 건, 바꿔 말하면 인디언은 거기에 없다는 뜻입니다 ]이다. 귀가 있다고 해서 모든 걸 듣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어른이 되면 귀가 있어도 듣고 싶은 말만 듣게 된다.


차진우의 수어가, 손동작이 말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건, 말은 말이 하는 것 같은데 수어는 온 마음을 다해서 자신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간관계는 점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선과 면으로 둥글게 이루어져 있어서 멀리 돌아가더라도 당신의 세계로 이어져 있다.


http://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484104 <= 기사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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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많은 것들이 떠오르게 한다. 주인공 타에코의 기구한 삶이 영자의 전성시대의 영자와 혐오스런 마츠코의 마츠코를 닮았다. 영자와 마츠코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타에코의 마음은 그야말로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 타에코 역의 키무라 후미노의 한국어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수어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요 근래에 보는 시리즈에서 기묘하게도 전부 수어를 한다. 사랑한다고 말해줘, 퍼스트러브 하츠코이 전부 수어를 하고 이 영화에서도 영화 내내 수어를 한다. 타에코는 오셀로 최연소 우승자인 9살 아들과 함께 재혼을 하여 생활하고 있다. 전 남편은 몇 해 전에 집을 나간 뒤 생사를 알 수 없었다.

아들 케이타는 엄마와 오셀로를 두는 걸 즐기는 귀여운 아이다. 재혼한 남편 지로는 케이타와 타에코를 사랑하지만 지로의 부모는 타에코를 중고로 본다. 그 눈빛과 따스한 말속에 가시 같은 말들을 뱉어낸다. 대 놓고 너네 싫다고 하는 시아버지보다 늘 타에코의 편을 들어주며 나긋한 시어머니는 진짜 손주를 갖고 싶다며 타에코의 가슴에 통증을 남긴다. 그런 통증이 조금씩 쌓여 깊은 멍울이 된다. 그러둔 중 케이타가 욕실에서 놀다가 미끄러져 머리를 박고 욕조에 담아 놓은 물에 빠져 죽고 만다. 타에코는 욕조에 물을 받아 놓지 말라는 지로의 말을 듣지 않다가 그렇게 된 것이라며 자신을 자책한다.

케이타의 장례식에서 느닷없이 전 남편, 케이타의 생부가 나타난다. 그는 청각장애자로 한국 사람이다. 그동안 노숙자처럼 지낸 생부가 장례식에 나타나 타에코의 뺨을 때리고 자신의 뺨도 때리며 운다. 타에코는 그 뒤로 생부가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한다. 케이타의 죽음과 전 남편의 자립을 도와줘야 하는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당위가 생긴다.

남편을 찾아야 한다며 구청에 매일 오는 타에코를 도와주다 구청 직원이었던 지로는 타에코에게 사랑을 느껴 결혼을 했지만 타에코를 마뜩잖아하는 부모님, 케이타의 죽음 앞에서 눈물이 나지 않는 자신과 갑자기 나타난 생부와 타에코의 수어를 하는 다정한 모습에서 알 수 없는 마음이 인다. 하지만 지로 역시 타에코를 만나기 전 만났던 여자를 만나 바람을 피운다.

이 이야기는 지극히 단조로워 보이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실은 너무나 복잡하고 꼬이고 꼬인 관계와 상실을 잔뜩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생부의 아버지가 위독해서 돈을 빌려 한국의 함안으로 가는데 결국 지로를 버리고 따라나서는 타에코. 그러나 한국에 도착해서 알게 된 사실은 케이타를 낳기 전, 자신을 만나기 전에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해서 그 아들이 결혼을 하는데 거기에 가려는 것이었다.

마지막 일본 집으로 돌아온 타에코는 물건을 사들고 집에 들어오는 지로에게 평소처럼 왔냐며 인사를 하고 같이 배고프니까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마치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한 장면처럼 보이는 대사를 하며 끝난다. 2시간도 안 되는 이야기 속에 우연과 인간의 간극, 관계, 의지와 무관하게 오는 피폐, 선입견 같은 것들이 몽땅 들어있다.

키무라 후미노는 페이블에서 미친 엉뚱 청부 살인마 역으로 하하하였는데 이 영화에서는 감정 연기를 해내고 있다. 남편 지로는 아직 자기 형 에이타의 인기를 따라가지 못하는 거 같고, 한국인 박 씨로 나오는 배우는 읭? 같고, 영화가 고레에다 감독의 느낌이 많이 나서 감독도 사진만 보고 고레에다와 비슷한 연배인가 했는데 응?

인도코끼리 방구끼는 얘기지만 인간은 5세 전까지 부모에게 모든 행복을 다 준다. 그 이후에는 꼭 효도를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은 너무나 이상하게 생겨 먹어서 죽고 못 살 정도로 사랑해도 그게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죽을 때까지 길게 간다면 그건 사랑이라기 보다 흔히 말하는 의리다 의리. 부부가 되면 언젠가부터 대화할 때 서로 눈을 보지 않게 된다. 타에코가 함안으로 와서 야외 결혼식에서 비가 쏟아지는데 상실에 의해 혼이 나간 듯 혼자서 흐느적 춤을 추는 장면은 마더가 떠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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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걸 거의 먹지 못하는 나 같은 인간도 이상하지만 비가 오는 날에 먹는 고추장 불고기는 매콤하게 먹게 된다. 나에게 있어 매콤함이란 매운맛이 강하지 않아서 먹으면 코끝에 땀이 약간 배일라말라 할 정도를 말한다. 맵다고 입에서 쓰으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가 아닌 정도의 맵기가 나에게 있어 매콤함이다. 매콤한 고추장 불고기는 비가 오는 날과 잘 어울린다.


비가 오면 막걸리와 파전을 찾아 먹기도 하고, 뜨거운 칼국수를 먹기도 한다. 비가 오면 어울리는 뭔가를 찾아서 먹는다. 이렇게 겨울비가 내리면 매콤한 고추장 불고기가 어울린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지만 아직 본격적인 영하의 날씨가 아니라 시동을 걸고 있다. 고추장 불고기를 집어 먹고 나면 몸이 뜨거워진다. 그리고 겨울비가 내리는 풍경을 본다. 비는 모든 세상을 적시고 있다. 특히 겨울비가 내린 나뭇가지는 통증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이 통증을 겪어야만 혹독한 겨울의 날이 닥쳐오더라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콤한 고추장 불고기는 이제 갓 지어낸 뜨거운 밥에 어울린다. 뜨거움과 매콤함이 입 안에서 춤을 추고 터지고 팡파르를 울린다. 매일 먹는 밥을 뜨거울 때 먹어본 적이 거의 없다. 갓 꺼내서 먹는 밥의 추억이 있어서 그 맛을 기억하고 있다. 티브이는 끄고 음악을 들었으면 좋겠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면 풍경이 몹시 아련해진다. 거세게 비가 쏟아지지 않아서 80년대 우울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어떤 음악을 틀까. 푹푹 꺼지는 음악으로는 마이 퍼니 밸런타인 같은 쳇 베이커의 음악이 좋다.


하지만 겨울비에 맞게 겨울비를 듣자. 겨울비는 김종서의 겨울비가 있다. 그런데 김종서의 겨울비는 시나위 4집[보컬 김종서, 베이스 서태지]에서 좀 더 록 버전으로 먼저 나왔다. 시작 전에 쏴아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배기량이 좋은 자동차가 그 빗속을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고 담배연기를 뿜어내는 소리 같은 것이 들리면서 기타 리듬으로 시작하는 김종서가 겨울비를 부른다. 김종서의 홀로서기로 부르는 겨울비에 비해서 날 것의 느낌이 확 든다.


나에게도 시나위 4집을 비롯해서 몇 장이 엘피판으로 있었다. 레코드앨범으로 가지고 있는 음반들이 꽤 있었다. 시나위도 그렇고, 판테라, 데미스 루소스는 몇 장이나 되었다. 아프리카의 토토, 알파타우르스 같은 앨범들이 있었다. 카세트테이프는 몇 개가 남아 있는데 왜 싹 다 없어졌을까.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 같은 김종서가 사랑해, 행복한 순간들을 부른다. 이 부분에 접어들기 전에 이 풍부한 록 사운드가 너무나 좋다. 드럼소리가 확 치고 나오면서 기타와 베이스의 사운드가 풍부하게 터진다. 그 사이로 김종서의 겨울비처럼 가는 목소리가 점점 시동을 걸어 샤우트된다. 좋다.


시나위의 겨울비 https://youtu.be/BRjX6aziD9U?si=j88dbyMzdkZB2QdE


학창 시절에 시나위를 어두운 음악 감상실에서 많이도 들었다. 그때 디제이가 신대철이 딥퍼플의 곡을 따라한 곡들을 들려주었는데 그때는 그게 뭔가 응? 이럴 수가? 같은 느낌이었다. 양가적 감정이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와 어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가 동시에 들었다.


딥 퍼플의 ‘마이 우먼 프롬 도쿄’는 정말 노래가 좋다. 딥 퍼플의 그 아이덴티티가 집대성이 된 노래처럼 들린다. 표지의 여인이 오노 요코처럼 보이는 앨범인데 당시에 디제이가 들려주었다. 이게 정말 비슷하다. 딥퍼플의 강력한 보컬에 비해 김종서의 목소리가 떨어지지만 또 김종서의 매력으로  [마음의 춤]을 부른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혹시 한 번 찾아봤더니 정말 유튜브에는 모든 것들이 다 있다.

https://youtu.be/ZPhEPrelZ1I?si=M_IrvE64R6C98tcV


한 번 들어보시라. 내가 학창 시절에는 인터넷도 없고, 그래서 사람들이 뭐 노래가 좋으면 그만이지 같은 생각이 있었다가 근래에 들어 아마도 신대철이 서태지의 표절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시나위 표절에 대해서 걸고넘어지는 것 같다. 시나위 하면 가장 유명한 노래 중에 ‘크게 라디오를 켜고’다. 임재범이 보컬이었던 시절 굉장했다. 이 노래도 산타나의 [러브]와 너무나, 아주 비슷해서 사람들이, 특히 시나위 팬들이 읔 하기도 했다.

https://youtu.be/EeHWqaFVZpA?si=N58fYIAIBrhiLawS


아무튼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강하게 떨어지지도 않는다. 일기예보와 달리 강풍도 없고 그렇게 춥지도 않다. 마치 2월의 졸업식 날에 내리는 비 같은 기분이다. 김종서가 겨울비를 부른다. 사랑해~~ 행복한 순간들~~~라고 노래를 부른다. 매콤한 고추장 불고기를 먹는다. 겨울의 비를 본다. 이 겨울비가 내리고 나면 차갑고 긴 겨울이 몇 달간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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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에 방송한 무라카미 라디오에서 하루키는 비틀스의 전설적인 앨범 [서전트 페퍼스~]의 커버 곡들을 소개했습니다. 지난번에 비틀스의 영원한 라이벌 비치 보이스의 전설적인 앨범 [팻 사운드]의 커버를 소개했는데요. 이번에는 비틀스의 앨범입니다. 개인적인 편견이지만 하루키의 라디오 방송을 들어보면 거의 톤을 유지합니다. 그런데 하루키도 인간인지라 비치보이스나 비틀스 이야기를 할 때는 왠지 좀 들떠 있는 것 같아요. 뭐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하루키는 늘 무라카미 라디오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곰방와, 무라카미 하루키 데스] <= 이 멘트가 책자로 나온 무라카미 라디오가 진정으로 라디오 방송의 시그니처가 되어 버렸습니다. 몇 해전 단발성, 딱 1회로 무라카미 라디오를 진행했던 첫회를 기억합니다. 그 단 한 번의 특별한 라디오 방송이 현재까지 이어져 벌써 55회가 되었네요.


하루키가 아주 즐거워하며 방송을 했을 때가 가수 사카모토 미우와 함께 방송을 할 때입니다. 사카모토 미우는 목소리가 정말 좋은데요, 뭐랄까 토란잎에 맺힌 물방울 같은 그런 느낌의 목소리입니다. 그녀와 함께 신나게 방송을 했어요. 사카모토 미우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딸입니다.


하루키의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네요.


비틀스의 이 앨범은 무려 27주간 엘피주간 1위를 차지합니다. 1967년의 일입니다. 대단하네요.라고 하루키는 운을 뗍니다. 지난번에 비치 보이스의 [팻 사운드]의 커버를 방송했는데 그 시리즈의 연장입니다. 어느 음반이나 나왔을 때 동시대적으로 듣고 있었는데 각각 굉장히 신선한 숨결을 10대의 내 마음에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 음악을 들으면, 여러 가지 추억이 생생하게 되살아 납니다.


역사적으로 명반이라고 불리는 앨범을 지금 들으면 별로 감이 오지 않는 것도 꽤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서전트 페퍼스~]나 [팻 사운즈] 앨범은 지금 들어도 그 신선함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그 당시 돌출된 진짜 오리지널리티와 음악적인 질 높은 수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대를 타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밀고 나가는 힘을 가진 음악이었습니다. 지금 10대 소년소녀분들이 처음 이 음악들을 듣고 어떻게 느끼실지 저는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들의 마음에도 잘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루키의 소설 속에 음악이 등장하면 그 음악 하나하나가 소설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요. 음악을 향한 하루키의 사랑이 소설의 이야기에 스며들어 음악이 나오면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됩니다.


한 시간가량 이어지는 방송에서 하루키는 신나게 비틀스의 노래를 이야기하고 틀어주다가 중간에 이쯤에서 지루하겠지 하며 영화에 등장한 비틀스 음악에 관한 이야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하루키 에세이를 읽는 기분이 듭니다. 아무튼 유쾌한 하루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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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보는 하늘인데 오늘은 구름이 심심한지 그림을 그려 놨다. 저렇게 보여도 5분을 고개를 꺾어 계속 보고 있으면 어느새 그림의 형태가 달라져 있다. 그 말은 현실적으로는 지구가 움직인다는 증거다. 다른 말로 하면 구름은 늘 어딘가로 뻗어가고 싶어 한다.


이런 멋진 장면을 이렇게 밖에 담을 수 없는 건 순전히 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직 아이폰 8을 쓰고 있어서 밤에는 이렇게 멋진 장면도 이 정도로밖에 담을 수 없다. 저 하늘에 뜬 저 반짝이는 별들이 밑의 아주 밝은 인공조명에도 굴하지 빛을 내고 있어서 점처럼 보이는 저 별의 존재가 안타까우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일 시끄러운 정국과는 다르게 데카브리를 파고든 4월의 날씨는 포근하고 고요하기만 하다.


무슨 사연이 있을까. 아직 입어도 될 법한 재킷인데 이렇게 길거리에 내팽개치듯 버려져 있다. 도로나 길거리에 신발이나 옷이 떨어져 있으면 무슨 사연이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일부러 와서 버리지는 않을 테니까. 야간의 다운타운가에는 사람들이 북적북적 인다. 모두가 밝은 표정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모두 하나씩의 고민은 있을 것이다. 다 사연이 있다. 그 사연들을 한 번씩 들어보고 싶다. 저 버려진 옷에 얽힌 사연도 보고 싶다.


포근한 밤하늘의 심심함을 나뭇가지가 채워주고 있다. 나무는 더 이상 위로 자라지 않는다. 그 대신 땅밑으로 뿌리는 계속 자란다. 어둠 속으로 뿌리를 뻗어서 당당하게 맞선다. 그래서 가끔 나무는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좀 더 가까이서 보면 저기 저 별이 존재를 빛내고 있다. 하늘이 뿌옇고 흐른데도 저 별은 수십만이나 떨어진 이곳까지 존재를 알리고 있다. 마치 쳐다보는 사람과 교신이라도 할 것처럼.


날도 푸근하지만 바람 한 점 없어서 세상이 멎은 것 같은 날이다. 적요하고 적막하기까지 하다. 이곳까지 시끄러운 자동차의 소음이 도달하지 않기에 가만히 있으면 그야말로 정지한 세상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데카브리가 되면 다리에 조명이 춤을 춘다. 그에 맞게 저 불빛은 하늘로 올라올라 별까지 닿고 싶어 한다. 올해는 그 흔한 머라이어 캐리의 캐럴송도 들리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캐럴이 소멸했다. 날도 따뜻하고 포근하다. 교회마다 화려한 장식들도 없어졌다. 도시는 점점 거대화되고 기능적으로 변하지만 감성적인 부분은 사라지고 있다. 도시에서는 나도 어르신도 모두가 빠르게 걷는다. 도시와 시골의 시간의 흐름은 다르다. 아이와 어른의 시간처럼.

가끔 사람들이 나에게 긍정적이세요,라는 말을 한다. 나는 긍정적이지 않다. 단지 사람들에게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으로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들리는 것뿐이다. 나는 오히려 긍정보다는 비관적인 부분이 많다. 비관주의자는 아니지만 늘 긍정적 사고를 하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지내와서 지금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해서 딱히 바꿔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소심한 성격이지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지낸다면 그것으로 그냥저냥 만족하는 편이다. 여러 사람들을 위하고 누군가를 위로하는 사람보다는 그저 한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 애쓰며 지내는 그런 축에 속한다. 그런 소심함을 연소 삼아 매일 태워가며 조금씩 글을 쓰고 있다. 나의 소심함과 긍정적이지 못한 부분 같은 것들이 글을 쓰는 연료다.

아무래도 큰 소리로 인사를 하는 것도 사람들이 나를 긍정적으로 보는 약간의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청소하시는 이모님을 매일 만나면 허리를 굽혀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그렇게 2년 가까이 지내다 보니 이모님들이 빵도 주시고, 귤도 주시고, 책 읽고 있으면 와서 책 이야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나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보이는 걸까.

어제 김장김치를 받아서 수육과 함께 얼마나 먹었던지 아직도 소화가 안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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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3-12-14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근사하네요. 저도 오늘 구름 사진 찍었어요. 완전 예쁘더라고요.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하지 않게 된 문화가 전 섭섭하더라고요.

교관 2023-12-15 11:34   좋아요 0 | URL
오늘은 또 비오는 하늘이네요. 겨울비 오는 하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