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안성탕면이야!


라면을 끓인 건 순전히 토마토 때문이다. 근 몇 년 동안 일반 토마토를 먹지 않고 대부분 방울토마토만 먹어 왔는데 얼마 전에 일반 토마토를 구입을 했다. 일반 토마토지만 방울토마토보다는 큰데 우리가 알고 있는 토마토보다는 좀 작은, 그런 토마토였다. 그러니까 한 세 번 베어 먹으면 다 먹어지는 정도의 토마토다. 근데 너무 맛있는 것이다.


방울토마토도 요즘은 너무 달아서 이거 뭐야? 할 정도가 되었다. 좀 가격이 저렴한 방울토마토는 아따 마 정말 맛에서 멀어졌고. 그래서 중간 토마토를 먹었는데 예전 어린 시절 여름에 엄마가 쑹덩쑹덩 썰어서 설탕을 착 뿌려주던 그런 토마토의 맛이었다. 그래서 우걱우걱 하루에 한두 개씩 먹게 되었는데.

이걸 다시 사러 갔더니 없었다. 그래서 큰 토마토를 구입했다. 야심 차게 한 입 콱 깨물었는데 너무 딱딱했다. 그리고 맛이라고는 어후. 맛이 없어도 이렇게 맛이 없을 수 있을까. 그냥 산에서 뜯은 풀을 먹는 맛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걸 다 먹으려면 라면에 넣어서 같이 끓여 먹는 수밖에 없다. 일단 라면에 들어가서 같이 폴폴 끓게 되면 맛있게 된다.


내가 라면을 많은 종류를 먹어본 건 아니지만 몇 종류 먹어본 내 나름대로의 결과 계란을 풀어 먹기 에는 안성탕면이 최고다. 안성탕면에 계란과 파가 잘 어울린다. 거기에 토마토를 넣어서 끓였는데도 맛있다. 저기 하얀 거, 살포시 드러나는 저 하연 저거, 저건 바로 떡국떡이다. 젓가락으로 휘저으면 넙치처럼 바닥에 떡국떡이 먹음직스럽게 붙어 있다.


라면은 언제 먹을 때 가장 맛있을까. 지금이다. 바로 지금 먹는 라면이 제일 맛있다. 이렇게 맛있는 라면을 먹으며 그만 실수를 한 것이 뉴스를 보고 말았다는 것이다. 뉴스를 절대 보지 않으려고 정말 애쓰고 있는데 느닷없이 불어 닥치는 바람처럼 뉴스를 보고 말았다. 사흘 만에 행정업무는 다시 망가졌고, 빠니통렬은 헤헤 즐겁게 해외에 있고, 한국에서 열심히 이전에 행정업무 마비되었을 때 원인을 찾고 있을 줄 알았던 장관은 여기에 없고, KBS 뉴스에서는 영국방문한 장면을 5분 넘게 보여주고, 네이버 사회면에도 정작 나와야 할 뉴스(마약에 관련된 검사 의혹 뉴스는 1도 보이지 않는다)보다는 황의조 이야기만 도대체 몇 꼭지야. 세계에서 제일 물가가 비싼 뉴욕에서 파는 식빵보다 한국에 7배인가 더 비싸고. 정치인과 장관은 지방을 다니면서 총선에 관련된 행보를 하면서 전부, 모두 다, 국민을 위해서라는 말을 하는데 지금 현재 뉴스에 나오는 정치인들의 말과 행보에 국민은 전혀 없다.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의 무시무시한 대사가 떠오른다.

"밖에 나가 보세요, 바뀐 거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은 그. 대. 로. 야."


좀 이상한 한국에서 무너지지 않고 매일 열심히 한국을 굴려가고 있는 일반인들, 국민들이 대단할 뿐이다. 개콘이 다시 나왔지만 왜 망하는지 정말 잘 보여주는 요즘이다. 영화가 왜 사람들의 관심을 잡아당기지 못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뉴스가 매일 쉬지 않고 흘러나오고 있는 요즘, 안성탕면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유튜브를 뒤져 레이를 보자. 레이를 보면서 그냥 행복하자.


레이 아가씨 T예요? 큐티? 프리티? 애프터눈 티~☕️ https://youtu.be/rWY98qqgrBs?si=RWYZ3ifFOGIhx8K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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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유와 미를 구분할 수 있는 건 오직 얼굴에 난 점이다. 점의 유무 빼고는 모든 것이 똑같은 쌍둥이 유와 미. 아직 첫 생리도 하지 않은 파릇파릇 십 대 쌍둥이 소녀는 둘이 붙어 다니는 것이 좋다. 엄마는 돈이 두 배로 든다며 늘 잔소리고, 엄마가 그렇게 하는 것에는 너무나 좋은 아빠가 빚더미에 앉아 있다는 것이다.

유와 미는 그래서 쌍둥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시험도 대신 치고, 식당에서 밥도, 극장에서 한 장의 표로 어째어째 들어가서 먹거나 관람한다.

나, 이 쌍둥이가 극장에서 보는 공포 영화도 봤다는 사실. 예전에 리뷰를 했을 텐데. 태국 공포 영화는 무섭지만 대부분 슬프다. 내가 본 태국 공포 영화는 그렇다. 머리만 동동 떠다니는 태국 귀신도 참 힘들어.

영화 속에서 다마고치를 해서 뭐야? 도대체 언제야? 했는데 영화 속 배경은 1999년이다. 그래서 이 순진한 쌍둥이는 세계 종말의 뉴스를 보고 할머니 이름으로 외상 해서 비상식량을 엄청나게 사 왔다가 엄마에게 혼나는 그런 십 대 소녀들이다.

반짝반짝 상큼한 과즙 같은 유와 미, 이 쌍둥이 중 유가 마크라는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변화를 겪게 된다. 마크를 만나는데 유 대신 미가 나갔다가 물에 빠지기도 하고, 마크는 쌍둥이 악마에게 속는 기분이 이런 거라며 즐거워한다.

커플이 친해질수록 쌍둥이는 조금씩 멀어지고 마크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과연 이 쌍둥이는 어떻게 될까.

영화 속 모든 배경이 전부 예쁘다. 학교며, 동네며, 강이나 가정집 모든 배경이 아주 예쁘다. 점 빼고는 모든 것이 똑같은 유와 미의 다른 점을 알아가는 마크. 파릇파릇 십 대 성장 스토리는 나라를 막론하고 재미있다. 모든 일들이 재미있고 평범한데 생리를 겪게 되고 사랑을 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이야기 ‘유앤미앤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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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생활 속 오류들에 이어 오늘도 생활 속 오류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지난번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딱히 과학적이거나 정확한 통계는 없다. 그저 생활 속에서, 나의 주위에서 또는 나에게 일어나는 일상 속 오류를 말하는 것이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귤이 언젠가부터 당도가 강해서 별로라는 글을 한 번 쓴 적이 있는데 – 그래서 쎄그랍고, 씨그러운 옛날의 귤이 지금의 당도가 강한 귤보다 낫다고 했는데, 누군가 댓글에 귤 농민들을 다 죽이는 글이라며 비난을 엄청 하고 갔는데 오버는 하지 말자는 것이다. 모든 과일이 전부 당도가 강한데 겨울 한 철 먹는 귤 정도는 그렇게 달지 않아도 괜찮잖아.


오늘 이야기할 오류는 “어? 내 귀가 왜 그래?”이다. 내 귀가 왜 양쪽이 이렇게 다르지? 같은 말을 많이 듣는다. 자신의 한쪽 귀가 다른 쪽 귀에 비해 많이 눌려 있거나 위치도 수평이 아니라 다른 쪽 귀에 비해 밑이나 위로 올라가 있다.


뭐야? 도대체 양쪽 귀가 왜 이렇게 달라?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양쪽 귀가 똑같기가 사실 참 힘들다. 양쪽 귀가 같아야 정상인데, 양쪽 귀가 똑같으면 그게 좀 이상하다. 무슨 말인가 한다면 보통 대부분의 사람은 한쪽으로 누워 잔다. 그러다 보면 누운 쪽 귀가 눌려 있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귀는 우리 몸에서 유일하게 통감이 없다. 그래서 귀를 많이 뚫어도 아픈 줄 모르고, 엄지와 검지로 귀 앞뒤를 있는 힘껏 눌러도 전혀 아프지 않다. 마치 “그래? 한 번 해 볼 테면 해봐”라는 식이다. 그런데 머리는 몸에서 가장 무겁다. 책상에 엎드려 팔베개를 하고 잠이 들면 10분 만에 팔이 저려 일어나야 한다. 그만큼 무거운 머리가 피를 통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서운 머리로 매일 7시간에서 8시간씩(뒤치닥 거리기도 하지만) 귀를 누르는데, 아프다 소리도 지르지 못하는 귀는 그대로 머리의 무게에 눌릴 수밖에 없다.


보통은 머리카락으로 귀를 가리고 있으니까 양쪽 귀에 대해서 평소에 아무 생각이 없다가 귀를 드러내고 정면에서 보면 어? 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손거울로 귀를 볼 때에는 귀가 잘 보이도록 얼굴을 약간 돌려 귀를 본다. 증명사진을 찍듯 정면으로 머리를 걷고 정확하게 보면 귀는 양쪽이 짝짝이다. 오른쪽 귀가 왼쪽 귀보다 약간 위에 붙어 있는 경우도 있고, 모양이 완전히 다른 경우도 있고, 한쪽 귀가 뭔가를 움켜잡듯 오므라든 귀도 있다.


여기에서 우리의 오류가 발동한다. 그렇게 양쪽 귀모양이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오류다. 자신의 상황을 난생처음 접하기 때문이다. 양쪽 귀 모양이 달라지게 되는 건 한순간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닌데 오늘 뭔가에 의해서(그 뭔가는 딱히 정해져 있진 않지만) 그렇게 달라졌다는 오류를 행한다. 이렇게 귀모양이 양쪽이 다르게 되는 건 긴 시간 동안, 오랫동안 꾸준하게, 매일매일 서서히 귀 모양이 그렇게 달라지게끔 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다.


인간의 몸이 왼쪽 오른쪽이 같아야 정상이겠지만 같으면 그건 너무나 이상하다는 거다. 양쪽 귀모양이 다르듯 목길이도 왼쪽 오른쪽이 대부분 다르다. 습관 때문이다. 여러 잘못된 습관이 있겠지만 대체로 한쪽으로 음식을 씹는 습관이 목길이를 왼쪽 오른쪽 다르게 하고, 한쪽으로 턱을 쏠리게 만들고, 입꼬리를 한쪽으로 올라가게 만들고, 입술이 한쪽이 더 길게 된다.


솔직히 양쪽으로 골고루, 한 번에 스무 번 이상씩 음식을 씹어 먹을 수가 없는 현재다. 일단 양쪽으로 골고루 씹으려면 먹는 음식이 그만큼 씹을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멸치볶음이라든가. 고사리무침, 스테이크(레어면 좋지만 다 익어도 많이 씹을 수 있는)나 장조림, 생당근처럼 입에서 오랫동안 씹을 수 있는 음식을 자주 먹어야 하는데, 주로 찾는 식당에서 먹는 음식들이 대부분 입안에서 잘 허물어지는 음식들이다. 스파게티, 부대찌개, 설렁탕, 어묵, 만두 등, 그리고 정크푸드 – 햄버거나, 감자튀김 같은 음식을 주로 먹기 때문에 몇 번 씹지 않고 넘긴다. 그렇게 대부분 한쪽으로 씹을 수밖에 없다.


‘콩나물무침밥’ 같은 음식을 파는 식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주위에는 일단 존재하지 않는다. 문을 열고 나가면 대부분 분위기 좋은 스파게피, 파스타, 돈가스 가게들이 죽 나올 뿐이다. 기사식당에서는 많이 씹을 수 있는 음식이 가득 하지만 기사식당을 찾아서 먹으러 가지 않는 이상 힘들다. 주위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 중에서 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편의점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심각김밥에 컵라면은 정말 천상의 맛이지만 많이 씹을 수는 없다. 1인 가구가 4인가구를 넘어버린 현시점에 홀로 집에서 많이 씹어 먹을 수 있는 반찬으로 밥을 먹을 수는 없다. 라면을 끓여 먹다 보면 알겠지만 한쪽으로 대충 씹고 넘기게 된다. 어쩌다 괜찮은 식당에서 좋은 반찬으로 식사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어. 쩌. 다.이다.


그럼에도 왼쪽 얼굴과 오른쪽 얼굴이 대칭인 사람, 입술의 양쪽과 콧구멍(이 의외로 한쪽 콧구멍이 큰 경우가 많다. 조심하자), 그리고 귀 모양이 양쪽이 비슷하다면 그 사람은 남들에 비해 열심히 양쪽으로 씹는 노력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반인보다는 연예인은 정도가 덜하다. 왜냐하면 카메라에 한쪽은 잘 나오는데 한쪽이 잘 나오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 회사입장에서 계약을 한 연예인은 상품이기 때문에 상품에 하자가 있으면 안 된다. 그래서 매니저를 두어 늘 자세를 바로 잡게 하고, 음식도 골고루 씹어 먹게 한다. 관리를 해준다. 그럼에도 간혹 유튜브에서 잘 나가는 연예인이 카메라를 켜고 개인 방송에서 나는 이쪽 얼굴이 더 잘 나온다 같은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관리를 철저하게 받는 연예인들도 때로는 한쪽이 더 나은 경우가 있을 정도로 얼굴의 양쪽이 같아야 정상이지만 같으면 이상한 현실이다.


우리의 오류는 더 나아가 다리길이가 양쪽이 같은 줄 알고 있다. 다리 길이는 오전에 같더라도 오후에 다를 수 있고, 많이 걷는 날에 다를 수 있다. 생각해 보라, 쇠로 된 철길도 여름에 늘어나고 겨울에 줄어드는데 인간의 다리 정도가 왼쪽 오른쪽이 매일 같을 수 있을까. 확인하는 방법은 하루를 열심히 보내고 난 후 잠들기 전 침대에 앉아서 다리를 쭉 뻗고 체크를 해보면 된다. 어제 같더라도 오늘 다를 수 있고, 오늘 같더라도 내일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뭘 해야 해? 당연하지만 운동을 해야 한다. 스트레칭을 매 시간 해주면 좋고 – 한 시간 의자에 앉아 있으면 몸은 한 시간 동안 망가지게 된다. 화장실에 갈 때 그때 3분 정도 스트레칭을 하고 7분 똥을 싸고 오면 된다. 똥은 어지간하면 5분 미만에 끊는 게 좋다. 여하튼 사람들 중에 똑바로 걷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당장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유심히 보자. 걸음걸이가 전부 이상하다. 가방, 핸드백을 한쪽으로 매고 들지, 높은 굽의 신발에, 걸음걸이가 천차만별이다. 가끔 뒷짐 지고 천천히 동네를 걷는 어르신을 보는 경우가 있는데 어쩌면 그게 바른걸음일지도 모른다. 모델처럼 걸어야 하지만(십일 자로 교차하듯이) 친구나 동료나 가족과 함께 걸어야 할 때는 절대 그렇게 걸을 수 없고, 아이들이나 아기를 데리고 나가서 걸을 때 역시 제대로 된 걸음걸이로 걸을 수 없다. 뒷짐을 지면 무게 중심이 앞이 아니라 뒤로 약간 젖혀져서 괜찮은 자세라고 한다. 


그리고 뉴스를 볼 때 아나운서를 보는 재미 중 하나가 어깨나 얼굴의 비대칭이 심한 아나운서도 있다. 옷이 한쪽으로 쏠려 있거나 턱이 한쪽으로 가 있는 경우가 있어서 안타깝게 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정말 완벽과는 거리가 먼 게 인간이지 싶다. 가만 내버려 두면 이상하게 진화할 것이 분명하다. 나의 귀가 양쪽이 같은 것이 어쩌면 평범한 것인데, 이 평범하게 보이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 알게 된다. 평범한 것을 지키려면 처절할 정도로 노력을 해야 겨우 유지가 된다. 잘못된 습관과 잘못된 자세를 바로 잡는 것은 죽기만큼 힘들 수 있지만 그렇게 힘들게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쉽게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는 평범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나도 그렇고 생화 속에서 드러난 나의 오류는 빨리 받아들이고 제대로 돌리려고 노력을 하는 수밖에 없다. 하루 24시간 중 많은 시간을 앉아서 편안하게 보내니까 어쩔 수 없다. 편안할수록 나의 몸은 비틀어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오늘은 시를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김선우 - 새처럼 자유롭고 싶다고?    

 

멀리 갔다 돌아오는 새들  

   

날개 끝에서 흩어지는 불꽃들     


어딘가 도착하기 위해선

바람을 탄 채 바람에 저항하며

스스로 방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보다 묵직한 장엄은-     


날기 위해선 어딘가에 발 디뎌야 한다는 것

생명은 몸 닿을 곳이 필요하다는 것

‘새처럼’이 아니라 ‘새조차도’라는 것

날개는 발 다음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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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대체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의 모습은 전부 제각각이다.라는 안나 카레니나의 시작을 알리는 이 문장이 아마 이 소설을 관통하는 맹점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은 불면으로 인해 안나 카레니나를 새벽에 읽는다. 하지만 이내 잡생각에 독서가 되지 않는다.


하루키의 단편 소설 ‘잠’은 여성이 주인공 1인칭으로 나오는 몇 안 되는 소설 중 하나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은 ‘하나레이 베이’와 신장돌이 움직이는 소설과 남편을 찾아달라는 단편 소설이 떠오른다.


주인공은 불면으로 인해 그간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생을 생각하고 과거를 떠올린다. 책벌레였던 자신은 도대체 읽은 책을 한 권도 기억할 수 없다. 인간의 삶은 왜 이토록 급격히 변해버린 걸까. 뭔가에 씐 것처럼 마구 책을 읽어대던 나는 어디에 가버린 것일까. 그 세월 기이할 만큼 강했던 그 열정은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러나 다시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니 깊게 빠져들어 단숨에 안나 카레니나와 브론스키가 모스크바의 철도역에서 만나는 순간까지 단숨에 읽어 버린다. 학창 시절에 읽었을 때는 몰랐지만 다시 읽은 안나 카레니나는 신기한 소설이었다. 안나 카레니나는 무려 116쪽까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다가 주인공은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주인공은 학창 시절에 불면에 시달렸던 때를 떠올린다. 그 두텁고 답답한 구름 같은 것에 휩싸인 갑갑함. 지금은 그때처럼 참아낼 수 없을뿐더러 아내이자 엄마로 책임이 있다. 잠들지 못한다면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을 책임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인공은 안나 카레니나의 뒷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했다. 그래서 해가 밝아올 때까지 단숨에 소설을 읽었다.  새벽이 되자 의식과 육체는 어딘가에서 어긋나 버려 고장 난 것 같았다. 주인공은 굉장한 공복으로 싱크대 앞에 서서 샌드위치를 두 개나 만들어 먹고 커피도 두 잔이나 마셨다.


이후 어떻게 될까. 소설 '잠'은 3장으로 이어진다.


주인공은 이후에도 불면의 여러 날을 보내면서 기이하고 알 수 없는 기분과 경험을 하게 된다. 하루키는 이 소설을 슬럼프를 겪고 난 후 적은 소설이라고 했다는데, 어디서 그런 말을 했을까. 하루키는 언제나 소설이 안 써지는 날이 없고 슬럼프 같은 것에 빠지는 일도 없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 소설에도 유전자에 대해서 나오는 부분이 있다. 주인공은 불면으로 잠이 오지 않아 침대를 빠져나오고, 소리를 내도 남편은 죽은 듯이 잠을 잔다. 다시 방에 들어와서 봐도 몸 한 번 뒤척이지 않고 잔다. 주인공의 아들 역시 아빠처럼 죽은 듯이 잠을 자고 있다. 결국 사랑하는 가족과 한 침대에 들어도 잠은 혼자 드는 것이다. 모두가 잠들 때 혼자서 불면에 시달리면 고립이라는 불안을 싹트고 고독해지는 시간을 맞이한다.


하루키의 단편소설은 재미있다. 읽고 나면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이제 잠들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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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깅을 하는데 날이 부쩍 추워져서 달리다가 잠깐 쉬면 등에 난 땀이 식어 버려서 마지막까지 쉬지 않고 달려야 했다. 어제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옛날의 모습이 남아있는 곳은 한 동네밖에 남지 않아서 그곳으로 왔다. 골목이 있고 80년대 지어진 주택들이 죽 붙어 있다. 그곳으로 돌아오는데 저녁 8시경인데 주택의 주인으로 보이는,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창문에 문풍지를 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예전 마당이 있던 집에 살 때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11월이 되면 창문이란 창문에 문풍지를 붙였다. 마당에는 깜순이의 집도 있었는데 깜순이의 집도 보온과 외풍에 신경을 써야 했다. 개집은 말 그대로 세모난 그런 개집이었는데 틈이란 틈에 문풍지를 바르고 개집 전체를 비닐로 감쌌다. 생각해 보면 매일 샤워도 할 수 없고 추워서 겨울을 어떻게 보내나 싶은데 기억 속에는 따뜻하게 겨울을 난 기억밖에 없다. 아버지가 일요일에 온 집구석 창문틀에 문풍지를 바를 때 동생과 나는 조수 역할을 하다가 끝나면 모두 앉아서 컵라면을 먹었다.

조깅을 하고 들어와서 그때 생각이 나서 컵라면을 하나 먹었다. 이제 어른이라 소주도 한잔 곁들였다. 물론 끝내주는 맛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먹던 컵라면의 맛은 분명 아니다. 어린 시절에 먹던 그 맛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은 할 수 없다. 그때의 분위기나 이데아적인 맛을 떠나 후레이크의 맛이나 면발의 맛이 지금과는 다른 맛? 잘 설명은 못하겠지만 그런 맛이 있다.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컵라면을 먹었다. 교실은 외부의 추위와 단절되어서 아이들이 외투를 벗어 놓고 수업을 듣고, 점심시간에 컵라면을 먹곤 했다. 창을 투과하는 빛 사이로 컵라면 뚜껑을 벗기면 올라오는 김이 마치 엑토플라즘처럼 보였다. 아이들이 모여서 호호 깔깔거리며 컵라면을 먹었다. 그때에도 분명 컵라면 안에 들어있는 후레이크의 맛이 강했고 면발의 맛이, 퍼지지 않고 적당히 고들고들한 그런 맛이 있었다. 물론 내가 그렇게 기억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먹는 컵라면과는 다른 맛이었다. 맛있었다. 지금도 맛있지만 다르다. 다른 건 다르다.


요즘의 컵라면은 면이 잘 익기도 하고, 나트륨 때문에 라면 맛의 생명인 그 짠맛이 덜해서 그런지 맛있지만 썩 맛있지는 않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라면을 끓여서 먹던, 컵라면을 먹던 늘 라면에 무엇인가를 넣어서 – 방울토마토나 다진 마늘이나 김치를 넣어서 먹게 되어서 사실 온전한 라면의 맛은 저 멀리 달아나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차가운 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에 컵라면만큼 간단하게 몸을 데워주는 음식도 없을 것이다.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반환점에 있는 벤치에 다가서는데 누가, 어떤 넘이 강아지를 버리고 간 것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단 말이야 하며 달려가니 인형이었다. 강아지 인형. 제기랄. 아주 오해하라고 옷까지 벗어서 그 위에 강아지 인형을 올려놓고 사라졌다. 사진으로 봐서 인형이지 저 멀리서 보면 강아지 새끼로 보였다. 춥지만 야외조깅을 하면 이런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본격적인 추위가 닥치기 전, 일주일 전인가 위에서 말한 그 골목을 지나서 오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이제 갓 주차해 놓은 자동차 위에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보통 길고양이는 찰칵하는 소리에 발딱 일어나서 갈 텐데 이 고양이는 너무나 새근새근, 따뜻한 보닛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올해도 오늘까지 5일 정도 빼고는 매일 조깅을 했다. 그동안 조깅을 하면서 많은 고양이들을 만났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269


그래서 길고양이의 습성을 조금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자동차 위 잠든 길고양이를 보니 기분이 발롱 발롱 했다. 고양이도 꿈을 꿀까. 꿈을 꾼다면 무슨 꿈을 꿀까.


근데 자동차의 번호판을 지웠는데, 내내 궁금한 건데 번호판을 왜 지워야 하지? 번호판이 드러나면 안 되는 것일까? 밖에서는 번호판을 드러내고 다니는데, 번호판을 보라고 붙여 놓았을 텐데 사진으로 대부분 번호판의 번호를 지운다. 범죄 때문이라는데 사진 속 번호판을 보고 범죄를 지어야지 하며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데. 현실에서 불법주차하고 번호판을 간판 같은 것으로 가리면 벌금 받는 걸로 알고 있는데. 뭐 중요한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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