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의 탕에 몸을 담그고 얼굴에 땀이 흐를 때까지 참고 있는 것이 너무나 싫었을 어린 시절, 겨울이 되면 일주일에 한 번은 아버지와 동네 목욕탕에 갔다. 평일의 남탕은 한산하지만 토요일 저녁의 목욕탕은 분주했다. 계산을 하고 남탕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쏟아지는 목욕탕의 수증기 냄새가 먼저 반긴다.


목욕탕이 아니면 맡을 수 없는 수증기만의 냄새가 있다. 남탕에도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어색하고 초라하지만 작은 장식이 들어서곤 했다. 목욕탕에서 아버지의 등을 밀고 있노라면 신이 나서 더욱 손에 힘을 줬다. 아버지는 잘 민다며, 이제 다 컸네 같은 소리가 듣기 좋아서 양손으로 아버지의 등을 있는 힘껏 밀었다. 뜨거운 탕에는 정말 들어가기 싫었다.


발가락 하나만 넣어도 꼭 누가 때리는 것 같아서 탕 안에 몸을 담그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는 것이 좋아졌다. 그때는 이미 아버지는 곁에 없고 떠나고 난 후였다. 아버지는 나를 먼저 씻긴 다음 내 보냈다. 팬티를 입고 내복을 입고 있으면 그때부터 후끈후끈 몸이 덥다.


아버지는 수건을 돌돌 말아서 머리를 털어 주었다. 탁탁 털어주면 머리통이 얼얼할 정도였는데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아버지가 머리를 터는 동안 머리는 말라갔다. 아버지가 내내 머리를 털어 주다가 언젠가 동네 이발소에서 아버지를 따라 이발을 하고 이발소 아저씨가 수건을 머리를 털어 줬는데 머리가 몸에서 분리될 것만 같았다.


목욕탕에서 밖으로 나오는 그 순간이 아주 상쾌하고 좋았다. 맑고 쨍하고 날카로운 한기가 얼굴에 닿는 그 순간의 느낌이 괜찮다. 집에서 동네 목욕탕까지 걸어서 한 20분 정도 걸린다. 걸어서 오는 동안 나는 아버지에게 뭐라 뭐라 떠들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뭐가 신났는지 팔을 앞으로 뒤로 흔들며 20분 동안 걸어오는 그 길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도로와 학교의 담벼락, 전봇대, 작은 슈퍼. 이런 풍경을 생각하다 보면 가끔 꿈에 그 정경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게 집으로 오면 어머니가 저녁밥을 차리고 있다. 동생과 나는 저녁밥상 앞에 나란히 앉아서 밥을 먹었다. 겨울에는 마른 김에 밥을 싸 먹었다. 김이 혀에 딱 달라붙을 때 아버지는 된장찌개를 한 숟가락 떠 넣어 주었다. 네 가족이 조촐한 저녁밥을 먹으며 깊어가는 겨울밤을 따뜻하게 보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몰라도 하하 호호 즐거웠다. 그때의 추억을 연료로 조금씩 연소시키며 살아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용하고 싶을 때 시끄러움 속으로 들어간다 소음 속에서 나만의 하나의 소리를 찾는다. 소음공해는 시끄럽지만 소리는 마음을 고요하게 해 준다.

그것이 흐름이라는 거야. 그 흐름이라는 건 어느 지점을 통하고 나면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거야. 손을 쓸 수 없는 거야. 음악이 울리는 동안에는 어떻든 춤을 추는 거야. 의미 같은 건 애당초 없는 거야. 양사나이는 말했다.

거스턴의 그림, 커플인 배드가 세상에서 제일 로맨틱한 거 같애. 피곤에 찌들어 침대로 들어 사랑하는 이를 껴안고 잠이 들어.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더 사랑스러운 거 같아. 이불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잠이 들거나, 입술을 보며 피곤에 겨워 깜빡 잠들어 가면서 사랑한다고 속삭일 수 있잖아.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여러 이야기를 상상하게 돼. 로맨틱하면서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저 그림 속에 있어. 그래서 안타까워, 그래서 사랑스러워, 그래서 덜 불행해 보여.

약이 떨어졌다. 약을 먹어야 하는데, 약을 먹어야 할 텐데. 아픈 게 싫어서 아프기 전에 미리미리 약을 먹어야 하는데 약이 떨어졌다. 아파서 누워있는 것도 싫고, 아파서 모호한 정신으로 부옇게 보이는 세상도 싫어서 약을 먹어야 한다. 아무리 찾아도 약통에 약이 없다. 약이 떨어질 리가 없는데 약이 없다니. 이럴 때 무력감을 느낀다. 아픈 것과 다르게 무력감은 무럭무럭 자라서 생각을 갉아먹고 뇌를 씹어 먹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누군가는 지난 거 생각해서 뭐 하냐고 하겠지만, 그 말이 맞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은 추억을 조금씩 연소해가며 살아간다. 그 추억이 다 했을 때 그때는 행복하게 눈을 감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8, 90년대 홍콩 영화는 홍콩뿐 아니라 많은 세계인들에게 하나의 상징이었다.

어린 시절 이를 악물도록 가르쳐준 사부 덕분에 감독이 된 홍금보.

교실에서 오줌을 쌌을 때 물병을 일부러 쏟아서 화장실로 데리고 간 웡 선생님, 언제나 아이들 편이었던 웡 선생님, 따뜻한 마음을 가졌지만 심장 문제로 일찍 떠난 웡 슈퐁 선생님은 나이가 들었어도 그때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살아있다.

손녀딸을 불량배들에게 구해주는 할아버지는 이젠 늙어서 누굴 지켜 줄 수 없지만 손녀를 위해 완강함을 내려놓고 새벽에 햄버거를 두는 원화의 영화.

그 외 90년대 홍콩의 추억을 잔뜩 지닌 7 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감독들의 홍콩 단편선. 영화가 한 편씩 끝날 때 마치 장국영이 노래를 불러주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추억은 마음 저 안쪽에서부터 따듯하게 하지만 때로는 가슴 저 안쪽으로부터 아프게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살아내고 살아가야 한다. 나 또한 누군가의 추억이 될 터이니 살아가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호기롭게 어린이들과 함께 금의 나라 물의 나라 봤다가 뭐야 이토록 사랑스러운, 이렇게나 푹 빠져 보게 되다니, 다 큰 어린이들은 괜찮은데 덜 큰 어른이는 감동의 눈물이. 정말 재미있게 봤다.

사랑에는 국경도, 신분도 초월하며 으르렁하는 국가 간의 대립도 평화로 되돌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랑스러운 사라와 나란바야르.

두 사람의 인연을 끊을 것 같고 지지하지 않을 것 같은, 에, 으, 으잉하게 생긴 초반의 캐릭터들이 통수를 치며 두 주인공을 꾸준하게 도와준다. 그런 모습이 아주 좋다. 특히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두 눈만 내놓은 랴랄라라라랄라(이런 이름임) 님이다.

모두가 힘을 합쳐 사라와 나란바야르, 두 사람이 도망갈 수 있게 변장을 하고 도와준다. 두 사람이 병사들을 피해 도망을 갈 때 흐르는 음악이 정말 좋아서 마음에 물을 준다.

이쪽 나라의 평민과 저쪽 나라의 공주가 서로 부부인 척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에는 국가와 국가 간의 여러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래서 오해가 있고 못 미더운 점이 있지만 사라와 나란바야르는 잘 헤쳐나간다.

결혼해서 타인과 가족이 된다는 건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참을 일이나 슬픈 일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처음 느꼈던 애정이나 사랑은 세월과 함께 점점 닳고 다른 무언가로 바뀌어 간다. 그러니 너는 그때의 아름다움보다 한순간의 즐거움보다 자신의 부모 형제나 그 이상으로 자신을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을 찾아라. 즉, 다과회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비스킷을 말 없는 혼자 먹는 사람은 택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금의 나라 물의 나라는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한다. 사랑을 하고 가족을 이루고, 정치적인 문제, 경제, 사회, 그리고 전쟁에 관해서 다 다루지만 흩어지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납득이 되게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아마 방대하게 자료조사를 한 후에 영화에 임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동글동글 공주는 하마베 미나미를 닮았다. 카와이다.

이게 너무 웃기지만 지금 현 정세, 현 정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서 더 빠져들어 보게 된다. 최고 권력자에게 꼭 보라고 하고 싶은 영화다. 올해가 가기 전에 사랑스럽고 싶다면 봐도 좋을 영화 ‘금의 나라 물의 나라’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첫사랑, 말만으로도 행복 충만한 이 시리즈는 정말 첫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1998년 세계적으로 메가히트를 친 우타다 히카루의 오토매틱 앨범의 ‘퍼스트 러브’와 '하츠코이' 두 곡으로로 만들어진 이야기다. 이렇게 노래로 영화를 만들어 흥행을 한 건 줄리아 로버츠의 ‘귀여운 여인’이다. 귀여운 여인은 너무 좋아서 몇 번을 봤는지 모른다. 요즘에도 케이블에서 하면 채널 멈춤 해서 또 보게 된다.

이 이야기는 첫사랑 그녀와 헤어진 후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녀와 헤어지게 된 건 사고로 야에가 기억을 잃었기 때문이고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하루미치와 야에. 그러나 야에는 하루미치가 누군지 모르지만 그를 사랑하게 된다. 마치 첫사랑을 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동안 각자의 가정과 생활이 있다. 야에는 중학생 아들이 있고 아들은 이혼한 전 남편과 살고 있다. 하루미치는 곧 결혼할 사람이 있다. 기억이 나지 않는 야에와 온통 그때의 기억만이 가득한 하루미치. 야에는 외모가 조금 변했을 뿐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에 하루미치는 야에에게 다가가려 한다.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간다. 과거의 이야기가 나올 때 우타다 히카루의 퍼스트 러브가 왕왕 나온다. 나도 우타다 히카루의 노래를 엄청 들었다. 조성모가 인기를 독차지할 땐데 그 사이로 우타다 히카루의 오토매택 앨범을 들었다. 정말 좋았다.

이 감독은 아마 이와이 슌지를 굉장히 좋아하지 않나 싶다. 과거 장면은 마치 하나와 엘리스, 오갱끼데스카를 보는 듯한 영상과 음악 때문에 착각마저 든다. 이와이 슌지를 답습하는 것 같은 화면이라 개인적으로 더 좋더라고.

현재의 야에는 드라이브 마이카의 주인공처럼 택시 기사다. 음악과 기억, 잊을 수 없는 추억,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없어진 말들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첫사랑에 불행이란 없다. 첫사랑에 빠지면 온통 찌릿하고 전류는 그쪽으로 흐르고 한 마디 한 마디가 시가 되고 소설이 된다. 잠들 때 빼고 온통 불안하기만 한 우리에게 첫사랑의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시리즈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

사랑한다고 말해줘와 번갈아가며 같이 봐도 좋을 것 같다. 여기에도 수어가 가끔씩 등장한다. 둘 다 사랑을 표현하는데 온 마음을 다하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