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는 노버트슈완카우스키의 그림을 카피



사랑하는 잠자, 그후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 중 ‘사랑하는 잠자’ 그 후의 이야기


.


.



잠자는 집을 나서려고 했다. 오겠다던 시계공 꼽추 아가씨가 한 달이 지나도록 오지 않아서 잠자는 시계공 아가씨를 찾아 나서려고 했다. 잠자는 아가씨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은 심장의 문제가 아니라 머리가 사고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보고 싶다고 계속 생각하면 언젠가는 틀림없이 다시 만날 수 있어요.라고 말한 것이 잠자의 뇌의 한편에 곱게 쌓인 먼지처럼 머물러 있었다.


시계공 아가씨가 말한 세계의 난리가 더 깊어졌는지 크르르하는 소리가 등을 훑고 지나갔다. 잠자는 가운에서 벗어난 옷을 입고 계단을 내려왔다. 매일 한 시간씩 계단을 오르고 내려갔다. 몸의 총체적 균형을 잡고 걷는 것에 집중을 한 덕분에 이제는 계단을 잘 내려갈 수 있게 되었다.


몸이라는 것이 적응을 하니 이렇게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고 움직인다는 것이 신기했다. 잠자가 그녀를 만나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시계공 꼽추 아가씨와 헤어지면서 그녀가 굼실굼실 입체적으로 몸을 뒤틀며 브래지어를 바로잡는 동작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그녀의 몸 여기저기를 만져보고 싶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온 세상의 여러 계단을 둘이서 나란히 오르내리고 싶었다. 원하면 된다는 그녀의 말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크게 머리에 새겨졌다.


어쩌면 누군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또는 누군가 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그 누군가는 여전히 자신이겠지) 못으로 판자 몇 장으로 창문을 막아 놓은 방에서 모든 것을 치우고 그녀와 같이 잠이 들고 판자를 치운 창으로 들이치는 빈약한 햇살을 받으며 같이 일어나는 상상을 했다.


이봐 잠자, 지금 나가면 안 돼.


잠자는 자신에게 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삐걱거리는 복도의 저편에서 나는 소리였다.


나에게 말을 하는 건 누구지? 이 집에 나 말고 누가 또 있었어?


잠자는 소리 쪽으로 삐죽 나온 귀로 최대한 소리를 들으려고 확실하게 고개를 삐딱하게 돌렸다. 이제 처음 눈을 떠서 움직일 때처럼 관절과 근육의 사용이 미성숙하지 않았다. 만약 공격성을 띠고 새가 날아온다고 해도 지팡이와 쟁반 같은 것으로 방어를 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이봐 잠자, 잘 들어보라고. 나는 자네가 눈을 떴을 때부터 죽 자네를 지켜봐왔어. 자네가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도 알았지.라고 복도 어딘가에서 소리는 잠자를 보고 말했다.


사랑,라고 잠자는 조용하게 말했다.


그래, 사랑 말이야. 하지만 잠자 자네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확실하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 내 말이 맞지?


소리는 음폭의 변화가 없었다. 반드시 잠자에게 무엇인가를 말해야 하겠다는 노력이 없어 보이는 동시에 소리는 반드시 잠자에게 소리를 전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누구십니까?


잠자는 계단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류하고 복도를 걸었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끼익 끼익하는 소리가 났다. 그녀가 수리를 한다며 자물쇠를 들고 가버려 뻥 뚫린 문의 공백이 눈에 들어왔다.


잠자는 잠깐 만났던 그녀가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브래지어라는 것을 움직여 가슴을 고정하는 굼실굼실한 동작을 떠올리니 바지의 앞섶이 부풀어 올랐다. 잠자는 다시 당황스러웠다.


당신, 머리가 좀 모자란 모양이네. 그래도 고추만은 여전히 씩씩하시고.라는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이봐, 잠자. 그래 그녀와 퍽이 하고 싶은가?


복도 저 끝에서 소리는 말했다.


그녀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퍽이 뭔지 모릅니다. 당신도 퍽이 무엇인지 알고 계신 것 같군요.


잠자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조금씩 걸으며 말했다. 오른손에는 인간 잠자로서 다시 걸음을 걸을 때 도움을 받는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잠자는 지팡이를 꼭 쥐었다.


당연하지, 나는 퍽이 뭔지 알고 있지. 아마 잠자 자네만 빼고 어린아이라도 퍽이 뭔지 알고 있을 거야.


저기, 부탁이 있습니다.


잠자가 말했다.


부탁이 뭐냐고 소리는 되물었다.


제가 당신 곁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녀를 만나기 전에 당신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잠자는 소리를 만나서 시계공 아가씨를 만나는 도움을 받기로 했다. 잠자는 소리의 정체를 몰라 두려웠지만 시계공 아가씨를 만날 수 있다면 두려움 같은 건 상관없었다.




#

하루키는 갑충이로 변해 죽었던 그레고르 잠자를 되살렸다. 하루키의 단편 집 ‘여자 없는 남자들’의 모든 이야기가 좋지만 나는 특히 이 단편 ‘사랑하는 잠자’가 너무 좋다. 갑충이로 변해서 죽어 버린 그레고르 잠자를 되살렸기 때문이다. 그래고르 잠자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게 죽었다. 아마도 카프카가 그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살아난, 아무것도 모르는 잠자 잎에 시계공 아가씨가 나타나지만 아가씨가 집으로 돌아가면서 끝이난다. 여러 하루키의 소설처럼 칼로 두부를 자르듯 아쉽게 끝나고 만다. 그래서 그 뒤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이어서 한 번 적어 보았다.


이 표지는 카프카의 ‘변신’ 초판의 표지다. 1914년인가 카프카가 표지를 만드는 일러스트레이터에게 부탁해서 만들어진 책 표지이다. ‘변신’이라는 소설은 안 읽어본 사람도 어떤 내용인지 알고 있는 아주 유명한 고전 명작이다. 소설이란 본디 답이 확실하게 있지 않아서 ‘대답’보다는 ‘질문’이 많아야 한다. 카프카의 ‘변신’은 어쩌면 확실한 답보다는 책을 덮고 난 후 던지는 질문이 더 많은 소설이다.​


이 ‘변신’이라는 소설을 읽은 사람 중에 제대로 읽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중에는 변신을 다시 책으로 만들어내는 출판사도 그중 하나다. 문지혁 작가도 말했지만 특히 책 표지에 벌레나 해충을 그림으로 일러스트 해놓은 카프카의 ‘변신’은 제대로 그 소설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최초 카프카의 1914년 초판 표지를 만들 때 카프카는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절대로 표지에 벌레를 그리면 안 된다고 했다. 벌레가 어디에도 나와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왜 그랬을까​. 백석의 시를 알려면 백석을 알면 시가 무엇을 말하는지 아는 것처럼 카프카의 ‘변신’을 잘 읽으려면, 그러니까 제대로 읽으려면 카프카를 알고 나서 소설을 읽으면 좀 더 이 소설을 읽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카프카는 독일계 유태인으로 이 소설을 독일어로 썼는데 그레고르 잠자를 ‘운거지퍼’라고 표현을 했다. 해충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히틀러가 유태인들을 가리켜 운거지퍼라고 했다고 한다. 카프카는 잘 알겠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살아있는 동안 꽤 고심을 했고 그것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 그 중심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는 카프카의 정체성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마치 운거지퍼를 보듯이​.


카프카는 그로 인해 세 번이나 파혼을 하는 등 정신적으로 고초를 겪었다. 카프카의 변신이나 여타 소설을 읽어보면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쓴 소설이 아니다. 대부분의 작가 내지는 소설가는 나 이외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다. 하지만 카프카는 오로지 소설을 쓰는 것은 하나의 유희로서, 자신이 쓴 소설을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즐기는 것으로 썼다. 그리하여 친구였던 막스 부르트에게 내가 죽으면 소설들을 모두 태워달라고 했다. 카프카는 자신의 선택이 없이 아버지가 바라는 대로 일을 하고 생활을 했다​.


소설의 첫 문장은 뭐 이렇다.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의 참대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신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라며 시작한다​.


학자들은 벌레나 동물이 되는 소설을 비커밍언에니멀이라고 하는데 이 동물로의 변신은 어떤 정체성을 가진 자아가 또 다른 정체성을 가진 자아로 변신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사람이라는 정체성에서 벌레라는 정체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인간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각각의 기능이 있다. 그것은 교육이나 환경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인격체의 한 부분인데 카프카의 변신에서는 그 ‘기능’을 잃어버린 정체성을 말한다. 그 ‘기능’을 잃어버린 사람을 ‘호모 사케르’라고 한다​.


인간도 짐승도 아닌 정체성을 ‘호모 사케르’라고 하는데 소설 ‘변신’에 나오는 그레고르 잠자는 호모 사케르를 말한다. 영화로 친다면 봉준호의 영화에 이 호모 사케르가 잘 나온다. 생명은 가지고 있지만 기능을 잃어버려 사회적으로 유효한 생명을 가진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레고르 잠자 같은 호모 사케르 같은 사람은 인간사회에 가득하다. 그리고 그들을 만드는 것 또한 사람들이다. 현대 사회는 엄청난 사람들을 소외시킨다. 요컨대 치매환자, 노숙자, 장애를 가진 사람을 기능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치부하고 벌레 보듯 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변신이란, 변신이 이루어진 그것이 확실하게 어떤 무엇이라고 딱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은 아니다. 호모 사케르는 자신의 집과 자신의 사람들 또는 자신을 모르는 이들과 과거와 현재로부터 추방된 자이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그레고르 잠자의 정체성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집을 청소해주는 아주머니다. 그레고르를 보자마자 벌레라고 한다.

우리는 호모 사케르를 보고 청소부 아주머니처럼 벌레 보듯 한다. 내가 사회에서 소외당하면서도 누군가를 호모 사케르 취급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의 말미는 아주 끔찍하다. 돈 잘 벌어오던 잠자가 죽고 난 후 가족은 아무 일 없는 듯이 소풍을 간다. 딸을 바라보며 다 컸구나, 이제 시집만 가면 되겠어. 라며 운거지퍼였던 그레고르 잠자가 없어진 자리에 또 다른 호모 사케르가 들어옴으로 사회는 유지가 된다. 카프카의 말처럼 책은 우리 내면에 얼어붙은 바다에 던져지는 한 자루 도끼여야 한다고 했는데 변신은 참 좋은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루돌프 사슴이 이 세계에서 짧으면 몇 년 안에 싹 사라진다. 그래서 지금 아이들은 루돌프를 동화 속이나 영화에서만 봐야 할 것이다. 루돌프가 되는 사슴이 순록인데 이 순록들이 사라지고 있다.



http://www.ob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33232






사진과 링크의 기사는 2018년의 뉴스다, 이미, 벌써 3년 전부터 순록이 사라진다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흥! 어쩌라고! 였다. 그리고 현재 2021년에 와서는 순록이 거의 37% 인지, 47% 인지 사라져서 멸종위기에 있다고 한다.


루돌프가 사는 곳은 핀란드의 제일 북쪽인데 거기가 겨울에는 영하 40도 이하로 내려가야 하는데 그냥 비가 온다고 한다. 게다가 평소에는 영상 19도에서 1도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순록은 눈을 파헤쳐 그 사이의 이끼를 먹고사는데 그럴 수 없어졌다. 눈이 내려야 하는 지금 비가 내려 그게 얼어서 이끼를 먹을 수 없는 순록은 조금씩, 고요하게 지구 상에서 죽어간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나는 상관없다. 이 모든 게 지금 자라는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가 없는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크게 신경 쓸 일이 없다. 어차피 내가 죽고 난 다음에 멸망의 길로 가게 되니까 아무렇지 않다.


최근 넷플의 신작 ‘돈 룩 업’라는 영화에서 민디 박사로 나오는 디카프리오의 연기를 보셨는지. 영화 속 디카프리오의 연기를 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마치 실제 그 사람이 아닌가 할 정도로 몰빵 하게 만든다. 돈 룩 업에서 민디 박사로 나오는 디카프리오는 민디 박사 그 자체였다. 지구 소멸을 걱정해서, 진실하게 지구가 사라지는 걸 걱정하며 소리를 지른다. 디카프리오는 실제로도 기후변화에 관심도 많고 활동을 하는 활동가이다. 진심으로 지구를 걱정한다. 죽은 M.J처럼 말이다. 세계의 갑부들은 우주로 나갈 생각에 천문학적인 돈을 쓰는데 디카프리오는 웃기지 말고(라는 말은 안 했지만) 지구에 대해서 좀 더 눈을 돌리라 말하고 있다.


기후변화를, 망가지는 기후를 줄이는 좋은 방법은 당연하지만 개개인이 여름에 에어컨 사용을 줄이면 된다. 이렇게 말을 하면 다 그렇다고 하며 마치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것 같은 마음을 가지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여름에 에어컨을 켜고 잠들지 않는다. 그냥 선풍기만으로도 잘 잔다. 그러니까 신체를, 강한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고 조금 덥더라도 자연풍이나 선풍기의 바람만으로도 괜찮은 몸으로 만든다.


그런 신체로 만들면 여름에도 더위를 크게 타지 않는다. 여름에도 적당하게 햇빛에 몸을 태우고 조깅을 해서 땀을 흘리면 한낮에 태양 밑에 있더라도 그렇게 폭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여름에는 당연히 더우니까 더운 날에 몸을 적응시키면 밤새도록 에어컨을 틀지 않고도 푹 잠들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은 밤에 에어컨을 틀고 잔다. 내가 에어컨 틀지 않고 잔다고 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같은 반응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위해 기후 어쩌고, 지구가 아야 하는데 어쩌고 같은 말을 들으면 좀 웃기다.


2021 여름에도 나는 열심히 달렸는데 운동은 평소에 해야 한다.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의사에게 운동해야 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고 어차피 하게 된다. 그때 가서 억지로 하느니 할 수 있을 때 몸을 적응시켜 놓으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건강에 자신 있어하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있을까. 늙어 병들었을 때 내 아이들이 간호를 해 줄거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 2년을 병실생활을 했는데 그건 할 짓이 못 된다. 그래서 가끔 티브이에서 그런 뉴스가 나오면 나는 이해가 간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삶을 살아야지.


요즘도 티브이에 하고 있지만 여름에 기후변화를 걱정하는 과학자가 나오고 양옆으로 연예인들이 나와서 에어컨 사용에 대해서 크게 공감하는 방송을 했었다. 과학자는 기후변화의 무서움을 아니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실천한다. 어떤 연예인들은 자랑처럼 여름에는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고 겨울이불 덮고 있는 게 가장 좋다는 말을 한다. 아주 이상하며, 너무 무개념이며, 진짜 방송국 놈들은 방송을 멋대로 하는구나, 하고 생각이 든다. 뭐 하지만 나는 상관없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사는 동안 지구가 서서히 망가져갈지언정 후세의 아이들이 고난이지 나와는 무관하다.


과학자 본인은 열심히 텀블러나, 페트병이나 에어컨이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지만 과학자의 주위 사람들은 또 알 수 없다. 여름에 당장 내가 더워 죽을 지경인데 기후변화에 대해서 공부하지 않은 주변인들은 무심할 수 있다. 디카프리오의 여자 친구가 되면 같이 공감하고 한 여름에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지만 헤어지고 나면 시원한 차로 이동하고 일회용 컵으로 음료를 마시는 거와 같다.


고요의 바다가 넷플에서 방송했다. 그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물이다. 계급별로, 빈부의 격차로 물을 사용하는 양이 정해져 있다. 이게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지 않을까. 우리가 식수를 사 먹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때가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물을 왜 돈 주고 사 먹냐고 했을 때가 있었다.


진화적으로 수치 1이 변하는데 최소 백 년이 걸리지만 그 수치의 변화가 빠르게 변하는 시점이 지금이다. 안 믿기겠지만 루돌프가 없어질 것이다. 루돌프가 없어진다고, 사라진단 말이야! 어, 그래, 그게 뭐 어떻다는 거지?


순록이라는 사슴이 공룡과 한 묶음이 된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이다? 어른들 때문이다. 모든 어른들이 그렇지는 않다. 이기적인 어른들 때문이다. 다시 영화 ‘돈 룩 업’으로 가면 그 속에 이기적인 어른들이 정말 한 가득 나온다. 영화는 그걸 돌려서 잘 말하고 있다. 그게 지금 현재 미국의 현실이라고 말한다. 아이들 만들기 놀이에 설명서가 있는데 아이들은 설명서 따위 보지 않고 마음대로 잘 만든다. 설령 설명서대로 하지 않아서 모양이 이상해도 그것대로 좋아하고 보면 괜찮다. 설명서가 꼭 필요한 건 어른들이다. 어른들은 설명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아이의 시기를 거쳐 어른이 되었음에도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태반이다.


요즘 가장 이상한 어른들이 있는데, 아이들은 코로나에 걸려도 경증이라 치료가 빠르게 가능하며 한 번 걸렸기에 같은 바이러스에 이제 걸리지 않을 확률이 높아서 더 안전한데 쟤는 코로나에 걸린 아이니까 같이 놀면 안 된다고 하는 어른들이 생겨났다. 너무 이상한 사람들이다. 방탄 멤버나 유재석도 코로나에 걸렸다가 완치가 되었는데 그럼 옆에 가지 못할까. 코로나에 걸린 아이들은 완치가 되었어도 코로나가 아닌 주위 이기적인 어른들의 눈치와 손가락질에 의해 따돌림을 당한다. 어떻든 나와는 다 상관없는 일이다. 이제 앞으로는 AI가 운전하는 썰매를 타는 산타가 크리스마스에 등장하고 루돌프가 사라진 크리스마스를 아이들은 맞이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21-12-28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름앤 에어컨 끄고 잡니다.
디카프리오 멋진 사람이었군요.
근데 그 예는 좀 웃겨요.ㅋㅋ
정말 앞으로 산타 썰매는 그렇게 될 수도 있겠군요.ㅠ

교관 2021-12-29 11:45   좋아요 1 | URL
디카프리오 연기를 보는 건 정말 즐거움이라 나오면 봐야해요 ㅋㅋㅋ
 


오빠, 저기 반짝이는 전구는 따뜻해?


글쎄, 아마도 따뜻하지 않을까.


우리 집엔 왜 트리가 없어?


작은 남자아이는 자신보다 더 작은, 허리밖에 오지 않는 동생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들여다본 실내는 따뜻하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남자아이와 여동생은 창 안의 트리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어른 키만 한 트리에는 반짝이는 전구가 쉴 새 없이 깜빡 깜빡였고 네 명의 가족은 트리 옆의 식탁에 앉아서 케이크와 만두를 먹고 있었다. 크고 따뜻한 만두를 그 집 아이들이 후후 불어서 맛있게 먹었다. 엄마가 뜨겁다며 식혀주었다. 아이들은 웃었다. 부러웠다. 행복해 보였다.


오빠, 나도 저거 먹고 싶어.


응, 내년엔 집에 크리스마스트리도 하고 케이크하고 만두도 먹자.


정말? 와 신난다.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는 동생도 오빠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지켜지지 못할 거라는 것을. 그렇지만 입으로 에이 또 거짓말,라고 말해 버리고 나면 작은 소망까지 전부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 집에는 처음 들어보는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그 노래는 너무 따뜻하게 들리고 좋아서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남자아이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고 동생인 여자아이는 외투가 얇았다. 두 아이는 굽은 등으로 창가에 붙어서 여동생은 케이크를 쳐다봤고 남자아이는 왕만두를 쳐다보았다. 창 안의 아름답고도 영화 같은 모습을 보느라 추위도 몰랐다. 발갛게 변해버린 코끝으로 하얀 눈의 결정체가 내려앉아서 녹았다.


야아, 누이다 오바.


동생의 입은 얼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오빠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동생의 어깨를 덮어 주었다.


눈 내린다 오빠, 아빠는 언제 와?


이제 곧.


오빠, 아빠 오면은... 까지 말하고 동생은 기침을 한 번 하고 웃었고 오빠는 동생의 코를 자신의 옷소매로 닦아 주었다. 어린 남매는 남몰래 가슴 한구석에 겨울의 꿈을 간직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달리기 이야기를 너무 하지 않았다. 어떻든 올해는 3일 빼고는 매일 조금씩 달렸다.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를 달리는데 그 시간 내내 달리는 건 아니고 3, 40분은 근력 운동을 하거나 준비운동을 하지 않고 달리면 다리가 힘들어서 걷기도 한다. 며칠 전에 하루 정말 추운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은 진짜 밖으로 나가기 싫다. 달리기까지 정말 고뇌에 휩싸인다. 달리지 말아야 할 이유 서른여섯 가지가 나를 붙잡는다. 하지만 달리야 하는 이유 한 가지 때문에 일단 나가서 달리면 10분 지나면 등에서 땀이 난다. 겨울에 아무리 날이 추워도 달리고 10분 정도가 지나면 등이 후끈거린다. 바람이 삼하게 불지 않으면 어떻든 땀이 난다. 그게 신기하다면 신기하고 그 신기함을 느끼기 위해서 매일 달리고 있다.


나는 묘하게도 스포츠 관람도 시큰둥하다. 사람들이 목매다는 축구도, 배구도, 농구도, 인기 있는 구기종목에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런데 또 마라톤 중계는 아주 재미있게 본다. 너는 그저 달릴 뿐인데 뭐가 그렇게 재미있냐? 도대체 헉헉 거리며 달리는 걸 보여줄 뿐인데 어떻게 멍하게 볼 수 있지? 같은 말을 왕왕 듣는데, 마라톤 중계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아주 재미있다. 그래, 뭐가 재밌냐?라고 물으면 일단 달리는 사람들이 개성이 가지각색이다. 밑의 글에서도 한 번 적었지만 그저 마라톤 복장으로 달리는 사람들만 대회에 나오는 게 아니다.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기상천외한 복장을 하거나 분장을 하고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줄넘기를 하며 42. 195 킬로미터를 달린다. 대단하다. 중계는 선수들 위주로 중계를 해주지만 한 번씩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어디까지 왔는지 중계를 하는데 너무 재미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수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상당하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오는 밤은 하늘이 새까맣게 보이지 않는다. 청록색 밤이거나 아주 짙은 회색일 경우가 있다. 날이 몹시 차가웁고 바람이 전혀 없는 날이면 세상이 멎은 것 같다. 조깅을 하는 코스에 사람들도 없어서 반영이 된 세계가 마치 멀티버스 세계 같아서 곧 나올 닥터 스트레인지의 대혼돈이 일어날 것만 같다.

이 고요

이 적요

이 평온

이 적막과

이 차가움

이토록 세상이 멎은 듯한 느낌은 이곳에 나와서 달리지 않으면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다.


달리다가 사진을 담기 위해 잠시 멈추고 가뿐 숨을 쉰다. 굉장히 고요한 밤이다. 암청색 하늘과 미동 없는 강과 냉철하기만 한 겨울의 날카로움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멈춰 놓았다. 이렇게 눅진한 겨울의 냄새를 올해도 맡게 된다. 강 건너 보이는 세상은 평온하고 포근하게만 보이지만 막상 저곳으로 건너가면 내가 서 있는 이곳이 평온하게만 보일 것이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게 우리의 인생이다.

가을까지 복적이던 강변에 사람들이 빠지고 나니 강이 어쩐지 슬퍼 보인다. 눈에 강의 슬픔이 어렴풋이 보인다. 강변에 나오면 노인이 산책을 한다. 그들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서두르는 법이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으로 따지면 노인들의 시간은 그야말로 물 흐르듯 지나가야 하지만 그들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걷고 하루에 많은 일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엇인가 늘 생각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노인의 뒷모습은 나에게, 끝이라는 건 어떤 방식으로든 간에 잔혹한 거야,라고 한다. 나는 돌을 하나 찾아서 강으로 던졌다. 강은 돌을 맞고도 아프다는 내색도 없고 표시도 나지 않는다. 조깅을 할 때 음악을 들으며 달리는데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겨울에는 아이팟 클래식으로 음악을 들으며 조깅을 한다. 120기가인지 160기가인지, 오래도 됐는데 아직 고장 없이 잘 굴러간다. 노래가 2천 곡인가 들어있다. 좀 이상하지만 빠르고 비트가 강한 노래가 나오면 빨리 달리게 되고 느려 터진 노래가 나오면 천천히 달리게 된다. 하드 디스크가 들어있는 아이팟 클래식이 한때는 너무 좋아서 아이팟 클래식에 대한 소설을 한 번 쓰기도 했다.

당신은 지금부터 아이팟 클래식이 갖고 싶다 갖고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21-12-25 1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려야 하는 그 한 가지 이유가 뭔지는 안 쓰셨네요.
다리지 말아야할 36가지 이유도요.
독자는 친절한 작가를 좋아하지요.ㅎㅎ

교관 2021-12-27 11:46   좋아요 1 | URL
ㅋㅋㅋ 저 저 앞에서 달리기 이야기를 여러 번 하면서 했기에 적지 않았어요 ㅋㅋ 진짜 궁금하시다면 일단 1년만 달려봅시다 ^^
 


청년 하루키가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전합니다. 슈퍼든지 몰이든지 백화점이든지 어디나 새해까지 캐럴을 듣게 되는 것은 확실히 피곤한 일입니다. 그 마음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근래에는 그마저도 그립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한없이 무너지는 인류를 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번 크리스마스에는 피곤하기만 하던 캐럴이 더 간절합니다.  


음악을 듣는다는 건 어떤 면으로 ‘치유’가 아닌 ‘용서’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내가 삶을 통해서 또는 쓰는 일을 통해서 지금까지 저질러온 수많은 실수와 상처 입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음악은 한꺼번에 용서해 주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이제 그만 됐으니까 잊어버려요,라고. 그것은 ‘치유’가 아닙니다. 나는 절대로 치유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엇으로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용서될 수 있을 뿐입니다.


음악의 힘은 꽤 크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무라카미 라디오를 하며, 기분이 정말 편안해졌다,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 등 반응을 보인 사람이 많았습니다. 음악은 논리를 넘은 것이며 공감시키는 능력이 큽니다.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이러스와 싸움은 선과 악, 적과 아군의 대립, 서로 죽이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서로 살리기 위한 지혜의 싸움이 되어야 합니다. 적의와 증오는 여기서 불필요한 것입니다. 코로나가 앞으로 내 작품에 어떻게 반영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상황의 공기를 마시고 내뱉고 있는 한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도 코로나에 지지 않도록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뜨겁게 추구해 주십시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입니다. 저는 지금부터 와인을 마실 것입니다. 밝은 내일을 위해 건배를 하며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들을 겁니다. 여러분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하루키가 하지 않았을까. 하며 써봤습니다. 

카드를 부랴부랴 만드느라고 좀 엉성하지만 뭐 괜찮습니다. 

올해는 카드를 여러 개 만들었습니다. 여러 개의 디자인을 했습니다. 

하루키의 인사는 하루키의 인터뷰 이곳저곳에서 한 말에, 제 사견을 입혀서 써본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메리메리 크리스마스.

하루키 그림 클릭해도 아무것도 없어요. 헤헤.



그래서 오늘의 선곡은 2014년 버전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입니다. 30년이 지난 후에 또 한 번 아프리카를 살리기 위해 당시의 유럽의 스타들이 뭉쳤습니다. 보노를 제외하고 모두가 라인업이 바뀌었죠. 새미(샘 스미스), 엘리 굴딩, 한때 그녀의 연인이었던 에드 시런, 크리스 마틴(역시 목소리 좋아) 등 유럽의 슈퍼스타들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필 콜린스의 영혼을 건드리는 드럼 소리는 없지만 이 바보들의 노래는 그렇게 우주로 뻗어갑니다. 이런 바보들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는 한 정말 세계는 바뀌지 않을까요. 하루키가 말한 것처럼 음악이란 소설처럼 논리를 넘은 것이며 공감시키는 능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노래는 약하지만 노래의 힘은 대단합니다. 모두가 소리를 내서 노래를 부르면 불편한 진실은 없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이 바보들의 노래에 빠져 보세요.  https://youtu.be/-w7jyVHocTk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