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인 1
최지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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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의 조선시대,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류한 역사적 팩트에다 서양 뱀파이어를 절묘하게 엮는 기발한 창작 능력을 발휘했다. 이미 KBS 드라마 <추노>와 <공주의 남자> 등 사극 드라마를 책임 프로듀싱했던 작가의 경험이 이 소설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조선의 역사에 흡혈귀 고지인高地人이 살았다면 믿겨 지는가?

 

 

제주도에 뱀파이어가 살았다

 

작가 최지영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했다. 그는 2012년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에서 <트랜스포터, 표사>로 최우수상을, <북의>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드라마 PD로서 2010년 대한민국 콘텐츠어워드에서 미니시리즈 <추노>의 기획 및 제작자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이밖에 <아이리스>, <공주의 남자> 등

 

1654년 조선 효종 시절, 하멜 일행이 표착한 제주도에서 피가 모두 빠져나간 의문의 변사체가 연이어 발견된다. 이에 조정은 연쇄 살변살변의 조사담당자로 시구문 말단 군관이던 염일규를 종5품 종사관종사관으로 승진 발령해 제주도로 급파한다. 염불보다는 잿밥이라고 그는 섬처녀들과의 육체적 쾌락에 더 관심이 크다. 

 

아무튼 그는 하멜 일행에 사람의 피를 마실수록 강해지는 불로불사의 존재인 고지인이 섞여 있었고, 그 고지인이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낸다. 범인인 서양 고지인 이고르를 추격하던 중 그는 이고르에게 물려 자신도 고지인의 신세가 되고 만다.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을까?

 

그의 앞에 가족의 원수인 효종을 죽이기 위해 더 큰 힘을 갈망하는 또 다른 고지인 흑도가 나타난다. 염일규의 내공을 노리는 흑도는 염일규를 유인하기 위해 염일규의 아내를 납치하고, 염일규는 아내를 되찾고자 흑도의 행방을 추적하면서 흑도를 이용해 정권을 장악하려는 서인의 계략에 휘말린다.

 

 

 

 

소설은 역사적 팩트인 하멜 일행의 제주도 표착, 북벌론을 놓고 효종과 서인 간의 정치적 갈등에다가 불로불사의 서양 흡혈귀가 하멜 일행에 섞여 들어왔다는 픽션을 가미한 판타지 팩션이다. 효종의 북벌론을 포기시키려는 인물로 서인의 우두머리 송기문을 설정, '기해독대'와 '정유봉사' 등 역사적 실제 사건에 활약하는 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렸다.

 

또한, 서양 하일랜더 전설에서 차용한 불로불사의 뱀파이어 설정과 내공을 쌓고 검술을 연마하는 한국형 무협 장르를 결합해 독창적인 조선의 흡혈귀 고지인을 만들어 냈다. 효종 시대를 배경으로 검 하나에 자신의 운명을 걸 수밖에 없는 고지인의 장렬하고도 섬세한 대결을 다룬다.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서기 원년 로마 총독 빌라도에 의해 예수가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위에 못 박히던 당시, 형벌을 집행하던 로마 병사는 예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옆규리를 찬으로 찔렀다고 한다. 그대 예수의 몸에서 쏟아져 내린 선혈을 온몸에 뒤집어쓴 그 병사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여호와의 저주를 받고 말았다. - '프롤로그2' 중에서

 

비록 천형을 받았지만 혜택도 주어졌다. 영원불사永遠不死, 불상불사不傷不死의 운명이었다. 병사는 피의 해갈을 위해 살인을 통해 피를 보충해야만 했다. 목덜미를 물려 피를 빨린 희생자들 중 살아남은 이들도 흡혈 갈증과 영원불사의 운명을 함께 물려받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흡혈인의 숫자는 증가했다. 급기야 로마제국은 흡혈인 소탕 작전에 돌입했다. 공교롭게도 기독교 박해와 맞물려 있었다. 로마의 추적을 따돌리고 하일랜드, 즉 스코틀랜드로 숨어들어 점차 세를 불렸다. 이들이 바로 고지인高地人이다.

 

 

"이빨에 물린 자국입니다, 나리"

 

염일규는 제주도에 도착하자 마자 살변의 희생자인 공분의 사체를 조사하기로 작정했다. 이미 매장한 상태라 가족의 동의가 문제였다. 워낙 육지인에 대한 텃세가 심한 곳이 제주아닌가 말이다. 이때 관비인 아리가 나서면서 자신이 돕겠다고 나섰다. 그녀는 의원인 아비의 첩비妾婢가 낳은 얼녀 출신이었지만 제주의 풍토뿐만 아니라 의술까지 겸비했으니 안성맞춤인 조력자인 셈이다.

 

아리는 염일규를 조그만 주가酒家로 안내했다. 무덤에서 딸의 시신을 파낸다고 하니까 주모는 완강하게 반대했다. 발을 돌리려는데, 아리는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면서 주모를 설득하기 시작햇다. 혈육을 잃은 슬픔을 염일규는 잘안다. 하루 아침에 역모에 몰린 형이 자살하고 부모는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짐으로써 집안이 몰락하는 고통을 겪었던 터라 주모의 아픔을 충분히 이해알 수 있어 그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이에 주모는 염일규의 표정을 보고 마음이 동해 파묘를 허락하며 딸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부탁한다.

 

놀랍게도 공분의 시신은 마치 미이라처럼 온전했다. 시신을 살피던 아리가 목 언저리의 물린 자국을 가리켰다. 분명히 물린 자국이었다. 두 개의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마치 짐승의 날카로운 송곳니에 물린 자국 같았다. 이미 한양에서 수많은 시체를 관리했던 그였기에 더 찬찬히 시체를 살펴봤다. 늑대보다 주둥이가 작은 무언가에 당한 것이 분명했다. 일단 동행한 화공畵工에게 시신의 모양새와 상흔의 위치를 자세히 그리라고 지시했다.

 

나머지 시신들의 검시가 계속 이어지면서 아리의 역할도 계속됐다. 사고 당일 홍모이들에게 갔다가 변고를 당했으므로 홍모이들과의 면담이 필요햇다. 하지만 그들의 말을 몰라 그는 한양 조정에 박연(조선에 귀화한 네델란드인)을 파견해달라고 장궤를 올렸다. 검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얼음골 계곡에서 아리가 실족하고, 이를 구출하면서 두 사람을 살을 섞게 되고 이후 관계는 급진전한다. 제주 관아를 중심으로 둘의 스캔들은 소문으로 퍼져나갔다.

 

 

아란타 홍모이, 탈옥하다

 

제주 관아에서 큰 사건이 발생했다. 아란타 홍모이들 중 한 명이 옥을 부수고 탈옥을 한 것이다. 소식을 들은 염일규는 급히 관아로 갔다. 제주목사는 나루터 검문검색만 강화하면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으므로 체포는 시간 문제라고 호언장담했다. 으래서인지 홍모이들을 가둔 옥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도망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

 

"이고르란 늙은 놈일세. 의원 노릇하던 수염 텁수룩하던 나선인이지"

 

이고르는 홍모이들이 왜를 향해 가던 중 우연히 태운 늙은이였다. 조정에서 홍모이들을 모두 한양으로 압송하라는 명이 떨어진 상태인데 탈옥이 발생했으므로 제주목사 입장에선 고약한 일이 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이고르의 탈옥 이후 연이었던 살변이 감쪽같이 그쳤다. 덩달아 흉흉하던 민심도 안정되어 갔다. 이에 제주 연쇄 살변의 범인은 이고르로 확정되는 분위기였다.

 

한양으로의 압송일이 가까워오자 머릿수를 채울 수 없은 현실을 개달은 제주목사는 염 종사관에게 한 명은 고을 백성들에게 얻어맞고 수장된 걸로 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망설이던 종사관은 나중에 자신의 부탁을 한 가지 들어주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한다. 이후 종사관은 돈궤를 챙겨 제주목사를 찾아 아리의 신분을 노비문서에서 빼달라고 청한다. 이미 아리의 뱃속엔 종사관의 씨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제주목사로부터 아리 집안과 자신의 형과의 기묘한 인연을 듣게 된다. 아리의 생부가 소현세자를 시해한 어의 이형익이며, 종사관의 형은 소현세자를 왕위에 올리려다 탄로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로 인해 가문이 몰락했던 것이다. 그래서 제주목사는 둘의 혼인에는 쌍수를 들고 반대했다.

 

하지만 제주목사의 아킬레스건을 잡고 있는 종사관이 쉽게 포기할리 없다. 결국 홍모이들을 압송하는 배편에 종사관과 아리는 함께 승선한다. 한편, 아리와 종사관의 대화를 듣던 하멜이 자신들의 조난 사고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고백한다. 즉 자바섬에서 출항에 왜로 향하던 상선의 선원들이 일본 해역을 눈 앞에 두고 하나둘 의문사함에 따라 배에 악령이 붙었다고 생각하고 어절 수 없이 배를 버렸다는 것이다. 또한 희생자의 시체가 핏기 한 점 없이 백짓장 같앗던 게 제주섬의 희생자 시체와 동일했다는 것이다. 풍랑은 핑계였고 모든 일은 불청객 이고르를 태운 뒤에 벌어진 사태였던 것이다.

 

제주항을 떠난지 닷새, 압송선은 하동과 구례를 거쳐 섬진강의 곡성 포구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육상으로 한양까지 이동해야 한다. 제주목사와의 약속을 지키자면 아리를 다시 압송선 편에 제주로 돌려보내야 한다. 때문에 종사관은 아리를 뭍에 남겨둘 궁리를 찾고 있었다. 잠은 오지 않고 그는 강바람을 쇠려고 군영을 잠시 벗어났다. 달이 없는 밤이라 하늘엔 별이 평소보다 많았다. 생각에 몰두한 터라 종사관은 자신을 뒤따르는 인기척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인기척을 느낀 순간 이미 늦었다. 송곳니가 자신의 목덜미를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이 괴물은 바로 양이洋夷 이고르였다. 종사관은 무관 출신이다. 두 사람 간에 공방전이 벌어졌다.

 

놈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짐승도 아니었다. 날카롭게 벼른 길고 단단한 손톱, 빠른 몸놀림, 게다가 인간의 완력이라고 할 수 없는 괴력, 합에 합을 더할수록 염일규의 뇌리에는 공포가 엄습했다. 게다가 이미 목에 큰 상처를 입은지라 힘이 차츰 부쳐갔다.

 
반면 놈은 싸움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기세가 오르는 듯했다. 이제껏 막아내거나 피하기만 하던 칼날을 두 손아귀로 덥석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상대를 한껏 뒤로 밀어붙였다. 땅을 디딘 종사관의 두 발이 놈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뒤로 죽 미끄러졌다. 종사관은 놈의 손아귀로부터 칼날을 비틀어 빼기 위해 칼자루를 쥔 손으로 남은 힘을 모두 끌어올렸다. 그렇게 해서라도 놈의 손바닥을 아예 베어낼 심산이었다. 그런데 분명 흘러야 할 피가 놈의 손에서 보이지 않았다. 베어지기는커녕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오히려 출혈은 종사관이 더 문제였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종사관을 구해준 이는 왜인 사무라이 사나다였다. 사나다는 이고르를 제압하고 그의 영기를 모두 흡입함으로써 한동안 흡혈 갈증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종사관과 아리의 사랑은 해피엔딩으로 마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고르에게 목덜미를 물린 종사관도 이미 고지인 신세가 되고 말았는데 과연 그는 흡혈 갈증을 이겨낼 수 있을까? 또 다른 고지인인 흑도 강무웅과 종사관 사이엔 어떤 인연이 펼쳐지며, 효종의 북벌계획과 이에 맞서려는 서인들 간의 갈등은 어떻게 전개될지 소설의 후반부의 전개가 더욱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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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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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펜스 작가인 안자이 도모야,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지만 독창적인 작풍 탓에 특정 독자층의 확보로 출판계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판매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그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그의 아내 유메코가 애인과 손잡고 그를 함정에 빠트린 것이다. 도망칠 곳 없는 눈 덮인 산장에서 그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겪는 인간의 공포심을 그려내다

 

소설가 안자이는 그림책 작가인 아내와 함께 최근에 있었던 성공적인 신작 출간을 기념하려고 야쓰가타케 남쪽 기슭에 위치한 산장으로 휴가를 떠났다. 전날 저녁 아내와 함께 와인을 마신 것까지는 생각나지만 이후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떠보니 아내의 행방이 묘연하다.

 

더구나 신발, 옷, 휴대폰 등이 사라졌고 컴퓨터는 물론 자동응답기 겸용 팩스까지 불통이다. 설상가상으로 벌 독 알레르기 증상이 있는 그의 귀를 말벌의 날갯소리가 자극하고 있었다. 한편, 그는 과거 벌에 쏘인 독 때문에 치료를 받았으며, 당시 의사는 한번 더 벌에 쏘이면 위태로울 수도 있다고 경고한 적이 있었다.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여기에....... 더구나 이런 계절에.......
레이스 커튼과 유리창 사이에 불쾌한 날갯소리를 내는 곤충이 있었다. 몸길이는 2, 3cm쯤 될까. 노란색과 검은색의 경계색은 틀림없이 말벌이다.

 

 

 

 

해발 1천미터가 넘은 고산지대에 말벌이 돌아다닌다는 게 이상하기만 하다. 그것도 눈발이 날리는 11월 하순인데 말이다. 보통 벌은 겨울에 활동을 하지 않는 곤충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주인공은 뭔가 의도적인 함정에 빠졌다는 불길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소설의 스토리는 이렇게 시작되며, 주인공은 말벌과의 전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아무쪼록 다시는 쏘이지 않게 조심하세요.......

처치가 늦으면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요"


주인공은 의사의 과거 경고를 떠올리자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자신도 모르게 도망치려다 가까스로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서 눈을 뗐다가 말벌이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면 말 그대로 사면초가 상태에 빠진다. 어떻게 해서든 이 자리에서 처리해야 한다.

 

더구나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것은 하늘이 주신 좋은 기회가 아닌가. 말벌이 여기 있는 동안 레이스 커튼으로 누르면 간단하게 잡을 수 있으니까. 아니, 잠깐만. 그렇다고 맨손으로 죽일 수는 없다. 잘못하다 침에 쏘이면 큰일이 아닌가. 무슨 일이 있어도 쏘여서는 안 된다. 이럴 때는 도구가 있어야 한다. 슬리퍼는 어디로 갔을까? 잠들기 전에 분명히 신고 있었던 것 같은데.

 

대체로 사람들은 벌레, 즉 곤충을 만나면 징그러워한다. 심지어 회피하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이는 우리들이 인류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DNA 속에 잠재되어 있는 안전을 추구하려는 본능 탓일 것이다. 나도 오래 전에 방치했던 마당의 화단을 정리하다가 말벌에 쏘인 적이 있다. 당시 고통은 이루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소설의 주인공도 이미 벌의 독에 혼이 난 경험이 있는지라 보통의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심보다는 훨씬 더 클 것이다.

 

말벌을 쫓아내거나 죽이려면 파리채나 정자모기채 또는 살충제 스프레이 등에 의존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실패한다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를 수밖에 없다. 독침의 희생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말벌 핸드북>이라는 책자를 참고하면서 말벌의 공격에 대응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하지만 외딴 산장에 이런 핸드북이 있다는 사실이 다소 어설픈 설정처럼 보였다.

 

"벌에 처음 쏘이면 체내에서 벌 독 항체가 만들어지죠. 그리고 두 번째 쏘이면 벌 독과 벌 독 항체가 처음보다 강한 항원 항체반응, 즉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게 돼요. 벌 독의 경우에는 심한 중독 증상이 나타나 가끔 죽음에 이르기도 하죠. 이게 흔히 말하는 아나필락시스 쇼크예요" - <말벌 핸드북> 중에서

 

이렇게 추운 계절에 과연 노랑말벌이 활동할 수 있는지, 더구나 산장 내부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두 의문투성이였다. 이미 연기처럼 사라진 아내가 일차적으로 의심되고, 또 한 사람 미사와 마사히로가 아내의 조력자였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는 3, 4년 전 대형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신인 문학상 시상식 파티에서 만난 인물이었다.

 

"실례지만 안자이 선생님이시죠? <사신의 노크>를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밤새워 하루 만에 다 읽었습니다"

 


대형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신인 문학상 시상식 파티장은 많은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당시엔 초대하지 않았는데도 무작정 참석하는 이가 많았다. 그자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긴 머리칼은 기름기가 없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은 적당히 햇볕에 그을었다. 하얀 티셔츠 위에 플란넬 재킷을 걸치고 청바지를 입은 편안한 차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꾸밈없는 순수한 젊은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려는 계산된 행동이었다. 사실 이 작품은 평판도, 판매율도 최악이었다.

"저는 미사와 마사히로라고 합니다. 신세기 대학교에서 곤충의 광주성光周性과 계절 적응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지요"

 

유메코와 미사와는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다.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둘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관계임에 분명하다. 미사와는 곤충 마니아로 유명한 별종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궁금증이 남는다. 굳이 자신을 죽이려면 잠든 사이에 충분히 해치울 수도 있었는데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벌을 이용해 공격하다니 말이다. 아내 유메코가 그렇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을까? 아무튼 목욕가운에 묻은 와인은 단순한 와인이 아니라 말벌 유도제 같은 성분으로 추정된다.

 

소설속엔 '작품 속의 작품'들이 여러 편 나오는데, 깨끗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려는 이들이 조직에서 한 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 되는 현실이나 태곳적부터 이어진 곤충들의 본능인 잔인한 살육극을 통해 인간성을 파괴하는 약육강식의 사회구조를 비판한다.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주인공이 소설가가 아니라는 반전이다. 그는 진짜 소설가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나이든 스토커였던 것이다.

 

 

 

 

 

 

 

"말벌이 주는 공포를 통해 현대인의 고독을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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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불안감 길들이기 - 불안감과 공황장애에서 벗어나는 자기치유 기술
존 실림패리스.데일리 디애나 슈워츠 지음, 이연규 옮김, 최한나 감수 / 유아이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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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감으로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은 보통 도움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단념한다. 이유는 각자 다를 수 있으나 실상은 무지에서 비롯된다. 스스로 충분히 노력하면 불안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문제를 심각하게 다룰 기회를 놓치고 만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감정이 통제되지 않는 무력감에 2차적으로 상처를 입을 뿐이다. - '들어가며' 중에서

 

 

불안장애는 마음의 병이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인의 4000만 명, 즉 7명 중 1명이 불안장애를 겪고 있다고 한다. 정신 건강관리에 사용하는 총비용의 30% 이상이 불안 치료에 쓰일 정도다. 사회의 분위기가 점점 불안정함에 따라 막연한 불안감도 점점 대중화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불안은 마음이 나약해서 생기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마음을 되돌아볼 여유가 필요하다. 일단 자신이 불안감을 느끼는 상태라는 점을 인정해야 삶이 달라진다.

실체가 없는 요인에 의한 불안은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을 통해 '불안장애'로 진단받을 수 있는 만큼 치료해야 할 마음의 병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대해 전문적인 도움을 구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편견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문적인 도움 없이도 극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대부분 사실이 아닌 믿음일 뿐이다. 불안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으며 대처 방법도 가지각색이기 때문에 자신의 불안을 돌아보고 자기만의 대처 기술을 익혀야 한다. 이러한 점이 바로 이 책의 탄생 배경이다. 

저자 존 실림패리스는 8살 때 불안장애를 진단받았다. 오랜 기간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증세는 심각했다. 처음엔 그도 마음이 약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오해했다. 이후 전문가의 치료와 조언, 그리고 불안장애에 대한 나름의 공부를 통해 문제를 깨달았다. 만성적인 불안감을 치유하는 데 성공한 그는 대학에서 불안장애 분야를 파고들면서 자신만의 특별한 치료 기술을 개발해 냈다. 많은 사람들이 그 효과를 경험했다.

 
이 책은 워크북 형태로, 가벼운 불안에서부터 몸과 마음을 손상시키는 지속적이고 극심한 불안까지 다양한 범위에 걸쳐 불안을 다루었다. 기존의 책들과 달리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또한 매일 다양한 연습 과제를 따라할 수 있게 구성했다.

 

 

 

 

적당한 불안감, 이는 우리를 보호한다

 

불안은 수만 년 동안 서서히 발전해 온 진화적인 반응 체제의 일부이다. 원시시대에 이를 직감적으로 감지하지 못했다면 인류는 포획자로부터 결코 안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인류를 보호하는 각성기제로서, '투쟁-회피 반응 시스템' 혹은 '투쟁-회피-경직 반응 시스템'이라는 생물학적인 반응이 존재한다.

 

본질적으로 불안은 뇌에 전달되는 메시지로 현재 상황이 위험한지 아닌지를 인지할 수 있도록 한다. 불안감을 느낄 수 없다면 우리들은 항상 더없이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천진난만하게 각종 상황에 대처하며 단순한 위험도 감지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길거리를 걸을 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마도 자동차에 치일 것이다. 이렇듯 특정한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은 자신을 보호해 준다.

 

한편, 극심한 불안은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든다. 예를 들어 아이를 돌보는 일이나 매일 출근이나 등교하는 일 등 대체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감정으로 인한 불편함은 자책감을 만들고, 이런 고통스런 감정을 없애려고 애쓰게 한다. 그러나 불안의 긍정적인 측면을 이해하고, 불안이 왔을 때의 대처법을 안다면, 불안이 그리 불리하게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인류의 조상은 늘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불안의 크고 작음을 구별하는 게 무의미했을 것이다. 불안한 마음을 이해하려면 불안과 스트레스를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두 단어는 종종 함께 사용되기 때문이다. 비슷한 특징을 가진 셈인데 신체적 증상으론 빠른 심장 박동, 얕은 호흡, 근육의 긴장, 과민반응, 수면장애 등이 있고, 인지적으론 집중 방해, 과도한 걱정 등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불안은 정신적인 문제이지, 원인이 뚜렷한 스트레스와는 차이가 있다.

 

스트레스는 특정한 것에 대한 끊임없는 걱정이라고 볼 수 있으며, 지속성은 보통 짧은 편이다. 불안은 일상적인 기능에 장애를 초래하는 반면, 스트레스는 주요 사건에만 국한된다. 게다가 개인의 삶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건강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기도 한다. 이는 사람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학교 혹은 직장 생활에서 성취 욕구를 고무시킨다. 약간의 스트레스는 살아남는 데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범불안장애는 통제할 수 없는 걱정과 스트레스를 주는 근원에 대한 과도한 몰입에서 비롯된다. 때때로 명백한 설명이 불가능한 증상이 포함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런 통제 불가능한 감정을 끝낼 수 없어 고통스러워하고, 끊임없이 걱정스러운 생각에 몰두한다. 주로 회사 생활, 경제, 가족 건강과 더불어 자신과 관계된 것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하고 걱정한다.

 

 

자신의 삶을 살아라

 

자신의 대화 습관을 살펴보라. 예를 들어, 자신이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 '절대로', '항상', '모두', '모든 것', '반드시 ~하다',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등의 당위적當爲的인 단어나 문장을 사용할 때 눈여겨보아야 한다. 이런 단어들은 무의식적으로 예외나 대안을 허락하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당위적인 사고는 언제 무슨 일이 있어도 융통성을 기대할 수 없도록 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해야 한다'라는 규칙에 얽매이게 만들어, 실제로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킨다. 가장 해로운 것은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부분이다. 이는 마치 매뉴얼처럼 작용하므로 그대로 하지 못한 자신을 '잘못'으로 몰고가서 죄책감과 무력감을 만들어낸다. 이런 왜곡된 신념들을 버리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자신의 마음 안에 불안을 키울 뿐이다.

 

 

마음의 흑백논리를 넘어

 

흑백논리의 한 예로, 자신이 세운 목표 점수에 도달한 학생이 '나는 학교에서 최고의 학생이다'라고 생각하거나, 생각만큼 성적이 안 나온 학생이 '나는 완전히 망했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안정감을 주고, 삶의 불확실성을 통제하는 훌륭한 방식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이러한 생각은 마치 삶을 계산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삶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겠는가?

만약 삶과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면, 더 이상 삶에 대해 탐구할 필요도, 무언가를 새롭게 발견할 동기도 없을 것이다. 무언가 예상과 다른 상황이 닥치면 반사적으로 이래서는 안 된다는 부정적인 반응만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아주 좁은 병 속에서 사는 것과 같다. 삶에서 정의 내린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타협에 얽매이지 말자. 극단적인 시야를 통해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완벽주의라는 노예가 되지 말자

 

'항상 완벽해야 한다'라는 사고방식은 스스로 자신의 자유를 속박하여 괴롭히는 '노예제도'와 같다. 완벽주의는 불안을 구성하는 가장 완벽한 구성 요소이며, 자신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생각은 거대한 불안의 폭풍을 맞게 한다. 우리의 목표는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씩 전진하는 것이어야 한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욕망이나 욕구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에만 집중하도록 만든다. 그런 삶은 자신에게 많은 상처를 준다. 타인이 자신에게 충분히 만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때 커지는 불안감은 자기 자신을 더욱 몰아세우게 만든다. 예를 들어, 타인의 반응을 바꾸려고 무리한 지출을 하면서까지 저녁 대접과 선물 공세를 펼칠지도 모른다.

 

 

건강한 자존감 세우기

 

우리는 종종 겸손하지 않거나 자기 비하를 하지 않으면 비난받을 것이라고 걱정하곤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허영심이나 자만심과 다르다. 물론 우리들은 모두 자신이 남들과 똑같다고 배우며 자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아름다움과 능력을 인정하는 게 두렵게만 느껴진다면, 우리들의 자존감은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분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자신만의 힘을 얻게 된다. 그 힘은 타인과 지적으로 차별된 상태를 유지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나만의 힘'은 주변 사람이나 상황에 의해 혼란이 오더라도 무너지지 않고 해결해 나가는 능력을 발휘시킨다. 또한 중심을 잡고 주변의 많은 유혹들을 뿌리칠 수 있게 한다. 

적극적인 소통 방식에서는 감정과 사고 및 행동에 대한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나'로 시작하는 문장을 사용한다. '나'로 시작하는 문장은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손가락질 하는 의도가 제거된 중립적인 태도를 보인다. 또한, 구체적이다. 비현실적인 신념이 반영된 '항상', '절대로', '~해야 한다', '~해서는 안 된다'와 같은 당위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심각한 상황을 수용하는 것은 삶의 긍정적 측면에 초점을 둔다. 여러분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과 싸우는 것을 멈추게 하고 현실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돕는 대응 방식이다. 결코 바꿀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여러분은 불안을 느끼지 않고도 세상에 대해 대응 정도를 조절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쓸 수 있다. 

 

 

이성관계에서의 불안감

 

분노를 표현하는 게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자신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다른 사람과 공유하지 않은 채 말이다. 상처 받았던 감정들을 계속 억누르고 표현하지 않으면 불안감은 여전히 자신의 표면적인 감정 아래 존재한다. 그리고 숨길수록 점점 거세진다. 재차 억누르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 거라는 무력감을 느끼게 하고 쉽게 위축되게 한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다툼 없이 모든 것에 합의하는 것을 건강한 관계라고 믿는 듯하다. 필요 이상으로 큰 싸움을 만들지만 않는다면, 말다툼은 관계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진다. 절대로 싸운 적이 없고 항상 모든 것에 동의한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을 침묵하게 만드는, 결국은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면의 감정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책임감 키우기

 

매일 스스로에게 책임감을 갖는 것은 불안을 줄이는 또 다른 중요한 과정 중 하나이다. 책임감을 갖는 것은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현명하게 계획하여 스스로 인생을 책임지게 만드는 일이다. 저자는 불안으로 힘들어하는 내담자들을 오랫동안 치료하면서 그들의 불안 증상이 계획과 일상의 의미 있는 행동에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임감을 갖는 것은 다른 사람이 나 대신 뭔가를 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지지 않도록 한다. 또한 기적 같은 상황이 생겨서 나의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환상에 기대지 않게 돕는다. 자신에게 책임감을 가지면, 우리들은 자기 자신을 믿고 의지할 수 있어 더욱 힘이 생긴 듯한 느낌을 받는다. 

 

 

마음챙김 명상 훈련

 

이 훈련을 반복적으로 연습한다면 우리들은 필요한 순간에 큰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불안과 화해하는 또 다른 단계이다. 이 훈련은 오랫동안 스스로의 마음을 알아채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규칙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불안감이 크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많은 연습을 통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자기 조절'을 가능하게 도와줄 것이다.

 

명상의 첫 번째 단계는 호흡을 조절하는 것이다. 오른손으로 배를 감싼 채로 느리고 깊게 복식호흡을 하라. 배에 숨이 가득 차도록 들이마신 후 올려놓은 손이 함께 움직이는 것을 느껴 보아라. 5초 동안 호흡을 멈추었다가 입을 통해 천천히 네쉬어라. 이 과정을 다섯 번 반복하면 된다.  

 

호흡 같이 단순한 것에 집중하는 게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신경을 집중하는 호흡은 생각의 속도를 완화시킬 수 있다. 우리들의 마음을 즉시 진정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며, 우리들은 호흡을 의식하기만 해도 안정을 찾을 것이다. 숨을 내쉴 때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을 내보내고 들이쉴 때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온다고 상상해 보자. 마음을 다시 집중시킬 때마다 집중력은 커지고 마음은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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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버릴 것인가 - 위기의 시대를 이기는 단 하나의 질문
유필화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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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에 있어 '기본'이란 무엇일까? 바로 '사람, 혁신, 이익'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도전정신'이라는 토양 위에서만 가능하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도전정신이 회사에 넘치면, 사람들의 힘이 용솟음치며 그 결과 혁신이 활발히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는 이익을 더 많이 내게 되고 자연히 기업가치가 올라가기 마련이다. - '서문' 중에서

 

 

잔가지를 과감히 쳐내고 더욱 더 기본에 충실하라

 

경영의 본질은 사람을 다루는 것이다. 기업을 움직이는 경영자 직원들은 모두 사람이다. 기업이 만족시켜야 하는 고객과 주주도 사람이다. 따라서 경영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을 이해해야만 남을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수천 년간 역사는 반복되지 않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은 거의 변하지 않은 듯 싶다. 공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한비자, 세네카 등 많은 현인들이 인간과 인간의 행동에 대해 말한 내용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거의 들어맞는다. 따라서 우리들은 옛 현인들의 통찰이 담겨 있는 고전을 읽음으로써 인간의 본질과 심리를 더 잘 이해해야만 한다.

 

책의 저자 유필화는 성균관대학교 경영학 교수로 재직 중인데, 고전에서 리더십을 찾고, 국내 유수 기업에서 지난 30년간 1,500여 회의 강연을 진행한 기업인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경영학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됐는데, 제1장(사람만 남기고 모두 버려라)에선 동양고전과 역사가 가르쳐주는 21세기의 경영리더십의 지혜를 다룬다.

 

제2장(혁신이 아니면 모두 버려라)에선 독일의 히든 챔피언들이 어떻게 경영의 기본을 잘 지키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제3장(이익을 내지 못하면 모두 버려라)에선 기업의 리더는 왜 이익을 기업경영의 중심에 놓고 전략을 구상해야 하는지를 다각도로 논의함으로써 수익성 위주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람만 남기고 모두 버려라

 

유방에게는 장량, 소하, 한신이라는 뛰어난 참모들이 있었다. 각자의 능력만 놓고 보면 셋 모두 유방보다 훨씬 낫다. 유방 자신도 그 사실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유방은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들의 능력을 활용할 줄 아는 리더였다. 이처럼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다루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자신보다 더 뛰어난 부하를 멋지게 부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유방 역시 항우와의 대결에서 이길 수 있던 비결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장량, 소하, 한신이라는 세 걸물을 잘 다루었고 그것이 내가 승리한 요인이다. 항우에게는 범증(范增)이라는 뛰어난 참모가 있었지만 그 한 사람조차 제대로 쓰지 못했다. 이것이 그가 내게 진 이유다"

 

 

"관즉득중寬則得衆"(너그러우면 사람을 얻는다)

- <논어> 중에서

 

<정관정요貞觀政要> 제4장(간언을 장려하라)에서 당나라 태종은 거울이 없으면 자신의 생김새를 볼 수 없듯 신하들의 간언이 없으면 정치적 득실에 관해 정확히 알 방법이 없다고 지적한다. 시대를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진 신하의 충언은 군주를 바로 서게 할 뿐 아니라 천하를 태평성대로 만들 수 있다.

 

이처럼 간언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왜 신하들은 침묵할까? 이는 충성스런 간언을 할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군주는 신임하지 않는 자가 간언하면 비방한다 생각하고, 신임하는 사람이 간언하지 않으면 봉록俸祿만 훔치는 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4월 총선에서 유권자로부터 심판을 받은 새누리당의 친박들이 이런 케이스였다.

 

이런 탓에 성격이 유약한 사람은 속마음은 충직해도 말하지 못하고, 관계가 소원한 사람은 신임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해 감히 말하지 못한다. 관중管仲이 제환공齊桓公의 허리띠를 화살로 쏘아 맞혔어도 의심받지 않은 것처럼 군주가 먼저 신하를 믿고 간언을 구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혁신이 아니면 모두 버려라

 

세계 시장을 움직이는 이 기업들, 히든 챔피언은 거창하고 획기적인 혁신보다 조금씩 꾸준히 개선하는 일에 더 힘을 기울인다. 가령 쇼핑카트 시장의 선도업체 반즐은 '지속적인 혁신의 역사'라는 표현을 쓴다. 이 분야에서는 혁명적인 혁신이 예외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고급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밀레의 슬로건은 '항상 더 낫게( Immer besser)'다. 이는 세계 시장에 최고의 제품을 제공하려는 자신들의 정책과 잘 어울린다. 끊임없이 작은 개선을 이루는 밀레의 제품은 사람들이 '완벽하다'고 말하는 상태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중국 회사들이 이렇게 선진국, 특히 독일의 일류회사를 인수하는 데 열심인 이유는 그들의 저임금, 저가 전략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아시아 및 기타 다른 지역에는 중국인보다 훨씬 더 싼 임금을 받고도 일하겠다는 사람이 수십억이나 있다. 중국과 비교했을 때 인도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분의 2 정도 낮으며 방글라데시의 평균소득은 중국의 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기에다 제품 원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면서 중국산 제품의 가격이 올라가고 있다. 고가 포지셔닝은 제품의 질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기술력과 상표 이미지를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선진국의 일류회사를 인수하려는 중국 회사들의 움직임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이익을 내지 못하면 모두 버려라

 

기업의 이익은 '가격 × 매출량 - 원가'이므로 기업경영에서 이익 동인動因은 가격, 매출, 원가뿐이다. 여기서 원가는 고정비와 변동비로 나뉜다. 이 셋은 모두 중요한데 현실적으로 경영자들은 대개 원가에 가장 관심이 많고 그다음이 판매, 마지막이 가격이다. 사실 중요도로 말하자면 이 순서는 정반대로 가야 한다.

 
만약 이익 동인이 각각 5퍼센트씩 향상되면 이익은 아래 그림과 같이 달라진다. 가격이 5퍼센트 오르면 이익은 무려 50퍼센트나 증가하지만 판매량이 5퍼센트 증가해도 이익은 20퍼센트만 늘어난다. 이처럼 가격이 가장 효과적인 이익 동인이고 그 이후의 중요도는 변동비, 판매량, 고정비 순이다.

 

 

 

 

과감하게 버려라

 

앞이 보이지 않아 캄캄한 시대일수록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지킬 것을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절대 바뀌지 않는 원칙을 확고하게 해야 한다. 사람, 혁신, 이익 등 이 세 가지만 빼고 모두 버리자. 이것이 바로 기본을 지키는 경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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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읽는 힘 - 지적 교양을 위한 철학 안내서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프런티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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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양사상을 이해하는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세 가지 산맥이다. 제1산맥은 서양사상의 시작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제국의 건설까지를 포괄한다. 제2산맥은 근대 합리주의에 의한 철학의 완성을 뜻한다. 제3산맥은 '완성된 철학을 때려 부수자!'는 현대 사상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우리를 서양사상으로 안내하는 교양 철학

 

이 책은 약 2500년에 걸친 장대한 철학사를 현대에 맞는 해석을 가미해 알기 쉽도록 정리한  해설서이다. 또한 저자 사이토 다카시가 청년 시절 서양사상에 빠져 시도한 여러 일탈적 경험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즉 근대적 자아라는 관념에 빠져 연애 자체를 비판하다가 여자 친구에게 보기 좋게 차인 사건이나, 플라톤이 말한 '진선미'를 모두 갖춘 인물로 거듭나기 위해 독서에 열을 올렸던 재미난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이는 현재까지 그가 흔들림 없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자양분이 된 가장 강렬한 지적 모험이기도 하다. 교육학, 신체론, 커뮤니케이션론을 전공한 그는 메이지대학교 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데, 지식과 실용을 결합한 새로운 스타일의 글을 선보이며 교육전문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일본 최고의 교육심리학자이자 CEO들의 멘토로 인정받는 그는 자신의 철학적 경험을 되살려 흥미진진한 서양철학 입문서를 펴냈다.

 

 

그는 철학사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산맥'을 제시한다. 제1산맥은 사상의 시초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제국의 건설까지, 제2산맥은 근대 합리주의에 의한 철학의 완성까지, 제3산맥은 완성된 철학은 부수자는 현대 사상까지로 나누어지는데, 각각의 산맥을 가르는 기준은 '바로 앞의 (사상적) 산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탈출의 움직임'에 있다.

 

구체적으로 제1산맥에서는 '세계의 본질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고 싶다'는 욕구가 지배한 시기로, 이러한 사상적 특징은 2000년 넘게 지속되다가 근대 합리주의가 등장하면서 그 사조가 흔들린다. 제2산맥으로 구분되는 근대 합리주의에서는 '인간은 본질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력을 믿어보자'는 사상이 주된 흐름을 이룬다. 그러나 이는 다시 제3산맥으로 이어지며, 이 시기에는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의 배후에 무언가가 있다',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은 무언가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핵심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세계를 설명한 지知의 거장

 

사실 우리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철학의 공백' 같은 존재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사람이 모든 것에 대해 설명해버린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 인간이 이렇게 광범위한 분야를 다룰 수 있나 경탄할 정도로 많은 연구를 했다. 가령 그는 생물 분야를 비롯해 물체의 운동에 대해서도 말했고, 형이상학과 문학 이론 등 온갖 분야에서 일가견을 피력했다. 모든 것에 대해 설명해버린 인물이기 때문에 어떤 분야를 파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나온다. 모든 영역에 걸쳐 전능한 지知의 거장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엇을 한 사람이냐고 물으면 한 마디로 혼자서 '세계를 설명한 사람' 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가 이렇게 광범위한 분야에 손을 댄 것도 서양 특유의 ‘도저히 멈출 수 없는 파워’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의 원리로 세계를 설명하다

 

하나의 원리로 세계를 설명하고 싶다는 것은 매우 오래된 욕망이다. 그 증거로 그리스에서 처음 철학이 생겨났을 때 사상가들이 빠짐없이 매달린 명제가 바로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졌나'하는 것이었다. 철학의 시조로 불리는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생각했다.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의 근원을 아에르(공기)라고 했다.

 

인간은 어째서 이런 욕망에 사로잡히는 걸까? 그것은 이 욕망의 정체가 '신이 되고 싶은 욕망'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 세계를 창조할 수 없다.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신'뿐이다. 그러나 우주를 창조할 수는 없다고 해도 인식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야망을 품는 것이 인간이다. 즉, 전지전능한 신의 능력 가운데 '전능'은 무리더라도 '전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리 야망이 많은 사람도 전능을 바라지는 않았다. 반면에 전지는 수많은 인간이 품었던 야망이다.

 

 

데카르트의 사상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코기토 에르고 숨)"

 

데카르트의 사상은 장기간 지속된 아리스토텔레스, 기독교 사상의 제국으로부터의 탈출을 뜻하는 철학사의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코기토'가 근대 철학에서 이 정도로 중요한 명제가 된 이유는 그것이 '근대적 자아의 각성에 대한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의심하기 때문에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 이것이 데카르트의 사상이다.

 

데카르트는 과학과 수학 분야에서도 업적을 남겼다.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것이 바로 '좌표축'이다. 수학에서 배우는 'xy축'으로 표현되는 평면을 '데카르트 평면'이라고 부른다. 사실상 좌표축은 데카르트스러운 획기적인 발명품인 셈이다. 이는 엄청난 발명으로 내가 있는 장소에서 내가 만든 선으로 우주의 모든 위치를 정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좌표축''코기토' 가 관계성을 갖고 언급되는 일은 없는데, 책의 저자는 이 두 가지가 원리적으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제로 지점은 나다!' 하는 것이 바로 '코기토'의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좌표축을 설정하려면 원점을 정해야 한다. 즉, 좌표축을 설정한다는 것은 '내가 제로 지점이다' 하는 선언이다. 그리고 원점을 기준으로 다른 모든 것들의 위치가 정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은 타인대로 좌표축을 설정해 "제로 지점은 나다" 하고 말하면 된다. 나도, 다른 사람도 각자 자기 중심이면 된다.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엄청난 존재다.

 

이렇게 생각하면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에서 "양식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다"라고 한 말은 조리에 맞는다. 그리고 이성을 이용해 스스로 좌표축을 설정해서 제로 지점이 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신에게 축복받은 존재인가도 알 수 있다. 그런 놀라운 양식을 받은 인간은 그것을 활용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도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나을 정도로 이성을 잃어버린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왜일까.

 

 

정신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라

 

니체가 기존의 가치관에 던진 도전장의 내용은 '진리라는 이름으로 속이지 말라'는 것이었다. 진리라는 미명에 현혹되지 말고 그것들의 허식을 벗겨 정체를 밝혀서 자신의 손으로 주체성을 되찾으라는 외침이었다. 간단히 말해 니체는 "기죽지 마!" 하고 외쳤다. 아마도 그는 위축됐던 경험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기독교의 압력을 받으며 기독교 사상에 의심조차 갖지 못한 유소년기를 보냈을 것이다.

 

성인의 니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우고 연구했다. 그런 과정에서 숨 막히는 답답함을 느끼고 의문이 싹텄을 것이다. '내게서 생기를 빼앗는 이것은 뭘까' 하고 말이다. 그가 그렇게 느낀 이유는 가장 중요한 진리는 항상 '신'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진리는 이데아계에 있다고 했다. 기독교에선 신의 세계에 있고 그 내용은 '성서'에 쓰여있다고 한다. 그래서 니체는 인간의 손에 닿지도 않는 이런 진리의 세계를 '배후세계'라 불렀다.

 

어쩌면 우리는 있지도 않은 진리에 스스로를 구속하는 게 아닐까. 배후세계를 실제로 본 인간은 없다. 이는 기독교의 근간인 '원죄原罪'와도 연결된다. 아담과 이브가 범한 죄를 후손인 우리들이 동일하게 이어받는다는 게 원죄인데, 조상이 죄인이면 후손인 자신도 죄인이라는 현대의 형법 이론상 도저히 있을 수도 없는 이야기 아닌가 말이다. 

 

기독교는 '인간은 죄인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예수는 이 원죄를 인류를 대신해서 혼자 속죄했기 때문에 '구세주救世主'이다. 예수가 속죄했음에도 여전히 인간은 기독교를 믿어 세례를 받고 성경의 말에 따라 생활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대신 빚을 갚아줬으니 두고두고 이를 분할 상환하라는 것과 같다.

 

비록 힘들고 괴로워도 인간의 정신은 완전한 자유여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니체는 자신의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기죽지 마!"라고 외친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강한 바람이 부는 곳에 홀로 선다. 아무런 보호도 받을 수 없는 혹독한 곳이지만 자기 자신의 주인은 바로 나이기에 그 바람을 맞아 고독해지라고 말한다. 서양에선 이 책이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명실상부한 고전이다.

 

 

 

 

서양사상의 핵심을 살펴본다

 

비록 우리가 동양인이지만 굳이 서양사상을 알아야 할 이유가 뭘까? 우리 사회와 사고사고가 서양사상을 빼놓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헌법이나 과학 등 여러 분야에 이미 서양사상은 깔려 있다. 그래서 사회 시스템이나 사고방식이 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니체 등 한번쯤 들어봣던 철학가의 이름이지만 "코기토의 진짜 의미는?", "니체는 왜 기죽지 마라고 외쳤을까?" 등의 질문에 쉽게 답할 사람은 철학 전공자 외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들에게 2500년 서양철학을 '세 가지 산맥'으로 요약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철학의 지름길을 제시했다는 점에 의의를 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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