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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향기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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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향기가 나는 물고기가 있다. 바로 은어銀魚다. 조선시대 임금의 진상품으로 올려지기도 했던 이 물고기는 민물에서 부화하여 바다로 나갔다가 산란을 위해 다시 민물로 찾아오는 회귀성 어류이다. 몸길이가 약 15cm로 강바닥에 자갈이 많은 맑은 하천에서 서식한다.

 

경북 안동은 예로부터 산과 물이 좋아 은어 서식지로 유명한 고장이다. 이 지방의 은어는 진한 수박향과 담백한 맛 때문에 조선시대에 임금에게 진상되었다. 보물로 지정된 안동 석빙고 바로 왕실 진상용 은어를 보관하기 위해 축조된 건축물이다. 안동의 전통 음식으로 은어구이와 은어를 삶아 육수를 낸 건진국수가 유명하다.

 

도서 제목 때문에 진한 수박향이 나는 안동은어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여름철의 별미음식인 건진국수를 많이 먹고 자랐기 때문이다. 또한, 수박 때문에 원두막도 생각났다. 먹거리가 많지 않았던 어린 시절, 여름 밤엔 동네 아이들과 함께 수박서리를 다녔다. 달빛이 환한 어느 날, 원두막 보초에게 들켜 도망치다 넘어져 얼굴을 다쳤다. 외할머니가 왠 상처냐고 물었지만, 수박서리는 절대 말하지 않았다. 

 

 

 

 

 

이 책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다. 수박향기, 후키코 씨, 물의 고리, 바닷가 마을, 남동생, 호랑나비, 소각로, 재미빵, 장미 아치, 하루카, 그림자 등 11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11편의 이야기 모두 어린 시절의 기억을 얘기하고 있다. 그것도 여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먼저 에쿠니 가오리의 단편 '수박향기'를 만나보자. 아홉살 소녀의 여름은 끔찍했다. 그녀는 엄마가 출산을 앞두자 숙모 집에서 방학을 보냈다. 숙모 부부는 젊고 친절했지만 슬하에 아이가 없어 집안 분위기가 차분하고 무미건조했다. 그녀는 이불 속에서 매일 울었다.

 

서랍장에서 지갑을 훔쳐 집을 뛰쳐나갔다. 첫 도둑질이라 정신없이 달렸다. 강 건너 자그마한 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오라는 듯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두 무릎으로 마루를 기어서 방문 안을 들여다 보았다. 세 평 정도 되는 방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보인다. 등 뒤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의 엄마였다.

 

아줌마의 고함 소리와 함께 남자아이의 모습이 나타났다. 순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이 둘은 윗몸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도 그녀를 보자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소름 끼쳤다. 일단 방으로 들어오라는 아줌마의 목소리는 불길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온 집안의 덧문을 꼭꼭 닫았다. 앉은뱅이 밥상에 양파가 든 된장국, 계란 후라이, 그리고 두부와 밥이 차려져 있었다. 그녀는 먹을 수가 없었다. 아줌마는 징그러울 정도로 상냥하게 웃으며 이것 저것 물어왔다. 내일 숙모집에 안전하게 데려다 준다며 안심을 시켰지만 그녀는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식사후 아줌마는 수박을 내왔다. 쟁반에 수북하게 잘린 수박이 쌓여있다. 한 아이가 수박을 집으려고 손을 뻗는데 새까만 개미가 꼬여 있었다. 쟁반에 고인 수박 물에도 개미들이 꼬물거렸다. 그래도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수박을 베어 물었다. 개미가 툭 터지면 시큼한 맛이란다.

 

세 평짜리 방에 이부자리 두 채를 깔고 넷이서 잤다. 겁이 날 정도로 조용하고 후덥지근했지만, 신기하게도 푹 잤다. 덧문 두드리는 소리와 이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줌마도 아이 둘도 없었다. 덧문을 여니 경찰관과 숙모 부부가 서 있었다. 숙모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침 일찍 한 여자가 이 집에서 여자아이 소리가 난다며 경찰서에 신고했단다. 이 집은 오래 전부터 비어 있던 집이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동생을 낳았다. 그날 밤의 일은 숙모에게도 부모에게도 비밀로 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은 언제나 에쿠니의 비밀로 가득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에쿠니의 비밀'을 읽고난 후에 독자들은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질 것 같다.

비밀을 들은 후에는 역시 자신의 비밀도 털어놓고 싶어진다.

친밀한 비밀의 주고받음.

에쿠니의 비밀은 어쩌면 그렇게 긴밀하고 예쁘고 애처로울 수 있을까

 

 - 가와카미 히로미(작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하숙생 후키코 씨의 이야기를 하는 소녀, 달팽이를 밟아 죽이고 죄책감을 느끼는 소녀, 한여름에 치르는 남동생 장례식 얘기를 하는 소녀, 신칸센에서 만난 낯선 여자와 도망치려는 소녀, 이혼한 엄마와 옆집 삼촌을 이상하게 여기는 소녀 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인공이 소녀이지만 내용은 오히려 괴이하고 섬뜩하다.

 

여름의 과일은 수박이다. 무더운 여름의 친구는 더위를 잠재워 줄 괴기, 공포, 스릴 등일 것이다. 그래서, 수박향기는 여름에 잘 어울리는 단편소설이다. 아울러, 에쿠니의 화려한 글솜씨는 11명의 소녀들이 갖고 있는 기괴한 비밀이나  끔찍한 기억들을 오히려 예쁘게 표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마치 나의 비밀을 공개하라고 압박하는 듯 하다.

 

 

무더운 한 여름 밤, 마당 한가운데 놓인 평상에 누워 반짝이는 별과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는게 심심할 즈음 외할머니는 팔뚝에 닭살이 돋는 얘기 보따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캄캄한 공동묘지, 살쾡이 소리, 음산한 바람, 하얀 소복, 길다란 머리카락 등을 하나씩 끄집어 낼 때마다 나는 비명을 질러댔다. 더위가 싹 가셨다. 에쿠니의 이야기 보따리는 외할머니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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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들과의 저녁만찬
존 번 지음, 유지연 옮김 / 타임비즈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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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과의 점심식사가 263만 달러에 낙찰된 적이 있다. 물론 이 낙찰액은 전액 기부금으로 사용된다. 우리 돈으로 무려 26억원이 넘는 비용을 지출하면서까지 해당분야의 거장 또는 고수들로부터 한 수를 배우고자 한다니 놀랍기가 그지없다.

 

이렇게 비싼 식사를 하게 된다면, 도대체 무엇을 배워야 할까? 이 책의 출간은 바로 이와같은 단순한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홀푸즈의 존 매키, 버진 그룹의 창업자 리처드 브랜슨, 델 컴퓨터의 창업자 마이클 델,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 등 쟁쟁한 스무 명의 경영 대가들로부터 경영수완을 배워보자.

 

 

 

 

'자기 손으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도발적인 기업을 세우고 키운

위대한 기업가들과 저녁만찬을 즐기며,

진짜로 알고 싶었던 비즈니스의 정수를 물을 기회가 생긴다면?' 

 

 

 

홀푸즈마켓의 창업자 존 맥키

 

홀푸즈는 북미와 영국에 300개가 넘는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연매출 100억 달러(약 12조 원)를 넘지만 월마트에 비하면 작은 회사다. 창업자 존 맥키는 소비자들의 식생활을 변화시켰고, 미국인들의 식품 생산, 구입, 소비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문)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이 정도로 성공하리라 예상 했습니까?

(답) 아니오

 

(문) 처음 시작할 때도 지금과 같은 목적의식을 갖고 있었나요?

(답) 아니오

 

홀푸즈의 출발은 두리뭉실했다. 단지 몸에 좋고 환경에 더 이로운 건강식품을 팔아서 먹고살자는 것이었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이 목적은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맨 처음 세웠던 추상적인 목적의 유효기간은 대략 1985년까지였다. 매장이 6개로 늘자 신규 매장의 수익이 마이너스가 되었다. 창업 이래로 첫 손실이 생기자 '먹고살자'는 목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비전 명시화 과정'을 시작했다. 이는 매출을 재점검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재점검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목적과 비전을 재검토했다. 이 과정을 통해 홀푸즈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아가 고객들에게 유익한 가치를 제공한다는 의지를 확보했다.

 

5대 핵심가치

 

'질 좋른 자연식품과 유기농 식품을 판매한다'

'고객을 만족시키고 기쁘게 한다'

'회사 구성원의 행복과 성과를 지원한다'

'이윤과 성장을 통해 부를 창출한다'

'공동체와 환경을 위한 훌륭한 일원이 된다' 

 

이후 홀푸즈의 목적은 다시 진화하여 '공급자들과의 제휴관계는 철저히 쌍방의 이익을 목표로 이루어진다''이해당사자들 모두를 위해 건강한 식생활 교육에 힘쓴다'라는 두 가지의 핵심가치를 기존의 5개에 더 추가하게 되었다.

 

(문) 기업을 하는 데 목적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답) 목적은 의욕을 고취합니다. 목적은 창의성을 발휘하게 만들죠.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 오로지 돈을 벌고 먹고 싸기 위함이라면 얼마나 삭막하겠나. 누구의 가슴도 뛰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기업의 목적이 이윤추구 내지는 이윤극대화라고만 말한다면 대다수의 사람에게 의미를 주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회사의 목적에 진심으로 열정을 기울이면, 더욱 일에 헌신하고 높은 수준의 창의성을 보여줄 것이다. 이는 회사에도 그리고 회사에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도 분명 좋은 일이 된다.

 

월마트가 유기농 식품을 취급할 거라고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이제 홀푸즈가 끝났다고 말했다. 이는 홀푸즈의 고객들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홀푸즈의 고객들 대부분은 월마트에서 쇼핑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월마트의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30년간 줄곧 홀푸즈의 시장점유율은 늘어가고 있다. 

 

 

버진 그룹의 창업자 리처드 브랜슨

 

전 세계에 수백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연간 100억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이는 버진 그룹. 십대에 리처드 브랜슨은 어느 날 갑자기 사업가가 되어 있었다.  그가 부를 일군 장르는 음악 산업이었다. 할인점에서 떨이 레코드를 무더기로 사서 트렁크에 싣고 다니며 팔기 시작했다.

 

'다른 영국 내 소매업체들보다 무조건 싸게 판다'

 

1972년 그는 '버진 레코드'라는 레이블을 만들었고, 독특한 컨셉의 아티스트들과 연이어 계약하면서 빅 히트를 거두었다. 음악계의 큰 손이 되었다. 1992년 항공사가 파산 위기에 처하자 그는 이 음반사를 EMI에 매각하여 사태를 진정시키기도 했다.

 

그의 대담성은 한때 쇼걸로 활동했던 어머니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안데스 상공을 비행하는 최초의 항공기 승무원으로 일한 적도 있는 그녀는 그 시절 남성만 입교할 수 있는 글라이더 파이럿 양성 프로그램에 남자로 변장하여 참가할 정도였다. 변호사인 그의 아버지도 모험을 장려했다고 한다. 2011년 7월, 그는 우주비행 희망자로부터 총 440건의 예약을 받아 5,800만 달러를 예치했다고 발표했다. 그의 모험정신은 끝없이 진화하고 있다.

 

(문) 창업가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답) 재빨리 움직이는 능력

 

그는 항공사 최초로 180도로 퍼지는 평상형 좌석을 도입코자 했다. 이때 브리티시에어라인은 그의 아이디어를 알아채고 훨씬 좋은 평상형 좌석을 도입했다. 그러자, 평상형 좌석을 짜는데 1억 달러가 들어갔지만 그는 12개월도 안되어 이를 모두 철수해버렸다.

 

(문) 임원도 내부 승진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 이유는 뭡니까?

(답) 전문가란 사람을 밖에서 데려와 자격이 충분한 사람 위에 앉히면 사기를 떨어뜨리죠.

 

생존과 실패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생존하기 위해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워야 된다. 통계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기 인생의 80%를 일에 투여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뭔가 열정을 품을 만한 일을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아무튼 뭘 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도록 남보다 훨씬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홈데포 창업자 아서 블랭크와 버니 마커스

 

1978년 4월 14일 가정용 건축자재 소매업체 핸디 댄의 경영주 샌디 시골로프(별명 '무자비한 밍')는 CEO 버니 마커스와 재무 담당 부사장 아서 블랭크를 자신의 사무실로 호출했다. 전략 미팅인 줄 알고 갔더니 그들의 예상은 빗나가고 급작스런 처형식이 거행되었다.

 

"자넨 해고야!"

 

이 해고는 그들 인생의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시내 커피숍에서 정기적으로 회합을 가지며 훗날 홈데포가 될 회사의 사업계획을 짰다.  밑에서는 실행에 옮길 수 없었던 모든 일들을 끌어모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가정용 건축자재 소매업체의 계획을 수립했던 것이다.

 

기존의 매장과는 달리 엄청난 양을 선반 천장까지 가득 쌓아올린 창고형 할인매장이었다. 그들은 제조업체로부터 직접 물건을 구입해 현장에 훈련된 전문가를 배치해 개보수에 관한 문제들을 친절하게 대응토록 했다. 핸디 댄에 기투자했던 벤처투자가에게 회사지분 55%를 주는 조건으로 초기 자본금 2백만 달러를 조성하고, 은행을 설득하여 대출한도를 5백만 달러까지 확보했다.

 

1979년 6월 22일, 애틀랜타에 첫 번째 홈데포 매장 두 개가 오픈되었다. 그러나, 고객들이 홈데포의 존재를 알게 되기까지는 몇 개월이 걸렸다. 2만 5천품목의 상품이 진열된 매장임을 알게된 후에는 열광했다. 6개월도 안되어 홈데포 매장은 3개, 직원 2백명, 매출 7백만 달러로 성장했다. 첫해엔 약 1백만 달러의 적자였지만 1980년엔 흑자 850만 달러로 전환했다. 

 

(문) 홈데포를 창업했을 때, 두 분 나이가 어떻게 되셨죠?

(답) 아서는 34세, 버니는 48세였어요.

 

(문) 어떤 자신감으로 사업을 시작한 겁니까?

(답) 자신감이 아니라 오히려 절박함에 가까웠죠.

 

버니는 직장을 잃자 모아둔 돈이 없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시기라 절망적이었다. 오십이 다 된 나이에 어떻게든 성공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서는 공인회계사 자격증이 있어서 어디라도 취직할 수 있었지만 버니는 할 수 있는 일이 그것 뿐이었다.

 

사실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박리다매였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그들이 실패할 거라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업계의 마진이 워낙 적었고 규모를 늘려 구매 비용이 높아지면 절대 성공을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매장에 전문가 직원이 상주해야 하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후 그들은 DIY 비즈니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홈데포의 비즈니스 모델은 제조업체로부터 제품을 직접 공급받지 못하면 절대 성공할 수 없었다. 처음엔 제조업체 80%가 그들에게 제품을 공급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도매업자를 통해 훼방을 놓기도 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자 이젠 거래하지 않는 제조업체가 거의 없다.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페덱스의 프레드 스미스 등 세계적인 스타급 기업가들을 저녁 자리에 초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요리를 준비하든 간에 절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이를 해결해주고 있다. 그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 그들의 사고방식, 또한 그들의 영향력 등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스무 명의 대가들, 그들의 속내를 들춰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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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더기 점프하다
권소정.권희돈 지음 / 작가와비평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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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점점 아날로그 추억들을 먼지 속에 묻어 버린다. 빛 바랜 졸업 앨범을 들춰보면 그리운 얼굴과 함께 그 시절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찢어진 우산을 쓰고 집으로 가는데 뒤따라오며 우산을 받쳐주던 마음씨 고운 순이, 감을 따겠다고 용감하게 나무위에 올랐다가 떨어져 팔을 부러뜨린 돌이, 이웃 동네와 투석전을 벌일 때 맨앞에 나섰다가 눈에 피멍이 들었던 짱구도 모두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시절 연필에 침 발라가며 꾹꾹 눌러썼던 '부모님전상서', 크리스마스 씰을 붙여 국군아저씨에게 보내던 '위문편지', 사진만 보고 사귀던 펜팔친구에게 보내던 '연애편지', 군에 입대해서 처음 부모님에게 보내던 '안부편지' 등은 아날로그 시대의 소중한 추억들이다.

 

우리에게 소중한 아날로그 감성을 일깨워주는 책이 있다. 아버지와 딸이 서로의 글을 통해 세대간의 차이를 발견하고, 이해하며, 그리고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또한, 미국에 유학 다녀온 딸은 전공인 미술을 살려 책 곳곳에 예쁜 그림들을 싣고 있어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진다.

 

책을 펴내며

 

아버지와 딸이 함께

이 책을 펴내기로 한 순간부터

아버지는 딸을 다시 발견하고

딸은 아버지를 다시 발견하였습니다.

 

 

 

도서 제목이 독특하다. 구더기 점프하다. 난 구더기가 점프 하는 걸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구더기는 여름철 시골 화장실에서 많이 보는 흉물스러운 애벌레다. 연노란 색갈을 띠고 고물고물 기어다니는 모양이 하도 징그러워 신발에 밟힐까 봐 피해다니던 그런 벌레다.

 

파리는 알에서 애벌레, 번데기를 거쳐 파리로 변태한다. 즉 네 번의 탈바꿈을 해야 한다.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 자손을 보존하려는 그들의 지혜는 놀라울 따름이다. 파리는 호박꽃에 알을 낳는다. 꽃이 수정하여 열매를 맺으면 알은 자연히 열매의 중심부에서 애벌레로 변태한다. 구더기가 열매 속에 살면 그 부분은 썩게 마련이다. 썩어서 약한 부분을 뚫고 나와 번데기가 되고, 이후 파리가 되어 날아오르게 된다.

 

택배가 왔다. (중략) 아내는 호박죽을 한다며 곧바로 단호박을 쪼개기 시작하였다. (중략) 첫번째 호박을 갈랐다. 그런데 때깔 좋은 황토 빛 속살에 호박씨는 한 개도 보이지 않고 구더기가 바글바글 슬었다. (중략) 갑자기 열린 세상에 눈이 부시었을까. 잠시 후 그중 한 마리가 힘껏 점프를 하며 호박 속에서 나왔다. 나머지 구더기들도 덩달아 점프를 하였다.  

 

 

외롭고 빛바랜 플라스틱 빗과 컵

 

가족 .. 아빠의 일회용, 사실은 수십회용 ... 면도기

30년은 된 싸구려 녹색 플라스틱 빗.

그리고

솔이 부스스해져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칫솔들 ...

 

 

아빠는 청주대 현대문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정년 퇴임했다. 아마도 어느 유명 백화점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듯한 그 컵 안에는 가족들의 시간이 들어있다. 전기 면도기에 좀처럼 익숙해지지 못하고 계속 사용하는 1회용 면도기는 안쓰럽기만 하다. 이젠 버릴 때도 되었건만 솔이 부스스한 치솔도 마치 가족인 듯 쉽게 버리질 못한다. 아니다, 버리면 안 될 물건들이다.

 

2년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들을 정리할 때, 나는 욕실에서 펑펑 운 적이 있다. 피부병으로 고생하던 아버지를 모시고 일본으로 온천여행을 갔을 때 가정에서 사용하는 온천입욕제를 선물로 주었다. 그런데, 개봉도 않고 이를 욕실정리대에 모셔두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이를 사용하고 나면 없어질 추억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추억은 함부로 버리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불빛이 아름답다

 

이사를 왔다. 짐을 푼 곳은 좁고 꼬불따란 골목들이

사람과 숲의 경계를 이루는

언덕꼭대기 집이다.

마치 하늘 아래 첫 지붕 밑에서 사는 것만 같다.

 

요즈음 우리들이 사는 동네는 대개 아파트다. 옆 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누가 이사를 드는지 나가는지 관심이 있으랴. 소위 부촌은 더 할 것이다. 그런데, 좁고 길다란 골목이 꼬불꼬불한 동네는 일반주택이다. 비록 가난할 지언정 정이 있는 곳이다. 노인들의 기침소리, 아이들의 투정소리, 부부가 다투는 소리 등 사람 냄새가 넘친다. 인기척이 스칠 때마다 뿌연 빛을 내뿜는 전봇대조차 정겹다. 가난한 불빛이 더 아름답다.

 

 

내 인생의 양념들

 

요리할 때 달콤한 설탕만이 쓰이는 것은 아니다.

쓴맛, 짠맛, 단맛, 신맛, 매운맛,떫은 맛.

부엌에 있는 갖은 양념들을 보다가 엉뚱하게도

내 인생에 쓰디 쓴 맛을 보게 해준 사람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살다 보면 인생에 단맛을 준 사람보다 쓴 맛을 보여준 사람이 생각난다. 더구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처럼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면 속이 더욱 쓰리다. 회사의 자금업무를 맡겼더니 믿었던 책임자가 돈을 횡령하고 해외로 도주해버렸다. 가정 방문을 했더니 남편은 가출 중이고 별거한지 이미 오래 되었다는 아내의 말이 돌아서는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다양한 양념처럼 내 인생에도 골고루 맛이 베여야 할 것 같다.

 

 

비교적 허물없는 부녀지간이었지만 출간 작업을 하면서 자주 대화하고 서로의 작품에 대해 비판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딸의 그림은 아버지의 감각이라는 필터를 통과해야 했고, 아버지의 글은 딸의 감각이라는 필터를 통과해야만 했다. 포탈사이트 마이클럽에 딸 권소정씨의 글과 그림이 연재되면서 독자들과의 소통과 공감이 인기를 끌면서 결국 이 출간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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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스 스토리 - 착한 아이디어가 이루어낸 특별한 성공 이야기
블레이크 마이코스키 지음, 노진선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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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내가 살았음으로 인해

단 한 명의 삶이라도 더 편안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성공

 

2006년 스물아홉 살이었던 저자는 아르헨티나로 휴가 여행을 떠났다. 당시 그는 인터넷으로 중고생들에게 운전을 가르치는 온라인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다. 그의 두 번째 아르헨티나 방문의 목적은 이 나라의 문화에 흠뻑 빠져드는 것이었다. 그는 탱고를 배우고, 폴로 운동을 하고, 국민 와인 말벡을 마시며, 국민 신발 알파르가타를 신고 다녔다.

 

여행이 끝날 무렵, 그는 한 미국인 여성이 사람들에게 신발을 나눠주는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비교적 잘사는 나라임에도 아르헨티나엔 신발을 못 신는 아이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맨발이라면 각종 질병에 노출될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불편하기 그지없다. 또한, 이 단체는 전적으로 기부에 의존하다보니 신발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는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폴로 선생이자 친구인 알레호에게 신발 사업을 제안했다. 즉 새로운 종류의 알파르가타를 만들어 한 켤레를 팔 때마다 신발 없는 아이에게 새 신발 한 켤레를 무상으로 지급하는 신발 사업이었다. 아르헨티나 친구인 알레호는 흔쾌히 동참했다. 알레호 가족 소유의 헛간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신발'

'내일의 신발(Tomorrow's Shoes)'

'탐스(TOMS)'

 

대부분의 현지 제화공들이 함께 일하려 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덤비는 바보라는 이유 때문이다. 마침내 탐스를 믿어주는 제화공을 찾았다. 다른 제화공들고 한 둘씩 참여하기 시작했다. 제화공들의 작업으로 250켤레의 신발을 완성해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신발 사업에는 까막눈이었다. 그는 친한 이성 친구들을 불러모아 함께 저녁을 먹으며 신발 이야기를 했다. 친구들이 한 켤레씩 사서 신고 귀가했다. 느낌이 좋았다.

 

친구들이 신발을 팔아줄 만한 가게들의 목록을 주었기에 그는 이중 아메리칸 래그라는 가게에 들러 탐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바이어는 탐스를 매우 맘에 들어했다. 곧이어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로스엔젤레스 타임스'의 패션 담당 기자가 탐스 얘기를 듣고 인터뷰를 요청해왔던 것이다. 

 

이 기사가 도화선이 되어 <보그>에서 관심을 가지면서 탐스 운동화가 이 잡지에 실렸다. 이후 여러 잡지에도 탐스 기사가 실리면서 노드스트롬, 홀푸드 등 전국 체인망을 가진 대형 매장에서도 연락이 왔다. 스칼릿 요핸슨, 토비 맥과이어 등 유면명 연예인들이 탐스를 신고 다니는 모습이 도심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탐스는 전국으로 팔려나갔고, 더불어 이야기도 퍼져나갔다.

 

애초에 1만 켤레의 판매 목표가 달성되면 약속대로 아르헨티나 아이들에게 신발을 나눠주기로 했다. 이 약속을 이행하기로 결심하고, 그는 인턴, 스포터즈, 알레호, 제화공 등과 함께 대형버스를 빌려 아르헨티나 북동쪽의 이 마을 저 마을을 돌며 1만 켤레의 신발을 신겨주었다.

 

어느 마을은 모든 게 허물어져 마치 쓰레기 매립장을 보는 기분이었다. 집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고, 거리는 깨진 유리와 쓰레기로 넘쳐났다. 그러나, 아이들은 웃고 까불며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아이들의 부모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만감이 교차했다.

 

아이들의 웃는 얼굴은 앞으로 내 삶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 저자의 일기(2006년 10월 16일) 중에서

 

흥미로운 아이디어로 시작한 탐스가 불과 5년 만에 100만 켤레 이상의 신발을 나눠줄 정도로 성장한 탐스의 역발상을 살펴보도록 하자. 앞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여섯 가지 지침을 배워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나만의 사업을 창조하는 데 필요한 6가지 법칙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라

두려움은 유용한 자원이다

돈은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

단순함이 성공으로 이끄는 핵심이다

신뢰가 사내 문화에서 가장 중요하다

기부가 오히려 최고의 투자이다

 

 

간단한 일부터 시작하라, 크게 키우기 위해 걱정하지 마라, 현재의 대기업들도 한 때는 다 작은 기업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거창한 사업이나 자선 단체를 설립하겠다고 생각한 사람도 없다. 그저 뭔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했을 뿐이다.

 

돈이 없어도, 복잡한 사업 계획이 없어도, 화려한 경력이 없어도 뭔가를 시작할 수 있다. 작게 시작하라. 작은 기업으로 남을지라도 괜찮다. 나중에 규모가 커질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을 구하겠다는 거창한 신념으로 굳이 시작할 필요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시작하라.

 

나를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타인을 돕는 봉사 활동 속에서 자신을 잊는 것이다

 - 마하트마 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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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도시기행 - 역사, 건축, 예술, 음악이 있는 상쾌한 이탈리아 문화산책
정태남 글.사진 / 21세기북스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유럽의 문명은 지중해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지중해를 품고 있는 나라들은 그리스, 터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이집트와 알제리 등 아프리카 북부지역 등이다. 또한, 레바논, 시리아, 이스라엘 등 일부 중동 아시아국들도 지중해를 마주하고 있다. 이중 지중해 한가운데 위치한 나라가 바로 이탈리아이며, 서양문화의 뿌리를 제공했다.

 

이 책의 저자는 7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유럽 구석구석을 자유롭게 누비면서 주요 매체에 글을 기고하던 건축사다. 그는 '넥타이를 맨 보헤미안'으로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유럽의 다양한 지식과 경험들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건축 분야 외에도 역사, 미술, 음악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그의 열정은 2007년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수상하게 했다.

 

이 책은 북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볼로냐, 베로나, 제노바, 밀라노, 토리노 등 6개 도시와 중부 이탈리아의 피렌체, 피사, 아렛쪼, 시에나, 로마 등 5개 도시 그리고 남부 이탈리아의 나폴리, 폼페이, 소렌토, 아말피 등 4개 도시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시칠리아 섬의 타오르미나, 카타니아, 시라쿠자 등 3개 도시로 그의 여행은 끝을 맺는다.

 

비록 여행 전문 가이드북이 아닐지라도 이 책은 이탈리아를 여행코자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매매우 유용한 실용서임에 틀림없다. 저자가 건축가라고 해서 건축에 관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등 이탈리아의 전체 모습을 폭 넓게 조망하고 있다. 자, 그를 따라 여행에 나서보자.

 

 

 

 

베네치아

 

머나먼 옛날 이탈리아 반도에는 여러 종족이 살고 있었다. 북동쪽 지역엔 베네티라는 종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현재의 베네토주州이며, 주도가 바로 베네치아이다. 영어식 표기는 베니스다. 베네치아의 뜻은 '베네티의 땅'이다.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사람에게 베네치아를 다녀왔냐고 물었더니 베니스는 가보고 베네치아는 바빠서 못갔다는 대답을 듣고 크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곳은 육지에서 약 4km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물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19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이곳에 가려면 배편을 이용해야 했다. 지금은 두 개의 다리가 있다. 하나는 철도용 다리로 1846년 오스트리아가 세웠고, 다른 하나는 1933년 파시스트 정권이 세웠는데 지동차용 다리이다.

 

다리를 통과한 기차는 산타 루치아역에 도착한다. 산타 루치아는 '빛의 성녀聖女'다. 이곳 산타 루치아 성당에 성녀의 유골이 보관되고 있다. 역을 건립하면서 이 성당은 헐렸고, 유골은 인근 산 제레미아 성당으로 옮겼다. 유골은 유리상자에 보존되어 있는데, 체구가 작은 가냘픈 소녀의 모습이다.

 

산타 루치아역 앞 광장에서 산 마르코 광장으로 향하는 버스(바포렛토)에 승차했다. 이 버스는 증기선으로 수상버스를 일컫는다. 대운하 카날 그란데를 따라 물살을 가르며 나아간다. 대운하 양편의 우아한 건물들은 밝게 채색되어 물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하다. 특히, 명문가 콘타리니 가문이 소유했던 1400년대의 카 도로는 화려함과 세련됨이 가히 환상적이다.

 

대운하는 삐딱한 'ㄹ'자 모양으로 베네치아 심장부를 휘감으며 관통한다. 그 폭은 약 30 ~ 90미터이다. 수심은 약 5미터, 총길이는 약 3.8km이다. 베네치아는 약 120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약 180개의 작은 운하와 약 410개의 크고 작은 다리들이 놓여있다. 베네치아는 자연스런 물의 흐름을 그대로 수용한 친환경 도시 건설의 모범 사례이다.

 

바포렛토리알토 다리 아래를 지나간다. 베네치아의 역사는 바로 이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서로마제국의 국운이 기울어 훈족의 말발굽 소리가 커지자 베네토 주민들은 공포를 피해 배를 타고 이곳으로 피난왔던 것이다. 이후 6세기 후반 게르만족 계의 롬바르드족이 이탈리아를 침공하자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 육지로 피신해왔다. 697년 지도자('도제'라고 불렀음)를 선출하여 공화정체제의 도시국가 기틀을 다졌다.

 

섬하면 고립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역발상을 한다면 섬은 사방으로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밖으로 눈을 돌렸다. 육지와의 교역에 눈을 뜨고, 이를 위해 항해술과 선박 건조술에 관한 노하우를 차근차근 쌓기 시작했다. 이후 베네치아는 바다로 진출하면서 국력을 키워나갔다. 십자군 전쟁 때부터 급성장하여 14세기엔 라이벌인 제노바를 굴복시키고, 15세기엔 지중해 동부를 장악하는 황금시대를 열었다. 이처럼 섬은 더 이상>

 

리알토 지역은 세계 각지의 상품이 모이던 곳이며, 셰익스피어<베니스 상인>에 나오듯 금융의 중심지였다. 리알토 다리는 대운하 위에 건립된 최초의 돌다리인데, 다리 양편에 우아하게 디자인된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본디 이 다리는 목조였지만 자주 무너지자 베네치아공화국 정부가 돌다리로 대체했다. 당시 공모전에 미켈란젤로 등 쟁쟁한 인물이 응모했지만 당선작은 무명의 안토니오 다 폰테의 안이 채택되었다. 1592년에 아치 구조로 완공되었다. 관강객들을 태운 곤돌라가 다리 밑을 지난다. '산타 루치아'노래가 들려온다.

 

산타 루치아역을 출발한 바포렛토가 남쪽을 향해 약 40분쯤 지날 때 오른편 앞에 커다란 돔이 솟아오른다. 바로크 양식의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이다. 델라 살루테는 '건강의'란 뜻이다. 1629년 초여름 베네치아에 흑사병이 창궐하여 2년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1630년 10월 베네치아 원로원은 성모 마리아에게 직접 바치는 성당을 지어 이 재앙을 퇴치코자 했다. 디자인 공모를 거쳐 1631년 공사에 착공하자 놀랍게도 흑사병이 수그러들었다. 1681년에 완공되었는데, 베네치아 도시의 유명 건축물 중 하나이다. 이 성당을 짓기 위해 115만 개 이상의 말뚝을 땅 속에 박아 넣었다니 대단한 건축술이다.

 

드디어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했다. 고딕 양식이지만 이슬람 풍이 가미된 팔랏쪼 두칼레('도제의 궁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궁전은 베네치아공화국의 정부종합청사였다. 리듬감 있게 반복되는 기둥과 창틀이 윗부분을 받치고 있다. 1340년에 착공되어,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증개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이는 이슬람 문화와의 교류를 말해준다.

 

발걸음이 자연히 산 마르코 광장으로 향한다. 먼저 대성당에 눈길이 간다. 산 마르코는 마가복음의 저자 성 마가의 이탈리아식 표기다. 마치 동화 속의 건물처럼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양파 모양의 5개 쿠폴라(돔)는 축제 분위기를 만든다. 베네치아의 중요 행사는 이곳에서 열렸다.

 

대성당 정면 입구 위에 네 마리의 청동말과 그 아래 5개 아치에 장식된 화려한 모자이크에 시선이 모아진다. 모자이크 중 베네치아의 상인이 산 마르코의 유물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몰래 빼돌려 오는 장면이 흥미롭다. 828년 두 명의 베네치아 상인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했다. 당시 이집트는 그리스도교를 탄압하고 있었다. 산 마르코의 유물이 보관된 수도원에서 두 상인은 유골을 구입하여 출항시 이를 빵 바구니 밑에 숨기고 그 위에 이슬람 신자들이 싫어하는 돼지고기를 덮었다. 가져온 유물을 보존하려고 과수원 옆에 성당을 세웠는데, 976년 이 성당이 화재로 잿더미가 되자 1063년에 베네치아공화국 정부가 착공하여 30년이 지난 1094년에 완공했다. 과수원 자리가 바로 산 마르코 광장이 되었다. 

 

네 마리의 청동말은 복사본이고 원본은 성당 안에 보관되어 있다. 원본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약탈해온 것이다. 비잔틴 제국의 황태자 알렉시우스가 황제 자리에 앉도록 도와주면 엄청난 보상과 동지중해 무역 독점권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여 황위에 앉도록 했지만 약속을 어기자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여 약탈을 감행했다. 이때 가져온 약탈품인 것이다. 베네치아는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흥하면 망하는 것이 역사의 이치다. 아드리아 해의 여왕으로 군림하던 베네치아도 해상권의 중심이 대서양으로 넘어가면서 서서히 부귀영화의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음악, 미술, 연극, 출판 등 문화의 전성기를 거치다가 1797년 나폴레옹에 의해 정벌되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일개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산 마르코 광장의 남쪽에 카페 플로리안이 있다. 이 카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다. 1720년 12월 29일에 개업했는데, 원래 상호는 카페 알라 베네치아 트리온콴테, 즉 '개선하는 베네치아 카페'였다. 상호가 너무 길어 주인의 이름을 따 '카페 플로리안'으로 부르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카페는 나폴레옹, 바이런 등 저명 인사들이 즐겨 찾았다. 특히, 이 카페는 베네치아에서 유일하게 여성의 출입이 가능했다. 그래서 바람둥이의 대명사 격인 카사노바도 이 카페를 즐겨 이용했다고 한다. 

 

 

시라쿠자

 

시라쿠자는 이탈리아에서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도시 중 하나이다. 하지만 고도고도의 분위기가 도시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 역사와 품위가 느껴지는 곳이다. 고대 최고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고향이며, 사도 바울이 전도를 위해 로마로 가기 전에 들렀던 곳이다. 신약성경에는 '수라구사'로 표기되어 있다.

 

시라쿠자의 역사가 시작된 오르티지아 섬에 들어간다. 이 섬의 초입에는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아폴론 신전의 유적이 화석처럼 굳어져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새로운 땅을 찾아 바다 건너 이탈리아반도 남단의 남서해안과 시칠리아섬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기원전 8세기너온 사람들이 '쉬라쿠사이'라는 도시국가를 건설했다. 이것이 현재의 시라쿠자이다. 당시로 거슬러가면 그리스의 문화가 이탈리아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따라서, 시라쿠자는 로마에 비해 문화가 매우 앞서 있었다.

 

기원전 5세기에 시칠리아 최대강국으로 시라쿠자가 부상하면서 문화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지중해 연안의 문화 중심지로 각광받으며 이곳으로 유명 인사들이 몰려들었다. 여류 시인 사포가 망명 생활을 했고, 아이스킬로스는 자신의 비극을 초연했으며, 플라톤은 이상국가의 건설에 대해 설파했다. 

 

17세기에 발생한 지진으로 시라쿠자는 크게 훼손되었다. 이후 바로크 풍으로 재건되었는데, 이곳의 두오모도 자세히 보면 고대 그리스 신전의 유적 위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 사이 곳곳에 고대 그리스의 흔적을 찾는 재미가 솔솔하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도 곳곳에 있다. 해안 가까이에 있는 아레투사의 샘은 신기하게도 파피루스가 자라고 있다. 파피루스는 민물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이 샘은 민물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런 전설이 있다. 대양의 신 오케아누스의 아들 알페이우스는 요정 아레투사를 보고 반하고 만다. 하지만 그녀는 오르티지아 섬으로 피신해 샘으로 변한다. 그러자 알페이우스도 강으로 변해 그리스 펠로폰네소스에서 바다 밑으로 흘러 오르티지아 섬까지 와 이레투사 샘과 합류한다. 이 신화도 따지고 보면 지질학적 구조 때문이다. 시칠리아 본토에서 흘러온 차네강이 바다 밑 지하로 이곳까지 연결된다.

 

아르키메데스 광장에 들어섰다. 요정 아레투사의 전설을 묘사한 분수 조각이 눈길을 끈다. 그 오랜 옛날에 발가벗은 채로 질주하던 아르키메데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의 얼굴은 온통 기쁨으로 충만하여 "헤우레카! 헤우레카!"를 외치며 백주에 달린다. 이말은 고대 그리스어로 '나는 알아냈다'라는 뜻이다. '유레카'는 영어권 사람들의 잘못된 발음이다.

 

아르키메데스는 당시 학문의 중심지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유학하고 귀국해서 이곳에서 활동했다. 그의 업적 중 가장 위대한 것은 바로 부력의 발견이다. 시라쿠자의 왕 히에론 2세가 순금 왕관에 싸구려 금속이 섞였는지 알아보라고 명했던 것이다.

 

303년 로마제국이 기독교 박해에 기승을 부릴 때 이곳 귀족 집안의 처녀 루치아가 갑자기 약혼을 파기하고 지하 동굴에 숨은 기독교 신자들을 찾아가곤 했다. 어두운 동굴이라 그녀는 머리에 나뭇가지 관을 쓰고 그 위에 촛불을 얹어 앞을 밝혔다. 그런데, 배신감을 느낀 약혼자의 밀고로 그녀는 두 눈이 뽑히고 참수형을 당했다. 후세에 성인으로 추대되어 '빛의 성녀'가 되었다.

 

루치아의 유골은 400년 동안 시라쿠자에 보존되어 있다가 이탈리아 동부 아브룻쪼 지방의 한 성당으로 옮겨졌고, 10세기 후반 프랑스로 옮겨갔다. 하지만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기록이 없다가 1204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산타 루치아의 것으로 믿어지는 유골이 발견되자, 베네치아의 도제 엔리코 단돌로가 이를 보존코자 산타 루치아 성당을 건립했다. 이후 기차역이 세워지면서 이 성당이 없어지고 유골은 인근 산 제레미아 성당으로 옮겼던 것이다. 

 

 

이 밖에도 바다를 정복했던 구두쇠들의 고향 제노바, 아르노 강변에 핀 르네상스의 꽃 피렌체, 중세의 역사가 숨쉬는 토스카노 언덕의 소도시 시에나, 매력이 넘치는 로마, 산타 루치아 노래가 흐르는 곳 나폴리, 파도치는 저력 아래에 숨겨진 지상낙원 아말피, 영원히 시간이 멈춘 도시 폼페이 등 18개 도시를 함께 거닐 수 있다. 이탈리아 여행을 꿈꾼다면 이 책을 소지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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