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움직이는 미식의 테크놀로지
츠지 요시키 지음, 김현숙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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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의 핵심은 수많은 경험에서 얻어지는 "응용력"이다. 틀에 박힌 레시피가 해결해 줄 수 없는 부분이다. "요리를 잘한다"는 것은 재료들의 특성을 예리하게 잘 파악해서 때에 맞게 적절하게 대처하는 일이다. 요리사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일까? 아마도 정성을 가득 담은 음식이 빈 접시로 돌아올 때가 아닐까.

 

이 책은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미슐랭 가이드]의 스타 셰프 여섯 명의 비즈니스 성공 노하우를 소개하고 있다. [미슐랭 가이드]는 우리가 '미쉐린 타이어'로 익히 잘 알고 있는 타이어 회사에서 운전자들에게 유익한 식당 정보를 제공키 위해 기획한 것이었다. 책 표지가 빨간 색이어서 프랑스에선 "Red Book" 이라고 한다. 지금은 세계적인 레스토랑 평가지가 되었지만, 그 시작은 정말 평범한 것이었다.

 

재료의 선택

 

레스토랑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세 가지 요소란 기술과 재료, 그리고 손님일 것이다. 프로 조리사와 생초보 조리사가 대결을 펼쳤다. 좋지 않은 재료를 사용한 프로와 좋은 재료를 사용한 생초보간에 대결을 펼친다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생초보가 승리할 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 책에 소개된 스타 셰프의 성공에 숨어 있는 공통된 주제어는 바로 좋은, 신선한, 또는 자연산 재료였다. 특히, 호주에서 성공한 일본인 와쿠다 데쓰야씨는 10년에 걸친 노력끝에 오션 트라우트라는 바다송어를 양식에 성공하거나, 시드니엔 없었던 표고버섯을 재배하여 호주 음식 재료를 개척한 선구자로 평가 받는다.

 

끊임없는 공부

 

학교는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위해 준비하는 곳에 지나지 않는다. 평생 교육이란 말이 있듯이 스타 셰프의 성공뒤엔 끊임없는 노력과 공부가 공통 주제어다. 미국 뉴욕에 프랑스식 요리를 선보이며 현재 총 4 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오너 셰프인  데이비드 블레이씨는 미국 코네티컷 주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에서 정통 프랑스 요리를 공부한 사람이다. 프랑스 북부 지방의 귀족 출신인 그의 어머니는 그가 열네 살때까지 매일 아침 바케트를 손수 구웠을 정도로 음식만은 프랑스식 환경이었다. 그는 캐나다에서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요리세계에 입문, 17세에 셰프를 맡을 정도로 천부적인 수준이었지만 요리사엔 관심이 없었다. 이후 파리의 소르본대학교로 유학가서 맺은 인연으로 정식 요리사 수련을 시작했다. " 저보다 나이 어린 선배가 많았지만 , 프랑스식 장인 훈련이라 생각하고 각오를 단단히 했습니다. 3주일 내내 에샬로만 만지다 보니 손가락 껍질이 다 벗겨진 적도 있었죠." 주방에서 유일한 미국인이었기 때문에 뒤지지 않으려고 새벽 4시부터 한밤중까지 노력했다.

 

열정의 화신

 

不狂不及이란 말이 있다. 미치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스타 셰프는 공히 자신들이 좋아하는 요리라는 과제에 모두 미쳐 있었다. 와쿠다 데쓰야씨가 갑자기 주문을 받았다. 결혼식 리셉션 행사용으로 초밥 200인분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었다. 이제 겨우 요리를 배워가는 그였기에, 초밥을 만들어본 경험이 전무한 상태였다. 그는 시드니에 있는 한 초밥 집으로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초밥 만드는 법을 배웠다. 배우긴 했지만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이었다. 이 때 그는 '초밥의 에센스만 살리자'는 아이디어로 초밥의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변형 초밥"을 만들어 대성공을 거둔다.

 

독자적인 브랜드

 

성공한 스타 셰프의 공통 주제어엔 독자적인 칼러를 느낄 수 있는 고집스러움과 자신들만의 브랜드가 있다. 400년 전통의 효테이의 14대 주인인 다카하시 에이이치씨는 선대로 물려받은 것을 무리하지 않고 조금만 좋게 만들어서 아들에게 물려주자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다음 세대에도 그 시대에 맞는 '효테이'만의 색깔을 지켜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한다.

 

세계화, 그것은 개성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요리사 알랭 뒤카스씨는 새로운 요리를 만들 때는 언제나 자신이 위치한 지리적, 문화적 환경을 고려한다. 지중해에 있다면 지중해에 있는 것을, 파리에 있다면 파리에 어울리는 것을, 도쿄라면 도쿄에 맞는 것처럼. 알랭 뒤카스의 테크놀로지는 "조직력"이다. 인재를 양성하고, 전 세계를 여섯 가지 카테고리화하여 치밀한 기업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그의 세계화 전략은 바로 개성이다.

 

佛家에선 사람의 욕구를 財, 色, 食, 命, 睡의 다섯 가지로 설명한다. 食에 대한 욕구를 식탐이라 한다. 살빼기 다이어트가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SBS TV에서 방영한 드라마 [식객]은 허영만의 만화가 원작이다. 만화에선 우리나라의 전통 먹거리를 소개하는 것이 주내용이다. 반면, 드라마에선 대령숙수의 전통이 있는 음식점 운암정의 대를 잇기 위한 후계자의 대결 구도이다. 천재 요리사 성찬의 한국 전통 먹거리와 야심가 봉주의 한식 세계화가 한 판 승부를 펼친다. 한식이 고급화되고, 나아가 세계화의 궤도에 오르기 위해 이 책은 훌륭한 길라잡이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셈이다. 부디 한국에도 세계적인 스타 셰프가 양산되고, 쓰리 스타급 레스토랑이 탄생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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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 - 태평양 전쟁에서 배우는 조직경영
노나카 이쿠지로 외 지음, 박철현 옮김, 이승빈 감수 / 주영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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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과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진주만 기습으로 발발하였지만 일본 본토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투하된 두 발의 원폭으로 일본 천황 히로히토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전쟁이 종결되었다. 이 책은 일본의 패전에 대한 이유를 분석하여 일본군의 실패에 감추어진 교훈을 찾아내려는 의도에서 저술된 것이다. 여섯 명의 저자가 함께 저술한 것으로 1984년 출간되어, 20여 년이 지난 현재 일본에서 100쇄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이다.

 

연구회의 태동

 

1980년 가을 한 연구회가 발족한다. 방위대학교 전쟁史 교수인 스기니오 요시오는 조직론을 전공한 그의 동료 노나카 이쿠지로, 가마타 신이치와 의기투합하여 위기상황에 처한 국가의 의사결정과 정보처리를 분석하는 모임을 결성했다. 또한, 대외 정책 결정론에 관심이 컸던 도베 료이치도 이 모임에 규합하면서 연구 활동을 진행하지만, 그들은 전쟁 자료의 부족으로 연구가 벽에 막히자 연구 과제를 태평양전쟁으로 국한시켜 이를 재조명하고 패배원인을 규명하는 방향으로 연구 주제를 재설정했다. 이들의 주제는 "태평양전쟁의 실패에서 드러난 일본군의 조직 특성의 탐구"였다.(* 책의 원제목이 '실패의 본질 - 일본군의 조직론적 연구') 이후 군사史가 전공인 무라이 도모히데, 군사조직 연구에 몰두 중인 데라모토 요시아가 이들 모임에 새로이 참여했다.

 

실패 사례

 

노몬한 사건(1939년 5월 - 9월)은 일본 육군이 소련군에 패한 최초의 패배인데, 근대식 전투에 일본군이 서투르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으로 바로 태평양전쟁의 실패를 알리는 서곡이었던 셈이다. 작전 목적이 애매했고, 중앙과 현지간의 코뮤니케이션이 원활치 못함으로써 실패한 전투이다.

 

미드웨이 작전(1942년 6/4 - 6/7)에서는 일본 해군이 패배했다. 작전 목적이 불분명했고, 복잡한 부대 편성때문이었다.

 

과달카날 작전(1942년 8월 - 1943년 2월)에서는 미국과의 지상전에서 처음으로 패배했다. 일본군 보급선의 최전방이 바로 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날 섬이었기에 미군이 전략적으로 침공했던 것이다. 일본군은 정보가 부족했으며, 해군과 육군의 원활한 조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임팔 작전(1944년 3월 - 7월)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전쟁이었다. 임팔은 인도에 위치한 곳인데, 일본군은 버마(현, 미얀마)를 방위할 목적으로 임팔을 공격하지만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 참담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일부러 할 필요가 없었던 공격 작전인데도, 부하의 의견을 묵살하고 작전을 감행한 무타구치 사령관의 개인 성격과 인정에 약한 가와베의 리더십때문에 실패를 자초했던 것이다.

 

레이테 해전(1944년 10/22 - 10/26)은 필리핀 레이테섬에 상륙을 시도하는 미군을 격멸시키기 위해 벌인 해전이었지만, 전투에 참가한 함대가 임무를 충분히 숙지못한 채 작전에 돌입하여 실패로 끝난 사례이다.

 

오키나와 전투(1045년 4월 - 6월)도 작전 목적이 애매했고, 대본영과 현지군간의 인식 차이가 있었으며, 작전도 통일되지 못했기에 질 수밖에 없었다.

 

실패 요인 분석

 

목적의 애매함

목적이 불분명하면 그 과정과 결과도 불분명할 것이다. 군대는 대규모 조직이다. 명확한 방향이 없다면 이들은 우왕좌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단기 전략에 의존

일본군은 여러 차례의 자잘한 전투에서 미국에 승리하고 장기전에 돌입하면 그들이 전의를 상실하고 퇴각할 것이라는 안일한 자세에 젖어 있었다. 일본은 확실한 장기 전망도 없이 전쟁에 돌입했던 것이다. 일본군이 단기 결전으로 저항하는 방식은 보급과 병참지원을 믿지 못하고 경시하는 태도때문이기도 했다.

 

전략수립의 주관성

일본군은 일정한 논리에 의존하기보다는 다분히 감정이나 분위기에 지배되는 경향이 짙었다. 또한, 일본군은 전략대안이 많지 많아 거의 기습 전술을 구사했다.

 

균형 없는 전투기술 체계

노몬한에서 소련군 전차부대에 대패한 일본군 전차는 육군 병기 체계의 가장 큰 결함이었다. 일본은 대전차 전용 전차포 개발이 늦어져 시시각각 변하는 전황에 대응할 수 없었다.

 

인맥 편중의 조직 구조

중앙부의 지휘를 무시하고 참모가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육대 출신의 엘리트 집단은 참모라는 직무를 통해 지위권에 강력히 개입함은 물론 강건한 그들의 인맥을 구축하고 있었다. 조직 내부의 리더십이 지휘관보다 참모들이 더 발휘했던 것이다. 더구나 일본군 조직의 특이점은 관료제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하극상이 허용되는 이상한 시스템이었다.

 

개인 중심의 조직

근대적인 대규모 작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키 위해선 군 전체의 일관성 유지와 통합이 필요하다. 일본군은 육,해,공 삼위일체 작전에 대한 육군과 해군과의 공동 연구가 전혀 이루어 지지 않았다. 조직의 사고와 행동 양식이 서로 다르다는 근본적인 대립이 존재하고 있었기에 통합은 어려운 과제였을 것이다.

 

과정, 동기를 중시한 평가

노몬한 사건이 종료된 후, 책임을 묻는 인사이동이 실시되었다. 과달카날 전투에서도 시종일관 총공격만을 주장했던 쓰지 참모의 중대한 책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묻는 대신 단순 전근으로 끝내고 말았다. 일본군은 결과보다 과정을 높이 평가했다. 이러니, 개인의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물을 수 없었고, 평가 자체도 애매모호했기에 하극상같은 돌출 행동도 가능한 조직이었다.

 

일본군은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하였다. 조직으로서의 일본군이 실패하였기 때문에 전쟁에서 졌다는 설명이다. 저자들은 이 실패를 통해 "어떤 조직이 성공할 수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진화하지 않으면 도태한다. 지구상에 살아 남은 종은 강했거나 지적 능력이 뛰어 났기 때문이 아니라 변화에 잘 적응하고 진화한 종이라고 다윈은 주장했다. 청일전쟁과 로일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강력한 대동아 정책을 펼친 일본이었지만, 새로운 변화를 부단히 추구하지 않았기에 실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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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도구상자 - 우리 삶에 의미를 주는 위대한 철학자 50명의 명언들
라이너 루핑 지음, 강윤영 옮김 / 청아출판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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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철학책은 나에게 매우 효과적인 수면제였다. 잠을 쉬 들지 못할 때 책을 펼쳐 읽노라면 어느새 잠이 몰려 왔다.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훌륭한 처방이었다. 경제학은 경제 현상에 대해 연구하고, 물리학은 물리 현상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면, 철학은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인가? 답변이 참 궁할 것이다.

 

이 책엔 인류 역사상 위대한 오십 명의 철학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주요 저서와 촌철살인같은 명언이나 경구들을 소개하고 있다. 더구나, 연도별로 잘 정리하고 있기에 철학 사상의 흐름도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 준다. 한마디로 친절한 가정교사를 초빙한 셈이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은 기원 전 7세기경 그리스에서 시작된 학문이다. 철학(Philosophie)는 그리스語 필로소피아(Philosophia)에서 유래했는데, 필로는 '사랑하다'란 뜻의 접두사이고 소피아는 '지혜'란 의미이다. 따라서,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다소 황당한 정의이다. 지혜를 사랑하지 않는 학문이 어디 있겠는가.

 

무엇을 연구하며 어떻게 흘러왔나?

 

인간은 과연 무엇인가?

세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철학은 이 두가지 질문에 답하고 적절한 해제를 구하는 행위이다. 또한, 이와 관련된 모든 思惟와 노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초기 그리스 철학은 그 연구 대상이 자연이었다. 당시 자연은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근원은 무엇일까?" - 아낙시만드로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 -  헤라클레이토스

 

기원 전 5세기 후반, 소크라테스 이후엔 그 대상이 인간의 事象이었다. 인간의 영혼이 선량한지 문제가 되면서 윤리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심지어, 소크라테스는 자연을 대상으로 삼은 철학을 부정하면서 자연에 대한 지식은 잘 산다는 문제에 있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 프로타고라스

"나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 소크라테스

 

뒤이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적인 事象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동시에 자연에 대한 고찰도 병행했다.

 

"부패하고 무능한 이들이 국가를 이끌때 나랏일이 흔들린다." - 플라톤

"인간은 누구나 앎을 추구하는 천성을 타고 났다." - 아리스토텔레스

 

고대 철학의 말기, 소위 헬레니즘 로마시대에 이르면 철학의 대상은 더욱 한정 되어 졌다. 어떻게 하면 安心立命을 추구하는가 하는 일상적이며 실천적인 문제가 중심이 되었다.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가 대표적이다.

 

"어린 나이에도 얼마든지 철학을 시작할 수 있고 늙은 나이에도 철학을 버려서는 안된다. 정신적 건강을 가구는 데 너무 늦거나 이른 나이란 없다."  - 에피쿠로스

 

중세에 접어들자 철학의 대상은 인간도 자연도 아닌 神이었다. 중세를 지배한 것은 그리스도교였으며, 중세 철학도 종교적 색채가 강하고 신에 대한 고찰이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신께 의지하는 것은 내게 이로운 일이다. 내가 신께 의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면 나 자신에게서는 어차피 이미 의지를 잃은 후일 터이니."  -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길을 알거라."  - 힐데가르트 폰 빙엔

 

근세에 들어 철학의 대상은 또 변한다. 중세기완 달리 인간이 중심 문제로 등장하는 시대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믿음을 가지고, 인간 자신의 입장에서 모든 문제를 생각하려고 했다. 이런 풍조에 따라 철학도 인간의 인식이라는 것을 중심으로 잡았다.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 - 토마스 홉스 

 

인간은 과연 무엇을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는가를 탐구하는 것이 철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인간은 理性的인 인식에 의해 진리를 파악한다는 데카르트를 비롯한 合理論者와, 인간의 인식이 성립되기 전 경험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며 인간은 경험을 초월한 사항에 대해선 인식할 수 없다는 존 로크를 비롯한 영국 經驗論者가 대립하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르네 데카르트

"의식이 새하얀 종이나 다름없어서 그 위에 어떤 글이나 상념도 적혀 있지 않다고 가정해 봅시다." - 존 로크

 

칸트의 철학은 합리론과 경험론을 종합하여 통일을 시도한 것인데, 여기서도 인식이 중심 문제가 되었다. 인식 문제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근세 철학의 주요 과제였으며, 여기엔 신칸트학파와 분석철학이 있었다. 그런데, 19세기의 헤겔이나 마르크스에겐 오히려 철학의 중심이 역사였다. 즉, 인식이라는 문제를 철학의 주요 대상으로 생각치 않았던 것이다.

 

"계몽이란 인간이 스스로 떨어졌던 미성숙 상태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다." - 임마누엘 칸트

"철학자들은 세상을 여러모로 해석해 왔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 칼 마르크스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친 니체, 베르그송 등이 소위 生의 철학은 비합리적인 生을 중시하고 그 生을 파악하는 일이야말로 철학의 과제라고 주장했다. 또한, 키르케고르, 야스퍼스, 하이데거, 사르트르 등의 실존철학은 인간을 타인과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실존으로 파악하여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사는 방법에 대해 결단을 내릴지를 중점적으로 고찰했다.

 

"지상에 충실하라!" - 프리드리히 니체

"철학이란 여정이다." - 칼 야스퍼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 마르틴 하이데거

"인간은 자유를 선고당했다." - 장 폴 사르트르

 

현대철학은 근대철학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새로운 전개가 요청되었다. 점진적으로 유럽 중심에서 탈피하여 지역적 특성에 따라 발전해 갔다. 또한, 상호간의 영향이 밀접헤게 이루어졌기에 어떤 뚜렷한 철학사적 입장을 고정시켜 이해할 수도 없다. 대체로 생의 철학, 실존철학, 구조주의철학, 실용주의 등을 이 범주에 포함시킨다.

 

"우리는 시시포스가 행복한 인간이었다고 상상해야한다." - 알베르 카뮈

"모래 위에 그려진 얼굴이 바다거품에 씻겨가듯 인간 또한 사라지리라 장담할 수 있다." - 미셸 푸코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가치관을 수립하는데 있어 기초가 될 만한 가치나 사상 그리고 깨달음이 참고로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사상이나 통찰이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엔 수 많은 도구들이 있다. 그러나, 철학자들도 잘못 생각할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철학의 목표는 주어진 가르침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의 방향을 잡는 것이며, 자기 자신의 정신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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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록밴드를 결성하다 - 사는 재미를 잃어버린 아저씨들의 문화 대반란
이현.홍은미 지음 / 글담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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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만 보고 읽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책 내용은 내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책은 1부 (낭만은 죽지 않았다. 다만 모른 체했을 뿐이다) 와 2부 (스타일은 죽지 않았다. 다만 진짜로 몰랐을 뿐이다) 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선 인생의 낭만을 위해 록밴드를 결성한 詩月山水, 버킷 리스트는 오로지 자전거 타기라는 MBC 편성본부장, 색소폰을 품에 안은 '분당 색소폰 클럽', 블로그는 수다이며 그 속에서 자신을 찾는다는 유명 블로그 '스핑크스'의 주인공 송원섭, 스쿠버 다이빙으로 인생을 즐기는 어느 장돌뱅이, 흐르는 강물에서 꿈을 낚는다는 어느 디자인 프리렌서, 논밭에 나뒹굴어도 새가 되기를 꿈꾸는 패러글라이딩 메니아, 태평양이 무덤이 된다해도 결코 포기 못한다는 요트광의 이야기기 등을 소개하고 있다. 2부에서는 자신감이 충만한 인생을 즐기려면 멋부리기가 요구된다며, 패션, 얼굴관리, 성형, 모발관리, 음식과 술 즐기기 등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두 명의 전현직 연예담당 기자이다. 그래서, 책표지의 추천사도 유명 연예인인 최수종, 손창민, 이재룡, 오대규 등의 이름이 눈에 띈다.

 

얼마전 아내와 영화관 데이트를 즐겼다. 영화제목은 [브라보, 마이 라이프]. 외식도 함께한 멋진 밤이었다. 백윤식, 임하룡, 박준규 등이 출연한 이 영화는 다소 코믹하지만 직장인의 애환을 느끼게 해주었다.

샌님부장 조민혁, 30년을 하루 같이 성실히 근무한 그는 퇴임을 한 달 앞두고 있다. 주변머리가 없어 승진이라곤 모르고 밑에서 치고 오르는 후배들에게 어, 어 하다가 밀려나지만, 오로지 처자식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버티어 온 그가 이루지 못한 꿈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드러머의 꿈!

 

"인도에서는 인생을 총 세토막으로 나눈대요. 어려선 부모슬하에서 배우고, 성인이 되면 결혼해 부모 자식 챙기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모든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훌훌 떠나서 수도자의 삶을 사는 거죠." (180 쪽에서)

 

이 대목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 올랐다. 부모 자식을 잘 챙기고 있는지, 그리고 물려줄 재산은 있는지 등 심각한 자괴감이 밀려 왔다. 드러머가 꿈인 조민혁 부장처럼, 나도 부모님 가르침대로 성실히 살았지만 1부에서 등장하는 여러 사람들처럼 큰 비용을 들여가며 취미 생활은 못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엔 아내의 권유로 야생화를 배우면서 자생지 탐방을 위해 산행은 자주 했다. 한 때는 회사 경영이 힘들어 그 고통을 이기려고 마라톤에 열중하기도 했다. 교통비와 운동화 값만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취미였다. 그러나, 난 후회하지 않기로 맘 먹었다.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일과 취미에 푹 빠져 있기에.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고, 고정관념과 경계선을 넘어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조용헌이 쓴 [방외지사]란 책엔 우리 시대의 삶의 고수 13인이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공무원 생활을 팽개치고 시골로 낙향해 그림을 그리는 사람,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지리산 일대를 여행하다 돈이 떨어지면 아무집에나 들어가 일을 하면서 숙식을 해결하는 괴짜 시인, 혀로 승부를 거는 차맛 감별사. 역술인, 한의학으로 노벨상에 도전하는 내과 의사 등의 살아가는 스토리이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 지금 가는 길이 곧 나의 길이요, 나의 운명이다. "라는 것이다.

 

비록 잘 생기진 못했지만 깨끗하다 소리듣고, 비싼 와인이 아니어도 구수한 막걸리 한잔을 나누며, 쌀국수가 아닌 라면으로 해장을 다스릴지라도 내 주변에 취미를 같이 하며 인생을 즐기는 동료가 있다면 이것이 바로 나의 길이며 운명일 것이다. 떳떳하게 허리를 펴고 외치고 싶다. " 부라보, 마이 라이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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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 사계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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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경기도 양주엔 임꺽정 우물이라는 옹달샘, 임꺽정봉이 있다. 향토사학자는 출생시 거꾸로 태어 났기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임꺽정이라고 설명한다.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감악산에 오르면 장군봉이 있고, 이곳엔 임꺽정굴이 있다. 관군에 쫓기던 임꺽정이 이곳에 피신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명종실록엔 임거질정은 16 세기 중반, 조선을 공포의 분위기로 몰고간 화적떼의 괴수라고 기록하고 있다.

 

임꺽정은 홍길동, 장길산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유명 도적 중 한명이다. 그는 경기도 양주사람이지만 황해도 봉산 갈대밭에서 갈대로 삿갓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고리백정이었다. 조선시대는 士,農,工,商이라는 신분의 차별이 분명한 선비 중심의 사회였기에 백정은 농,공,상 축에도 못끼는 천한 신분이었다.

 

벽초 홍명희는 일제 치하인 1928년 11월부터 1939년 3월까지 조선일보에 조선 시대 최대의 화적떼 임꺽정 부대의 활동상을 그린 장편 역사소설 [임꺽정전]을 연재했다. 이 소설은 5편 10부작으로 구성되어, 봉단편, 피장편, 양반편에선 당시의 혼란한 시대 상황을 그리면서 임꺽정의 일생을 중심으로 칠두령의 이력들을 소개하고 있다. 의형제편에선 청석골에서 조직을 결성하기까지의 과정을, 화적편에선 이 집단의 활동상을 그려 내고 있다. "우리말 사전" 이라고 평가할 만큼 뛰어난 토속어 구사와 함께 야담과 전래 설화 그리고 민간 풍속 등을 풍부하게 싣고 있다.

 

이 책의 저자 고미숙은 임꺽정을 포함한 칠두령이 요샛말로 한결같이 백수이며 비정규직이었음을 빗대어 이들의 활동상을 "마이너리그의 향연" 이라고 명명하여 벽초 홍명희의 원작을 유쾌하면서도 맛깔스럽게 재해석하고 있다. 경제, 공부, 우정, 사랑과 성, 여성, 사상과 조직 등 7 개의 관점에서 이들의 향연을 재치있게 분석하고 있다. 한마디로 10권의 도서를 단행본으로 묶어 놓은 셈인데, 칠두령의 사랑과 우정, 자유와 열정, 그리고 반역과 투쟁의 여정들이 펼쳐져 있다.

 

칠두령은 명사수인 이봉학, 표창의 명수인 박유복, 축지법을 구사하는 천왕동이, 돌팔매의 고수인 배돌석, 천하장사인 길막봉이와 곽오주, 그리고 모사꾼 서림이다. 이들은 본거지 청석골에서 놀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또 논다. 이것은 이들의 일상이다.

우리는 임꺽정을 서양의 로빈후드와 비교하며 義賊으로 평하고 있다. 로빈후드는 중세 시대의 봉건 지배층으로부터 재물을 탈취하여 가난한 백성들에게 돌려준 도적이다. 그러나, 正史인 명종실록엔 의적이란 표현은 없다.

 

1559년 4월 황해도에 도적떼가 출몰, 관아를 습격하자 관리를 모두 무관으로 교체해도 이들은 정면으로 맞섰고 이후 한양에서 급파한 중앙군 등 관군 500명이 투입되자 산으로 후퇴하여 게릴라전까지 감행, 그 규모가 60명의 기병까지 포함된 도적떼라고 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한편, 조정에서 파격적인 포상금을 내걸자 가짜 임꺽정 소동이 발생하는 촌극도 벌어진다.

 

갈대밭이 무성한 황해도 봉산에서 갈대로 삿갓을 만들어 팔던 임꺽정이 왜 도적이 되었을까?

당시의 시대 상황을 살펴보자. 국가의 토지 정책이 바뀌고 새로운 농법이 개발되자 15 세기부터 간척지 사업이 매우 성행했다. 간척지 개발이 성공하면 사유지로 보장해주었기 때문이다. 갈대밭이 무성한 해변은 윤원형 등 권문세가들이 활발히 간척사업을 하면서 사유지로 변했다. 생계의 터전을 잃게된 임꺽정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산으로 들어가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었던 것이다.

 

훔친 물건을 거래하기 위해 임꺽정 일행은 한양 청계천 장통교 부근에도 출몰한다. 당시 이곳은 장통방으로 불리며 육의전이 늘어선 시장통이었다. 한양에 거주하면서 유통 상황을 파악한 정보참모가 바로 서림이었다. 간척지에서 생산한 쌀을 한양으로 가져오는 뱃길이 열리면서 권세가들은 결탁한 상인들을 이용해 매점매석으로 폭리를 취한다. 女主 문정왕후의 지시로 내수사는 백성들의 땅을 강탈한다. 내수사 소유토지는 세금이 없었기에 세수로 감소했다. 땅을 뺏긴 백성들은 심지어 내수사의 노비를 자처할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재정 부족으로 녹봉을 지급못하자 관리들도 부정축재에 눈을 돌렸다. 이런 시대 상황과 맞물려 수많은 도적떼가 전국에서 출몰했던 것이다. 임꺽정도 그 중 하나였다. 양반의 토지 확대로 삶의 터전을 잃게된 많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도적이 된 것이었다.

 

임꺽정은 백성을 약탈하고 관아를 기습한 전형적인 도적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백성과 아전들이 토벌대에 대한 정보를 내통했던 점에 비추어 볼 때 좋은 도적이 아니었나 싶다. 한탄강 인근에 고석정과 고석산성이란 명소가 있다. 길이 876 미터, 높이 3 미터의 고석산성은 관군에 맞서기 위해 임꺽정이 쌓은 성이라고 향토지에 기록되어 있다. 함경도에서 조정으로 공물을 바치는 통로였기에 임꺽정이 공물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눠 주었다는 설화가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1562년 임꺽정은 남치근이 이끄는 토벌군에 체포되어 처형됨으로써 마이너리그의 향연은 끝이 난다. 그러나, 농민들은 감히 실행하지 못한 자신들의 바램을 대신해 주었기에 그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지도층의 수탈에 당당히 맞서 저항한 희망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부정부패를 방지하는 사회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때 순박한 백성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인물, 그가 형장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처음부터 도적이 되고 싶었던 자가 누가 있겠소.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살기 위해 도적이 되었을 뿐. 백성을 도적으로 만든 자가 과연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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