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 HOW - 새로운 세계, 새로운 비전
더브 사이드먼 지음, 권기대.김영옥 옮김 / 베가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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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10월 15일, 오클런드 애슬레틱스와 뉴뇩 양키즈의 아메리칸 리그 플레이오프 3차전, 크레이지 조지 헨더슨은 입추의 여지도 없는 오클런드 콜리시엄 야구 경기장에서 파도타기를 만든 날이다.

 

" 먼저 나는 북을 쳤어요. 내가 경기장을 둘러보니 거의 모든 관중들이 파도를 만들고 있었어요. 거대한 인간 에너지의 파도가 관중을 휩쓸고, 파도는 연이어 전달되고 기세는 더욱 세차졌어요. 사람들은 함성을 질렀고 고함을 쳤어요. 팬들은 자신이 경기의 일부가 되고 있음을, 그리고 경기에 무엇인가 더해주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

 

1986년 멕시코 월드컵 결승전 때 파도타기가 처음으로 국제무대에 선보이며 "멕시칸 웨이브" 또는 "라 올라" 라고 불리게 되었다. 관중들 간의 접속과 소통이 제약받는 넓은 경기장에서 관중들은 홈팀의 승리라는 공동의 목표에 영감을 받아 거대한 협동에 동참한다. 국제축구경기나 올림픽 등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에서 파도타기는 이제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는 현상이 되었다.

 

파도를 일으키려면 리더십이 필요하다. 자신의 팀에 변화를 가져올 파도를 일으키려면 구성원들의 열정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인간 열망의 강력한 표현으로 발산되는 파도타기의 본질은 홈팀의 승리를 염원하는 공통된 열정으로 작동된다. 그 가치는 어느 개인적 행위보다도 커서 경기장의 모든 팬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 파도가 공동의 비전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뭉쳤을 때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파도의 힘을 이해하고 집중시켜 자기의 비즈니스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의 포인트이며, 파도가 일어나기 쉽도록 관중석을 건축할 수 있고 또한 팀들도 파도가 일어나는 환경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 두 번째의 포인트이다.

 

오늘날 비즈니스 세계에서 지속적으로 성공하는 회사들은 마치 파도와도 같은 강력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 일을 "어떻게 하느냐" 에서 파도는 시작된다. 회사라는 경기장의 관중석에서 어떤 비전을 발견한 누군가가 주위 사람들과 강력한 연결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편안함, 영감, 자신감을 가질 때 위대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오늘날의 새로운 사회경제적 상황 속에서 지속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새로운 힘, 인간 행위에 담긴 힘, 즉 "HOW" 가 지닌 힘을 활용해야 한다.

 

어떻게 전진할 것인가

 

비즈니스의 중심점이 토지에서 자본, 자본에서 정보로 이동해 왔고, 손익과 거래를 중시하는 밀어붙이기식 시대가 이제 저물고 있다. 또한 인간의 행위를 다스리는 데 있어 규율에도 한계가 있다. 이러한 변화들이 결국 우리의 초점을 "What" 으로부터 "HOW" 로 옮겨 갔다. 이제 성공은 세로운 기술과 습관을 요구한다. 따라서, "HOW" 의 탐사를 시작해 보자.

 

어떻게 생각하는가

 

영화 [캐스터 어웨이]의 주인공 톰 행크스는 자신의 외로운 여정에도 불구하고 해변에 밀려온 바람 빠진 배구공을 "윌슨" 이라 명명하고 사람들과의 연결을 추구한다. 뿐만 아니라 무인도에서 구출된 뒤 비행기 추락 직후 자신이 건진 소포에 "이 소포가 내 삶을 건졌다" 란 메모를 적어 배달을 마침으로써 사람들에 대한 약속을 지킨다. 이러한, 연결은 삶을 의미있게 만든다. 지금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서로 연결된 세계에 살고 있다.

 

장기적으로 지속될 성공을 달성하려면 주의 산만과 부조화를 줄이고 사람들 간의 시냅스를 맑게 지켜줄 길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누군가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결국 옳은 길을 가려면 자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계속하여 게임에 몰두하는 능력은 "HOW" 를 바로잡는 능력, 무엇을 하든 그 시냅스가 투명하고 오염되지 않도록 유지하는 능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어떻게 행동하는가

 

상하 위계질서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했던 기술과 관습들은 지금의 협력적 네트워크에서는 덜 중요하다. 이제는 이것과 다른 종류의 기술, 즉 수평적 네트워크를 통하여 뻗어나가는 강력한 시냅스,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창의력을 한데 묶을 수 있는 시냅스를 구축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투명성은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세계가 불투명할 때엔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에 있어 확실성의 간격이 존재했다. 세상에 만연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투명성은 이제 우리의 가장 강력한 "HOW" 중의 하나가 되었다.

 

세계의 상황이 너무나 극적이고도 특별한 방식으로 변화했기 때문에, 신뢰는 어느 때보다 강력한 통화가 되었다. 신뢰는 새로운 길로 새로운 여정을 떠나게 만든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수평적 비즈니스 구조에 의한 유연한 비즈니스 관계로 나날이 옮겨가고 있다.

 

블확실성으로 가득찬 이 시대에 한번 무너진 평판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공업용 우지 파동으로 라면 업계의 선두였던 삼양라면이 부도위기까지 내몰렸던 일이 이를 설명해 준다. 평판은 상대방이 우리와의 관계에서 의혹을 가질 때 느낄 수 있는 불편함에 대해 예방접종을 하는 효과이다. 더불어 평판은 상대가 우리의 말을 선의로 해석하게 해준다. 좋은 평판은 등산가의 등산용 밧줄처럼 우리가 산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할 것이다.

 

어떻게 운용하고 있는가

 

우리는 조직의 모든 국면에 "HOW" 를 수평적으로 심어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활기를 띠게 하는 어떤 것으로 만들수 있을 것인가 ? 무엇이 조직을 움직이는지 살펴보자. 진정한 성공을 성취하려면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생각을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조직의 운용과 문화라는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와 다양한 특질은 수없이 많은 방식으로 상호 합쳐져서, 눈송이의 개개 모습이 다르듯, 독특하고 다양한 집단 문화를 창조한다. 문화는 매일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작은 일들로 이루어진다. 가치는 규율이나 절차보다 좀 더 강하고 더 적응력 있는 시스템을 제공하기에, 가치 기반의 자율적 운영은 한 조직이 핵심 미션을 놓치거나 진로 이탈을 하지 않도록 한다. 그래서, 시장에서 성장하고, 적응하고, 변하고, 진화할 수 있도록 해준다. 고귀한 미션을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의 조직을 "What" 에서 "HOW" 를 향한 여정으로, 규율에서 가치의 여정으로, 방어에서 공세의 여정으로 인도할 수 있다.

 

리더십 프레임워크는 다섯 가지 꼭 필요한 속성으로 시작한다. 즉, 비전, 의사소통 및 참여, 권위를 마다않고 책임짐, 계획과 이행, 그리고 이어받기와 계속하기 등이다. 제임스 콜린스와 제리 포라스는 그들의 공저 "성공하는 기업들의 8 가지 습관(Built to Last)" 에서 리더들은 우리 앞에 턱 나타나서 시간을 정확하게 말해 주지는 않지만, 그들은 자기가 그 자리에 있든 없든 지속적으로 시간을 말해줄 시계를 만든다고 비유하고 있다. 이러한 기본 속성 외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잡성과 모호함에 맞서서, 카리스마 넘치는 권위를, 사람들을 고취시키다, 원칙에 뿌리를 박고, 현재의 진실에 대해 엄격함, 반성하는 자세, 다신 돌라올 수 없는 극한까지, 열성적이고 낙관적이 될 것, 의미를 추구하라는 속성 등이 원을 그리듯 구성하고 있다. 파도타기의 경험처럼 이 원을 한바퀴 빙 돌면서 "HOW" 의 체계, "HOW" 의 언어, "HOW" 의 습관을 강력하게 구축하게 된다.

 

" HOW 는 하나의 렌즈요, 이렇게 생겨나는 변화들을 보고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이니까, 그렇게 여정이 계속된다." 중요한 것은 역시 "HOW" 임을 강조하며 이 책은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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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빈칸 책 (블루) - 개정판 나의 빈칸 책 1
이명석, 박사 지음 / 홍시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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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빈칸]입니다. 이 세상 오직 당신만이 우리에게 대답할 수 있고, 우리는 오직 당신만을 위해 채워질 것입니다. 당신이 아니면 영원히 비어있을 칸들입니다" - [빈칸]

 

현대인의 생활은 늘 바쁘다. 바쁘다는 핑게로 기록은 늘 뒷전이다. 인생에서 남에게 뒤쳐지지 않으려면 불가피한 일이기에 결코 나쁘다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에 쫓기듯 달음질쳐야하고, 누군가의 연락을 놓치지 않으려고 화장실에 조차 휴대폰없이 입장하질 못한다. 누군가 이런 현대인의 삶에 빗대어 오히려 역설적인 " 느림의 미학 "을 제안하기도 했다. 느림이란 바로 참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누군가 우리에게 "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 하고 질문한다면 뭐라고 답할 것인가. 아마도 대부분은 평소에 이런 질문에 관심이 없었을 듯하다. 내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을 따라 가기도 벅찬데, 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나의 내면을 발견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도 않은 일이다. 불가에서도 수행의 목적이 바로 참된 나, 眞我를 찾아가는 길임을 강조한다.

 

이 책은 정말 희한하다. 빈 칸 투성이다. 이 빈칸은 채워주길 기다리고 있다. 예를 들어, 내 인생에 찾아온 하트들은 ? , 내가 나에게 한 제일 중요한 약속은 ? , 내가 즐겨 책을 읽던 곳은 ? , 내가 가장 가지고 싶은 유, 무형의 것은 ? , 나는 어떤 숫자와 친해왔을까 ? 등등 살면서 한번 쯤 생각 또는 경험했거나, 아니면 경험은 했지만 별 관심을 두지 않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추억들을 일깨워 준다. 또한,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그리고 즐거웠던 모든 기억들을 빈칸에 채우라고 한다. 빈칸에 빼곡히 채워지는 순간 그것은 바로 나의 역사이며 나의 참 모습인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이처럼 복잡한데 한 두마디로 결코 정리할 수 없다. 빈칸과 조각들을 마치 퍼즐 맞추듯 채워 나갈수록 내가 누군인지에 대한 실체가 느껴지지 시작한다. 그렇다고 빨리 알려고 서두를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아직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단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므로 기억하고 있는 사실들은 사라지기 전에 빨리 빈칸을 채우라고 권하고 싶다.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이 생존해 있을때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빈칸을 채우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채워진 빈칸들은 나의 앨범이다. 사진만이 남아 흐릿한 기억으로 그 때를 더듬는 것보다 채워진 빈칸은 생생한 추억 앨범이다. 순서도 중요하지 않다. 생각나는 대로 하나씩,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것부터 하나씩, 잊어버리기 전에 미리 하나씩, 길가다 문득 떠오르면 재빨리 하나씩, 이렇게 채워 보자. 나중엔 나의 자서전으로 다가 올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은 100 가지의 빈칸들이 있다. 빈칸도 채우는 요령이 있다. 혼자 채우기, 물어보며 채우기, 서로 들쳐보며 채우기, 천천히 채우기, 색색으로 채우기, 모자라는 빈칸 붙여서 채우기, 스스로 빈칸 만들어 채우기, 그리고 훔쳐보며 채우기의 여덟 가지 방법을 이 책은 제시하고 있다. 빈칸과 단둘이 대화하면서 추억과 잊었던 친구들을 찾아 보도록, 또는 부모 형제, 소꼽친구, 학창시절 선생님, 그리고 직장 오리엔테이션 동기들에 물어서 나에 대한 흩어져 있는 기억들을 모을 수 있도록, 그리고 친구, 애인, 배우자의 깊은 속도 들쳐볼 수 있도록 나를 도와 준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현재 뻐젓이 살아있는 연예인이 죽었다고 가정하여 영안실의 문상 풍경과 고인의 생애에 대하여 좋고 나빴던 기억들을 들추어 내는 것을 시청한 적이 있다. 이를 보며 나의 장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이들과 작별하는 그날이 빨리 찾아오길 굳이 기다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멋지게 이별하는 연습은 해 둘 필요가 있을 듯하다. 아일랜드 극작가 죠지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에 " 내 인생 우물쭈물하다가 이럴 줄 알았지 " 란 유명한 글을 남겼다. 비록 멋있는 말이 아닐지언정 나의 묘비에 새길 글을 미리 준비해 둔다면 남은 생을 더욱 알차게 지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유산과 시신에 대한 처리도 미리 고민해 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많이 부족한 나를 발견했기에 더 알차게 나를 단련하고 하루의 반성과 일기 쓰기를 게을리 말자고 다짐해 본다. 나의 빈칸 책은 바로 나의 자서전이기에 지금 바로 채워 나가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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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 선생의 사건일지 미스터리 야! 5
야나기 코지 지음, 안소현 옮김 / 들녘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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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0여 년전인 1905년에 쓰여진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시대를 비판하고 당시 인물들의 고독과 외로움을 話者인 고양이의 눈으로 그려낸 이야기이다. 이 책 <소세키 선생의 사건일지>는 나스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무례한 고양이다. 길에 버려졌다가 오로지 살겠다는 일념으로 병약한 구사미 선생님집에 얹혀 사는 주제에 각종 책의 글귀를 인용하면서 인간의 세상만사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불만을 쏟아낸다. 이 불평불만은 인간이란 한심한 족속을 향해 내뱉는 고상한 존재의 한숨섞인 한탄이다. 소설은 고양이의 주인과 그를 둘러싼 친구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인간의 머리 꼭대기에 앉은 고양이의 청산유수 요설과 지식인 사회에 대한 풍자를 묘사하고 있다.

 

소세키 선생의 사건일지

 

이 책엔 여섯 가지의 사건이 소개되는데, 추리 소설의 경우처럼 심각한 그런 유형이 아니라 우스꽝스럽다. 영어 교사 구사미, 간게츠, 메이테이 등 괴짜들이 펼치는 황당한 일상을 그리고 있다. 소세키의 원작은 고양이가 話者이지만, 이 책의 話者는 영어 선생님집에 더부살이 하는 중학생 신분의 서생이다. 선생은 제대로 하는 일도 없을 뿐더러 게을러서 서생에게 모든 일을 다 떠 넘긴다. 위가 나쁘다며 위장약을 달고 살지만 한 달에 여덟 통의 잼을 핥아 먹을 정도로 식탐이 강하다. 말도 안되는 주제로 토론을 벌이고, 서양학자들을 인용해 지식인인 것처럼 과장하거나, 또는 개구리 눈알 같은 구슬을 만들겠다는 등 별 쓸모없는 연구를 하며 시간만 죽이는 인물이다. 반면 나이 어린 서생이 더 어른스럽고 사건의 해결도 척척 해낸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집에서 고양이에 얽힌 몇몇 사건들을 서생인 話者가 인간의 관점에서 해설하고 있다. 그런데, 모든 사건들이 유치한 원인으로 발생하고 싱겁게 결말이 난다. 소설의 등장인물은 괴짜들로서 하는 행동이 너무 황당하여 웃음을 자아낸다.

소설에 등장하는 여섯 가지의 사건이나 등장인물도 원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동일하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쓰메 소세키의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읽다보니 두 작품을 상호 비교할 수 없었기에 마지막 책장을 덮는 나의 소감은 단지 황당할 뿐이다. 따라서, 저자의 충고처럼 원작을 먼저 읽고난 뒤 다시 읽어야 제 맛을 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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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안의 아인슈타인을 깨워라!
앤드류 펙 & 지니 맥그레이드 지음, 유지훈 옮김 / 시그마북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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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엽을 보면서 많이 배웠고 늘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를 본받으려고 노력하면서 만세타법 등으로 타격 자세를 바꾸면서 늘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살아 왔습니다. " - 한겨레신문(2007.6.11)

 

프로야구의 가을 잔치가 곧 도래한다. 한국프로야구의 천재는 이승엽이다. 깔끔한 타격자세, 간혹 한쪽 발을 살짝 들어치는 외다리 타법으로 세계 최연소 300홈런을 달성한 이승엽이라는 홈런왕 뒤에 2인자는 양준혁이다. 그의 인터뷰는 창의성 개발의 핵심적인 방법을 제시해 준다.

 

양준혁은 타율이 급락했던 2002년에 "만세타법" 이라는 독특한 자세로 타격폼을 변경했고, 2005년엔 오픈스탠스를 포기하고 간결한 스윙으로 타격자세를 바꾸어 "15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라는 대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는 폼나는 이승엽의 타격자세를 벤치마킹하면서 변화를 위해 몸부림을 쳤던 것이다.

 

 

이 책의 공저자 앤드류 펙과 지니 맥글레이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창의력과 혁신 분야의 대가이다. 공저자는 현장에서 많은 기업들을 컨설팅한 경험을 토대로 창의력의 골격을 이루는 다섯 가지 습관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정찰 - 눈을 크게 뜨고 주시하라

 

오감을 모두 자극하는 정찰은 창의력을 일으키는 데 도움을 주며, 자극을 받을 때 사람의 감각과 느낌은 실타래처럼 서로 엉키게 된다. 정찰의 기본적인 전제는 호기심과 관찰력, 수용력, 감흥, 상관성 그리고 다양성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사냥꾼처럼 정찰병은 창의력을 발동시키기 위해 신선한 정보를 수집하느라 고심하면서 고도의 집중력을 갖고 자신의 경험과 관찰 대상에 몰입한다. 이렇게 관찰력은 연습을 통해 계발할 수 있다. 따라서, 정찰 습관을 기를수록 불꽃을 유도하고 창의력을 자극할 가능성은 좀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주마간산식의 관찰로는 어림도 없다. 정찰을 제대로 하려면 다양성과 관련성의 균형을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배양 - 창의력을 깨우는 환경

 

배양이란 불꽃을 일으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창조, 개발하는 습관을 말한다. 환경은 창의력을 발휘하는데 "마중물" 역할을 한다. 따라서, 창의력을 자극하는 장소를 선택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강이 내려 보이거나 또는 공원이 내려다 보이는 장소는 창의적인 불꽃과 행동을 일으키는 촉매인 셈이다. 그러나, 조도가 너무 밝거나 어두운 회의실은 브레인스토밍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창의력을 억제할 수 있는 환경이다. 따라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데 가장 적당한 환경은 자신에게 알맞는 것이어야함을 명심하라.

 

유희 - 마음껏 즐기라

 

유희란 어린아이의 순진한 태도를 말한다. 이는 자극을 시험하고 호기심을 갖도록 도와 준다. 아인슈타인도 평소에 농담을 즐기는가 하면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는 등, 운동도 열심히 했다고 한다. 유희란 인간이 감정을 표출하거나 긴장을 늦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창의력을 발휘하려면 놀 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DNA엔 이미 "놀이 유전자"가 들어 있지만 이를 키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창조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놀이본능"에서 비롯된다. 창의적 사고는 그것이 좋아하는 대상과 어울린다." {칼 융]

 

모험 - 미지와의 조우

 

모험은 미지의 세계로 성큼 다가가기 위해 자신을 격려하는 습관을 말한다. 모험을 감행하면서 배짱을 키울 수 있다. 비즈니스 세계는 분명하고 정확하며 예측할 수 있는 일을 기대한다. 따라서, 직장에서 창의력의 세계에 뛰어들려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 창의력을 발휘하여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려면 위기를 감수하고 실패를 두려워 않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항해사이자 탐험가인 콜럼버스는 스페인 지도층의 후원을 얻어 미지의 땅으로 모험을 떠났다. 당시엔 지구가 평평하므로 끝까지 가면 추락한다는 가설이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창의적인 의욕을 고취시켜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려면 콜럼버스와 같이 비전을 품고 재원 확보에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수확 - 창의력의 결실을 맺어라

 

"수확한다" 란 말은 창의력을 유도하는 모든 활동의 결과이며 수확은 노력의 총생산량이자 불꽃을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아이디어로 전환하는 작업을 말한다. 불꽃을 유도하기 위해 정찰과 배양을 비롯해 유희단계를 거쳐 모험단계를 통해 불꽃에 몰입해야 하며 가정이나 직장에서 알찬 결실을 맺기 위해서 수확단계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즉, 수확이란 불꽃과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실체로 승화, 또 다른 불꽃을 일으키기 위해 창의력의 눈을 여는 과정을 말한다.

 

 

연습은 창의력을 자극하는 습관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창의력은 발견에서부터 시작된다. 정찰은 무언가를 발견하려고 떠나는 항해이다. 적절한 환경을 조성하여 창의력을 발휘하라. 창의력은 상상력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아이들과 어울려라. 또한, 창의력은 용기이다. 모험을 감행하여 그로부터 얻게 되는 가치는 이를 믿지 않을 때보다 훨씬 더 크다. 나아가 창의적인 삶을 지속하기 위헤서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자극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자기계발서를 읽거나 세미나에 참여하는 등 성공의 경로를 파악하고, 자신의 창의력을 굳게 믿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프로야구사에 대기록을 계속 갈아 치우는 2인자 양준혁 선수처럼 창의성 발휘를 위해 몸부림쳐야 함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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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21세기와 소통하다
안희진 지음 / 시그마북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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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깨달음의 순간들이 그리 자주 우리의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순간마저도 이내 다음의 순간들에 묻혀 버리고 또한 오랫 동안 우리를 멀리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살면서 끝까지 깨닫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우리의 하찮은 대상들 너머에서 물결처럼 굽이쳐 다가오는 삶의 깨달음은 다음 순간으로 이어지지도 못하고 멀리 사라진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거리를 걸어가고 있을 때 갑자기 모든 것이 나에게 다가 올 수도 있다. 사랑하는 이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에, 비바람에 이파리 하나가 떨어지는 순간에, 우리가 사랑이나 진리나 행복이라고 이름 붙이는 모든 것들의 정체가 베일을 걷고 그곳에 있다. 손을 뻗기만 하면 된다.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손을 뻗쳐 보면 그 순간에 그것은 사라지고 만다. 아쉬워한들 이미 진 꽃이 다시 피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장자를 중국 고대의 대사상가로 알고 있다. 하지만, 장자라는 사람에 대한 기록은 확인할 수 없고, 그가 썼다는 [내편] 일곱 편을 제외하고는 실제 몇 사람의 손에 의해 완성되었는지도 분명치 않다. 내용도 장자 자신이 말하듯 寓言이 곳곳에 깔려있어 얼핏 보면 황당무계한 느낌도 든다. 그러나, 찬찬히 다시 읽어 보면 오묘한 이치와 사상이 있음을 알게 되고 특히 풍자는 읽을수록 흥미진진하다.

 

한국의 전래 동화 중에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은혜 갚은 꿩"이란 이야기가 있다. 꿩을 잡아먹으려는 구렁이를 한 선비가 활을 쏘아 죽이고, 나중에 다른 구렁이가 그 선비를 잡아먹으려하자 꿩이 죽음으로 선비를 구한다는 줄거리이다. 구렁이는 꿩을 잡아 먹어야 살 수 있다. 꿩도 나무나 숲에서 벌레를 잡아먹고 산다. 과연 꿩을 먹는 구렁이는 나쁘고, 벌레를 먹는 꿩은 좋은가?

 

여기서 善과 惡을 놓고서 토론을 벌여 보자. 아이들은 선비가 왜 불쌍한 구렁이를 죽였어야 했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과서의 의도는 아이들에게 은혜를 갚는 일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여 선악과 시시비비를 가린다는 것은 순전히 맘 속 관념의 작용일 뿐이다. 장자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이니 정의니 하는 작은 가치들, 예법이니 지식이니 또는 믿음이니 하는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 기준에 의지하고 있는지를 일깨워 주고 있다.

 

그런데, 장자라는 인물은 언제 적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알아 볼 필요가 있다. [史記]를 비롯한 몇몇 책에는 장자에 관하여 "그 배움은 노자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 공자의 무리를 꾸짖는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유교적인 수양을 쌓았으나 노자풍의 정서를 지녔던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장자]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제나라 宣王과 장자와의 대화가 많이 나오는데, 이를 토대로 연대를 따져보면 대체로 장자는 맹자와 거의 비슷한 시대의 사람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한편, 장자가 태어난 곳은 오늘날의 하남성 귀덕현으로 노자의 고향이기도 하다.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은 일상적인 現實生活을 벗어나지 않는 착실한 가르침인 반면에, 노자와 장자는 자유분방하고 理想的이며 때론 허무적인 사상이 포함되어 있다. 공자와 맹자의 고향은 산동성 연주시이고, 노자와 장자의 고향은 하남성 귀덕현인데, 이 두 곳의 중심지를 직선으로 연결하면 800 킬로미터가 채 안되어 광활한 중국 대륙에 비추어 보면 그리 먼 곳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책은 2 부 5 장에 걸쳐 16 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란 장자의 지적과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장자의 해법이 소개되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며, 무엇 때문에 공부 또는 일을 하는지에 대한 답으로 더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것이라는 단순 설명은 참으로 공허하다. "나" 라는 것도 실상이 아닌 잠시 사용하는 겉옷인바, 장자로부터 겉옷의 얽매임에서 벗어나는 해법을 배우고 또한 맑은 영혼의 눈을 떠 현상을 꿰뚫고 실상을 본다면 완전한 자유에 이르게 된다.

 

참된 삶을 구현하려면 먼저 자신의 참모습을 되살려야 한다. 자신의 참모습을 되살리면 나와 사물이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나" 라는 것을 버리고 "참된 나" 의 상태가 되면 "나" 와 "내가 아닌 것" 의 분별이 없어진다. 이처럼 분별심이 없는 상태를 장자는 이렇게 비유하고 있다.

 

"시장 거리에서 남의 발을 밟으면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하지만, 형이 동생의 발을 밟으면 부드러운 눈길만 줘도 되고, 무모가 밟았을 때는 아무 말도 필요 없다." (242 쪽)

 

"남과 친하게 사귀면서 선물 따위를 하지 않는 것은 남과 자기의 구별을 잊었기 때문이다. 나와 남을 하나로 보는 사람을 하늘 사람이라고 한다." (242쪽)

 

"발이 신을 잊는 것은 신이 발에 꼭 맞기 때문이며, 허리가 허리띠를 잊는 것은 허리띠가 허리에 꼭 맞기 때문이다." (242쪽)

 

깨달음은 아침에 떠오르는 햇빛과 같다. 우리는 요리사 포정의 소 잡는 과정, 꼽추의 매미집기, 기성자의 싸움 닭 훈련에서 공통점을 발견한다. 도를 깨달은 것은 일정한 과정을 통해서라는 사실이다. 과정이란 의도적인 기술 쌓기를 초월한 나라는 것을 잊는 과정이다. 요리사 포정에겐 소가 소로 보이지 않았던 3년 동안의 기술 쌓기는 무위의 경지였다. 이것이 바로 나라는 것을 잊고 진정한 나를 회복한 것을 의미한다. 송대의 시인 소동파가 "[장자]의 문장은 넓기가 바다와 같고, 변화무쌍하기가 용과 같아서 천하의 기묘한 글이다" 라고 극찬했던 것처럼, 장자와의 소통을 통해 그의 이름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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