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 메이커 - 세상을 전복하고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변화의 창조자들
이나리 지음 / 와이즈베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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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평생 직장이라는 에스컬레이터는 없다. 부몬님 세대의 성공 방정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리드 호드먼의 말마따나 나 자신이라는 스타트업을 경영해야 한다. 시장의 변화를 읽고, 민첩하게 움직이며, 합리적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제야말로 한 번쯤 남만의 승부를 걸어볼 만한 때가 된 것이다. 단, 체인지 메이커여야 한다. - '저자 서문' 중에서

 

 

창업가 정신을 찾아가는 여행

 

'기회를 포착해, 난관과 역경을 뚫고, 혁신적 사고와 행동으로, 새 가치를 창출하는 것'

 

책의 저자 이나리가 정의한 '창업가 정신'이다. 그녀는 

 

 

 

 

 

 

 

 

 

그들은 '무엇을 아느냐' 보다는 '누구를 아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며 때로는 엄청난 비난과 갈등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변화를 위한 새로운 질서를 정립하려고 노력한 사람들이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실패로부터 배우며 가끔 '미친 결정'을 내리기도 하지만 합리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면서 시장의 변화를 읽고, 민첩하게 움직이며 세상을 바꾸어 나간다. 

 

 

 

 

 

드롭박스의 드루 휴스턴

 

드롭박스의 젊은 창업자 드루 휴스턴은 실리콘밸리의 진정한 '록 스타'로 인정받는다. 이 회사는 2014년 초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을 비롯해 골드먼삭스, 세쿼이어캐피털 등 유수 투자자들로부터 총 2억5000만 달러를 유치했다. 기업 가치는 무려 100억 달러. 최대 주주인 그의 자산도 1조3000억원대로 불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 회사가 기업공개를 할 경우 트위터의 가치를 가뿐히 제압하는 '잭팟'을 터뜨리라 예상한다. 

 

무엇보다 드롭박스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세일즈포스닷컴처럼 '플랫폼'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수많은 파트너를 제안으로 끌어들여 독자적 생태계를 구축 중인 것이다. 꿈이 큰 휴스턴은 이미 수 차례의 강력한 M&A 유혹을 이겨냈다. 제안자 중에는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도 있었다.

도대체 드롭박스가 뭐길래? 이는 쉽게 말해 각종 파일을 PC는 물론 스마트폰, 태블릿 등 인터넷으로 연결된 온갖 기기에서 자유롭게 넣고 빼고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다. 어떤 기기에서든 사진이나 문서를 '드롭박스' 폴더에 집어넣으면 연결된 모든 기기로 순식간에 업로드 된다. 여러 사람이 한 계정에 접속해 실시간 공동작업을 할 수도 있다.

 

USB 메모리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으며, 이메일이나 포털 사이트에 로그인해 파일을 올리고 내리는 수고도 할 필요 없다. 2기가바이트의 저장 공간을 무료 제공하고, 윈도부터 안드로이드까지 거의 모든 운영체제를 지원한다. 현재 2억 명 이상이 사용하는, 세계 최대의 파일 공유 서비스다.

 



그가 밟아온 길은 21세기 성공 창업자의 교과서만 같다. 하버드대 출신 엔지니어 아버지와 도서관 사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보스턴 근교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5살 때 어린이용 IBM 컴퓨터를 선물받은 것을 계기로 프로그래밍에 빠져들었고, 열두 살 때 게임을 하던 중 발견한 버그를 제작사에 알려 임시 직원에 발탁되기도 했다.

 

공부를 잘해 SAT 1600점 만점으로 MIT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에서도 오직 관심은 프로그래밍과 창업이었다. 주말이면 관련 서적을 수북이 쌓아놓고 읽는 것은 물론 저학년 때부터 이런저런 창업에 도전했지만 길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몇몇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자기만의 비전을 찾아 헤맸다.

 

어느 날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가기 위해 기차역을 찾은 그는 작업 내용이 담긴 USB메모리를 가져오지 않은 걸 깨달았다. 낭패감에 휩싸인 중 갑자기 '각종 파일을 간편하게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드롭박스 홈페이지를 보면 그가 '보스턴 기차역에서 (드롭박스 소프트웨어의) 코드 첫 줄을 썼다'고 설명한다.


 

드디어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찾은 그는 2007년 실리콘밸리로 이주한다. 이어 세계 최초이자 최고 수준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Y콤비네이터'(YC)에 도전한다. 당시 그가 YC의 액셀러레이팅(보육) 대상이 되기 위해 제출한 지원서 내용은 그 패기와 통찰력, 간결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로 인해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됐다.

 

지원서를 살펴보면 그가 당시 이미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인터넷 기기가 우리 일상은 물론 업무 영역 전반을 지배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예감'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이미 여러 파일 공유 서비스가 출시됐으나 일반인도 쉽게 접근하고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제품이 없음을 강조했다.

 

그의 문제의식과 해법은 YC의 인정을 받아 철저한 멘토링은 물론 적지 않은 투자까지 받게 된다. 대신 YC의 요구와 그 자신의 필요에 따라 공동 창업자를 물색한다. 이란 난민 가정에서 태어난 MIT 후배 아라시 페르도시였다. 이 후배는 고작 6개월 남겨놓은 대학 졸업을 포기하고 실리콘 밸리로 달려온다. 그는 현재도 드롭박스 최고기술책임자CTO다.

드롭박스가 처음부터 엄청난 주목을 받은 건 아니었다. 초기 고객 물색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일껏 투자받은 돈을 온라인 광고비로 허비하던 중 휴스턴은 색다른 방식을 고안한다. 유머러스한 코멘트와 함께 시제품을 홍보하는 동영상을 찍어 얼리어답터들이 자주 가는 사이트에 올린 것이다. 이를 통해 들어온 사용자 피드백을 반영해 제품을 개선한 뒤 또 후속 비디오를 올렸다. 아이디어를 빠르게 실행해 시제품을 만들고 시장 반응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 이른바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방식의 모범 사례라 할 만하다.

이후 드롭박스는 뛰어난 기능과 편리한 사용자환경 디자인, 무료와 유료로 이원화된 요금 설계, 빠른 동기화 속도와 안정성, 사용자가 또 다른 사용자를 추천하면 양측에 무료 데이터를 추가 제공하는 마케팅, 외부 개발자나 기업들이 관련 서비스를 쉽게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방 정책 등으로 시장을 장악했다.

2013년 휴스턴은 MIT 졸업식에서 축사를 했다. 핵심 메시지는 세 가지였다. 첫째, 테니스 공을 쫓아 목줄이 끊길 지경으로 달려가는 강아지처럼 꿈에 집중하라. 둘째, 삶을 완벽하게 만들려 하지 말고 재미있게 만들어라. 셋째, "1분만 생각해 보라. 당신이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5명의 사람(circle of 5)은 누구인가?" 이 중 세 번째 메세지는 무척 인상적이다. 

그는 재능 또는 노력만큼이나 어울리는 사람이 누구이냐가 중요하며, 그것이 사람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실제 곁에 함께 있진 않더라도 꿈꾸며 닮고 싶어하는 사람 또한 '당신의 인맥'이라고 강조했다. 나의 서클은 누구이며, 누구를 롤 모델로 삼아야 할 것인가. 이번 주말을 바쳐서라도 고민해 볼 만한 주제인 듯하다.

 

 

창업자의 스승, 폴 그레이엄

 

스타트업은 신생기업을 뜻한다. 엑셀러레이터는 초기 자금, 멘토링, 네트워크 등을 제공하는 스타트업 육성 시스템이다. 이 단계를 잘 마치면 벤처캐피털, 즉 창업투자사의 본격적인 투자 대상이 된다. 이후 성공적인 기업 경영으로 증권시장에 상장되거나 높은 가치로 인수합병이 될 때 이를 엑시트라고 부른다.

 

와이컴비네이터YC는 세계 최초의 엑셀러레이터다. 실리콘밸리의 창업 역사는 YC를 중심으로 전후前後가 나뉜다. 2005년에 설입된 YC는 30개국, 700개가 넘는 스타트업을 탄생시켰다. 이중에서 생존한 성공 기업들의 평균 기업가치는 이미 약 580억 원(2012년 초 기준)을 넘어섰다. 앞서 살펴본 드롭박스의 기업가치는 2015년 6월 기준 약 11조 5천억 원에 달한다. 세계적인 IT잡지 <와이어드>는 YC를 '스타트업 신병 훈련소'라고 명명했다.

 

 

 

창업자 폴 그레이엄은 학창 시절 학교 공부를 경멸하고 또래들과 어울리길 거부했던 전형적인 '너드nerd'였다. 그는 코넬대학교 철학과에 입학, 작가의 꿈을 가졌지만 이후 방향을 바꿔 하버드 대학원에서 컴퓨터 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또한 명문 로드아일랜드스쿨오브디자인에서 정식으로 미술 교육까지 받았다.

 

1995년, 그는 친구와 비아웹이라는 세계 최초의 웹 기반 애플리케이션 회사를 설립했다. 3년 뒤 야후는 이 회사를 4,960만 달러에 인수했다. 지금의 '야후 스토어'다. 이후 그는 새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창안, 스팸 필터링 원천 기술의 개발 등 전설적인 해커의 반열에 올랐다.

 

"창업에 대한 일장 연설을 하고 난 뒤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다 '나도 엔젤이 없었다면 스타트업을 못했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YC를 시작했다" - 폴 그레이엄

 

핵심 메시지는 간단하다. '성공적 스타트업을 만들려면 좋은 사람들과 시작하고, 고객이 정말 원하는 것을 만들며, 돈을 최대한 아껴 쓰라'는 것이다. 아이디어란 실상 그리 중요치 않으며, 강박적이리 만큼 무섭게 일하는 파트너를 구하고, 첫 번째 서비스를 무조건 빨리 내놓아야 한다는 조언도 곁들인다. 공동창업자 간 지분 분배엔 '모두가 약간씩 박한 대우를 받는 느낌이 들 정도가 적당하다' 식의 현실적 가이드라인도 제시한다. 무엇보다 스타트업은 '40년 할 일을 4년에 몰아 하는 만큼의' 엄청난 노력과 체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세상의 부富를 창출하는 데 이보다 더 빠르고 좋은 길은 없음을 강조한다.

 



이런 생각에 따라 그해 여름 그레이엄은 비아웹의 옛 동료, 훗날 아내가 된 제시카 리빙스턴과 함께 YC를 설립한다. 비아웹 매각 등을 통해 번 돈을 재투자한 것이다. 이어 액셀러레이팅의 표준이 된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될성부른 예비창업자를 뽑아 한 팀(1~4명)당 1만4000~2만 달러의 초기 자금을 자원하고, 3개월간 집중적인 멘토링과 기술·경영 조언을 제공한다. 대가로 약 6%의 지분을 받는다. 13주 차에는 유력 투자자들을 초대해 데모 데이를 갖는다. 이런 스타트업 스쿨을 매년 두 차례 진행한다.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게 매주 화요일 저녁 열리는 '만찬Dinner'이다. 지난 3월 미국 출장 중 캘리포니아주 마운틴 뷰에 있는 YC를 찾았다. 현장에서 만난 YC 멤버는 "실리콘밸리의 유력 투자자와 멘토들이 참여하는 만찬이야말로 YC의 진면목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유명해도 YC 특유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면 이 자리에 초대받을 수 없다. 만찬에서의 대화를 밖으로 전하지 않는 것도 불문율이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저녁 늦도록 새 아이디어와 투자에 대해 토론하고 조언을 주고받는다. 그야말로 실리콘밸리 네트워크의 결정판이다.

미국의 벤처투자자이자 블로거인 프레드 윌슨은 "그레이엄은 아이들(창업자들)에게 돈만 주는 게 아니라 방법론과 가치체계까지 알려 준다. YC는 그저 투자회사가 아니라 컬트이며, 그레이엄은 그 교주"라고 평한다. 한국에서도 요즘 액셀러레이팅, 멘토링 붐이 일고 있다. 무늬만 그럴싸할 뿐 프로페셔널과는 거리가 먼 프로그램들이 많다. 결국 답은 그레이엄처럼 성공한 창업 선배가 자신이 일군 부富로 후배 스타트업 육성에 나서는 것이다. 본엔젤스, K큐브, 프라이머, K스타트업, 패스트트랙아시아 같은 국내 대표 액셀러레이터들의 활약을 고대한다.

 

 

 

실리콘밸리 생태계 디자이너, 마이클 모리츠

 

 

 

 

 

 

'2014년 세계 산업계 최고의 사건'을 꼽는다면 아마도 알리바바그룹의 뉴욕 증시 상장일 것이다. 그해 9월 상장 이후 50여 일 만에 알리바바의 주가는 50퍼센트 가량 올랐다. 연말 시가총액은 우리 돈으로 310조 원을 돌파했다. 덕분에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중국 최고 부자가 됐다. 최대 투자자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역시 일생일대의 성취를 이루었다. 이 가운데 뒤에서 가만히 웃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미국 실리콘 밸리 벤처투자사 세쿼이아 캐피털마이클 모리츠 회장이다.

 

 

 
모리츠는 알리바바가 상장되기 전에 경제 전문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몇 년 전 조용히 이 회사에 투자했다. 알리바바의 기업공개는 인터넷 산업의 전 지구적 진화에 있어서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우리(세쿼이아)는 십이삼 년 전부터 중국에 거대한 기술 기업 가치가 형성되리라는 것을 예견했다. 향후 30여 년간 제대로 된 비즈니스를 하려면 중국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 ICT(정보통 신기술) 업계 리더 중 그의 이야기를 흘려듣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리츠는 1990년대 이후 실리콘밸리 창업 생태계를 사실상 디자인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투자한 기업 리스트를 살펴보자. 구글, 야후, 페이팔, 시스코, 유튜브, 링크드인, 자포스, 왓츠앱, 드롭박스, 스트라이프 등. 그는 이 회사들의 초기 투자자이자 이사회 멤버였고, 강력한 후견인이자 헌신적인 멘토였다. 그가 직접 투자하지 않았지만 세쿼이아의 주요 포트폴리오에는 애플, 오라클, 에어비앤비 등의 회사들에도 경영에 깊숙이 관여했다. 그는 2015년에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버블이 붕괴될 조짐을 보인다고 말했다. 참고로 쿠팡이 국내 기업으로는 최초로 세쿼이아로부터 2014년 1억 달러를 유치한 적이 있다.

 

 

풀뿌리 소비자운동, 브루스 크라우더

 

영국 잉글랜드 북서부의 랭커셔 주는 산업사나 노동운동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산업혁명의 진원지이자 기계파괴운동(러다이트 운동)으로 대표되는 근대 노동운동의 발원지이며, 세계 최초 협동조합인 '로치데일 조합' 탄생지이자 임기 내내 노동집단과 격렬히 대립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런 랭커셔에는 2000년대 이후 다른 듯 같은 또 하나의 의미가 덧붙여졌다. '공정무역의 메카'다.

공정무역이란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같은 개발도상국 생산자들과의 공정한 거래를 통해 해당 지역 농민과 노동자들의 삶에 긍정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도모함을 말한다. 대개 환경친화적 농산물이나 제품을 직거래하는 소비자운동의 형태를 띤다. 핵심 정신은 '자선이 아니라 정의'라는 홍보 문구로 요약된다. 일상생활에서 공정무역 인증마크가 부여된 제품을 소비함으로써 제3세계 사람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보장하고,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가자는 것이다.

이 공정무역 운동이 지구촌 곳곳으로 퍼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곳이 바로 랭커셔 주의 소읍 가스탕이다. 2001년 이 곳은 세계 최초의 '공정무역 마을'이 됐다. 이를 계기로 세계 30여 개국 총 2,224개(2015년 8월 기준)의 공정무역 마을이 생겨났다. 영국은 공정무역의 선진국으로 거듭났다.

 

 

 

마을의 창시자는 브루스 크라우더다. 가스탕이 공정무역운동의 상징이자 롤 모델이 될 수 있었던 건 그야말로 이름 없는 평범한 시골마을이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특별한 점 하나 없다는 바로 그 평범함이 오히려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의지와 헌신만 있다면 세계 어느 곳의 어떤 공동체도 공정무역 마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크라우더 공저 <공정무역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중에서).

 

실제 공정무역 마을 운동은 '풀뿌리 소비자운동' 혹은 '풀뿌리 시민혁명'의 세계적 모범사례라 할 만하다. 창의적 활동가들의 끈질긴 헌신이 지역민들의 열정을 끌어내는 데 성공할 경우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지역민의 삶의 질과 만족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국제적 연대를 통해 인류의 공동선共同善 실현에 기여한다.

크라우더는 리버풀대에서 수의학을 전공한 수의사다. 그는 대학 졸업 직전인 1984년, 영국의 세계적 구호단체인 옥스팜 활동가가 된다. 92년 결혼과 함께 가스탕에 정착해 동물병원을 여는 한편, 옥스팜 가스탕 지부를 설립한다. 이어 가스탕에 공정무역을 정착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그는 가스탕이 공정무역의 진원지가 되기에 충분한 잠재력을 갖췄다고 봤다. 랭커셔 주처럼 산업화와 노동운동의 최전선에서 역사적 분투를 해온 영국 공업지역 사람들에게 '공정한 노동에 대한 공정한 대가'라는 공정무역의 모토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언론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시의회나 종교단체들 또한 시큰둥했다. 크라우더는 극심한 좌절과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돌파구는 꿈결에 찾아왔다. 어느 날 밤 크라우더는 잠을 자다 불현듯 공정무역 마을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혹 잊을세라 펜과 종이를 찾아 이를 기록했다. 핵심은 개발도상국 생산자들과 가스탕 농민들 간의 공감대 형성이었다.

2000년 3월 '공정무역을 위한 2주간' 행사 때 크라우더와 옥스팜 동료들은 지역사회 각 분야 대표들을 식사에 초대했다. 테이블에 놓인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은 공정무역 상품과 가스탕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것이었다. 그는 개발도상국 생산자들에게 공정 가격을 지불하자는 공정무역 운동이 정당한 가격을 받고자 애쓰는 가스탕 농민들의 노력과 같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이 같은 이벤트를 기획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참석자들은 공정무역 운동에 깊은 공감을 표시했다. 그는 '가정 또는 직장에서 공정무역 제품을 사용하겠다는 서명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가스탕 시는 2011년 마을 중심부에 공정무역마을국제센터(FIG)를 열었다. 세계 각지로부터 몰려오는 사회활동가와 관광객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크라우더를 비롯한 몇몇 활동가들의 지칠 줄 모르는 의지와 행동력이 지역민 전체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것이다. 크라우더는 세계적 명성을 얻은 뒤에도 여전히 가스탕에 살며 지역 봉사자이자 파트타임 수의사로 활동 중이다.

 

흔히 정부는 물론 각종 단체에서는 변화의 동력을 조직 정비나 예산 확보에서 찾는다. 하지만 가스탕의 성공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결국 진정한 힘은 사람, 그리고 연대에서 나온다. 사회 변화를 주도하려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이 열정과 창의성, 네트워킹 능력인 이유다.

 

 

세상은 누가 바꾸는가?

 

저자는 서문에서 이 질문에 대해 "사업가"라고 답한다. 책에 등장하는 43명의 체인지 메이커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놀라운 혁신으로 이전에는 없던 뭔가를 창조해낸 사람들이다. 창업가도 있고, 엔지니어나 과학자, 그리고 사회혁신가도 있다. 이들 모두에겐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기업가정신의 주요 요소 혹은 성공 창업의 필수 덕목이라해도 무방할 것 같다.

 

책을 통해 자신의 체인지 메이킹 역량을 가늠해 보자. 특히 창업과 취업 사이에서 고민 중인 사람, 오랜 직장생활 끝에 독립을 꿈꾸는 사람, 비록 작지만 자신의 일을 시작해 보려는 사람,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은 사람 등이라면 유익한 팁을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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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모델 100+ - 가장 강력한 100가지 경영 기술의 핵심지식 총망라
폰스 트롬페나스.피에트 하인 코에베르흐 지음, 유지연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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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속가능성, 혁신, 전략, 다양성,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이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수익성까지 여러 측면에서 개인과 조직의 발전을 위해효과적인 모형과 이론을 적용하는 데 관심있는 사람들을 위해 저술되었다. 저자들은 조직의 작동 방식에 대한 개념적 설명이나 예측 면에서 강점이 있고, 조직의 변화 실행을 이끄는 지침으로 널리 활용되는 100가지 모형을 선정했다. - '서문' 중에서

 

 

100가지 경영 모델을 배운다

 

 

 

 

 

 

 

 

그는 개인과 조직의 발전을 위해 효과적인 경영 모델과 이론을 적용하는 데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저술했다. 100가지 대표 경영 모델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삽화를 이용했으며, 삽화는 모델을 각색하거나 해석하여 모형의 핵심 내용을 표현하였다. 각 모델의 핵심 내용과 활용 방안을 제시하였으며, 한계점에 대해서도 서술해 실무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왔다.

 

비즈니스 현장의 실무자들이 처한 현실은 마치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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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9 1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 제21회 전격 소설대상 수상작
기타가와 에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놀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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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리에 방영중인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직장인이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보통 직장인들은 야근과 휴일근무에 시달리느라 여가를 누리기는커녕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아오야마도 그 처지가 마찬가지다. 짧은 휴식이 절실한 직장인들에게 소설은 손바닥만한 오아시스를 선사한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입사 반년 된 신입사원 아오야마는 취업에 성공했다는 안도감도 잠시, 계속되는 야근과 휴일근무, 그리고 일중독 부장의 구박에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회사를 쉬는 날에는 지쳐서 잠만 자느라 친구들을 만날 시간조차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정신을 잃어 선로에 떨어질 뻔한 그를 누군가 구해 준다.

 

이 사람은 야마모토이다. 자신이 아오야마의 초등학교 동창이라 주장하는 그는 이후로도 계속 찾아와 용기와 위로를 준다. 아오야마의 회사생활은 야마모토의 도움으로 조금 나아지는가 싶더니 다시 최악으로 치닫는다. 그 와중에 아오야마는 야마모토가 정말로 초등학교 동창이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 게다가 야마모토에 대한 충격적인 뉴스 기사까지 발견한다.

 

도대체 미스터리한 야마모토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 마치 지옥같은 회사생활을 하는 아오야마는 어떤 결말을 맞을까? 직장인이 공감하는 스토리로 웹툰 <미생>이 국내에서 인기를 끌자 곧이어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었다. 마찬가지로 일본에선 이 소설이 직장인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일본 아마존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13시 27분, 오늘만 세 번째인 상사의 호통.
19시 35분, 드디어 상사가 퇴근. 제발 좀 더 빨리 돌아가 줘.
21시 15분, 마침내 퇴근. 이 시간이 되면 전철이 띄엄띄엄 온다.
22시 53분, 귀가.
25시 0분, 취침.

 

인쇄 관련 중견 기업에 다니는 신입사원 아오야마의 하루스케줄, 토요일 출근은 당연한 일이고 일요일에도 죽은 듯이 자고 있다가 요란한 휴대전화 소리에 억지로 눈을 뜬다. 수화기 너머로 부장이 거래처에서 클레임이 들어왔다고 난리 부루스다. 이번 달은 벌써 2주 동안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 이 지경이 되자 잠이 오는지도, 배가 고픈지도 모를 지경이다. 최근 반년 동안 몸 상태는 쭉 최악이다. 녹초가 되어 간신히 집에 도착해도 몇 시간 뒤에 또 회사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싣는다. 사실 신입때는 대부분 이렇다.

 

나의 신입사원 시절로 잠간 돌아가본다. 잔무를 처리하고 귀가한 시간이 새벽 3시경, 오늘은 빨리 퇴근해 집정리를 좀 해야겠다고 맘 먹는다. 간단히 세면하고 잠자리에 든다. 아침 5시, 차임벨 소리에 억지로 눈을 뜬다. 며칠 동안 새벽잠을 설치며 검토했던 영문계약서 드래프트를 어디에 뒀는지 책상 서류더미에서 찾느라고 면도는 뒷전이다. 오늘 회의 안건이기 때문이다. 찾았다. 서둘러 출근모드로 돌입한다. 아침부터 속이 쓰리다. 싱글남의 하루는 또 이렇게 시작된다. 이날 회의 발표자인 나는 엄청나게 까였다. 준비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일찍 퇴근해야지라고 맘먹었지만 이날도 새벽에 귀가했다. 술냄새를 풍기며.

 

퇴근시간 전철역, 휴대전화의 진동모드가 부르르 떨고 있다. 망할 상사의 전화다. 거래처에 그렇게 엎드려 빌듯이 사과했는데 또 어쩌라구 전화질이야, 아오야마는 계속 떨리는 휴대전화의 전원을 끈다. 내일 출근해서 혼나면 배터리가 나갔다고 둘러대기로 맘먹었다. 만사가 귀찮아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는데 점점 지면이 두둥실 떠오르는 듯하더니 갑자기 오른팔에 충격이 전해졌다.    

떨어진다는 느낌이 든 순간, 그의 몸은 엄청난 힘에 이끌려 승강장 위로 휙 되돌아왔다. 아무리 봐도 믿을 수 없었다. 얇디얇은 '그 팔'은 175센티미터나 되는 그의 덩치를 너무나 쉽게 승강장 위로 되돌려 놓았다. 그 연약해 보이는 몸집에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이 뿜어져 나온 것이다. 멍해 있는 그에게 남자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야, 오랜만이다! 나야, 야마모토!"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남자는 초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초등학교 4학년 올라가기 전에 오사카로 이사했다는 거다. 한잔하러 가자며 그를 회집으로 안내했다. 가지런한 앞니를 반짝거리는 야마모토는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모습이었다. 어떤 친구인지 몰라 미안한 마음으로 뒤따라 걸었다.

 

맥주를 주문하는 사이 아오야마는 화장실로 들어가 꼬박 2년 넘게 연락하지 않았던 초등학교 동창에게 전화를 걸었다. 반가워하는 동창에게 단도직입적으로 혹시 야마모토를 기억하냐고 물어보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야마모토 겐이치를 기억하며 그다지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학교 동창이라는데 본인은 별로 추억이 떠오르지 않을 땐 이처럼 난감할 수가 없다. 아무튼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계산은 야마모토가 했다.

 

니트족이라는 야마모토는 영업직의 아오야마에게 말투는 표준어로 바꿔야 하고, 상대방을 치켜세울 기회가 있으면 뭐든 칭찬하며, 그리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설명은 마치 초등학생 상대로 얘기하듯 천천히 친절하게 행하라는 등 인간관계나 대화법 등에 관해 유익한 조언들을 해주었다.

 

"고타니 제과랑 미팅이 있구나. 어때, 될 것 같아?"
"네, 느낌이 괜찮아요. 지금 철저하게 준비하는 중입니다"
"그래. 최근에 좋아 보이더라. 이게 체결되면 큰 건이야. 모르겠는 게 있으면 뭐든 물어봐"
"네! 감사합니다"


이 일이 잘되면 자신감을 얻게 될 거다. 날 응원해 주는 잘나가는 선배도 있다. 이보다 더 듬직할 수 없다. 이번만큼은 잘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무리 괴로운 일이고 체력적으로 힘들지라도 성과가 나타나면 정신적으론 편해진다. 마음이 안정되자 그의 건강도 좋아졌다. 이젠 잔업 따위는 조금도 두렵지 않다. 그만큼 그의 현재 사이클은 무척 좋은 편이다. 결국 계약을 따냈다.

 

그런데, 지난번 화장실에서 야마모토의 신상을 문의했던 동창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다른 동창들에게 알아보았더니 야마모토 겐이치는 현재 뉴욕에 살고 있으며 공연관련 일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만나고 있는 야마모토는 초등학교 동창이 아니라는 해석이 된다. 도대체 그는 누구일까? 왜 그는 아오야마를 돕고 있을까? 귀가해서 컴퓨터로 확인했더니 동창인 야마모토는 분명히 뉴욕에 있었다.

 

아오야마는 야마모토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평소 늘 만나는 그 술집에서 둘은 만났다. 테이블로 생맥주가 나오자 그는 야마모토에게 "사실은 내 동창 아니지?"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하지만 야마모토는 의외로 "앗, 들켰네?"라는 반응을 태연하게 보임에 따라 오히려 말을 꺼낸 아오야마가 허를 찔린 셈이었다. 정작 야마모토 본인은 첫 날 이미 동창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거다. 면허증을 확인한 결과, 그의 이름은 야마모토 준이며, 나이도 세 살 위였다.

 

점심시간, 평소처럼 라면집 앞에 줄을 서 있는데, 이가라시 선배의 전화가 걸려왔다. 얼마전에 계약한 고타니 제과에서 클레임이 들어왔다는 거다. 즉시 사무실로 복귀했다. 납품 종이가 계약내용과 다르다는 이유였다. 사과와는 별도로 인쇄 공장에 연락해 납기를 맞추어 달라고 부탁했지만 결과는 야속했다. 결국 일이 터지고 만 것이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한 부장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할까? 말이 나오지 않자 대신 이가라시 선배가 이를 보고했다.

 

"그래서 너는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깜짝 놀라 고개를 들자 눈에 핏발을 세운 부장의 모습이 보였다. 분노로 얼굴이 굳어 있었다. 주위에서는 동료들이 숨을 삼킨 채 지켜보고 있다.
"너는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고! 이 자식아!" 부장이 아오야마의 책상을 있는 힘껏 걷어찼다. 어마어마한 소리가 울리고 옆자리 동료가 움찔하며 몸을 움츠렸다. 한심하게도 공포로 다리가 떨렸다. 이가라시 선배의 도움으로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수습은 잘 진행되었고 계약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그 수혜는 모두 이가라시 선배의 몫이 되었고, 아오야마는 외근을 금지당했으며 전표 정리와 잡일을 도맡게 되었다.

 

심한 자책감으로 인해 자존감까지 추락하며 멘붕에 빠진 아오야마, 한동안 연락을 주고받지 못했던 야마모토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걸려 왔다. 맥주를 마시면서 아오야마의 얘기를 듣던 야마모토는 그게 진짜로 실수가 맞냐는 말과 함께 그런 회사라면 사표를 내는 게 좋겠다고 권한다. 하지만 아오야마는 쉽게 그런 결정을 내릴 자신감이 없었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계약 내용대로 종이가 납품되지 않은 것은 그 계약을 중간에 가로챈 이가라시 선배의 농간이었다. 순진하고 만만한 아오야마를 봉으로 만들고 실속은 자신이 차리는 그런 못된 상급자였다. 나아가 부하직원의 세 치 혀에 놀아난 부장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진상을 철저하게 밝혀 시스템에 문제가 있지 않은지 확인해보지도 않은 채 무조건 신입사원의 실수로만 돌렸다.

 

"지금 회사 좀 관두고 올게"

 

회사 근처 2층의 카페로 야마모토를 불러낸 아오야마가 회사에 잠시 다녀올테니 기다리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며칠씩이나 무단결근하고 회사로 나온 아오야마에게 부장은 "뭐하러 왔어!"라고 분노를 터뜨렸다. 이에 아오야마는 카랑카앙한 목소리로 오늘부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두 번 다시 이 곳으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후련한 마음으로 야마모토가 기다리는 카페로 헐레벌떡 달려 올라갔다. 그의 모습은 없고 메모만 맡겨져 있었다. 이후 전화 통화는 불가능했다. 없는 전화번호였다.

 

 

 

 

설연휴에 이 소설을 읽으며 내 젊은 시절이 자주 오버랩되었다. '한 우물을 파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가슴에 묻은 채 속이 끓어 오르는 분노를 참고 참으면서 직장생활을 이어나갔다. 직장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이는 곳이다. 그래서 억울하게 대접받는 경우도 많다. 나는 결혼을 안 했다는 이유로 과장 승진에서 계속 누락되다가 늦게사 승진하는 그런 슬픈 추억도 있다. 물론 노총각 딱지를 떼어냈기에 가능했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그런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줏대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실력을 갖춰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나의 생존법이었다.

 

IMF 위기가 찾아오자 회사는 자구책을 위해 구조조정이라는 칼을 휘둘렀다. 직장인은 직장의 소모품이다. 그 빈 자리는 금방 채워진다. 이런 아픔을 겪으면서 왜 일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화두를 붙잡게 되었다. 나는 이 시기에 깨달음을 얻었다. 직장이 나의 인생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과감히 사직서를 던졌다. 이젠 나를 위해 살아야겠다고 판단했다. 아오야마의 사직 선언이 그 당시를 떠올리는 장면이었다. 지금도 마지 못해 끌려가듯 회사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에게 이 소설을 권하고 싶다. 참, 야마모토의 메모가 궁금한가? 

 

"인생이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지?"

- 야마모토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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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 비즈니스
고바야시 아키히토 지음, 배성인 옮김 / 안테나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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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목적은 '드론'이라 불리는 소형 무인비행기, 그중에도 비즈니스에 이용되는 드론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또 드론의 이용과 우리 사회의 변화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지금 한창 연구 중인 드론 기술이나 드론을 운용한 실험 등 구체적인 사례로 살펴보려 한다. - '들어가며' 중에서

 

 

향후 우리의 일상을 바꿀 '드론'

 

 

 

저자 고바야시 이키히토는 현재 히타치컨설팅 경영 컨설턴트로 돗쿄獨協 대학을 졸업하고, 쓰쿠바筑波대학 대학원을 수료했다. 그는 시스템 엔지니어로 경력을 쌓은 후 미국 밥슨 대학에서 MBA를 취득한 후 외국계 컨설팅 펌, 벤처기업을 거쳐 2005년부터 히타치컨설팅에서 일하고 있다.

 

 

현재 중국, 프랑스, 미국, 독일, 네덜란드 등 전 세계적으로 드론 관련 투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2016년부터 상용화되기 시작해 2020년이면 여러 시스템과 드론 비즈니스가 연결될 것이다. 비행체 개발과 비행은 드론 비즈니스의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드론은 모바일과 함께 지금 십대가 가장 유심히 보아야 할 비즈니스 영역인 셈이다.

 

책은 모두 6장으로 구성됐는데, 드론의 기계적 특성, 비행법, 종류 등 기술적 진화를 비중있게 다루지 않는 대신 드론 관련 비즈니스 영역과 이미 사회기반으로 작동하는 각종 시스템에 어떻게 드론이 결합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모델이 개발되고 있는지 등을 보여준다.

 

1장(왜 지금 드론인가?)에선 드론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주목받는 이유와 향후 어떻게 기술이 전개될지를 살펴보며, 2장(비즈니스 영역을 다양화하라)에선 비즈니스에 적용되는 드론의 특송과 용도를 정리하고, 3장(시스템에 연결하라)에선 시스템의 일부로 드론을 도입시킨 사례를 살펴보면서 그 가치를 분석한다.

 

4장(관련 산업과 가치사슬을 엮어라)에선 비즈니스 활용을 위해 어떤 주변 기술과 서비스가 필요한지를 살펴보며, 5장(법과 규제를 활용하라)에선 드론이 안고 있는 과제들을 정리하면서 이에 부과될 볍규제나 규칙 등을 분석하고, 마지막으로 6장(드론, 일상을 바꾸다)에선 드론을 활용한 비즈니스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본다.

 

 

 

 

 

3장과 4장에서 소개하는 비즈니스 모델들을 통해 현재 많은 기업과 전략가들이 드론의 어떤 가능성에 집중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데, 저자가 일본인 컨설턴트인 만큼 책을 통해 일본의 드론 관련 투자와 사업방향, 나아가 어떤 목적으로 드론을 도입하는지 그 이유 등을 미리 엿볼 수 있다. 

 

특히, 각장의 말미에 일본 업계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간 약세를 보였던 일본의 소프트웨어가 드론을 매개로 어떤 전략적 구상을 하는지 살필 수 있다. 중국, 미국,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그리고 저자가 직접 취재하면서 조사한 일본 등이 어떻게 드론 비즈니스에 대처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유익한 기회다.

 

 

드론쇼 코리아 2016

 

산업통상자원부와 부산광역시는 1월 28일부터 30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드론 종합 행사 '드론쇼 코리아 2016'을 개최했다. 국내 드론 업체의 첨단 기술과 제품을 알리고, 수요자와의 교류,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행사에는 국내외 56개 기업, 기관이 222개 부스 규모로 참가, 초대 행사임에도 성황을 이뤘다.

이번 행사에서는 전시회, 컨퍼런스를 중심으로 드론 레이싱 대회, 드론 영상제, 드론 사진 공모전, 교육·체험 등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됐다. 전시회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국내에서 개발된 틸트로터tiltrotor 무인기가 소개됐다. 이는 프로펠러 방향을 바꿔 수직 이착륙과 고속 비행이 가능한 비행체다. 또 한국 바이로봇과 중국 DJI 등의 최신 기종 드론 등 100여종의 드론과 관련 제품이 전시됐다.

이와 함께 드론 산업과 투자의 연계를 지원하기 위한 중소, 벤처기업들의 제품 시연, 기술 설명회가 50여회 개최됐다. 아울러 겐조 노나미 지바대 교수, 벤 정 시스코 센터장, 로니 코헨 파인텔레콤 대표 등 해외 저명 인사와 국내 대학, 연구소, 산업체, 기관 등의 전문가, 산업부, 미래부, 방사청, 안전처 등 정부 관계자 25명이 연사로 참가한 컨퍼런스도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개발한 '틸트로더 무인기'

 

 

 

 

드론의 상용화

 

미국의 벤처 기업 매터넷Matternet은 2015년 여름에 스위스 국제공항과 공동으로 스위스에서 시험 운행을 시작했다. 이 회사는 2kg이하의 물건을 20km까지 운송할 수 있는 드론을 독자적으로 개발, 아이티, 부탄, 파푸아뉴기니 등지에서 실험을 마친 상태였다. 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형 비행기가 분주하게 낮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다분히 물류비용을 줄일 수 있는 이점 때문에 개발되는 비즈니스인 셈이다.

 

사실 드론이 테러나 군사용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우려로 지끔껏 규제를 풀지 않았던 미국의 연방항공국은 최근 아마존을 포함한 129개 기업에 상업용 드론의 사용을 허가했다. 드론의 인도적 활용을 지원하는 단체인 휴머니타리안 UAV 네트워크에 따르면 2015년 4월 네팔에서 발생한 지진 현장에 9개의 지원조직이 드론을 활용해 재난 구조에 나섰다고 밝혔다.

 

 

 

드론Drone은 원래 '수벌'을 뜻하는 단어로 무인비행기의 속칭이다. 기원전 425년에 그리스 철학자 아르키타스가 기계적으로 작동되는 '비둘기'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자세한 구조는 모르지만 증기를 동력으로 사용해 200미터까지 날았다고 한다. 1896년, 천문학자 새뮤얼 랭글리'에어로드롬'이라는 무인비행기를 개발해 2km 넘게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본디 비행기는 무인기에서 발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35년, 영국 해군은 새롭게 무인표적기 퀸비Queen Bee의 시험비행을 시도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이의 도입을 적극 권장했으며 1947년까지 약 380기가 도입되었다. 그런데, 이를 주목한 것은 미국 해군 대장 윌리엄 H. 스탠들리였다. 그는 델마 S. 페르니 중령에게 같은 종류의 비행기를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페르니 중령은 무인비행기에 '드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렇게 1930년대 후반부터 드론은 군사용 무인비행기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우리들이 주목하는 부분은 영역 D이다. 드론의 소형화와 저비용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비즈니스용 드론에 대해 많은 기업들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이처럼 빨리 진행될 수 있었던 요인은 바로 휴대전화, 특히 스마트폰에 있다. 스마트폰은 지도나 앱 등을 사용할 수 있는 장치이므로 급속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드론은 하늘을 나는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 생산의 중심지인 중국에서는 4백개에 가까운 기업들이 부품이나 기체제작 분야에서 드론을 개발중이다. 중국 기업 중에서 최정상은 2006년에 창업한 DJI인데, 2014년 매출이 약 5억 달러, 2015년 추정치는 10억 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미국에서도  61개사가  DJI 제품을 사용하고 있고, 추가로 약 4백개 회사가 이 제품 사용을 미국 연방항공국에 신청했다고 한다.

 

중국의 DJI를 바짝 추격하는 회사는 프랑스의 패럿이다. 1994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무선통신기기 제조업체였는데 2010년 AR 드론을 개발하면서 드론 시장에 진입했다. 취미용 드론에 치중하다가, 이젠 비즈니스용 드론 시장에도 진출했다. 2016년 CES에서 패럿의 드론이 가장 인기를 끈 부스로 알려지기도 했다.

 

미국의 경제 뉴스 사이트인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조사부문인 BI 인텔리전스는 2024년까지 드론의 세계시장 규모는 120억 달러(약 14조 원)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부분이 군사용이지만 전체의 25%인 약 30억 달러는 민간시장의 규모이다. 미국은 무인비행기의 상업적 사용을 엄격히 규제하는 통에 이의 완화가 늦어질 경우 아시아나 유럽의 업체들이 시장을 석권할 가능성이 있다.

 

 

드론의 용도

 

     
날다~ 크록스의 '공중 스토어'

찍다~ 영국 BBC의 타이 반정부 시위 보도 영상 촬영

운반하다~ 아마존의 배송, 의료품 원격지 운반

지키다~ 야생동물의 밀렵 감시, 자연재난의 빠른 예측

 

컴퓨터의 용도를 모두 말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다. 드론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도 다양한 잠재적 니즈를 안고 있음이 분명하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란 말처럼, 공중을 이용하려는 잠재적 니즈가 발견되는 곳에는 드론이 활용될 것이다. 어쩌면 미래엔 혼잡해진 하늘의 교통을 정리하는 경찰도 등장하지 않을까 싶다.

 

2015년 3월, 도쿄 미드타운 내 아트리움에서 '공중 스토어'라는 이벤트가 열렸다. 이 행사는 신발 제조업체 크록스가 새로 출시한 초경량 스니커즈의 프로모션을 위해 진행된 것이었다. 높이 5m, 폭 10m, 깊이 6m의 거대한 신발 진열장이 설치되었는데, 이벤트에 참가한 사람이 지정한 신발을 드론이 배달해주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로봇 점원의 등장인 셈이다.

 

    

 

드론 비즈니스는 드론이 땅에 내려 앉았을 때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국제무인기시스템협회는 보고서(2013년 3월)를 통해 드론 산업은 2025년까지 미국 내에서 820억달러(약 92조7000억원) 이상의 경제 효과를 낸다고 예측했다. 즉 2025년까지 미국 내에서 10만명 이상의 고용 유발 효과가 생기는데, 비행체제조 관련 업무는 3할에 그치고 7할이 드론 관련 업무(파일럿, 전문 강사, 영상분석 담당자, 유지관리 담당자, 컨설턴트 등)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농작물의 생장과 병충해 현황 등을 살피는 현 수준에서 드론이 수집하는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분석해 경작지에 최적화된 농작물의 종류와 기후별 수확량 등을 예측함으로써 정밀농업이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농산물 가격의 등락폭을 정확히 예측해 농업 분야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일본의 대형건설기기 제조업체 고마쓰는 측량부터 유지관리까지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 종합해 최적의 시공계획을 세우는 건설현장용 솔루션 '스마트 컨스트럭션'을 개발했다. 정확한 측량은 드론이 맡았다. 드론을 이용하자 1~2개월 정도가 걸리던 규모의 측량이 불과 몇 시간 만에 훨씬 더 정확하게 마무리됐다. 인프라 분야에서도 동일본 고속도로'스마트 메인터넌스 하이웨이 구상'을 2020년부터 실시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한국의 드론 산업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드론 기기와 관련한 적합성 평가 통과 건수가 2014년 90건에서 작년 239건으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이 평가는 전파의 혼, 간섭을 방지하고, 전자파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신기술 제품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제도다.  

단순히 적합성 평가 통과 건수만 보더라도 드론은 자이로 휠 등 개인용 이동수단은 물론, 이미 실용화된 스마트워치, 스마트체중계, 스마트체지방계 등에서 나아가 무선충전기, 전기차 충전기 등을 압도한다. 이 같은 증가세는 올해 들어 드론 비즈니스가 본격 궤도에 오를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앞으로 드론을 국가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기술력을 민간·상업 영역에서 통하는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연결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존의 기술개발 중심의 정책을 넘어 비즈니스모델 발굴, 테스트베드 구축 등 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주력해 고기능 '산업용 드론'을 새로운 국가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겠다" - 이관섭 산업부 차관, '드론쇼 코리아 2016' 개막식 축사

 

정부는 민수분야에서도 드론 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난해 12월 전남 고흥, 부산 해운대, 강원 영월, 대구 달성, 전북 전주 등 전국 5곳의 드론 전용공역을 지정하는 등 드론 시험비행을 위해 규제를 완화했으며, 올해에는 한전 전력설비감시, 우체국 물품배송 등 공공 분야 실증사업을 추진해 사업 모델을 발굴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2016 CES에 선보인 패럿의 디스코 드론

 

더불어 항법장치, 충돌회피시스템 등 정보기술, 소프트웨어와의 융합을 통한 고부가가치 시스템 개발로 제품 차별화를 추진하는 한편, 선제적인 규제 완화와 비행시험 테스트베드 확충, 상업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지속 조성해나갈 계획이다. 아무쪼록 미래 성장동력인 드론 산업 분야에서 실기失機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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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후, 한국은 없다 - 총체적 난국에 빠진 대한민국 민낯 보고서
공병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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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도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상황을 반전시킬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 경제, 사회 상황을 종합해보건대, 올바른 개혁을 추동해야 할 정치 세력의 부족한 역량과 어설픈 개혁 방법 그리고 현 정권의 부재에 가까운 리더십으로는 저성장 상태를 반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저성장, 고실업, 고부채, 저출산, 고령화 등은 하나하나 볼 때는 마치 독립적인 현상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때로는 원인으로 때로는 결과로 작용한다.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우리 사회가 만들어내는 성과가 달라진다. - '프롤로그' 중에서 

 

 

총제적 난국에 빠진 한국의 민낯

 

현재 한국이 처한 현실과 민낯을 낱낱이 살펴보고 우리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사회 각 부문의 혁신과 해법을 제시하는 전망서다. 이 책은 우리 정부와 국민 모두가 더 이상 진실을 회피하거나 다른 말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경제 지표로 판단하면 우리가 꿈꾸던 한국은 없다는 것이 저자의 냉정한 시선이다.

 

 

 

하지만 매사가 그러하듯, 위기 속엔 기회와 희망이 있다. 암담한 한국의 현실을 비난하고 성토하는 데 힘과 자원을 낭비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비록 만시지탄晩時之歎일지라도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국민 모두가 지혜를 모아 제반 문제들을 혁파하자고 말한다. 이에 저자는 역사

 

 

 

 

 

 

 

 

 

국민들과 정책 입안자들은 이런 경보음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럼에도 과거에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나 집단적으로 큰 성취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한 귀로 흘려듣는다. 이런 일들이 수차례 반복되고 누적되면서 어느 순간 비효율성이 임계점을 넘어서게 되면 시스템 전체의 비효율성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도 시스템은 그럭저럭 한동안 굴러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오래 계속될 수는 없다. 시스템이 비효율을 감내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결국 파국은 불가피하다.

 

 

빚 앞에 장사 없다

 

인간은 본디 편안함을 추구하는 동물이다. 마시멜로 실험에서도 보여주듯이 미래의 큰 보상을 약속해줘도 굳이 현재의 불편함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누구나 그렇듯 재미는 내가 즐기고 비용은 남이 해결해주는 무임승차를 선호한다. 이런 현상이 오늘에서나 발생한 일은 아니다. 이미 오랜 역사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로 가보자. 기원전 5세기 아테네는 당시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페리클레스(기원전495~기원전429)는 아테네와 외항外港 피레에프스를 연결하는 장성長城을 쌓고, 동맹국들이 바치는 기금을 이용해 아테네를 재건축했다. 또한 아크로폴리스에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 여러 신전들을 건축함으로써 아테네를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었다.

 

당시 동맹국으로부터 각출各出한 조공이 무려 2억 달러 규모였다. 이는 당시 노동자의 일당이 평균 80달러임을 고려한다면 엄청나게 큰 돈임에 분명하다. 더구나 아테네의 시민은 불과 삼사만 명 정도였으니 막대한 부를 보유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 많은 재산을 어떻게 처분할까에 골몰했다. 여기에 소피스트들은 대중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주인이라고 말이다. 뭐,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이들에게 기름을 퍼부은 격이었다.

 

민중들은 "이것도 공짜, 저것도 공짜"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음을 내세우자 이에 편승하려는 민중주의 정치가들이 등장하면서 소위 정치가들은 민중이 원하는 정책이라면 뭐든 찬성했다. 이들을 '데마고고스'라고 부르는데, 저급 정치가 또는 선동 정치가란 뜻이다.

 

부자들은 재산상의 손실을 막가 위해 가급적 스파르타와의 전쟁을 피하려고 했다. 반면 다수의 민중들은 전쟁이 계속되어야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전쟁을 찬성했다. 민중주의 정치가들 역시 권력을 잡는 것에 급급해서 전쟁을 원하는 민중 편에 섰다. 국가의 미래는 그들의 관심밖이었던 것이다.

 

전쟁은 수입을 줄이고 지출은 늘린다. 전쟁이 계속되자 전쟁자금을 지출하던 부자들도 이를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전쟁이 가져다 주는 눈앞의 이익에 눈이 먼 민중들과 이들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이 온 나라를 휩쓸면서 국가 재정 상태는 급속도로 고갈되었다. 과연 아테네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후 신흥 강국인 마케도니아에 복속당하고 말았다. 무상복지 좋아하는 우리 국민 그리고 선심 복지 포퓰리즘을 남발하는 정치인들과의 결합은 한국의 미래에 무엇을 안겨줄까?

 

 

 

늘어나는 가계부채, 갚기도 힘들다

 

고대 아테네 시민들처럼 이미 눈높이를 올려버린 한국인들은 실속은 뒷전이고 겉으로 번지르르함을 추구한다. 이미 저성장 정체기에 접어든 한국경제에선 더 이상 수입을 상승시키기가 어렵자 높아진 소비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신용카드 사용은 물론이고 대출을 받아 펑펑 써댄다.

 

IMF 이후로 달라진 직장 풍속도 때문에 퇴직 시기가 빨라진 중년 남성들은 퇴직금과 차입금으로 자영업을 시작한다. 자신도 이젠 사장이라며 호기롭게 출발하지만 2년을 넘기지 못한다. 금융권에서 빌린 차입금의 상환은커녕 이자까지 연체되면서 담보로 제공한 아파트가 경매로 쓸려 나간다.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이미 가정이란 울타리는 사라졌다.

 

덴마크는 2004년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 주택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함에 따라 주택담보 대출의 비중이 크게 증가한 상태였다. 금융위기를 맞자 주택가격이 큰 폭 하락하면서 가계의 총자산도 덩달아 크게 하락했다. 상환 압박에 직면한 덴마크 가계는 지갑을 닫고 빚 상환에 시달렸다. 덴마크 경제는 당연히 장기 불황에 빠지고 말았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교의 에스거 라우 엔더슨 교수는 높은 가계 부채와 경제와의 상호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가계의 높은 부채 비율과 자산의 확장은 금융위기 이후 덴마크의 전반적인 가구에 급격한 소비지출의 감소를 야기했으며, 이에 따라 세계 금융위기 시 덴마크 경제는 장기적 침체를 경험하게 된다"

 

장기 침체의 여파는 고스란히 가계부채의 부실화로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은퇴 이후 재취업이 어려운 중장년층은 미처 준비되지 않은 자영업 창업의 길로 나서게 되고 내수 경기의 위축은 이들의 사업을 당연히 말아먹게 만든다. 여기에다 돈벌이 목적으로 창업을 권하는 일부 세력들의 농간도 한몫 거든다. 결국 내수형 창업에 나선 은퇴자들은 폐업과 함께 도저히 상환할 수 없는 부채 때문에 어두운 고시촌 쪽방으로 내쫓기게 된다.

 

 

 

추락하는 한국 제품의 경쟁력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상품의 수는 중국이 1,539개, 일본이 186개, 한국은 65개로 나타난다. 굳이 순위로 말하면 중국은 1위, 일본은 4위, 한국은 5위이다. 중요한 점은 중국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인데 반해 일본과 한국은 계속 하락하는 추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순위보다는 추세가 문제인 것이다.

 

한국이 수출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이 2000년대에 들어 둔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상대적으로 중국과의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지고 있다. 1985년 한국과 중국은 1,6%대로 거의 비슷한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2013년 기준으론 중국은 12.1%로 3.1%에 그친 한국의 4배 정도이다. 이미 전부터 조만간 한국 경제는 중국에 추월당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는데 이미 현실이 되고 말았다.

 

더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2016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가전 전시회CES의 부스 중에서 '드론'이 가장 인기를 끌었는데, 16개 참가 업체 중 중국은 12개 업체나 되었다고 한다. 한국은 중소기업체 1곳이 참여한 걸로 알려졌다. 이미 드론 시장은 향후 큰 폭 성장이 예상되는 미래 첨단 먹거리라고 국내 언론이 떠들석했음에도 한국 기업들의 도전이 이 정도라는 게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다. 도대체 대기업들은 언제 투자를 하려는 걸까? 도전 없는 대기업 때문에 청년 일자리는 더욱 암담할 뿐이다.

 

 

 

공공부문은 철밥통인가(?)

 

"비록 나쁜 결과를 낳은 사태라 해도 그것이 시작되었을 당시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율리우스 카이사르

 

이는 카이사르의 많은 명언들 중 하나이다. 과감한 정책이나 제도를 도입할 때 이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타당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런 정책들이 엄청난 후유증을 남기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게 된다. 이천년의 로마제국사에서도 우리들이 눈여겨볼 만한 일이 있었다.

 

마흔 살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재임, 284~305년)가 재위에 오를 당시인 3세기 말엽의 로마제국은 끊임없이 침입하는 야만족들로 인해 자주 곤경에 처해 있었다. 정해진 방어선 내에서 젝구을 방위하던 일부 로마군 지휘관들이 야만족과 결탁해 제구긔 안전을 위협하는 일까지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신임 황제에게 부여된 임무는 '제국의 안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였다. 그래서 그는 과감한 체제 개혁을 시도했다. 286년 4월 1일, 그는 자신이 동방의 안보를 책임지는 '시니어' 황제를 맡고, 서방의 안보는 자신이 임명한 '주니어' 황제인 막시미아누스에게 일임하기로 했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양두兩頭정치'라고 부른다.

 

시작 당시 양두정치는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286~292년까지 두 황제는 전선을 누비며 안보 측면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데, 마흔일곱 살이 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또 한 번의 체제 개혁을 단행했다. 293년 5월 1일에 도입된 체제는 4인이 제국을 분할하는 '사두四頭정치'였다. 즉 두 명의 황제는 각각 부황제를 둔 셈이었다.

 

결국 이런 개혁은 제국 방어 측면에선 큰 성과를 가져왔지만 공공부문이 크게 확장됨으로써 로마제국의 몰락에 단초를 제공하고 말았다. 우두머리들이 많아지면 이를 추종하고 보위하는 조직들도 덩달아 많아지고 커진다. 불필요한 예산의 낭비가 당연히 뒤따른다. 한국의 지방자치제도도 이와 유사한 철밥통이 아닐까?

 

 

 

누가 세금을 많이 낼까?

 

정치인들 특히 일부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인은 툭하면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거나 부유세라는 새로운 세금을 신설해야 한다고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을 부추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이들을 속인다고 봐야 한다. 기획재정부의 자료를 살펴보면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는 수많은 근로자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고소득층에 대해 정당한 세수를 확보하는 것은 사회정의 차원에서 분명 올바른 일이다. 하지만 정당하고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는 고소득자들은 억울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자료에 따르면 납세자 중 10.75%가 소득세 총액의 83.36%를 납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근로자의 50%에 가까운 숫자가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무시하고 소득세를 인상하자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무슨 근거로 소피스트 행세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를 계속 밀어붙인다면 고소득층은 "세금을 내기 위해 내가 일하는 건가?"라는 회의감에 빠지지 않겠는가?

 

 

 

통일은 정말 가까이 와 있나(?)

 

북한의 김정은은 또 다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자신의 통치체제를 공고히 하려고 중국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명목상 인공위성인 사실상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우리 국민들 대부분 특히 탈북한 주민들은 빨리 통일이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과연 통일이 혼자만의 사랑이나 염원으로 가능한지를 성찰해봐야 한다.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고 했다. 남쪽에서 일방적으로 원한다고 통일이 이루어질까? 아니다. 북에서 진정 원하지 않으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북의 통치권자는 자기 식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싶을 것이므로 결코 권력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차우체스쿠 정권의 붕괴처럼 민중의 궐기가 없는 한 현재의 북한 체제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만약에 북에서 예기치 못한 정변이 발생한다 해도 이것이 곧 통일을 의미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김정은 체제가 붕괴되면 또 다른 군부 체제가 들어설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이를 간파하고 있기에 한반도의 정세와 관련해 어느 일방의 손을 들어줄 리가 없다. 그들은 이해타산이 맞는 방향을 선택할 것이다. 전임 대통령들의 햇볕정책은 북을 너무나도 잘 모른 오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계륵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금강산 관광도 개성공단도 여기서 벌어들인 돈은 모두 김씨 체제의 통치자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핵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재건하는 프로젝트를 가동하자

 

저성장의 암울한 분위기가 우리 사회를 감싸고 있지만, 우리는 어떤 경우라도 역사에 대해 비관적인 관점을 갖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긴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역사는 개개인의 권리뿐만 아니라 소수자의 권리가 꾸준히 신장되어온 역사다. 또한 생산성이 향상되어온 역사다. 더욱이 이 시대는 사람들이 저마다 모바일 기기를 갖고 새로운 정보를 공유하고 마음껏 확산시키면서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다.

 

"지나치게 비관적인 전망은 올바르지 않다"

 

걱정이나 경고를 넘어서 비관론을 펼치는 사람들의 주장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누적시키는 구조적인 문제들을 직시하지 않은 채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음을 우려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에우리들은 더 현명해져야 하고, 더 솔직해져야 하고, 더 용감해져야 한다. 특히 정치 지도자와 그 세력들의 각성이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다.  

 

세상에는 은근슬쩍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사회적 선택과 관련된 문제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모든 선택은 그 자체로 긍정의 흔적이든 부정의 흔적이든 남길 수밖에 없다. 이것들이 차근차근 쌓여가면서 파열음을 내는 상황에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자, 이제 시작하자

 

먼저 우리 스스로 더 정직해져야 한다. 문제를 문제로 깊이 인식하는 데서부터 해결책이 시작된다. 우리의 실제 모습을 직시直視해야 한다. 그래야 절실함이 생기고, 절실함이 있어야 어떤 문제든 해결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당면한 문제를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은 아닐까. 결과적으로 절실함도 없고, 절박함도 없고, 위기의식도 없는 무기력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잘 되겠지'라는 막연한 낙관과 '이렇면 안 되는데'라는 우울한 걱정이 교차하고 있을 뿐이다.

 

나랏일을 맡은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어렵고 고질적인 과제들을 정확하게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것도 국민들의 충분한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 때까지 반복적으로 알려야 한다. 한국이 지금 비상 상황에 놓여 있음을, 대단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음을, 그리고 타이밍을 놓치면 우리가 어떤 상황에 내몰리게 될지를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미래를 장밋빛으로 치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경쟁력 약화 문제, 실업 문제, 부채 문제, 고령화 문제, 저출산 문제, 교육 문제 등을 온 국민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와 주변 국가들과의 격차 확대라는 현상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정신 번쩍 들도록 가감加減 없이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 중국의 성장 모습을 우리와 비교해보라. 정신이 번쩍 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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