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커 피드백 수첩 (본책 + 다이어리)
이사카 다카시.피드백 수첩 연구회 지음, 김윤수 옮김 / 청림출판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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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드백은 경영학을 비롯해 드러커의 모든 지적 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개념이다. 드러커 자신도 피드백으로 스스로를 경영함으로써 자기주도적으로 인생을 창조하고 있었다. 나는 드러커의 자기계발법을 직접 실천하기 위한 방법을 오랜 시간 동안 모색해왔고 마침내 한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 '들어가며' 중에서

 

 

피터 드러커의 자기계발법은 바로 '피드백 수첩'에 있다

 

책의 저자 이사다 다카시는 일본 드러커 학회 이사이며 출판 편집자이자 번역가로,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도쿄 대학 대학원에서 인문사회계연구과를 수료했다. 세계적인 드러커 연구자인 우에다 아쓰오 등과 함께 드러커 학회를 설립했다. 2005년,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에 있는 피터 드러커의 자택에서 외국인 편집자로서는 마지막으로 드러커와 단독 인터뷰를 했던 저자는 드러커에 대한 신선하고 독창적인 해석으로 일본에서 정평이 나 있다. 현재 모노쓰쿠리 대학 객원교수, 와세다 대학 사회연대연구소 초빙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점을 발견하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피드백 분석이다"

- <프로페셔널의 조건> 중에서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피드백 분석을 50여 년 동안 계속했다고 한다. 드러커 자기계발법의 진수는 생각하거나 깨달은 바를 즉시 적어둘 수 있는 수첩에 있다. 저자는 이를 '피드백 수첩'이라 명명하면서 누구나 손쉽게 이를 따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이 단순한 수첩은 기록자의 강점을 파악하게 해주고 강점을 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분야를 알려준다.

 

피드백 수첩의 기본 사용법

 

1. '자신과의 대화'를 한다

2. 대화를 근거로 '목표를 설정'한다

3. 목표를 바탕으로 '행동'한다

4. '목표와 성과를 비교'한다

 

수첩의 기록을 위해 그리 많은 시간을 투자할 필요도 없다. 하루 10분이면 충분하다. 수첩의 구성 내용인 '인간관계', '일상업무', '공부', '기타' 등 4개의 다짐을 성실하고 꾸준하게 기록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강점을 파악하고 나아가 이를 토대로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피드백 수첩은 '하루 10분 성공습관'인 셈이다.

 

 

 

 

지금 그대로의 모습과 마주한다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의 인품과 업적은 모두 피드백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효과적인 자기계발법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혹시 드러커가 가지고 있던 깊은 통찰력과 교양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 피드백은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단지 자신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습관이다.

자신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실상을 직시할 때 자꾸 결점에만 신경을 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피드백은 단점이나 약점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 피드백은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잘 이해하는 인생의 든든한 동반자다. 스스로 강점을 찾아내고 나아가 성공적인 인생을 창조하도록 도와준다.

 

 

강점을 토대로 자신을 성장시킨다 

무릇 출판계의 자기계발서에는 무언가 바꿀 것을 강요하는 내용들이 많다. 하지만 사람들이 말처럼 그렇게 쉽게 바뀔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래서 드러커는 오히려 훨씬 현실적인 조언을 한다. "가능한 한 자신을 바꾸지 않고 강점을 살려 성과를 최대로 끌어올려라. 그러기 위해서는 강점을 바탕으로 한 목표 설정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이미 어떠한 성과를 올렸고 자신의 강점이라고 확신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목표에 반영해야 한다. 강점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생산성을 높이고 심리적인 부담도 덜 수 있다. 잘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으면 상승효과로 더 높은 능률을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고 강점을 더 보강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현재 가자고 있는 강점으로도 충분하다. 중요한 점은 강점을 알아내는 일이다.

 

 

강점이 아닌 것은 그만두라

 

뭔가를 뛰어나게 잘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들은 매우 부러워한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피나는노력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경지에 도달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드러커는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의 의미는 사람의 강점은 이미 자신의 직업을 정하기 훨씬 전부터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껏 강점이 아니었던 것을 강점으로 바꿀 수 없다는 의미다.

 

"큰 성과를 올리는 고위 관리직들은 자기 자신이 되려고 한다.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 중에서 

 

피드백에서는 '강점이 아닌 것'을 단호히 그만둔다. 드러커는 자신이 컨설팅해준 회사 사장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최근 들어 뭔가 그만둔 일이 있습니까?" 드러커다운 질문이다. 사람은 무언가를 시작하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서 무언가를 그만두는 일은 좀처럼 의식하지 못한다. 시간은 유한하다. 무언가를 시작하려면 다른 무언가를 그만둬야 한다. 강점이 아닌 것을 아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피드백으로 강점을 파악한다.

그리고 목표와 성과를 비교해서 성과를 올리지 못한 일은 강점이 아닌 것으로 본다.

 

 

무엇을 모르는지 파악해야 성장할 수 있다 

설령 부족한 지식이 있더라도 이는 제3자나 조력자 등의 도움을 받아 보완할 수 있다. 이처럼 프로란 완전히 자립한 사람을 가리키지 않는다. 어떤 프로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힘을 발휘한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전문의라도 간호사나 다른 전문의의 조력 없이는 제대로 수술할 수 없다.

 

따라서, 의존해야 할 때 어떤 파트너에게 의존해야 할지 아는 사람을 프로라고 한다. 프로란 자신에게 어떤 지식이 있고 어떤 지식이 없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다.

 

 

 

피드백 수첩의 예시

 

 

하루, 일년, 그리고 일생을 함께 생각하라 

일 년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 목표를 위해서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일 년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 목표 끝에는 어떤 일생이 보이는가.

 

마라톤 선수는 한 걸음 한 걸음을 결승점까지의 전체 이미지 속에서 보고 있다. 시간축 어디에서나 분명하게 목표를 의식하고 있다.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사실을 의식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것이 아무리 작은 행동이라도 그 한 걸음이 어디로 통하는지를 의식하는 일에는 큰 의미가 있다. 

 

 

하루 목표는 언제 적는가? 

하루 피드백은 매일하는 일이기 때문에 리듬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목표는 언제 적어야 좋을까.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를 하고 전철로 회사에 도착한 뒤 '자, 써보자' 하고 시작할까?

 

가능하면 전날 저녁에 마치도록 하자.
하루의 목표를 하룻밤 재우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고 있는 동안에 그 목표가 천천히 숙성되어 자연히 머릿속에 스며든다. 다음 날 아침, 회사에 가서 자리에 앉을 때까지 간단히 되짚어보기만 해도 하루의 출발을 잘할 수 있다. 그러한 기분 좋은 리듬이 피드백의 효과를 확실하게 높여준다. 잠 안자고 시험준비한다고 시험 잘치는 사람 없듯이 말이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가 아니다 

드러커의 컨설팅을 받은 사람 중에 밥 버포드라는 경영자가 있다. 그는 전반 생에서 회사 경영자로 크게 성공을 거두고 후반 생에는 대형 교회를 건립해 명성을 떨쳤다. 그는 텍사스 주에서 케이블 텔레비전 회사를 경영하면서 현재 자신의 인생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조차 모른 채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그의 영혼이 바라는 것은 그 사업엔 없었다. 

 

버포드의 예에서 '영혼이 추구하는 것'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단순히 '좋아서', '왠지 해보고 싶어서'라는 수준과 구별하기 위해서다. 간단해 보이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성공적인 후반 생을 보내기 위해 생각할 일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가 아니다.

 

'나를 이용해 어떤 성과를 올려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내가 어떤 성과를 올리고 싶은가'를 생각하면 반드시 틀리게 된다. 틀린다기보다는 답은 안 나오고 막다른 골목에서 길을 잃게 되기 쉽다.

 

어디까지나 나라는 재목으로 세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해보는 게 중요하다. 경험을 쌓을수록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현실을 자각하고(Feed)

자신의 행동으로 돌아간다(Back)

 

이것이 바로 피드백의 본질이다. 수첩을 쓸수록 좋은 습관으로 형성되고 결국엔 오래 묵혀 가치 있는 포도주처럼 빛을 발하는 자기 자신의 강점으로 남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경영학의 대가인 피터 드러커가 피드백 분석을 50년 넘게 실천해왔다는 점이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한다. 비록 첫걸음이 미미할지라도 꾸준히 계속된다면 그 결과는 분명 창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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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따뜻하겠지 - 비우고 채우는 프랑스 르 퓌 길 800km 걷기 여행
류승희 지음 / 꼼지락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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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프랑스 르 퓌 길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또한 이 길 위에 놓인 도시 가운데 세계문화유산이 15개나 된다. 이 말은 르 퓌 길을 걸으면 적어도 이틀에 하루꼴로 깜짝 놀랄 만한 장소와 마주친다는 얘기다. 그렇다. 르 퓌 길은 자연을 중시한 길도 길이지만 매혹적인 문화의 흔적도 무한정 접하게 해준다. - '프롤로그' 중에서

 

 

프랑스 르 퓌 길 800킬로미터를 걷다

 

책의 저자 류승희는 화가로 파리1대학 판테옹 소르본에서 미술사와 미술기호학을 공부했으며, 1989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줄곧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우연히 한 권의 책을 통해 '산티아고 가는 길'을 알게 되어 매력을 느꼈지만 차마 떠날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이며 자료만 수집하다 마침내 용기를 내 그토록 꿈꾸던 산티아고 콤포스텔라행 첫발을 내딛게 된다.

 

 

총 길이 800km에 이르는 르 퓌 길은, 프랑스 르 퓌 앙 블레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의 구간을 말한다. 스페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향해 가는 이 길은 950년 첫 순례자 고데스칼크가 걸었던 길이기도 하다. 파리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권의 책을 통해 그녀는 '산티아고 가는 길'의 존재를 알고 매료되었으나, 용기를 내지 못하다가 화가 반 에이크가 그 길을 걸었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너 그토록 꿈꾸던 첫발을 내딛게 된다.

 

애처롭게 핀 들꽃, 멀리서 달려오는 자동차 뒤로 흩날리는 흙먼지, 까닭 없는 슬픔, 유서 깊은 도시, 찬란한 중세 건축물, 섬세한 장인의 손길, 가슴이 뻥 뚫리는 광활한 대자연, 매혹적인 마을, 감춰진 문화와 예술, 프랑스 오감의 신비…… 끝도 없는 낱말들이 르 퓌 길 하면 떠오른다는 그녀는 진정 르 퓌 길은 눈을 위한 파티이자 감동의 연속이었다고 감회를 밝힌다. 이제 우리들도 그녀와 함께 책을 통해 그 길을 걸어보자.

 

 

 

순례자들이 걷는 길, 르 퓌 길

 

 

이 책은 르 퓌 길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 길에 관련된 프랑스의 역사, 문화, 파리지앵으로 사는 저자의 삶이 함께 버무려져 있다. 책의 특징으로는 매 꼭지마다 명언들을 덧붙였는데, 이는 본문과의 관련성 여부를 떠나 저자가 직접 한 장의 종이에 적어서 실제로 도보 여행 때 가져갔던 명언이라고 한다.

 

"모든 여행은 첫발자국으로 시작한다"

- 중국 속담

 

 

출발 지점으로 가다

 

화산이 낳은 도시 르 퓌 앙 블레가 도보 여행의 첫 출발지이다. '르 퓌'는 뾰족한 화산을 의미한다. '블레'는 켈트어로 고대 골 부족 명장名將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곳은 화산으로 인한 특이한 암석의 돌출과 현무암 기둥으로 자연이 빚어 놓은 작품인 셈이다. 여기서 가장 유명한 것은 도시 정상에 위치한 종교 기념물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예배당 생 미셀, 붉은 색의 거대한 성모상, 도시를 장악하는 로마풍의 대성당 등이 바로 그것이다. 미셀 예배당은 산티아고 첫 순례자인 고데스칼크 주교가 순례를 마치고 돌아와 962년에 지은 건물로 알려져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현무암으로 된 거대한 손가락처럼 보인다. 뾰족한 바위산 정상에 위치해 있어 268개의 계단을 올라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또 다른 바위 코르네유 정상엔 1860년에 만든 '프랑스 성모'라 불리는 붉은 동상이 있다. 크림 전쟁 때 세바스토폴에서 포획한 213문의 대포들을 녹여서 만든 것이다. 무려 835톤의 성모상이 있는데, 높이가 무려 16미터로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1886년)이 있기 전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컸다.

 

프랑스 성모상을 지나 내려오면 대성당이다. 초기 이교도이교도들의 성전이 있던 곳에 세워진 거대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다. 11~12세기 생 미셀 벽화와 샤를마뉴 시대부터 내려온 필사본 테오돌퓌 성경으로 유명하다. 9월 중순에 르 퓌 길 순례를 떠난다면 '새의 왕' 축제가 볼 만하다. 르네상스 시대의 가면과 복장을 한 선남선녀들이 펼치는 카니발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

 

 

순례자들의 휴식처, 건조 마차 

 

길은 평지로 이어졌지만 궤도 이탈은 꿈도 못 꾸는 태양과의 전쟁이 계속되었다. 더위가 극에 달하는 순간, 버려진 나무 마차가 눈에 띄었다. 그 마차 위로 나이를 알 수 없는 무지무지하게 큰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마차 옆에 작은 연못만 갖춰진다면 영락없이 영국 화가 존 컨스터블(1776~1837년)의 그림 <건초 마차〉(1821년작, 내셔널갤러리 소장)다.

 

존 컨스터블은 영국 화가인데, 성공한 제분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목가적인 풍경을 그려냈다. 당시 풍경화는 별로 대접받지 못하던 때였으나 그는 영국의 자연 풍광을 잘 표현함으로써 풍경화의 권위를 높였다고 평가받는다.  

 

태양을 피해 그곳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던 순례자들은 옹기종기 앉아 허기를 달래자마자 마차 위에 제멋대로 드러눕기 시작했다.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이 헬리콥터를 타고 그 장면을 찍는다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저자는 태양과 내면의 자아와 전쟁 중이었으니까 마치 전쟁 중의 휴전만큼이나 행복했다.

 

존 컨스터블, <건조 마차>

 

 

수녀들이 구제한 수도원 

생 콤 돌트에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아주 훌륭한 숙소가 있다. 르 퓌 길에서 보기 드문 현대식인데다 새로 정비를 마쳐 아주 깨끗했다. 수녀, 신부, 순례자 무리가 식사 시간이 되어 모이면 수용 인원이 꽤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용료는 기부제인데 자원봉사자에 의하면 보통 프랑스 길에서는 10~20유로 정도가 기본이고 주머니 사정이 좋은 사람은 이왕이면 많이 지불한단다. 프랑스에서 이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아침과 저녁 식사가 포함된 가격이다. 밭에서 직접 재배한 유기농 채소와 달걀, 치즈로 이뤄지는 식사인데 분위기가 맛을 돋운다.

 

수녀원은 너무 낡아서 이 건물을 없애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수녀들이 발벗고 나서서 구제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수녀들 개개인이 일해서 평생 모은 돈과 연금을 모금하여 새롭게 건물을 지어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이라고 한다. 어려운 사람들의 무상 휴식처로 이용되며, 은퇴한 수녀들의 요양원이나 안식처로 활용되고 있다.

 

프랑스에선 매년 가장 아름다운 마을을 선정한다. 이때 생 콤 돌트도 뽑혔다. 먼저 눈에 띄는 장소가 생콤 돌트 성당이다. 교회 지붕이 비비 꼬여 있기 때문이다. 1552년에 건축된 것으로 르네상스 양식의 문 장식이 독특하다. 마을에 들어서면 고풍스러운 옛집들이 즐비하다. 스케치하고 싶은 소재들로 가득한 곳이다. 마를 자체가 한 폭의 잘 그린 그림과 같다.

 

비비 꼬여 있는 성당의 종탑이 보인다

 

 

순례자의 부상 소식

 

"느림은 대부분 끝까지 가지만 성급함은 길을 방해한다"는 아랍 속담에 딱 맞는 일이 발생했다. 잽싼 걸음걸이를 자랑하던 어느 순례자가 여행길을 멈췄다는 소식이었다. 이 순례자는 저자도 만난 적이 있던 인물이었다. 모순처럼 들리지만 이 도보 여행길에서 가장 비일비재한 이유가 바로 인대를 다쳐 응급실로 실려나가는 일이다.

 

걸음걸이가 남달리 재빠르거나 서두르는 순례자들, 특히 젊은이들이 주로 무릎을 다치거나 인대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왠지 무리해서 사는 사람들의 인생길과 유사하지 않은가. 출셋길에 질주하는 사람들, 모든 일이 쉬워만 보이는 사람들,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들, 아직 육체의 한계를 느껴보지 못한 젊은이들 등등. 상처받기 쉬운 여린 속살과 섬세한 인대는 누구에게든지 존재한다.

 

길 위의 자원봉사자

 

 

비밀 정원, 카오 

아침 6시에 르 페크를 출발했다. 가랑비가 흩뿌리는 잿빛 하늘, 비가 내리는 이런 날에는 발의 통증은 없지만 습도로 인해 쉽게 지친다. 순례자에게 문제가 없는 날은 결코 없다. 인간의 삶과 닮지 않았는가. 순례자 저마다 크고 작은 문제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삶 가운데 지칠 때면 때때로 우리는 현실을 피하고자 여행을 가기도 한다. 그러나 여행으로 보상받진 못한다. 우리를 바꾼다는 건 더욱 꿈도 꾸지 않는 게 좋다. 여행은 우리를 바꾸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알게 해준다. 그런데 순례 도보 여행은 다르다. 우리를 바꿀 수도 있다.

 

카오에는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특이한 다리가 있고 포도주로도 유명한 곳이다. 오랜 시간 길을 걷다보면 산업 기술 문명에 길들여진 자신과 멀어진다. 도시 중심에 도달하자 먼저 다리를 건너 관광 안내소를 찾았다. 어주 오래된 도시답게 오묘한 옛ㄱ것들로 가득했다. 오래된 특이한 집, 물시계, 건축물 등을 보며 마치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 들었다.

 

카오는 케르시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2천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로트 강으로 둘러싸인 도시는 섬에 가깝다. 3개의 탑으로 유명한 발랑트레 다리는 생 테티엔 성당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고, 프랑스 정부가 뽑은 예술과 역사의 도시로 선정되었다. 교황 요한 22세의 출생지이며, 비록 18세기에 파괴되었지만 그가 1331년에 세운 유서 깊은 카오 대학이 있었다.

 

왼쪽 편에 보이는 다리가 '발랑트레 다리'이다

 

 

"르 퓌 길을 걷다 보면,

프랑스의 매력과 나 자신의 매력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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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역사가 바뀌다 - 세계사에 새겨진 인류의 결정적 변곡점
주경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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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15년에 건명원建明苑에서 강의한 내용을 토대로 썼다. 현대사회는 과학기술과 산업의 발전이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우리 삶을 훨씬 더 풍요롭게 해줄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부익부 빈익빈의 모순을 심화시킬 우려도 크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엄청난 부를 쌓았지만 부국과 빈국 사이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눈부신 경제적 성취를 이루며 강대국으로 올라서면서 한반도의 정치, 경제적 상황은 앞날을 점치기 힘든 혼란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 '서문' 중에서

 

 

세계사의 커다란 변곡점을 살펴보다

 

책의 저자 주경철은 역사학 박사로 현재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학교 역사연구소 소장, 중세르네상스연구소 소장, 도시사학회 회장을 역임하며 주로 근대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 관심을 두고 저작 활동과 번역 작업에 힘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 <대항해 시대>, <문명과 바다>, <문화로 읽는 세계사>, <네덜란드>, <콜

 

 

 

 

 

 

 

 

 

 

 

왜 콜럼버스는 대서양을 항해했을까? 그는 정말로 향신료, 비단 등의 교역 항로를 개척하여 큰 부를 얻고자 목숨을 건 도박을 감행했을까? 이렇게 알려진 사실은 어찌 보면 역사의 왜곡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지구는 매우 작고 바다의 면적 또한 매우 작다는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인어와 괴물, 식인종과 여인국 등을 그대로 믿었으며 성경 속의 에덴동산을 찾고자 항해를 결심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소 뒷걸음질에 쥐잡은' 격으로 아시아를 찾아 항해를 떠났다가 잘못된 항해로 아메리카에 도착하는 행운을 잡은 셈이었다.  

 

이처럼 '지상낙원'을 찾겠다는 황당한 세계관은 비단 콜럼버스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당시 유럽인들에게 만연되어 있었다고 봐야 한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이라는 소득과 함께 해상 지배를 통한 부의 축적을 이룰 수 있었지만 말이다. 이처럼 우리들이 알고 있는 위대한 인물 콜럼버스는 결코 선구적이거나 과학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미 웬만한 선원들은 이미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과 함께 아무리 대륙에서 멀리 배를 타고 항해를 나가더라도 결코 낭떠러지로 추락할 일이 없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콜럼버스가 지구는 평평하지 않고 둥글다고 믿었던 선구자적인 자세를 견지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이는 그야말로 특정인물의 '신화만들기'인 셈이다.

 

심지어 그의 아들 페르디난드는 아버지에 대한 전기 <콜럼버스 전기>를 기술하면서 문턱에도 가지 못했던 그를 당대 최고의 명문인 파비아대학을 졸업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학자가 콜럼버스의 어린 시절을 탐구하다가 밝혀낸 사실은 당시 제노바에는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초급학교가 있었는데, 이 거리의 이름이 '파비아 거리'였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선원 생활을 했던 콜럼버스가 어떻게 대학에서 정규과정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1492년, 이는 세계사에서 매우 의미있는 해이다. 요즈음 말로 벤처 비즈니스인 콜럼버스의 기획안이 스페인에서 어렵게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스페인 입장에서 보면 스페인의 그라나다에서 무슬림을 마지막으로 몰아내고 자국 내에 거주하던 유대인들 마저 축출함으로써 종교적으로 가톨릭 국가를 완성했던 해이다.

 

콜럼버스는 총 4회에 걸친 항해를 했는데, GPS가 없던 그 시절엔 그저 바람과 조류에 의존하던 방법 뿐이었다. 잘못 판단하면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다 죽기 십상일 정도로 위험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당시엔 이를 위험한 모험 사업으로 분류했다. 비록 대학을 다니진 못했지만 독학으로 지구의 조류와 풍향 등 전체적인 지식 체계를 만들었기에 그의 기획안이 통과될 수 있었다. 당시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등장하여 책을 통해 지식이 보급되고 있었기에 독학이 충분히 가능했던 것이다.

 

콜럼버스가 생각한 우주관, 지구관에서 이 세상은 그저 물질적인 성격의 땅이 아니라 의미가 충만한 땅이다. 그가 아시아로 향한다는 것은 단순히 먼 이국異國으로 가는 정도가 아니라 신학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미 알고 있는 곳, 구약에서 이미 예약되어 있는 곳을 향해 인류의 꿈을 실현하려 가는 것이라고 콜럼버스는 스스로 의미부여를 했다.

 

 

 

1820년, 유럽이 중국 경제를 뛰어넘다

 

500년 전 유럽은 왕조 국가들이나 또는 이보다 작은 단위의 정치체들로 분열되어 있었다. 중세 말 유럽이 겪은 가장 큰 시련 중 하나가 바로 백년전쟁이었다. 장장 1백년 동안 영국괴 프랑스가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기근과 치명적인 전염병인 페스트까지 번지고 말았다.

 

세계의 문명이 교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수송 수단 때문이었다. 이는 크게 수레, 배, 카라반(데상隊商)으로 구별될 수 있다. 바퀴는 기원전 3~4천년 경에 발명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바퀴의 등장은 바로 수레로 연결되어 전쟁터에선 효율성 높은 수단이 되었다. 즉 말이 끄는 마차에 2인이 승차해 한 사람은 기수로, 다른 사람은 활을 쏘는 형태의 전차戰車였던 것이다.

 

결국 바퀴는 평화적 목적으로도 이용되었는데, 메소포타미아, 코카서스, 북유럽 등지에서 유라시아 여러 지역으로 널리 보급되어 교통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체체파리로 인해 가축을 사용하지 못하므로 바퀴를 사용하는 수레가 없다. 또 아시아의 타이가 지역은 진흙땅이라 도로를 만들기가 쉽지 않으므로 역시 수레를 사용할 수 없었다.

 

문명 간 교류에 있어서 가장 큰 역할을 한 수단은 카라반, 즉 대상대상이다. 한국사엔 거의 등장하지 않는 낙타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 사막지역은 단봉낙타가, 아시아의 서늘한 초원지대는 쌍봉낙타가 짐을 날랐던 것이다. 낙타라는 동물의 원산지는 아프리카가 아니라 미국이나 캐나다였지만 빙하기 말에 '베링기아'를 통해 아시아로 넘어온 것으로 추정한다.

 

낙타는 자기가 먹을 것을 스스로 해결하는 동물이라 운송 수단으로 낙타를 이용하면 유지비용이 매우 저렴하다는 장점이 생긴다. 최악의 경우 물 없이도 4~9일 정도를 버틸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능력 때문에 사하라 사막이나 아라비아 사막을 넘을 수 있었다. 이 덕분에 문명 간 전파 또한 가능했다. 이슬람 종교, 문화, 농경 등의 여러 가지 요소들이 사막 너머의 먼 지역으로 전파되는 데 낙타는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오늘날의 세계화 현상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준비된 것이다. 제지술, 화약의 전파를 비롯한 문명 간 교류가 모두 세계화 현상의 전조前兆이다. 한 가지 예로 먹을거리 전파 역시 인류 전체에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토마토, 고구마, 감자, 옥수수, 고추 등의 아메리카 작물들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중국은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되었지만 유럽은 여럿 나라로 분열되어 있었다. 유럽은 여러 개의 중심권이 생겨나고, 그 때문에 다수의 국가들이 형성되었는데, 이 국가들이 경쟁하며 강력한 해양력을 키움으로써 세계의 바다로 나아갔다는 것, 이는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볼 가설이라 할 수 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 앨프리드 머핸, 미국 해군 제독

 

이 말은 미국이 계속 팽창하려면 과감하게 바다로 나아가야 함을 주장한다. 장기적인 전략을 갖고 유럽과 미국이 점차 바다로 나아가려 할 때 정작 세계 최강의 해양력을 보유했던 중국은 세계사의 큰 흐름을 오히려 거스르면서 스스로 발을 빼는 선택을 한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중국의 정화 선단은 더 이상 해상을 지배하지 않았다.

세계 경제사의 흐름이 재구조화되는 1820년대 '대분기'를 기점으로 중국은 지금까지 차지해온 헤게모니를 놓치고, 유럽과 미국이 확고하게 앞서나가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운 삶이라는 것은 19~20세기 이후에 일어난 경제 성장의 결과이다. 그것을 촉발시킨 산업혁명이 실로 얼마나 엄청난 현상인지 알 수 있다.

산업혁명이라는 것은 공급 측면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기술이 발전함으로써 생산력 향상이 일어난 것인데, 근면혁명은 이와는 달리 수요 측면에서 발생한 소비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 경제가 확대되고 분업이 작동함으로써 경제 성장이 이루어진 것이다. 요약하자면 '수요혁명'이 먼저 진행되다가 산업혁명이라는 '공급혁명'으로 이어졌다. 

세계 경제는 새롭게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그 꼭대기에 올라탄 서구가 세계의 경제적인 패권을 차지한다. 이때 서구는 단순히 상대적으로 앞서간 게 아니다. 영국의 산업이 몇 천 년 간 지속되어온 전통적인 인도의 직물업을 몰락시켰던 것과 같이 아시아 세계를 몰락시키고 그것을 발판 삼아 질주한 것이다.

 

 

 

1914년, 나그네비들기가 멸종하다

 

캐나다의 야생에서 우리들이 볼 수 있는 풀의 60퍼센트가 원래 유럽산이다. 나아가 미국 잡초 500종 중 258종이 유럽산이라고 한다. 북아메리카 대륙의 들판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풀들의 절반 이상이 아메리카 원산종이 아닌 유럽에서 '이민' 온 것들이라니, 상당히 놀라운 사실이다.

 

구구대륙, 즉 아시아나 유럽에서 호주, 뉴질랜드, 아메리카 등의 신대륙으로 갔을 경우 동식물의 번식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반대로 신대륙의 동식물이 구대륙으로 이동할 경우 이상하게도 전혀 맥을 못 추었다. 왜 그랬을까? 이에 대한 이론을 제시한 인물이 바로 미국 학자인 앨프리드 크로스비이다.

 

"모든 답은 아주 단순한 데 있다"

- 앨프리드 크로스비

 

규모가 큰 유라시아에서는 2억 년 이상 동안 많은 생물들이 서로 경쟁하며 지내왔다. 이에 비해 호주나 뉴질랜드 같은 작은 생태계에선 경쟁이나 갈등 요소가 약했기에 평화롭게 지냈던 것이다. 크로스비의 이론은 '생태 제국주의'라는 개념으로 귀착된다. 즉 "생명력이 강한 유럽의 생태계가 생명력이 약한 신대륙의 토착종을 몰아내면서 유럽인의 식민지 건설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오세아니아의 대표적 동물 키위와 코알라가 만약에 한반도에 살았다면 아마도 이미 멸종하지 않았을까?

인간은 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살기보다는 인위적으로 자연에 심대한 충격을 가하는 경향이 커졌다. 급기야 이제는 인류가 지구 기후와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지질 시대로 접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인류세人類世'라는 것으로, 이는 인간 활동이 지구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 시점부터를 별개의 세世로 분리한 지질 시대 개념이다.

근대 이후 근대 인간의 행위가 생태계 전체의 변화를 초래한 것이 분명하다. 이제 우리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지혜가 요구되는데,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만남을 통해 우리 자신과 세계를 잘 헤아리는 지혜를 갖춰나가야겠다.

 

 

 

1945년, 세계대전의 종료

 

일본의 지배 계급은 사무라이이고 사무라이의 존재 의의는 폭력의 독점이다. 이들 무사 집단의 논리는 자신들만이 최고의 무력을 독점해서 일반인을 보호해준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무기는 '칼'이었다. 아이로니하게도 일본은 조총으로 임진왜란을 일으켜 우리 강토를 유린했지만 이후 더 이상 총을 사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칼이 바로 사무라이의 혼魂으로 의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무력의 발전과 쇠퇴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요소 중 중요한 것이 '문화'이다. 군사력을 문화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최근 역사학의 중요한 연구 방향이다.

 

현대사회로 올수록 문명화되었다는 견해보다는 20세기를 증오의 세기로 묘사하면서 갈수록 더 야만화되었다고 하는 견해가 더 익숙할 지도 모른다. 문명화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폭력성이 줄어든다는 설명이 아무래도 설득력이 낮기 때문이다. 현재에도 무자비한 살인과 폭력, 그리고 테러가 자행되고 있는 지구촌의 오늘 모습을 본다면 이는 결코 문명화가 아니다.

 

문명화야만화, 어느 편의 주장이 맞는 것일까? 당연히 그 양면을 다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굳이 하나를 골라 답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어찌 보면 결정적으로 중요하지도 않다. 우리에게는 섣부른 답을 내리는 것보다도 문제를 잘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하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의 '증오'와 '폭력'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 역사의 물음에 답하다

 

지구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마도 인간은 암 덩어리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인간이라는 종양을 빨리 제거해서 내가 치유되어야 할 텐데 이것이 사라지지 않고 자꾸만 증식하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광석 덩어리에 불과한 지구에 인간이 영혼을 불어넣어서 예전보다 더 아름답고 매력적인 별로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류는 확실하게 야만의 시대와는 선을 긋고 문명의 시대를 연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류의 미래를 낙관하며 우리의 밝은 내일을 만들어가기 위해 방향을 잡고 노력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것이 인류의 소망이고, 역사의 물음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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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이는 공식 - 같은 월급으로 다른 결과를 만든 월급쟁이 부자들의 비밀
김경필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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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어디론가 돈이 새어 나간다고 답답해한다. 반면 이들과 달리 비슷한 소득에도 돈을 착착 잘 모으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전자의 '돈이 잘 안 모인다'와 후자의 '돈이 잘 모인다'는 사람의 미묘한 차이 아니 엄청난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필자는 지난 10년간 직장인들과 많은 상담을 하면서 미묘한 차이인 듯 보이지만, 실로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목격해 왔다. 귿르만의 '공식'으로 돈을 착착 잘 모으는 사람들 말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돈이 잘 안 모이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책의 저자 김경필국내 최고의 가정경제 머니 트레이너다. 1994년 삼성그룹 교육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현재는 재무설계 전문회사 아이에프에이iFA에서 대표 카운슬러로 활동 중이며, 금융교육컴퍼니 '플랜 앤 하우투' 대표도 함께 맡고 있다. 2002년부터 현재까지 2030 직장인들과 맞벌이 부부들의 재무 상담을 맡으면서 수천 명의 사람들을 올바른 돈 관리의 길로 이끌었다.

 

꾸준한 수입인 월급이 재테크를 위한 최고의 조건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는 기본을 갖추었기 때문에 체계적인 관리만 덧붙인다면 돈을 모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20

 

 

 

 

 

 

절약 재테크의 함정에 빠지지 마라

 

과거엔 부자가 되기 위해 오로지 근검절약저축만이 정답이었다. 하지만 30대 초반의 직장인 가장이 자신의 개인 용돈으로 월 20만원을 책정하고 이를 무조건 엄수한다면 이 가장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당연히 미래를 대비한 투자가 부족해 경쟁력이 한참 뒤떨어질 것이다. 달라진 라이프 사이클에서 미래의 경쟁력을 위한 준비는 단순히 자격증을 따거나 학원을 다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접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는 모든 것, 즉 어느 정도는 여행이나 취미도 포함될 수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간접적인 경험은 자신의 잠재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경험이 제2직업이 되기도 하고, 창업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현재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면 과거와 다른 새로운 라이프 사이클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근검절약만을 내세우는 대응 방식은 남들보다 1,000만~2,000만 원은 빨리 모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경험 계좌에 한 푼도 없는 진짜 가난뱅이가 될 수도 있다.

 

"살고 있는 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계속해서 배우라"  

 

고대 스토아 철학의 대가 세네카는 이런 말을 했다. 이 말은 지금 이 시대의 재테크에서도 유효하게 적용된다. 미래를 위해 저축하는 것처럼 미래 경쟁력 자본을 만들어 가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미래 경쟁력 자본이란 지식, 경험, 인적 네트워크를 가르키는 말이다.

 

미래 경쟁력 자본의 공식

 

지식~ 새로운 지식을 습득

경험~ 새로운 경험을 축적

인적 네트워크~ 새로운 인간관계의 형성

 

 

 

머니 탱크 만들기

 

예전에는 대표적인 재테크가 바로 몇 년 안에 '1억 모으기'였고, 이게 많이 유행했다. 이를 해본 직장인은 안다. 동기부여 측면에선 효과가 있을 지 몰라도 정말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더구나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엔 '1억 모으기'가 더 더욱 넘사벽이다. 고성장과 고금리로 대변되는 과거엔 목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분명 많았을 것이다.

 

또한 과거엔 돈을 쪼개고 나누기보다는 목돈을 마련해야 하기에 한곳에 모아 규모를 키워야만했다. 마치 용도가 서로 다른 마시는 물, 청소용 물, 목욕용 물을 커다란 물탱크에 한꺼번에 보관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필요시에 꺼내 쓸 수 있겠지만 한 곳에 보관할 경우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의 머니탱크가 위험한 이유

 

불균형~ 시간 순서상 앞의 목표에 과잉 투자되어 타 목표에 지장을 초래

투자~ 목적과 다른 곳에 투자되어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

과소비~ 목적과 달리 타용도로 과하게 지출될 수도 있다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 조사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3,281만 원이다(2015년 기준). 상위 10퍼센트를 기준으로 해도 6,432만 원이고, 상황이 좋아 상위 10퍼센트 이내거나 맞벌이를 해도 월 소득은 500만 원 정도다. 그래서 인생의 필요 자금인 결혼, 주택, 자녀교육, 노후, 기타 자금을 마련하는 데 있어 큰 틀을 짜지 못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같은 기간 돈을 잘 모은 사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자금을 목적별로 잘 나누어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생각처럼 잘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왜 그럴까? 목적 자금에 대한 달성률을 계산하기보다 여전히 우리 머릿속에는 상품의 수익률에 대한 관심이 크다. 둘째는 돈 모으기에 앞서 최종 목적이 되는 목표를 나누어 자신이 필요로 하는 자금 목표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신용카드는 돈 모으기의 가장 큰 적이다

 

수천만 원이나 수억 원을 빌릴 때는 금리에 민감하지만 이보다 적은 몇 백만 원은 10~20퍼센트의 초고금리라 해도 당장 나가는 돈이 몇 만 원 안 되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와같은 초단기 대출이자의 규모가 1년에 수천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초단기 대출이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신용카드다.

 

과거 고성장 시대엔 직장인들이 갑자기 목돈이 필요하면 직장에서 월급을 미리 받는 형태가 있었다. 이를 '가불'이라고 불렀다. 마찬가지로 신용카드도 마치 가불처럼 아직 벌지도 않은 미래의 수입을 앞당겨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한다. 2단계 이상의 명확한 생활 예산과 예비 예산이 없으니 끝없이 돈이 모자라는 것이다. 일단 오늘 소비부터 하고 그 부담을 다음 달, 또 그다음 달로 미룬다. 이런 소비를 반복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한두 달 만에도 초단기 대출을 계속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신용카드는 돈 관리에 있어서 가장 큰 적인 셈이다. 하지만 잘모공('잘 모이는 공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용카드가 절대 고민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현금을 사용할 때보다 더 많은 혜택과 할인이라는 기분 좋은 즐거움을 선물받는 편리한 생활 도구다. 즉 명확한 월 예산과 예비 예산을 바탕으로 소비하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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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출신입니다만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인호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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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느 날 깨닫고 말았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까지, 지금 세계를 결정적으로 바꾸고 있는 이들은 바로 이과인人이다. 그리고 미래를 바꾸는 것도 분명 그들일 것이다. 이 책은 이과 콤플렉스를 짊어진 문과 남자가 2년에 걸쳐 이과의 선두주자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몇 번이나 깨달음을 얻고 시야를 크게 넓혀 온 기록이다. - '머리말' 중에서

 

 

이과와 문과가 융합하고 있다

 

책의 저자 가와무라 겐키는 조치대학 문학부 신문학과를 졸업한 후 도호 영화사에서 <전차남>, <고백>, <악인>, <모테키>, <늑대아이>, <기생수>, <괴물의 아이>, <바쿠만> 등의 영화를 제작했다. 2010년에 미국 잡지 <더 할리우드 리포터>에서 '넥스트 제너레이션 아시아'로 선정되었고, 2011년에는 우수 영화 제작자에게 수여하는 '후지모토 상'을 최연소로 수상했다.

 
2012년에 발표한 첫 소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이 서점

 

 

 

 

 

 

요로 다케시~ 곤충연구가

 

"세상일 중 20퍼센트 정도는 틀렸을지도 모른다"

 

요로 다케시는 도쿄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후 해부학 교실에 들어갔다. 1995년 도쿄대 교수직에서 물러나 현재는 명예교수인데, 저서로는 <바보의 벽>, <신체순례> 등이 있다. 그는 자신의 전공인 해부학뿐만 아니라 과학철학부터 사회비평까지 아루르는 다양한 저서들을 출간했다.

 

어린 시절 메이지유신을 겪은 그는 메이지 시대에 활동한 기타사토 시바사부로와 노구치 히데요 등 수많은 선배 과학자들은 19세기 유럽의 과학자와 거의 어깨를 견주며 연구했기에 지금보다 훨씬 더 국제파였음을 거론하면서 메이지유신이나 제2차 세계대전 등, 기존의 상식과 규칙이 한순간에 무너졌던 상황을 경험했던 특유의 인생철학이 있음을 내비치며 이렇게 말한다.

 

기타사토 시바사부로~페스트균, 파상풍균 등의 연구로 유명한 세균학자

노구치 히데요~ 황열병, 매독 등의 연구로 유명한 세균학자

 

"하지만 요즘은 다들 규칙을 지나치게 신뢰해서 문제입니다. 규칙상 안 된다면 검증조차 하지 않잖아요. 예컨대 술을 마시고 운전하지 말라고들 하잖아요. 어쩌면 술을 마시고 운전을 더 잘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어째서 그런 것을 확인하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가와카미 노부오~ 도완고 대표이사 회장

 

"부전승이야말로 최고의 승리법이며, 우유부단함은 현명함의 상징이다"

 

가와카미 노부오는 교토대 공학부를 졸업, 소프트웨어 회사의 근무를 거쳐 1997년 PC통신을 이용한 게임 시스템 개발회사 '도완고'를 설립했다. 이후에 휴대전화 벨소리 사업으로 회사 실적을 대폭 키워서 2003년 도쿄증권거래소에 회사를 상장시킨 인물이다. 저서로는 <콘텐츠의 비밀: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배운 것들>이 있다.

 

그는 경쟁에는 흥미가 없는 성격임을 알리면서 성공할 때만은 부전승을 거두고 싶다고 한다. 즉 경쟁상대가 있더라도 절대로 정정당당하게 맞서지 않고 경쟁 없이 압승할 방법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습이 최고임을 강조한다. 나아가 경쟁은 학력 사회의 병폐라고 힘주어 말하며 '경쟁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커다란 착각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요즘엔 짧은 시간에 해답을 찾아야 하는 게임만 유행하지만, 옛날에 명장이라 불렸던 사람들은 꽤 우유부단해서 장시간 이것저것 생각한 후에 답을 내놓았음을 상기시키며 장기 같은 게임이 그런 훈련엔 안성맞춤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우유부단함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우유부단함은 현명함의 상징입니다. 확고한 답을 내놓지도 못하는 상황인데 당장 조치부터 취하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미야모토 시게루~ 닌텐도 전무이사

 

"조금씩 쌓아 올려서, 불안정하지만 간신히 균형이 잡히도록 만드는 편이 더 재미있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가나자와미술공예대학 공업디자인과를 졸업, 게임회사 닌텐도에 입사햇다. 그는 게임 프로듀서로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1985년), <젤다의 전설>(1986년) 등 게임사에 기록될 수많은 걸작들을 제작했다. 2007년에는 미국 <타임스>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 "비디오게임계의 스필버그"라는 평가를 받았다.

 

예술인이었던 그는 가히 천재적인 발상으로 이과와 문과가 서로 교차하는 게임 업계에서 프로그램을 배우고 기술자를 설득하면서 게임 제작을 진두 지휘해왔다. 때로는 모든 기획을 뒤집어버리는 결단도 서슴치 않았기에 '재미있고 기분 좋은 게임'을 만들어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꼼꼼하게 계획해서 만들기보다는, 조금씩 쌓아 올려서 불안정하지만 간신히 균형이 잡히도록 만드는 편이 더 재미있는 게임이 되거든요"

 

 

마쓰오 유타카~ 인공지능 연구 선구자

 

"영어와 프로그래밍은 이제 됐으니 인간다움을 길러라"

 

마쓰오 유타카는 도쿄대 공학부 전자정보학과를 졸업, 도쿄대 대학원을 거쳐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산업기술종합연구소의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2007년부터 도쿄대 대학원 준교수에 취임, 2014년부터 도쿄대 글로벌 소비 인텔리전스 기부강좌를 주최했다. 저서로는 <인공지능과 딥러닝:인공지능이 불러올 산업 구조의 변화와 혁신> 등이 있다.

 

이미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세기적인 바둑 대결을 통해 인공지능의 우수성이 입증된 셈이다. 이와 관련해 앞으로의 세계는 인공지능이 지배할 것이라는 섯부른 예측까지 초래했으니 가히 쇼킹한 사건이었음에 틀림없다. 물론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하게 될 것이란 사실은 거부할 수 없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성찰해야 할 것이다. 마쓰오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생존과 번식의 욕구를 지닌 '생명'과, 주어진 목적에 맞게 최적의 행동을 하는 '인공지능'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인공지능은 만들기 쉽지만 생명은 만들기 어렵습니다. 인공지능과 인간이 공존하는 새로운 미래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 다른 나라가 군사적으로 이용하려 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이를 저지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올바른 판단력과 상상력입니다"

 

 

아마노 아쓰시~ 준텐도대학 심장혈관외과 교수

 

"이때다! 싶을 때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느냐가 승패를 좌우한다.

좋은 흐름이 오는 순간을 몸으로 느껴야 한다"

 

아마노 아쓰시는 고교시절 자신의 아버지가 심장판막증 환자임을 알게되어 의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니혼대학 의학부를 졸업, 가메다종합병원과 신도쿄병원 등을 거쳐 2002년부터 준텐도대학 심장혈관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공심폐 장치를 사용하지 않는 심장 수술의 권위자로 그의 성공률은 98퍼센트나 된다.

 

그는 젊은 시절 파친코에 빠져 대학도 삼수만에 겨우 입학했고, 수술 현장에서 수많은 경험을 했기에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 관해선 온갖 상황을 머릿속에 기억해 놓고 있으며, 기억이란 자신에게 딱 맞는 형태로 저장되어야 나중에 이를 잘 활용있다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다시 말해 앞으로 할 일을 미리 대충 준비해 놓는다는 개념입니다. 어려운 일을 맡았을 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바로 과거의 경험에 달려 있습니다. 예전에 비슷한 일을 여러 번 해봤다는 기억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지요"

 

 

다카하시 도모타카~ 로봇 제작자

 

"힘들고 어려운 일은 외주에 맡기지 말고 반드시 자기 자신이 해야 한다" 

다카하시 도모타카는 교토대 공학부를 졸업, 로보개러지를 창업하여 교토대 학내 입주 벤처기업 1호가 된 로봇 제작이다. 2013년 세계 최초로 커뮤니케이션 로봇 키로보를 우주로 보냈으며, 2016년 샤프사와 공동으로 개발한 로봇형 스마트폰 로보혼을 출시했다. 세계로봇월드컵에서 5년 연속 우승하면서 <파퓰러 사이언스> '미래를 바꿀 33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로보개러지 대표이사 사장이자 도쿄대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 교수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만화 <철완 아톰>은 사고로 아들을 잃은 덴마 박사가 죽은 이들과 비슷하게 생긴 로봇을 만드는 것으로 스토리가 시작된다. 다카하시도 설계도를 미리 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손으로 디자인을 그린 다음 나무로 거푸집을 만들어 플라스틱 부품을 만든는 작업을 진행한다면서 그는 절대 외주에 의존하지 않고 혼자서 작업하는 셈인데, 이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결국에는 개인이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실패할 때마다 고민을 거듭하고 스스로 땀 흘리며 일해야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그런 부분을 외주로 맡겨 버리면 정작 자기 자신은 경험을 쌓지 못하니 남는 것이 없습니다. 역시 과정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화이트칼라는 그냥 컴퓨터만 만지작거리고 실제 작업은 중국에 외주를 주는 식으로 일하다가는 언젠가 경험과 노하우를 쌓은 중국에게 역전당하고 말 것입니다"

 

 

마스다 준~ 라인 최고전략마케팅책임자

 

"조령모개朝令暮改가 최고다" 

 

마스다 준은 2008년 네이버 재팬에 입사, 사업전략실장과 최고전략책임자가 되었다. 2013년 라인으로 상호가 변경된 후 2015년 4월부터 최고전략마케팅책임자로 취임했다. 과거엔 어른들이 자녀들에게 '한우물을 파라'라고 교육시켰다. 즉 외길 인생을 강조했다. 하지만 요즈음 처럼 변화가 빠르고 다양한 시대엔 한길만 고수하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이에 대해 마스다는 이렇게 말한다.  

 

"직원들에게 늘 "조령모개가 최고다"라고 말합니다. 입력되는 정보가 바뀌면 결과도 당연히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는 옛날부터 사업계획도 세우지 않는 편인데, 경직된 사고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그러기도 합니다. 계획을 세운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는 '계획에 없는 일'이 전부 장애물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다 보면 꼭 귀담아들어야 하는 충고도 잡음처럼 무시해 버릴 수 있고요. 따라서 언제든 결정을 번복할 수 있다는 자세를 취해야 가장 위험성이 적고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문과 출신이여, 그대를 응원합니다

 

영화 <고백>을 프로듀싱한 책의 저자 가와무라 겐키는 소위 '성공한 문과 남자'이다. 시대가 변하여 이과 출신이 대접받는 때에 그는 문과에는 없지만 이과에는 있는 것을 찾고자 이과 출신의 유명 인사 15명을 직접 만나 대담하면서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똑같은 산을 오르지만 문과 출신과 이과 출신은 서로 다른 길로 오른다는 사실이다. 즉 그들은 수학, 공학, 의학, 생물학 들을 이용해 정상을 향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서평을 작성 중인 나도 당시엔 대접받던 문과 출신이다. 임원으로서 기업의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고, 창업해서 크게 성공하기도 했다. 저자의 인터뷰를 통해 나타난 창의력과 시사점을 깨우쳐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면 비록 문과 출신일지라도 융합형 인재의 시대에 걸맞는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과 출신들에게 한없는 응원을 보내며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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