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리 1 : 재능있는 리플리 리플리 1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 / 그책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좋아하는 배우 중에 맷 데이먼이란 배우가 있단다. 예전에 맷 데이븐이 주연한 영화 <리플리>를 재미있게 본 적이 있었어. 영화를 볼 때는 몰랐는데, 그 영화가 아주 오래 전 미남 배우의 대명사였던 알랭 드롱이 주연한 <태양은 가득히>란 영화의 리바이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리고 몇 년 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캐롤>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단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라는 작가의 책은 그때가 처음이라서, 작가 소개를 읽어보았어. 그런데 퍼트리샤의 작품 중 낯익은 제목의 소설이 하나 있었단다. 바로 <리플리>였어. ? 아빠가 예전에 본 영화 <리플리>가 생각이 나서, 그 책에 대한 소개를 읽어봤더니, 영화 <리플리> <태양은 가득히>의 원작 소설이더구나. , 이렇게 <리플리>라는 원작소설을 조우하다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회가 되면 <리플리>도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리플리>가 모두 다섯 권이더구나. 그 다섯 권짜리 책을 하나의 영화로 만들었더니, 축약한 것이 많은가? 이런 생각을 했었어. 이번에 책을 읽어보니, 그런 것이 아니더구나. 영화 <리플리> <태양은 가득히> <리플리>의 시리즈 중에 제 1권의 이야기만 다룬 것이었어. 다섯 권이 모든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한 권 한 권 끝맺음이 있는 것이란다. , 그럼 제 1 <재능있는 리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게.


1.

주인공 톰 리플리. 아빠는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서 댓 데이먼으로 매칭해서 책을 읽었단다. 그리고 디키는 주드 로, 마즈는 기네스 팰트로를 매칭해서 읽었어. , 그럼 톰 리플리 첫 번째 이야기를 해줄게. 톰 리플리는 가난한 집에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어. 뉴욕 어느 술집에서 우연히 디키의 아버지와 만났어. 디키는 그리 친한 친구는 아닌데, 디키의 아버지가 톰의 얼굴을 알아보았단다. 디키의 아버지는 톰에게 도움을 요청했어. 디키가 유럽에 여행을 가서 집에 오지 않고 있는데, 비용을 줄 테니 오라고 설득해달라고 했어. 디키의 아버지는 일 때문에 직접 가지 못하니, 면식만 있는 디키의 친구에게 여행 비용을 모두 대주면서, 대신 디키를 설득해서 데리고 오라고 한 거야. 설득하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했어. 디키의 집안이 부자라는 것은 대충 알겠지?

톰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 그리고 속으로 유럽에 가서 오지 않을 생각을 가졌단다. 유럽에서 돈벌이를 찾아보려고 했어. 디키라는 친구는 얼굴만 살짝 기억나는데 말이야. 아마 디키는 자신을 모를 수도 있겠다 싶었어. 그렇게 톰은 이탈리아 어떤 작은 해안 마을에 가서 디키를 만났단다. 역시 디키는 톰이 누구인지 기억을 잘 못했어. 디키를 보는 순간 디키를 이용해서 돈을 얻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 톰은 디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 부잣집 아들과 친해지려는 속셈이었어. 디키 주변에는 마즈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애인은 아닌 것 같고, 마즈가 디키에서 흑심을 품고 있는 것 같았어. 톰이 디키와 단둘만 있는 시간을 많이 만드니까, 마즈가 질투를 하기까지 했어. 마즈는 톰을 동성애자로 의심하기까지 했지. 마즈가 부추겨서인지 디키가 점점 톰을 밀어내려고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단다.


2.

톰은 더 이상 디키로부터 받아낼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어. 디키가 자신을 자꾸 멀리하고 무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그를 죽이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어. , 톰 리플리, 참 나쁜그러다가 단둘이 요트를 탈 일이 있었는데, 톰은 상상만 하던 끔찍한 일을 실제로 했단다. 그러면서 완전범죄를 꾸밀 궁리를 했어. 무거운 추를 디키의 시신에 매달아 바다에 빠뜨렸고, 요트도 몰래 가라앉게 조치를 했어. 하지만 그 큰 요트가 다 가라앉기는 어려웠지. 그저 누군가 발견하지 않기를 바랠 수밖에 없었지.

그는 그 시골을 떠나서 로마에 갔어. 그리고 그곳에서 더 위험한 짓을 했단다. 디키인 것처럼 지낸 거야. 디키의 여권 사진을 보고 디키의 외모처럼 꾸몄어. 디키의 돈과 옷 등을 모두 가졌고, 디키의 아버지가 디키에서 보내는 돈도 모두 자신이 가졌어. 로마에는 디키를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디키의 돈을 한동안 빼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지. 마즈를 비롯하여 몇 안 되는 디키의 친구들에게는 혼자 있고 싶다고 편지를 썼어. 물론 톰이 디키인 척 하면서 썼지. 그런데, 걱정했던 일이 일어났어. 디키의 친구 프레디가 로마로 디키를 만나러 찾아온 거야.

프레디는 디키의 집에 왔는데, 디키가 아닌 누구를 봤겠니. 톰이었어. 그리고 결국 프레디는 톰이 디키 행세를 하는 것을 알게 되었지. 톰은 다시 끔찍한 일을 벌였단다. 톰은 프레디마저 죽였어. 그리곤 프레디가 술에 취했다가 강도를 만난 살해당한 것처럼 해서 숲에 버렸단다. 나름 시신을 숨긴 것이었지만, 프레디의 시신은 금방 발견이 되었단다. 프레디의 행적을 쫓다 보니 경찰은 금방 디키의 집으로 왔어. 디키인 척 하면서 경찰과 이야기를 했어. 하지만 더 이상 디키인 척 할 수 없었어. 프레디의 수사를 하다 보니 마즈를 비롯한 디키의 친구들도 조사를 했어. 그들은 톰의 얼굴을 알고 있었지. 그러니 더 이상 톰이 디키인 척 할 수 없었던 거야. 그 이야기는 더 이상 디키의 돈을 빼돌릴 수 없다는 이야기지. 안타깝지만 다시 변신을 해서 톰이 되었어.

톰은 과연 경찰에게 잡혀갈까. 상황은 최악의 상황으로 가는 것 같았어. 그가 바다에 버리고 온 요트가 발견되어 그것 때문에 경찰이 찾아오기도 했어. 리플리가 감옥에 가는 것은 시간문제일까.


3.

톰은 무차별하게 사람을 죽이는 연쇄살인범이 아니야. 아빠가 생각하기에 톰이 소심한 성격을 가지기도 한 것 같아. 자신이 저지른 범죄가 들통날까 봐 엄청 걱정도 많이 하고, 그것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했어. 톰 리플리. 그 사람이 분명 나쁜 사람이고 감옥에 가야 할 사람이지만, 읽다 보면 톰이 걸리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갖고 읽게 된단다. 자꾸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거야. 리플리 1권의 제목이 <재능있는 리플리>잖아. 재능이 있어. 자신이 저지른 불완전한 범죄를 완전범죄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머리를 굴리고 노력을 한단다.

심지어 나중에는 디키의 유서까지 조작해서, 디키로부터 정기적인 상속까지 받아내게 된단다. 디키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디키는 결국 실종처리가 된단다. 디키의 실종과 프레디의 죽음에 톰 리플리가 연관되어 있음을 경찰도 인식하지만, 경찰은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고, 톰은 이런저런 알리바이, 정확히 이야기하면 거짓 알리바이를 만들어내며, 요리조리 잘 빠져나갔단다. 결국 톰 리플리는 용의자 선상에서 벗어나게 되었어. 톰이 잡히지 않게 되자 아빠는 이상하게도 (그러면 안 되는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단다.

분명 톰 리플리는 무고한 두 사람을 죽였으니, 당연히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가 붙잡히지 않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니이러면 안 되는데 말이야작가가 혹시 이런 걸 의도하고 소설을 쓴 것일까? 싶었단다. 읽는 이들이 나쁜 주인공에 감정이입이 되어, 범죄를 저지르고 난 마음이 어떤 것인지 느껴보라고 말이야.감옥에 가지 않더라도 언제 걸릴지 모르는 불안감으로 평생 살아가는 것이 범죄자의 인생이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의도는 아니었나 싶기도 하구나.

그럼, 2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2권을 기약하며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 슬쩍 뒤돌아보자 그린 케이지 술집에서 나온 남자가 뒤쫓아 오는 게 보였다.

책의 끝 문장 : “호텔로 가 주세요.” 톰이 말했다. “가장 좋은 호텔로. 가장 좋은 호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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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 장기려
이기환 엮고 지음 / 한걸음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번에 읽은 책은 장기려라는 훌륭한 분에 대한 이야기란다. 아빠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장기려라는 분에 대해서는 잘 몰랐어. 예전에 TV 프로그램에서 아빠가 좋아하는 유시민님께서 장기려라는 훌륭한 의사를 소개해주었다는 인터넷 기사를 본 적이 있었어. TV 프로그램은 실제로는 보지 못했고, 기사만 봤어.. 유시민님이 훌륭한 분이라고 소개를 했다면, 정말 훌륭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 분에 대해 한번 책이 있으면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읽게 된 책이 바로 <성산 장기려>라는 책이란다. 오래된 책이더구나. 그리고 어린이용으로도 장기려 선생님에 대한 책이 있어서 구입했는데, 너희들은 아직 읽지 않았지?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구나.


1.

장기려 선생님은 음력 1911 7 15일 평안북도 용천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단다. 할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었어. 그리고 평생 기독교 신자로 사셨어. 장기려 선생님도 10대였던 고보 시절 방황하기도 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경성의전에 합격을 했다고 하는구나. 경성의전이라고 하면 오늘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란다. 장기려 선생님은 졸업 후 외과를 선택했고, 공부 때문에 늦어진 결혼도 하게 되었어.

장기려 선생님에게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스승님은 백인재 교수님이라고 하는구나. 장기려 선생님이 여러 일화를 들려주면서, 소설가로 유명한 춘원 이광수를 치료한 이야기야. 춘원 이광수는 장기려 선생님이 환자를 다루는 것을 보고, 그는 성자 아니면 바보라고 했다는구나. 이미 장기려 선생님은 젊은 시절부터 의사 본연에만 충실했지, 의사로 돈 버는 일에는 관심이 없으셨던 거야. 이광수는 장기려 선생님을 모델로 한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정작 장기려 선생님은 본인이 아니라고 했다는구나. 겸손함의 이유일 수도 있지만, 친일파로 변절한 이광수와 엮이는 것이 꺼림칙한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

장기려 선생님은 박사 취득을 하고 평양 기홀 병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와서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어. 고향에서도 가까웠으니까그리고 병원장으로 일하기도 했는데, 다른 의사들과 갈등이 많았대. 단지 장기려 선생님이 세브란스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말이야. 평양 기홀 병원은 대부분 세브란스 출신인데, 경성의전 출신인 장기려 선생님이 와서 병원장을 하고 있으니 말이야. 두 달 만에 그만 두고 외과 과장을 맡으면 진료에 전념하셨대. 그리고 1943년 우리나라 최초로 간설상절제 수술에 성공을 했다는 구나. 간암 환자의 간암 덩어리를 간에서 떼어내는 아주 어려운 수술이었대. 아직 광복이 되기 전이니 그가 그 어려운 시절 이런 의료기술을 터득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했던 것이겠니.


2.

일제 시대이다 보니 이유도 없이 투옥되는 일이 있었는데, 장기려 선생님도 짧은 기간이지만 투옥되기도 했대. 그 투옥 기간에 몸이 안 좋아져서 묘향산에서 요양을 하기도 했대. 요양을 하다가 우리나라 해방 소식을 듣게 되었어. 자신도 해방 조국에서 무엇인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겠다고 생각했어. 그런 중에 조만식이 주도한 건국준비위원회에 동참해 달라고 해서 그러겠다고 했어. 하지만, 조만식이 1946년 숙청되는 바람에 없던 일이 되었지.

장기려 선생님은 당시 흔치 않은 의학 박사였기 때문에, 여기저기 제안이 왔단다. 김일성 의대로부터 초빙을 받아 외과의로 일하게 되었어. 하지만 공산주의가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점에 불편해 하셨어. 시간이 지나고 비극적인 한국전쟁이 일어났단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우리나라는 전쟁의 비극적인 상황에 놓였어. 국군의 평양 점령으로 장기려 선생님은 국군 병원에서 일했어.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그쪽에 더 낫다고 생각했어.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이어지다 중공군의 공격으로 장기려 선생님의 식구들은 피난을 가기로 했단다. 중공군 공격이 평양까지 밀어닥쳤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병원에 있던 장기려 선생님은 첫째 아들 가용과 함께 집으로 향했어. 하지만, 이미 집은 모두 떠나고 늙으신 부모님만 계셨단다. 부모님들은 집을 지키겠다고 했어. 장기려 선생님도 이 피난길이 길어야 두어 달이라고 생각했어. 그런 마음으로 피난길에 올랐단다.

국군이 장기려 선생님을 배려하여 트럭으로 이동할 수 있었는데, 첫째 아들 가용과 함께 트럭을 타고 피난길을 떠났어. 장기려 선생님은 몹시 불편해 하셨어. 다른 사람들은 모두 걸어가는데, 자신만 차를 타고 말이야. 그렇게 차를 타고 가다가 아내와 아이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았어. 그 자리에서 차를 세울 없었어. 자신의 식구들만 차에 태우는 것은 그의 성격상 할 수 없는 일뿐만 아니라. 그리고 차를 세우면 많은 피난민들이 차에 타려고 해서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어. 그리고 이 피난길이 길어야 두어 달이라고 생각했고, 조만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때 그렇게 헤어진 식구들은 결국 삶이 끝날 때까지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정말 슬프구나. 전쟁이 이렇게 나쁜 것이란다. 그런데 말이야. 사실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대. 북에 남은 장기려 선생님의 남은 아이들 다섯 명 모두가 나중에 커서 의료에 관련된 일들을 하셨어. 그래서 북한을 대표로 해서 외국에 나가도 했어.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만나게 되어 서로 남북에서 살고 있는 식구들의 소식을 알게 되었대. 어렵게 편지도 주고 받았고, 사진도 주고 받을 수 있었어. 그리고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이 되면서, 이산가족 상봉의 기회가 있었고, 장기려 선생님도 제안이 왔었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장기려 선생님은 자신만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하셨어. 그리고 며칠 만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시면서, 북쪽이나 남쪽에서 가족들과 계속 살게 해주면 만나겠다고 하셨대. 그리고 장기려 선생님은 조만간 통일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하셨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통일이 되면 만날 생각을 하셨대. 그렇게 결국 북에 있는 식구들과는 영영 만나지 못했다고 하는구나. 건너건너 얻은 늙은 아내의 사진을 평생 간직했다고 하는구나. 사연 하나하나가 구구절절 눈물을 핑 돌게 하는구나.


3.

다시 그 피난길 이야기를 해볼게. 장기려 선생님은 장남 가용만 데리고 부산까지 왔단다. 북에서 왔으니 공산주의자로 의심을 받기도 했어. 심지어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는구나. 감옥에서 나와서는 천막을 치고 병원 일을 시작하셨어. 미국 유학생 전영창이라는 분께서 모금한 돈을 가지고 와서 도와주었고, 장기려 선생님의 후배이신 전종휘라는 분께서 도와주어 병원을 운영했단다. 병원 이름은 복음 병원이라고 했어. 그들은 의료비를 받지 않고 UN의 지원을 받아 운영을 했어. 전쟁통에 지원이 얼마나 되겠니, 늘 돈이 쪼달렸단다. 월급도 의사나 병원장이라고 많이 받지 않고 가족수대로 월급을 주었다고 하는구나.

전쟁이 끝나고 본격적인 병원을 운영을 했어. 이제 지원금도 끊기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의료비를 받기 시작했대. 하지만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어. 의료비가 없다고 치료를 안 할 수도 없고, 치료를 해도 낼 돈도 없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지 않았지. 병원에서는 병원 운영을 해야 하니, 최소한의 돈을 받아야 한다고 했어. 그럼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있었어. 그런 사람들에게 돈을 주거나 몰래 도망가라고 이야기했다는구나. 그리곤 밤에 아무도 모르게 환자를 도망가게 도와주었다고 하는구나. 병원 운영에 늘 돈이 부족했는데, 다행히 그들을 도와주겠다는 대기업들이 나타나면서 근근이 운영할 수 있게 되었어. 이렇듯 그에 대한 미담은 끊임이 없었단다. 부산의 의료 발전을 위해 노력도 했는데, 그의 노력으로 부산대학교에 외과를 창설하기도 했어.

1960년대에는 의료보험이 없었는데, 장기려 선생님은 국내 최초의 의료보험인 청십자 의료보험을 창설하였고, 이 청십자 의료보험은 나중에 국민건강보험의 토대가 되었다고 하는구나. 장기려 선생님의 희생과 봉사 정신은 나라밖까지 알려져서 막사이사이상을 수상을 하셨어.

장기려 선생님은 평생 의사를 천직으로 생각하고 사셨고, 기독교의 깊은 신앙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리고 이 세상을 뜰 때 가진 것 하나 없이 그가 믿는 하느님 곁으로 돌아가신 것 같구나. 비록 이승에서는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하늘나라에서는 헤어진 아내와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고 계시면 좋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 나른한 오후였다.

책의 끝 문장 : 이것이 성공의 열쇠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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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저는 <삼국유사>에도 그리스 신화, 로마 신화처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정말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우리가 시험을 위한 공부로 <삼국유사>를 접했기 때문에 몰랐을 뿐이죠.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를 비교하며 차이점을 표로 그리면서 외우느라 정작 그 이야기에는 소홀했던 겁니다. 기전체의 관찬 사서, 기사본말체의 사찬 사서 등 형식적인 내용을 공부하느라 이야기 자체의 재미를 놓친 것이죠.

(39-40)

역사는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는 공부입니다. 고대부터 근현대까지의 긴 시간 안에 엄청나게 많은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어요. 그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절로 가슴이 뜁니다. 가슴 뛰는 삶을 살았던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고민과 선택과 행동에 깊이 감정을 이입했기 때문이죠. 그런 사람들을 계속 만나다 보면 좀 더 의미 있게 살기 위한 고민, 역사의 구경꾼으로 남지 않기 위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아무리 힘든 세상에서도 자신의 삶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법을 배우게 될 테죠. 그게 바로 역사의 힘입니다.

(71)

그가 조정에서 물러난 뒤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추측할 수 있는 증거가 있어요. 자신의 생가에 걸어 놓은 현판이죠. ‘여유당(與猶堂)’이라고 쓰인 현판인데, 얼핏 들으면 이제 좀 여유를 갖고 편하게 살겠다는 뜻인가?”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실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글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함이여, 겨울 냇물을 건너듯이

()함이여, 너의 이웃을 두려워하듯이.”

이 글귀는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신중하고,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처럼 두려워하며 경계하라는 의미예요. 안 그래도 눈엣가시인데 무엇 하나라도 트집을 잡아보려는 무리가 눈에 불을 켜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사방을 경계하고 신중하게 하루를 보내라는 의미로 그런 글자를 써둔 거예요. 정약용은 매일 현판을 쳐다보면서 오늘 하루도 행동거지 하나하나 조심해야지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79)

마지막으로 정약용이 자식들에게 당부했던 말을 전하며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진실로 너희들에게 바라노니, 항상 심기를 화평하게 가져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다름없이 하라. 하늘의 이치는 돌고 도는 것이라서, 한번 쓰러졌다 하여 결코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104)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다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게 됩니다. 그리고 겸손을 배우죠. 역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나라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가끔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천하를 호령하던 인물이 쓸쓸하고 비참하게 죽는가 하면, 사방으로 위세를 떨치던 대제국이 한순간에 지도에서 사라져버리기도 하니까요. 역사에서 이런 일은 너무나 비일비재합니다.

(164-5)

누군가와 처음 만나서 이야깃거리가 없을 때 역사를 화제에 올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처음 관계를 맺을 때 상대와 나 사이에 연결 고리를 찾으려고 많이 노력하잖아요. 그래서 출신 학교를 묻고, 지역을 묻고 하는데 그것보다는 역사적 사실로 다가가는 게 훨씬 더 그럴듯해 보이지 않겠어요? 역사는 꽤 유용한 소통의 도구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꺼내서 상대와 나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야 하는지 고민된다면 역사에서 답을 찾아보세요. 분명 같은 경험이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연결 고리가 있을 겁니다.

(207-8)

박상진이 판사를 꿈꾼 사람이라면 그런 판단을 내리지 못했을 거예요. 판사라는 꿈을 드디어 이룬 셈인데 그걸 내던지기가 얼마나 어려웠겠어요. 하지만 박상진의 꿈은 판사가 아니었어요. 그의 꿈은 명사가 아니었습니다. 법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늘 다하고만 사는 평범한 이에게 도움을 주고, 정의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사람이 되려고 판사가 된 것입니다. 이게 그의 꿈이었어요. 명사가 아닌 동사의 꿈이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판사라는 직업이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정의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진짜 꿈이었으니까요. 그 꿈을 향해 나아간 것뿐입니다.

(235)

이원익은 스물두 살에 과거에 급제해서 명종, 선조, 광해군, 인조 네 임금 밑에서 무려 여섯 차례나 영의정을 지냈던 인물입니다. 한 번 되기도 힘든 영의정을 여섯 번이나 했다니 그 권세가 얼마나 대단했을까 싶지요? 그런데 그는 오두막에서 일반 백성들과 다름없이 살았습니다. 영의정은커녕 양반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가난했어요.

(258)

역사를 공부하면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맥락이 잡힙니다. 역사에서 인간의 자유는 늘 이기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이것이 바로 역사의 수레바퀴예요. 역사를 통해 우리는 사회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문제란 별로 없습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변화의 움직임도 알고 보면 역사에서 그 문제의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좀 더 폭넓게 사회 문제를 이해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죠.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순간, 문제의 핵심을 바라보고 해결하는 원동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또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292)

이 시대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역사를 공부한 사람은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것입니다. 과거보다 현재가 나아졌듯이 미래는 더 밝을 거라고, ‘보다 우리의 힘을 믿으며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면 된다고. 역사를 통해 혼란 속에서도 세상과 사람을 믿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다시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건 역사지만 결국은 사람을, 인생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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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감각 - 새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팀 버케드 지음, 노승영 옮김, 커트리나 밴 그라우 그림 / 에이도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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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동물들 중에 가장 고등한 동물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사람들은 인간이라고 답을 할 거야. 과연 그럴까? 그렇게 고등한 동물이라서, 모든 생물들의 삶의 터전인 지구를 이렇게 망쳐놓았을까? 겨울에도 따뜻한 날씨는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

본격적으로 이번에 아빠가 읽은 책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고등하다고 하는 인간들도 할 수 없는 능력이 있으니 하늘을 나는 능력이란다. 사람들에게 되고 싶은 동물이 있냐고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새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구나.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능력. 지구상에 살았던, 그리고 살고 있는, 어쩌면 앞으로 살아갈 수많은 사람들 중에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래서 예부터 사람들을 새처럼 나는 것을 동경해왔단다. 결국 오늘날 여러 기계의 도움으로 하늘을 날 수 있지만, 새처럼 자유롭게 마음대로 본능적으로 날 수는 없단다.

새는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갖게 되었을까? 진화론으로 봤을 때도 새는 왜 날 수 있게 진화가 되었을까? 인간이 아무리 빠른 비행기를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아직 도약 없이 바로 날 수 있고, 날아가다가 재빠르게 방향전환하는 새들의 원리를 밝히지 못했다고 들은 적이 있어. 이렇게 새의 능력을 부러워하면서, 새의 비밀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새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참 많단다. 이번에 아빠가 읽은 <새의 감각>도 그런 과학자들의 결실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볼 수 있어.

새의 여러 비밀 중에 감각에 대한 이야기란다. , 감각이라고 하면, 사람에게는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이렇게 다섯 가지가 있잖아. , 새들도 이 다섯 가지 감각을 모두 가지고 있을까? 그런데 있잖아, 새들은 이 다섯 가지 감각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새에게는 그것 이외에 또 다른 감각이 있다고 하는구나. 그것이 무엇이냐고? 좀 이따가 이야기해 줄게. 아빠도 깜짝 놀란 새의 감각의 감각. 이로 인해 동물들 중에 가장 고등한 동물은 새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단다.


1.

도대체 새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새의 감각을 연구하여 이 책을 쓴 사람은 팀 버케드라는 사람이란다. 아빠는 당연히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지. 아마도 며칠 지나면 지은이의 이름을 까먹을 거야. 팀 버케드라는 사람은 영국의 유명한 생물학자로, 특이 조류학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서 아이센만 메달이라는 상도 받았다고 하는구나.

이 책의 차례를 보면, 아빠가 앞서 말한 감각들 순서로 되어 있단다. 1장 시각부터 시작해서 감각에 대해 다루고 있단다. 새의 시력은 인간의 시력에 비해 아주 좋단다. 저 높은 하늘 위해서 땅 위에 작은 먹이를 발견하고 잽싸게 내려오는 매를 보더라도, 얼마나 시력이 좋은 지 알 수 있을 거야. 먹이를 잘 보기 위해 시력이 좋을 쪽으로 진화가 되었겠지만, 그런 이유라면 사람도 충분이 시력이 더 좋게 진화할 수도 있었을 텐데, 사람은 그렇지 못하고, 새는 그렇게 시력이 좋단다. 날 수 있는 능력도 그렇고 시력도 그렇고 새의 진화 속도는 엄청 빠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단다. 그뿐만 아니라, 두 눈의 용도가 다르고, 필요할 때는 동시에 각기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다고 하는구나. 새들은 너무 완벽한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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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4)

물론 사람은 대체로 오른손잡이 아니면 왼손잡이다. 눈도 우세한 쪽이 있다. 75퍼센트는 오른쪽 눈이 우세하다(우리가 눈을 다르게 쓴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하지만 눈이 양옆에 달린 새는 두 눈을 다른 용도로 쓴다. 이를테면 햇병아리는 먹이처럼 가까운 대상을 볼 때에는 오른쪽 눈을 쓰고 포식자처럼 먼 대상을 볼 때에는 왼쪽 눈을 쓴다. 게다가 한쪽 눈을 일시적으로 안대로 가린 기발한 행동 실험에서 새들이 어느 쪽 눈을 쓰느냐에 따라 과제(이를테면 박새와 유럽어치가 먹이를 찾는 것) 수행 능력에 큰 차이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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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눈의 능력으로 인해 한쪽은 뜨고 잠을 자기도 한다는구나. 그러면 뇌의 절반은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대. 이거 뭐, 기계가 아니고 이런 능력이 있다니.. 완전 사기 캐릭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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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짐작했겠지만, 오른쪽 눈을 뜨고 자는 새는 뇌의 우반구가 휴식을 취한다(오른쪽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는 좌반구에서 처리하고 왼쪽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는 우반구에서 처리하기 때문이다.). 한쪽 눈을 뜨고 자는 것이 무척 유용한 경우는 두 가지다. 첫째는 근처에 포식자가 있을 때다. 오리, , 갈매기는 땅에서 잘 때 여우 같은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기 쉽기 때문에 한쪽 눈을 뜨고 있는 게 유리하다. 청둥오리를 연구한 바에 따르면 무리 한가운데에서 자는-상대적으로 안전한-녀석들은 가장자리에서 자는-포식자에게 잡히기 쉬운-녀석들에 비해 눈을 뜬 채 자는 시간이 훨씬 적으며 무리 가장자리에 있는 녀석들은 포식자가 접근할 만한 방향을 바라보는 눈을 뜨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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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을 시작으로 새의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의 이야기를 시각에서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 새의 능력이라면, 청각, 촉각, 미각, 후각에서도 아빠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어서 새들의 뛰어난 감각 능력에 그리 놀라지 않았단다. 예상하지 못했던 부리에서도 촉각을 느낄 수 있다는 점 정도?


2.

그리고 5감각의 이야기를 마치고, 6장의 제목 자각(磁覺)을 보고 제목을 여러 번 보았단다.  제대로 본 것 맞나? 자각? 한자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자()는 자석, 자기장을 뜻하는 한자란다. 뭐야, 그런 새는 자기장을 느낄 수 있다는 거야? 이 자각이라는 감각이 아빠가 앞서 이야기한 사람들은 없지만 새에게 있는 놀라운 감각이란다. 자각을 느낄 수 있다고? 정확히 이야기하면 자각을 볼 수 있다고 하는구나.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새들이 정확하게 목적지를 갈 수 있는 이유를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를 했다고 하는구나. 예전에는 두 가지 가설이 있다고 했어. 하나는 새들이 둥지에서 밖으로 나갈 때 길을 기억한다는 가설이고, 두 번째 가설이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할 수 있다는 가설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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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213)

새들이 어떻게 길을 찾는지에 대한 연구는 오래고 험난한 역사가 있다. 1800년대 중엽에는 비둘기 같은 새들의 귀소 방법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대립했다. 하나는 새들이 둥지에서 밖으로 나갈 때 길을 기억한다는 견해인데, 증거는 전혀 없다. 또 하나는 지구가 일종의 거대한 자석이며 새에게 여섯 번째 감각이 있어서 지구 자기장을 감지한다는 비교적 최근의 발견을 바탕으로 삼는다. 소설가 쥘 베른은 이 견해를 재빨리 받아들였다. <해터러스 선장의 모험과 항해(1866)>의 주요 등장인물은 자기력의 영향을 받아 늘 북쪽으로 걸었. 새가 사람과 달리 자각을 이용하여 길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러시아의 동물학자 알렉스 폰 미덴도르프가 1859년에 처음 했지만, 18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영국의 앨프리드 뉴턴을 비롯한 대부분의 조류학자들은 여기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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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과학자들에 연구에 의해 오른쪽 눈을 통해서 자각을 인식한다는 것을 알아냈대. 유럽울새라는 새의 오른쪽 눈만 뿌옇게 처리한 렌즈를 씌웠더니 방향을 찾지 못했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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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오른쪽 눈과 왼쪽 뇌는 어떻게 자각을 처리할까? 단지 오른쪽 눈이 빛에 더 민감해서일까? 빌트슈코는 진상을 알기 위해 유럽울새에게 일종의 콘택트렌즈를 씌우는 후속 실험을 실시했다. 오른쪽 눈과 왼쪽 눈에 씌운 렌즈는 같은 양의 빛을 받아들이지만 하나는 뿌옇게 처리되어 영상이 흐릿하게 보였고 또 하나는 투명했다. 이번에도 결과는 놀라웠다. 오른쪽 눈에 뿌연 렌즈를 씌워 세상을 보게 했더니 유럽울새는 방향을 찾지 못했다. 이에 반해 오른쪽 눈에 투명한 렌즈를 씌웠더니 여느 때처럼 정밀하게 방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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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았단다. 새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혹시 어벤져스의 아이먼맨의 특수 안경과 같이 모든 정보가 보이는 것은 아닐까? 혹시 다른 생물체의 마음까지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지구의 자기장까지 볼 수 있는데 말이야. 6장의 자각(磁覺)에서 놀라서 그런지, 7장에서 이야기한 새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새들이 유대관계를 갖는다는 내용은 그저 그런 내용으로 읽혀지는구나. 이렇게 고등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생물체인데 한낱 인간이 겪는 스트레스도 있겠지.

아냐, 고등한 생명체라고 하면 멘탈도 강해서 스트레스도 없어야 맞는 것인가? 아무튼 새들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니, 좀더 진화할 거리는 남아 있는 것 같구나. 만약 새들보다 좀 미개한 인간들이 지구를 엉망으로 만들어서 생명체가 못살게 되지 않는다면 말이야.

그런데 너희들은 왜 이렇게 새들, 특히 비둘기를 싫어하니?^^

오늘은 이만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 “망했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자기네 조류 동물상을 이렇게 표현한다.

책의 끝 문장 : 현재 우리는 새의 감각을 (적어도 일부는) 기초적으로는 훌륭히 이해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해해야 할 것이 많다.


때때로 과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행위로 표현된다. 가식적으로 들리겠지만, 여기서 ‘진리’의 의미는 단순하다. 진리란 ‘자신이 가진 과학적 증거를 근거로 우리가 지금 믿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자들이 누군가의 가설을 재검증했는데 검증 결과가 원래 가설과 일치하면 원래 가설이 살아남는다. 하지만 다른 연구자들이 애초의 실험 결과를 재현하지 못하거나 현상을 더 훌륭하게 설명하는 새 가설을 찾아내면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새로운 견해나 더 나은 증거에 비추어 생각을 바꾸는 것은 과학적 진보의 구성 요소다. 그렇다면 ‘현재의’ 증거를 바탕으로 우리가 참이라고 믿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현재로서는 진리’라는 표현이 더 나을 것이다. - P17

마틴은 올빼미의 눈이 정면을 향한 이유에 대해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올빼미의 눈이 매우 커야 할 뿐 아니라-빛이 약한 곳에서 날아다녀야 하니까-귓구멍이 매우 커야 하는데, 이 때문에 두개골에서 눈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정면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틴이 묻는다. "그곳 말고 어디에 갈 수 있었겠는가?" 올빼미 두개골에 눈과 귀(그리고 뇌) 자리가 얼마나 부족한가 하면 귓구멍으로 눈알 뒤쪽을 볼 수 있을 정도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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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내가 말하려는 하는 것은, 구례가 비록 우리 현대사에서는, 피아골 공비의 이미지와 겹치는 불운한 벽지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문화, 예술의 중심지였고, 당대사를 다룬 걸작 역사서가 탄생할 만큼의 정보가 오가는 물류의 교차로였다는 것이다. 무지한 미군놈들이 함부로 총구를 들이댈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 고을 한 고을마다 축적된 문명의 심도는 이루 헤아릴 길이 없다. 아메리카의 산천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문명, 문화의 서기가, 풀 한 포기에도 자욱하다. 정유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심한 고문을 당하고도 칠천량해전의 참상을 연민하며 백의종군 하겠다고 쓸쓸한 심사를 달래며 거쳐간 곳이 구례이며(구례에 지금도 백의종군로가 남아있다. 구례군민들의 지극한 간호와 위로로 이순신은 고문의 여독을 좀 풀 수 있었다), 해방 후 지방 건준조직이 최초로 결성된 곳도 구례다.

(60)

우리가 중국의 속국인 듯한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쿠데타사건 이후로 과도하게 조선왕조를 스스로 비하시키고, 제후국으로서의 모든 프로토콜을 엄수하게 된 이후의 사태이다. 조선왕조의 성립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비극적인 사건이다. 이성계는 고려제국에서 본다면 아웃사이더적인 인물이었고, 그의 군사쿠데타는 정통성이나 정당성을 확보하기 힘들었다. 우리는 정도전이나 조준 같은 개국공신들의 인식체계를 통하여 고려말 사회를 필망(必亡)”의 혼란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공민왕의 반원 개혁정치를 잘 도와 새로운 세상을 도모했더라면, 친명이 그토록 비굴한 사대나 이념적 굴종으로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정권 이씨조선은 개국초기의 혼란상이나 정통성 부재의 현실, 그 모든 것을 철저히 명에 대한 굴종적 아이덴티티를 통하여 극복하려 했다.

(69)

1236년에 시작하여 1251년까지, 그러니까 16년 동안에 이루어진 이 기적 같은 대장경사업을 단지 몽골의 변화를 불심으로 극복하겠다는 종교적 신념의 한 금자탑으로 보는 터무니없는 오류를 범해서는 아니 된다. 생각해보라! 6.25전쟁 때 북쪽에서 엄청난 탱크군단이 밀려오는데 그것을 대장경판각으로 물리친다! 도대체 이게 상식적으로 될 성부른 말인가? 3차의 대장경조조는 제1차와 제2차의 대장경조조와의 연속선상에 생각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몽골별의 화환(禍患)은 세계적인 대문화사업의 계기를 마련한 것일 뿐, 표면적 레토릭이 어떠한 상징적 수법을 쓰고 있든지간에 그것은 고려라는 대제국의 역량이 문화적 사업과 전쟁사업을 분리시켜 진행시킬 수 있을 만큼의 거대한 포텐셜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택도 없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16년간의 제3차 고려대장경의 조조는 그 자체로써 전쟁대비사업보다도 더 막대한 재력과 인력을 소모해야만 하는 것이다.

(74)

나는 개인적으로 정도전과 깊은 인연이 있다. 그 직계 장손과도 친하게 지냈고, 그에 관해 책도 썼고, 강연도 많이 했다. 그리고 조선왕조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처럼 자격 있는 혁명가를 찾기도 힘들다. 그는 맑스나 레닌과 같은 진짜 혁명가이다. 이론과 실제를 다 갖춘, 혁명을 위하여 자기의 삶을 불사른 멋진 사나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전체대의를 위해 생각을 해볼 때, 그가 저지른 오류도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오류는 고려대제국의 실태와 그 가치를 근원적으로 훼멸시킨 것에 관한 것이다. <고려국사>는 용서할 수 없는, 왜곡의 사서이다. 그것이 정도전 개인의 오류로 끝났으면 다행이겠지만, 향후 조선민족의 역사 인식 전체에 너무도 끔찍한 악영향을 미쳤다.

(90)

원 지사에 대한 제주도민의 사랑은 무척 깊습니다. 그렇다면 그 깊은 만큼 원 지사는 깊이 제주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진정 제주도 사람이 무엇인지, 그 아이덴티티에 대한 깊은 감각이 없습니다. 제주도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가치있게 사는 것인가에 관한 심오한 반추가 없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중앙정계로의 진출뿐이고, 그 관심을 집중하기 위하여 제주도를 천박한 개발모델의 전위로 만드는 것이죠. 그는 제주도민의 깊은 기대와 사랑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위대한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꼭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사로서 정말 제주도를 위대하게 만들 때만이 혹 결과적으로 대선의 기회도 올 수 있는 것이지, 대통령 되기 위해 산다는 놈 치고 제대로 된 놈 있습니까? 제주사랑이 무엇인지, 제주역사가 무엇인지, 제주비젼이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 문명이 있으면 반문명도 있어야 하고, 유위(有爲)가 있으면 무위(無爲)도 있어야 한다는 것, 선생님의 책을 젊은 날에 읽었다고 한다면, 선생님께서 그런 것 좀 원희룡에게 가르쳐 주세요. 조금만 정신 차리면 훌륭한 인물이 될 텐데 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 같아요. 제주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대치할 만한 스타도 없고 참 딱하게 생각하고 있지요.”

애정 어린 깊이 있는 제주도사람 양 교수의 크리티칼 멘트였다.

(103)

여순민중항쟁이야말로 세계사를 선도한 조선민중의 정의감의 발로였으며, 여순민중항쟁을 빌미로 6.25동란을 위시한 향후의 모든 세계사적 비극이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나타났고, 우익반공파시즘의 가치체계가 설칠 수 있었는가 하며, 또 반면 우리 민중의 심오한 내성의 양심 속에서 인류사에 새로운 희망을 던질 수 있는 민주의 촛불이 켜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어마어마한 세계사적 사건을 해방 정북의 복잡하고 중층적인 인식체계로부터 접근해야만 합니다. 나는 이 접근을 시도하기 전에 여러분과 함께 다음과 진실을 외쳐야만 하겠습니다. 여순은 민중항쟁이다!

(132)

우리는 해방이라는 원점의 성격으로부터 다시 문제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해방을 맞이하는 건준이라고 하는 슬기로운 주체세력이 있었고 그것은 전국의 인민위원회 조식의 구심점이 되었지만, 해방을 가능케 한 물리적 주동세력은 미국과 소련이라고 하는, 세계사의 무대를 분할하는 양대 신흥세력이었다는 것은 이미 갈파한 바와 같아. 해방의 주체가 우리민족이 아닌, 미국과 소련이었다고 한다면 이 해방정국 공백의 새로운 모델링의 결말은 이미 명약관화하다. 그것은 미국에 붙어 미국말을 잘 듣는 놈이 이남을 먹을 것이요, 소련에 붙어 소련말을 잘 듣는 놈이 이북을 먹을 것이다. 이 두 놈은 모두 토착세력이 아닐 것이고 소련과 미국에서 자기세력을 키웠거나, 소련과 미국의 지도자들에 특별한 총애를 받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141)

동아시아역사에 대하여 맥아더가 저지른 가장 큰 오류는, 인류사의 근원적 진보에 공헌할 수 있는 결정적 찬스를 놓친 죄악에 가까운 오류는 전후에 일본의 천황제를 존속시킨 것이다. 천황제를 존속시키는 것이 미국의 일본지배를 쉽게 만들고, 동아시아에 있어서 공산주의의 팽창을 막을 수 있는 확실한 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히로히토는 1945 9 27일 맥아더의 SCAP 헤드쿼터를 두 발로 찾아가 목숨을 구걸했다. 그리고 미국의 이해관계에 전적으로 부속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것은 미국이 나치정권의 독일국가를 근원적으로 해체시킨 것과는 사뭇 다른 방식의 전후처리였다. 일본국가가 근원적 변화가 없이 존속하도록 하면서 몇 명의 전범만 코스메틱한 효과로 처형한 것이다.

(173)

여러분들은 해방정국에서 좆됐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나의 말을 기억할 것이다. 이들은 좆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8 15일부터 움츠러들었고 소리 없이 지냈다. 그런데 움츠러든 사람들은 누에의 굴신작용처럼 반드시 펼 날을 기약하게 마련이다. 오늘날 촛불혁명 때문에 움츠러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좆됐다파들은 대체로 가문이 좋고 지체가 높고 지식이 많았고, 영어를 잘했고 서구유학파들이고 기독교도들이 많았다. 이들은 건준에 가담하지 않았고 건준+인민위원회세상의 형국을 불쾌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에게 희소식이 날아왔다. ! 미군이 온다! 드디어 미국이 입성한다. 이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 이제 움츠리고만 있을 수 없다. 기지개를 펴자! 이들은 본시 서양파들이었기 때문에 미군의 입성, 미국이 조선의 최대의 권좌를 차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모래밭에서 죽어가는 물고기에게 물을 부어 연못을 만들어주는 것과 똑같았다.

(232-3)

4*3은 결코 무장봉기가 아니다. 억눌린 민중이 소총 몇 자루 가지고 경찰서를 습격한 사건을 민중항쟁의 핵심적 사태로 인지하는 것은 전적으로 오류에 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민중항쟁의 가냘픈 호소일 뿐이다. 그들을 결코 무장대라고 불러서도 아니 되는 것이다. “무장대가 되려면 무력을 계속해서 공급받을 수 있는 루트가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나, 월맹의 호치민과 같이 지속적으로 무기를 공급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4*3사태 이후의 토벌이라는 것은 무장 대 무장의 전쟁이 아니라, 그냥 정부병력의 민간학살일 뿐이다. 4*3의 의미를 침소봉대할 수 없다. 산으로 피신 간 사람들은 무장투쟁을 위해 간 것이 아니라, 단지 학살을 피하기 위한 도피였을 뿐이다. 한 번도 제대로 싸워본 적이 없다. 또한 사가들이 오해하는 거대한 오류 중의 하나가 무장대의 무장봉기남로당과 관련시키는 것이다.

(239-40)

박진경의 도민학살을 견디다 못해 그의 암살을 기획한 것은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였다. 그리고 그 거사에 동조한 양회천 이등상사, 신상우 하사, 강승규 하사, 배경용 하사, 이정우 하사(입산 미체포), 황주복 하사, 김정도 하사의 이름도 같이 기억되어야 한다. 문상길 중위는 충청도 사람으로 육사 3시다. 3중대장이었으며 독실한 기독교이었다. 그의 최후진술은 다음과 같다.

이 법정은 미군정의 법정이며, 미군정장관인 딘 장군의 총애를 받던 박진경 대령의 살해범을 재판하는 사람들로써 구성된 법정이다. 우리가 군인으로서 자기 직속상관을 살해하고 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죽음을 결심하고 행동한 것이다. 재판장 이하 전 법관도 모두 우리민족이기에, 우리가 민족반역자를 처형한 것에 대해서는 공감을 가질 줄로 안다. 우리에게 총살형을 선고하는 데 대하여 민족적인 양심 때문에 대단히 고민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 법정에 대하여 조금도 원한을 가지지 않는다. 안심하기 바란다. 박진경 연대장은 먼저 저 세상으로 갔고, 수일 후에는 우리가 간다. 그리고 재판장 이후 모든 사람들도 저세상에 갈 것이다. 그러면 우리와 박진경 연대장과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저세상 하느님 앞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인간의 법적은 공평하지 못해도 하느님의 법적은 절대적으로 공평하다.”

(294)

이 미군정의 미곡수집령이야말로 1946년 전국적인 10월봉기의 주요 원인이었으며 제주 4*3과 여순민중항쟁의 가장 근원적인 요인이다. 이것은 남로당의 정치적 공작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남로당은 그러한 대중동원조직체계나 지지기반을 갖지 못했다. 그것은 몇몇 지식인들이나 지식인 반열에 들고 싶어하는 허영끼 있는 인간들의 픽션에 불과했다. 민중에게 절실한 것은 오직 이지 공산이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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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5 08: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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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6 00: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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