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55)

엘렌은 기차가 메이컨을 떠나기를 기다리면서 이번 기차 여행 이후로는 믿을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다. 이곳에 돌아오면 아마 족쇄를 차게 될 것이다. 성공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영영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늘이 기도를 들어준다면 윌리엄만은 볼 수 있겠지만, 살아남는다면, 엘렌은 어머니를 해방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먼저 그녀와 윌리엄이 자유로워져야 했다.

 

(70-71)

노스캐롤라이나주 포시스 카운티의 어느 도표를 보면 이 사업의 과정을 추론할 수 있다. 예속 피해자의 몸값은 출생 이후로 20세까지 점점 높아진다. 한 살짜리 아이의 가격은 100달러였다. 두 살짜리는 125달러였다. 가격은 7세가 될 때까지 25달러씩 증가한 뒤, 그 이후로는 50달러씩 증가했다. 그러나 20세에 900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에는 가격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55세인 예속 피해자의 가격은 100달러였다. 60세는 50달러였다. 그 이후로는 숫자가 기록되지 않았다.

 

(101)

힐리 가족은 서로를 남편과 아내로 불렀을지 몰라도 법은 그들에게 주인과 노예가 아닌 어떤 관계도 맺지 못하게 했다. 조지아주에서 개인에 의한 해방은 금지돼 있었다. 초기에는 조지아주 사람들도 자기 의지에 따라 노예를 해방할 수 있었다. 버지니아주의 조지 워싱턴이 (조건을 붙이긴 했어도) 노예를 해방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시대에 힐리에게는 메리 일라이자나 그들의 자녀를 해방할 힘이 없었다. 아이들의 아버지가 백인이라는 점, 그들의 모습도 백인 같다는 점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는 소위 한방울 법칙이라는,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들어가면 그 사람의 몸 전체가 유색인종으로 변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었다. 게다가 노예제도는 언제나 어머니의 혈통을 따랐다. 흑인이라는 혈통과 예속은 건드려서도 취소해서도 안 되는 영구적인 조건으로 간주되었다. 힐리 가족이, 그리고 이제는 엘렌도 바로 이런 가정에 반기를 들었다.

 

(256)

크래프트 부부의 특별한 탈출이 신문 1면에 실렸을 때는 미국 정제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멕시코와의 전쟁이 끝나고, 미국은 기존 영토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영토를 더 얻었다. 정착민들이 서쪽으로, 특히 캘리포니아로 몰려가고 있었다. 캘리포니아는 모든 신문에서 요란하게 광고되었다. 이런 광고의 헤드라인은 골드러시!”라고 소리쳤다. 신문을 배달하는 소년들은 새 배가 떠납니다!”라고 외쳤다. 이 모든 흥분의 한가운데에는 불안한 질문이 있었고, 크래프트 부부의 도망은 바로 그 질문을 강조했다. 이 땅에서 노예제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 전체에서는?

 

(282)

지금 그 기적이 엘렌을 통해 실현된 것처럼 보였다. 활동가로 전직한 목사 새뮤얼 메이 주니어는 이렇게 감탄했다. “엘렌 크래프트는 (중략) 아름답다고 할 만한 여자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그녀의 눈과 두 뺨, 코 머리카락에는 아프리카계 혈통의 흔적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 전체가 남부 태생의 백인 여성으로 보였다. 그런 여성이 하나의 재산으로 취급되고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에게 팔려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로는 피부가 가장 검은 여성이 그런 일을 당하는 것과 비교해 더 나쁘거나 사악한 일일 리 없지만, 유색인에 대한 편견 속에 자라난 공동체에 천 배는 큰 소요를 일으켰다.”

 

(307)

많은 사람이 엘렌을 백인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은 겉보기에는 백인인 이 여성이 흑인 남성을 사랑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인종 간 결혼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금지되었던 주에서는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엘렌은 청중에게 사회적 질서를 고정해 두는 그 모든 범주의 의미에 질문을 던지라고 요구했다. 그 범주가 북부든, 남부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주인이든, 노예든, 남편이든, 아내든 간에 말이다. 엘렌과 윌리엄은 힘을 합쳐 널리 퍼져 있던 인종차별주의적 주장을 뒤집었다. 흑인은 사회악이거나 최선의 경우에도 자선의 대상이며 구원이 필요하다는 주장, 흑인이 백인이 되고 싶어 한다는 주장을 말이다.

 

(429)

마치 노예 사냥꾼이 되고자 하는 이들의 등에 우리를 체포하세요.”라는 플래카드라도 달려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담배를 피우며 마음을 달래기가 무섭게 거리에서 흡연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썼다(이들의 고향에서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은 흑인이 저질렀을 경우에만 처벌 가능한 위법 행위였다). 괴로워 소리를 지르면 신성모독적 욕설혐의가 따라왔다. 월요일에 케임브리지까지 쫓겨 갔던 트라우마적 사건은 요금을 내지 않고 과속했다는 더 많은 혐의로 이어졌다. 조지아인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에 그들은 겁에 질린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무기를 숨기고 다닌다는 혐의를 주가로 썼다. 흑인인 그들의 적은, 신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빨까지 무장하고있었는데도 말이다. 최악은 지역 주민들이 이들의 괴로움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신문에서는 놀리듯이 이렇게 표현했다. “정말이지 보스턴 시민의 준법 의식은 대단하다!”

 

(482)

그들은 너무도 긴 거리를 달려왔다. 남부에서 북부로 1,600킬로미터, 뉴잉글랜드 전역을 다니며 다시 1,600킬로미터,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거친 파도를 건너 4,800킬로미터, 그들은 서로를 위해, 서로와 함께 달렸고 이제는 바로 이곳, 이 시간에 서로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곳은 두 사람이 함께, 충분히 강하게, 각자의 정체성을 따로 탐색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누구를, 또 무엇을 잃었든 그들은 아무도 깨뜨릴 수 없는 가정을 만들겠다는 꿈을 이룰 수 있었다.

 

(552-553)

아메리카의 천연자원은 다양하게 전시되었다. 브라운의 말에 따르면, 산처럼 쌓인 햄 더미, 소금과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담긴 통, 때깔 고운 흰색 라드가 있었다. 옥수숫가루와 완두콩, 쌀과 담배, 묵직한 목화 자루도 있었다. 그러나 그 농산물을 기르고 수확하고 도살한 사람들은 언급되지 않았다. 잉글랜드의 눈부신 방직기에서 나오는 알록달록한 사라사 천을 뽑은 이들이 세계 반대편에서 상품이 되어 구매와 판매의 대상이 되는 남자, 여자, 아이들임을 나타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어떤 사람은 건방진 근육질 니거 대여섯 명을 전시회에 데려올까 하다가, 도망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공식 카탈로그에서 노예노동에 대한 유일한 언급한 미국이 아닌 아프리카에서 재배되는 목화에 대한 것뿐이었다.

 

(560)

주인과 노예로서 나란히 선 것도 아니고, 남편과 아내로서 팔짱을 끼지도 않은 채, 친구들 사이에 함께 선 지금의 크래프트 부부는 미국에서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그들을 규정했던 역할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세계를 거닐었다. 그들이 순회강연에서 반복적으로 끌어다 쓴 역할, 충격과 눈물, 경이감을 끌어내기 위해 뒤섞어 짜맞춘 역할은 이 마지막 시위에 빠져 있었다. 수정궁은 미국에서든, 그 너머에서든 가능한 삶의 모습이자 하나의 가능성으로, 언젠가는 이루어질 희망으로 나타내는 투명한 국제적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윌리엄과 엘렌, 엘렌과 윌리엄은 모든 방해에서 해방되어 세계 시민으로서 걸었다. 그들은 더 이상 주인과 노예, 남편과 아내가 아니었다.

 

(572-573)

나는 노예 상태로 돌아가겠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자유보다 노예제도를 선호할 만큼 자유를 부정하는 건 신계서도 금하시는 일입니다. 사실 나는 노예제도로부터 탈출한 이래로 모든 면에서 내가 예상조차 못했을 만큼 나아졌습니다. 만약, 그 반대였다고 해도 이 문제에 관한 내 감정만큼은 똑같았을 것입니다. 나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훌륭한 인간의 노예가 되기보다 잉글랜드에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597)

크래프트 부부의 가장 확실한 유산은 그들의 자녀와-부부는 바로 이 아이들을 상상하며 모든 것을 걸었었다-그들이 이루어낸 시적 정의 안에서 계속 살아남았다. 아이들이 나름의 이동성을 발휘하며, 엘렌과 윌리엄이 꾼 꿈을 다양한 형태로 실현했기 때문이다. 두 아들은 철도와 우편 분야에 종사하게 되었다. 부부가 낳은 첫 자유인 아이인 찰스 에슬린 필립스 크래프트는 철도 회사의 우편 담당 직원이 되었고, 브로검은 미국 우체국에서 일했다. 셋째 아들 윌리엄은 영국에 정착했다. 딸인 엘렌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전국 연합의 창립 부회장이 되었고(이 단체는 전국 유색인 여성 연합에 통합된다), 아이다 B. 웰스 같은 활동가와 협력했다. 또한 그녀는 미국의 라이베리아 공사인 윌리엄 데모스테네스 크럼의 아내로서 미국인 퍼스트레이디가 되기도 했다. 그녀의 남편은 찰스턴의 세관 징수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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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겨울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8
켄 폴릿 지음, 남명성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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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켄 폴릿의 20세기 3부작 중 2부에 해당하는 <세계의 겨울> 1권을 이야기할게. 책 제목을 보거나 책 표지를 보면 어느 시대를 이야기하는지 금방 알아차릴 것 같구나.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소설이란다. 지난 <거인들의 몰락>은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소설이었고, 1차 세계대전은 2018년에 끝났고 소설은 2019년에 끝났던 것으로 기억한단다. <세계의 겨울> 1933년에 시작해. <거인들의 몰락>의 마지막에서 약 14년이 지난 시점이란다. <거인들의 몰락>에 나왔던 이들도 나오지만, 그들의 자녀들이 주요 주인공들로 이야기를 꾸려간단다. 책 두께가 만만치 않고, 나오는 등장인물들도 엄청 많아서 아빠가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1.

이야기는 1933년 베를린에서 시작한단다. 당시 독일은 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상황이 좋지 않았어. 생필품을 구하기도 힘들고, 이동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었어. 그런 것을 알고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기 위해 독일에 왔단다. <거인들의 몰락>에서 등장했던 영국 아가씨 모드는 사랑을 찾아 독일로 갔잖니. 1933년이면 세계 대전이 끝난 지 15년이 지난 시점으로, 모드와 발터 사이에는 아들 에리크와 딸 카를라가 있었어. 에리크는 열 세살이고, 카를라는 열한 살이었어. 그들의 집에는 스물아홉 살의 가정부 야다가 있었어. 발터는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단다. 카를라의 친한 친구 프리다가 있었고, 프리다는 열네 살의 오빠 베르너, 일곱 살의 동생 악셀이 있었고, 엄마는 모니카이고, 아빠는 프랭크라는 사람인데 나치를 지지하고 있었어. 이 즈음 독일에서는 나치를 중심으로 유대인 반대 시위를 자주 했는데 그 시위가 점점 폭력까지 더해지기 시작했어. 모드가 일하는 잡지사에 난입하여 난동을 부리기도 했어.

....

모드가 영국에 있을 때 함께 여성 운동을 했던 에셀 레크위드가 아들 로이드와 함께 독일에 찾아왔단다. <거인들의 몰락>에서 이야기를 했지만 에셀은 버니와 결혼했지만 그 전에 미혼모로 아들 로이드가 있었고, 로이드의 친아빠는 에셀의 오빠인 피츠허버트였단다. 로이드는 자신의 아빠가 버니로 알고 있었지, 피츠허버트인 걸 모르고 있었어. 로이드는 어느덧 열여덟 살이 되어 있었어. 에설은 독일에 오서 모드와 발터, 그리고 발터의 사촌 로베트르를 만났어. 로베르트도 <거인들의 몰락>에 나왔던 인물로 헝가리 외교관으로 일했지만 전쟁에 패배한 이후 재산을 다 빼앗기고 지금은 베를린으로 와서 식당을 하고 있었어.

어느날 독일 의사당에서 불어 났어. 누군가 불을 지른 거야. 히틀러는 방화범이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공산주의자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는데 2만 명이나 체포를 했어. 발터가 속해있는 사회민주당은 나치의 폭거를 피해서 극장에 모여서 선거 운동을 하게 되었어. 에설, 로이드도 참석하고 베르너의 친구로 독일로 유학 온 러시아 청년 볼로댜도 참석했어. 볼로댜는 <거인들의 몰락>의 중요 인물인 그리고리의 아들이었단다. 볼로댜의 실제 아버지는 그리고리의 동생 레프였지. 그 사연은 <거인들의 몰락>에서 이야기했으니 오늘은 생략. 그런데 사회민주당 선거 운동에 나치가 잠입해서 방해하고 난동을 부렸단다. 그러다가 주먹 싸움이 벌여졌는데 젊은 혈기로 참지 못한 로이드, 베르너, 볼로댜도 관여를 했단다.

....

모드의 아들 에리크는 친구들 따라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하고, 히틀러의 지지자를 상징하는 갈색제복도 입고 그랬어. 에리크가 열세 살이라고 했으니 친구들 따라 가입하고 갈색제복도 멋있어 보였겠지. 그럴 나이 아니겠니. 에리크가 동생 카를라와 둘이 집에 있을 때, 가정부 아다가 갑자기 산통이 와서 아이를 낳으려고 했어. 에리크는 동네에 있는 유대인 의사 이자크 로트만을 부르러 갔고, 카를라는 아다 옆에서 도와주었어. 아다는 의사가 도착하기 전에 아이가 낳게 되었는데, 카를라는 어린 나이 답지 않게 침착하게 대응도 잘하고 도와주어 아이를 순산할 수 있었단다. 카를라가 엄마를 닮아서 책임감도 강한 것 같구나. 아다는 자신의 아들 이름을 쿠르트라고 지었어.

....

독일 선거에서는 그동안 세를 키운 나치당이 44%를 차지하였어. 그리고 다른 정당들과 연합하여 공산당을 해체하려는 계획을 꾸몄어. 그렇게 되면 의회의 3분의 2를 차지할 수 있었거든. 이것은 엄연한 불법으로 사회민주당은 반대했단다. 하지만 나치당은 강압과 협박을 해서 다른 정당들을 끌어들여 사회민주당을 제외하고 모두 나치의 법안에 찬성표를 던져 공산당은 해체되고 나치당은 막강한 1당에 되었어. 본격적으로 유대인을 탄압하기 시작했단다. 로베르트 식당도 타겟이 되었어. 어느날 로베르트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경찰 마케라는 작자가 있었는데, 로베르트의 식당에 갈색셔츠단을 데리고 와서 난동을 부렸어. 그리고 로베르트 식당이 동성애들이 오는 식당이라면서 폐쇄시켰단다. 돈까지 갈취했고 이에 로베르트와 동업자 외르크는 맞서 싸웠고, 때마침 식당에 있던 로이드도 함께 싸웠다가 모두 체포되었단다. 그들은 감금 당했고, 외르크는 경찰견들한테 물려 죽고 말았어. 결국 로베트르는 식당에 헐값에 넘기고 영국으로 도망가기로 했어. 로이드도 풀려난 이후 엄마 에설과 함께 영국으로 돌아왔단다. 에설은 영국으로 오기 전에 독일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모드에게 함께 영국에 가자고 했지만, 모드는 독일에 남겠다고 했단다.

....

 

2.

시간이 흘러 1935년 미국으로 가보자꾸나. <거인들의 몰락>의 주인공 중에 한 명인 러시아 인 레프. 그리고리의 동생이자 볼로댜의 친아버지. 불법과 편법으로 미국에서 사업으로 성공했지.. 자신을 고용한 사장의 딸 올가를 꼬셔서 결혼했었잖아. 하지만 그 이후로도 바람을 계속 피웠는데, 10년이 훌쩍 지난 이후에도 여전히 바람을 피우고 있었단다. 아내 올가가 낳은 딸 데이지가 벌써 열아홉 살이고, 정부 마르가가 낳은 아들 그레그가 있었고, 지금은 또 영화배우 글래디스 앤절리스와 당당히 바람을 피우고 있었단다. 데이지는 에바 루트만이라는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에바는 앞서 이야기했던 베를린에 사는 유대인 의사 이자크 로트만의 딸이었단다. 독일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자 딸을 피신시킬 겸 미국으로 유학 보낸 거야. 데이지는 찰리라는 남자를 좋아했단다.

<거인들의 몰락>에서 중요한 미국인 중에 거스 듀어가 있었는데 그들의 가족 이야기도 할게. 거스 듀어는 로사와 결혼하여 첫째 아들 열다섯 살 우디와 둘째 아들 척이 있었어. 사춘기에 들어선 우디는 조앤 로즈로크라는 여자를 좋아했는데 조앤은 열여덟 살로 우디를 어린애 취급을 했단다. 우디의 취미는 사진 찍기였는데, 조앤에게 잘 보이려고 노동자 시위에 참가하여 사진들을 찍고 그 사진을 신문사에 보냈지. 그런데 그 사진들은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 왜곡되어 신문에 실리게 되었단다. 언론이란 곳은 이런 놈들이란다. 이 일로 우디는 신문을 믿지 않기로 했어.

....

레프의 정부가 낳은 아들 그레그는 아버지와 떨어져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를 만나러 갔어. 그런데 아버지 레프가 극장사업을 하는 데이브 로즈로크(앞서 이야기했던 조앤 로즈로트의 아버지)라는 사람을 덫에 빠뜨렸고 데이브는 꼼짝 못하고 극장을 모두 헐값에 레프에게 넘기고 말았어. 이 일에 그레그는 자신도 모르게 관여하여 괴로워했어. 그리고 그레그는 아버지가 소개해준 영화배우 재키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데, 재키는 레프에게 돈을 받고 일한 것으로 약속한 시간이 지난 후 사라지고 말았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재키도 그레그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레프가 무서워서 그레그를 떠날 수밖에 없었어. 레프가 덫을 놓아 극장을 빼앗았다는 일은 사람들이 알게 되어 가족들까지 피해를 보았어. 파티장에 참석했던 아내 올가와 딸 데이지를 다른 사람들이 무시를 한 거야. 데이지와 사귀고 있던 찰리도 레프의 일 때문에 데이지에게 이별 선언을 했단다. 데이지는 착한 것 같은데 못된 아버지 때문에 사랑도 잃게 되었어.

....

이번에는 영국의 이야기를 해보자. 시간이 흘러 1936년 런던. 이 시절은 전세계적으로 파시즘이 퍼지고 있던 시기였어. 런던에서 그런 파시즘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있었고, 이들이 시위가 자주 일어났어. 모드의 오빠인 피츠허버트의 아들 보이도 파시즘을 지지하는 사람이었어. 에셀와 남편 버니, 아들 로이드는 노동당이 주최한 집회에 참석을 했는데, 파시스트들이 훼방을 해서 시비가 붙기도 했지만 다행히 무력충돌까지는 가지 않았어.

데이지와 에바는 영국에 유학 와 있었는데, 사교계에 발을 들여 영국 사람들과도 친분을 쌓아갔어. 린디와 리지라는 쌍둥이와도 알게 되었고, 피츠의 아들 보이와 에셀의 아들 로이드도 알게 되었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로이드의 친아버지는 피츠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보이와 로이드는 배다른 형제지간인데 둘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단다. 그런데 보이와 로이드 모두 데이지를 좋아했어.

...

로이드는 웨일즈에 계시는 외할아버지 댁에 갔단다. 외삼촌인 빌리도 만나고 빌리의 친구 톰과 톰의 아들 레니도 만났어. 빌리와 톰은 <거인들의 몰락>에서도 이야기했던 사람들인데 기억나려나? 그들은 국제 정세를 이야기했는데 주요 토픽은 독일, 이탈리아에 이어서 에스파냐도 파시즘이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어. 이렇듯 당시 파시즘은 유럽을 뒤흔들고 있었단다. 톰의 아들 레니는 에스파냐 반란에 반군으로 직접 전쟁에 참여하는 것도 파시즘에 저항하는 방법이라는 이야기를 했어. 로이드는 그 생각이 괜찮은 생각이라고 생각하고 부모님인 에셀과 버니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에설은 절대로 안 된다고 했어. 아들이 전쟁을 나갔다고 하는데 좋아할 부모가 어디 있겠니.

...

데이지와 함께 영국으로 유학 온 에바는 런던에서 만난 지미머리와 결혼을 했어. 하지만 독일에 계신 부모님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오지 못했단다. 독일에서 유대인의 이동 금지령을 내린 거야. 한편 데이지는 보이를 유혹하여 청혼을 받아냈어.

...

당시 런던은 파시즘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수가 점점 늘어났어. 노동당을 중심으로 파시즘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어. 로이드와 로이드의 이복동생 밀리도 시위에 참가했어. 경찰들이 무력 진압을 하여 부상자들이 속출했는데, 밀리도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호송되었어. 로이드는 시위를 하다가 우연히 반대 진영에 있는 데이지를 만났어. 데이지는 자신이 보이와 결혼했다는 소식에 크게 상심했단다. 그래서 로이드는 홧김에 에스파냐에 가기로 결정했단다. 빌리의 아들 데이브, 톰의 아들 레니도 함께 가기로 했단다.

....

1937. 이번에는 러시아의 이야기란다. 볼로댜는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군 정보부에서 일하고 있었어. 볼로댜는 독일에 친분을 쌓은 베르너로부터 독일 정보를 얻곤 했단다. 그런 정보 중에 독일 스파이가 에스파냐에 잠입했다는 정보가 있었어. 볼로댜는 그들을 감시하는 임무로 에스파냐로 가게 된단다. 볼로댜는 에스파냐에서 로이드를 만나게 된단다. 이 소설이 재미있기는 하지만 등장인물들간의 우연한 만남은 좀 지나친 것 같다는 생각은 들더구나. 그런 만남들은 앞으로도 계속 될 거야.. 그래도 재미가 있으니 이해해주자.

로이드는 에스파냐에 온지 10개월이 되었어. 그런데 4년 전인 이 소설의 시작부분에서 로이드가 엄마 에셀을 따라 독일에 갔었잖아. 그때 로이드는 베르너늘 통해 볼로댜를 소개받았었는데 에스파냐에서 다시 만나게 된 거야. 볼로댜는 당국에서 파견된 비밀경찰 일리야와 함께 일했는데, 볼로댜와 일리야는 사이가 좋지 않을 걸 넘어 앙숙에 가까웠어. 볼로댜가 독일스파이를 몰래 잡아 이중스파이로 만들려고 했는데, 일리야가 훼방을 놓아 실패하고 말았단다.

당시 스페인 내전은 파시스트를 상대로 사민주의자들, 공산주의자들, 아나키스트들이 연합하여 맞서고 있었지만 그들 사이에도 갈등을 빚고 있었단다. 공산주의자들은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었어. 그래서 러시아에서 파병 온 군인들도 많았어. 로이드의 부대는 최전선에 투입되었는데 로이드의 부대는 무리한 진격 명령을 받았어. 그것에 불만이 있었지만 전쟁 중 명령 불복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진격을 했어. 결과는 참패였어. 36명 중 5명만 살아 돌아왔어. 로이드는 돌아오긴 했지만 총상을 입고 말았어. 그들의 상관은 러시아 장교였는데 그 장교는 전쟁 중에 후퇴는 유죄라고 하면서 부상자를 제외한 세 명을 그 자리에서 총으로 죽였단다. 로이드의 사촌인 데이브도 그렇게 죽고 말았어. 로이드와 레니는 부상으로 후방으로 후송되었고, 로이드는 러시아 장교에 횡포에 화도 나고, 실망도 하여 부상이 어느 정도 치료된 다음에 스페인을 탈출했단다. 프랑스를 거쳐서 간신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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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939. 1939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해란다. 어떻게 전개되는지 보자꾸나. 볼로댜는 에스파냐에서 돌아온 이후 베를린에 와서 첩보 활동을 했단다. 자신의 고국 러시아의 상황도 실망의 연속이라서 생각했어. 스탈린이 정권을 잡은 이후 1937, 1938년에 스탈린은 대대적인 반대파 숙청이 있었단다. 이 때 억울하게 많은 사람이 죽었어. 국내 사정은 이렇게 공포 정치로 바뀌고, 국외 독일은 나치가 전쟁의 공포를 만들어가고 있었어. 그래서 볼로댜는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베를린에 온 거야. 볼로댜는 10년 만에 베를린에 와서 베르너도 오랜만에 만났어. 베르너는 여전히 나치를 반대하는 진영에서 일했어. 그런데 볼료댜는 베를린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어. 소련과 독일이 평화협정을 맺었다는 소식이야. 스탈린이 나쁜 짓을 그렇게 했다고 하지만 히틀러와 손까지 잡을 줄이야 꿈에도 몰랐어. 독일은 폴란드에 간섭을 하기 시작했고, 폴란드는 영국에 도움을 요청하여 폴란드와 영국은 동맹을 맺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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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도 독일과 소련의 평화협정은 커다란 뉴스였어. 이것에 대응하기 위해 프랭클린 대통령은 회의를 소집했어. 거스 듀어도 참석했는데 아들 우디 듀어도 함께 참석시켰단다. 그 회의를 통해 미국은 군사 행동이 가능한 국가간 연합 단체를 계획하게 되었어. 한편 우디 듀어는 그곳에서 우연히 조앤 로즈로크를 4년 만에 만났고 파티까지 초대받았단다. 우디 듀어는 조앤의 초대에 들떠서 찾아갔는데 사람들이 엄청 많았어. 그 중에 어떤 남자가 자신을 조앤의 약혼남이라고 소개를 했어. 그 사실에 우디는 마음이 상처 입고 조앤을 만나지고 않고 돌아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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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독일로 가보자. 카를라는 의사가 꿈이었어. 성적도 좋았지만, 불합격했단다. 대놓고 남녀 차별을 당하며 불합격한 거야. 그리고 독일은 결국 폴란드를 침공했단다. 그래서 영국의 체임벌린 총리는 독일과 전쟁을 선포했단다. 한편 데이지와 보이의 결혼 생활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어. 보이가 바람 피는 것을 알게 되어 따지자, 보이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했어. 피가 어디 가겠나, 싶구나.

해가 바뀌어 1940. 로이드는 중위로 독일과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어. 전쟁이 일어나서 민간 주택도 군대에서 사용하게 되었는데, 티귄 저택도 신병훈련소로 쓰였어. 티귄 저택은 <거인들의 몰락>의 주요 무대로 주인장은 피츠허버트였잖아. 그곳에서 로이드의 엄마 에설도 일하고자세한 것은 <거인들의 몰락>에서 이야기했으니 생략.

피츠의 아들 보이와 아내 데이지가 티귄 저택에서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로이드는 데이지를 다시 만나게 되었어. 데이지를 잊고 살려고 발버둥을 쳤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는구나. 다 잊은 줄 알았는데 다시 만나니 로이드는 아직 감정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았어. 데이지는 임신 중이었는데 어느날 하혈을 하게 되었어. 남편 보이는 멀리 있었어. 연락을 해 보았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어. 결국 로이드에게 도움을 청했고, 로이드는 친절하면서 침착하게 응급조치를 해주었고, 의사에게 연락을 해서 데이지가 치료받을 수 있게 도와주었어. 하지만 유산은 막을 수 없었단다. 이 일로 데이지는 로이드와 친해지게 되었어. 쉬는 시간에 함께 티귄 저택도 둘러보았는데, 우연히 보이의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사진을 보았는데, 로이드와 너무 닮아있어서 깜짝 놀랬단다. 데이지는 추측을 해 봤어. 피츠의 여동생 모드가 누군가 사랑에 빠져 아기를 낳게 되고, 그 일을 숨기기 위해 하인으로 있던 에셀이 대신 아기를 키우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이야. 그 대가로 집을 받았을 거라고 이야기했어. 그럴 듯한 추측인데, 정답은 아니구나. 정답은 좀 더 심플하지.

데이지와 로이드가 시간을 함께 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되었어. 그리고 로이드도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사랑을 나눌 준비를 했어. 하지만 남편 보이가 예상보다 일찍 집에 돌아와서 망쳤단다. 그리고 타이밍도 안 맞게 로이드는 다음날 휴가를 갔어. 본머스에 머물고 있는 식구를 만났어. 보이의 할아버지 사진을 본 이후 머릿속에 차지하고 있던 생각을 부모님들에게 이야기했어. 자신의 친부가 누구냐고 솔직히 알려달라고 했어. 결국 에설은 피츠허버트의 아들이라고 이야기했단다. 로이드는 어느 정도 예상을 했기 때문에 담담히 받아들였어. 로이드가 휴가를 나와 있는 중에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어. 영국과 독일이 전면전을 시작한 거야. 결국 로이드는 티귄 저택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곧바로 전쟁터로 가게 되었단다. 로이드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데이지를 남겨둔 채

모드와 발터의 아들 에리크는 의대생으로 공부하다가 전쟁터에 오게 되어 의무병으로 참전했단다. 에리크는 아르덴 숲에 발령받았는데 많은 부상병들을 치료했단다. 독일의 에르덴 숲 공격은 연합국의 허를 찌르는 작전이었어. 이 작전이 성공하여 독일은 파리를 점령하면서 전쟁 초반에 승기를 잡았어. 휴가를 떠나 전쟁에 참여한 로이드도 프랑스에 참전했다가 전투에서 져서 포로로 잡히게 되었어. 독일 쪽으로 끌려 가다가 적군이 방심한 틈을 타서 도망을 갔단다. 어떤 프랑스 부부가 도와주어 숨어 있다가 에스파냐로 도망가서 영국으로 가기로 했어. 그러나 가는 길에 경찰의 검문을 받고 그들을 따라가야 했어. 그런데 다행히도 그들은 착한 사람이었어. 도주한 병사들을 국외로 빼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어. 그들 중에서는 예전에 스페인에서 스페인어를 가르치던 테레사라는 여자도 있었어. 그녀의 도움으로 로이드는 안전하게 영국에 도착할 수 있었어. 그리고 에설을 통해서 데이지와 재회해서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단다.

그런데 어떻게 에설이 데이지를 알고 있었냐고? 작은 사연이 하나 있었어. 데이지는 남편 보이가 바람 피는 것을 확인하려고 차를 타고 그를 쫓아 런던까지 왔어. 그리고 보이가 바람 피는 현장을 목격하고 이별을 선고했단다. 그런데 그때 독일의 런던 공습이 있었어집들이 무너지고 여기저기 사람들이 많이 다쳤어. 엉겁결에 데이지는 자신의 차로 환자들을 병원에 데려다 주었어. 데이지는 이 일이 자신에 맞는다고 생각하여 계속 환자들을 실어오는 일을 하게 되었어. 그곳에서 자원봉사하고 있던 에셀을 만나게 된 것이란다.

1942. 카를라의 집 유모 아다 기억 나지? 카를라의 도움으로 쿠르트도 낳았잖아. 그 쿠르트가 어느덧 여덟 살이 되었는데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병원에서 특수치료를 위해 아켈베르크라는 곳에서 치료 받는 것을 제안 받았어.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아들이 낫는다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지원했어. 그런데 며칠 뒤 쿠르트가 맹장염이 터져서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어.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쿠르트는 이미 맹장수술을 해서 맹장이 없었거든그런데 이렇게 죽은 것은 쿠르트만이 아니었어. 카를라의 친구 프라다의 동생 악셀도 장애가 있었는데, 그 애도 아켈베르크에서 치료받고 있다가 똑같이 맹장염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대. 이거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프라다의 오빠인 베르너, 카를라의 아빠 발터, 그리고 신부님이 이 일을 조사하기로 했어. 그러자 곧바로 게슈타포인 마케가 그들을 찾아와 협각을 했어. 그리고 반항한 발터는 체포되었단다. 이후 발터는 구타와 고문으로 폐인이 되었어. 며칠 뒤 집에 돌아왔지만 구타와 고문으로 망가진 몸은 얼마 못 있어 죽고 말았단다. 뭐 이런 충격전인 일이모드는 남편을 잃고 큰 충격을 받았어. 사랑을 찾아 모국을 버리고 독일까지 왔는데 말이야.

카를라는 프라다와 함께 아빠가 하던 일을 몰래 이어서 했어. 둘은 아켈베르크의 산 속에 있는 병원에 몰래 잠입해서 장애인들을 죽이는 것을 보았단다. 그리고 그곳에 일하는 일제라는 간호사가 양심선언을 했어. 간호가는 카를라가 소개하여 패터 신부를 만나 고해성사를 했어. 아켈베르트에서 있었던 일을 다 이야기하면서 용서를 빌었어. 패터 신부는 이 사건을 교회에서 폭로하게 되어 만천하에 알게 되었어. 하지만 패터 신부도 게슈타포에게 끌려가서 고문 중에 죽고 말았단다. 그러나 여론이 계속 안 좋아지자 나치 당국은 장애인들을 죽이는 T4 작전을 철회하게 되었단다.

소련과 독일의 평화협정은 오래가지 않았어. 서부 전선에서 승리를 거둔 독일은 러시아까지 침공했어. 그러자 스탈린은 잠적했단다. 소련의 고위공직자들은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스탈린을 찾아갔어. 그러면서 다시 돌아오라고 읍소했단다. 이것은 스탈린이 더욱 강력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작전이었다고 하는구나. 자신의 나라를 사랑했던 볼로댜는 나라가 스탈린 한 명에 의해 좌지우지되어 엉망이 되어가는 것을 보고 크게 좌절하고 말았어.

여기까지가 1권의 끝이란다. 정신없이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 틀린 부분도 있을 것 같구나. 아빠의 기억력 보존을 대신한다고 자세히 써서 책을 읽지 않은 너희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되었을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아빠의 기억과 기록이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위 내용 중에 잘못된 부분도 꽤 있을 거야. 나중에 너희들이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아빠의 독서편지 중에 잘못된 부분을 찾아보면서 읽는 재미도 있을 것 같구나.^^

아빠가 부지런을 떨어서 조만간 2권도 이야기해줄게.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카를라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말다툼 직전이라는 걸 눈치챘다.

책의 끝 문장: “러시아.” 하인리히가 말했다.

 


"왜 파시스트는 폭력을 원할까요?" 에설은 수사적 질문을 했다. "바깥 힐스 로드에 있는 저들은 그저 소동꾼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저들을 조종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들의 전략에는 목표가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싸움이 일어날 경우 그들은 공공질서가 무너졌다고 주장할 수 있으며, 법률에 의한 지배를 회복하기 위해 극단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할 겁니다. 그들이 말하는 비상조치에는 노동당 같은 민주적인 정당을 금하고, 노조활동을 금지하고, 재판 없이 사람을 구금하는 내용이 포함합니다. 바로 우리처럼 죄라고는 정부와 뜻을 달리하는 것 말고는 없는 평화적인 남녀를 말입니다. 제 말이 터무니없이, 절대로 벌어질 수 없는 것으로 들리십니까? 자, 독일에서 저들이 사용한 전략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성공했어요." - P223

"어머니는 같은 경로를 통해 여자도 남자와 동등한 임금을 받을 수 있게 하려고 애썼잖아요." 로이드가 말했다. "그리고 실패했죠." 바로 지난 4월 노동당 여성 의원들은 남성 동료와 동일한 업무를 하는 여성 공무원들에게 동등한 임금을 보장하는 의회 법안을 통과시키고자 했다. 법안은 남성 의원이 압도적으로 많은 하원에서 부결되었다.
"투표에서 질 때마다 민주주의를 포기해선 한 돼." 에설은 단호하게 말했다.
- P285

그들은 영국 국기를 들고 있었다. 로이드는 궁금했다. 조국의 좋은 것을 모조리 파괴하고 싶어하는 자들은 왜 가장 먼저 국기부터 흔들어 대는가.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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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158)

앤은 지금 그가 심지 굳은 성품이 우월하고 행복해진다는 이론을 펼쳤던 자신이 옳았는가를 자문해보고 있을지, 그리고 다른 성격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나름의 균형과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유연한 성품도 때로는 결단력 있는 성품만큼이나 행복에 필요한 것이라고 그 또한 느끼지 않을까 싶었다.


(308-309)

아니, 아니에요. 그건 남성의 본성이 아니지요. 지조 없이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사람을 잊는 것이 여자의 본성이 아니라 남자의 본성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 반대라고 믿어요. 우리의 신체적 구조와 정신적 구조엔 진정한 유사성이 있다고 믿으니까요. 남자의 신체가 더 강하듯이 감정도 더 강하니, 그만큼 고된 일도 견딜 수 있고 거친 풍파도 헤쳐나갈 수 있는 것이죠.”


(311-312)

!” 앤이 열렬한 목소리로 탄성이 내지르며 말했다. “당신이, 그리고 당신 같은 남자들이 느끼는 모든 것을 온당하게 대접할 수 있길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따뜻하고 신실한 감정을 하찮게 본다면 벌받을 일이겠지요. 제가 감히 진실한 애정과 절개는 오로지 여자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경멸받아 마땅할 겁니다. 아니, 저는 남자들이 결혼해 살면서 온갖 위대하고 선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어요. 꼭 필요한 일을 위해 애쓰고, 가정에서 참을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답니다. 다만, 이런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대상이 있는 한 그렇다는 얘기지요. 제 말은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살아 있고, 그 여자가 당신을 위해 사는 동안에 한해서라는 거예요. 제가 여자들을 위해 주장하는 특권이란-별로 시기할 만한 게 아니니 탐내실 필요는 없어요-더 이상 대상이 존재하지 않아도, 희망이 사라져버린 뒤에도, 여자는 남자보다 더 오래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327-328)

세상에!” 그가 소리쳤다. “그리하셨겠군요! 제가 이룬 모든 성공의 정점으로 그것을 생각해보지 않았거나 소망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제 자존심, 지나친 자존심 때문에 다시 청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당신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눈을 질끈 감은 채 당신을 이해하려고도, 제대로 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보면, 모든 사람을 다 용서해도 저 자신만의 용서할 수 없게 된답니다. 육 년의 세월을 그렇게 떨어져 힘들게 보내지 않아도 되었겠지요. 그런 고통스러운 감정은 전에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어요. 제가 누렸던 축복은 모두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는 만족감에 익숙해져 있었으니까요. 명예로운 노고와 정당한 보상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왔지요. 인생의 패배를 겪은 다른 위대한 인물들처럼.” 그는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저도 제 의지를 누르고 운명을 따르도록 해야겠습니다. 마땅히 받아야 할 몫 이상의 행복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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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 런던에서 아테네까지, 셰익스피어의 450년 자취를 찾아 클래식 클라우드 1
황광수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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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랜만에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읽었단다. 클라우드 시리즈는 시대를 앞서 살아간 거장 100명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시리즈란다. 기행문과 평전의 콜라보라고 할 수도 있지. 아빠는 그 동안 세 편을 읽어보았는데, 그 인물에 대해 알게 되어 좋고, 책에서 소개된 곳을 가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단다. 모두 100권을 출간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확인해 보니 38권까지 출간되었더구나. 그 클라우드 시리즈의 시작인 1권이 오늘 이야기할 <셰익스피어>란다.

셰익스피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고 그를 거장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반대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하여 1권을 셰익스피어로 정하지 않았나 싶구나. 아빠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읽어보긴 했지만, 그리 많이 읽었다고는 할 수 없구나셰익스피어 작품이 대부분이 희곡인데, 아빠에게는 희곡 읽기는 소설보다 쉽지 않거든. 그래서 다른 고전보다 손이 적게 가더라구. 조금씩 천천히 찾아서 읽어는 볼 생각은 있단다.

 

1.

클라우드 시리즈 1 <셰익스피어> 2018년 출간되었고, 지은이 황광수 님이 셰익스피어를 발자취를 여행한 것은 2014년이었단다. 2014년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지 450년 되던 해로 많은 행사들이 있었던 해라고 하는구나. 셰익스피어는 1564년 영국 스트랫퍼스라는 곳에서 태어났대. 그의 생가는 여전히 잘 보존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대. 그의 생가가 잘 보존된 것은 후대 작가들이 돈을 기부하여 관리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구나. 아버지는 존 셰익스피어는 장갑 장인이자 지방 최고 행정관이었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어려운 일들이 계속 겹쳤어. 윌리엄 이전에 태어난 형제들은 모두 흑사병으로 죽고 말았대. 어렸을 때의 기록들은 어느 정도 남아 있는데, 18살에 결혼을 하고 26살에 연극무대에 짠 하고 나타날 때까지 약 8년 간의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셰익스피어 평전을 쓰는 작가들이 이 시절을 작가들의 상상력으로 채운다고 하더구나.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꽤 있어서 셰익스피어가 그 시절에 이탈리아에 갔었다는 설도 있지만,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에 간 적은 없다고 하더구나.

….

18살에 윌리엄은 26살의 앤 해서웨이와 결혼을 하는데, 과속을 해서 결혼을 서두른 것 같다고 했어. 결혼한 지 6개월만에 첫 딸을 출산했대. 그런데 아내의 이름이 너무나 유명한 배우의 이름과 똑같구나. 영화배우 앤 해서웨이의 이름이 본명인지 가명인지 모르겠지만, 셰익스피어의 아내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인지 궁금하더구나.

지은이 황광수 님은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곳을 떠나 런던으로 이동했어. 그리고 런던을 배경으로 작품인 <헨리 6>, <심벌린> 등을 이야기를 했어. 이렇게 지은이의 여행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의 배경이 되는 곳들이었어. 그 많은 작품들의 모든 배경지를 갈 수 없었지. <멕베스>의 경우는 스코틀랜드가 배경인데, 그곳을 못가는 아쉬움을 이야기하면서 <멕베스>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런던을 떠나 파리로 향했어. 너희도 좋아하는 도시 파리. 파리에는 셰익스피어 관련된 서점이 하나가 있단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라는 서점인데, 우리가 간 날은 하필 쉬는 날이라서 닫힌 문만 보고 왔잖니. 언젠가는 문을 연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가 볼 수 있겠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유명한 작가들도 즐겨 찾던 서점을 유명해져 지금은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된 서점이란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 파리를 배경으로 한 작품 <끝이 좋으면 다 좋다>를 소개해주고 독일 바이마르 괴테의 집으로 이동했어. 괴테의 집에 방문한 이유는 괴테가 셰익스피어를 극찬해서

시로 남길 정도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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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괴테는 셰익스피어의 언어적 특성, 즉 외적 감각에 호소하기보다는 내적 감각에 호소하는 상상력을 높이 평가했다. “셰익스피어는 언제나 우리의 내적 감각을 향해 말한다. 이것을 통해, 상상의 그림 세계가 활성화되며, 완벽한 효과가 나타나게 되는데, 우리는 이것에 대해 어떠한 생각도 덧붙일 수 없다. 정확하게 여기에 모든 것이 우리 눈앞에 일어나는 환상의 바탕이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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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프라하, 부다페스트, 빈을 거쳐서 이탈리아로 넘어갔단다. 셰익스피아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많이 썼어. 베로나를 배경으로 한 <로미오와 줄리엣>,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한 <말괄량이 길들이기>, <베니스의 상인>, <오셀로>, 로마를 배경으로 한 <페리클레스>를 설명해주었어. 아빠가 셰익스피어를 잘 모르긴 하지만 그의 작품들 중에 처음 들어보는 작품들도 참 많더구나. 페리클레스는 고대 그리스의 지도자와 이름은 같지만 다른 인물을 그린 작품이래. <페리클레스>는 서아시아와 지중해에 널리 퍼져 있는 이야기를 엮은 희곡이라고 하는구나. <트로일로스와 크레시다>라는 작품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배경으로 썼다는구나.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실수연발>이라는 작품은 고대 시라쿠사 사람들의 이야기, <한여름 밤의 꿈>은 네 남녀의 사랑싸움 이야기, <아테네의 티몬>은 몰락한 자본가의 이미지를 통해 돈의 속성을 비꼬는 희곡이라고 하는구나. 이런 식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소개해 주고 있는데, 나중에 읽을 책을 고민할 때 이 책의 차례를 보고 하나 골라서 읽어도 좋을 것 같구나. 오늘은 독서편지가 밀린 것도 있으니 이렇게 짧게 마치련다. 양해 바람.

 

PS,

책의 첫 문장: 어스푸레한 방 안에 한 소년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책의 끝 문장: 나는 셰익스피어 문학의 불멸성에 관해 이 말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알지 못한다.



안내판 뒤쪽으로 "내 뼈를 옮기는 자는 저주받을 것이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폭풍>을 마지막 작품으로 완성하고 셰익스피어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616년 몸져누웠다. 그의 생애와 함께 흘러왔던 모든 것, 그가 이룩했던 모든 것이 절대적 단절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이 먼 미래까지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한번 쓰고 고치는 법이 없었던 창작과 달리, 고칠 때마다 새로 작성한 유서가 무려 134통이나 되었다. - P83

로마인들이 배스를 건설한 것은 기원후 60년이었으니, 그들의 열정은 거의 2천 년의 세월을 건너와 나를 불가항력적인 감탄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로마제국은 대략 기원전 50년부터 5세기 동안 브리튼을 지배했다. 그들이 로마의 군대보다 훨씬 더 잔혹했다. 마을을 불태우고, 산과 들과 강을 피로 물들였다. 브리튼인들은 로마에 구원을 요청했지만, 로마제국은 제 앞가림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샘의 족장들은 제각기 왕국을 건설하여, 브리튼에 일곱 개의 왕국이 생겨났다. 이른바 ‘앵글로 색슨 7왕국’이다. 브리튼 사람들이 로마에 구원을 요청한 것을 보면, 그들은 로마제국에 대해 공포와 존경이 뒤섞인 양가적 감정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 P107

로미오는 자신을 순례자로, 줄리엣을 성자로 비유하며 손을 잡고 입을 맞춘다. 그렇지만 그가 사용하는 종교적 이미지들은 말 그대로 베일일 뿐이고, 이들의 행동과 말에는 자연적 세계관이 더 깊이 침투해 있다. 이 세계관으로 보면,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그들의 욕망은 자연의 의지 또는 본성일 뿐이다.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시대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던 이 세계관은 심리적 층위와 제도 및 관습적 층위 사이의 충돌을 조장하며 등장인물들의 말투에 역설과 모순을 주입한다. - P200

전쟁 속의 사랑을 이만큼 사실적으로 다룬 작품이 또 있을까? 셰익스피어는 두 남녀의 사랑을 참담한 역사적 현실 속에 던져두고 냉정하게 관찰했다. 이러한 태도는 ‘비극’이라는 미학적 전형까지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셰익스피어의 투철한 현실주의와 빛나는 실험 정신이 런던의 극장가에서 환영받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대중은 냉혹한 현실 속에서 난파될 수밖에 없는 사랑 따위는 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 P238

테리 이글턴의 말을 들어보자.
"셰익스피어의 대담한 말장난, 비유와 생략은 의문을 불러일으킬 만큼 위협적이다. 사회적 안정에 대한 그의 신념은 발화되는 바로 그 언어에 의해 위협받는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에게는 글쓰기의 행위 자체가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 불화하는 인식론(또는 지식이론)을 함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몹시 당혹스러운 딜레마이며, 셰익스피어의 연극 대다수가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전략들을 이해하는 데 바쳐졌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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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2)

그래서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좋은 품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갈고닦아야 하고, 의로운 기상은 언제나 얼굴에 드러난다.” 그렇다. 손톱을 보면 그 사람의 청결함이 드러나고, 체형을 보면 그 사람의 생활 패턴이 드러나고, 성격은 얼굴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처럼 작은 습관과 태도 속에서 사람의 깊이가 드러나는 법이다.


(24)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화가들이 그리는 용은 마치 귀신 그림 같아서, 머리는 무섭고 꼬리는 뱀처럼 묘사된다. 그런데도 용을 실제로 본 사람이 드물다 보니 사람들은 그럴 듯 하다고 믿어버린다. 그렇게 사람들은 진실을 보지 못하고, 허망한 이미지에 쉽게 현혹된다. 하지만 청나라 화가 정공이라는 사람은 그런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진짜 용의 모습을 그리고자 애썼다. 비늘 하나, 눈동자 하나까지도 생생하게 묘사한 그의 그림은 마치 금방이라도 하늘로 솟구칠 것처럼 느껴졌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보다 밀실에서 조용히 그려야 할 정도로 귀했다. 그림이란 작은 기예일 뿐이지만, 그 곳에 진실과 정신이 담겨 있다면 세상을 바르게 표현할 수 있지 않겠는가.”


(30-31)

정약용은 말했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안타깝도다. 주머니 속처럼 좁고 막힌 곳에 살아 삼면은 바다, 북쪽엔 높은 산택이 가로막혀 몸도 마음도 늘 펼 수 없다. 개인이 가진 뜻이나 이상도 펼치기 어렵고, 공자 맹자 같은 성현들의 가르침도 현실과는 너무 멀게 느껴진다. 이 어두운 세상을 밝혀줄 이는 누구인가.” 정약용은 조선 시대의 현실에 대한 탄식과 함께, 그 안에서 도덕과 이상을 펼치기 어려운 환경을 안타까워했다. 글을 읽으며 안타까웠던 것은 옛날에는 정말 몰라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면, 오늘날은 새로운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음에도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옛날이나 현대나 미래나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든, 어떤 말을 하든, 누군가는 비난하고 또 누군가는 좋아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 이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나만의 기준과 그만한 그릇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마땅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있고, 물러나야 할 자리가 있다. 벼슬이 아무리 높아도 그릇에 맞지 않으면 오히려 해가 된다.”


(35)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자연은 모든 것이 제때를 만나 기쁨을 누리는데, 나만은 어쩐지 앞이 막막하게 느껴진다. 나는 대체 무엇을 기다리며 이렇게 멈춰 있는가? 물질적 욕심이나 세상의 기준을 벗지 못한다면, 어찌 뜻을 크게 품고 분발할 수 있겠는가. 백 년 인생 안에서 뜻을 펼치지 못하고, 이 몸 하나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는데, 결국 자신을 잘 다스리는 것이 곧 세상을 다스리는 일이다. 그러니 함부로 남을 탓하기만 할 수 있겠는가.” 정말 그렇다. 성장하는 사람은 탓하는 대신, 자신의 태도와 삶을 먼저 다스린다.


(43)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다산에서 연못을 파고 대를 쌓으며 밭농사에 마음을 다한 것은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디 내가 그 일을 좋아해서였다.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내 것’, ‘네 것의 구분은 없다.”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일을 남에게 미루지 않는다.


(47)

정약용은 말했다. “큰 그릇이 되려면 반드시 용광로의 불에 들어가고, 망치질을 여러 번 견뎌야 하는 법이다.” 쉽게 만들어진 그릇은 쉽게 깨지는 법이다. 반면에 불과 망치를 견뎌낸 그릇은 단단하고 오래 가게 되어 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처음에는 순조롭게 흘러가던 일이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부딪히고, 그 고비가 길어지면 마음은 쉽게 지치게 된다. 하지만 그 시련이 곧 나를 단련하게 시간일 수 있다. 단지 결과가 늦게 오는 것일 뿐, 결코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55-56)

정약용은 말했다. “마음속 뜻이 천박하고 저속하면, 아무리 억지로 그럴듯하고 고상한 말로 꾸미려 해도, 그 안에서 제대로 된 조리가 생겨나지 않는다. 또한 생각이 편협하고 비루하면, 아무리 화려한 말로 치장한다 해도 사물의 진실한 정황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게 된다. 그렇기에 시를 배우는 사람이 그 안에 담긴 을 헤아리지 않는 것은, 썩은 땅에서 맑은 샘물을 길어 올리려는 것이며, 악취 나는 가죽나무에서 향기로운 냄새를 얻으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자세로 평생을 시에 힘쓴다 해도, 얻을 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늘이 인간 사이의 이치, 그리고 사람의 타고난 본성과 목숨, 운명의 원리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인간 안에 있는 바르고 순수한 마음과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흔들리는 마음을 잘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삶 속에서 생긴 혼탁하고 거친 감정이나 욕심들을 깨끗이 비워내, 본래 맑고 참된 마음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66-67)

정약용은 <다산시문집>에서 이렇게 말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신중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주 자신을 과소평가라고, 스스로를 업신여긴다. 그래서 말이 막 나가거나, 아무렇게나 사람을 칭찬하거나 헐뜯고, 생각 없이 억누르거나 부추기면서, 결국 그로 인해 사람의 명예와 이익이 크게 엇갈리게 되는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지위를 허락하면 그 책임은 나 혼자만 질 수 있지만, 오히려 자격 있는 사람을 배척하면 그 해악은 결국 다른 이들에게까지 번지게 된다. 더구나 은혜와 원한은 한마디 말에서 생기기도 하고, 재앙과 복도 때로는 단 한 글자의 문장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그러니 사리에 밝은 선비라면 이 점을 깊이 새기고 늘 경계해야 한다.”


(77)

정약용은 또 이렇게 말했다. “예전 친구들 가운데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있으면, 어떤 사람들은 그 친구를 부귀해진 사람으로 여기고 괜히 주눅이 들어 그 집을 찾아가는 것조차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이는 내가 부끄럽거나 그 사람을 나쁘게 여겨서가 아니라, 실제로는 간사한 자들의 이간질 때문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비록 가난하고 평범하며 세상 돌아가는 일에 둔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혹은 설사 지위가 높다 해도 결국은 조용히 살아가는 늙은 선비일 뿐이다. 그런 우리라도, 어떤 이의 글과 말이 본받을 만하다면 어찌 그를 찾아가 교류하지 않겠는가? 결국 중요한 건 지위가 아니라 그 사람의 됨됨이다.”


(89)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모든 비방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법이다. 경솔하고 무지한 무리들이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면 잠시 떠들다가도 금세 잊어버리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내가 그 비방을 듣고 일일이 사람들에게 해명한다면, 한 사람이 두 사람에게, 두 사람이 수백, 수천 명에게 전해질 것이니, 어찌 어리석은 짓이 아니겠는가? 또한 한 숟갈 밥으로 사람이 살이 찌거나 마르리라 믿는 이는 없다. 그런데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하는 자리에서, 단지 미친 자가 퍼뜨린 한마디 험담에 마음이 무너지고 낙심한다면, 어떻게 기틀을 바로 세우고 큰 뜻을 펼 수 있겠는가?


(98-99)

정약용도 이렇게 말했다. “혀 때문에 죽고, 혀 때문에 살며, 혀끝에서 싸움이 일어나 소리도, 자취도 사라진다. 이 모든 것은 말이 절제되지 않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아주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고 되풀이되어 온 잘못이다. 입은 재앙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말은 칼보다 날카롭다고도 한다. 칼은 상처를 내도 시간이 지나면 흉터로 아물 수 있지만, 말로 인한 상처는 보이지 않아 더 오래 간다. 그래서 말은 마음을 전하는 도구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무기임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진심을 담았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내가 옳다는 확신만으로 말의 칼날을 휘두를 때가 많다. 그러나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날카롭게 내뱉는 순간 진실은 전달되지 않고, 상처만 남는다.


(99-100)

정약용은 말했다. “사람에게 말할 때는 반드시 공손하고 부드럽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옳은 말이라도 남이 기분 나빠하고 듣지 않게 된다.” 정약용의 말처럼 말의 방식은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따뜻한 말은 상태의 마음을 열게 하지만, 날 선 말은 마음을 닫게 한다. 늘 이쁨을 받는 사람들은 이 점을 안다. 그래서 말에 날을 세우기보다 다정함을 품는다.


(110)

그래서 정약용은 허물을 고치는 자는 허물이 없는 사람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누구나 허물을 고칠 수는 있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실제로 행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요한 건 넘어졌는지가 아니라, 다시 일어났는가 이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쳐나가는 태도, 그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담담히 고쳐나가자.


(115-116)

정약용은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는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좁은 세상만을 본다면, 항아리 속 쉬파리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짐승이 사람을 볼 때 모두 비슷하게 보이듯이, 대체 누가 어리석고 누가 현명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저기 나는 두 마리 백로를 보게나, 그들 사이에 누가 더 낫고 못한지 어찌 알겠는가. 한마디 말로 사람을 정하고, 한 번의 실수로 사람을 버리는 일, 어리석도다.”


(134)

정약용은 말했다. “다른 사람을 끌어와 자신과 비교하지 마라. 모기나 풀과 나무도 모두 한 생애를 산다. 인생이 굽이치고 돌아간다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복잡한 산세도 깊은 골짜기를 품기에 적당하듯, 모든 일에는 제자리가 있다. 본질 없는 자랑은 허망하다.”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 그러니 비교하고 칭찬을 받으려 애쓰기보다, 자신의 삶을 선택하자. 본질이 없는 자랑의 끝에는 허망함만 남을 테니 말이다.


(153)

정약용은 이런 말을 했다. “나아가는 것이 옳다면 나아가는 것을 공손함으로 삼고, 나아가지 않는 것이 옳다면 나아가지 않는 것도 공순함으로 삼아라.” 그러면 그 옳은 곳이 곧 공손함이 맞는 곳이다. 공손함이란 단지 겸양하거나 비굴한 태도가 아니라, 바른 판단을 기준 삼아 신중하게 행동하거나 멈추는 태도라는 말이다.


(188-189)

정약용은 비밀을 지키는 방법과 근신의 자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남이 알지 못하도록 하고 싶으면 행위를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남이 듣지 못하도록 하고 싶으면 말하지 않는 것만한 것이 없다. 이 두 구절의 말을 평생 동안 몸에 지니고 있으면, 위로는 하늘을 섬길 수 있고 아래로는 집안을 보존할 수 있다. 세상의 재물과 근심거리, 또는 천지를 뒤흔들 만큼 크고 무거운 죄악은 사람의 몸을 해치고, 가문을 망하게 할 일들은 대부분 몰래 감추고 하는 일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무슨 일을 하거나, 무슨 말을 하든 반드시 깊이 생각하고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만약 이 글이 사거리의 번화가에 떨어져 있어 원수진 사람이 열어보더라도 나에게 죄가 없을 것인가라고 생각하고, 이 편지가 수백 년 뒤까지 유전되어 허다한 식별력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져도 나에게 비난이 없을 것인가?라고 생각한 뒤에 쓰고 밀봉해야 하니, 이것이 군자가 근신하는 태도이다. 나는 젊은 시절에 글씨를 빨리 썼으므로 이런 실수를 많이 했다. 중년에는 뒷일이 두려워 점차 이 법도를 지켰더니, 매우 유익하였다. 이 점을 명심하라.”


(201)

삶의 깊이는 겪은 만큼 깊어지고, 앎의 밀도는 직접 부딪힌 만큼 단단해진다. 큰 뜻을 품었다면 남의 말로는 세상을 배우려 하지 말고, 자신만의 걸음으로 그 길을 걸어야 한다. 그러다 넘어질 수도 있고, 진흙탕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당신을 진짜로 만들어준다. 두려움은 해보지 않아서 생기고, 용기는 해본 사람에게만 생긴다. 삶은 결국, 맛본 자만이 제대로 누릴 수 있다.


(222)

정약용은 말했다. “잡념이 생기면 휘저어 보내라. 다시 떠오르면 또 휘저어 보내라. 그래도 떠나지 않으면 억지로 쫓지 말고, 그냥 두어라. 그것이 곧 다스림이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잡념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떠오르는 생각을 억누르지 않고 흘려 보내거나 그대로 둘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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