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폴 오스터 : 항상 손으로 글을 씁니다. 대개 만년필을 쓰지만 종종 연필도 씁니다. 고쳐 쓸 생각이 있을 때는 연필로 쓰지요. 타자기나 컴퓨터에 직접 글을 쓸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자판은 제가 글을 쓰는 것을 늘 방해합니다. 자판 위에 손가락을 얹으면 명징하게 생각할 수 없어요. 그런 점에서 펜은 훨씬 더 원시적인 도구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말이 몸에서 흘러나오고, 그 말들을 종이에 새겨넣는 과정을 느끼는 것이지요. 늘 글쓰기는 촉각적인 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육체적인 경험이라고 해야겠지요.


(156-157)

폴 오스터 : 저는 항상 스스로에게 되돌아가는 책에 이끌렸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저를 책의 세계로 이끌어간 책에 이끌렸습니다. 비록 그 책이 저를 세상으로 데려가긴 했지만요. 말하자면 원고 자체가 주인공인 셈이지요. <폭풍의 언덕>은 그런 종류의 소설입니다. <주홍 글씨>는 또 다른 예입니다. 물론 틀은 허구적이지만 그것은 이 이야기들에 근거와 신빙성을 줍니다. 전통적인 형식의 이야기들은 작품을 실제라고, 이 소설에 사용된 틀은 작품을 환상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듭니다. 그리고 일단 소설 속에 일어난 사건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게 만들면, 그 비현실성이 역설적으로 이야기의 진실성을 높입니다. 말들은 보이지 않는 작가인 신에 의해 돌 위에 새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살과 피를 가진 사람들의 노력을 재현하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매우 매혹적입니다. 독자는 이야기에서 거리를 두고 관찰하기보다는 이야기 전개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이 됩니다.


(177-178)

폴 오스터 : 잘 모르겠네요. 이제 저는 오십 대에 접어들었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많은 것이 변하더라고요. 신간이 훌쩍훌쩍 흘러가 버리기 시작하고, 살아온 삶이 남은 삶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몸이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하고, 전에 통증을 느끼지 않던 부위에 통증과 고통을 느끼게 되고, 사랑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죽기 시작했어요. 나이가 오십 쯤되면, 우리 모두는 귀신에 씌인 것처럼 살게 되지요. 귀신이 우리 안에 살면서, 산 사람들에게 하는 것만큼 죽은 사람들에게도 이야기를 하지요. 젊은 사람들은 이런 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스무 살 먹은 젊은이라고 해서 자신이 죽을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른 사람의 죽음은 나이 든 사람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요. 자신에게 이런 상실이 계속해서 쌓이는 것을 직접 겪기 전까지는 그런 일들이 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인생은 너무나 짧고 너무도 연약하고 너무도 알 수 없지요. 결국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정말로 사랑하는 걸까요? 정말로 몇 사람뿐이겠지요. 몇 명 되지 않을 거예요. 이 사람들이 대부분 죽고 나면 당신의 내적 세계의 지도는 변할 겁니다. 제 친구 조지 오펜은 늙는 것에 대해 제게 어린아이가 늙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기인한 일인가.”라고 말한 적이 있지요.


(228)

이언 매튜언 : 저는 종종 모든 문장이 그 자체의 과정에 희미한 해설을 담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 느낌이 항상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당신이 이 느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기껏해야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지시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며, 언어가 한 사람의 정신으로부터 다른 사람의 정신으로 생각과 느낌을 전달할 때 언어의 감각적이고 정신에 감응하는 능력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279)

필립 로스 : 일반 독자에게요? 소설은 독자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하지요. 기껏해야 작가는 독자들이 책을 읽는 방식을 바꿀 뿐입니다. 이것이 제가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또한 충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소설을 읽는 것은 깊고 독특한 기쁨이며, ()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정치적 정당화를 요구하지 않고 흥미롭고 신비로운 인간 활동입니다.


(348)

레이몬드 카버 : 좋은 소설은 부분적으로는 한 세상의 소식을 다른 세상으로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그 목적 자체로 훌륭해요. 하지만 소설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거나 어떤 사람의 정치적인 입장을 바꾸거나 혹은 정치체제 자체를 바꾸거나 고래나 레드우드 나무를 구하거나 하는 것은 못합니다. 당신이 이런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말이에요. 그리고 소설은 이런 어떤 것과도 관계가 없다고 생각해요. 소설은 뭔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소설은 단지 그것에서 얻는 강렬한 즐거움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뭔가 지속적이고 오래하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어떤 것을 읽는 데서 오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지요. 아무리 희미할지라도 계속해서 불타오르는 이런 불꽃을 쏘아 올리는 어떤 것이랍니다.


(375)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글쓰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조심스럽게 행해지는 일은 모두 다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글쓰기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란 저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과도하게 요구하는 편입니다. 완벽할 때까지 글을 써야 하는 것 역시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종종 과대망상증에 걸려 있어서 자기들이 세계의 중심이며 또한 사회적 양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가장 숭앙하는 것은 아주 잘 마무리한 글입니다. 여행을 할 때 조종사가 작가로서의 제 수준보다 나은 수준의 조종사라는 것을 알게 되면 무척 기쁩니다.


(384-385)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주요한 이유는 명성이 개인적인 삶을 침해아기 때문입니다. 명성은 친구들과 같이 있는 시간,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앗아가지요. 명성은 사람들을 진짜 세계로부터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글을 계속 쓰기를 원하는 유명한 작가는 명성으로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지켜야만 합니다. 진심으로 들리지 않을 테니 정말로 말씀드리고 싶지 않지만, 명성이라거나 위대한 작가가 되는 것과 관련한 많은 일을 겪지 않도록, 제가 죽은 뒤에 제 책이 출판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제 경우에 명성과 관련한 유일한 이점은 명성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명성은 상당히 불편합니다.  문제는 하루 24시간 내내 유명하기 때문에, ‘, 난 내일까지 유명하지 않을 테야.’라거나 단추를 누르면서 난 지금 여기서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422)

어니스트 헤밍웨이 : 맞습니다. 만일 작가가 관찰하는 것을 멈춘다면 그는 끝장난 것이지요. 그러나 의식적으로 관찰할 필요는 없으며 관찰한 것을 어떻게 쓸 것인지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맞을 거예요. 그러나 나중에는 그가 관찰하는 것 모두가 그가 알고 있거나 본 것들로 이루어지는 거대한 자산이 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항상 빙산의 원칙에 근거하여 글을 쓰려고 애썼습니다. 빙산은 전체의 8분의 7이 물속에 잠겨 있지요.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안 쓰고 빼버린다 해도, 그것은 빙산의 보이지 않는 잠겨 있는 부분이 되어 빙산을 더 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작가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여 안 쓰는 것이라면 이야기에는 구멍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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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이 기대도 받고 논란도 일으키고 있지만 이 사업으로 인해 드디어 우리나라 농어촌에도 숨통이 트이고 희망이 생겼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우리 농어촌은 역사 이래로, 특히 산업화 이래 소외와 착취와 배제의 대상이었다. 2000년 이후 본격적인 농어업, 농어촌 정책들이 추진되었지만 성과보다 부작용이 훨씬 컸던 제 사실이다.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에도 불구하고 농어촌지역은 인구감소가 더욱 격화되어 감소를 넘어 인구 멸절의 상황에 접어들고 있다. 농어촌의 소멸은 단순히 인구의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류의 생명과 지속성의 소멸을 의미한다. 농어촌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는 인류의 생존은 지속될 수 없다. <녹색평론> 발행인이자 기본소득론자였던 고 김종철 선생님이 평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그런 일을 하는 농부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14)

부동산 세제에서 가장 중요한 세금은 무엇일까? 보유세다.왜냐하면 보유세가 지대(임대) 수입을 일정부분 환수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부동산 가격을 낮추고, 결과적으로 시세차익의 규모를 줄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양도소득세를 높이는 경우에는 투기목적으로 보유한 부동산을 안 팔고 버틸 수 있고, 또 가격 상승기에는 가격을 떠넘길 수 있지만, 보유세를 강화하면 버티기도, 떠넘기기도 불가능하다. 보유세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한데, 그러나 2023년 현재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0.15%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인 0.33%의 절반 이하이며, 30개중 중에서 20위에 머물러 있다. 상위권 국가들(이스라엘 1.24%, 그리스 0.94%, 미국 0.83%)과 비교하면 5~8배 현저한 격차를 보인다.


(18)

국민주권정부인 이재명 정부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만든 정부인가. 인류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항쟁, 길게 보면 3, 짧게는 6개월 동안 더위와 추위, 비바람을 무릅쓰고 광장으로 나온 위대한 주권자 국민들의 항쟁으로 만든 정부다. 전 세계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회복력에 놀라워하고 부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한국사회 구성원들에게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미래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자연스럽게 생겨나야 한다. 그래서 부동산이다. 당장 큰 변화가 없더라도 국민들에게 이렇게 몇 년 지나면 나도 주거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겠구나하는 전망을 줘야 한다. 그래야 청년과 신혼부부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지방도 살아날 수 있다.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면 한국사회의 수많은 개혁과 추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부동산 문제 해결에 나라의 존망이 걸려 있다고.


(20)

초고령사회 문턱을 넘은 대한민국에서 나이 듦은 더 이상 소수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마주한 거대한 질문이 되었다. 그 질문의 한가운데에 노인은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자리한다. 시가 8억이 넘는 아파트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노인의 비극은, 이 질문이 단순히 주거빈곤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은 가졌을지언정, 사회적 관계망이 단절된 채 고립된 삶은 존엄한 노후라 부를 수 없다.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고령 1인 가구는 급증하고 있으며, 이들의 일상은 외로움과 돌봄 공백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48)

앞으로 수년 이내에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세계의 환경을 과열시킴으로써 불러온 위기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 것 같다)가 우리에게 닥쳐올 때, 인류는 다만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지난 500년 동안 지구를 지배해온-그리고 기후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인-정치와 경제 시스템을 둘 다 포기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자본주의와,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성정해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근본원리, 그리고 이것을 지지하고 보호하는 국가시스템은 물러나고, 규모가 작고 오염을 일으키지 않으며 공격성이 없는 사회들로 구성된 세계가 들어서야 할 것이다. 이 사회들은 자원을 많이 소비하지 않고, 인간적인 규모의 자치정부로 유지될 수 있다.


(63-64)

이렇게 인류 대다수가 바라는 일을 어찌하여 각국을 대표하는 자들이 모인 국제회의는 의결하지 못하는 것일까. 기대와 결과의 간극은 충격적일 정도로 크다. 지구 주민들은 이미 지구의 이익이라는 원리를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발언할 수 있는 공적인 공간이 있는가? 가끔 실시되는 여론조사 외에 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는가? 아무 데도 없다! 그러니까 다자주의 외교가 기후에 관한 대화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편파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재계나 산업계는 물론이고, 큰 시민사회단체들도 COP 협상가들과 만날 기회가 있지만 수십억 명의 보통사람들은 바로 자기자신의 미래가 달린 문제에 대해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


(82)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트럼프의 이번 결정이 즉흥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APEC 회의가 열리기 전인 8월에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한미 정상회담 주의제는 관세협상이었으나, 어쩌면 그보다 더 중대했던, 관세협상에 종지부를 찍게 만든 것은 한국 핵잠수함 건조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에 관한 합의였을 가능성이 있다. 관세협상이 타결됨으로써 핵잠수함 승인과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가 타결됨으로써 관세협상도 마무리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물론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93)

이스라엘은 2025 9 9일 사전 통보도 없이 하마스 지도부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카타르 수도 도하 소재의 하마스 건물을 탄도미사일로 공격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카타르의 반발에 놀란 미국은 서둘러 카타르 안보 보장을 약속하였고, 사우디아라비아를 주요 비나토 동맹국으로 받아들였다. 카타르 공습이라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 이스라엘은 미국의 강권으로 어쩔 수 없이 10 8일 하마스와 기자 휴전에 합의했다. 휴전은 3단계로 나뉘어 진행 중이지만, 휴전 이후에도 가자 주민이 무려 300명 이상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113-114)

2025 11 8일 오전 10, 산황동 417번에 우리는 모였다.

청량한 산소를 내쉬는 나무들 사이에서

생명의 종을 울리기 위해.

경종이며, 다시 시작하자는 초대의 울림이다.

우리는 나무와 새, 흙과 비와 바람의 이름으로

이 땅의 민주주의를 다시 부른다.

민주주의는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지상의 모든 존재에게 참여할 권리가 있음을 알린다.

생존 네트워크의 형제자매인 숲 생명들.

우리는 그들의 권리를 대신해

종을 들었다.

오늘의 종소리는

한 그루 나무, 한 마리 새, 한 송이 꽃, 한 조각 차돌의 소리다.

개발이라는 미명, 경제라는 사탕발림으로 생태민주주의의 목에

도끼를 대는 자들이여, 함께 살아가자.

벨 데모크라시

폭력이 아닌 울림으로,

침묵이 아닌 공명으로,

학살 방조가 아닌 생명 껴안기로,

파괴가 아닌 회복으로 세상을 움직일 것이다.

-       벨 데모크라시 선언문


(154-155)

우리가 집단적으로 인간으로서의 목적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병든 사회가 맞습니다. 인류는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자기자신을 학대하고 공격하는 사람을 우리는 정신적 장애가 있다고 진단하잖아요. 우뇌가 가능하지 않는 사회는 기계적, 관료적으로 과부하가 걸리게 됩니다. 감정이나 영적 측면에 대한 이해는 극히 피상적인 것이 되고, 예술은 기괴한 모습을 띠게 됩니다. 물론 나는 지난 세기의 미술이나 음악, ()가 모두 끔찍하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내가 아는 최고의 예술작품도 그 시기에 나왔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우리의 우뇌가 기능을 아예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거예요. 비유하자면, 우리가 라디오 수신기를 하나 샀다고 해봅시다. 처음에는 신이 나서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보지만 결국 두어 개 방송밖에 안 듣게 될 거예요. 그러나 내가 수신을 하지 않는다고 다른 채널들에서 방송을 안내보내는 건 아니잖아요. 이것솨 똑같아요. 우리는 얼마든지 우뇌가 제공하는 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157-158)

우뇌는 실재하는 것과 직접 접촉하지만, 좌뇌는 사물을 유형으로 나누어 분류하고 재현합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가짜의 세계를 인식하는 거예요. 시인 워즈워스가 바로 그것을 지적했어요. 자신이 소년이었을 때에는 산들이 말을 걸었고, 폭포, , 나무와 대화할 수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살아있는 존재들을 그 표상이 대신하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좌뇌가 지배하는 우리 문화는 우리의 인식 속에서 그런 살아있는 존재들을 모두 제거했고, 그래서 우리는 극히 빈약한 세계에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177-178)

며칠 전 서울에 가는 길에 지하철을 탔다. 퇴근시간이어서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두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일이 점점 낯설어지고 있다. 문자만 오갈 뿐, 얼굴도 목소리도 사라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미디어가 깊숙이 들어와버린 것이다. 전화기가 발명되었을 때만 해도 얼굴은 보지 못해도 목소리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덕분에 관계의 폭이 오히려 넓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문자의 시대다. 과연 문자메시지가 눈빛과 온기를 대신 할 수 있을까. 관계는 약해지고 외로움은 더 깊어지고 있다. 협동은 제도나 계약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나누며 관심과 책임을 공유할 때 비로소 우리가 생긴다. 관계가 무너지면 협동도 설 자리가 없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복잡한 정책과 이론이 아니다. 미디어 대신 사람에게 시선을 돌릴 때, 새로운 협동의 씨앗이 싹튼다.


(194)

우리는 아이들이 그들의 삶의 테두리를 넘을 수 있게 돕고자 했다. 농촌마을과 생명, 자연의 신비로움을 되새겨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했다. 가게가 없어서 간식을 사 먹기 어렵고, 문화적 혜택도 전무하며, 부모와 떨어져서 낯선 할머니 집에서 생활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아이들이 이곳에서 지내는 것을 행복해하고 도시로 돌아가기 싫어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참새 소리에 아침을 맞고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시골마을, 공동체의 진가를 오히려 도시 아이들이 농촌 주민들에게 알려주는 듯하다. 아이들은 안다. 온몸으로 느낀다. 인간의 삶에서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행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렇게 아이들은 자유롭고 자존감 높고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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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 - 뜨겁게 사랑하고 단단하게 쓰는 삶 일러스트 레터 3
줄리엣 가드너 지음, 최지원 옮김 / 허밍버드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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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얼마 전에 <제인 에어>를 재미있게 읽고 나서 지은이 샬럿 브론테와 자매들에 대해 검색을 해보다가 그들의 슬픈 가족사를 알게 되었어. 여섯 남매가 태어났으나 둘은 어렸을 때 죽고 넷은 성인까지 자랐으나 모두 요절하고 말았다는 이야기. 아내도 일찍 죽고 아이들도 모두 요절하고 홀로 남은 늙은 아버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루 상상하지도 못할 것 같구나. 브론테 자매들의 작품들도 궁금했지만 그들의 삶이 더 궁금했어. 그들의 슬픈 가족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것도 있지만, 어떤 생활을 했기에 그 당시 세자매 모두 작가가 될 수 있었는지 말이야. 그래서 인터넷 서점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책이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할 <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라는 책이란다. 그들이 남긴 편지와 기록들을 통해서 그들을 삶을 돌아보는 그런 책이란다.

책 제목에 있는 폭풍의 언덕은 에밀리 브론테의 너무나 유명한 소설 제목이란다. 아빠도 오래 전에 읽었는데 줄거리만 문체가 좀 세다는 기억만 조금 남아있구나. 폭풍의 언덕이란 제목이 그들이 살았던 곳에서 유래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 그럼, 그들의 안타까운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1.

그들의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어렸을 때 책을 좋아했는데 그것이 동네 목사의 눈에 띠어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었고, 부목사가 되었대. 나중에 커서 영국으로 건너와 목사가 되었고 말이야. 결혼은 당시 나이 치고는 늦은 나이인 35살에 했는데 아내인 마리아도 29살로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였대. 그들은 여섯 명의 아이를 낳고 하워스로 이사를 갔어. 그런데 아내 마리아가 병에 걸려 1821 9 38살에 어린 아이들을 남기고 눈을 감았단다.

첫째 마리아가 열 살도 채 안 되었는데 그 밑으로 다섯이나 더 있었으니 패트릭 혼자 감당하기 힘들었을 거야. 그래서 알고 지내던 여자에게 청혼했지만 거절 당했단다. 아이 여섯 달린 홀아비의 청혼을 승낙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 천사 아니고서야패트릭은 결국 딸들을 코완브리지라는 기숙학교로 보내기로 했어. 첫째 마리아, 둘째 엘리자베스, 셋째 샬럿, 다섯째 에밀리를 코완브리지에 보냈단다. 넷째 브랜웰은 아들이라서 집에 있었고, 막내 앤은 너무 어려서 집에 있었어.

그런데, 코완브리지 기숙학교는 시설이 그리 좋지 않았어. 위생 시설도 안 좋고 아이들 관리도 엉망이었어. 샬럿은 이 학교의 경험을 나중에 소설 <제인 에어>에서 로우드 학교의 모델로 삼았단다. 코완브리지 학교의 청결하지 못한 위생 상태 때문에 전염병에 쉽게 노출되었고, 1825년 첫째 마리아는 11살 때, 둘째 엘리자베스는 10살 때 연이어 폐결핵으로 죽고 만단다. 이에 충격을 받은 아버지 패트릭은 샬럿과 에밀리를 집으로 데리고 왔단다.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이후 식구들은 거의 집에서만 지내면서 가정교육이나 책으로 공부했어. 이모 엘리자베스 브랜웰이 자주 와서 보살펴 주었고, 집안일은 50대 나이 지긋한 하녀가 도맡아 하고 있었어. 아버지는 아이들과 집에 있으면서 아이들과 시사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기도 하고 신문과 정기간행물을 구독해서 아이들에게 읽히게 하고 서로 토론하기도 했단다. 사교 활동도 거의 안하고 집에서 주로 집에서 지내는 그들에게 교회와 주일학교에 나가는 것이 거의 유일한 사교활동이었어. 그렇다고 그들이 집에서 지루하게 보내는 것은 아니야. 그림도 그리고 그들만의 상상 속 왕국을 만들어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놀았단다. 이런 놀이들이 향후 그들이 소설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 그들이 그린 그림들 중에 아직도 남아 있는 그림들이 많고 이 책에도 많이 실려 있단다. 아빠가 그림을 잘 못 그려서 그런지 몰라도, 그들의 그림 솜씨가 다들 좋았단다. 샬럿의 남동생이자 에밀리와 앤의 오빠인 브랜웰은 커서 화가로 활동하기도 했지.

십대 후반이 되어서 샬럿은 다시 학교에 갔는데, 로헤드라는 학교였어. 그 학교에서 사귄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이 이 책에서 소개해 주었단다. 나중에 샬럿은 로헤드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게 되었어. 18살이 된 브랜웰은 본격적인 미술수업을 받기 위해 왕립미술원에 가기로 했어. 하지만 런던에서 2주간 머물다가 다시 돌아왔어. 방황의 시기가 아니었나 싶구나. 에밀리도 샬럿이 있는 로헤드 학교에 갔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세 달 만에 집으로 돌아왔단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보면 글이 좀 거칠면서도 힘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 거침이 틀에 짜인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었나 보구나. 샬럿과 에밀리의 스승이었던 에제는 에밀리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모험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보면, 에밀리는 그의 글처럼 거친 면이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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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에제 씨는 에밀리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위대한 모험가가 됐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매우 논리적이어서 브론테 자매들의 철도 주식을 도맡아 관리했다. 이들은 브랜웰 이모의 유산을 모조리 철도에 투자했다. 샬럿은 1845년 울러 양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에밀리는 신문에 철로에 관한 기사나 광고가 나오면 빠뜨리지 않고 꼼꼼히 읽으며 그 일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습득해 왔어요. 게다가 우리는 도박성 투자를 하지 않고 단순한 추측성 매입이나 매도도 삼가고 있어서 수익을 꽤 올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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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들은 함께 일기소식지를 쓰면서 생각도 공유했단다. 일기를 함께 써나가는 것은 멋진 생각인데 너희들은 숙제 하느라 바쁘고 아빠도 이것저것 바쁘니 이런 것은 힘들 것 같구나.

에밀리와 앤도 나이가 들면서 사회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근처의 학교에서 교사 일을 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적응을 제대로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어. 1841 3월 샬럿은 이번에는 가정교사로 일하기 위해 리즈의 로던 지역으로 떠나고 앤은 요크쥬에서 가정교사 일을 했어. 이런 경험들이 <제인 에어>를 쓸 때 소설 속 제인 에어가 가정교사를 하는 부분에 도움이 되었겠구나. 그런데 가정교사 일도 쉽지 않았나 봐. 열악한 환경 탓으로 그만두고 다시 집으로 모였단다.

샬럿은 그래도 사회활동에 좀 적극적이었던 것 같아. 이모한테 부탁해서 샬럿과 에밀리는 벨기에 브뤼셀로 공부하러 갔단다. 당시 샬럿과 에밀리는 공부하기애 좀 많은 이십대 중반이었어. 그들은 나이도 어리고 문화도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했어. 오히려 그들은 선생님들의 눈에 띠었어. 그들의 학식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을 알고 학교에서는 그들에게 선생님 일을 겸하는 것을 제안했단다.

그런데 얼마 후 브랜웰 이모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집에 오게 되었단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자매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이모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들에게 큰 충격이었어. 장례식을 마치고 에밀리는 그냥 집에 머무르기로 했고 샬럿만 다시 브뤼셀 학교로 갔단다. 샬럿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는데 안타깝게도 그 대상이 유부남이었어. 예전에 스승으로 만나 알게 되었던 콩스탕탱 에제라는 사람인데 짝사랑을 하여 계속 편지를 보냈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에제는 선을 분명히 지켰다고 했어. 사랑은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오는데 그 사랑이 허락되지 않은 사랑이라 힘들구나.

 

2.

책은 에밀리가 시집으로 먼저 냈단다. 그 이후에 세 자매가 함께 시집을 내려고 출판사를 찾아 다녔지만 응답이 없었어. 아일럿 앤 존스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긴 했는데, 작가 자비로 출판한다면 해 준다고 했어. 브론테 자매는 그렇게라도 책을 냈단다. 하지만 여성 작가가 당시에는 약점일 수 있었기 때문에 남자 이름으로 된 필명으로 시집을 냈어. 하지만 그 시집은 실패하고 말았단다. 어떤 간행물에서 극찬을 한 경우가 있었으나, 판매량이나 인지도에서는 완벽한 실패였단다.

출판사에서는 오히려 시집보다 소설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단다. 그래서 샬럿은 <교수>라는 소설을, 에밀리는 <폭풍의 언덕>이라는 소설을, 앤은 <아그네스 그레이>라는 소설을 썼단다. 이 소설들을 본 아일릿 앤 존스 출판사는 일단 출판을 거절해서 다른 출판사를 돌아다녔고, T.C 뉴비는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과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만 출간하기로 했어. 그것도 작가에게 아주 불리한 조건으로 말이야. 이름 없는 신인 작가의 설움이라고 할까.

..

샬럿은 이어서 <제인 에어>를 집필했고 스미스 앤 엘더 출판사에서 출판을 했는데, 극찬뿐만 아니라 판매량에서도 크게 성공을 거두었단다. 하지만 샬럿이 이 책을 필명으로 써서 가족과 친구들도 몰랐다고 하는구나. 심지어 남동생인 브랜웰은 이 사실도 모르고 갑자기 병이 생겨 죽고 말았어. 브랜웰은 이십 대 들어서 술과 약물을 많이 했는데 그것의 후유증으로 일찍 죽었을 것이라고 하는구나. 샬럿의 아버지 패트릭도 샬럿이 <제인 에어>를 썼다는 사실도 성공한 다음에 알게 되었어.

샬럿이 성공한 이후에 사람들은 에밀리와 앤의 작품도 다시 보기 시작했어. 그래서 세 자매는 모두 인정 받는 작가가 되었고 이제서야 꽃길만 가게 될 줄 알았는데, 죽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앞서 이야기한 남동생 브랜웰이 죽은 것이 1848 10월이었고, 두 달 뒤인 1848 12월 에밀리가 폐결핵으로 죽고, 다음 해인 1849 6월 앤도 폐결핵으로 죽고 말았단다. 1년도 안되어 세 동생이 모두 죽고 샬럿은 혼자 남았으니, 삶이 무너지는 듯 했을 거야.

이제 그 하워스 집에는 샬럿과 늙으신 아버지 둘이 지냈단다. 샬럿은 깊은 상심을 글쓰기로 치유하려고 했어. 소설 <셜리>를 이 때 썼는데, <셜리>라는 소설에는 에밀리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한다고 하는구나. <셜리>라는 소설도 나중에 꼭 읽어봐야겠구나. 이제 샬럿은 성공한 작가로 대외 활동도 했단다. 런던에 가서 다른 작가들과 교류도 하고, 런던의 이곳 저곳을 여행하기도 했어. 이런 작가들의 모임에서 엘리자베스 개스펠을 만나게 되는데 엘리자베스 개스펠은 나중에 샬럿이 죽고 나서, 샬럿의 아버지의 부탁으로 샬럿의 전기를 쓰게 된단다.

샬럿은 예전에 동생들과 함께 썼던 시집을 재출간하는 작업도 했어. 그리고 동생들의 소설들도 재출간했어.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을 재출간하면서 서문은 샬럿이 직접 썼단다.

샬럿은 창작활동도 계속하여 <빌레트>라는 소설을 썼는데, 이것은 벨기에 브뤼셀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고 하는구나. 이 소설을 쓸 때는 잘 안 써져서 우울증을 겪기도 하지만, 출판 이후에는 호평이 이어졌다고 했어. 이 책은 아빠가 읽으려고 사두었는데, 이 책도 읽어봐야겠다. 그렇게 성공을 했지만 동생들을 잃은 슬픔은 여전했을 거야. 그런 샬럿에서도 사랑이 찾아왔단다. 아버지의 부목사인 아서 벨 니콜스가 청혼을 했어. 처음에는 샬럿이 아서의 청혼에 거절했지만, 편지를 계속 보내면서 자신의 마음을 전하자, 샬럿은 그제서야 청혼을 받아들였단다. 샬럿이 몸이 허약하고 나이도 적지 않아서 아버지가 반대를 했다고 하지만 결국 아버지도 설득하여 1854 6 29 38살의 나이에 결혼을 했단다. 아일랜드로 신혼 여행도 다녀왔어.

먼저 떠난 동생들의 행복까지 샬럿이 대신 살았으면 좋겠지만, 운명이라는 것이 참 얄궂구나. 결혼하고 나서 얼마 안되어 임신을 했는데 임신 중 병이 생겨서 그만 결혼한 지 9개월만 세상을 뜨고 말았단다. 샬럿의 나이는 서른여덟 살이었어. 아버지의 결혼 반대가 어쩌면 옳았던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모든 가족들은 모두 보내고 홀로 남은 아버지.. 어떤 삶의 의미도 없었을 것 같구나. 늙어서 거동도 불편했던 패트릭. 사위인 아서는 장인어른이 돌아가실 때까지 보살펴 드렸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브론테 자매들은 모두 하늘의 별들이 되었단다. 명작 몇 편만을 남기고 말이야. 그들이 평균적인 수명만 살았어도 더 많은 작품들을 남겨 아빠를 비롯한 오늘날의 독자들까지 읽는 즐거움을 더했을 텐데 말이야. 그래도 그들이 남긴 작품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참 다행이구나.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읽었지만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고, 앤 브론테의 <아그네스 그레이>도 한번 읽어봐야겠고, 샬럿 브론테의 여러 작품들도 꼭 읽어봐야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브론테는 자매들의 아버지인 패트릭 브론테는 이렇게 회고했다.

책의 끝 문장: 교회지기인 존 브라운에 따르면 니콜스는 샬럿의 유언대로 가족 중에 가장 오래 산 패트릭이 1861 6월에 여든넷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그를 돌보았다.


이 아이들은 교제를 원하지 않았다. 이들은 유치하고 떠들썩한 모임에 익숙하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이보다 더 단단하게 결속된 가족은 어디에도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들에게는 아동용 도서가 없었을 것이며,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영국 문학의 유익한 문장들 사이를 이리저리 누비고 다녔을 것’이다…… 이 집의 하인들은 놀랍도록 총명한 브론테가의 아이들에게 크게 감명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 P86

에밀리 브론테는 이때 벌써 우아하고 나긋나긋한 자태가 두드러졌어요. 아버지를 에외하면 가족 중에 에밀리의 키가 제일 컸죠. 샬럿처럼 선천적으로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지만 역시나 언니처럼 꼬불꼬불한 곱슬머리를 부스스하게 방치했어요. 피부색도 언니처럼 색소가 부족한 듯 창백했죠. 에밀리의 눈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어요. 부드럽고 초롱초롱하며 투명한 눈이었죠. 하지만 너무 내서적이어서 사람들 똑바로 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답니다. 눈동자는 때로는 짙은 회색으로, 때로는 짙은 파란색으로 보였어요. 말수는 동반자이자 가장 가까운 공명의 대상이었어요. 다른 누구도 그들 사이에 끼어든 적이 없었던 것처럼요. - P130

1843년 10월 14일 토요일 아침, 브뤼셀. 1교시 수업. 너무 춥다. 불도 없다. 아빠와 브랜웰과 에밀리와 앤과 태비가 있는 집에 가고 싶다. 외국인들 사이에서 지내는 데 지쳤다. 삶이 음울하다. 이 학교에는 호감을 품을 만큼 괜찮은 사람이 단 한 명뿐이다. 또 한 명은 장밋빛 설당 과자 같지만 실상은 색분필일 뿐이라는 걸 나는 안다. - P186

‘우리는 죽은 형제를 보이지 않는 곳에 묻었습니다.’ 샬럿이 1848년 10월 2일, 출판사에 보낸 편지 내용이다. ‘지난주의 우울한 소란이 잠잠히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이 망자를 애도하듯 그를 추모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남자 형제가 떠난 것은 우리에게 징벌보다는 자비의 빛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브랜웰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누이들의 자랑이자 희망이었지만, 성인이 된 후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그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죠. 옳은 길로 돌아오길 희망하고 기대하고 기다렸지만…… 결국에는 절망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대단한 성공을 거둘 수도 있었던 생명이 이른 나이에 갑작스레 빛을 잃고 종결되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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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난설헌의 본명은 초희(楚姬)이고 자는 경번(景樊)이며 난설헌(蘭雪軒)은 당호입니다. 초희는 미녀와 재원을 뜻함이고 경번은 중국의 여성시인 번희를 사모해서 지은 이름입니다. 난설헌의 난은 여성의 미덕을 찬미한다는 뜻이며 설은 지혜롭고 문학적 재능을 지닌 여성또는 고결하면서도 뛰어난 문재를 지닌 여성이라는 뜻으로 지은 당호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소망을 마음껏 담은 이름들이라 하겠습니다.


(27)

가을날 깨끗한 긴 호수는

푸른 옥이 흐르는 듯 흘러

연꽃 수북한 곳에

작은 배를 매두었지요.


그대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멀리서 남에게 들켜

반나절이 부끄러웠답니다.


(32)

사는 집이 장간리 마을에 있어

장간리 길을 오가며 살았었지요.

꽃가지 꺾어 님에게 묻기도 했었죠.

내가 더 예쁜가요, 꽃이 더 예쁜가요?


(40-41)

1

이웃집 벗님네와 내기 그네 뛰었어요.

띠를 매고 수건 쓰고 신선놀음 같았지요.

바람 차고 오색 그넷줄 하늘로 높이 오르자

쟁그랑 노리개 소리 버들에 먼지가 일었지요.


2

그네뛰기 마치고는 꽃신을 신었지요.

숨이 가빠 말도 못하고 층계에 섰어요.

매미 날개 배적삼에 땀이 촉촉이 스며

떨어진 비녀 주워달라는 말도 못 하고 말았지요.


(47)

자줏빛 퉁소 소리 붉은 구름 흩어지니

주렴 밖 찬 서릿발 우지짖는 앵무새

깊은 밤 비단 휘장 비추는 그윽한 촛불

때때로 성긴 별이 은하수 건너는 것 바라보아요.


또르륵 물시계 소리 서풍에 묻어오고

이슬 맺힌 오동나무 저녁 벌레 우는데

명주 수건으로 훔치는 깊은 밤의 눈물

내일이면 점점이 붉은 자국으로 남겠지요.


(48-49)

고요해요, 뜨락은. 살구 꽃잎 위에 봄비 내리고

나는 꾀꼬리, 백목련 핀 언덕에서 울어요.

수실 늘어진 비단 휘장에 꽃샘추위 스며들고

박산 향로에서 한 줄기 연기가 올라요.


어여쁜 사람 잠에서 깨어 화장을 고치니

향그런 비단옷 허리띠에 새겨진 원앙 무믜.

겹으로 드리워진 발을 거두고 비취 휘장 치고서

시름없이 은쟁을 잡고 한가락 봉황곡을 타지요.


금 굴레 잡고 안장 위에 계시던 내 님은 어디 가셨나?

다정한 앵무새만 둘이서 창가에 속삭여요.

풀섶에서 노닐던 나비는 뜨락을 날아 사라지고

꽃그네 줄 엮어 난간 밖까지 날아올라요.


어느 집 연못가에서 피리소리 들려오는가.

금 술잔 위로 요요한 달빛만 노니는데

시름 많은 아낙은 밤새 홀로 잠 못 이루어

날 밝으면 비단 수건에 눈물 자국만 가득하여요.


(55)

난간에 기대어 멀리 계신 님 그리워하니

말 타고 창 꼬나잡고 청해 물가를 달리시겠지.

휘몰아치는 모래와 눈보라에 갖옷은 해어졌을 테고

향그런 안방 그리워하며 눈물로 수건 적시겠지요.


(66)

공령 여울 어구에 내린 비 이내 개이고

무협의 어스름 안개 자욱해요.

한스러워라, 님의 마음도 저 물과 같이

아침에 나가더라도 저녁엔 돌아왔으면!


(76)

창가에 놓아둔 난초 화분

난초꽃 벙글어 향기 그윽했는데

건듯 가을바람 불어와

서리 맞은 듯 그만 시들었어요.


어여쁜 모습 비록 시들었지만

여전히 코끝에 맴도는 난초의 향기.

마치도 시든 난초가 나인 듯 싶어

흐르는 눈물 옷소매로 닦아요.


(80-81)

이웃집 살림은 날로 좋아져

높은 다락에 풍악 소리 일어나는데

또 다른 이웃은 입을 옷도 없고요

쑥대밭 어우러진 집 배곯고 있다네요.


그런데 어찌 짐작이나 했을까요.

하루아침에 높은 다락 기울어지고

오히려 가난한 집을 부러워해요.

하늘의 운명은 어떨 수 없는 일인가 봐요.


(85)

지난해 귀여운 딸을 잃었고

올해는 또 사랑하는 아들이 떠났네.

슬프고도 슬프다. 광릉의 땅이여

두 무덤이 나란히 마주 보고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에는 오슬오슬 바람이 일고

숲속에선 도깨비를 반짝이는데

지전 태우며 너의 넋을 부르며

너의 무덤 앞에 술잔을 붓는다.


안다, 안다. 어미가 너희들 넋이나마

밤마다 만나 정답게 논다는 것.

비록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하지만

어찌 제대로 자라기나 바랄 것이냐.


하염없이 슬픈 노래 부르며

피눈물 슬픈 울음 혼자 삼키네.


(98-99)

1

얼굴이며 맵시, 남들한테 빠지는 게 아니에요.

바느질에 길쌈 솜씨는 또 어떠하구요.

다만 어려서부터 가난한 집안에 자라난 탓에

중매쟁이들 모두 날 몰라라 해서 그래요.


2

춥고 굶주려도 얼굴에 내색을 않고

하루 종일 창가에서 베만 짭니다.

부모님만은 가엾어라 여기시지만

이웃의 남들이야 어찌 이런 나 알겠나요?


3

밤 깊도록 쉬지 않고 베를 짜노라니

베틀 소리만 삐걱삐걱 처량하게 울려요.

베틀에는 베가 한 필 짜여 있지만

이 베가 마침내 누구의 옷감 될까요!


4

손에 가위 들고 옷감 자르면

밤도 차가워 열 손가락이 곱아와요.

남들 위해서 시집갈 옷 짓는다지만

해마다 나는 홀로 잠을 잔답니다.


(106-107)

봄바람 화창하여 온갖 꽃 피어나고

철 따라 만물이 번성하니 감회가 새로워요.

깊은 방에 묻혀서 그리움 끊으려 해도

님 생각 가슴에 머물면 심장이 터질 듯해요.


밤 이슥토록 잠을 이룰 수 없음이요!

새벽닭 우는 소리 꼬끼오 들리네요.

빈방에 비단 휘장이 둘러지고

옥돌계단에 푸른 이끼만 돋았어요.


깜빡이던 등불도 꺼져 벽에 기대어 있으려니

비단 이불 어설퍼 추위가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요.

베틀 소리 내며 회문금을 짜 보지만

무늬도 시원치 않고 마음만 어지러워요.


인생 운명을 타고남이여, 사람마다 치아가 많아

남들은 즐기며 살건만 이 내 몸은 쓸쓸하기만 하답니다.


(132)

머나먼 갑산으로 귀양 가는 나그네여

함경도 길 가시는 걸음 바쁘시리다.

쫓겨나는 신하야 가태부지만

상감이야 어찌 초나라 희왕이시겠는지요!


가을 햇살 비낀 언덕엔 강물이 찰랑찰랑

변방의 구름은 저녁놀에 얼굴 붉혀요.

서릿바람 맞으며 기러기떼 날아가는데

걸음마저 더디어 차마 길 가지 못하시리.


(155)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를 넘나들고

파란 난새가 채색 난새와 어울렸구나.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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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12년
솔로몬 노섭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솔로몬 노섭의 <노예 12>이라는 책을 이야기할게. <노예 12>은 책이 아닌 영화로 먼저 알게 된 작품이란다. 한참 전에 영화로 개봉되었는데, 그 책이 <노예 12>이라는 소설을 원작이란 것을 알게 되었거든. 책제목을 보면 대충 어떤 내용인지 짐작을 할 수 있는 그런 책이란다. 아빠는 이 책이 그냥 소설인지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책이더구나. 그것도 지은이 솔로몬 노섭이 직접 경험한 것을 그대로 저술한 것으로 허구가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이란다. 그래서 이 책의 주인공도 솔로몬 노섭이란다.

솔로몬 노섭은 1808년에 미국에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란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이 공표되기 한참 전이었지만, 일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자유인 신분을 가지고 있었단다. 솔로몬 노섭의 아버지도 주인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인 신분이 되었고, 솔로몬은 태어났을 때부터 자유인이었단다. 자유인들은 자유인 증명서를 가지고 있었어. 솔로몬은 1808 7월 뉴욕주 에식스카운티에서 태어났어. 1829년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그 이후에는 어머니, 형과 함께 세 식구가 함께 살았어. 그리고 그 해 크리스마스 앤 햄프턴과 결혼하여 포트 에드워드 마을에서 건축 관리 일을 했단다. 그러다가 1834 3월 새러토가스프링스로 이사를 했고 전세마차 마부로 일하게 되었어. 솔로먼과 앤은 세 아이를 낳았어. 아이들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마거릿, 알론조였단다. 그들은 자유인의 신분으로 평범한 가정생활을 꾸려갔단다.

 

1.

1834 3월말. 우연히 해밀턴과 브라운이라는 사람을 만나 일자리를 제안 받았어. 솔로몬은 바이올린을 잘 켤 줄 알았는데, 서커스단 공연에서 바이올린 공연을 해 달라는 제안이었어. 공연은 뉴욕에서 진행되는데 며칠 동안만 임시직으로 해 달라고 했어. 생각보다 보수도 좋아서 솔로몬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길을 떠났단다. 어른이나 아이나 낯선 사람들이 친절하게 접근하는 것은 늘 조심해야 한단다. 그들도 솔로몬을 신뢰하는 분위기였어. 그들과 기분 좋게 술도 먹었는데, 심한 두통을 느끼고 의식까지 잃게 되었어.

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늦었지, . 솔로몬은 쇠고랑을 차고 어두운 곳에 갇혀 있었어. 주머니에 있던 자유인 증명서도 사라졌어.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윌리엄 노예 수용소였어. 노예상인 제임스 H 버치가 와서, 솔로몬은 자신은 자유인이라고 주장하고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구타만 당했어. 그래도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어. 그곳에는 다른 사람들도 여럿 있었어. 이야기를 해보니, 솔로몬처럼 속아서 잡혀 온 사람들도 있고, 원래 노예인 사람들도 있었어. 자유인이라고 주장해봤자 오히려 채찍질로 맞을 뿐이라고 일단 조용히 따르고 기회를 보기로 했어. 노예 상인들은 솔로몬을 플랫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어.

..

솔로몬은 뉴올리온즈 노예상을 거쳐서 윌리엄 포드라는 이에게 팔려가게 되었어. 중간에 자유인으로 잡혀온 어떤 이는 지인들이 자유인 증명서를 다시 들고 와서 풀려나기도 했지만, 그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뿔뿔이 팔려갔단다. 그 와중에 안타까운 일도 있었어. 아이 둘을 함께 있던 엄마 노예가 있었는데, 아들과 딸과 뿔뿔이 흩어져 팔려가게 된 거야. 엄마는 같이 팔아달라고 울면서 애원을 했어. 그들이 안타까웠는지, 윌리엄 포드가 같이 데리고 가려고 했지만, 노예상은 안 된다고 차갑게 거절했단다. 그렇게 생이별한 엄마 노예는 그 이후에도 계속 울기만 하면서 폐인이 되어갔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솔로몬을 산 윌리엄 포드는 침례교 전도사로 착한 백인이었어. 노예들을 사람으로 대접해 주었고 노예들의 의견도 잘 받아주었어. 솔로몬이 어떤 일에 대해 제안을 한 것에도 칭찬을 해주며 받아주었어. 하지만 그런 생활도 오래가지는 못했어. 윌리엄은 형의 보증을 섰는데, 형의 사업이 망하면서 윌리엄도 재산을 처분해야 했어. 그래서 노예들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했는데, 솔로몬도 티비츠라는 사람에게 인수되었어. 그나마 다행인 것은 넘기기는 했지만, 아직 윌리엄은 솔로몬의 몸값 중에 일부(400달러)의 지분이 있었어.

티비츠는 윌리엄과 달리 악랄한 주인었어. 노예들에게 부당하게 채찍질하는 것도 다반사였어. 솔로몬은 참다가 결국 맞받아쳤는데, 티비츠는 솔로몬을 죽이려고 했단다. 다행히 감독관인 채핀이 만류했고, 그 일을 윌리엄 포드에게 이야기를 해서, 윌리엄이 그곳까지 와서 솔로몬을 구해주었단다. 하지만 윌리엄이 항상 솔로몬을 구해줄 수는 없었어. 티비츠는 다시 시비를 걸고 솔로몬을 죽이려고 하여 솔로몬은 도망갈 수밖에 없었단다. 도망길도 만만치 않았어. 악어가 출현하는 습지를 거쳐 며칠을 고생 끝에 윌리엄 포드의 집에 도착했어.

윌리엄은 솔로몬을 며칠간 보살펴주면서 다른 주인에게 넘겼단다. 이번 주인은 에드윈 엡스라는 사람인데, 티비츠처럼 막무가내는 아니었지만, 깐깐하고 빈틈없는 사람으로 노예를 노새나 개로 생각하는 사람이야. 최대한 적게 쉬게 하고 풀가동으로 돌리려는 사람이지. 에드윈 엡스는 거대한 목화농장을 가지고 있는데, 하루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채찍이 날라와서 쉬지도 못하고 일해야 했어. 먹는 것도 딱 살수 있을 정도만 주고, 잠잘 곳도 대충 만들어놓은 통나무집이었어. 솔로몬은 엡스의 농장에서만 10년을 일했어. 말이 10년이지,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먹고 매일 밤 늦게까지 일하면서 쉬지는 못하는 생활을 10년이나 했다니, 상상도 가지 않는구나.

 

2.

1845년 목화농장에 흉작이 들었어. 그래서 농장의 일이 줄어들게 되어 솔로몬은 인근 사탕수수농장으로 임대를 가기도 했어.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단다. 사탕수수 농장의 일이 끝나면 다시 목화농장으로 돌아왔어. 솔로몬은 위험을 무릎 쓰고 편지를 써서 집으로 보내려는 시도도 했지만, 쉽지 않았어. 엡스에게 발각되었다가 간신히 위기를 넘기기도 했어. 어떻게 해야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을지 방법이 보이질 않았어.

시간은 흘러 1950년이 되었어. 같이 일하는 노예 윌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농장 밖에서 통행증 없이 다니다가 순찰대에게 걸려서 도망을 갔는데 경찰견한테 물려 잡히고 채찍질을 당해 중상을 입었어. 그런데도 또 도망갔지만 다시 잡혀와 감옥에 갇혔다가 다시 농장으로 오게 되었어. 그 정도로 탈출은 쉽지 않았어. 윌리처럼 다시 살아서 돌아오게 되면 채찍질이 기다리고 있었고, 도망가다가 죽는 노예들도 많았어.

어느날 엡스의 농장에 배스라는 사람이 찾아왔어. 배스는 노예제 강경한 반대론자로 많은 노예들을 데리고 있는 엡스에게 강하게 반대하기 위해 온 거야. 솔로몬은 그런 배스를 유심히 살펴보았어. 솔로몬은 몰래 배스에게 접근하여 자신은 자유인인데 억울하게 붙들려 와서 노예로 일하고 있다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어. 배스도 솔로몬의 이야기를 듣고는 도와주겠다고 했어. 그 이후 배스는 비밀리에 솔로몬을 돕기 시작했고, 솔로몬이 몰래 쓴 편지를 보냈단다. 솔로몬이 잡혀와 노예 생활을 한지 너무 오래되어서인지 편지에 대한 응답은 없었어.

그런데 얼마 뒤 낯선 백인들이 솔로몬을 찾으러 왔단다. 그들은 솔로몬을 후원했던 헨리 B 노섭과 변호사였어. 솔로몬의 아버지는 헨리 B 노섭의 이름을 본 따 성을 노섭으로 했을 정도로 헨리 B 노섭과 솔로몬은 무척 가까운 사이였어. 하지만 솔로몬을 아는 이들은 없었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솔로몬은 노예로 끌려 온 이후부터 10여 년 동안 플랫으로 불려왔거든. 헨리는 솔로몬을 찾으러 다니다가 그 지방에 노예제 폐지론자 배스의 존재를 알게 되어 그를 찾아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배스를 만났는데, 배스는 처음에는 그들을 경계했단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들은 신뢰가 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솔로몬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단다.

헨리는 참 꼼꼼한 사람이었어. 무작정 솔로몬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만발의 준비를 했어. 관련 서류를 꼼꼼히 준비하고 변호사와 경찰도 대동하고선 엡스의 농장을 찾아갔단다. 엡스는 그들이 찾아온 이유를 알고는 격분하며 화를 냈지만, 법적으로 솔로몬을 계속 데리고 있을 수는 없었어. 결국 솔로몬은 12년의 노예 생활을 마무리하고 드디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 어린 자녀들은 훌쩍 크고 첫 딸은 이미 결혼도 했다고 했어. 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니그리고 솔로몬 주변에 헨리 B 노섭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또 다행인구나. 그리고 배스를 만나서도 참 다행이고 말이야. 이 사람들이 없었다면 평생 가족들을 못 만날 수도 있었으니 말이야.

그 뒷이야기를 좀 해보면, 주위의 권유로 솔로몬을 책을 출간하게 되었는데 그 책이 바로 <노예 12>이었던 거야. 이 책은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솔로몬이 받은 돈은 얼마 안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는 이후 노예제 폐지운동에 나섰지만,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고 했어. 12년만에 돌아오고 4년이 지난 이후 그의 자취가 사라졌다고 하는구나. 이런저런 소문들만 난무했지만 끝내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른다고 했어. 그것 또한 참 이상한 일이긴 하구나. 노예제 폐지운동이 진전이 없으니 조용히 평범하게 살다가 삶을 마감했길 바란다.

이 책을 읽다가 엡스처럼 다른 사람들을 노예로 삼아 부자가 되고 평생 배부르게 살았던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들은 자신의 가족에게는 친절한 아빠이고 남편인 사람도 있었겠지. 당시 평생 노예로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구나. 누구에게든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인데 말이야. 이 책을 덮고 <노예 12>이라는 영화에 대해 알아봤어. 등장인물에 우리가 좋아하는 배우도 있더구나. 베네딕트 컴버배치. 알아보니 책 속에서 착한 전도사로 나왔던 윌리엄 포드 역할을 맡았더구나. 그리고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고 하는구나. 더욱 관심이 가는구나. 조만간 한번 봐야겠구나. 너희들도 괜찮다면 같이 봐도 좋고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자유인으로 태어난 나는, 30년 넘게 자유 주에서 자유의 축복을 누리며 살았고-그러다가 그 시기의 막바지에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 가, 노예 상태에서 12년 동안 예속의 삶을 살던 끝에, 마침내 1853 1월에 천만다행으로 구출되었다-이런 내 삶과 운명에 관한 이야기가 대중에게 흥미가 없지는 않을 거라는 제안들이 있었다.

책의 끝 문장: 내가 겪은 고난으로 단련되고 차분한 정신으로, 그리고 내가 행복과 자유를 찾을 수 있게 자비를 베풀었던 모든 분께 감사하면서, 비록 초라할지언정 올곧은 삶을 살다가 마지막에 내 아버지가 잠들어 계신 교회 묘지에서 쉬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녀는 자기 삶에 주어진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아이들과 같이 있고 싶다고 말했다. 프리먼이 아무리 험상궂게 찌푸리고 협박해도 괴로워하는 그 어미를 완전히 조용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일라이자는 내내 한없이 애처롭게, 자기들 세 명을 갈라놓지 말아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자기가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거듭거듭 호소했다. 아까 한 약속들 – 만약 그 세명을 함께 사주기만 한다면 정말 얼마나 충성하고 순종할 것인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밤낮으로 얼마나 열심히 일할 것인지 –을 말하고 또 말했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남자는 세 명 모두 살 만한 돈이 없었다. 거래는 성사되었고, 랜들은 혼자서 가야 했다. 그러자 일라이자가 아들에게 달려갔다. 뜨겁게 아들을 껴안고 입을 맞추고 또 맞추었고, 얼마를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 그러는 내내 소년의 얼굴 위로 비처럼 그녀의 눈물이 떨어졌다. - P85

이제 나는 어디서 구출을 기대해야 할지 암담했다. 마음 속에선 희망이 솟다가도 짓밟히고 시들어 갔다. 내 삶의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이보다 일찍 늙어 가는 것이 SRUWUTEK. 앞으로 몇 년의 시간과, 고된 노동과 슬픔, 그리고 습지의 독기 어린 공기가 그 효력을 발휘할 것이었다-나를 무덤으로 떠밀고, 썩어 잊히게 보이지 않으니, 할 수 있는 거라곤 땅바닥에 엎드려 말로 다 하지 못할 비통함으로 신음하는 것뿐이었다. 구조의 희망은 내 마음에 한 줄기 위안을 던져 준 유일한 빛이었다. 이제 그 빛이 흔들거리고, 약해지고, 작아지고 있었다. 이제 실망의 한숨 한 번으로 그 빛은 완전히 꺼지고, 나는 한밤의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삶의 끝으로 가야 할 것이었다. - P227

배스가 말을 받았다. "내가 뉴잉글랜드에 있었더라도, 지금 여기 있는 나와 똑같았을 겁니다. 노예제는 부당하다고, 폐지되어야 한다고 말했을 겁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속하며 붙들어 두는 걸 허락하는 법이나 헌법에는 어떤 이성도, 어떤 정의도 없다고 말했을 겁니다. 물론 자기 재산을 잃는 건 힘든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건 댁의 자유를 잃는 것과 비교하면 별로 힘들지 않을 겁니다. 아주 공평히 말해서, 댁의 자유에 대한 권리는 저기 엉클 에이브럼의 권리보다 조금도 크지 않아요. 피부가 검고 흑인의 피가 흐른다고 하지만, 어떻게 해서, 이 지류에는 우리 둘만큼 피부색이 하얀 노예들이 많은 걸까요? 영혼의 색에도 차이가 있을까요? 허! 체제 전체가 잔인하고 터무니가 없어요. 댁은 깜둥이들을 갖고 있다가 교수형에 처해질지도 모르지만, 저라면 루이지애나에 가장 좋은 농장을 갖고 있대도 한 명도 소유하지 않을 겁니다." - P257

그 아늑한 작은 집으로 들어갔을 때, 처음 나를 맞은 건 마거릿이었다. 그 아이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집을 떠날 때, 그 아이는 겨우 일곱 살, 장난감을 갖고 놀며 조잘거리던 작은 소녀였다. 이제 그 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랐고-결혼해서, 눈이 빛나는 한 소년을 옆에 데리고 있었다. 노예가 되어 불행하게 살았던 할아버지를 잊지 말라고, 마거릿은 자기 아이에게 솔로몬 노섭 스톤턴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내가 누구인지 밝히자, 마거릿은 감정이 북받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이윽고 엘리자베스가 방으로 들어왔고, 내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앤이 호텔에서 달려왔다. 그들은 나를 껴안았고, 눈물범벅이 되어 내 목에 매달렸다. 그러나 설명보다 상상이 더 나을 수 있는 장면에 대해서는 이쯤에서 덮어 두겠다.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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