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들 2 한국문학을 권하다 33
김동인 지음, 구병모 추천 / 애플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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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지난번에 이어서 김동인의 <젊은 그들> 2권을 이야기해줄게. 1권에서 주인공인 안재영이 총살당하여 죽은 것처럼 끝났지만, 읽은 이들 중에 안재영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하지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안재영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 안재영을 민겸호의 집으로 보낸 명인호는 안재영의 소식을 듣고 병환 중인 몸을 이끌고 안재영이 총살당했다고 하는 현장에 가보았어.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안재영의 시신도 사라졌어.

며칠 동안 수소문 끝에 어떤 선비가 안재영의 시신을 가지고 갔다는 소식을 들었어. 명인호는 어쩌면 안재영이 죽지 않고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단다. 활민숙에도 안재영의 처형 소식을 들었어. 활민숙 사람들은 다들 놀라움과 동시에 슬픔에 빠졌단다. 활민 선생은 그제서야 인숙을 불러서 안재영의 정체를 이야기해주었단다. 안재영이 바로 이인숙의 약혼자인 명진섭이라고참으로 답답하다. 1권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인숙에게 안재영의 정체를 숨길 이유를 도저히 몰랐는데, 이제 죽었다고 하니 곧바로 정체를 알려주는 것은 또 무슨 이유에서인가. 인숙은 자신이 짝사랑했던 안재영이 자신의 약혼자였다는 것에 놀라고, 그런 약혼자를 잃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너지는 듯했어.

활민숙에 익명의 서찰이 날아왔는데, 그것은 사실 민영환이 보낸 것이야. 안재영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민영환에게 부탁한 것. 활민숙 소탕 예정 소식을 활민숙에 알려서 미리 피하게 했거든. 그래서 활민 선생 주도 하에 숙생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은둔 생활을 하기 시작했단다. 갈 곳 없는 인숙은 활민 선생의 친구 집에 머무르게 되었지. 그러나 인숙은 자신의 약혼자가 죽은 마당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단다. 복수하겠다는 마음으로 민겸호의 집에 무작정 들어갔다가 붙들려 갇히고 말았어. 민겸호에 집에 머무르고 있던 명인호가 광에 갇혀 있는 이인숙을 도망가도록 도와주었단다. 이인숙은 아직 명인호와 흥선대원군 편으로 귀순한 사실을 모르고 있어서 처음에는 놀랬지만 명인호는 자신과 안재영의 관계를 이야기해주었어. 그곳에서 도망 나온 이인숙은 명인호가 소개해준 집에 은거하며 지냈단다.

 

1.

1권에서 안재영과 사랑을 나눴던 기생 연연 생각나지? 연연도 안재영이 총을 맞고 사라졌다는 소식에 놀랬어. 그리고 안재영의 약혼녀 이인숙의 존재를 알게 되고, 명인호를 통해서 만나게 해달라고 했단다. 연연은 이인숙을 만나서 안재영을 찾는데 서로 도우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보다 질투심에 사로 잡혀 이인숙을 쌀쌀하게 대했고, 이인숙도 연연에게 반감만 생겼단다. 명인호는 이런 연연을 혼내고, 연연은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는 인숙을 찾아와 깊이 사과했단다. 그리고 인숙은 연연의 집에 남장을 하고서는 숨어 지냈단다.

흥선대원군도 안재영의 소식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듯했어. 어느날 민영환이 흥선대원군을 찾아왔단다. 민영환은 자신의 아버지 민겸호가 한 짓들에 대해 깊이 사과를 하고, 민영환 자신은 흥선대원군이 생각하는 나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의 진정성을 안다고 했어. 흥선대원군도 그런 민영환의 마음을 받아주었단다. 그러던 어느날 흥선대원군에게 일월(日月)생존(生存)’이라는 글씨가 써 있는 편지를 받았는데, 그 뜻을 해석해보니 ()’씨가 살아있다는 뜻으로 안재영이 살아있다는 소식이었어.

인숙은 비어 있는 활민숙을 찾았다가 기척소리에 놀랐어. 그 소리 나는 쪽을 봤을 때 안재영을 본 것 같았는데 금방 사라졌단다. 인숙은 자신이 머물던 방에 갔다가 그곳에서 일월(日月)생존(生存)’이라는 쪽지글을 보았단다. 인숙도 안재영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신했단다. 인숙은 안재영의 생존 소식을 스승인 활민 선생에게 알리러 길을 떠났단다. 활민 선생을 만난 인숙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다시 상경하기로 했단다. 오는 길에 드디어 인숙과 활민 선생은 안재영을 다시 만났단다.

안재영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어. 총을 맞았지만 관통하여 생명을 부지하고 있었고, 다행히 민겸호의 무리들은 자신을 두고 모두 돌아갔고, 그곳을 우연히 지나던 김시현이라고 하는 용한 의원에 그를 발견했고,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안재영을 데리고 갔고, 며칠 만에 정신이 깨어났다고 했어. 김시현의 치료로 한달 만에 완쾌하여 다시 서울로 온 것이라고 했어. 흥선대원군을 만나 인사 드리고 그 다음 스승님께 인사 드리려고 오는 길이라고 하는구나. 스승 먼저 만나야 하기 때문에 인숙과 마주쳤음에도 자리를 피했던 것인가 보구나. 이런 남자를 사랑해야 하나. ㅎㅎ 아무튼 안재영는 이제 명진섭이 되어 이인숙을 만나게 되었단다. 그리고 숙생들도 모두 다시 만났단다.

 

2.

오래 전 천도도인이 큰 난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던 임오년 유월이 되었어. 임오년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역사적 사건 없니? ‘임오로 시작하는 조선말 역사적 사건. 그래, 1882년에 일어난 임오군란이야. 임오년 유월 드디어 군인들이 난을 일으키고 궁궐을 접수했단다. 숙생들도 참여해서 그들에게 힘을 실었고, 흥선대원군을 앞세워 궁에 들어갔어. 왕비는 어느새 도망을 갔고, 흥선대원군은 다시 권력을 잡게 되었단다. 왕비는 이때 충주로 도망가 지냈는데, 왕비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단다. 비밀리에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했고, 얼마 안 있어 청나라 군대가 서울에 입성하게 되었어. 우리나라의 문제를 외세를 끌어들여 해결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얼마나 반국가적인 생각이니..

결국 청나라 군대에 의해 임오군란은 진압이 되고, 흥선대원군은 63세 나이에 청나라로 끌려가게 되었단다. 뒤늦게 안재영이 청나라 군을 쫓아가보았지만, 이미 흥선대원군을 실은 배는 인천을 떠나 청나라로 향했단다. 희망을 잃어버린 안재영은 다시 활민숙으로 왔어. 그곳에는 활민 선생과 다른 숙생들이 모두 독주를 먹고 자결해 있었단다. 꼭 그렇게 죽음을 선택했어야 할까. 살아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그 사이에 인숙은 충주에 가서 왕비의 동태를 살피고 돌아왔는데, 인숙도 활민숙에서 일어난 일을 목격하게 되었어. 재영은 인숙에게 다른 숙생들처럼 자결하자고 했고, 인숙도 재영의 뜻에 따르기로 했단다. 둘은 서로 결혼을 약속했던 사이인 만큼 조용히 단 둘이 혼인식을 올리고 독주를 마시고 자결하면서 이 소설은 끝이 났단다.

아빠가 기대했던 결말과는 전혀 다른 결말이구나. 소설의 제목은 <젊은 그들>인데 소설의 결말은 제목과 달리 비극으로 끝을 맺었어. 우리가 재미있게 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나오는 젊은 그들처럼 무너진 조국을 위해 무엇이든 해 볼 수 있는 나이였는데 말이야. 이 소설 속 인물들이 꿈꾸었던 것은 어차피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한 번의 실패로 그렇게 쉽게 목숨을 버리다니, 아빠로서는 이해불가로구나. 아빠가 1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런 결말도 이 소설의 설정이 다소 과하다는 생각을 들게 한 것이란다. 옛소설이지만 재미는 있게 읽었다만, 공감할 수 없는 설정들이 많았단 소설이었어.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재영이를 범의 굴로 보낸 날 밤 인호는 밤새도록 재영이를 기다렸다.

책의 끝 문장: 그 두 개의 시체를 실은 어선은 다시 사람의 눈에 뜨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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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3)

대엽을 무기로 고사리는 폐름기말의 대멸종을 버티며 중생대를 자신의 시대로 맞을 준비를 한다. 더불어 고사리류는 엄청난 진화방산을 해낸다. 커다란 잎으로 광합성의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키운 덕분이다. 마치 영국이 산업혁명을 통한 대량생산으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것처럼 고사리는 고생대 말과 중생대 초의 식물계의 패권을 차지한다.


(30)

그런데 은행나무는 생물분류상 은행문 은행목 은행과 은행속 은행종일뿐 아니라 놀랍게도 은행문에 속하는 유일한 생명이다. 그의 가까운 형제들은 2 7천만 년 전 페름기에 처음 발견되었는데 중생대를 거쳐 번성하다가 신생대가 되자 모두 멸종해버리고 은행나무 하나만 남게 된 것이다. 신생대 이후 은행나무의 형제들은 화석으로도, 살아 있는 개체로도 보이지 않는다.


(43)

중생대 전반을 거쳐 확연한 지상 생태계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한 겉씨식물의 경우 가장 살기 좋은 곳을 자신의 터전으로 삼았을 것이고 그곳에서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데 굳이 꽃을 피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과의 경쟁에서 밀려 점점 높은 산 위로 올라간 식물이다 건조한 지역으로 이동한 식물들은 살기 위한 시간과 진화의 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들은 좀 더 효율적으로 번식을 해야 했고 하나의 꽃가루도 하찮게 여기지 못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짧은 우기에, 혹은 짧은 여름에 재빠르게 번식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애써 수정한 씨앗이 이런 건조하고 추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특별한 장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투쟁의 결과가 꽃이고 배젖이다.


(59-60)

딱정벌레부터 한 번 살펴보자. 곤충 중에서도 가장 많은 종수를 차지하는 딱정벌레목의 곤충은 현재 알려진 수만 35만여 종이다. 이는 곤충 전체로 봤을 때는 40%, 동물계 전체를 봤을 때 25% 가량을 차지하는 수치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종까지 염두에 두면 약 500~800만여 종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방아벌레, 잎벌레, 바구미, 풍뎅이, 곰보벌레, 물방개, 물진드기, 물맴이, 딱정벌레 등 다양한 곤충들이 딱정벌레목에 속한다. 두 번째로 종류가 많은 나비목에는 약 18만 종, 세 번째로 다양한 종수를 자랑하는 벌목에는 약 15만 종이 기록되어 있어 이들 셋이 종을 합치면 전체 곤충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96)

이로써 피부는 기체 교환이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를 내려놓게 되었다. 단순한 세포막이었던 시절부터 가져왔던 임무가 사라지자 피부는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역할에 더욱 매진하게 된다. 단단한 각질이 생겨 피부를 감싸기 시작했으며, 털이나 깃털이 나면서 외부의 온도변화로부터 몸 내부를 보호하는 역할도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어떤 피부에는 땀샘이 만들어지면서 보다 능동적으로 외부의 온도변화에 대응했다.


(130)

바다에 살기 시작한 이후 고래의 조상은 점점 덩치가 커진다. 가장 큰 이유는 체온 때문이다. 바닷물은 공기보다 체온을 빨리 뺏어간다. 체온을 보존하는 것이 바다에서 살기로 결정하는 순간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특히 고래는 어떠한 조건에서도 항상 일정한 체온을 유지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포유동물, 즉 정온동물이었다. 몸 전체에 두꺼운 피하지방을 둘러 체온은 유지하는 것은 불가결한 선택이었고, 이로 인해 덩치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커진 덩치는 부피 대비 표면적을 줄여 체온이 손실을 방지해주었다. 추운 극지방에 사는 생물들이 덩치가 커진 것도 같은 이유다. 바닷속에서 사는 시간이 많은 펭귄이나 물개, 바다사자 같은 생물들도 육지의 친척들에 비해 덩치가 크고 피하지방층이 두렵다.


(136)

처음에는 물속까지 들어갈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점점 건조해지는 환경에서 육식동물이건 초식동물이건 먹이를 구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한 선택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초식동물은 덩치가 더 크고 무리를 잘 지어 다니는 동물들이 얼마 남지 않은 식물들을 휩쓸고 가면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었을 것이고, 육식동물은 먹이로 삼을 초식동물이 줄어드니 경쟁이 더 치열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던 동물들이 바다에 다다랐고, 썰물 때 물이 빠진 갯벌이나 모래사장에서 물때를 못 맞춰 발이 묶인 물고기를 먹거나 조개를 깨먹었을 것이 거의 분명하다. 초식 동물은 바닷가에서 소금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는 염생식물을 처음 먹어 봤을지도 모른다. 육식동물이건 초식동물이건 그렇게 조금씩 물속의 먹이를 먹으며 물속 먹이 사냥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168)

날개를 만들기까지의 고된 과정을 생각하면 이들이 스스로 원해서 날개를 가졌을 가능성은 없다. 드넓은 대지 위에 자신의 몸 하나 편안하게 누일 곳이 없었던 생명, 가는 잠이 들다가도 풀숲을 뒤척이는 작은 기척에 화들짝 놀라 큰 눈을 굴리며 사방을 살피던 생명, 먹이를 구하러 다니다가 천적의 냄새에 쪼르르 도망가던 생명. 이런 생명들이 나무를 타고 나무 위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것이 새의 비상을 위한 첫걸음이었다.


(234)

뱀은 몸이 가늘고 길다. 이런 몸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허파도 대단히 좁고 길게 진화해 왔다. 많은 종류의 뱀에서 왼쪽 폐는 퇴화되어버리기까지 했다. 땅속으로 들어가니 사지도 소용이 없었다. 뱀의 앞발과 뒷발은 조금씩 퇴화되어 줄어들다가 마침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네 다리가 사라지고 난 뒤 대신 긴 척추를 얻었다. 수백 개에서 많게는 천 개가 넘는 척추가 뱀들이 유연하게 움직이며, 기어 다니고, 땅속을 헤집고 다닐 수 있는 힘이다.


(237-238)

뱀이건 도마뱀이건 땅속으로 들어가야 했던 이유는 아마도 지상의 생태계에서 자신이 누리던 역할과 지위를 빼앗겼기 때문일 것이다. 벌레를 잡아먹자니 포유류의 선조들이 훨씬 더 빠르게 사냥을 해서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다른 작은 동물을 잡아먹고 살지니 지배파충류에서 진화한 공룔 중 덩치가 비교적 작은 이들에게 밀려난다. 변온동물이라 밤에는 움직이기가 힘들고 낮에는 다른 동물과의 경쟁이 버겁다. 그래서 갈 수 밖에 없었던 곳이 바로 흙 속이었으리라 추측해 본다. 포식자를 피해 땅속으로 숨어, 흙 속을 헤매는 다른 벌레를 먹으며 살아가게 되었을 것이다.


(252)

어디 비단 벌거숭이두더쥐뿐일까, 무족영원도, 뱀도, 두더지를 비롯한 포유류도 흙 속으로, 땅속으로 들어간 모든 생명은 하나도 빠짐없이 지독한 과정을 겼었다. 팔다리를 없애고, 눈이 멀고, 모습을 완전히 바꾸는 긴 세월에 걸친 진화를 버텨내고 이겨냈다. 그 결과로 땅속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냈다. 기껏해야 선충이나 지렁이 정도가 최상위 포식자였던 지하세계에 새로운 생태계를 구성한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한계와 자연의 경계를 넘어간 생물들에 의해 지구는 좀 더 복잡하고 다양한 생태계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257)

익숙한 환경과 삶에서 내몰린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인간의 선조 역시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미 나무를 타기에 적합하게 진화한 앞발로는 초원에서 사족보행을 할 수 없었다. 우리의 숲 친척인 고릴라와 침팬지 등은 손등은 땅에 대며 걷는 이른바 손등걷기를 한다. 손등걷기는 숲에서 잠시 걷는 것에는 괜찮을지 모르나 초원에서 천적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을 때 걷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나무를 타기에 적합한 손으로 오랜 기간 초원을 걷기가 힘든 일이었다.


(259)

이들은 강가로도 갔다. 강바닥에 묻혀 있는 조개를 파내어 먹었다. 손에 쥔 돌을 내리쳐 조개의 껍데기를 부수고 알멩이를 먹었다. 바닷가에서도 마찬가지로 조개를 먹었다. 무리를 짓기 시작한 후에는 다행히 웬만한 포식자들은 가까이 접근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인류의 선조들은 하루 종일 힘들게 먹이를 찾아 헤매야만 했다. 숲 속에선 손만 뻗으면 있던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헤매야만 했다. 숲 속에선 손만 뻗으면 있던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이젠 발품을 팔아 강가로 가야했고, 숲으로 잠깐 들어갔다가도 잽싸게 나무 열매를 따고는 숲 속 원숭이 떼를 피해 도망쳐야 했고, 사자 무리를 만나도 도망을 쳐야 했다. 숲에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험한 날들이었다. 밤이 되어도 안식은 없었다. 숲에서는 밤마다 나무 위에 모여 포식자를 피할 수 있었지만 허허벌판에서는 밤이면 밤마다 야행성 포식자를 피해 선잠을 자야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될 때까지 먹이를 구해 사방을 돌아다니고, 포식자들을 피해 다니는 삶이 계속되었다.


(267)

이런 인간의 탈출은 기존의 생태계를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인간이 개척한 곳마다 기존의 생태계는 배제된다. 농경지를 일구면 그 곳에 살던 식물들이 사라지고, 식물과 함께 살던 동물과 균도 함께 사라진다. 도시를 세우면 숲이 사라지고 숲과 함께하던 동물들이 사라진다. 도로를 놓으면 도로 양쪽으로 자유롭게 오가던 동물들은 고립된다. 항구를 만들면 그 주변의 생태계가 파괴된다. 인간의 영역이 확장될수록 기존에 존재하던 지구 생태계는 줄어든다. 인간의 탈출은 이제 인간의 공습이 되었고, 한정된 지구에서 생태계는 지구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이후 최초로 영역이 축소되기 시작한 것이다.


(273)

생태계 내에 강력한 경쟁자가 생기면 경쟁에 진 생물종은 생태계의 경계까지 쫓기고 되고 그 곳에서 새로운 생태계로 자리를 옮기든가, 아니면 종 자체가 사라지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러나 강력한 경쟁자인 인간의 등장은 생태계의 모든 종들을 경계로 몰아붙이는 것도 모자라, 모든 생태계를 파괴해 나가며 경계를 넘어갈 수 있는 기회까지 차단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생물들은 지금 엄청난 속도로 멸종해 나가고 있다. 지난 역사 속의 5대 멸종 중 가장 거대한 규모의 멸종이었던 폐름기 대멸종보다도 더 빠르게 생명종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번성하는 종은 인간이 선택한 몇몇 가죽과 식물, 그리고 인간의 도시에서 살도록 진화한 특정한 생물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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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2-20 06: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구라는 푸른 행성을 지배하려는 인간 종은 더불어 함께 살기 보다는 다른 종을 거의 모두 파멸로 몰아가는 형세입니다. 이 벌을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까요?ㅠㅠ

bookholic 2025-12-22 22:57   좋아요 0 | URL
공감합니다. 우리의 터전이 이렇게 망가지는 것을 그냥 볼 수밖에 없다니.. 안타깝습니다...
 
젊은 그들 1 한국문학을 권하다 32
김동인 지음, 구병모 추천 / 애플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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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우리나라 근현대에 활약하던 소설가들이 많단다. 하지만 너희들도 학교에서 배우는 것처럼 우리나라 근현대시대는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 암흑의 시대나 다름 없었어. 그렇게 열악한 환경이 아니었다면 더 많은 소설가들이, 더 많은 작품들을 쓰지 않았을까 싶구나. 오늘날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며 전세계를 놀라게 한 K-Culture가 더 빨리 왔을 수도 있고, 노벨 문학상도 진작에 받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단다. 그런데, 그 시대의 소설들은 많이 읽히지 않는 것 같구나. 아빠도 그 시대의 소설들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니까서양의 고전 소설을 더 많이 읽게 되는 것 같아. 아무래도 우리나라 근현대 소설들의 노출이 적은 것 같아. 그래도 그 시대의 단편 소설들은 교과서에 실리다 보니,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읽는 건 같은데, 그 시대의 장편 소설들은 더욱 읽히지 않는 것 같구나. 그런데 너희들 책에 실리는 단편들을 아빠도 몇 편 읽어봤는데, 숨어 있는 걸작들이 많더구나. 아무튼 그 시대에도 장편 소설들이 많이 있었을 텐데, 잘 소개가 되지 않는 것 같아서 안타깝구나.

이번에 아빠가 읽은 소설은 그 시대에 쓰여진 장편 소설이란다. <감자>, <배따라기>, <발가락이 닮았다> 등 단편소설로도 유명한 김동인 작가의 <젊은 그들>이라는 소설이란다. 제목부터 오늘날 소설이라 해도 썩 괜찮은 제목이구나. 이 책의 앞부분에는 <파과> 등 인기작을 많이 쓰신 구병모 님의 추천글이 있단다. 김동인은 일제시대 말기에 친일로 변절하여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극심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소설 쓰기 전념하다가 마약 중독까지 걸리는 등 건강을 잃고 병마에 시달리다가 친일을 하게 되었다고 동정하는 듯한 글도 추천글에 있단다. 김동인이 왜 생활고와 마약중독까지 빠지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일본에 저항했던 작가들과 비교해서는, 그의 친일 흔적은 합리화는 안 되더구나. 적어도 아빠에게는김동인은 해방된 이후에도 병마에 시달리다가 1951 51세의 나이에 죽고 말았단다.

아빠가 오늘 이야기할 <젊은 그들> 1930년과 1931년에 신문에 연재했던 소설이란다. 아빠는 김동인 소설은 이번이 두 번째란다. 20여년 전 당시 아빠 후배의 추천으로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을 읽은 적이 있거든. <운현궁의 봄>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흥선대원군 관련된 내용으로 어떻게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게 되었는지를 그린 소설이었단다. 김동인의 대표 장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운현궁의 봄>에 비해 <젊은 그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 읽어보니 아빠도 <운현궁의 봄>이 좀더 나은 것 같구나. <젊은 그들> 역시 흥선대원군이 활약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단다. 가상의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야. 흥선대원군, 민겸호, 민영환 등 실존했던 인물들도 등장하지만, 주인공들은 모두 지은이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들이란다. <젊은 그들>은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오늘을 1권을 이야기해줄게.

 

1.

때는 민비가 대원군을 쫓아내고 권력을 잡은 지 10여 년이 되던 시기였단다. 요즘에는 명성황후로 더 알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명성황후라는 말보다 민비라고 더 많이 불렀단다. 사실 민비가 한 짓들을 보면 명성황후라는 칭호는 너무 과한 칭호가 아닌가 싶구나. 아빠는 소설 속의 호칭인 민비라고 할게. 그리고 이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은 흥선대원군을 태공이라고 불렀단다. 당시 흥선대원군을 부르던 존칭이라고 보면 돼. 흥선대원군의 친구 중에 활민 선생이라고 부르는 이활민이라는 사람이 있어. 활민 선생은 활민숙이라는 학습소 같은 것을 만들어 민비에 의해 몰락한 양반가의 아들들을 모아 인재를 육성하고 있었어.

민비에 의해 몰락하여 죽음까지 당한 명 참판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명 참판의 아들 명진섭도 활민숙에 있었단다. 그런데 아버지의 성을 그대로 따르기에는 위험하다 생각하여 안재영이라는 가명을 썼어. 명 참판이 죽기 전에 먼저 죽은 친구의 딸 이인숙을 키웠었는데, 그가 죽고 나서 이인숙도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었어. 활민 선생이 이인숙을 거두어 키우고 이인화라는 가명을 쓰고 남장을 시켜서 활민숙에서 지내게 했단다. 어렸을 때 잠깐 같이 지낸 이인숙과 명진섭은 부쩍 청년으로 자란 후 이인화와 안재영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났지만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단다. 나중에 안재영은 이인화가 이인숙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스승인 활민 선생은 아직은 모른 척 하고 지내라고 했단다. 어렸을 때 둘은 양가 부모님에 의해 약혼을 한 사이였더구나. 이인숙이 안재영이 명진섭이라는 것을 알아보지는 못했고, 이름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집 아들과 자신이 약혼했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었어.

이인숙은 활민 선생의 지시로 흥선대원군의 반대측인 민씨 집안에 잠입해서 흥선대원군 시해 음모를 알아내서 돌아왔어. 그래서 쉽게 그 자객을 사로잡을 수 있었단다. 그 자객을 문초하는데 그의 성이 씨라서 이인숙은 깜짝 놀랐단다. 자신이 어렸을 때 잠깐 함께 지냈던 명진섭도 씨였거든. 이인숙은 명진섭의 이름까지는 기억을 하지 못하고, 성이 씨라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어. 이인숙은 그 자객이 자신의 약혼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빠지게 된단다. 그래서 이인숙은 광에 갇혀 있던 그 자객, 명인호를 풀어주었단다. 자객이 도망가는 것을 우연히 본 안재영은 몰래 쫓아가서 다시 자객을 잡았지만, 그의 신세 또한 불쌍히 여겨 다시는 흥선대원군을 노리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고 풀어주었단다.

아빠 생각에 이런 약간의 억지 설정들이 이 소설을 명작으로 만드는데 방해요소가 되지 않았나 싶어. 그런데 안재영은 누가 자객을 풀어주었는지 궁금했어. 그래서 활민숙에 돌아와서 방들을 살펴보니, 어지러워진 신발과 인적 소리고 이인숙이 풀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이인숙은 부모님이 맺어준 약혼녀이자 자신도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인데 그런 이가 적을 풀어주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단다. 다음날 광에 가둬두었던 자객이 사라져서 다들 놀랬지만, 도망가는 자객을 쫓아가 죽였다는 안재영의 말에 다들 안심했단다. 이인숙 한 명 빼고.

 

2.

활민 선생도 이인화가 자객을 풀어주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일단 모른 척 했단다. 안재영도 그 이유가 궁금해서 자객 명인호를 다시 만나기 위해 민겸호의 집에 몰래 가게 되었단다. 민겸호는 실제 인물이란다. 민겸호는 민비의 측근으로 당시 민씨 세도가 중에 한 명으로 간신 중에 간신이었단다. 민겸호의 집에 몰래 들어간 안재영은 민겸호의 무리들에게 잡혀서 광에 갇히게 되는 신세가 되었어. 때마침 민겸호의 집에 기생들이 와 있었는데, 그 기생들 중에 안재영을 흠모하던 연연이라는 자가 있었고, 그 연연이 안재영을 구출해 주어 도망갈 수 있었단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개연성이 조금 떨어지는 설정이 계속 나오지만, 그러려니 하고 들어주렴.

끈질긴 안재영은 결국 명인호를 다시 만나게 되고, 이인숙에 대해 물어보지만 명인호는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야기했어. 안재영은 명인호와 이야기하면서, 그가 비록 반대 진영에 있지만, 그가 지향하는 뜻도 결국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 안재영은 명인호가 왜 대왕비당에 붙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았어. 명인호의 아버지가 흥선대원군으로부터 버림받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단다. 그 이후로는 명인호는 아버지의 생사도 모른다고 했어. 안재영은 자신이 아는 흥선대원군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설득하고, 명인호의 아버지도 살아계실 수 있으니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했어.

안재영은 나중에 흥선대원군을 만나 명인호와 그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했어. 그러자 흥선대원군이 이야기하기를, 명인호의 아버지는 자신이 덕국 백림에 일부러 보낸 것이라고 했어. 덕국 백림은 독일 베를린을 의미한단다. 그리고 작년 여름까지 계속 편지를 주고 받았다고 하는구나. 그렇지 않아도 흥선대원군도 그 이후 소식이 끊겨 명인호의 아버지의 생사를 걱정하고 있었대. 명인호가 혼자 오해하고 있었던 거구나. 명인호의 아버지가 잘못했네. 아들한테 편지를 안 보냈으니 말이야. 내막을 알게 된 안재영은 명인호를 다시 만나 흥선대원군에게 데리고 왔단다. 그제서야 명인호는 오해를 풀고, 흥선대원군에게 귀순하게 되었단다. 명인호와 안재영은 의형제도 맺었어. 명인호가 귀순한 사실은 일단 안재영과 흥선대원군만 알고 있기로 하고, 명인호는 계속 대왕비당에 머물기로 했단다.

한편 이인숙은 명인호가 자신의 약혼자이고, 지금은 죽은 줄 알고 소복까지 입으면서 괴로워했단다. 활민 선생은 이인숙을 불러 확실치 않은 일에 그렇게까지 하지 말라고 했고, 약혼자가 맞다고 해도 배신한 사람인데 그를 위해 소복까지 입은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단다. 그냥 이인숙에게 진실을 이야기하고 당분간 비밀을 지키라고 해도 될 것을이유도 없이 이인숙에게만 사실을 숨기는 것은 너무 억지 같더구나. 이인숙은 마음을 추스리겠다면서 한 달의 시간의 달라고 했어. 안재영은 모른 척 이인숙을 예전처럼 동료로 대했지만 이인숙은 안재영을 자신의 남편을 죽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거리를 두려고 했어. 하지만 예전부터 안재영을 마음속에 품었던 지라 또 마냥 미워할 수 있는 여자의 마음.

….

안재영은 이인숙과 그렇게 갈등 아닌 갈등을 겪다가 뜬금없이 기생 연연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단다. 그냥 진실을 말하고 이인숙과 비밀 연애를 해도 될 것을이인숙에게 안재영의 정체를 숨기는 것은 정말 이해가 가질 않는 설정이더구나. 연연과 사랑을 나누느라 정신 없는 안재영을 명인호가 불러냈단다. 정신차리라는 한마디와 함께 민겸호의 집에서 비밀회동이 있는데 몰래 들어가서 정보를 캐오라고 말이야. 명인호 자신은 병이 들어 움직일 수 없으니 안재영에게 대신 가서 그 비밀회동의 이야기를 엿들으라고 했어. 얼마나 아픈지 모르겠지만 명인호가 가는 것이 더 안전하게 정보를 빼올 수 있을 것 같은데아직 명인호는 자기네 사람이라고 생각할 텐데 말이야.

민겸호의 집에 몰래 들어간 안재영은 대왕비당 무리들이 활민숙을 급습한다는 계획을 알게 되었지만, 또다시 잡히게 되었단다. 안재영은 모진 고문을 당하여 문초를 당했지만 끝내 배후를 발설하지 않았단다. 그렇게 갇혀 있는데 어릴 적 친구 민영환이 그를 찾아왔어. 민영환은 민겸호의 아들이긴 하지만 민씨 집안에서는 별종으로 나라에 충성했던 그런 사람이란다. 나중에 을사늑약이 맺어질 때 반대 상소를 수 차례 올리기도 했고, 결국 을사늑약이 맺어지자 그 부당함을 유서로 남기고 자결한 사람이란다. 그런 민영환이 찾아왔지만 안재영을 구해줄 힘은 없었어민영환은 유언을 남기면 전달해주겠다고 했단다. 결국 안재영은 총살당하고 만단다.

여기까지가 1권의 이야기란다. 안재영이 총에 맞긴 하지만 죽진 않겠지. 지금까지의 설정에 의하면 백 퍼센트 죽지 않았을 거야. 안재영이 뿌린 떡밥들도 많고 더욱이 주인공이기도 하고 말이야.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개연성이 떨어지는 억지 설정들이 있긴 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읽으면 재미는 있는 것 같구나. 그리고 잘 각색하면 괜찮은 역사 드라마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지은이 김동은은 확실히 흥선대원군 빠인 것 같구나. 흥선대원군이 잘못된 선택과 실책들도 있는데, 이 소설을 보면 거의 완벽한 인간으로 나오는구나. 그 완벽함이 2권에서도 이어지는지 한번 보자꾸나. 그러면 오늘 <젊은 그들> 1권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너 저고리 벗어라.”

책의 끝 문장: 낙엽이 또 몇 개 꼬리를 저으며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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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캐드펠 수사 시리즈 5
엘리스 피터스 지음, 이창남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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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캐드펠 수사 시리즈 5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이야기란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이미 여러 번 이야기를 했으니, 곧바로 책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그 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단다.

때는 1139 10. 수도원에서 800미터 떨어진 곳에 풀크 레이널드 수사가 병원장인 세인트자일스 병원이 있고, 이 곳에는 나병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단다. 이번 시리즈의 제목을 봐서는 세인트자일스 병원과 관련된 내용임을 예측할 수 있었단다. 이번에 수도원에서 혼례가 진행하게 되어 캐드펠 수사는 이 혼례를 준비하고 있었어. 신랑은 영주인 휴언 드 돔빌 남작이라는 사람인데, 혼일 적령기가 한참 지난, 거의 예순에 가까운 그런 사람이었어. 신랑 일행이 먼저 수도원으로 오고 있었는데, 이 행렬을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했는데, 그 중에는 세인트자일스 병원의 나환자들도 있었단다. 괴팍한 성격의 돔빌 남작은 그들을 향해 채찍을 날렸어. 다들 그 채찍을 피해 도망갔는데, 일흔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라자루스라는 사람이 채찍을 맞았어. 이에 캐드펠 수사의 조수 중 한 명인 마크 수사가 나서서 라자루스를 보호해 주어 더 상 맞지 않았단다.

자신의 결혼식날 채찍을 휘두르는 사람이라니신랑이라는 사람이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잘 알겠지. 곧이어 신부 행렬도 이어졌는데, 신부는 이베타 드 마사르라는 열여덟 살의 어린 신부였단다. 열여덟 살밖에 안된 아가씨가 예순 가까운 신랑과 결혼을 한다? 이것은 평범한 결혼이 아니란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거야. 가뜩이나 신부의 얼굴은 무척 어두워 보였어. 이베타는 피카르 부부의 조카였는데,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다고 했어. 그러니까 이 결혼은 피카르 부부가 자신의 조카를 갑부인 돔빌 남작과 강제로 결혼을 시킨 것이란다. 돔빌 남작은 자손이 없었고, 사이먼이라는 유일한 조카가 있을 뿐이었단다. 이런 설정에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가 있으니 이베타를 사랑하는 조슬린이라는 사람이었어. , 어떤 사건이 일어날까?

 

1.

기도회 때 이베타는 몰래 빠져나가 조슬린을 만났어. 수도원에서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허브약제소에서 만났는데, 감기약을 만들러 온 캐드펠 수사와 마주쳤단다. 그들은 서로 놀라긴 했는데 곧바로 피카르 부인이 이베타를 찾으러 왔어. 그녀는 세 사람을 보고 피카르는 화를 내려고 했지만, 캐드펠 수사의 기지로 이 난처한 상황을 잘 넘겼단다. 두 사람은 각자 따로 약을 구하러 왔다가 우연히 만난 것이라고 했어. 역시 캐드펠 수사는 젊은이들의 사랑에 관대하고 잘 연결해주는 큐피드와 같은 사람이야. 이베타는 피카르 부인과 돌아가고 조슬린은 약제소에 남아서 캐드펠 수사에게 이베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이베타는 고아가 된 이후 삼촌 부부가 키우다가 예상한 것처럼 돔빌로부터 돈을 받고 그와 결혼을 시키는 것이라고 했어. 이베타를 사랑하는 조슬린에게 있어 그들은 철천지원수나 다름없어서인지 캐드펠 수사에게 이야기하다가 화를 내며 그들을 죽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를 했어.

결혼식날이 되었어. 조슬린은 해고당했다고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어. 이베타의 삼촌인 고드프리드 피카르가 거짓말로 조슬린을 고발하여 해고당한 것을 알게 된 조슬린은 피카르를 찾아갔고 둘은 고성을 오가며 다투었단다. 그들의 난동으로 수도원장과 수사들도 그들에게 모여들었고, 수도원장 라둘푸스가 중재를 하려고 했어. 그때 돔빌 남작과 함께 있던 길버트 프레스코트 행정관이 와서 혼례용 귀금속이 사라졌다고 이야기를 하고 용의자로 조슬린을 지목했단다. 조슬린은 결백을 주장했지만, 그의 소지품에서 사라진 목걸이가 나왔어.

누군가의 음모가 너무 뻔해 보였단다. 결국 조슬린은 끌려가게 되었고, 방심한 틈을 나서 도망쳤단다. 돔빌 남작의 유일한 조카인 사이먼이 있었다고 했잖아. 그 사이먼이 조슬린과 친했나봐. 사이먼이 조슬린을 도와주어 건초 창고에 숨어 있었어. 그러다가 조슬린은 이베타를 구출해서 도망갈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가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되었어. 그러다가 우연히 나환자 라자루스를 만났는데, 라자루스가 도와주어 밤새 그와 숨어 있을 수 있었고, 그 다음날부터는 두건을 깊게 눌러쓰고 나환자로 위장을 했단다.

결혼식날 신랑 돔빌 남작이 나타나지 않아서 사람들은 그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시체가 된 돔빌을 발견했단다. 마지막 행적은 전날 조카 사이먼에게 이야기를 하고 말 타고 산책을 나간 것이 마지막이었어. 캐드펠 수사도 사건 현장에 도착하여 특유의 예리한 관찰력으로 단서들을 찾아냈단다. 돔빌 남작은 이슬이 내린 후에 사망한 것으로 보였어. 그러니까 밤새 다른 곳에 있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사망한 것이지. 나무 양쪽에 잘 보이지 않는 밧줄을 매달아 놓았는데 이 밧줄에 목이 걸려 말에서 떨어졌고, 이후 범인은 돔빌의 목을 줄라 죽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어. 엄연한 살인사건이었단다.

뒤늦게 행정장관도 와서 조사를 했는데, 행정장관은 곧바로 조슬린을 용의자로 지목했단다.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지만 정황으로만 봐도 조슬린이 첫번째 용의자라고 생각했을 거야. 반면 캐드펠은 사실을 기반으로 수사를 했어. 돔빌 모자에 꽂힌 희귀한 허브를 발견하여 돔빌이 밤에 갔던 곳을 추적했단다. 그 허브가 있는 곳을 찾아갔더니 돔빌 소유의 오두막집이 있었어. 하지만 그곳에는 집사와 집사의 어머니만 계셨는데, 집사가 이야기하길 돔빌은 4년 전에 오고 그 이후로는 한번도 오지 않았다고 했어. 그러나 캐드펠 수사는 그곳에서 돔빌의 흔적을 발견했어. 그러니까 어젯밤에 돔빌이 여기에 온 것이 확실하고 집사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어. 더욱이 또 다른 사람의 흔적, 즉 어떤 여자의 향수 냄새를 맡았단다. 그러니까 어젯밤에 돔빌은 이곳에 와서 어떤 여자와 지냈던 거야.

 

2.

한편 조슬린은 라자루스와 함께 있으면서 이베타에게 연락하여 도망갈 궁리를 했단다. 책을 읽다 보니 라자루스와 조슬린은 남남이 아닌, 어떤 관계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캐드펠 수사는 결국 돔빌이 만난 여자가 누구인지 알아내고 찾아갔어. 고드릭 포드의 베네딕트 수도원에 있는 어바이스라는 여자였어. 어바이스는 당차고 자기 주장이 강하면서도 돔빌의 정신적 안식처 역할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이더구나. 돔빌이 여행이나 멀리 갈 때마다 비밀리에 함께 했었대. 어바이스는 그 역할을 꺼리지 않았어. 성격답게 돔빌의 죽음도 담담히 받아들이고 이제는 수녀로 살아가겠다고 했어.

어바이스를 만나고 수도원으로 돌아오던 캐드펠 수사는 길 잃은 말 한 마리를 발견했어. 그 말을 쫓아가보니 피카르의 시신이 있었단다. 사람들을 데려 오려고 수도원에 왔더니, 조슬린이 행정장관의 무리에 쫓기다가 싸우고 있었단다. 조슬린은 병원에서 몰래 나와 수도원에 들어온 거야. 이베타를 만나 도망가려고 했던 것이지. 조슬린이 좀 성급한 성격인 것 같구나.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고 함께 도망치려는 마음은 알겠지만, 좀더 기다려서 때를 봐야 할 것 같은데, 젊은 혈기가 신중함을 내쫓았구나. 캐드펠 수사는 조슬린의 알리바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슬린이 돔빌과 피카르를 죽인 범인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어. 어바이스와 이야기를 해보니 돔빌이 어바이스와 함께 있던 시간에 이미 조슬린은 병원으로 도망가 있었고, 오늘은 캐드펠 수사의 조수인 마크 수사가 하루 종일 조슬린을 감시했기 때문에 피카르를 죽인 범인도 될 수 없었어.

조슬린과 행정장관의 무리의 싸움이 중지되자, 그제서야 캐드펠 수사는 피카르가 죽은 소식을 알렸단다. 그러자 피카르 부인은 슬픔에 분노를 하며, 갑자기 사이먼을 붙잡고 범인이라고 소리를 질렀단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는데, 피카르 부인은 사이먼과 피카르 사이에 있던 일을 이야기했어. 사이먼은 자신이 이베타와 결혼을 할 수 있도록 피카르와 거래를 하려고 했다는 거야. 그리고 피카르에게 협박을 하다가 말다툼까지 했다는 거지. 사이먼은 사실 이베타를 짝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돔빌 남작도 죽였던 것이란다. 어바이스가 캐드펠 수사에게 이야기했던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도 사이먼이었고 명백한 증거도 찾았단다.

그렇게 범인을 찾아내고 사건을 일단락되었지만, 캐드펠 수사는 피카르의 진짜 범인은 다른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했어. 캐드펠 수사는 나환자 라자루스를 찾아갔단다. 그를 보자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이었던 거야. 이전 시리즈를 이야기하면서 캐드펠 수사가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었다고 했잖아. 그때 예루살렘에서 활약하던 기마르 드 마사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라자루스였던 거야. 그는 포로로 잡힌 후 나병에 걸리고 만 거야. 나병에 걸려서 포로로 풀려난 이후로도 가족들을 만나지 못했던 거야. 그리고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손녀가 못된 후견인의 손에 키워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지. 그 손녀가 바로 이베타였던 거야. 그 전에도 알게 모르게 손녀를 지켜봐 주고 있었던 것이란다. 그리고 이베타가 사랑한 조슬린도 잘 보살펴 주었던 것이란다. 손녀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후견인을 제거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거야. 아무도 모르게 말이야. 이 사건이 해결되고 라자루스는 마을에서 사라졌단다. 어디선가 거리를 두고 손녀를 지키고 있지 않을까 싶구나.

캐드펠 수사 시리즈 5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단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흥미진진해지고, 주인공인 캐드펠 수사의 매력에 점점 빠지게 되는구나. 다음 이야기는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는지 기대해보자꾸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1139 10월의 어느 월요일 오후, 수도원 문지기실을 나선 캐드펠 수사는 자신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기 전에 뭔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책의 끝 문장: 분명한 게 있다면 이제 그가 영원히 슈루즈베리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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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옥주, 너는 찾았니?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 줄 줄 알았던, 바깥에서 얻어 온 상처를 감싸줄 줄 알았던, 언제든 돌아갈 둥지인 줄 알았던 하나뿐인 부모가 우리의 삶을 종말로 만들려 했던 이유.


(98)

밑동이 휘어진 나무는 그대로 휘어진 채 자란다. 기둥에 파인 흉터는 회복되지 않고 덮어버리는 방식으로 흉터 위에 벽을 세운다. 그건 새살이 돋아 상처가 아물어 사라지는 회복과는 다르다. 그래서 상처 입은 나무를 자르면 나이테에 흉터 자국이 혹처럼 남아 있다. 어느 시절에 받은 상처인지 보인다. 상처를 평생 품고 산다. 아물지 않은 채로, 붕어빵 가게 뒤에 습해진 여름 날씨에 썩어 죽어버린 보호수에 있었다. 300년이 넘게 산 나무였는데, 밑동이 휘어져 반쯤 기울어진 채 자란 이상한 나무였다. 소문에 의하면 도시 개발 때 나무를 뽑기 위해 밑동을 자르던 중 인부들이 연달아 죽는 일이 일어나자 저주받은 나무라며 자르기를 멈췄는데 그 상태로 다시 자랐단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저주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나무였다. 그렇게 보호수는 이 마을의 터주신처럼, 액막이처럼 자리 잡고 있다가 어느 날 돌연 하루아침에 썩어버렸다. 묵호의 필리핀 출국 이틀 전의 일이었다.


(130)

꼭 날아야만 새인가? 우리를 정확히 분류하려면 공룡까지 거슬러 올라 가야 해. 고작 인간 따위 따위 뿌리의 깊이가 달라. 우리에겐 날개와 부리가 있어. 알을 낳지. 그런 여러 특징이 있어. 하지만 날개가 꼭 날기 위해 있다고는 할 수 없지. 모든 인간이 자기 신체를 전부 활용하며 사는가? 사용하지 못하면, 인간이 아닌가? ‘비행은 날개의 활용일 뿐, 새의 정의가 될 수는 없지. 마찬가지로 보행언어, 다리와 입의 활용일 뿐 인간 본질이 될 수 없지.


(145)

엄마의 상태를 모르는 사람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결혼했다고 하면 배우자와 아이가 당연히 존재한다는 법칙이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들이 정상 범주에서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확고한 믿음 안에서, 그러니까 그것이 낮과 밤이 존재하는 것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물어봐. 아빠는 그런 경우가 더 어렵고 힘들었단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설명을 하는 게 맞는 건지, 굳이 꼭 모든 걸 말해줘야 하는지, 어차피 한 번 이야기 섞고 말 사람이라면, 상대방이 나를 위로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거나, 나 역시 위로에 고마워하는 시늉을 하지 않는 편이 더 좋지 않을지그래서 자주 거짓말을 했어. 아빠도, 지난 설에는 여행을 간 척,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평범한 가정과 다를 게 없는 하루인 척, 부동산과 주식이 삶의 가장 큰 고민인 척, 뱃살을 빼야 하는데 술 줄이는 게 제일 버거운 일인 척


(146)

이런, 아빠가 너무 나약한 소리를 하는구나. 아빠가 이럴 때마다 이해해 줄 수 있니? 사실 나약한 소리처럼 들렸겠지만, 이건 정말로 약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야. 더 단단해지기 위해 마음에 낀 거품을 빼는 거란다. 거품을 뺄 줄 알아야 해. 그래야 밀도가 높아져.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거품을 빼는 과정은 필수야. 그러니 아빠가 하는 나약한 말들을 깊이 새기지 말고, 여러 번 곱씹지 마. 온도가 높아지면 지워지던 펜 기억나? 그 펜으로 쓴 문장이라 생각해. 제비의 따뜻한 온기가 닿으면 거품이 다 터져버려 사라지는 문장들이야.


(149-150)

아빠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은, 행동하지 않았다면 마음을 먹은 것만으로는 죄가 될 수 없다는 거다. 마음마저 순결한 사람을 적어도 아빠는 살아오면서 본 적이 없다. 단지 순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과 노력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열매 같은 거란다. 씨앗은 같지만 어떤 과육은 싱그럽고 어떤 과육은 썩어 있지. 또 어떤 건 달기도 하고 어떤 것은 쓰기도 하지. 떫기도 하고, 혀를 아리게 만들기도 해. 같은 씨앗이 모두 같은 맛을 내지 않는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러니 중요한 건 씨앗보다 과육이야. 마음보다 보이는 모습이 어떤지가 더 중요한 법이야. 아빠가 늘 말했잖니. 사람들의 친절은, 그냥 친절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그 속에서 어떤 안타까움이나, 어떤 우월함이나, 어떤 기만이 들어 있다고 한들 우리가 그것까지 들여다볼 필요는 없다고. 엄마도 마찬가지야. 엄마가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 엄마는 그저 종일 누워 하늘만 바라볼 뿐이니까. 그러니 엄마가 심심해할 거라고, 외로워할 거라고, 슬퍼할 거라고 생각해서 너 스스로를 죄인으로 만들지 말기로 아빠랑 약속했잖니.


(156)

엄마는 이제 숨으로 우리랑 대화할 거야. 그러니 잘 듣고, 온몸으로 기억해 둬. 아가가 가장 가까이서 들었던, 한때 너의 숨이기도 했던 숨의 말을 잘 들어야 해. 말로 하지 않아도 그 숨에 모든 말이 새겨져 있으니까. 어렵지 않아. 집중의 문제지. 긴장할 때 숨은 빨라지고, 편안할 때 숨은 느려지고, 두려울 때 숨은 딱딱해지고, 슬플 때 숨은 축축해진단다. 화가 날 때 숨은 잘게 쪼개지고, 답답할 때 숨은 미지근해진다. 욕망할 때 숨은 뜨거워지고 낙담할 때 숨은 미지근해진다. 사랑을 느낄 때 숨은 찬란해지고 그리움을 느낄 때 숨은 잠시 멈춘단다. 그리고 이런 숨은 코나 입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야. 아빠는 엄마의 손바닥과 발바닥에서, 어깨와 등에서도 숨을 느낀단다. 특히 엄마처럼 숨으로 소통하는 인간들은 더 잘 느낄 수 있어. 엄마 품에 안겨봐. 아가를 가장 온전하게 안고 있던 품. 한때 아가의 전부였던 품. 오르락내리락하는 숨의 리듬을, 아가가 영원히 기억했으면 좋겠어. 아빠는 그럴 거거든. 그럴 수 있거든.


(195)

태어난 게 벌이 될 수는 없어. 살아 있는 게 죄인 사람은 없어. 오해하지 마. 가끔 벌처럼 느껴질 땐, 등을 봐. 그 사람의. 노윤이의. 한참 동안 바라보면 햇살에 반짝이는 털들이 보여. 특히 뒷덜미에. 숨을 쉴 때마다 그것들이 움직여. 광대에도 털이 나 있어. 반짝여. 어깨가 미세하게 위로, 아래로, 또 위로, 다시 아래로숨을 쉴 때마다 바뀌어. 표정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어서 더 편하고 때로는 슬퍼. 얇은 옷에 앙상하게 튀어나온 척추가 보여. 오돌토돌. 가녀리지만 단단함이 느껴져. 뼈로 당장 무너질 것 같은 몸에도 이토록 단단한 뼈가 있구나. 무너지지 않겠구나. 나약하지 않구나. 살아 있구나. 살아 있는 걸 마음에서 죽이지 말아야지. 살아 있는데 미리 죽이지 말아야지. 살아 있다는 것만 생각해야지.”


(206)

우주를 정의 내린 건 인간이잖아요. 저 밖에 있는 공간을 우주라고 부르자고. 저기에 우주가 있다고. 더 큰 것에 작은 것이 담기는 게 진리니까. 우주는 제 안에 인간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팽창하지만, 인간은 우주를 알고, 우주를 명명하고, 우주를 헤아리려 하잖아요. 사람들은 우주에 우리가 속해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대예요. 우주가 우리 뇌에 담긴 거예요. 더 큰 쪽이 늘 작은 걸 이해해요. 더 큰 게 언제나 더 고요하고, 잠잠하고, 잘 견뎌요. 노윤이요,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어요.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참고, 견디고 있어요. 세상이 노윤이를 이해하는 속도보다 노윤이가 세상을 훨씬 빨리 이해했으니까.’


(267)

하늘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바다는 변하지 않거든. 변덕이 심해. 종잡을 수 없어. 하지만 파도가 닿지 않는 바다 깊은 곳은 묵묵해. 아름다워. 휩쓸리지 않아. 지구의 대부분은 바다였어. 지구는 원래 묵묵해. 담담하고. 하지만 변했어. 인간이, 그렇게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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