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45)

결혼을 잘하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네 방법도 나쁘지 않아. 어떻게든 돈 많은 남편을 구하겠다든지, 시집을 꼭 가야겠다고 결심했다면 나라도 그런 방법을 택했을 거야. 하지만 언지의 감정은 그런 게 아니야. 언니는 계획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게 아니거든. 언니는 지금 자기가 그 남자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 건지, 그런 감정이 바람직한 건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단 말이야. 언니가 그 남자를 안 지 고작 보름밖에 안 됐어. 메리턴에서 그분과 네 번 춤을 추었고, 그 사람 집에서 아침에 한 번 본 적이 있고, 그 후로 네 번인가 같이 식사를 했지. 그 정도로 언니가 그 남자를 파악할 수는 없는 거잖아.”

 

(106)

사실 제겐 배려심이 부족합니다. 세상을 편하게 살아가기엔 너무 고집이 세죠. 저는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은 행동이나 부족한 점을 빨리 잊지 못합니다. 저에게 무례한 사람들의 행동 역시 마찬가지죠. 그런 감정을 없애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더군요. 저는 남을 잘 용서하지 못하는 성격인 것 같습니다. 한번 잘못 본 사람은 끝까지 좋아할 수가 없으니까요.”

 

(238)

아까 다른 일에 대해서도 언급했지?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나도 알아. 그렇지만 그 사람을 비난하거나 그 사람에게 실망했다는 말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말아 줘. 그쪽에서 고의적으로 우리에게 상처를 준 거라고 생각하진 말자. 그건 너무 성급한 판단이야.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가 항상 신중하고 사려 깊은 행동만 할 거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거잖아. 자신의 허영심 때문에 스스로 속는 일도 많을 거야. 여자들이 남자들의 관심을 너무 부풀려서 받아들이는 게 문제야.”

(271)

숙모, 정말 너무 기뻐요! 숙모는 제게 새로운 활기와 생기를 선사해 주셨어요. 절망과 우울은 이제 그만 안녕을 고해야죠. 바위와 산 같은 자연에 비하면 남자 따위는 하잘것없는 존재예요. 정말 멋진 여행이 될 거예요. 우리는 자기가 무얼 봤는지 제대로 설명도 못하는 여행자는 되지 말아요. 우리가 갔던 곳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훤히 꿰고 있어야 해요. 호수와 산과 강이 머릿속에서 마구 뒤엉키게 해서는 안 돼요. 어느 곳의 경치를 묘사할 때도 서로 엇갈린 주장을 하면서 말씨름을 해서는 절대 안 되죠.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자기감정에 빠져서 지루한 여행담으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그런 여행자가 되면 절대 안 돼요.”

 

(599-600)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전 그런 확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저는 그런 협박에 겁먹어서 부당한 일에 응하지는 않습니다. 영부인께서는 다아시 씨가 따님과 결혼하기를 바라시지만, 제가 원하시는 확답을 드린다고 해서 두 사람의 결혼 가능성이 커지는 건 아니겠죠. 그분이 제게 마음이 있으시다면, 제가 그분의 청혼을 거절했다고 해서 따님에게 청혼을 할까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영부인꼐서 제게 이런 부탁을 하시는 것부터 상식에 어긋난 일이고 더욱이 그런 부탁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도 전혀 설득력이 없군요. 제가 이런 논리에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셨다면 저를 대단히 잘못 보신 겁니다. 조카분께서 영부인이 이 문제에 관여할 권리는 분명 없으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 부디 더 이상 이 문제로 절 괴롭히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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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구원
에단 호크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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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는 인터넷 서점에서 책서핑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란다. 시간 내서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새책 향기를 맡으면서 책을 보는 것도 좋겠지만, 집에서 편히 앉아 인터넷 서점에서 책들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단다. 곧바로 다른 사람들의 평도 볼 수 있고, 관련된 책도 금방 찾아볼 수도 있고 말이지. 그렇게 인터넷 서점에서 책서핑하다가 지은이에 낯익은 이름이 보였단다. 작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 유명한 영화배우로 알고 있는 사람이었어. 에단 호크. 설마 동명이인인가, 싶어서 클릭해봤더니, 아빠가 알고 있는 그 영화배우더구나. 아빠가 고등학교 때 재미있게 본 <죽음 시인의 사회>에서 앳띤 모습으로 처음 본 에단 호크.. 어느덧 세월의 묻은 나이가 되어 있더구나. 그래도 꽤 멋져 보이는 외모.. 역시 영화배우라는 생각을 들게 하더구나. 그런데 그런 에단 호크가 책을 썼다고? 책 소개를 읽어보니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이미 여러 권을 썼다고 하는구나. 글쓰기에도 재능이 있는가 보구나. 책의 제목은 <완전한 구원>이란다. 제목만 봐서는 무슨 내용인지 감이 오질 않았는데, 읽어보니 연예계에 있을뻔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단다. 조연급 영화배우와 세계적인 록스타가 부부일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싶구나. 그럼 바로 책 이야기를 해줄게.

 

1.

주인공 윌리엄 하딩은 32살로 주연급 배우와 조연급 배우 사이 어딘가에 포지션을 잡고 있는 영화배우야. 윌리엄의 아내 메리는 세계적인 록스타로 윌리엄보다 훨씬 많은 인기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단다. 둘 사이에는 아들과 딸이 있어. 예전에는 둘이 뜨거운 사랑을 했겠지만, 지금은 그 사랑마저 식어서 별거 중이란다. 윌리엄은 남아공에서 영화촬영을 마치고 연극 준비를 위해 뉴욕으로 돌아왔단다. 그런데 얼마 전 남아공에서 어떤 여자와 바람을 핀 것이 기자한테 걸려서 신문에 실려서 난감한 상황으로 귀국을 했단다. 가뜩이나 아내와 사이가 안 좋은 시기에 이런 스캔들까지 퍼졌으니 이래저래 신경 쓰이겠구나.

그가 뉴욕에서 처음 하는 연극은 셰익스피어 원작의 <헨리 4>라는 연극인데, 주연은 아니고 비중 있는 조연을 받았단다. 주인공은 오스카 수상 이력이 있는 버질이라는 사람이야. 마지막 리허설까지 감독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버질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감독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어. 하지만 감독은 윌리엄을 따로 불러 칭찬을 해주었는데, 그렇게 목을 쓰다가는 일주일 공연을 마무리하지 못하니 조심하라고 했단다. 이 소설은 대형 연극이 어떤 식으로 준비되고, 어떤 식으로 열리는지 상세히 기술되어 있단다. 윌리엄의 스캔들은 당연히 아내 메리의 귀에도 들어갔어. 메리로부터 전화가 와서 윌리엄을 사과를 하려고 했지만, 차갑게 끊으면서 일단 만나자고 했어.

메리와 만남. 메리는 이혼 관련 이야기를 아주 냉정하게 했단다. 그러면서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고 했어. 연예계에서 결혼과 이혼은 보통 사람들보다 좀 쉬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윌리엄과 메리 같은 커플이 실제 있고, 그들이 이혼을 한다고 해도 크게 놀랄만한 소식은 아닐 거야. 지은이 에단 호크 자신도 그런 경력이 있으니, 그런 경험들이 이 소설 속에 녹아있지 않을까 싶구나.

….

그러나저러나 초연의 날이 밝았어. 다들 긴장했지만, 초연은 대성공이었단다. 언론에서는 연극과 배우들에 대한 비평이 쏟아졌지만, 윌리엄은 그런 비평 기사를 보지 않았단다. 연극 공연 기간 동안은 연극에 집중했어. 그가 연극 이외에 또 하나 집중하는 것은 아들과 딸이었단다. 비록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지만 아들과 딸에게만은 진심이었단다. 윌리엄은 여전히 아내와 재결합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연극에 아내가 와 주길 내심 바랬단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치고는 행동은 전혀 다르게 하더구나. 성에 대해서 개방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여자와 잠도 말이야.

 

2.

첫 공연이 성공적인 공연이긴 했지만, 윌리엄은 배에 작은 상처를 입었단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냥 공연을 했어. 이번 연극은 일주일에 여덟 번 공연하는 일정으로 육 개월 간 이어진단다. 하루에 두 번 공연이 이틀 있었고, 월요일은 쉬는 일정이었지. 그런데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 상처가 염증이 나고 그대로 방치했다가 오렌지 만한 크기로 곪고 말았어. 고열까지 발생하여 윌리엄을 결국 병원에 갔단다. 의사는 곧바로 수술해도 하고 최고 2일은 쉬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연극을 할 수 없게 되었어. 윌리엄을 반드시 공연을 해야 한다고 방법을 찾아달라고 했어. 방법은 한 가지. 마취 없이 수술하고 처치하면 바로 퇴원할 수 있다고 했단다. 연극을 위해 윌리엄은 마취 없이 그 고통을 참아가며 수술을 마쳤단다. 그렇게 연극을 계속 할 수 있었어. 물론 이런 갑작스러운 배우의 공백을 위해 주요 배역은 예비 대역 배우들이 있단다. 윌리엄은 자신의 역을 예비 배우에게 넘겨주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생각하여 기필코 자신이 무대에 오르려고 했던 의지도 마취 없이 수술을 하게 했단다. 연극을 하다 보면 이런 저런 일이 생기는 법.

어느 날 밤, 에드워드라는 배우가 무대 위에서 심장발작을 일으켰어. 연극은 중단되었고, 관객 중에 의사가 무대 위로 올라와서 긴급 조치하는 해프닝도 일어났어. 의사의 도움으로 그 배우는 다시 깨어나서 병원으로 호송되고, 마지막 공연에 다시 무대로 돌아올 수 있었단다. 소설은 경험을 바탕으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에단 호크는 주변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구나. 윌리엄은 에드워드에게 병문안을 갔는데, 에드워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식상하지만 인생은 곧 연극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 외에 좋은 말들이 많이 있었단다. 이 소설의 주제라고 할 수도 있는 글들이었어. 지은이 에단 호크가 이 소설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들이 소설 속 에드워드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구나. 아래 글도 그 중에 일부인데, 에드워드와 윌리엄이 나눈 대화들은 마음에 새겨볼 만했단다.

===============

(316-317)

모든 결정이 중요하네. 어떤 때는 시간이 휙휙 지나가고 달력의 페이지가 달라져도 우리는 매일 하는 사소한 일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자신을 속일 수 있어아니면 모두 미리 예정된 거라고 속이거나. 하지만 아니야.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딛고 걷는 걸세. 햄릿의 대사를 연습한다면, 아주 많이 연습한다면, 무대에서 때가 됐을 때 그 대사를 관객에서 잘 전달할 수 있겠지. 연습하지 않으면 전달하지 못할 테고. 운은 의도의 잔재야. 아버지가 아들 옆에 있어주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면그 아들이 무사히 자랄 가능성이 높아. 알겠나?” 그는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병원의 하얀 불빛이 검버섯이 핀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때렸다. “내 말은, 건강한 결혼 생활을 하려면 두 사람이 힘을 합쳐야 되지만, 좋은 아버지가 되는 건자네 노력만으로 충분하다는 거네.”

===============

육개월 동안 이어진 공연은 더 이상 큰 사고 없이 잘 마무리되었단다. 주인공 윌리엄의 배우 생활에 괜찮은 이력이 하나 쌓였을 것 같구나. 매번 공연 때마다 아내 메리가 왔나 관객석을 두리번거렸지만, 끝내 나타나지는 않았단다. 윌리엄은 인생의 한 개의 막을 닫고, 새로운 막을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구나.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났단다.

에단 호크의 다른 책들은 어떤 책들이 있는지 한번 찾아봐야겠구나. 문득 너희들과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를 같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화면이 올드해서 너희들이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ㅎㅎ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영화 촬영이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항상 차를 불러주는 것을 깜박 잊어버린다.

책의 끝 문장: 보이는 것은 새로 뻗은 계단뿐이다.

 

 


내 삶을 돌아보면 볼수록 서부영화의 정교한 세트장처럼 보였다. 언뜻 보면 모든 것이 고풍스럽운 진짜 같고, 수수께끼와 가능성이 가득한 것 같다. 방금 바람에 불어온 고운 흙먼지, 나무로 만든 낡은 스윙도어, 물결무늬처럼 일그러진 유리창, 손으로 그린 간판, 이 모든 것이 모험을 약속한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늙은 카우보이들이 포커를 치고 비극적인 술집이 아니다. 그냥 합판으로 지은 빈 건물일 뿐이다. 난방기 옆에서 기술자가 토마토수프를 끓이면서 곰 오양 젤리를 한 입 먹고, 비타민 C를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여기서 무슨 사건이 벌어지는 일은 없다. 그냥 몇 사람이 여기저기 서서 라테 한 잔을 바라고 있을 뿐이다. - P153

나는 예술을 위한 전쟁에 나선다. 세상이야 마음대로 생각하라지. 세상이 널 실패작이라고 단정할지도 모른다. 네 가슴에 주홍 글씨를 꿰미 달고, 너를 가리켜 천박한 협잡꾼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등 뒤에서 속삭이듯 조롱을 던지는 소심한 목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 저들이 너를 미워해서, 라디오 토크쇼에 나가 온 나라 사람들에게 수다를 떨어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 모두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 - P248

에드워드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비단처럼 매끄럽고 연륜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무서워할 것 없네. 자네가 공연에 한번 빠지더라도 세상에는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자네도 마찬가지고. 자네 지금 자신의 두려움에 지고 있어. 자넨 이 공연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가 아닐세. 나도 그렇고, 버질도 그래. 공연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지만,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공연에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아. 대역들의 리허설을 봤는데, 특히 스코티의 연기가 아주 좋더군." - P312

끝났다. 다시는 없을 것이다. 배우 서른아홉 명이 땀방울이 무대 위에 문자 그대로 흩뿌려져 있고, 나무로 된 세트 곳곳에 누군가가 긁어서 표시한 자국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이제 쓰레기통행이었다. 의상의 솔기에 붙여두었던 우리 각자의 이름이 뜯겨나갈 것이고, 의상은 대여점으로 돌아가 언젠가 또 다른 배우가 입게 될 날을 기다릴 것이다. - P333

지난 몇 달 동안 내 결혼 생활이 무너지는데도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면 아내 곁에 머물러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새로 내리는 눈의 가벼움 속을 걸으면서 나는 정말로 그녀를 사랑하지만 헤어질 거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었다. 세상에 그녀 같은 여자는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나를 바친 것. 이 아이들을 얻은 것은 똑똑한 행동이었다. 이렇게 놀라운 아이들의 아빠가 된 나는 행운아였다. 하지만 결혼 생활이 모종의 이유로 나를 헝클어놓았기 때문에 곧게 펴질 필요가 있다는 사실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나는 우리 결혼 생활을, 우리 사랑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자신의 노력으로 아름다운 깃털을 갖게 됐다고 생각하며 우쭐거리는 공작새 같았다.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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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2-28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단 호크가 본인이 주연한 영화 원작 만큼의 소설만 쓴다면 대성공이겠네요. 워낙 좋은 영화가 많아서...

bookholic 2025-12-29 13:52   좋아요 0 | URL
영화가 나은 것 같아요 ㅎㅎ
 















(36)

알렉스가 겪은 건 카그라스증후군으로, 1923년에 이 병증을 처음 기록한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 조셉 카그라스의 이름을 따 명명한 이상증이다. 환자는 배우자, 자녀, 부모, 형제 등 가까운 사람들이 저도 모르는 새 똑같이 생긴 사기꾼으로 바꿔치기 되었다고 믿는 독특한 일탈 행동을 보인다. 환자는 대개 외관이나 행동의 사소한 차이점, 혹은 환자 자신도 잘 설명하지 못하는 특정할 수 없는 특징을 들어 사기꾼과 진짜사이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40)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또 일관적일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신경 구조가 제대로 기능해야 인간은 비로소 이해 가능한 세계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기계 부품과 마찬가지로, 이 신경 구성요소도 고장 날 수 있다. 단 한 번의 사건, 즉 두부 외상이나 뇌졸중, 종양이 발생하는 것만으로도 이번 장에서 본 환자들처럼 될 수 있다. 더욱이, 의식적 인식 능력이 손상되면 단지 나의 가족이나 친구를 알아보는 인지적 기능만 망가지는 게 아니다. 다음 장에서는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자시 신체의 형태와 구조, 그리고 그 신체의 주인이 속한 인간이라는 종에 관한 지각을 왜곡하는지 알아볼 것이다.

 

(89)

강박 사고와 강박 행동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뇌에 관한 통제력을 잃을 수 있는지 다시금 일깨워 준다. 환자들은 자신의 생각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으며 짜증날 정도로 달갑지 않은 행동부터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고통스러운 행동까지 심각한 수준의 행동들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고 호소한다. 이러한 생각과 행동은 환자 스스로 원하는 것이 아니지만 자발적으로 발생한다. 마치 악덕한 선동가가 뇌 안에 들어앉아 우리 행동을 조종하는 것과 비슷하다. 신경과학 연구가 강박장애에 관한 사실들을 밝혀내 환자들의 생각과 삶의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게 도와줄 날이 빠른 시일 내에 왔으면 한다.

 

(129)

성도착증의 신경과학적 논의도 쉽지 않다. 소아성애와 같은 문제 있는 성적 행동을 신경생물학적 이상의 탓으로 돌린다면 충동을 실행으로 옮긴 사람에게 범죄에 대한 면죄부를 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소아성애자가 자신의 행동을 뇌종양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면, 만일 소아성애자가 자신의 행동을 뇌종양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면, 이들은 행위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걸까? 이 질문에는 더 깊은 철학적 논의가 필요하지만, 소아성애자의 뇌가 소아성애적 행동을 일으킬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음이 밝혀진다고 해서 범죄를 저지른 인해 죄가 없는 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정상적 뇌 활동으로 인해 소아성애적 관심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기까지 무수한 결정을 내려야 하며 (오늘날 개인의 책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바탕으로)그 모든 결정에는 도덕적 책임이 뒤따른다.

 

(148)

투쟁-도피 반응은 공포를 느끼거나 극도의 긴장을 느낄 때 심박수가 올라가고 혈압이 상승하며, 숨이 가빠지고 동공의 확장되는 등 우리가 이미 잘 아는 신체적 변화를 일으킨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즉시 행동할 수 있도록 산소가 풍부한 혈액을 근육으로 더 많이 보내고 주변 사물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동공을 확장하여 도망가든 싸우든 조치를 취하게끔 우리 몸을 대비시키기 위해서다. 동시에 현재 상황에서 에너지 쏟을 필요가 없는 과정을 억제하는 역할도 한다. 방광수 수축(싸우는 중에 오줌을 지린다고 무척 안타깝지 않겠나)이나 소화 같은 것 말이다.

 

(168)

19세기의 의사들이 환자를 속이거나 사기를 치려고 플라세보를 사용한 건 아니었다.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진짜 약이 충분하지 않을 때 플라세보마저 없다면 의사가 환자에게 줄 수 있는 건 선의의 조언뿐이었다. 의사들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것보다 증상을 완화해 주리라 여겨지는 유형의 물질을 지급하는 편이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았다. 일부 추정하는 바에 따르면, 당시 내과의들은 다른 모든 약을 합할 것보다 플라세보를 더 자주 사용했는데, 이 관습은 환자를 속이는 행위라는 인식으로 인한 윤리적 불편감이 퍼지게 된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졌다.

 

(169)

이와는 별개로, 비처의 발견은 임상 의학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 발견은 플라세보 효과가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다는 점은 물론, 약의 효능이 상당 부분 플라세보 효과에 기인한다는 점을 암시했다. 다시 말해 가짜 약을 먹고도 나아진다고 느끼는 이유가 나아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인 것처럼 진짜 약을 먹고 느끼는 효능의 일부 역시 약을 먹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나머지 효능은 약의 실제 성분 덕분이다)

 

(191)

명칭실어증은 대뇌피질의 여러 구역에 생긴 손상에 의해 발생한다. 특히 환자가 겪는 장애에 따라 손상 구역이 조금씩 달라진다. 동사를 잘 떠올리지 못하는 환자들은 대뇌피질의 전면부 근처에 손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높고 명사를 떠올리는 데 문제가 있는 환자들은 측두엽 근처에 손상을 입는 경향을 보인다. 더 세세하게 구분할 수도 있는데, 측두엽에서 어떤 영역에 손상이 생기면 사물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하고, 이와는 또 다른 영역에 손상이 발생하면 생물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하는 장애가 유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297)

당신의 뇌가 정상적으로 기능한다면, 축하한다.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기를 바란다. 뇌와 나머지 신체 기관이 영원히 멀쩡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인간의 뇌는 경이로운 유기적 기계이지만, 모든 기계가 그러하듯 언젠가는 고장 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할 수 있을 때 뇌의 모든 기능을 활용하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즐거움을 탐닉하고(절제하는 연습도 하고), 깊이 생각하고, 몸을 움직이자. 뇌가 허락하는 모든 일을 해 보자. 그냥 하지 말고 즐겁게 하자. 우리의 뇌를, 그리고 뇌가 우리에게 빌려주는 능력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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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스트라이크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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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초현실 세계의 판타지 소설을 주로 쓰시는 구병모 님의 <버드 스트라이크>라는 소설을 읽었단다. 아빠가 구병모 님의 소설이 이번이 세 번째인데 소재가 판타지를 포함하고 있었단다. 소설 제목 <버드 스트라이크>는 보통 비행기가 새떼와 충돌하는 것을 말하기도 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실제 새들, 아니 날개를 가지고 있는 종족인 익인(翼人) 들의 공격을 의미한단다. 소설 속 세상에서는 익인들은 고원지대에 살고 있고, 도시에 살고 있는 도시인들과 공존 또는 대립을 하며 지내고 있어. 도시를 이끌어가는 리더를 시행이라고 하는데, 3년 전 음독 사건으로 식물인간이 되었고, 그 사이에 시행의 아들 휴고가 시행대리를 하고 있었어.

휴고는 여동생 탄이 있었고, 탄은 약혼자도 있었단다. 식물인간이 된 시행의 수행비서 아마라가 시행대리인 휴고의 수행비서 일도 하고 있었어. 그리고 식물인간이 된 시행과 수행비서 사이에서 태어난 딸 루도 있었단다. 루는 전() 시행의 몰래 낳은 딸이나 다름 없기 때문에 외할아버지와 함께 시골에 따로 살고 있다가 얼마 전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도시에 와서 살게 되었어. 이 정도면 이 소설의 주요 인물 중 도시인들의 인물들은 소개한 것 같구나.

어느날 익인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도시를 습격해서 난동을 부리고 돌아갔는데, 17살 비오만 인질로 잡히고 말았단다. 비오는 자신을 감시하는 이들이 방심한 틈을 타서 루를 인질로 삼아 탈출에 성공했단다. 도망 가는 길에 도시와 고원 사이의 사막에 루를 내려주고 고원으로 돌아오려고 했지만, 루가 사막에서 정신을 잃는 바람에 익인들만 살고 있는 고원까지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단다. 익인들은 루를 보살펴주어 루가 깨어나긴 했는데, 어떻게 하면 오해를 사지 않고 도시에 데려다 줄 수 있는지 고민했단다.

비오의 쌍둥이 동생인 지요와 가하, 그리고 엄마 시와가 루를 잘 보살펴 주었단다. 루도 두려워하기보다 그곳 생활을 신기해하면서 그들과 잘 지냈단다. 고원지대의 지도자는 지장이라고 불렀는데, 고원지대의 지장도 루를 만났단다. 루는 고원지대에서 지내면서 익인들의 역사와 삶을 조금씩 알아갔단다. 예전에 익인들은 새들의 말들도 이해를 했는데, 익인들의 언어체계를 바꾼 이후는 새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어. 고원지대에서 나오는 물품들을 도시인들에게 팔기도 했어. 특히 은각마라는 신기한 새의 눈알인 은각안이 도시인들에게 인기가 많았어. 은각마가 죽은 후에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은각안은 정말 희귀했단다. 그런데 도시인들이 더 많은 은각안을 요구했어. 그러다가 보니 은각마를 일부러 죽이는 일까지 벌어지고 은각마는 멸종위기에 빠지게 되었어. 이렇게 도시인과 익인들 사이의 갈등이 점점 커지고 익인들이 도시인들의 시청사를 공격하게 된 것이었단다.

 

1.

익인의 주인공 비오에 대한 비밀을 하나 이야기해줄게. 비오의 아버지는 사실 도시인이었단다. 옛날에 길을 잃고 고원지대에 왔다가 비오의 어머니 시와를 만나 사랑했지만, 고향인 도시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란다. 그 후에 시와는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어. 고원지대에서 도시인의 아이를 임신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어. 익인들은 혈통을 중시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죽이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아기를 낫게 하되 그 아기는 커서도 혼인을 하지 못하게 하고, 아이도 낫지 못하게 하는 계를 내리자고 했어. 그러니까 도시인과 익인 사이의 아이는 비오 하나로 끝내자는 협의를 한 것이었어. 비오는 도시인과 익인 사이의 아이라서 그런지, 다른 익인들의 비해 키는 훨씬 크고 날개는 훨씬 작았단다.

고원지대에서는 18세 되는 해에 일종의 성인식이라고 할 수 있는 이행식 행사가 있었어. 비오를 비롯하여 세 명이 이행식을 받았어. 이행식은 바람이 강하게 부는 절벽에서 나는 행사를 하는데, 이는 용기를 심어주기 위한 행사였단다. 이행식이 끝이 난 이후에는 축제의 밤이 이어진단다.

한편 도시에는 무화라는 사설 군대가 있었어. 무화 군대의 회장은 유안이라는 사람인데 군대를 다루지만 합리적인 사람이었어. 하지만 유안의 아들 마이는 그렇지 않았단다. 마이는 이 소설의 거의 유일한 빌런으로, 고원지대의 익인들의 생체 비밀을 알아내어 군대에 이용하려고 했어. 그래서 익인들의 시신을 몰래 훔쳐오고 유골들도 수집하는 일을 벌였어. 그러다가 루를 납치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루를 납치해 간 비오를 찾으려고 고원지대에 군대를 보냈단다. 그 핑계를 대고 살아있는 익인을 납치해 오려는 목적이 컸어. 이것은 엄연한 고원지대와 도시 사이의 계약 위반이었어. 무화 군인들과 마주친 비오의 동생 가하는 자신이 비오라고 이야기하자, 무화 군인들은 확인 절차도 없이 바로 가하를 납치해 돌아갔단다. 마이는 데리고 온 익인이 비오가 아닌 것을 알고 군대를 다시 보냈어.

그 사이 비오도 가하가 사라진 것을 알고 루와 함께 무작정 도시로 향했단다. 오는 도중 무화 군인들을 만나 공격을 당했는데 이때 루는 등에 중상을 입고 비오는 다리가 부러졌단다. 비오는 자신의 날개와 온 몸으로 루를 감싸 안아 치료를 했단다. 이것은 익인들의 능력이었어. 날개나 몸으로 다친 사람을 감싸 안으면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이 있었거든. 그렇게 하여 루의 상처는 나았지만, 비오는 여전히 부상을 입어 날 수가 없었어 군대에 잡혀 도시로 끌려왔단다.

무화의 회장인 유안은 아들 마이와 사이가 안 좋았는데, 더욱이 자기 마음대로 군대를 이끌고 고원지대를 오가는 것 때문에 더 사이가 안 좋아졌단다. 유안은 마이 몰래 일단 루를 빼돌려 보살펴 주었는데, 루는 유안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비오의 아버지가 유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비오는 동생 마이를 구출하여 고원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도시 사람들과 익인들은 갈등을 봉합하고 다시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난제들이 많이 쌓여 있는데 잘 해결될 수 있는지 책장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어느덧 책의 마지막에 다다르게 되는구나.

약간의 해피엔딩과 약간의 언해피엔딩.

아빠는 판타지 소설도 가끔 읽긴 하지만, 현실 세계를 다룬 소설을 더 즐겨 읽고 좋아한단다. 그래서 구병모 님의 소설은 아직 낯설고 익숙지 않은 것 같구나. 작년인가 영화로도 만들어진 구병모 님의 <파과>라는 소설도 아직 읽지 않았는데 그 소설도 판타지 소설이려나. 기회가 되면 그 소설도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열사의 대지라도 한밤중에는 기온이 5도까지 떨어진다.

책의 끝 문장: 지금, 내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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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또 그런 빚을 물어주는 싸움은 아니라도, 윤직원 영감은 가끔 딸 서울아씨와도 싸움을 해야 합니다. 작은손자며느리와도 싸움을 해야 하고, 방학에 돌아오는 작은손자 종학과도 싸움을 해야합니다.

며느리 고씨하고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랑방에 있는 대복이나 삼남이와도 싸움을 해야 합니다.

맨 웃어른 되는 윤직원 영감이 그렇게 싸움을 줄창지듯 하든가 하면, 일변 경손이는 태식이와 싸움을 합니다.

서울아씨는 올케 고씨와 싸움을 하고, 친정 조카며느리들과 싸움을 하고, 경손이와 싸움을 하고, 태식이와 싸움을 하고, 친정아버지와 싸움을 합니다.

고씨는 시아버지와 싸움을 하고, 며느리들과 싸움을 하고, 시누이와 싸움을 하고, 다니러 오는 아들과 싸움을 하고 동대문 밖과 관철동의 시앗집엘 가끔 쫓아가서는 들부수고 싸움을 합니다.

그래서 싸움, 싸움, 싸움, 사뭇 이 여러 싸움을 근저당(根抵當)해놓고 씁니다. 그리고 그런 숱한 여러 싸움 가운데 오늘은 시아버지 윤직원 영감과 며느릴 고씨와의 싸움이 방금 벌어질 켯속입니다.


(241)

만일 오늘이 우리한테 새것을 가져다주지 않고 어제와 꼬옥 같은 것만 되풀이를 한다면 참으로 우리는 숨이 막히고 모두 불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어제와 같으면서도 (어제 치면서도 더 자라난) 한 다른 오늘 치를 우리한테 가져다주고, 그러하기 때문에 그리하는 동안 인간은 늙어 백발로, 백발은 마침내 무덤으로…… 이렇게 하염없어도 인류는 하루하루 더 재미있어간답니다.


(260-261)

사람은 누구 없이 뱀을 섬뻑 만나면 대개는 깜짝 놀라 몸이 오싹해지고, 반사적으로 적의와 경계의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오래오랜 조상, 즉 사전(史前)인류(人類)가 파충류의 전성기대에 그들의 위협 밑에서 수백만 년을, 항상 공포와 투쟁과 경계를 하고 살아오는 동안, 그것이 어언간 한 개의 본능이 되어졌고, 그러한 조상의 피가 시방도 우리 인류의 몸에 흐르고 있는 때문이라고 말하는 학자가 있습니다.


(263)

지주가 소작인에게 토지를 소작으로 주는 것은 큰 선심이요, 따라서 그들을 구제하는 적선이라는 것이 윤직원 영감의 지론이던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의 신경으로는 결코 무리가 아닙니다. 논이 나의 소유라는 결정적 주장도 크지만, 소작 경쟁이 언제고 심하여, 논 한 자리를 두고서 김서방 최서방 이서방 채서방 이렇게 여럿이, 제각기 서로 얻어 부치려고 청을 대다가는 필경 그중의 한 사람에게로 권리가 떨어지고 마는데, 김서방이나 혹은 이서방이나 또는 채서방이나에게로 줄 수 있는 논을 최서방 너를 준 것은 지주 된 내 뜻이니까. 더욱이나 내가 네게 적선을 한 것이 아니냐?...... 이것이 윤직원 영감이 소작권에 의한 자선사업의 방법론입니다.


(274-275)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守令)들이 있더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넌 다 지나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政事),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動兵)을 하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히여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것 지니고 앉어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잣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지가 떵떵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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