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통권 168호 - 2019년 9월~10월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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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녹색평론 168호를 읽었단다. 이번 호의 부제는 한일 갈등, 출구는 무엇인가란다. 그리고 앞면에는 이름 모를 식물이 하나 그려져 있었단다. 한일 갈등과 이 식물이 무슨 연관성이 있나? 라는 생각과 함께 책을 펼쳤단다. 앞면의 나온 식물은 한일 갈등과 관련 없는 꼭지에서 소개된 식물이었단다. 하기야 각 호의 부제와 관련 있는 사진을 표지로 잡은 적이 얼마나 있었다고아무튼 그 식물은 대마초로 유명한 대마라는 식물이란다.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이라 대마초를 키우면 경찰에 잡혀가고 대마초라는 것이 중독성이 강한 것이라는 인식에 이미지가 좋지 않단다. 대마초라고 하면 마약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거야. 그런데, 이런 대마의 사진을 녹색평론의 앞면에? 라고 의아해 하는 이라면 녹색평론을 많이 읽지 않을 사람일 거야. 몇 차례 대마의 의약적 활용 등 좋은 점을 소개했던 기억이 있단다. 이번 호에서는 대마를 그런 의약적 장점이 아닌, 무려 지구를 구하는 식물로 소개하고 있더구나.

대마에는 중독성이 없는 대마가 있다고 하는데, 그 대마의 쓰임새가 어마무시하다고 하는구나. 지구는 이산화탄소를 비롯하여 공기 중 탄소량이 급증한 상태라서,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손꼽히고 있는데, 이 대마는 그 어떤 식물보다 이산화탄소를 많이 흡수한다고 하는구나. 키우기 어렵냐? 그렇지도 않대. 아주 적은 양의 물만 있으면 잘 자란대.. 비료도 필요없대. 그 뿐만 아니라, 플라스틱으로도 만들 수 있는데, 대마로 만든 플라스틱이라면, 현재 플라스틱 공해의 아주 좋은 대안이 될 수도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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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대마 생산물은 생물다양성을 증진시킬 수 있고, 오늘날 1분에 트럭 1대분의 쓰레기가 되어 바다에 버려지고 있는 석유화학물질, 즉 플라스틱을 대체함으로써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다. 매년 100만 마리의 바닷새들이 플라스틱을 먹어서 죽고 있으며, 바닷새들 90%의 내장에 플라스틱이 들어 있다. 커다란 플라스틱 조각들과 햇빛과 파도에 의해 잘게 부서진 미세플라스택과 목욕세제와 세안제에 포함된 미세플라스틱 알갱이들은 바다의 스모그라고 불려지고 있다. 그것들은 몸속의 독성물질들을 흡수하고 먹이사슬 속으로 들어가 결국은 인간의 몸으로 들어간다. 그 모든 것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연분해가 가능하고 독성이 없는 대마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을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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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대마는 값싸고 질 좋은 종이를 만들 수도 있고, 바이오 연료로 추출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단다. 18세기만 해도 대마는 미국 농촌에서 많이 가꾸었다고 하는데,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위에서 이야기한 장점들 때문에 다른 경쟁 산업의 눈총을 받았고, 강력한 힘들을 가진 경쟁자들이 대마초라는 누명을 씌워 불법으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구나. 대마는 죽어가고 있는 대마를 살릴 수 있는 아주 쉬운 방법이라고 하는데, 많은 나라에서 지구를 살리는 목적으로 대마를 심었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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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 호의 주요 주제인 한일 갈등에 대한 꼭지들이 많이 있었단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는 지난 몇 십 년 간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 했다고 생각해. 그런데 최근처럼 관계가 좋지 않았단 적은 없었던 것 같구나. 그렇다고 한일 관계를 꼭 개선할 필요가 있나? 이런 생각을 드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아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단다. 일본에서 과거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다짐을 하고, 같이 잘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 보자는 자세로 나온다면, 물론 한일 관계가 좋아지면 좋겠지. 하지만 지금처럼 강압적이고, 과거 반성을 하지 않는 자세로 지들 잘났다고 하는 마당에, 뭐가 아쉬워서, 아니 아쉬운 것이 있어도 친하게 지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단다. 이웃도 이웃 같아야 이웃이지.

대부분 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들은 두 개의 큰 정당이 서로 번갈아 가면서 정권을 잡곤 하는데, 일본은 우익 정당이 오랫동안 정당을 차지는 것 같구나. 예전에 잠깐 진보 성향의 민주당에서 총리를 했었고, 줄곧 우익 성향의 자민당의 총재가 총리직을 맡고 있단다. 일본의 국민들은 왜 자민당의 보수 우익 전쟁광들을 좋아하는 것일까? 그들의 계략에 다 넘어간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섬사람들만의 무엇인가 있는가?

한일 관계에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인기를 먹고 사는 아베를 지지하는 일본 사람들이 꽤 있는 것으로 보아, 악화된 한일 관계는 앞으로도 꽤 유지될 것 같구나. 일본의 우파 세력은 그들이 요리하기 편했던 박근혜 정부의 종말을 무척 싫어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등장을 엄청 싫어했대. 어떤 일본 우익이 쓴 글을 이번 녹색평론에 실었는데, 황당하기 그지 없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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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박근혜는 뭐니뭐니 해도 5,000만 한국 국민이 선거로 뽑은 대통령이었다. 그게 고작 100만 명의, 그것도 북조선(북한)의 공작원이 관여했을지도 모르는 데모()의 의해 탄핵결의로 내몰렸다. 이것이 민주화의 발로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문재인 정권은 세계에서 가장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나라, 김정은의 북조선을 어떤 나라보다 지지하는 정책을 내걸고 있다. 그런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 정말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는가?” <산케이 신문>과 더불어 일본 보수우파의 대변지인 <요미우리신문> 등은 촛불시위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을 한국 민주주의의 승리가 아니라 미숙한 탓이라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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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일본 우익의 논조는 우리나라 가장 큰 야당의 자세와 비슷하다는 것이란다. 그들에게는 국민은 뒷전이고, 오직 권력을 되찾겠다는 욕망만 있는 것처럼 아빠는 보인단다. 그러니 만날 친일파 소리를 듣는 거지그럼에도 그들의 소리가 줄어들지 않는 것을 보면,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있어서 그런 것 같구나. 나라가 제대로 되려면 국민들이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말이야. 언론에 속지 말고, 정치인들에 속지 말지어라.

최근 일본의 우경화를 이끌고 있고, 한국과 적대적 관계를 이용하여 일본국민들의 지지를 먹고 사는 아베라는 이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 사람이 총리가 된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오래도 하는구나. 내각정치라고 하지만 총재 임기도 없는가? 이번 녹색평론에 아베에 대해 짧게 소개를 해주었는데, 읽는 내내 화를 돋구는 이력을 가지고 있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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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아베는, 일본군 성노예뿐만 아니라 난징학살 등 아시아태평양전쟁이라는 침략전쟁 중에 일본군이 저지른 온갖 전쟁범죄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그러한 역사적 진실을 은폐하려는 적극적인 활동을, 최초로 국회의원이 된 1993년부터 지금까지 26년에 걸쳐 일관되게 계속해왔다. 그 활동 내용은 정치적 반대 운동이라고 단순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만과 허위, 정치적 압력 등 온갖 사악한 수단을 동원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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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이 사람 참 위험한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단다. 전쟁하고 싶어 죽겠는데, 미국 등 주변국 눈치 보느라 참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런 이를 지지하는 일본 사람들은그와 같은 역사관과 전쟁관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하나전쟁하고 싶은데 못하고 있어서 스트레스 잔뜩 받아서 큰 병이나 생겨서 정치판에서 떠났으면 좋겠구나.

이번 녹색평론에 또 다른 꼭지에서 정치지도자가 마음에 새겨야 할 내용을 소개해 준 것이 있는데, 아베는 완전 반대로 하고 있는 것 같구나. 그런데도 한 나라의 총리를 하고 있다니.. 연구대상이구나. 이 궁금증을 풀어야 하나? 아베에 관한 책을 한번 읽어야 하나? 그런 사람에 관해 알려고 시간을 낭비해야 하나? 그냥 그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얼른 정치판을 떠났으면 좋겠구나. 우리나라 몇몇 정치인들도 말이야.

아참, 이 책에 나온 정치지도자가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아래와 같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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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지도자는 다음에 열거한 것을 마음에 깊이 새기지 않으면 안됩니다.

- 인류의 도덕률은 모든 국민이 기본적으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존엄에 대한 권리를 대등하게 보유하고 있다는 통찰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

- 이 인류의 도덕률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 혹은 자국민 혹은 자국의 이익추구보다도 우선적으로 지켜져야 한다는 것.

- 정치지도자는 타국의 국민도 자국민과 마찬가지로 인정해야 할 이익추구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 따라서 양보의 미덕, 절도와 자제 등 기본적 미덕은 도덕적 계율이며, 이들은 결코 방기돼서는 안되는 이성적 원리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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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더 이상 자본주의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가는 것 같다가도 그 자본주의의 족쇄에 벗어나서는 살 수 없다고들 생각하는 것 같아. 이젠 기후 변화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 최악은 막아보자는 것이 최선이 되어버린 것 같구나. 그렇게 최악이라도 막아서 인류가 잘 생존하게 된다면, 100년 뒤의 모습은 어떨까? 이번 녹색평론에서는 여러 꼭지를 할애하여 자본주의 이후의 세상으로 소농 공동체에 관한 글을 실었단다.

나중에 석유가 다 떨어지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몇몇 소수 공동체가 자급을 하면서 살아갈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어.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란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고, 인간다운 삶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오랫동안 자본주의에 물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아빠가 얼마 전에 예전 친구들을 오랜 만에 만났는데, 아주 잠깐 기후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 그런데 어떤 친구가 이야기 하기를 우리와 우리 아이들 세대까지는 괜찮다면서 별일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는 거야. 그리고 그 친구의 말에 동조하는 이들도 있고 말이야. 그들은 나름 정치적인 견해들이 진보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야. 이런 생각들이 현재 살고 있는 이들의 대부분의 생각이라면, 최악을 막아보는 것도 어렵지 않을까 싶구나. 지난 녹색평론에서 소개했던 폴란드 소녀 그레타 툰베리를 비롯한 전 세계의 10대들이 울부짖는 기후변화에 대해 어른들이 앞장서서 노력을 해야 하는데 말이야. 그레타 툰베리를 대놓고 외면하는 트럼프의 사진을 보고 얼마나 짜증이 나는지 모르겠구나. 너희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아빠들을 비롯한 지금의 어름 세대들을 얼마나 원망을 할까미안하구나.

이 책에서 100년 뒤 미래라고 하면서 이야기한 것이 있는데, 이런 모습이라도 되기 위해서는 기후변화에 대한 최악을 막아야 하는데, 그렇게 될지 모르겠구나. 그렇게 되었다 치고 100년 후의 모습을 미래 그려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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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92)

그럼 이제 100년 후의 사회를 농사를 중심으로 해서, 내부와 외부의 관점을 섞어서 묘사해보겠습니다.

(1) 인구가 3분의 1로 줄어도 농민은 국민의 과반이 넘습니다. 농지는 마을에서 공동소유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되며, 농민은 모두가 동경하는 직업이 됩니다.

(2) 많은 사람들이 먹거리를 중심으로 가능한 한 자급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외국으로부터 식량 수입은 거의 없어지고, 수출은 식량이 부족한 나라나 지역으로만 하게 됩니다.

(3) 돈이 없어도 먹고살 수 있는 보장을 마을에서 얻게 됩니다. 작은 상점가들도 활기가 넘칩니다.

(4)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효율을 경쟁하는 일은 없어지고, 애초에 경쟁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됩니다.

(5) 천지자연에 대한 몰입은 빼놓을 수 없는 관습이 됩니다. 도시에도 여기저기 농지가 조성됩니다.

(6) 천지유정의 풍경이 풍요롭게 되살아나서, 어디를 가더라도 아름답고 차분한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7) 마을의 천지자연으로부터 얻은 장작이나 낙엽, 잡초 등이 주요한 애너지원이 되고,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화석에너지는 중요한 분야나 재해시에 이용하도록 배당됩니다. 농업에 배당되는 것은 간척지의 배수펌프 정도일 것입니다.

(8) 수차나 퇴비의 열, 가스, 유채나 콩의 기름, 태양열 등이 잘 이용되고 에너지 소비 그 자체도 상당히 감소할 것입니다.

(9) 정치는 마을에서 자치가 이루어지고, 지자체 합병으로 거대해졌던 행정단위들의 영역은, 인구 수백에서 수천 단위로 재편성됩니다. 국가는 마을연합의 형태가 되고 그 기능은 극히 제한적이 될 것입니다.

(10) 수송기관은 주로 자력으로 움직이게 되고, 자동차는 제한된 분야에서만 사용됩니다.

(11) 유기농업이 당연한 농법이 되고, 농약이나 화학비료는 최소한으로만 사용합니다. 농업기술에서는 생산성을 부정하고, 천지자연의 은혜가 오래 계속되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심이 되게 합니다.

(12) 교육은 지역을 기반으로 재편성되고, 농사가 필수과목이 됩니다.

(13) ‘농본주의 유산을 인증해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관장지가 됩니다.

(14) 농사는 천지에 떠 있는 커다란 배가 되고, 모두 이 배에 함께 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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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은 이만 마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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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신생> 창간 20주년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의 끝 문장: 이러한 제한은 차별 요소가 없어야 하며, 오직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완전히 인정하고 존중하고 보장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민주주의사회의 공정하고 가장 필수 불가결한 요건에 부합하는 경우에만 제한을 두어야 한다.


지금 근대문명이 벼랑 끝에 이르렀다는 것은 누구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인류가 살아남고, 인간다운 삶이 최소한이나마 유지될 수 있는 상황을 지속시키려면, 근대문명을 넘어서 생태문명을 재창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생태문명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벽은 우리들 뇌리 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 고정관념, 즉 역사는 보다 나은 단계로 발전해간다는 이른바 발전사관과 이에 결부된 시대구분입니다. 근대문명의 본질을 정확히 포착하고, 생태문명을 재창조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발전이니 진보니 하는 관념적 장벽부터 깨뜨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 P8

그러니까 생태문명의 재창조란 ‘근대’가 이 세계를 전면적으로 지배하기 이전의 거의 모든 토착적 혹은 전통적인 삶의 복구를 통해서 또하나의 ‘비근대적 문명’을 창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복구는 단순한 복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근대’를 통과해오는 동안 불가피하게 손상된 자연적 및 사회적 질서를 수선, 치유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인류 사회에 축적되어온 갖가지 창조적인 지혜와 경험과 기술을 살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제가 ‘재창조’라는 용어를 강조하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 P10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 모리시마 교수는 그 이유를 ‘정치의 빈곤’을 들었다. "정치가의 일은 새로운 정치적인 아이디어를 창조하는 데 있다"고 보는 그는, 정치혁신 없이 이대로 갈 경우 일본은 고립돼 망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 정치의 빈곤을 떨쳐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동북아시아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것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밝아지고 경기가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며, 모든 6개 블록으로 나눈 동북아 공동체의 수도를 독립한 오키나와에 둔다면 남북한 분단이나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독도 등을 둘러싼 영토문제도 자동적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갈라파고스 일본에서 그런 생각이 가능할까. - P36

발전소 주변에는 여전히 극심한 비극이 진행 중이다. 사고 당일 ‘원자력긴급사태’가 발령되어 처음에는 3km, 다음에는 10km 그리고 20km로 강제피난 지시가 확대되었고, 사람들은 손에 잡히는 짐만 가지고 집을 떠났다. 가축이나 애완동물들은 버려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40~50km 떨어져 있어서 사고 직후에는 아무런 경고나 지시도 받지 않았던 지역민 아디테무라에는, 사고 후 1개월 이상이 지나고 나서 극도로 오염되었기 때문에 피난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마을 전체가 피난했다. 사람의 행복이란 대체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에게는 가족, 친구, 이웃, 연인과의 평온한 말이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 평범하게 이어지는 것이 바로 행복일 것이다. 그것이 어느 날 갑자기 중단된 것이다. - P89

- 인류는 그걸 왜 해결하려 안할까요. 지금이 아니라 미래의 일이라 그런가요? 이게 인류의 모순일까요?
이상하죠. 그러니까 인류는 자기 혼자나 가족이 먼저 죽는다고 하면 겁을 내는데, 다 같이 죽는 건 겁을 안 내더라구요. 공멸은 신경 안 써요. 인류의 모순이죠. 한계죠. 그러니까 호모사피엔스라는 게 현명한 인간이 아니죠. 바보죠. 공멸이 더 무서운 건데. 그야말로 다 죽잖아요.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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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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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정도전이 이성계를 찾아갔을 때 두 사람의 처지는 사뭇 달랐다. 이성계는 그동안 눈부신 전공을 세워 고려를 대표하는 무장으로 자리를 굳힌 상태였다. 그러나 정도전은 반대였다. 그 또한 뛰어난 능력을 갖춘 젊은 관원으로 중앙 정치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1375년 이인임 등이 이끈 친원배명(親元排明) 정책에 반대하다가 전라도 나주로 유배되었다. 3년 만에 풀려났지만, 그는 관직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이리저리 떠돌고 있었다. 그러니까 정도전은 9년이라는 짧지 않은 낙백(落魄)의 시간을 보낸 뒤 이성계를 찾아간 것이다.

(22)

어떻게 보면 정도전과 이성계 둘 다 고려의 아웃사이더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러던 이 둘이 만나서, 즉 붓과 칼, 사상과 무력이 만났기 때문에 이런 대업을 이룰 수 있었는데요.

저는 여기서 정도전이란 사람이 똑똑하다고 여겨지는 게, 자신이 갖고 있는 것과 잘하는 것(사상)을 알고 있는 것보다 자신이 못하는 것, 가지고 있지 않은 것(무력)을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이런 게 정도전의 천재성 같거든요. 자기가 갖고 있지 않은 걸 누가 갖고 있는지 알아내서 그 사람과 힘을 합쳤다. 이게 굉장히 인상적인 부분이었습니다.

(58-59)

, 사대문의 이름을 보면 인의예지가 다 들어가 있죠.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 돈의문(敦義門, 서대문)()’, 숭례문(崇禮門, 남대문)()’까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 있어야 하는데, 이 숙정문(肅靖門, 북대문)()’자에 꾀한다는 뜻도 있어서 이게 지혜 ()’자를 대신해서 쓰인 게 아닐까 추정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중앙에 보신각(普信閣, 종각)()’자까지 들어가서 인의예지신이 완성되는 거죠.

(67)

정도전의 생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한다이것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면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하려면 어떻게 애햐 하느냐? 모든 것을 왕에게 맡겨 둘 수는 없다. 능력 있고 깨끗한 사람이 권력을 장악해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이런 대원칙이 서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재상 중심의 정치(관료정치)라는 것이 <조선경국전>에 분명하게 제시되었던 것입니다.

(75)

15세기 세계 다른 지역의 역사와 비교해 볼 때, 지배층이 위민(爲民)이라는 분명한 목표와 그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점, 또 그걸 실천할 수 있는 여러 제도적인 장치를 잘 만들었다는 점에서, 저는 당시에 조선 말고는 그런 것들을 성취한 나라가 없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군사적으로 강력한 나라는 아니었지만 정말 백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 15세기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였다고 생각합니다.

(137)

저는 이렇습니다. ‘양녕대군은 조선 최고의 전성기 세종 시대를 연출한 최고의 조연이었다.’ 결국 양녕대군의 등장이 세종을 훨씬 더 빛나게 해 줬고, 또 양녕 자신이 세종의 마음을 상당히 편안하게 해 준 점도 인정해야 합니다. 만약 양녕대군이 정치적 변란에 휩쓸렸거나 역모 사건 같은 게 일어났다면 세종도 마음껏 정치를 펼치지 못했을 것니다.

(211)

아무리 좋은 취지와 내용을 가졌더라도 모든 변화는 일단 불편하다. 제도와 규모와 중요성이 클수록 변화의 내용과 불편의 정도도 커지게 마련이다. 국가 경제의 줄기라는 측면에서 공법의 도입은 지대하고 지난한 문제였다. 이런 사정은 전근대 한국사에서 독특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그 전까지 한 번도 시행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대규모의 의견 조사가 실시된 것이다. 조정은 1430 5개월 동안 전국 17만여 명에게 찬반 의견을 물었다. 그 때의 교통, 통신 같은 기술력과 행정력을 생각하면 인구 4분의 1을 대상으로 한 그야말로 방대하고 지난한 조사였다. 결과는 찬성 9 8000여 명, 반대 7 4000여 명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전라도와 경상도가 크게 찬성한 데 견주어 함길도와 평안도는 반대가 우세했다. 찬성이 더 많았지만 세종과 신하들은 공법을 서둘러 도입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루할 정도로 오래고 집요하게 제도의 장단점을 논의했다. 그런 과정을 거친 뒤에야 1441년 앞서 찬성이 우세했던 전라도와 경상도로부터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3년 뒤에 전국적으로 실시했다. 의견 조사부터 전국적 실시까지 15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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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문지 스펙트럼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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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 책은 SNS을 통해서 알게 된 책이란다. 이 책에 대한 호평과 지은이에 대한 호평이 있었어. 아빠는 모르고 있던 작가인데 말이야. 그래서 그의 책 몇 권을 덥석 샀단다. 다니엘 페나크. 20년 넘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어린이를 위한 책도 많이 출간하고, 어른들을 위한 책도 많이 썼다고 하는구나. 아빠가 이번에 산 다니엘 페나크의 책들 중에는 너희들을 위한 책도 있어. 나중에 같이 읽어보자꾸나.

그리고 제목이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처럼>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단다. 생각보다 무척 얇은 책이더구나. 아빠는 이 책을 펴기 전까지는 소설인 줄 알았어. 그런데, 에세이더구나. 본격적으로 책에 들어가기 전에 앞머리에 이런 문장이 써 있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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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이 책을 강압적인 교육의 수단으로 삼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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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에 관한 책인가? 그런데 교육의 수단으로 삼지 말라? 20년 넘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경력을 가진 지은이가? 호기심이 일었단다. 그리고 다음 장을 폈는데, 강력한 첫 문장을 만나게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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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읽다라는 동사에는 명령형이 먹혀들지 않는다. 이를테면 사랑하다라든가 꿈꾸다같은 동사처럼, ‘읽다는 명령형으로 쓰면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줄기차게 시도해볼 수는 있다. “사랑해라!” “꿈을 가져라!”라든가, “책 좀 읽어라, 제발!” “, 이 자식, 책 읽으라고 했잖아!”라고.

네 방에 들어가서 책 좀 읽어!”

효과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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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강렬한 첫문장이 아닐 수 없었단다. 현실을 꿰뚫는 비유. ‘읽다의 명령어는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는 말. 하지만,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명령어 중에 하나. 어쩌면 그 명령어로 인해 아이들과 부모들 사이가 점점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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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교를 들어가기 전 아이들은 대부분을 좋아한단다. 그러나, 학교에 들어가고, 나이를 하나 둘 먹고 나면 책읽기는 점점 흥미를 잃어가고, 사춘기에 접어들면 극에 달하게 된단다. 그러면 그때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명령어를 가장 많이 듣게 될 거야. 이 책은 왜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책읽기에 대한 거부 반응이 생겨났는지 알아보고, 다시 책읽기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단다.

지은이 자신이 학교 선생님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어낸 답을 알려준단다. 답안을 알기 전에 먼저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의 모습을 보자꾸나. 사춘기에 접어들게 되면 신체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같은 사람 맞나 할 정도로 큰 변화가 일어난단다. 그 변화는 대개 (부모의 처지에서 보면)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하게 된단다. 우리 아이는 안 그럴 거야. 하는 기대는 금물이란다. 우리나라에서도 2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잖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사춘기 학생들도 마찬가지인가 보구나. 다음을 한번 읽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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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그런데 이제 어느샌가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제 방에 틀어박혀, 읽지 않는 책을 마주하고 있다.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은 아이의 열망이 아이와 펼쳐진 책 사이에 희뿌연 막이 되어 행간이 흩뜨린다. 아이는 방문을 닫아건 채 문을 등지고 창 쪽을 향해 앉아 있다. 48페이지. 여기까지 읽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차마 헤아려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책 전체는 정확하게 466페이지다. 그러니까 거의 500페이지나 마찬가지라는 소리다. 500페이지! 대화라도 좀 섞여 있으면 좋으련만! 어림없는 소리다! 페이지마다 얼마 되지도 않은 여백을 두고 좁쌀만 한 글자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새카맣게 행을 이루며 빼곡히 이어진다. 어쩌다 한번씩 가물에 콩 나듯 드문드문 대화가 섞일 뿐이다. 한 인물이 상대방에게 건네는 말을 가리키는 따옴표(“ ”)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라도 되는 양 반갑기 그지없다. 하지만 상대방은 아무런 대꾸가 없다. 그러고는 다시 12페이지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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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다 보니 미소가 지어지더구나. 아빠의 사춘기 시절도 생각이 나고, 앞으로 너희들의 어떤 사춘기 시절을 보낼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이런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도 절대 실망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사춘기에는 이런 습성을 갖게 되니까 말이야. 이런 학생들에게 두꺼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고 하니 그것보다 악몽이 어디 있겠니. 책이라는 것은 그리고 사람을 아래쪽으로 끌어당기잖니.. 이 글을 읽고 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겠구나, 싶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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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더군다나 책이 지니는 무게란 한결같이 사람을 아래쪽으로 잡아당기는 성향이 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이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무너질 가벼운 결심을 하고 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몇 페이지도 못 읽고, 아이는 익히 알고 있는 그 끔찍한 무게에 짓눌리기 시작한다. 책의 무게, 지루함의 무게, 아무리 기를 써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버거움의 무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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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들과 20년 넘게 생활한 지은이라서 그런지 그들의 습성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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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6)

마냥 늑장을 부리다가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마지못해 저녁 식탁에 얼굴을 들이민 아이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 사춘기 특유의 무게를 잡고 앉아서, 한마디 사과는커녕 식구들 간의 대화에 끼려는 최소한의 성의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는 식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후닥닥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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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지만 방법이 있단다. 사춘기의 학생들이 책읽기의 즐거움을 사라진 것이 아니란다.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라고 지은이는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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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독서의 즐거움이 사라져간다고 해서(다들 우리의 아들딸이, 요즘 젊은 아이들이 책읽기를 싫어한다고들 하니까), 아주 까마득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다.

그 즐거움은 얼마든지 되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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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즐거움을 다시 찾는 방법은 어려운 것이 아니야. 아이들이 어렸을 때, 책읽기를 좋아하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된단다. 엄마, 아빠가 책을 읽어주면 얼마나 좋아했었니? 더 읽어달라고 조르던 시절 말이야. 아이들을 글을 읽고 나서는 더 이상 책 읽어주기를 하지 않게 되었지. 눈으로 조용히 혼자 책을 읽기 시작하였지. 그게 문제라는 것이지. 진정한 책읽기는 소리내어 책을 읽는 것이고, 아이들은 여전히 누군가 읽어주는 것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거야. 사춘기에 접어든 학생들에게도 말이야.

그래서 지은이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국어 수업 시간에 고전을 처음부터 읽어주었다고 하는구나. 그 전까지 볼 수 없었던 집중력을 아이들이 보였대. 한 시간 동안에 읽어봐야 얼마나 많이 읽겠니. 아이들은 뒷이야기를 궁금해서 스스로 찾아 있는 아이들도 생겨났다는 거야.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교과서에 실린다면 해석해야 하고 설명해야 하는 작품이 되어야 해서 학생들이 가장 거부하는 작품이 되는 것은 동서고금을 따지지 않는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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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미국 고등학생들에게는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크나큰 골칫거리라는 말을 해주자, 얼마 전에 그 책을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은 벌링턴과 바이크족이 가장 놀라워했다. 단지 <호밀밭의 파수꾼>이 교과 과정에 포함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니 미국의 한 교사가 학생들에게 샐린저를 강매하느라 진땀을 흘리는 동안에, 한쪽 구석에서는 텍사스의 어떤 바이크족이 에마 보바리에게 푹 빠져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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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8-179)

초등학생이건 고등학생이건 적어도 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늘 작품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숙제가 아이들을 따라다닌다. 그런 식의 과제는 아이들을 질리게 만들어 급기야 책과 벗할 기회마저도 빼앗기기 십상이다. 20세기 말인 지금도 사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주인처럼 군림하는 설명에 가려, 정작 설명하는 대상은 뒷전으로 밀려 보이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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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답은 심플하단다. 책을 읽으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어주면 되는 것이야. 그래서 아빠도 한번 해봤어. 너희들이 읽었으면 하고 사 둔 지 꽤 오래되었는데, 너희들이 책장도 펴지 않는 책 하나를 집어 들고, 잠들기 전에 한 챕터씩 읽어주었어. 그러자 너희들이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고 더 읽어달라고 하더구나. 하하, 지은이의 말이 딱 맞네. 그리고 아빠도 오랜만에 너희들에 책을 읽어주니 기분이 좋더구나. 그래서 한 챕터 읽어 주고아빠가 회사일로 바빠 늦게 퇴근한 날은 읽어주지 못해서, 진도가 좀 느리기도 했지만, 엊그제 한 권을 마쳤잖니..

정말 뿌듯하더구나. 그래서 아빠는 계속 해보려고그리고 다음에 읽을 책으로 정한 것이 이 책의 지은이 다니엘 페나크가 어린이들을 위해 쓴 <늑대의 눈>이란다. 또 같이 읽어보자꾸나.

….

마지막으로 독서 지도를 할 때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권리를 적은 것이 있는데, 그 내용이 재미있어 발췌해 보았단다. 아빠도 너희들에게 아래의 모든 권리를 부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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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독서에 관한 한, 우리 독자들은 스스로 모든 권리를 허용한다. 우리가 이른바 독서 지도를 한다면서 청소년들에게는 일절 허용하지 않았던 권리를 비롯해서 말이다.

1) 책을 읽지 않을 권리

2) 건너뛰며 읽을 권리

3)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4) 책을 다시 읽을 권리

5)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6) 보바리슴을 누릴 권리

7)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8)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9) 소리 내어 읽을 권리

10)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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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읽다라는 동사에는 명령형이 먹혀들지 않는다.

책의 끝 문장: 살아 계시건 돌아가셨건 간에 그분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보름이라고요? 400페이지(사실은 500페이지다)나 되는 책을 보름 만에 다 읽으라고요? 말도 안 돼요, 선생님!"
선생님에게 타협이란 없다.
정말 골 때리는 책이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는 영겁의 돌덩이, 지겨움 그 자체다. 그게 책이다. 그냥 ‘책’ 말이다. 아이는 논술 과제를 쓸 때 책을 ‘책’이라고밖에 달리 뭐라 이름 붙일 수가 없다. 이 책이든 저 책이든 아이에게는 그저 그렇고 그런 책일 뿐이다. - P24

"아이는 냉철하기 그지없는 훌륭한 독자입니다."

아이는 누구나 훌륭한 독자가 될 자질을 타고난다. 그리고 주위의 어른들이 몇 가지 지침만 잊지 않는다면 아이는 언제까지고 훌륭한 독자로 남을 것이다. 우선은 어른들이 자신의 능력만을 내세우려 들기보다는, 아이에게 열정을 불어넣어 줘야 한다. 무조건 암기와 복습만을 강요할 게 아니라, 배우고자 하는 열의를 북돋워 줘야 할 것이다. 모퉁이에 서서 아이가 도착하기만 기다릴 게 아니라, 아이와 함께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볼 일이다. 어떻게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들기보다는, 기꺼이 아이에게 저녁 시간을 내어줘야 한다. 미래를 담보로 아이에게 으름장을 놓기보다는 아이의 현재가 한껏 펼쳐질 수 있도록 마음 써야 한다. 한때는 아이의 더없는 즐거움이었던 일이 결코 마지못해서 하는 고역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자면 아이가 그 즐거움을 맘껏 누릴 수 있도록 기다리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 P67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싶다. 생각을 추스르고 교사는 다시 아이들의 과제물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한낱 과제물 채점자에 지나지 않는 교사의 고독감을 그 누가 알겠는가?) 몇 장을 채 넘기기도 전에, 어느새 눈에 익은 낱말이 태반이다. 그렇고 그런 논지가 계속 반복되는 상황이다. 울컥 짜증이 치민다. 마치 반 아이들이 모두가 그에게 무슨 경전이라도 읊어대고 있는 듯하다.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읽어야 한다!라고, 눈에 들어오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전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뻔히 드러내고 있는데도, 읽어야 한다니……! 그것은 끝없이 반복될 뿐인 공허한 교육적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 P94

우선 이제까지의 정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제까지 우리 인격을 형성해온 책읽기란 대개 순응하고 따르는 책읽기라기보다는, 무언가에 반하고 맞서는 책읽기였다. 즉 이제껏 우리는 마치 세상과 등지듯 현실을 거부하고 현실과 대립하기 위해 책을 읽어왔다. 그래서 때론 우리가 현실 도피자처럼 여겨지고 현실마저 우리가 탐닉하는 독서의 ‘매력’에 가려져 아득해지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도망자,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탈주자인 것이다. - P103

결국 아이들은 두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두 세계와 단절되어 있다. 아이들은 (탄복할 정도로!) 세련되고 ‘쿨’한데, 학교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끊임없이 아이들을 괴롭히고 혹사시킨다. 아이들은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다. 그들은 언젠가 어른이 되리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 끝없는 항해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스스로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 P140

그렇다고 무슨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장족의 발전을 이루기까지 교사가 한 일이라곤 거의 없다. 책읽기의 즐거움이란 결코 멀리 있지 않았다. 다만 읽어도 모를까 봐 지레 겁을 먹었던 (그야말로 오랜 고질병과도 같은) 그 말 못 할 두려움으로 인해 줄곧 사춘기 아이들의 기억 저편에 묻혀 있었을 뿐이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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