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무반주 첼로 모음곡> 1890년 어느 날 13살의 카잘스가 중고 악기점에서 곰팡내 나는 필사 악보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작곡 후 200년 가까이 오직 소수의 음악가들과 바흐 전문 학자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곡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콘서트홀에 어울리는 음악이기보다는 테크닉 연습곡으로 더 적합하다고 여겼다. 이 곡은 카잘스가 발견하고 갈고닦아 대중적인 매력을 입힌 후에서야 하나의 독립된 연주곡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19)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슬픈 일에 연주되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첼로라는 악기의 어둡고 서글픈 음색과 더불어 이 곡이 외롭게 하나의 악기만 요구한다는 사실로 대부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첼로는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닮은 악기라서 암울한 소리만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장조로 쓰인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경쾌하고 떠들썩하게 웃고 즐기는 태평한 태도와 황홀한 유기 또한 어느 정도 들어가 있다. 그 뿌리는 춤이다. 악장의 대부분이 유럽의 옛 춤곡들도 구성되어 있다. 무용가들은 이 곡을 위한 안무를 만들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루돌프 누레예프, 마크 모리스, 대만의 클라우드 게이트 무용단이 이 곡의 추진력 있는 리듬에 맞춘 안무를 선보였다.


(56)

부자는 비좁은 거리를 지나면서 첼로 악보를 찾아 중고 악기점을 샅샅이 뒤졌다. 칼레 암플레에서 또 다른 악기점에 들어갔다. 곰팡내 나는 악보 꾸러미를 뒤지다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를 발견했다. 그런데 이게 뭐지? 싯누런 표지에 멋들어진 검은색 글씨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솔로 비올론첼로를 위한 6개의 소나타 또는 모음곡이라고 적혀 있는 게 아닌가. 정말 제목 그대로인가? 불멸의 바흐가 정말로 첼로만을 위해 음악을 작곡했단 말인가? 페세타로 악보값을 치렀다. 파블로는 첫 악장 프렐류드부터 시작해 악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상상 속에서 형태가 갖춰지는 음악의 리듬을 따라 구불구불한 거리를 미끄러지듯 지나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부터 손끝까지 채워지는 악보의 감각적 계산이었다.


(67)

클래식 콘서트에는 숨 막히는 분위기가 거대한 장막처럼 드리워진다. 소리 내어 말하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목을 가다듬는 것도 악장 사이에 해야 한다. 연주가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는 박수를 치고 싶어도 치면 안 된다. 하지만 클래식 콘서트의 분위기가 처음부터 이렇게 엄격했던 것은 아니다.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관객들은 한 악장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쳤다. 관객들이 멋진 솔로 연주를 실시간으로 환호하거나 반응하지 못할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바흐 시대에는 이렇게까지 숨죽인 숭배 분위기가 아니었다. 교회에서는 아닐지 몰라도 바흐가 자주 공연한 짐머만 카페 같은 장소에서 관객들은 자유롭게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담소를 나누었었다. 바흐가 클라비코드로 난해한 푸가를 연주할 때면 낮은 탄성을 자아냈으며 현란한 솔로 파트에서는 손가락이 ㅂ h이지 않을 정도로 박수갈채를 터뜨렸다.


(89)

살아생전에 바흐는 유명하지 않았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혹은 동년배인 헨델처럼 유럽 전역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인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독일이 되기 전인 이름 없는 변두리 도시에서 세간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커리어를 쌓았다. 빈이나 런던, 파리 등 다른 작곡가들을 생전에 유명하게 만들어준 대도시에서는 산 적이 없다. 오페라를 만든 적도, 오페라 하우스가 있는 도시에서 일한 적도 없다. 오페라는 당시 음악가가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120~1)

미샤 마이스키의 웅장하고 표현력 넘치는 연주 스타일을 지나치다고 말하는 평론가들도 있다. 가장 나쁜 평가를 찾자면 도스토엡스키의 감성이라는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이 첼리스트는 이렇게 항변한다. “바흐를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로 제한하는 것은 천재 작곡가에 대한 모욕입니다. 바흐는 그보다 훨씬 거대한 존재였어요. 바로크 시대 작곡가인 것은 우연히 그 시대에 살았기 때문일 뿐이죠.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낭만파 음악가이며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모더니즘 음악가입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 5번 사라반드>를 들어보세요. 요즘 만든 곡이라 해도 손색없죠! 바흐의 음악이 위대한 이유는 특정한 시대나 장소에 제한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154~5)

카잘스가 연주한 <무반주 첼로 모음곡 3번 프렐류드>를 들어보면 장엄한 몰락으로 시작해 다시 일어선다. 가속도가 붙은 채 대혼란 속으로 뛰어들어 거의 한계점에 이를 정도로 안간힘을 쓰다 화음의 부케와 사라의 맹세가 나타난다. 매번 들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음반이다. 가장 낮은 음과 높은 음을 분리시키면 매력적인 별개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프렐류드 중간의 불협화음도 한번 떠올려보자. 놀라울 정도로 소음에 가깝지만 첼로 속 어딘가에 숨겨진 오케스트라가 아우성치며 귀 기울이게 만든다. 그 뒤로 경쾌함, 다듬어지지 않은 에너지, 영웅적인 면모, 대대적인 파괴, 풍부한 선율, 시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무한성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313)

안나 막달레나에게도 약간의 공로가 있다. 안나 막달레나의 매뉴스크립트에는 보잉 관련 오류가 많은데 첼리스트가 아니어서 오류를 바로잡거나 현의 테크닉에 주의를 기울일 수 없었다. 이러한 오류 문제로 안나 막달레나의 매뉴스크립트는 오랫동안 남편에게 매뉴스크립트가 보기보다 바흐의 원본과 가깝다고 말하는 시각도 있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안나 막달레나의 내뮤스크립트가 느긋하고 여러 음악적 세부 사항이 일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루츠마허에서 카잘스까지 첼리스트들이 저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자기만의 개성을 남기게 되는 다행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안나 막달레나는 사라진 남편의 원본에 충실하게 필사함으로써 36개 악장의 타임캡슐을 조립해 미래의 감상자들에게 서양 음악의 걸작을 선사한 것이다.


(324)

1973 9, 카잘스는 이스라엘에서 유스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을 위한 모차르트의 교향곡을 지휘하고 있었다. 찌는 듯한 더위를 뚫고 자동차로 오래 이동을 했는데도 놀라울 정도로 활기찬 모습이었다. 물론 가끔 휠체어를 사용했지만. 오케스트라 리허설에서 마에스트로(당시 96)는 좀 더 풍부한 표현력을 요구하며 한 악절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젊은 음악가들에게 힘주어 설명했다. “악보에는 표시가 안 되어 있습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악보에 표시되어 있지 않는 게 수없이 많습니다! 그냥 음표를 연주하지 말고 음표에 담긴 의미를 연주하세요!”


(326)

카잘스는 언젠가 잡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어쩌면 많은 사람의 생각만큼 종교적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식이 있다면 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깨어 있을 때 신을 발견합니다. 일어나자마자 바다로 나가면 사방이 신입니다. 크고 작은 것에 모두 들어 있어요. 나는 신을 색깔과 디자인, 형태로 봅니다.”

카잘스가 바흐의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친구들이 테이프 레코더와 헤드폰을 가져왔다. <브란덴베르크 협주곡 1>이 흘렀다. 의식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카잘스는 영면했다. 마침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유엔의 휴전 요청을 받아들였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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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 - 도비라코와 신기한 손님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2부 1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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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번에 읽은 책은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2 1권이란다. 이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시리즈는 7권으로 끝이 났는데, 새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처음에는 재출간인줄 알았단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책 제목 옆에 조그맣게 “2라고 적혀 있더구나. 그러니까 시즌2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1 7권에서 두 주인공인, 비블리아 고서당의 주인이자 책벌레인 시노카와 시오리코와 그 서점에 일하는 건실한 청년 고우라 다이스케의 사랑이 결실을 맺으면서 해피 엔딩으로 끝이 났잖아. 물론 이 시리즈가 두 사람의 사랑을 초점을 맞춘 소설은 아니었지만 말이야. 책에 얽히고 설킨 실마리들을 풀어가는 이야기들이었단다. 7권의 마지막 해피 엔딩에서 7년이 흐른 시점에서 2부의 이야기는 시작된단다.


1.

시오리코와 다이스케 사이에는 여섯 살 난 딸 시노카와 도비라코가 있었단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다이스케는 어렸을 때 책에 대한 사건이 있어서 그 이후에 책을 읽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잖아. 그들의 딸 도비라코는 엄마를 닮았을까? 아빠를 닮았을까?^^ 다행히 엄마를 닮았단다. 얼굴도 엄마를 닮았대. 원래 첫딸은 아빠를 많은 닮는 법인데ㅎㅎ 여섯 살이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도비라코는 다양한 책을 읽어댄단다. 나중에 나이를 먹고 나면 시오리코와 책에 대한 논쟁을 한참 하지 않을까 싶구나. 여섯 살 밖에 안된 도비라코는 벌써 얼마와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을 즐기고 있거든. 아무리 소설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엄마를 닮았다고 하지만, 여섯 살짜리 아이가 성숙해도 너무 성숙하게 나오더구나.

이번 책도 지난 1부에서 이야기 해주었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해나간단다. 1부에 등장했던 등장인물들도 다시 출현하기도 했어.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보면, 일본의 소시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읽다 보면 따뜻함마저 느껴지는구나.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소설에서 소개하고 있는 책들이 모두 일본 작가의 책들이고 아빠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책들이라서 공감을 크게 갖지 못했다는 것이란다. 1부의 후반부로 가면서도 그렇던 것 같은데, 그런 것을 보면 소재를 찾는 게 쉽지 않나 보다, 그런 생각을 했단다. 그래서 따로 줄거리는 이야기 하지 않고 짧게 마칠게.

밀린 독서 편지를 생각하면 가끔 이렇게 짧게 끝내도 되겠지? ^^


PS:

책의 첫 문장 : 책을 읽던 시노카와 시오리코는 불현듯 고개를 들었다.

책의 끝 문장 : 그리고 도비라코가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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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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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이번에 읽은 책은 정민님의 <삶을 바꾼 만남>이라는 책이란다. 이 책을 구입한 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이제서야 읽었구나.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이렇단다. 아빠가 오래 전에.. 좀더 정확하게 이야기해서 2013년에 아빠의 선배님이 정병설님의 <권력과 인간>이라는 책을 추천해주었어. 그래서 그 책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책은 우리시대의 명강의시리즈 중에 한 권이었단다. 그 시리즈의 낯익은 이가 한 명 더 있었단다. 정민님이었어. 그 분의 책은 아빠가 좋아하는 정약용을 다룬 책이었단다.

이 책의 부제는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정약용이 유배를 가 있는 동안 알게 된 제자와의 인연을 다룬 이야기란다. 황상은 정약용뿐만 아니라 정약용의 아들들과도 인연을 맺었어. 오랜만에 정약용에 관한 책을 읽어서 너무 좋았단다. 말이 18년이지, 큰 잘못도 없이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다니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러나 그 유배생활 동안 학문에 더욱 힘썼단다. 그 많은 저술이 유배생활에서 나온 것이니, 그가 유배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그런 저술도 많지 않았겠지. 뭘 해도 대단한 사람이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아빠는 줄곧 정약용에 감정이입을 해서 읽었단다. 가족과 헤어진 생활. 처음 유배 생활을 시작할 때는 몇 년만 할 거라 생각했을 텐데.


1.

정약용은 정조 사후 천주교에 연루되었다는 죄목으로 1801 11월을 유배되어 전라남도 강진에 도착했단다. 총애하던 정조가 죽자마자 김씨 외척 세력이 정권을 잡고 줄곧 각을 세우던 정약용을 유배 보낸 것이 실제 이유였지. 그때 정약용의 나이는 마흔 살이었단다. 가장 교육이 중요할 나이의 아이들을 두고 멀리 떠나온, 교육열 강한 아버지였던 정약용은 편지를 통해 자식들을 훈육했단다. 그의 편지는 이미 다른 책들을 통해서 여러 번 봤는데, 자식들에게 엄한 아버지처럼 보았단다. 강진에 처음 왔을 때 정약용은 주막에 방 한 칸을 얻어 지냈단다. 그리고 그 방의 이름을 사의재로 지었는데 그 뜻은 아래와 같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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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사의재(四宜齋)는 내가 강진에 귀양 와서 사는 집이다. 생각은 담백해야 한다. 담백하지 않으면 서둘러 이를 맑게 해야 한다. 외모는 장중해야 한다. 장중하지 않으면 빨리 단속해야 한다. 말은 과묵해야 한다. 과묵하지 않으면 바삐 멈춰야 한다. 동작은 무거워야 한다. 무겁지 않거든 재빨리 더디게 해야 한다. 이에 그 방에 이름을 붙여 사의재라 하였다. 마땅하다()는 것은 의롭다()는 뜻이다. 의로움으로 통제한다는 의미다. 나이가 들어감을 생각하다보니 뜻과 학업이 무너진 것이 슬퍼서 스스로 반성하길 바란 것이다. 이때는 가경8(순조3, 1803) 겨울 11월 신축일 초열흘, 동짓날이니, 실로 갑자년이 시작하는 날이다. 이날 <주역>의 건괘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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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은 자신의 방에 이름을 붙여주곤 했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빠도 아빠의 방에 이름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좋은 이름을 찾지 못했구나. 한번 지어봐야겠구나.

정약용은 유배 온 지 1년이 지나고 서당을 열었단다. 주변 마을의 아이들이 와서 공부를 했는데, 그곳에서 황상을 만나게 되었단다. 그 당시 황상의 나이는 열 다섯. 황상이 영재나 천재 같은 이가 아니라는 것을 정약용도 금방 알아차렸단다. 하지만 정약용은 황상의 성실함을 알고 더 신경을 써 주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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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6)

내 생각을 말해줄까? 공부는 꼭 너 같은 사람이 해야 한다. 둔하다고 했지? 송곳은 구멍을 쉬 뚫어도 곧 다시 막히고 만다. 둔탁한 끝으로는 구멍을 뚫기가 쉽지 않지만, 계속 들이파면 구멍이 뚫리게 되지. 뚫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구멍이 뻥 뚫리면 절대로 막히는 법이 없다. 앞뒤가 꼭 막혔다고? 융통성이 없다고 했지? 여름 장마철의 봇물을 보렴. 막힌 물은 답답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를 빙빙 돈다. 그러다가 농부가 삽을 들어 막힌 봇물을 터뜨리면 그 성대한 흐름을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단다. 얼마나 통쾌하냐? 어근버근 답답하다고 했지? 처음에는 누구나 공부가 익지 않아 힘들고 버벅거리고, 들쭉날쭉하게 마련이다. 그럴수록 꾸준히 연마하면 나중에는 튀어나와 울퉁불퉁하던 것이 반질반질 반반해져서 마침내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구멍은 어떻게 뚫어야 할까? 부지런히 하면 된다. 막힌 것을 틔우는 것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연마하는 것은 어찌해야 하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어찌해야 부지런히 할 수 있겠니?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으면 된다. 그렇게 할 수 있겠지? 어기지 않고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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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 정약용은 다른 훈장과 달랐단다. 당시 서당 교육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여 고치려고 했어. 서당이라고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천자문>이라는 책과 중국 역사서 <사략> <통감절요>에 대한 비판이었단다.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맞지 않는 교과서라는 거지. 앞뒤 뜻도 이어지지 않는 천자문과 남의 나라 역사서를 그렇게 열심히 할 이유가 있는가. 그러면서 정약용은 직접 교과서를 만들었는데 <아학편>이라는 책이 남아 있단다. 그리고 아이들의 독서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단다. 그냥 책읽기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분석적으로 어느 시기의 독서가 중요하고 어떻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정약용이 오늘날 살았다면 유명한 블로거나 유튜버가 되었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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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3)

아이가 글을 읽는 것은 대개9년이다. 여덟 살부터 열여섯 살까지가 그때다. 하지만 여덟 살부터 열한 살까지는 아는 것이 어리석어 책을 읽어도 맛을 모른다. 열대여섯 살쯤 되면 이미 음양에 대한 기호가 생겨 여러 가지 물욕으로 마음이 나뉜다. 실제로는 열두 살부터 열네 살까지 3년간 독서한다. 하지만 이 3년 중에도 여름에는 무더위로 괴롭고 봄가을로는 좋은 날이 많다. 아이들은 놀기를 좋아해서 모두 능히 독서만 할 수가 없다. 다만 9월부터 2월까지의 180일간이 독서하는 날이 된다. 3년을 합쳐 계산하면 540일이다. 여기에다 세시(歲時)의 놀이와 질병이나 우환으로 방해받는 날짜를 빼면 실제로 독서할 수 있는 대략 3백 일이다. 3백 일은 하루하루가 보배구슬 같고, 하나하나가 금옥과 다름없다. 하지만 조선의 어린이들은 모두 소미 선생의 <통감절요> 15책을 이 3백 일간의 양식으로 충당한다. 결국 평생의 독서가 이 책 한 질에 그치고 만나. 나머지 다른 책을 읽는다고는 해도 모두 대충대충 읽어 온전히 하지 못하니 족히 꼽을 것이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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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서당의 목표도 결국 입시 준비였단다. 그러니까 과거 시험에 급제하는 것이었지. 정약용은 기출 문제를 엮어서 황상을 비롯한 제자들에게 만들어 주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하고 칭찬을 해주는 교육법을 보였단다. , 아빠가 배워야 할 점이구나. 아무튼 정약용은 한번 하면 무엇이든 완벽하게 하는 이로구나.


2.

정약용이 유배 왔다는 소식에 정약용을 만나러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았단다. 그런 이들 중에 마음에 맞는 이와 교류를 했단다. 그런 이들 중에 백련사 혜장 스님도 있었어. 정약용은 혜장 스님과 만나 주역 공부를 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편지도 많이 주고 받았단다. 그렇게 그들은 나눈 편지를 책으로 엮은 견월집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하는구나. 당시 통신수단이 없었다 쳐도 정약용은 사람들과 참 많은 편지를 써서 교류를 했단다. 아빠도 예전에 너희들과 편지노트를 만들어 주고받았었는데, 요즘은 뜸하구나. 우리 뭐 하느라 그리 바쁜 거니?

….

시간이 흘러 흘러 황상 나이 18살이 되었고, 그는 결혼을 했단다. 신혼의 단꿈을 꾸는 것은 당연.. 그렇다 보니 공부를 소홀히 하게 되었는데, 정약용은 이를 심하게 꾸짖었단다. 심지어 아내와 당분간 떨어져 지내라고까지 했단다. 신혼 부부에게 각방을 쓰라고 하더니너무 무서운 선생님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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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 공부는 밥 먹듯이 해야 하는 법이다. 숨 쉬듯이 하고, 습관처럼 해야지. 내가 그렇게 두고두고 일렀거늘

- 그리하겠습니다. 다시는 마음을 풀지 않겠습니다.

- 한동안 고성사로 올라가 지내거라. 안과는 당분간 떨어져 공부만 해야 한다. 시를 짓거든 내게 내려보내고. 날마다 목표량을 정해놓고 읽고 쓰도록 해라. 중간에 맥을 놓으면 공부도 덩달아 맹탕이 된다. 새잡이가 되고 만다. 이 길로 올라가거라. 알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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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무서운 면모도 보였지만, 나중에 황상의 아들이 태어났을 때 진심 어린 축하를 해주었단다. 각방 쓰라고 했는데 아이까지 태어났으면 혼낼 수도 있었는데 말이야. ㅎㅎ

아들 정학연이 4년만에 두 번째 찾아왔단다. 이제 어린애의 티가 하나도 나지 않은 청년이 된 아들반가움이 절로 났지만, 정약용은 한시가 급했단다. 그 동안 아들에게 가르쳐주지 못한 것을 많이 가르쳐야 했기 때문이었어. 강진에 온지 다음날부터 곧바로 공부를 시작했어. 그 공부는 학연이 머물고 있는 몇 달 동안 계속되었단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구나. 그때 공부는 문답식 교육이었는데, 그냥 말로 끝난 것이 아니고, 다 기록하여 글로 남겼다고 하구나. 읽을수록 대단하다는 말밖에

정학연이 강진에 몇 달 머물면서 황상과 만나게 되었단다. 그들이 노는 것은 수준이 다르단다. 백련사 혜장 스님까지 끼어 정약용, 정학연, 황상 이렇게 네 명이 뭐하고 놀았냐면, 詩짓기 시합을 했다고 하는구나. 아빠 같은 사람은 머리에 쥐가 날 텐데, 그들은 댓구를 맞추며 서로 적절한 시를 즉석에서 만들어냈단다. 그리고 정학연과 황상은 혜장 스님의 안내를 받아 대둔산 유람을 하면서 더욱 친분을 쌓았단다. 그런데 그들은 유람이 그냥 유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 역시 글로 남겼다고 하는구나. 글쓰기는 정말 쉽지 않을 것인데, 이들은 모든 경험을 글로 남기는구나. 아빠도 본받아 그러고 싶지만 결심을 하지 않으련다.

….

정약용은 머물던 주막집에서 제자의 집으로 옮겼는데, 아무래도 그 자리가 불편하여 다시 외가의 먼 친척의 집에 정착하였단다. 그 집이 그 유명한 다산초당이었단다. 몇 년 전 남도에 놀러 간 일이 있는데, 일정상 다산초당을 가보지 못한 것이 아빠는 요즘도 가끔 후회되더구나. 다음에 오면 되지했는데, 빨리 가보고 싶구나. 정약용은 자기 만의 공간이 생긴 것에 기뻐하고 리모델링을 했단다. 집 안팎을 잘 가꾸었는데, 그 내용을 詩로 남겼단다. 이 책에 실렸는데, 산문도 아니고 시로 남겼다니

유배 생활 8년째 둘째 아들 정학유가 찾아왔단다. 8년만에 만난 아들. 읽고 있던 아빠도 울컥했단다. 너희들과 지금 헤어져서 8년만에 만난다고 생각해보렴. 그런 만남을 정약용이 가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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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제목은 <4 20일에 학포가 왔다. 서로 헤어진 지 이미 8년이 되었다>이다.

생김새는 내 자식이 틀림없는데

수염 자라 흡사 딴사람 같네.

집 편지 가지고 오긴 했어도

정말로 진짜인가 긴가민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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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반가움은 잠시 이번에도 교육을 시작했단다. 쉬엄쉬엄 교육이 아닌 스타르타식 교육이었지. 그런 아버지의 가르침에 순순히 따랐던 아들그런 교육이 후에 <농가월령가>를 집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구나.


3.

이 책에서도 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정약용 해배 이후의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1818년 드디어 해배. 40살에 시작한 유배 생활이 57살의 중늙은이가 되어 마치게 되다니참 이상한 감정이었을 것 같구나. 그런데 사실은 1810년에 이미 해배가 결정되었다고 하는구나. 아들 정학연이 조정에 계속 해배 요청을 했고, 그것이 1810년에 결정되었는데, 권력을 잡고 있던 김씨 외척들이 뜸을 들이다가 1818년에 이르러 집행한 것이라고 하는구나. 이로 인해 흑산도에서 유배를 하고 있던 형 약전은 보지도 못하고정약전은 유배 생활 도장 유배지에서 죽고 말았거든.

정약용은 서울 근처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단다. 그런데 그때 유배생활을 하면서 둔 소실과 여섯 살 딸 홍임도 같이 데리고 왔대. 성자 같던 정약용이 소실을 두었냐고? 당시는 조선시대라는 것 잊지 말아야 한단다. 그리고 정약용이 유배 생활할 때 중풍이 들었대. 그래서 그의 생활을 돌봐 줄 수 있도록 주위에서 여자를 소개해 준 것이라고 하는구나. 그렇게 같이 서울에 올라왔으나, 소실과 딸 홍임을 곧바로 쫓겨나고 말았대. 본가에서 그들을 인정해주지 않은 것이지. 정약용은 그들을 바라보는 심정이 어땠을까. 그 이후 소실과 딸 홍임은 다시 강진으로 내려왔다고 하는데, 어떻게 살아갔는지 소식은 모른다고 하는구나. 그들의 삶이 소설의 좋은 소재로 보이는데, 어떤 소설가가 잘 이야기를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소설 제목은 홍임

정약용의 해배를 가족만큼 기다린 이들이 있었으니 그의 강진 제자들이었단다. 정약용이 서울에 있으니, 정약용의 줄을 이용하여 과거 급제를 해보려는 심사였단다. 하지만 정약용은 그런 위인이 아니란다. 그렇게 되면 강진 제자들과 갈등을 겪고, 나중에는 하나둘 모두 정약용을 떠나갔단다.  과거에 욕심이 없던 황상만 빼고 말이야. 황상은 옛 가르침에 따라 고향에서 농사 지내면서도 학문에 힘쓰고 詩를 지으며 생활하고 있었단다. 정약용도 그런 황상이 그리워 황상에게 한번 올라오라고 편지를 쓰기도 했단다. 그 편지를 쓴 것이 1828년이었는데 황상이 처음 서울에 올라온 것은 1836년이었단다.

반가운 재회. 1836년이면 정약용의 나이는 이미 칠십 대 중반이었단다. 노쇠하고 병약했지만 제자와 만남에 무척 행복했지. 정약용은 결혼 60주년을 뜻하는 회혼잔치를 앞두고 있었어. 그걸 기념하는 詩도 썼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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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407)

황상이 마재를 떠나던 2 19일만 해도 다산의 용태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아침나절에는 감회가 일었던지 결혼 60주년을 돌아보는 시도 한 수 지었다. <회근시>가 그것이다.

눈 돌리는 사이에 예순 해가 지나가니

복사꽃 짙은 봄빛 신혼 때와 비슷하다.

살아 이별 죽어 이별 늙음만 재촉하고

짧은 근심 긴 기쁨에 임금 은혜 감격하네.

이 밤에 목란사(木蘭詞)는 가락이 더욱 좋고

그 옛날의 <하피첩>엔 먹 자국이 남았구나.

갈라졌다 되합쳐짐 내 형상 그대로라

합환 술잔 남겨두어 자손에게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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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은 정약용을 집을 떠나 다시 고향으로 향하던 중 정약용의 부음을 들었단다. 발길을 다시 돌려 정약용의 장례식에 참석을 했단다. 그렇게 정약용은 이 세상을 떠났단다. 황상은 이후 정학연 정학유 형제들과 교류를 했단다. 강진에서 그들을 만나기 위해 상경한 것도 여러 번이었어. 그리고 정학연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와 형제들도 만나 교류를 했어. 그렇게 돈독한 정을 쌓아갔단다. 하지만 그들도 세월을 비껴 갈 수 없는 노릇이었지. 평생 친구로 살던 정학연이 죽고 나서 황상이 시를 지었는데, 읽다 보니 숙연해지더구나. 세월이라는 것은, 시간이라는 것은 결국 이리 슬픈 것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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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3-544)

황상은 정학연의 죽음을 통곡하며 <곡정감역> 3수를 지었다. 셋째 수만 읽겠다.

이재 완당 산천 공의 좌석에 함께하니

노둔한 말 천리마 터럭에 붙었다고 말들 했지.

만리장성 무너져서 몸은 위태로운데

늦봄이라 꽃 시들고 빗소리는 수런수런.

집 일으킨 큰 사업이 어이 부끄러우랴만

동각의 유편(遺編) 앞에 머리 자주 긁적였지.

시문 어이 일삼으리 휘파람만 그저 불며

남은 인생 다만 그저 술 마시며 울 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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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정학연,, 정학유, 황상 그들의 이야기를 읽어봤는데, 오늘날도 그들의 이야기를 알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남긴 수많이 글들이었단다. 어떤 것을 경험하고 그 느낌을 글로 남기는 것. 그것의 가치가 이렇게 높구나. 아빠가 배워야 할 일이란다. 옛사람들은 먹을 갈고 붓으로 힘들게 글을 써도 그리 많은 기록을 남겼는데, 지금은 컴퓨터로 두들기면 되는데…. 좀더 글쓰기에 부지런해져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 만남은 맛남이다.

책의 끝 문장 : 기대가 크다.


"생활을 꾀하는 방법은 밤낮으로 궁리해봐도 뽕나무 심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구나. 이제야 제갈공명의 지혜로움이 과연 가장 윗길임을 알겠다. 과일을 파는 것은 본래 맑은 이름을 지키는 일이기는 해도 장사꾼에 가깝다. 뽕나무 같은 것으로 선비의 명성을 잃지도 않고 큰 장사꾼의 이익을 얻게 되니, 천하에 이 같은 일이 다시 있겠느냐. 남쪽 땅에 뽕나무를 365그루 심은 사람이 있다. 이것으로 해마다 돈 365꿰미를 얻는다. 1년 365일에 날마다 한 꿰미씩 써서 양식을 삼으니 평생 궁하지 않았다. 마침내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채 세상을 떴으니, 이 일을 가장 본떠 배워야 할 것이다. 그다음은 잠실(蠶室) 세 칸을 짓고 잠박(蠶箔)을 7층으로 만들어라. 모두 스물한 칸에 누에를 길러 부녀자들이 놀고먹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니라. 올해 오디가 익었으니, 너는 소홀히 여기지 마라." - P131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은 처음에 종을 쳐서 시작하고, 끝에는 경(磬)을 울려 마친다. 순순하게 나가다가 끊어질 듯 이어지며, 마침내 화합을 이룬다. 이렇게 해서 악장이 이루어진다. 하늘은 1년을 한 악장으로 삼는다. 처음에는 싹 트고 번성하며 곱고도 어여뻐 온갖 꽃이 향기롭다. 마칠 때가 되면 곱게 물들이고 단장한 듯 색칠하여 붉은색과 노란색, 자줏빛과 초록빛을 띤다. 너울너울 어지러운 빛이 사람의 눈에 환하게 비친다. 그러고서는 거둬들여 이를 간직한다. 그 능함을 드러내고 그 묘함을 빛내려는 까닭이다. 만약 가을바람이 한차례 불어오자 쓸쓸해져서 다시 떨쳐 펴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텅 비어 떨어진다면, 그래도 이것으로 악장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내가 산에 산 지 여러 해가 되었다. 매번 단풍철을 만나면 문득 술을 갖추고 시를 지으며 하루를 즐겼다. 진실로 또한 한 곡이 끝나는 연주에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 P161

"깊은 산속에 살며 거친 옷에 짚신을 신고 맑은 못가에서 발을 씻고 고송에 기대어 휘파람을 분다. 집에는 좋은 거문고와 오래된 경쇠(맑은 소리를 내는 악기의 종류)를 놓아두고, 바둑판 하나와 책을 한 다락쯤 갖추어 둔다. 마당에는 백학 한 쌍을 기르고, 기이한 꽃과 나무, 수명을 늘이고 기운을 북돋우는 약초를 심는다. 이따금 산승이나 우객(羽客, 도사)과 서로 왕래하며 소요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세월이 가고 오는 것도 알지 못한다. 조야(朝野, 조정과 민간을 통틀어 이르는 말)가 잘 다스려지는지 어지러운지에 대해서도 듣지 않는다. 이런 것을 두고 청복(淸福)이라고 한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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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힉스다 - 21세기 최대의 과학 혁명
리사 랜들 지음, 이강영 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어떤 책(어떤 책인지는 모르겠어)을 읽다가 리사 랜들의 책이 괜찮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단다. 그래서 먼저 리사 랜들을 검색해 보았단다. 여성 물리학자. 무척 멋져 보였단다. 자신의 연구뿐만 아니라 책을 통해 대중과도 소통하는 과학자였단다. 우리나라에도 왔었더구나. 리사 랜들의 책들도 검색해 보았단다. 중고서점에도 있길래 세 권 구입해 보았단다. 새 책은 가격도 쎄고,  괜히 샀다가 내가 읽을 수도 없는 영역일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엄두도 못 냈단다.

구입한 책 중에 가장 얇아서 만만해 보이는 책. <이것이 힉스다>라는 책을 읽었단다. 이 책은 2012년 힉스 입자를 발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힉스 입자란 무엇인지 간단하게 소개하는 책으로, 힉스의 발견에 대한 이야기, 리사 랜들의 <숨겨진 우주>라는 책에서 한 챕터,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라는 책에서 한 챕터를 뽑아서 엮은 책이란다. , 솔직히 아빠가 싫어하는 편집 방식의 책이란다. 이미 출간한 책들을 짜깁기해서 또 다른 책을 만들다니아무리 힉스 입자의 발견이 기뻤다고 하지만…. 일부 수정을 해서라도 책을 엮어야지심지어 책의 끝이 다음장의 주제이기도 하다로 끝났단다. 다음장의 주제는 다른 책에 있는 것이란다.


1.

그래도 이 책을 통해 힉스라는 것이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이해를 했단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이 책을 읽고 도대체 힉스란 무엇인가?’ 궁금해서 인터넷과 유튜브 검색을 하게 되었고, 좀 더 자세하고 쉽게 설명된 내용들을 찾아서 힉스 입자가 대충 이해하게 되었단다.

힉스 입자는 피터 힉스라는 사람이 1964년에 제안한 이론 입자였단다. 그러니까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입자라는 거야. 그 이후 많은 물리학자들이 이 입자를 실제로 찾고자 노력을 했대. 그러다가 2012 7 4. 유럽 입자 물리학 연구소(CERN)에서 대형 강입자 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 LHC)라는 거대한 장비를 이용해서 힉스 입자를 발견했다고 한단다. 그 성과로 2013년 피터 힉스와 프랑스아 앙글레르가 힉스 입자의 예측과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았단다. 그러니까 1964년 예측한 입자를 반세기를 꽉 채운 2012년에 발견했으니, 많은 물리학자들이 얼마나 좋아했겠니. 힉스가 예측했던 그 입자를 찾으려고 많은 물리학자들이 많은 노력을 했으니 말이야.

그동안 힉스 입자 찾기가 너무 어려워서 어떤 과학자는 그 입자를 God damn particle 이라고 했다는구나. 그러다가 나중에는 damn이라는 단어를 떼어내고 God particle이라고 불렀대. , 신의 입자라고 말이지. 거창한 별명이 붙었구나.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입자란 말인가. 인터넷으로 힉스 입자를 알아보다 보니 피터 힉스가 예측한 그 이론 입자를 힉스 보손(힉스 입자)’이라고 이름 붙인 이가 바로 우리나라 과학자 이휘소라고 하는구나. 이휘소라는 과학자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해줄게.


2.

, 그럼 도대체 힉스 입자란 무엇인가. 힉스 입자를 알려면 일단, 표준모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단다. 표준모형.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잖아. 예전에는 원자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입자라고 했지만, 그 입자마저도 쪼갤 수 있게 되었단다. 그리고 세상의 원자들은 모두 17개의 입자들의 구성으로 이루어지게 되는데, 17개의 입자들을 표준 모형이라고 한대. 아빠도 사실 표준모형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니 아빠한테 자세히 물어보지 말 것.

표준모형을 이루는 17개는 쿼크 6, 랩톤 6, 매개입자 4, 그리고 마지막 한 개가 바로 힉스입자라는 것 정도만 알아두자. 모든 입자에게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가 바로 힉스 입자라고 하는데, 정확히 이야기하면 다른 입자들에게 질량을 주는 현상을 힉스 메커니즘이라고 하고, 그 힉스 메커니즘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 바로 힉스 입자란다. 그러니까 힉스 메커니즘이라는 것은 볼 수 없고, 힉스 입자가 발견된 것을 보고, 과학자들이 가설로 내세웠던 힉스 메커니즘이 맞다는 것을 증명된 것이야.

이해가 가니? 그리고 힉스 입자가 작용을 하려면 운동장 같은 것이 필요한데, 그것을 힉스장이라고 한단다. 힉스장 때문에 질량이 무거운 물질은 움직임이 느리고, 가벼운 물질은 움직임이 빠르다고 하는구나. .. 이 정도가 아빠가 대충 이해했다고 하는 내용이란다. 너희들이 좀 더 크면 같이 힉스 입자에 대한 강의를 보자꾸나. 그리고 이 책의 지은이 리사 랜들의 책은 이 책처럼 짜깁기한 책이 아닌, 제대로 된 책을 통해서 다시 만나보자꾸나.


PS:

책의 첫 문장 : 2012 7 4, 컴퓨터에 붙어 있던 전 세계의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는 제네바 근교에 있는 유럽 입자 물리학 연구소(CERN)의 대형 강입자 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 LHC)에서 새로운 입자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책의 끝 문장 : 그리고 다음장의 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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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우리는 돌, 나무, 흙 같은 자연 속의 재료를 가지고 건축물을 만든다. 그리고 그 건축물이 부산물로 만들어 내는 빈 공간 안에서 생활한다. 그 공간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면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그 공간은 또 다시 우리를 만든다. 이처럼 건축물을 만든 사람은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 공간을 통해서 다른 시대의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건축물은 소통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건축물과 사람은 떼어 낼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건축물은 삶의 일부가 된다.


(44-46)

걷고 싶은 거리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얼마나 많은 이벤트가 일어나는 거리인가, 어떠한 물건들을 구경할 수 있는 거리인가, 어떠한 자연환경이 있는 거리인가, 어떠한 사람들은 만날 수 있는 거리인가 등이 그 요소들이다. 마지막 요소인 사람은 나머지 요소들이 구성되는 것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결정 난다. 보통,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요소이지만 나머지 요소들이 갖추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사람이 들지 않기 때문에 사람은 거리를 완성하는 요소이지만 만들기 시작하는 요소는 아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거리의 상황이 사람들이 걷고 싶은 환경이 되느냐는 질문에 대한 이 책의 답은 다음과 같다. 걷는 환경과 너무 차이가 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은 시속 4킬로미터로 걷는다. 너무 느려도 사람들은 걷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상점의 입구가 자주 나오는 거리가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든다.


(66-68)

20세기 초반에 근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는 주택을 사람이 살 수 있게 하는 기계라고 정의 내렸다. 건축에서 기능적인 면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기능은 건축이라는 자전거의 두 바퀴 중 하나에 불과하다. 자전거가 굴러가려면 두 개의 바퀴가 필요하듯 건축은 기능 이외에도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바퀴가 필요하다. 현대 도시의 건축에서 부족한 부분이 이 부분이다. 기능적으로 작동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빠른 자동차를 위한 길과 넓은 집들을 추구했지만 정작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감성을 깨우는 공간을 놓쳐 온 것이다. 계절에 어울리는 한 곳의 노래가 우리의 삶의 의미를 깨우쳐 주는 것 같은 감성을 울리는 건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건축은 대중음악이 팔리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시장에서 잘 팔리는 건축이 될 것이다. 또한 그런 건축이 많아질 때 현재 도시는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116)

건축은 오브제(object)의 성격이 강한 도자기나 그림과는 다르다. 건축은 사람이 들어가고 나오는 공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재료가 교체되고 복원되고 사용되면서 보존되는 것이 옳다. 남대문은 재료가 오래된 나무이기 때문에 문화재가 아니라 그 건축물을 만든 생각이 문화재인 것이고, 그 생각을 기념하기 위해서 결과물인 남대문을 문화재로 지정한 것이다. 따라서 오리지널 남대문이 불타 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오래된 나무가 불에 탔다고 통곡하면서 울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194)

그 이유는 마당이 계속해서 바뀌기 때문이다. 주상복합에 아무리 넓은 거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거실의 인테리어가 매일매일 시시각각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당은 때로는 비도 오고, 햇살도 비치고, 눈이 내리기도 하고, 낙엽이 떨어지기도 한다. 아침의 동편 햇살을 받은 마당과 저녁노을의 마당이 다르고, 밤이 되어 어두운 달빛을 담은 마당은 또 완전히 다르다. 그 밖에도 마당에서 이루어지는 이벤트는 다양하다. 고추를 말리기도 하고, 바비큐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이벤트와 날씨가 마당의 얼굴을 항상 바꿔 준다. 마치 마당은 매일매일 벽지와 가구가 바뀌는 거실이라고나 할까? 그렇기 때문에 단순하게 고정되어 있고 매일 TV 보는 행위 외에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거실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다.


(220)

우리는 기본적으로 프라이버시가 필요하다. 필자가 있는 사무실에는 책상 앞에 책을 쌓아 두는 직원이 있었다. 이는 그 직원이 단순히 게을러서 그런 것이 아니다. 개방된 책상이 불안해서 자신의 영역을 만들기 위해서 책과 서류로 벽을 치는 것이다. 보통 사무실에는 큰 모니터가 벽의 역할을 해 준다. 우리 사무실 직원들은 업무용 데스크탑 컴퓨터까지 책상 위에 올려놓고 벽처럼 쓰고 있단. 요즘에는 듀얼 모니터로 작업을 해서 모니터를 두 대 사용하는데, 그 두 대의 모니터를 이용해서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프라이빗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하는 욕구에서 나타나는 풍경이다.


(229)

선사 시대 때 사람들은 동굴에서 살았다. 동굴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사람들이 그 주변으로 모여 앉아 움직이는 불을 쳐다보고 그 위에서 밥도 해 먹었을 것이다. 최초의 집, 동굴에서 집의 중심은 모닥불이었다. 세월이 지나서 현대인의 집의 중심은 TV이다. 가족들은 모두 거실에 모여 앉아 움직이는 불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는 TV 화면을 바라본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과거 남자들은 밖에서 목숨을 걸고 사냥을 했고 집에 돌아오면 멍하게 불을 쳐다보면서 밖에서의 긴장감을 풀었다고 한다. 불을 쳐다보는 시간은 사냥 모드에서 휴식 모드로 바꾸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쟁이 심한 현대 사회에서 밖에서 일하고 돌아온 남편은 최소 30분은 멍하게 TV를 보아야 정신 모드가 집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그래서 부인들은 남편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TV 보는 것을 이해해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291)

철학자 강신자의 말처럼, 기억할 감정이 많다는 것은 인생이 그만큼 풍요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벤트가 많이 일어나는 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성공적인 거리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뜨는 거리가 되려면 다양하고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줄 이벤트들이 필요하다. 그것이 쇼윈도의 다양한 상품이거나 혹은 식당에 앉아서 밥을 먹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거나, 마주 걸어오는 사람들의 다채로운 모습이거나 어떠한 것이든 좋다. 건축가는 이런 이벤트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할 수 있는 무대장치를 디자인하는 연출가이다.


(332)

극동아시아 문화는 유고가 지배적이었다. 사후 세계보다는 현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땅 위에서의 충()이나 효() 같은 관계를 중요시하였다. 그래서 극동아시아 건축은 땅과 연결된 개미처럼 관계성이 중요시되는 건축의 성격을 띤다. 반면에 유럽은 이집트, 그리스, 기독교에서 사후 세계를 중시했고, 이데아의 세계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위로부터 오는 원칙을 중요시 하였다. 땅에 기초를 두지 않는 이러한 문화적인 특징 때문에 공중에 집을 짓는 벌처럼 기하학적인 건축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것이 서양에서 피라미드, 황금비율, 판테온 같은 건축 문화가 나오게 된 문화적 배경일 것이다.


(333)

서양에서의 공간을 뜻하는 단어는 ‘space’, 이 단어는 동시에 우주를 뜻하기도 한다. 우주라는 영어 단어는 universe, cosmos, space 이 세 단어가 혼용되어서 쓰인다. 따라서 ‘space=cosmos’라는 결론이 나온다. cosmos라는 단어의 의미는 혼돈이라는 뜻의 chaos의 반대어로 수학적 규칙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쓰인다. 따라서 ‘space=수학적 규칙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단어를 통해서 살펴보면 서양인의 의식 속에서 비어 있는 우주, 공간, 수학적인 규칙을 내재하고 있는 cosmos 등의 의미가 상호 연결되어져 있으며, 공간을 수학적 규칙을 가진 비어 있는 것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서양의 공간은 다분히 수학적인 분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반면, 동양의 공간은 비어 있다는 뜻의 ()’과 사이라는 뜻의 ()’이 합성된 단어이다. 공간이라는 단어는 비움관계의 합성어로 만들어져 있다. 이렇듯 단어만 살펴보더라도 동양에서는 단순히 비어 있는 것 이상의 가능성을 보는 비움과 상대적 가치인 관계로서 공간을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82)

과거에 건축은 과학이었다. 한 나라의 최첨단 기술을 과시하는 도구로서의 건축이 있었다. 건축은 어느 시대나 지구의 만유인력에 저항하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 주는 과학적 도구이자 결과물이었다. 반면 의술은 과학이 아니라 미신에 가까웠다. 지금도 오지에서는 무당들이 병을 고친다. 건축과 의학 이 둘은 19세기에 운명이 바뀌었다. 의학은 과학을 택해서 지금의 MRI와 각종 첨단 시설을 이용한 기술의 서비스가 되었다. 반면 건축은 예술을 택해서 지금껏 사회적 대접이라는 면에서 퇴보해 왔다. 반면 건축이 예술이 되면서 질적으로 평가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100년 전에 이루어진 의학과 건축의 선택의 결과는 지금 의사와 건축가의 평균 연봉이 말해 주고 있다. 필자는 건축이 예술이라는 관념이 깨졌으면 한다. 건축은 예술이기도 하고, 과학이기도 하고,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이 종합된 그냥 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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