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6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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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참 꾸준하구나.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들을 소개해 주는구나. 이번에 읽은 책도 제법 최근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추가된 작품으로, 아빠는 처음 들어가는 작가의 처음 들어보는 작품이란다. 책표지의 사진이 인상적이어서 책소개를 읽어보다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읽게 된 소설이란다. 이탈리아의 국민 작가로 알려진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표범>이라는 소설이란다. 알아보니 책표지의 사진은 1963년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의 한 장면이고, 책표지에 한쪽 안대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빠도 알고 있을 정도로 잘생기기로 유명했던 알랭 들롱이더구나. 그냥 사진으로 봤을 때는 몰랐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가 알랭 들롱이더구나. 이 정도 되면 영화도 보고 싶긴 한데, 어디서 찾아서 봐야 할지 난감했는데, 유튜브에 검색을 해보니, 무료로 볼 수 있더구나. 안타깝게 한글자막은 없지만 말이야. 그래도 나중에 한번 도전해봐야겠구나. 그런데 영화가 3시간이나 되니, 영화도 큰 마음을 먹고 봐야겠구나.

또 알아보니 최근에도 이 소설을 영상화한 작품이 있더구나.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졌는데, 넷플릭스를 구독하지 않기 때문에 이 또한 당장 볼 수는 없겠구나. <표범>이라는 작품의 무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이란다. 이 소설의 배경은 1860년대 중반의 시칠리아로 당시 이탈리아는 아직 하나의 국가가 아니고 여러 공국들이 공존하던 시기였단다. 당시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공화국으로 통일하기 위한 전쟁이 일어난 혼란스러운 시기였어. 아빠가 이탈리아의 역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소설 속 장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단다. 이탈리아 역사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면 좀더 재미있게 읽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단다. 그럼 이 소설의 이야기를 해줄게.

 

1.

1860 5월 시칠리아는 양시칠리아 왕국에 속해 있었으며, 부르봉 왕조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당시 왕은 페르디난드 국왕이 왕위에 있었어. 얼마 전인 4.4 폭동이 일어났는데, 이는 시칠리아의 공화주의자 주세페 마치니가 일으킨 반란이었어. 그리고 주세페 가리발디라는 사람은 혁명군을 모집하여 이탈리아를 하나의 공화국으로 통일시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단다. 그의 혁명군이 시칠리아까지 진입했단다. 이 사건을 역사적으로 리소르지멘토라고 한다. 이것은 결국 이탈리아를 하나의 공화국으로 통일하는데 성공하고 주세페 가리발디는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 받는다고 했어. 당시 이탈리아 역사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했는데, 아빠가 이해한 수준에서 적은 것이라서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단다.

이야기는 시칠리아의 대 귀족이자 영주인 돈 파브리초 살리나의 영지에서 시작한단다. 돈 파브리초는 귀족 가문을 이끄는 가장으로 키 크고 힘도 센 사람으로 나온다. 뿐만 아니라 천문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당시에는 흔치 않는 망원경도 갖고 있었어. 돈 파브리초의 아내는 마리아 스텔라야. 스무살 때 결혼하여 아이들을 일곱 명을 낳았는데 지금은 사실 아내에 대한 사랑이 식었단다. 돈 파브리초는 아내 몰래 따로 사랑하는 마리안 나나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큰 비중이 있는 인물은 아니었단다. 지금은 사랑하지 아내에 대해 죄책감마저 느끼고 있었어. 딸 중에 콘체타는 수도원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앞서 이야기한 폭동으로 현재는 집에 와서 머물고 있었어.

돈 파브리초는 조카 탄크레디의 후견인으로 보살펴주고 있었단다. 탄크레디는 누나의 아들인데 고아가 된 이후 돈 파브리초가 후견인이 된 거야. 탄크레디와 콘체타는 어렸을 때부터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사랑을 알 나이가 된 콘체타는 그 호감이 사랑의 감정으로 변하게 되었단다.

어느날 탄크레디가 돈 파브리초를 찾아와 자신은 가리발디의 혁명군과 합류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고 찾아왔어. 돈 파브리초는 뜻이 다른 조카를 막지 않았단다. 조카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그런 어른이었어. 몇 달 뒤(1860 8) 탄크레디는 대위 계급장을 달고 한달 휴가를 왔단다. 눈 부위 부상을 입어서 한쪽 눈은 안대를 하고 왔어. 여름이면 살리나 식구들은 그들의 또다른 영지인 돈나푸가타로 휴가를 간단다. 돈나푸가타의 시장은 돈 칼로제로라는 사람인데 상업으로 자수성가하여 시장까지 된 인물이었어. 그런데 그의 아내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집에만 있어서 이상한 소문들도 들었어. 천한 신분에 글도 읽을 줄 모르기 때문에 공식석상에 나오지 않는다는 거야. 하지만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엄청난 미모를 가졌다는 거야. 그래서 돈 칼로제로의 딸 안젤리카 또한 엄청난 미인이었어. 그러니까 안젤리나는 아버지의 머리와 어머니의 미모를 닮은 거야.

돈 파브리초는 저녁 만찬에 시장의 가족을 초대했는데, 이번에는 돈 칼로제로는 아내는 오지 않고 딸만 데리고 대동했단다. 안젤리카의 미모에 만찬에 참석했던 모든 남자들의 마음이 설레지 않았을까 싶구나. 그 중에 탄크레디도 포함되어 있었고, 탄크레디는 안젤리카와 대화를 나누었단다. 그 장면이 이 책의 앞표지에 쓰인 장면인 것 같구나.

 

2.

1860 10. 다시 전쟁터로 간 탄크레디는 주기적으로 돈 파브리초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어느 날은 자기 대신 돈 칼로제로와 안젤리카에게 청혼을 해달라고 했어. 이 일을 아내 마리아에게 이야기를 하고 의논했고, 마리아는 탄크레디를 배신자라고 했어. 물론 돈 파브리초도 자신의 딸 콘체타가 탄크레디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젊은이의 끓는 뜻을 꺾으려 하지 않았어. 탄크레디가 조카이지만 역시 자식처럼 대했고, 그의 뜻을 지지해주었단다.

한편 돈 칼로제로가 시장으로 있는 돈나푸가타에는 이탈리아 공화국으로 편입할 것인지를 두고 국민투표가 있었는데, 백퍼센트 찬성으로 이탈리아 공화국으로 편입하기로 했단다. 이 일은 돈 칼로제로가 주도하여 조작한 것 같은 의심이 들었지. 그래서 돈 파브리초는 돈 칼로제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상인으로 성공하여 시장에 오른 것도 그와는 신분이 다르다고 생각했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카 탄크레디의 부탁은 들어주었단다. 그래서 돈 파브리초는 돈 칼로제로를 찾아가서 탄크레디의 청혼 소식을 알렸어. 돈 칼로제로도 그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했어.

..

탄크레디가 군 동료 카브리아기와 함께 찾아왔단다. 탄크레디는 이제 사랑에 눈이 멀어 안젤리카만 바라보고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 사랑을 키워나갔단다. 반면 탄크레디의 군 동료 카브리아기는 콘체타에게 관심을 가졌지만, 탄크레디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콘체타는 그런 관심을 받아줄 기분이 아니었어. 사랑은 언제나 어렵구나.

통일정부가 세워지고 정부측 인사인 슈발레가 돈 파브리초를 찾아왔어. 슈발레는 돈 파브리초에게 통일정부의 상원의원이 되어줄 것을 제안했단다.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정부의 중요인사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지만 돈 파브리초는 슈발레의 제안을 거절했단다. 돈 파브리초 자신은 시칠리아의 역사를 함께 한 사람으로 시칠리아와 자신은 하나라고 했어. 그런 시칠리아 왕국이 사라졌으니 자신의 역할도 이젠 끝이 났다면서 자신은 이제 늙은 기성세대일 뿐이어서 새로운 통일정부와 맞지 않는다고 했어. 그러면서 돈 칼로제로를 추천해 주었단다. 돈 칼로제로는 그 동안 혁명군에게 적극 협조를 했고,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니까 새로운 통일정부와 맞다고 생각한 거야. 그동안 시칠리아를 지켰던 표범의 시대는 가고, 자칼이나 하이에나의 시대가 온 것이라고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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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236)

영주는 우울했고 이렇게 생각했다. ‘이 모든 일을 이렇게 지속되게 놔두어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늘 지속되겠지. 물론 인간사라는 시각으로 볼 때의 이다. 100, 200….. 그후에는 달라지겠지. 하지만 더 나빠질 게 분명해. 우리는 표범, 사자였다. 우리를 대신할 사람들은 자칼, 하이에나가 될 것이다. 이들 모두, 그러니까 표범, 자칼, 양은 계속해서 자신들이 세상의 소금이라고 믿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감사를 표하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슈발레는 토사물 색깔의 바퀴 네 개가 지탱하는 우편 마차에 올라탔다. 굶주리고 상처투성이인 말이 긴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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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의 마지막 장은 1910 5월로 이탈리아 통일정부가 들어선지도 거의 반세기가 되었단다. 통일정부를 반대했던 이들도 찬성했던 이들도 세상을 등졌단다. 살리나 가문은 홀로 남은 콘체타가 지키고 있지만 그 옛날의 위세는 모두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 있었단다. 그런데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 가문으로 그렇게 조용히 문을 닫게 되는구나.

이 소설은 이탈리아 통일을 다룬 시기의 소설로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남다른 소설로 느껴질 것 같구나. 아빠도 이탈리아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는데, 이 소설을 통해 이탈리아 통일 시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구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눈크 에트 인 호라 모르티스 노스트라이, 아멘.”

책의 끝 문장: 그런 다음 모든 것이 납빛 먼지 더미 속에서 평화를 찾았다.

 



사랑,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사랑의 불길과 불꽃은 1년이면 꺼져 버리고 이후 30년은 그 재로 살아간다. - P93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저녁에 인사를 나누었던 구름들은 어딘지 모를 곳으로, 죄가 크지 않아 진노한 신이 가혹하게 벌하지 않은 곳으로 떠나 버렸다. 별들은 흐릿했고 별빛은 더운 공기를 뚫고 나오려 애를 썼다. 돈 파브리초의 영혼은 별들을 향해, 손으로 만질 수도 닿을 수도 없는 별들을 향해 달려갔다.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기쁨을 주며 거래 따윈 하지 않는 별들을 향해. 그는 수없이 그랬듯이 공상에 빠졌다. 순수한 지성인이 자신이 계산용 수첩을 들고 곧 차디차고 광활한 공간으로 가는 상상이었다. 수첩에 풀어야 할 계산은 어렵고 복잡하겠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잘 풀릴 터였다. ‘별들만이 순수하지. 유일하게 선량한 피조물들이지.’ 그는 세속적인 공식에 따라 생각했다. ‘어느 누가 플레이아데스성단의 지참금을, 시리우스의 정치 경력을, 베가의 부부 침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신경 쓰겠는가?’ 그날은 운수가 좋지 않았다. - P108

피할 수 없는 고통을 배경으로 죄 많은 인생을 살게 될 탄크레디와 안젤리카의 파란만장한 삶에서 그때가 가장 좋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로 구름과 바람으로만 이루어졌을 뿐인데, 구체적인 무엇이라고 생각했던 미래를 뒤쫓았다. 늙고 부질없이 지혜로워졌을 때 두 사람은 끊임없이 그 시절을 돌이켜 보았으며, 그리움과 후회를 떨칠 수 없었다. 그때는 욕망이 존재했으나 항상 패배하던 시기였고, 잠자리 기회가 수없이 주어지기도 하고 거부당하기도 했다. 억제된 관능적인 충동이 잠시 체념으로 변하기도 하는, 그러니까 진정한 사랑으로 승화되기도 하는 때였다. 그때는 성(性)적으로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던 결혼 준비기간이었다. 하지만 절묘하면서도 간결한, 완전체 같은 기간이었다. 잊힌 오페라, 그러니까 은근한 암시와 익살로 수치심을 가리고 공연 중에 조화롭게 연주되지 않아 실패한 아리아들이 담김 오페라의 서곡 같았다. - P206

"슈발레, 의도는 좋아요. 하지만 너무 늦었어요. 게다가 제가 이미 말했듯이 대부분은 우리 잘못입니다. 당신은 조금 전에 경이로운 현대 세계에 새로운 모습을 보일 젊은 시칠리아를 이야기했지요. 내가 보기에는 휘체어에 앉아 런던 만국박람회에 끌려 나온 백 살 먹은 노파처럼 보여요. 노파는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것에도, 셰필드의 철강 공장에도 맨체스터의 방적 공장에도 관심이 없어요. 그저 침으로 얼룩진 베개와 요강을 밑에 둔 침대로 빨리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지요." - P226

슈발레는 생각했다. ‘이런 상황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새롭고 민첩한 현대적인 행정부가 모든 것을 바꿀 것이다.’ 영주는 우울했고 이렇게 생각했다. ‘이 모든 일을 이렇게 지속되게 놔두어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늘 지속되겠지. 물론 인간사라는 시각으로 볼 때의 ‘늘’이다. 100년, 200년….. 그후에는 달라지겠지. 하지만 더 나빠질 게 분명해. 우리는 표범, 사자였다. 우리를 대신할 사람들은 자칼, 하이에나가 될 것이다. 이들 모두, 그러니까 표범, 자칼, 양은 계속해서 자신들이 세상의 소금이라고 믿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감사를 표하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슈발레는 토사물 색깔의 바퀴 네 개가 지탱하는 우편 마차에 올라탔다. 굶주리고 상처투성이인 말이 긴 여정을 시작했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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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25-12-06 23: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bookholic 2025-12-08 22:2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북프리쿠키 님도 축하드려요~~^^

젤소민아 2025-12-07 0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 뱃지는 왤케 크고 빛나죠?! ㅎㅎ 와...2016년부터 연속! 흠...리뷰를 이렇게 꼼꼼히, 더구나 ‘독서편지‘라는 이리 독특하고 따스한 형식, 어쩔 거여요! 앞으로 자주 들를게요! 서재의 연속 달인 축하드려요!

bookholic 2025-12-08 22:2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ㅎㅎ
젤소님아 님도 축하드리고, 늘 좋은 책 추천 고맙습니다~~
내년에도 부탁드립니다~~

ㄷㄷ 2025-12-16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금은 사랑하지 아내에 대해 죄책감마저 느끼고 있었어‘
문장 오류가 있습니다.
 















(14-15)

다른 사람이었다면 내심 안도하며 십 분만 늦었다면 나도…”라고 혼잣말을 했겠지만, 주니퍼 수사에게는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왜 하필 저 다섯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우주에 어떤 계획이 있다면, 인간의 삶에 어떤 패턴이 있다면, 갑자기 중단된 저들의 삶 속에 숨겨진 불가사의한 무언가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우연히 살고 우연히 죽는 것일까. 주니퍼 수사는 그 순간 대기를 가르고 떨어진 그 다섯 명의 숨겨진 삶을 조사하겠다고,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떠난 이유를 밝혀내겠다고 마음먹었다.


(30)

백작은 그녀의 편지를 읽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그러나 그가 즐긴 것은 문체였고, 그것만으로 편지의 모든 풍부함과 의도를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대부분의 독자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기록이라는 문학의 목적 자체를 놓치고 말았다. 문체는 쓰디쓴 액체를 담아 세상에 권하는 하찮은 그릇에 불과하다. 후작 부인이 자신의 편지가 아주 훌륭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매우 놀랐을 것이다. 훌륭한 작품을 쓰는 작가들은 항상 고결한 마음 상태로 살아가고, 우리에게 특별해 보이는 작품이 그들에겐 그저 평범한 일상과 다름없을 테니 말이다.


(185)

옛날 다리 대신 새로운 다리가 세워졌지만, 그 사건은 잊히지 않았다. 리마 사람들에게 그것은 일종의 속담 같은 표현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어떤 사람은 화요일에 보세. 다리만 무너지지 않는다면 말이야라고 말한다. 또 누군가가 내 사촌은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근처에 산답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싱긋 웃는다. 그 말은 머리 위해 매달린 칼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에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 사고에 대한 시도 있고 페루의 문집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고전들도 있지만, 진정한 문학적 기념비는 주니퍼 수사의 책이었다.


(207)

지금 이 순간에도나 말고 에스테반과 페피타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오직 카밀라만이 그녀의 아들과 피오 아저씨를 기억하고, 오직 이 여인만이 자신의 어머니를 기억한다. 그러나 우리는 곧 죽을 것이고, 그 다섯 명에 대한 모든 기억도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우리 자신도 한동안 사랑받다가 잊힐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사랑이면 충분하다. 모든 사랑의 충동은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랑으로 돌아간다. 사랑을 위해서는 기억조차 필요하지 않다. 산 자들의 땅과 죽은 자들의 땅이 있고, 그 둘을 잇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오직 사랑만이 남는다. 오직 사랑만이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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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

나는 결혼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해.” 에설이 생각에 잠겨 말했다. “하나는 편안한 동반자 관계야. 두 사람은 같은 희망과 두려움을 나누고, 팀이 되어 아이들을 키우고 서로에게 편안함과 도움을 주지.” 그것이 그녀와 버니 이야기임을 데이지는 알아차렸다. “다른 하나는 주체할 수 없는 열정과 광기, 환희와 섹스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 자기가 사랑하지 않거나 심지어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도 그렇게 될 수 있어.” 그녀가 피츠와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데이지는 느꼈다. 데이지는 숨을 죽였다. 에설은 지금 원초적인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운이 좋았어. 두 가지 모두를 경험했지.” 에설이 말했다. “그리고 이제 내 조언을 들려줄게. 만일 미친 사랑을 할 기회가 생기면 양손으로 꽉 붙잡아. 결과가 어찌되든 신경쓰지 말고.”


(451)

불행하게도 모두가 보수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거라고 생각했다.

선거 유세에서 노동당에 유리하게 흘러간 상황도 일부 있었다. 처칠의 게슈타포발언은 역풍을 맞았다. 보수당조차 경악했다. 다음날 저녁 노동당을 대표해 방송연설을 한 클레멘트 애틀리는 쌀쌀맞게 비꼬았다. “어젯밤 노동당의 정책을 졸렬하게 희화화한 수상의 연설을 듣자마자 저는 그의 목표가 뭔지 깨달았습니다. 그는 전쟁 앞에서 단결된 국가의 위대한 지도자인 윈스턴 처칠과 보수당 지도자 처칠 씨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존재하는지 유권자들이 이해하기를 바랐던 겁니다. 전쟁중 그의 리더십을 받아들였던 사람들이 고마운 마음에 그를 더 따라가려는 유혹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두려웠던 겁니다. 사람들의 환상을 완전히 깨뜨려준 그에게 감사합니다.”” 애틀리의 위엄 넘치는 경멸은 처칠이 대중을 선동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사람들은 핏빛 격정에 질렸다고 데이지는 생각했다. 그들은 틀림없이 평화로운 시대의 차분한 상식을 더 좋아할 것이다.


(525)

하지만 그때 그는 공산주의가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원칙 없는 숙청과 비밀경찰의 지하철 고문이 존재하고, 점령군 병사들에게 과도한 야만 행위를 강요하거나 거대한 나라 전체가 차르보다 더 강력한 독재자의 고집불통 결정을 따라야 하는 것이 공산주의였다. 나는 진정으로 이런 잔혹한 체제가 대륙의 나머지 지역으로 뻗어나가기를 원하는 걸까?

그는 누구에게 허락을 받거나 신분증을 제시하지도 않고 뉴욕의 펜 역으로 걸어들어가 앨버커키로 가는 표를 샀던 일을 기억했다. 그리고 카탈로그는 이미 오래전에 불태웠지만, 그 책자는 누구나 살 수 있는 좋은 물건이 가득한 수백 페이지로 그의 머릿속에 살아 있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서방의 자유와 번영은 그저 선전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었지만 볼로댜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의 마음 일부는 공산주의가 패배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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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원당희 옮김 / 빛소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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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또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이란다. 아빠가 슈테판 츠바이크를 늦게 알게 되어 아직 읽을 그의 책들이 많다는 것이 행복하구나.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들을 출판사에서 꾸준히 출판해주는 것도 고맙고. 아빠가 슈테판 츠바이크를 좋아하다 보니 책 소개를 제대로 보지 않고 구매 버튼을 누르는 경우가 있거든. 그래도 아빠는 같은 책을 사지 않는 정도의 기억력은 가지고 있거든. 그런데 같은 책인데 우리나라에서 출간하면서 다른 출판사에서 다른 제목을 달고 나오는 경우가 있단다. 책 소개를 제대로 보지 않고 구매 버튼을 누르다 보니 이런 경우 같은 작품의 다른 출판사에서 번역 출판한 두 권의 책을 구입하는 경우가 있구나. 특히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은 그런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번에 아빠가 읽은 <과거로의 여행>이란 책도 그런 책이란다.

이 책에는 <과거로의 여행> <어느 여인의 삶에서 24시간>이란 두 작품이 실려 있단다. <과거로의 여행>을 한참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두 사람이 이별을 하기 위한 여행을 가는 것이 아빠가 사 둔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별 여행>과 혹시 같은 작품 아닌가? 하는 생각이 선뜻 들더구나. 그래서 그 책을 찾아 확인해 보니, 역시나 같은 작품인데 우리나라에서 다른 제목을 달고 나온 것이더구나. 동일 작품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출판사가 다르더라도 하나의 제목으로 출간하는 법을 마련하면 좋겠구나. 한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좀 아니지 않니? 그래서 아빠가 이 소설의 원제목을 찾아봤어. 그런데 왜 원제도 다르게 나와 있지? <과거로의 여행>이라는 책의 원제는 “Widerstand der Wirklichkeit”로 적혀 있었고, 구글 번역기를 돌려보니 현실에 대한 저항으로 번역되었어. <이별여행>이라는 책의 원제는 “Die Reise in die Vergangenheit”로 적혀 있었고, 구글 번역기를 돌려보니 과거로의 여정이라고 번역되었단다. 둘 중 하나의 출판사의 실수인가? 책 내용이 똑같은데, 두 출판사가 원제가 다르게 적혀 있다니어찌된 일인가.

<과거로의 여행>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책제목과 같은 <과거로의 여행> <어느 여인의 삶에서 24시간>이 실려 있고, <이별이행>이라는 책에는 책제목과 같은 <이별여행> <당연한 의심>이 실려 있단다. 다행히 같이 실려 있는 작품은 서로 다르더구나. 가만, 그냥 제목이 다르니까 다르겠거니 생각했는데 혹시 이 경우도 제목만 다른 거 아냐? 다시 책 소개를 자세히 읽어보니 다행히 다른 소설인 것 같구나. 서두가 길긴 했는데, 그러면 이번에 읽은 책 <과거로의 여행>을 이야기할게.

 

1.

그럼 먼저 <과거로의 여행>을 이야기해줄게. 집안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화학박사가 된 루트비히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란다. 그는 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사장의 신임을 얻어서 사장이 병에 걸려 출근을 하지 못할 때 사장의 집에서 개인 비서 겸 연구를 했단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의 여자를 만났으니 사장의 부인이었어. 하지만 사모님이니 속으로만 짝사랑을 했어. 그런데 사모님도 루트비히에게 남몰래 호감을 가지고 있었단다. 2년이 흐르고, 사장은 루트비히를 더욱 믿게 되었고 높은 연봉을 주면서 멕시코에서 2년간 출장을 다녀오라고 했어. 루트비히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였으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사장님의 부인이었지. 멕시코로 떠나고 나면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기회가 없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루트비히는 용기를 내어 부인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부인도 그 마음을 받아주었단다. 10일 후면 멕시코로 떠나는데, 10일 동안 그들은 비밀 연애를 했단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면서 아주 위험하게….

멕시코에 가서는 편지를 주고 받긴 했지만 머릿속에는 늘 부인 생각뿐이었어. 부인을 잊기 위해 열심히 일에 몰두를 하였단다. 그리고 2년이 흘러 기쁜 마음으로 귀환 준비를 하고 있을 즈음 유럽에서는 전쟁이 발발했단다. 이 책이 1929년에 쓰여진 것이므로 이 전쟁은 1차세계대전일 듯 싶구나. 그렇게 전쟁이 일어나자 루트비히의 귀환은 무기한 미뤄지고, 멕시코에 남아 더 일하라는 사장님의 지시가 내려졌어. 전쟁 때문인지 부인의 소식도 끊기고, 루트비히도 부인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 갔어 그리고 멕시코에서 어떤 사업가의 딸과 결혼을 하였고 또 4~5년이 지났어.

그리고 종전 소식이 전해졌단다. 그러자 다시 부인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편지를 보냈어. 두 달 뒤 답장이 왔는데, 남편은 전쟁이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죽고 자신은 아들과 잘 지내고 있다고 하면서 결혼도 축하한다고 했어. 그 이후 다시 편지로 서로 안부를 주고 받았단다.

….

사업차 출장으로 베를린에 가게 되었을 때 부인에게 전화를 했단다. 그래서 그들은 프랑크푸르트에서 9년만에 다시 만난 것이란다. 9년이라는 세월 동안 세상도 변하고 그들의 몸도 많이 변했겠지만, 9년 전 서로에게 느꼈던 그 마음은 그대로였단다. 하지만 루트비히는 결혼을 한 몸이니 둘은 서로 본심을 숨기고 서로 예의를 지키면서 만났단다. 루트비히는 자신의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부인에게 접근했지만, 부인은 루트비히의 마음을 알지만 그를 밀어냈단다. 집에는 하인들의 시선들도 있고 말이야. 그래서 둘은 하이텔베르크로 여행을 가기로 했단다. 어쩌면 그들 생에 있어 둘이 가는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었어. 과거를 떠오르게 하는 여행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은 <과거로의 여행>인가 보구나. 그리고 다른 출판사에서 제목으로 뽑은 <이별여행>도 이해가 가는구나. 이 여행을 끝으로 둘은 각자의 삶을 살아갈 테니 말이야.

그들은 하이델베르크 행 기차를 탔는데, 하필 군인들이 잔뜩 탄 기차여서 둘 만의 은밀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단다.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한 그들은 조심스럽게 호텔에 들어갔는데 다행히 빈방이 하나 있어서 들어갔는데 방은 지저분하고 사용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그런 방이었어. 그들이 원했던 여행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기차에서는 둘 만의 오붓한 대화를 나누고, 깨끗한 호텔에서 행복한 시간을 기대했을 텐데그런 방에 있기 보다 산책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산책을 했단다. 둘은 과거 속을 거닐 듯 산책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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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저 그림자는 길 위에 늘어뜨린 그들의 그림자였다. 그것은 그들만의 고유한 말을 다루면서 그 이상의 뭔가를 일깨워 주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몸을 떨면서 그 인식의 두렵고 참된 뜻을 깨달았다. 시는 예언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두 그림자는 과거를 찾아 헤매던 그림자가 아니었을까? 더는 현실이 아닌 과거를 향해 애매모호한 질문을 던지던 그림자, 살아남으려고 하지만 더는 그럴 수 없는 그림자가 아니었을까? 그녀와 그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지만, 끊임없이 과거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썼던 것은 아니었을까? 발아래 드리워진 저 검은 유령처럼 그들은 헛된 노력에 힘을 탕진하며, 달아나고 멈추는 유희를 계속한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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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그렇게 끝이 났단다. 그 이후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엇으로 막으려고 해서 길을 찾아 오는 것인데, 나약한 사람의 의지로 사랑을 잊고 각자의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2.

두 번째 작품은 <어느 여인의 삶에서 24시간>이라는 소설이란다. 이 소설은 참고로 1925년에 출간한 소설이란다. 주인공 가 지중해 연안 휴양지 리비에라 펜션에서 머물 때 일어난 일에 대한 이야기란다. 그 펜션에는 일곱 명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프랑스 청년 한 명이 이 펜션으로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단다. 그 프랑스 청년은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용모도 잘 생긴 청년이었어.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어. 프랑스 청년은 해박한 지식에 말솜씨가 좋았어. 그날 밤 11시 해변에 갔던 한 부인이 돌아오지 않은 일이 일어났어. 나중에 그 부인의 편지가 발견되었는데, 남편만 두고 그곳을 떠난 거야. 그 부인은 앙리에트 부인이었는데 그날 온 프랑스 청년과 함께 펜션을 두고 떠난 거야.

사람들은 식탁에 모여서 이 일을 두고 백분토론이 벌어졌어. 대부분이 부인을 흉보았지만, ‘는 앙리에트 부인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어. 그러자 사람들은 에게 큰소리로 반박을 했고 식탁은 큰 소리가 오가며 시끄러워졌단다. 이때 백발의 C부인이 중재를 하면서 식탁은 조용해졌단다. 이후에는 다른 손님들은 에게 앙금이 있는 것 같았는데, C부인만 에게 관심을 가졌단다.

가 펜션을 떠나기 이틀 전 C부인이 에게 20여년 전 있었던 사건(?)에 대한 편지를 써서 보냈단다. 그 사건에 대한 의 의견이 어떤지 궁금하다면서 말이야. ‘는 정성을 들여 답장을 썼단다. 부인은 에게 만나자고 했고 부인은 20년 전 자신의 24시간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어.

C부인의 현재 나이는 67살이고, 그 사건이 있었던 것은 42살 때라고 했어. C부인은 그보다 2년 전인 40살 때 남편이 죽어 홀로 되었다고 했어. C부인은 18살에 결혼을 해서 아들들은 이미 성인이 되어 외지에서 지내고 있어서 C부인은 홀로 지내야 했어. 그래서 여행을 가기로 했어. 몬테카를로에 갔다가 카지노에 가게 되었어. 남편이 생전 카지노의 전술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생각나서 C부인은 남편의 조언대로 사람들의 손만 유심히 봤어.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나는 거야. 손 꺾는 소리가 나는데 마치 손이 말을 하는 것처럼 카드 게임의 향방을 알 수 있는 듯한 손의 놀림과 우드득 소리어쩔 수 없이 그 손 주인의 얼굴을 봤는데, 얼굴은 24살 정도의 젊은이인데 얼굴에도 자신의 패가 다 드러나는 그런 얼굴이었어. 그야말로 포커페이스가 안되는 카지노에서는 최악의 얼굴이었지. 결국 그 젊은이는 돈을 다 잃고 자리를 뜨는데 얼굴 표정은 더 안 좋았어.

혹시 바쁜 짓은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지. 그래서 C부인은 그를 따라 나섰고, 삶을 좌절한 듯한 그를 보게 되어 그를 도와주려고 말을 걸었어. 그러자 그 젊은이는 C부인을 창녀로 오해했어. 그리도 C부인은 그 젊은이를 호텔로 데려다주고 돈도 주었단다. 시간이 늦어 C부인도 그 호텔방에서 묵었어.

다음날 그 젊은이가 일어나기 전에 호텔을 빠져 나오려고 했지. 문득 젊은이의 얼굴을 봤는데, 어제의 좌절과 탐욕이 드리워진 얼굴이 아닌 명랑하고 평화로운 얼굴이었어. C부인은 자신이 한 젊은이를 구해주었다는 생각에 흐뭇하고 자랑스러워했단다. 잠에서 깬 젊은이는 C부인에게 카지노에서 정오에 만나기로 약속했단다.

다시 만난 젊은이는 C부인에게 고마워했어. 그러면서 젊은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단다.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 그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데, 학창 시절 이런 소설을 액자식 구성이라고 했던 기억이 나는구나.^^ 아무튼 이번에는 젊은이의 이야기를 해줄게. 젊은이는 외교관 1차 시험에 합격을 했다고 했어. 그래서 아버지가 축하금을 주었는데 그 돈으로 도박을 하게 되었고, 순식간에 도박에 빠지게 된 것이란다. 그 이후에는 빚도 많아지고 도박을 끊을 수 없는 도박 중독이 되었어. 숙모의 귀고리까지 훔쳐서 도박을 했다고 했어. C부인은 이야기를 듣고는 젊은이에게 몬테카를로를 떠나야 한다고 권유했어. C부인이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저당잡힌 귀고리까지 찾아주겠다고 했어. 그러면서 그 젊은이와 함께 해변도 거닐고, 일종의 데이트를 했단다. 어느덧 C부인은 그 젊은이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 것 같았어. 펜션에서 프랑스 청년과 도망간 앙리에트 부인처럼 말이야. 앙리에트 부인을 옹호하던 에게 C부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지 알겠지?

C부인은 그 젊은이를 성당에 데리고 가서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라고 했어. 그 젊은이는 진심으로 참회하고 기도를 올렸어. C부인은 다시 한번 그를 구원했다고 생각하여 기뻐했단다. C부인도 그 젊은이게 여행 비용과 전당포에서 찾은 귀고리를 찾아 돌려주었어. 그 젊은이는 돈을 받을 수 없다고 했지. C부인은 그러면 영수증을 써주고 나중에 갚는 것으로 하자면서 돈을 건네주었단다. 젊은이는 가고 홀로 남은 C부인은 왠지 모를 고통을 느끼게 되었단다. 그 고통의 원인을 생각해 보니 젊은이가 한 번에 가버린 것에 대한 실망감 때문인 것 같았어.

그 젊은이가 그렇게 가버리지 않고 C부인 곁에 남았다면 타락의 길로 빠질 수도 있었지만, 그 젊은이에게 실망한 것은 실망한 것이었어. 그 젊은이가 떠나는 기차역에 가려고 했는데, 하필 남편의 사촌누이가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다가 기차 시간을 놓치고 그 젊은이를 보지 못했단다. 아쉬운 마음에 그 젊은이와 함께 했던 장소들을 따라가보았어. 그런데 카지노에서 그 젊은이를 다시 보았단다. 자신이 완벽하게 구원한 줄 알았던 그 젊은이는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자신이 준 돈으로 다시 도박을 하고 있었어. 그의 얼굴에는 예의 탐욕과 광기의 표정이 다시 드러났어. 이번에는 돈도 많이 벌었는데 여전이 손은 벌벌 떨고 있었지.

C부인은 이런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그 젊은이는 C부인을 알아보지 못했어. 그의 어깨를 잡아서 아는 척을 했더니 그 젊은이는 엄청 당황했단다. 그는 한 번만 하겠다고 했지만, 그것이 지켜질 리가 있는가. 그는 심지어 화를 내면서 C부인가 준 돈을 돌려주면서 내쫓으려고 했어. 그런 소란으로 다른 카지노 손님들이 그들을 보게 되었고, 그들 중에는 시누이도 있었단다. C부인은 화가 나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어. 이것이 24년 전 그녀의 한 평생 중 24시간 이었던 일이었어. 자신이 살아온 시간들 중에 24시간을 그리 많은 시간이 아니지만 그 24시간은 여전히 고통스럽다고 했단다. 당시 그 일을 겪고 몬테카를로를 떠난 것은 그 젊은이가 아니고 C부인이었어. C부인은 무작정 몬케카를로를 떠나 아들이 머물고 있는 런던으로 갔단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그 젊은이의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10년 전 권총 자살을 했다고 했단다. 그렇게 C부인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던 이야기를 끝냈단다. 고작 24시간이 나머지 시간을 지배하여 고통스럽게 했던 C부인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그 고통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구나.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났단다. 이 소설은 그리 길지 않은 소설인데, 아빠가 좀 길게 이야기한 것 같구나. 그만큼 재미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니.

이 책에 실린 두 작품 모두 재미있었지만, 그래도 한 작품을 고르라고 하면 아빠는 두 번째 <어느 여인의 삶에서 24시간>을 작은 차이로 고르겠다. 누구나 과거의 어떤 안 좋은 기억이 머릿속에 자리를 차지하여 흘러가는 시간을 잡아 먹는 일들이 있을 거야. 그것을 이해해주는 사람에게 그 고통을 이야기하면서 풀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소설인 것 같구나. 혹시 너희들과 과거의 어떤 일이 현재를 집어 삼키는 일이 생긴다면 아빠나 엄마에게 이야기해주면 좋겠구나. 그 고통들이 입을 통해 몸 밖으로 나와 하늘로 날아가 버릴 수 있게 도와줄게.

오늘은 그럼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오셨군요.”

책의 끝 문장: 그녀의 손은 가을철의 낙엽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가 문득 어떤 물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바람은 말로 꺼내기도 전에 이루어졌다. 그것도 아주 세심하고 눈에 띄지 않게 이루어져서 고마움을 표현할 기회조차 없었다. 가령 어느 날 그는 귀중한 판화 작품집을 훑어보며 램브란트 판화에 경탄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 이미 그 판화 복사본이 그의 책상 위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또한 친구에게 어떤 책을 추천받았다고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하기만 해도, 며칠 뒤 그 책이 책장이 꽂혀 있었다. 무의식중에 그는 방이 마음에 들며 편안해졌다. - P21

그는 스스로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지내다 보니 그의 내부에 있는 치밀한 열정의 그물이 서서히 풀어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추억만으로 살 수 없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색이 바래지 않고 꽃이 시들지 않으려면 땅의 영양분은 물론, 하늘의 새로운 빛이 늘 필요하다. 식물이나 모든 구성물이 그렇듯, 우리가 꾸는 꿈도 마찬가지이다. 얼핏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꿈조차도 모종의 감각적 양분의 필요하다. 섬세하고 구체적인 감각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본연의 특징과 광채도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 P42

그러나 그날 밤, 낯선 호텔 방에 홀로 있게 된 그는 가슴속 심장이 옆에서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보다 더 격렬하게 뛰는 바람에 전혀 안정을 찾을 수 없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불을 켰다. 그러고는 다시 끄고 자리에 누웠다.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그녀의 입술만 떠올랐다. 그 입술은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친밀함과는 다르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자 불현듯 깨달음이 찾아왔다. 둘 사이에 이렇게 느긋하게 담소만 나누는 것은 거짓이라는 걸. 그들 사이에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풀리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다. 결국 그는 예민함과 산만함, 불안과 열정으로 혼란스러운 얼굴 위에 우정이라는 가면이 가식적으로 씌워져 있었음을 깨달았다. - P50

둘은 말없이 언덕길을 올라갔다. 벌써 그들 아래 보이는 집들이 희미한 빛 속에 잠겨버렸고, 황혼의 빛을 받아 가물거리는 계곡의 출렁이는 강물은 둥글게 휘어져 흐르며 점점 더 밝아졌다. 그러는 사이 언덕 위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윙윙 소리를 냈다. 두 사람 머리 어둠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들과 마주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림자만이 말없이 그들을 성큼성큼 앞서 나갔다. 가로등이 그들을 비스듬히 비출 때면 언제나 앞서가던 그림자는 마치 서로 포옹이라도 하듯이 합쳐졌다. 길어진 그림자는 서로를 바라보고, 하나로 합쳐졌다가 떨어지고는 또다시 포옹하려 했다. 한편 그 옆에 선 그녀는 힘없이 긴 숨을 내쉬며 터벅터벅 걸어갔다. - P71

나는 그녀의 명료하고 쾌활한 말투에 매우 호감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그녀의 사무적인 어조를 따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답했다. "국가의 사법기관은 이 사태를 저보다는 당연히 더 엄격하게 결정하지요. 사법기관은 동정심에 흔들리지 않고 보편적인 윤리와 관습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며, 따라서 용서하는 대신에 판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으로서 검사의 역할을 떠맡아야 한다고는 개인적으로 인간을 판단하기보다 이해하는 것이 제 마음에 더 들기 때문입니다." - P90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고마워하는 마음을 잘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은 법입니다. 고마운 마음을 가슴에 담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니까요. 그들은 당황해하며 침묵하거나 부끄러워하고, 때로는 이런 감정을 숨기려 무뚝뚝한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비로운 조작가와도 같은 신은 감정의 모든 동작을 감각적이면서도 아름답고 조형적으로 빚어냈나 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사람의 감사함의 표현은 마치 열정적인 몸짓처럼 육체의 깊은 곳에서부터 환한 빛을 냈습니다. 그는 제 손등 위로 고개를 속였습니다. 그러더니 소년처럼 갸름한 머리를 겸손하게 낮춘 후, 거의 1분 동안이나 그렇게 있다가 제 손가락에 정중히 가벼운 입맞춤을 하였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다시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제 안부를 묻고는, 감동 어린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 P140

폭풍우가 요란하게 퍼붓는 사나운 밤이 지난 후 이런 감동적인 날이 밝아왔습니다. 깨끗하게 씻긴 거리와 파란 하늘이 눈부시게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사방에서 수액을 머금은 눈부시게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사방에서 수액을 머금은 초록 덤불이 횃불처럼 붉은 꽃송이를 빨갛게 피워내고, 햇살에 습기가 날아가 가벼워진 대기 속에서 먼 곳의 산들이 갑자기 우리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산들이 깨끗이 씻겨 반짝이는 도시를 향해 사방에서 모여들었습니다. 둘러보는 곳곳마다 자연은 사람들을 격려하고 북돋우며 다가와서는, 슬며시 그들의 마음을 빼앗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때 저는 그에게 "마차를 타고 코르니시 해변을 달려볼까요?"라고 말했습니다. - P147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어느 모임에서 저는 오스트리아 공사관의 주재원인 폴란드 청년을 만나게 되어 그의 가족에 대해 물은 적이 있습니다. 청년은 자기 친척의 아들인 한 남자가 10년 전 몬테카를로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이 소식을 듣고 별로 놀라지 않았습니다. 거의 고통스럽지도 않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이기주의가 작용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그를 만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간직한 기억 외에 제게 불리한 증인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더 안정적인 상태가 되었습니다. 늙어간다는 과거에 대해 더는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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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픽처스
제이슨 르쿨락 지음, 유소영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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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몇 달 전 인 것 같구나. 신간 소개에서 겉표지가 끌리는 <블라인드 웨딩>이라는 책을 봤어. 평이 좋아서 읽어볼까 하다가 그 책을 쓴 지은이 제이슨 르쿨락의 책들을 살펴보니, 낯익은 책 한 권이 보이더구나. <블라인드 웨딩>의 겉표지과 대표적인 겉표지를 가지고 있는 <히든 픽처스>라는 책이었어. <블라인드 웨딩>을 읽기 전에 제이슨 르쿨락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히든 픽처스>를 먼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읽게 된 책이 <히든 픽처스>이란다 이런 소설의 장르를 뭐라고 해야 하지추리 소설과 미스터리 소설이 믹스되었다고 해야 할까? 이 소설에는 초현실적인 내용도 나오거든이 책을 읽다 보면 오래된 영화이긴 하지만 <식스 센스> <더 아더스>가 떠올랐단다. 너희들은 위 영화를 안 봤겠지만 말이야. 최근에 이런 초자연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들이 있나 모르겠구나. 최근에는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아서그럼 바로 책 이야기를 해줄게.

 

1.

21살의 맬러리 퀸이라는 사람이 주인공이야. 장거리 육상 선수였으나 한때 약물에 빠지기도 했어. 하지만 지금은 18개월째 약물을 하지 않고 약물치료센터에서 재활 중이었단다. 어느 정도 정상 생활을 할 수 있어서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고, 센터의 코치 러셀이 추천하여 맥스웰 부부의 다섯 살 아들 테디를 돌보는 베이비시터을 하게 되었어. 테디의 엄마 캐럴라인과 처음 만났는데, 캐럴라인은 맬러리의 약물 이력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고 오히려 약물을 극복한 맬러리를 좋게 봐 주었단다. 그러면서 테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어. 테디가 그림을 많이 그리는데, 그림에는 실재하지 않는 사람을 그린다고 했어. 테디의 상상 속 친구 애냐가 그 주인공인데, 애냐는 침대 밑에서 잔다고 했어. 애냐를 그릴 때는 흉측하게 그리는데 이 책의 표지에 그려져 있는 그림이 바로 애냐 그림이란다. 테디는 맬러리를 만나보더니 잘 따르고 좋아했단다. 테디의 아빠 테드는 엄청 깐깐하면서 유능한 엔지니어인데, 캐럴라인과 달리 맬러리의 약물 이력을 꺼려하는 느낌이었단다. 맬러리는 별채에서 생활하면서, 아침에 본채로 출근하여 테디를 봐주는 일을 시작했단다.

이웃집 사람들과도 인사를 했는데, 이웃집 미치라는 부인이 이야기하길, 70여년 전 별채 자리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서 애니라는 사람이 죽었는데 시신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어. 애니? 테디의 상상 속 친구 애냐와 이름이 비슷하잖아? 테디가 이제 고작 다섯 살이라서 이름을 잘못 듣고 애냐라고 부르는 것 아니야?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맬러리는 별채에 혼자 있다 보면 불안하고 이상한 생각들이 들었어.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어.

어느날 테디가 분명 방에 혼자 있었는데, 방문 밖에서는 테디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어. 그리고 테디의 그림은 점점 이상해져 갔단다. 다섯 살 아이가 그리기에는 너무 기괴하고 무서웠어. 어떤 남자가 애냐를 숲으로 끌고 가는 그림, 어떤 남자가 애냐를 구덩이에 넣는 그림. 애냐의 목을 조르는 그림맬러리는 이 그림들을 캐럴라인에게 보여주고 테디를 병원에 데려가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어. 그러자 그동안 친절했던 캐럴라인은 크게 화를 냈어. 다음날 맬러리와 캐럴라인은 화해를 하긴 했지만 앙금이 남아 있었을 거야. 자신의 그림 때문에 엄마와 맬러리가 싸운 것을 알게 된 테디는 그림을 안 그리는 척 했단다. 하지만 맬러리가 쓰레기통에 버려진 그림을 봤는데, 이번 그림도 어둡고 음침한 그림인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섯 살 아이가 그렸다고 하기에는 너무 정교하고 잘 그렸다는 거야. 마치 어떤 혼령이 테디의 몸 속으로 들어와 그린 것처럼 말이야.

 

2.

이런 장르에서 사랑 이야기가 빠지면 섭하지. 방학이라고 이웃에 에이드리언이라는 젊은이가 와서 지내면서 정원사 일을 했어. 테디의 집도 에이드리언이 와서 잔디를 깎아주었는데, 그 때 맬러리와 에이드리언이 알게 되었단다. 그 이후 친해져서 데이트를 하는 사이가 되었지. 그런 에이드리언에게 자신이 약물을 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했어.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아. 어차피 지금은 거의 다 극복한 상태이니 말이야.

앞서 이야기했던 이웃집 부인 미치는 알고 보니 심령술사였단다. 맬러리는 테디의 상상 속 친구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미치의 도움을 받아 유령을 불러내려 했지만, 이상한 글씨만 쓰게 하여 실패하였어. 미치는 그 실패를 맬러리 탓으로 돌렸단다.

앞서 이야기한 테디가 정밀하게 그림 같은 것들이 맬러리가 머무는 별채에서도 나타났단다. 내용은 여전히 음침하고 무서운 그림이었어. 그림으로 무엇인가 이야기하려는 것 같았어. 집에서는 점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단다. 부부가 외출하고 맬러리와 테디만 둘이 집에 있었어. 맬러리는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네 시간이나 자고 일어난 거야. 그런데 거실 벽에 온통 그 이사한 그림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고, 자신의 손에는 그 그림을 그린 듯한 까만 먹탄 자국이 잔뜩 묻어 있었단다. 이제 애니 유령은 맬러리에게 빙의되어 들어와 그림을 그렸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어.

외출에서 돌아온 맥스웰 부부는 깜짝 놀랐고, 맬러리는 자신의 몸에 애니가 들어와서 그렸다고 이야기를 했지. 미신을 믿지 않는 맥스웰 부부는 맬러리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맬러리가 다시 약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했단다. 그래서 약물 검사도 실시해보았는데 결과는 다행히 음성이었어. 이런 일이 있다 보니 맥스웰 부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맬러리를 해고했단다.

맬러리는 에이드리언과 함께 그림들의 순서를 짜맞추면서 내막을 알아보려고 했어. 그런데 있잖니이 일은 결말부에 가서 이상하게 급반전된단다. 캐럴라인이 처음부터 이상하긴 했어. 충격적인 숨겨진 진실이 있었어. 이것까지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되겠구나. 그 마지막 진실이 그동안의 떡밥들을 설명할 수 있어. 마지막 결론만 이야기하자만 권선징악이라는 것. 소설은 끝없이 몰아치는 폭풍같이 전개되다가 마지막에 권선징악의 잔잔함으로 끝이 났단다.

이 책은 있잖니, 한 편의 심령 미스터리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단다. 이제 지은이 제이슨 르쿨락의 <블라인드 웨딩>도 한번 찾아 읽어봐야겠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몇 년 전, 나는 돈에 쪼들려서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한 연구 프로젝트에 지원했다.

책의 끝 문장: 나도 기다리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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