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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0
이원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지만, 우리에게 알려진 독립운동가들은 그리 많지 않단다. 이런 저런 이유로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이 많아. 그런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의 행적을 조사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그의 업적을 인정해주는 사람들도 계시단다. 고맙게도 말이지그런데, 공산주의 깃발을 들고 있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로 인해 공산주의에 발을 조금이라도 들여놓았던 이들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단다. 이번에 읽은 김산이라는 독립운동가도 그런 축에 들었던 사람이야.

김산이라는 독립운동가는 어쩌면 헬렌 포스터 스노가 아니었다면 더욱 알려지지 않았을 거야. 헬렌 포스터 스노가 그와 인터뷰를 하고, 그에 관한 책을 출간해서 그의 존재가 잊혀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 거니까 말이야. 헬렌 포스터 스노가 님 웨일즈라는 필명으로 남긴 <아리랑>. 아빠도 예전이 이 책을 읽어보았단다. 그 책 하나만으로도 매력적인 남자 김산에 대해 알 수 있지만, 그에 관한 책을 이번에 한 번 더 읽었단다. 아빠가 김산이라는 인물에 매력을 느꼈던 이유도 있지만, 지은이가 이원규라는 분인 것도 한 몫 했단다.

이원규님의 책들을 몇 권 읽었는데, 다 재미있게 읽었거든. 소설도 쓰시고,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평전도 쓰시는 분인데, 평전을 마치 소설처럼 쓰신단다. 지은이의 상상력도 가미된 평전. 그래서 더욱 읽기도 편하고, 재미도 있었거든. 이번에 읽은 <김산 평전>도 그런 방식으로 쓰셨어. 제목에 평전을 달아 놓았지만, 김산의 삶에 대한 소설이라고 봐도 무방해. 심지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김산과 인연을 맺은 어떤 여인에 대해서는 가상의 이름으로 정해서 이야기를 풀어갔단다. 누군가는 평전에 작가의 상상력을 추가하면 어쩌냐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아빠는 좋았단다.

….


1.

김산은 본명이 아니야. 김산은 그의 여러 가명 중에 하나였단다. 그의 호적에는 장지학이라는 이름이 올라가 있어서 그게 본명일 것 같지만, 그는 삶의 대부분은 장지락이라는 이름을 썼단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김산의 본명을 장지락으로 알고 있단다. 김산, 장지락 모두 이름이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 책에는 그를 부를 때 장지락으로 주로 이야기해서 아빠도 너희들에게 이야기할 때 김산보다는 장지락으로 이야기할게.

장지락은 1905. 을사늑약이라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해에 평안도 용천이라는 곳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단다. 어린 시절부터 수재라는 소리를 들었대. (머리 좋은 것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와 큰형과는 사이가 좋지 않고, 둘째 형과 사이가 좋았대. 구둣방으로 성공한 둘째 형의 든든한 후원으로 숭실 중학에 입학할 수도 있었고, 3.1운동 후에는 둘째 형의 도움으로 도쿄로 유학을 가기도 했단다. 3.1운동이 1919년에 일어났으니, 당시 장지락의 나이 고작 15살이었는데, 홀로 일본 유학을 가다니

더 놀라운 것은 도쿄에서 모스크바 러시아 혁명에 대해 알게 되고, 모스크바행을 결심했다는 거야. 그래서 계획보다 일찍 일본 유학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몰래 모스크바로 향했단다. 그의 나의 아직 십대이던 시절이야. 그런데 그의 계획대로 편안하게 모스크바를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 그는 하얼빈에서 길이 막혔어. 하얼빈.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겼했던 곳. 어쩌면 그곳에서 장지락은 안중근 의사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의 뒤를 따르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는 신흥무관학교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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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장지락은 그곳을 떠나 하얼빈 역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격살한 자리에 서 있었다. 러시아군 의장대원들 틈으로 의연히 걸어 들어가, 막 기차에서 내리는 조국 침략의 원흉을 향해 권총을 발사하는 안중근. 그는 그 순간의 광경을 상상하다가 온몸에 전율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유치장에서 숭실학교 고급 학년 선배들이 속삭인 말들이 고스란히 되살아왔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서간도에 있다는 신흥무관학교로 가자. 가서 일본과 싸울 방책을 배우자. 일단 그렇게 마음을 굳히자 그것은 오랫동안 염원해온 것처럼 강렬해졌다. 그는 그 학교가 서간도 통화현 합니하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는 150원쯤 남은 일본 돈을 중국 돈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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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얼빈에서 신흥무관학교가 있는 서간도 통화현까지의 700여리 길얼어 죽을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가는 길에 삼현보의 안동식 장로의 도움을 받았어. 안동식 장로의 집에서 머물면서,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어. 그곳에서 안동식 장로의 딸 미삼과 정이 들기도 했단다. 신흥무관학교에 도착한 장지락.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나이는 18. 장지락은 15. 하지만 700여리 길을 홀로 걸어온 그의 의지를 들은 학교측은 그의 입학을 허락하였고, 그는 과정을 잘 마쳐서 최연소 졸업이라는 기록을 세웠단다.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안동식 장로의 교회에서 선생님을 잠시 하고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 요원들과 인연을 맺었단다. 안창호와 만나 흥사단에 가입을 했어. 그리고 약산 김원봉과도 만나 의열단 비밀 요원이 되었어. 이때 평생의 동지가 되는 오성륜 등을 만났단다.


2.

잠시 고향에 돌아왔다가 둘째 형의 조언을 듣고 북경에 있는 협화의학원에 입학했단다. 그의 나이 18세였어. 장지락은 북경 협화의학원에서 의학을 공부했단다. 그것에서 김성숙을 만나면서 공산주의도 접했단다. 민족주의 기반을 둔 공산주의자라고나 할까. 북경에서 김성숙과 공산주의 활동을 했어. 조산공산당 북경 지부를 설립하기도 했단다.

..

김성숙이 광동으로 먼저 떠나고 장지락도 학업을 중단하고 광동으로 떠났단다. 그곳에서 국민당의 정부의 배려로 국립광동대학 의학과 본과로 다시 편입했어. 그러나 편하게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 장지락에게 계획이 있잖아. 독립. 독립을 위해서라면 그가 모든 것을 했어. 어떤 이는 사상이 맞지 않으면 함께 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지만, 장지락은 오직 조선 독립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사상도 그 어떤 분파도 가리지 않았고 누구든 만났단다.

놀라운 것은 그의 나이 아직 이십 대 초반이었어. 그는 의학을 포기하고 법학으로 전과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고, 중국 정부의 협조를 한 것도 조선 독립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던 거야. 중국의 국공합작이 장개석의 쿠데타로 끝난 이후에는 중국공산당의 봉기에 참가하기도 했는데, 상황이 좋지 않게 되었지. 광동을 떠나 해륙풍 소비에트에 도착하게 되었어. 그곳에서 중국공산당의 일원으로 전투에 참가하여 죽음의 위기도 넘겼지만, 그만 말라리아에 걸리고 말았단다. 상해로 돌아와서 말라리아 치료를 하면서 몸을 추스렸단다.

건강을 되찾고 나서는, 북경과 상해 등을 오가며 중국 공산당의 활동을 하다가 북경에서 공안에게 체포 당했고, 이후 일본 대사관에 인도되었고, 다시 신의주 경찰서로 압송되었단다. 그 곳에서 40여일 고문 취조를 당했는데, 그 고문이 얼마나 심했는지 그는 폐결핵이 걸리고 건강이 악화되었어.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어. 고향에 와서 요양을 좀 하다가 다시 북경으로 돌아갔어.

공산당에서는 그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가 무혐의로 풀려났다는 것을 들어 변절했을 것이라고 했어. 그런 모략을 한 이는 같은 동포 한위건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한위건이 중국공산당에 가입하려고 할 때 비슷한 이유로 장지락이 거절 의사를 보인 적이 있는데 그가 똑같이 되갚음을 한 것이었어. 그때부터 한위건과 앙숙 관계가 이어졌는데, 한위건도 사실 일본의 프락치는 아니었다고 하는구나. 나중에는 병든 장지락에게 약을 몰래 전달해 주기도 했지만, 끝내 서로 오해를 풀지는 못했다고 했어. 한위건도 당시 일본경찰서에 풀려 나온 장지락을 의심하기는 했지만 후에 장지락을 평가할 때 나쁘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어. 한위건 역시 조선 광복을 보지 못하고 이국 땅에서 안타깝게 삶을 마감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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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

그 뒤 만주에 중앙당 밀사로 파견되어 중국공산당과 조선인 공산당 조직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탁월한 공적을 세웠소. 만주에서 온 동지들은 말해요. 지금 일어나고 있는 파르티잔 투쟁이 장지락의 공작 덕분이라고. 우리 조국의 역사가 어찌 될지 모르지만 그의 공로는 아마 굵은 글자로 기록될 것이다.

그는 뛰어난 선동가이자 비밀조직의 명수이지만 명문대학을 다닌 공산주의 이론가이기도 해요. 정말 그는 그렇소. 많은 책을 읽은데다 일본에 한 해 동안 머물렀다는데 일본어도 능통해 사상서를 번역하기도 했소. 아무튼 그는 두 번이나 내 진정성을 의심하며 입당을 거부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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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 병과 폐결핵 등 잇단 중병을 겪어서 장지락의 건강은 그리 좋지 않았단다. 한위건의 모략으로 중국공산당에 복귀하지 못하고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어. 그러다가 또 공안국에 체포되어 또 일본 측에 넘겨지고 또 고국으로 압송되었다가 석방되어 고향집에 머무르기도 했단다. 다시 출국 금지령을 어기고 북경으로 향했단다.


3.

북경에 갔지만 이번에도 공산당으로부터 외면을 당했어. 그는 그곳에서 그 전부터 알고 지나면 동지 조아평과 결혼을 하고 가정교사와 번역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어. 얼마나 답답했겠니, 억울한 누명으로 독립운동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야. 그는 상해로 가서 김성숙과 재회하게 된단다. 그것에서 김성숙과 함께 소금을 비유한 선언문을 쓰는데 글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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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

우리는 더는 물속에 녹아 있는 소금처럼 우리를 잃어버릴 처지가 못 된다. 우리는 쫓겨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다른 세력에 가담하는 하나의 세력으로서 중국에 가세해야만 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장래의 행동을 위하여 조선인의 운동을 건설하고 준비하는 방향으로 재빨리 우리의 정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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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김성숙과 함께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했어. 김성숙과 함께 중국 공산당이 움직임 따라 같이 이동했어. 그렇게 연안까지 오게 되었단다. 연안에 있는 항일군정대학에서 선생님으로 일했어. 이곳에서 그는 도서관에 책을 많이 빌려 보았는데, 책의 대출증마다 그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본 헬렌 포스터 스노와 인연을 맺게 된단다.

헬렌 포스터 스노는 장지락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장지락도 조선에 대해 서양에 알릴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응하게 되었단다. 2개월 간 22차례에 걸친 인터뷰.. 헬렌 포스터 스노는 장지락과의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나중에 자신의 필명 님 웨일즈와 장지락의 필명 김산의 공동 저자로 책을 내게 된단다. 하지만, 장지락은 아쉽게 책이 출간된 것을 보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게 돼. 그것도 너무 억울하게 말이야. 중국 공산당이 트로츠키파를 제거하는 대숙청이 있었는데, 그 숙청의 여파로 장지락이 일본의 간첩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고 말았단다. 그의 나이 34, 1938년의 일이었어. 그가 꿈에 그리던 조선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정말 슬프구나.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중국공산당은 그를 복권했고, 우리나라에서도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라는 훈장을 추서했다고 하는구나. 사람의 육신은 한 생으로 끝나더라도 영혼은 어딘가에서 이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그래야 장지락의 영혼도 끝내 조국은 광복되었고, 자신의 억울함도 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테니 말이야.


PS:

책의 첫 문장: 을사년(1905) 5 12, 음력으로는 3 12일로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과 여름의 중간쯤 되는 날이었다.

책의 끝 문장: 당적이 박탈되고 1975년의 추도대회와 거기서 공산당의 이름으로 낭독된 조사(弔辭)까지 취소되었다.


지락은 씹고 있던 비둘기 고기를 얼른 삼켰다.

"권력이나 권위는 인간 사회에 필요 없는 거다, 그런 게 없어도 인간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상이지요. 다시 말하면 국가라는 이름을 걸고 자행하는 모든 전쟁, 모든 억압을 규탄하는 거지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려면 개인이 자아를 확립해야 하며,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금욕과 자기 억제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통치자는 민중을 법과 규율로 구속하고 그 질서 안에 가둬야 한다고 확신하지요. 그것에 반대해 아나키스트는 국가가 없고 법률이나 규율이 없어도 인간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고 그렇게 되어야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이 된다고 여기지요." - P130

"그렇습니다. 희생의 철학은 제쳐놓고 톨스토이의 공산주의에 대해 말해보지요. <공산당선언>은 공산주의가 인간 영혼의 가장 고귀한 감정의 항거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장 천한 인간들이 갖게 마련인 가진 자들에 대한 질투의 산물이 아니라 정의의 산물, 가난한 자에 대한 동정의 산물이라고 했지요. 혁명의 목적에는 독재가 필요하지만 공산주의 출발 자체가 인도주의에 있다는 것이지요." - P287

"그대가 아픈 상처를 안고 산다는 건 장소 동지한테서 들어서 알고 있어. 내가 그대 마음을 받아줄 수 없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혁명을 위하여, 내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야. 그대와 나는 오로지 당이 준 과업이나 혁명을 위해 만날 수 있어." - P360

호송경관이 말했다.

"나는 사나이가 자기 조국을 위해 일신을 던진다는 사실을 존중합니다. 그래서 당신을 보통의 죄수처럼 다룰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조선인이라면 당신처럼 투쟁할 자신이 없으니까요. 나는 대사관에서 담당 주임에게 들었습니다. 당신은 의학 공부를 했으며, 시와 소설을 썼다고. 당신이 지은 시를 주면 영광으로 알고 받겠습니다. 그리고 중국 감옥에서 겪은 일도 이야기해주십시오." - P414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산, 그 산을 닮은 초가집의 지붕, 맑은 물에 씻은 듯 싱싱한 나무들, 반짝이는 조약돌이 깔린 냇가에서 흰 옷을 빨아 너는 여인들, 남자들의 여유와 여인들의 수줍음, 그런 게 좋았습니다. 조선은 그렇게 순수하고 자연스러운데 일본은 인공의 흔적이 많았지요. 조선이 조용한 나라라면 일본은 소리의 나라이지요. 토막토막 끊어지는 일본어, 게다짝 소리, 과장된 겸손으로 몇 번이나 허리를 굽히는 인사법, 모든 게 인공적이지요."

- 헬렌의 말 중에서.. - P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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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12-31 2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새해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곧 2020년 경자년이 됩니다.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소원하는 것을 이루는 시간 되셨으면 좋겠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ookholic 2020-01-01 23:23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고맙습니다.^^
드디어 202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2020년 새해 첫날은 잘 보내셨는지요?
2020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행복한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알라딘 서재에 날마나 올려주시는 글에서,
올해는 ‘미세먼지‘라는 단어가 사라졌으면 합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사계절 만화가 열전 13
이창현 지음, 유희 그림 / 사계절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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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만화책을 읽었단다. 너희들도 만화책을 좋아하잖니아빠는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만화책을 본단다. 이번에 읽은 만화책은 제목에 끌려서 읽어보았단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라니아빠는 독서 중독자를 꿈꾸다가 (심하지는 않지만) 책 중독자가 된 것 같구나. 책을 많이 얽어야 하는데, 책을 많이 사는 사람이 되어 버린열심히 읽으려고 하지만, 책 읽는 속도가 책 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구나. 생각해보니 독서 편지 쓰는 속도는 책 읽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네.

아주 평이 좋은 만화책은 아니지만, 독서를 다룬 만화책이라서, 독특하다는 생각으로 읽어 보았단다. 책 제목 대로 익명들의 독서 중독자들이 모인 독서 모임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만화로 그린 것이란다.


1.

이 만화책이 단순히 아주 가벼운 이야기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란다. 이 책에서 인용된 책들 중에는 쉽게 읽을 수 없는 책들도 있었어. 많은 책들이 언급되고, 책들의 내용이 인용되었는데, 지은이도 독서 중독자인 것 같더구나.

독서 모임의 멤버들은 약간의 괴짜의 모습을 하고 있단다. 책만 읽는 사람들은, 사회부적응자의 모습으로 그린 것 같았어. 아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야. 아빠가 생각하는 책을 즐겨 읽고 책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몇몇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 책을 많이 읽는 이들은 진보적인 성향을 갖는 것 같았어.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그런데 평균적으로 봤을 때 책을 많이 읽는 이들은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어.

아무래도 다독가들은 자신이 읽을 책을 직접 고르고, 책 속의 내용이 아무래도 거짓 TV 언론보다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런 책들을 읽다 보면, 세상의 시스템의 실체를 알게 되어 진보적인 성향을 띄지 않을까 싶구나.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아빠란다. 아빠가 젊은 시절을 책을 등한시 할 때는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니까, 대표적인 TV 채널과 대표적인 신문 찌라시를 읽고 보수적이었던 것 같아. 책을 만나고 책을 하나둘 읽으면서, 세상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성향이 바뀐 것 같아.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좀 더 나아지려면, TV 보다 책을 읽은 이들이 많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오늘은 이번에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보다, 아빠가 생각하고 있는 책에 관한 것을 간단히 이야기해보았단다. 아빠의 요지는많은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어야 세상이 바뀐다.



PS:

책의 첫 문장: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절대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 .

책의 끝 문장: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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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2-31 0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산으로 가버린
그런 만화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책을 아주 많이 읽으신 분 중에서
요상한 방식으로 오독을 하셔서
반대쪽으로 가신 분들도 많더라구요.

지식의 선택적 습득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별개라는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샘의 말쌈이
떠올랐습니다.

bookholic 2019-12-31 11:07   좋아요 0 | URL
네, 그렇게 오독할 수도 있겠군요.
저도 오독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럴 수 있다는 점 명심하고 읽겠습니다.

레삭매냐님, 올 한 해 좋은 책 많이 소개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도 좋은 책들 소개 부탁드립니다^^
 















(17)

때때로 과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행위로 표현된다. 가식적으로 들리겠지만, 여기서 진리의 의미는 단순하다. 진리란 자신이 가진 과학적 증거를 근거로 우리가 지금 믿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자들이 누군가의 가설을 재검증했는데 검증 결과가 원래 가설과 일치하면 원래 가설이 살아남는다. 하지만 다른 연구자들이 애초의 실험 결과를 재현하지 못하거나 현상을 더 훌륭하게 설명하는 새 가설을 찾아내면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새로운 견해나 더 나은 증거에 비추어 생각을 바꾸는 것은 과학적 진보의 구성 요소다. 그렇다면 현재의증거를 바탕으로 우리가 참이라고 믿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현재로서는 진리라는 표현이 더 나을 것이다.

 

(40)

마틴은 올빼미의 눈이 정면을 향한 이유에 대해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올빼미의 눈이 매우 커야 할 뿐 아니라-빛이 약한 곳에서 날아다녀야 하니까-귓구멍이 매우 커야 하는데, 이 때문에 두개골에서 눈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정면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틴이 묻는다. “그곳 말고 어디에 갈 수 있었겠는가?” 올빼미 두개골에 눈과 귀(그리고 뇌) 자리가 얼마나 부족한가 하면 귓구멍으로 눈알 뒤쪽을 볼 수 있을 정도다!

 

(53~54)

물론 사람은 대체로 오른손잡이 아니면 왼손잡이다. 눈도 우세한 쪽이 있다. 75퍼센트는 오른쪽 눈이 우세하다(우리가 눈을 다르게 쓴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하지만 눈이 양옆에 달린 새는 두 눈을 다른 용도로 쓴다. 이를테면 햇병아리는 먹이처럼 가까운 대상을 볼 때에는 오른쪽 눈을 쓰고 포식자처럼 먼 대상을 볼 때에는 왼쪽 눈을 쓴다. 게다가 한쪽 눈을 일시적으로 안대로 가린 기발한 행동 실험에서 새들이 어느 쪽 눈을 쓰느냐에 따라 과제(이를테면 박새와 유럽어치가 먹이를 찾는 것) 수행 능력에 큰 차이가 생겼다.

 

(57)

짐작했겠지만, 오른쪽 눈을 뜨고 자는 새는 뇌의 우반구가 휴식을 취한다(오른쪽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는 좌반구에서 처리하고 왼쪽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는 우반구에서 처리하기 때문이다.). 한쪽 눈을 뜨고 자는 것이 무척 유용한 경우는 두 가지다. 첫째는 근처에 포식자가 있을 때다. 오리, , 갈매기는 땅에서 잘 때 여우 같은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기 쉽기 때문에 한쪽 눈을 뜨고 있는 게 유리하다. 청둥오리를 연구한 바에 따르면 무리 한가운데에서 자는-상대적으로 안전한-녀석들은 가장자리에서 자는-포식자에게 잡히기 쉬운-녀석들에 비해 눈을 뜬 채 자는 시간이 훨씬 적으며 무리 가장자리에 있는 녀석들은 포식자가 접근할 만한 방향을 바라보는 눈을 뜨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111)

19세기 독일의 해부학자들은 오리의 부리 끝 기관에서 처음으로 촉각 수용기를 관찰했다. 오리의 촉각 수용기는 두 종류가 있다. 크고 정교한 수용기는 에밀 프리드리히 구스타프 헤르프스트(1803~1893)가 발견하여 자신의 이름을 따라 명명했다. 그는 이 수용기를 1848년에 오리의 뼈에서 먼저 발견한 뒤에 1849년에 입천장에서, 1850년에는 피부에서, 1851년에는 혀에서 발견했다. 헤르프스트 소재는 압력과 (따라서) 촉각에 민감하여 길이가 약 150마이크로미터이고 너비가 약 120마이크로미터인 타원형이지만 이따금 길이가 1밀리미터에 이르기도 한다. 두 번째 수용기는 그란드리 소체로, 1869년에 이 수용기를 처음 발견한 벨기에의 생물학자 그란드리의 이름을 땄다. 그란드리 소체는 작고(길이와 너비가 약 50마이크로미터) 구조가 단순하며 움직임에 민감하다. 두 수용기는 유두의 원뿔형 몸체에 함께 들어 있는데, 작은 그란드리 소체가 헤르프스트 소체 위에 분포하여 매우 아름다운 구조를 이룬다.

 

(212-213)

새들이 어떻게 길을 찾는지에 대한 연구는 오래고 험난한 역사가 있다. 1800년대 중엽에는 비둘기 같은 새들의 귀소 방법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대립했다. 하나는 새들이 둥지에서 밖으로 나갈 때 길을 기억한다는 견해인데, 증거는 전혀 없다. 또 하나는 지구가 일종의 거대한 자석이며 새에게 여섯 번째 감각이 있어서 지구 자기장을 감지한다는 비교적 최근의 발견을 바탕으로 삼는다. 소설가 쥘 베른은 이 견해를 재빨리 받아들였다. <해터러스 선장의 모험과 항해(1866)>의 주요 등장인물은 자기력의 영향을 받아 늘 북쪽으로 걸었. 새가 사람과 달리 자각을 이용하여 길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러시아의 동물학자 알렉스 폰 미덴도르프가 1859년에 처음 했지만, 18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영국의 앨프리드 뉴턴을 비롯한 대부분의 조류학자들은 여기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217)

오른쪽 눈과 왼쪽 뇌는 어떻게 자각을 처리할까? 단지 오른쪽 눈이 빛에 더 민감해서일까? 빌트슈코는 진상을 알기 위해 유럽울새에게 일종의 콘택트렌즈를 씌우는 후속 실험을 실시했다. 오른쪽 눈과 왼쪽 눈에 씌운 렌즈는 같은 양의 빛을 받아들이지만 하나는 뿌옇게 처리되어 영상이 흐릿하게 보였고 또 하나는 투명했다. 이번에도 결과는 놀라웠다. 오른쪽 눈에 뿌연 렌즈를 씌워 세상을 보게 했더니 유럽울새는 방향을 찾지 못했다. 이에 반해 오른쪽 눈에 투명한 렌즈를 씌웠더니 여느 때처럼 정밀하게 방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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