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2025년 여름호 - 통권 190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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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3년여 만에 다시 정상 국가가 된 대한민국이 된 지 한 달여가 되었는데, 얼마 만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지 모르겠구나. 다시 정상 국가가 된 이후 첫 번째 출간된 녹색평론에서는 12.3 계엄령, 내란, 외한 사태를 뒤돌아보고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는 글들이 많이 실려 있단다. 내란에 대한 특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의혹으로 그쳤던 내용들이 하나하나 진실이 드러나는데, 작년에 잘못했으면 전쟁이 일어날 뻔했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 내리게 되더구나. 자신의 영구집권을 위해 북한을 도발하여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다는 것은 정말 놀랄 소식이었단다. 알코올중독자가 아니면 생각해낼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싶구나. 고작 0.7% 차이로 당선을 하고서는 무한 권력을 잡은 양, 마치 자신의 권력이 영원할 것 같은 양, 권력을 불법으로 휘두르는데 지난 3년간 정말 불안했단다. 반대 정치 세력을 탄압하는 것은 군사독재정권을 보는 듯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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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윤석열이 0.7% 차이로 근소하게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필자는 도쿄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지지율이 낮은 윤석열 정권이 향후 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세 가지 방식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것은 첫째, 야권 및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세력에 대한 양보와 타협, 둘째, 정치적 능력이 있는 인물을 기용하여 중간층을 포섭, 셋째, 이재명 민주당 대표,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야당 및 반대세력에 대한 일관된 탄압이다. 그러나 모두 실패할 것이며, 결국 북풍 또는 북한을 상대로 국지전을 일으키는 외환 방식에 의하여 정권을 유지하는 것 말고는 선택권이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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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이완용이 울고 갈 만큼의 친일 행보는 그의 국적이 대한민국이 맞나? 하는 의심을 사기도 했단다. 일본과 군사동맹을 강화한 것도 북한을 도발하여 군사충돌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했다는 이야기가 있단다. 정말 무식한 사람이 아닐 수 없구나. 저렇게 무식한 사람이 최고의 자리에 올라간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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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윤석열과 기시다 정권의 정치적 밀월관계는 캠프데이비드 공동선언(2023 8 18)을 통해서, 한일 및 한미일의 포괄적 군사동맹 강화와 대중국 포위망 구축에 한국과 일본이 선봉에 서는 것으로 이어졌다. 미국일변도를 주장해온 아베의 외교 노선은 인도태평양전략과 캠프데이비드 공동선언을 통해서 동남아시아, 대만해협, 한반도에서 3개국 군사력의 동시 운용을 가능케 함으로써,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최고조로 격화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12.3 내란 외환 사태는 한미일 군사협력의 토대 위해서, 한반도에서 국지전이 일어나면 미국과 일본이 언제든 적극적으로 개입, 지지해줄 것이라는 확신 위에서 준비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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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여기저기 개혁의 목소리가 들려온단다. 누가 뭐라 해도 공무원이면서 막강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검찰의 개혁이 우선시 되어야겠지만, 사법부 또한 개혁이 필요하단다. 이번에 대법원에서 판결하는 것을 보고 많은 국민들이 경악을 하지 않았니. 대법관이라는 사람들이 헌법에 근거한 판단이 아닌, 정치적인 개인 생각으로 판결을 내리는 것을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말도 안 되더구나. 그렇게 판결을 내린 판사들에 대해 아무로 조치도 할 수 없고 말이야. 뭔가 잘못되었는데, 그들 또한 이미 엄청난 카르텔을 갖고 있으니 이 또한 뜯어고치기가 쉽지 않겠구나.

헌법재판소는 이번에 그를 파면시키는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하면서 국민들의 신뢰도를 얻고 있지만, 우리가 파면의 결정이 나기 전까지는 헌법재판소도 잘 믿지 못하고 얼마나 마음을 조아렸니.. 9명에 불과한 헌법재판소 재판들에 의해 한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이번 녹색평론에서는 그런 헌법재판소 시스템도 합리적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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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헌법재판소가 윤석열을 파면했다. 이 문장은 가슴 아프다. 왜 주어가 국민이 아닌가 하는 마음의 저항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2024 12 3, 대통령이 일으킨 내란을 맨손으로 막아내고 탄핵으로 이끈 것은 국민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모르는 이 없다. 광장정치의 힘을 보여준 쾌거였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의 파면 결정은 판사들의 손에 달린 일이었다. 나는 탄핵 판결을 들으면서 국민의 한 명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짜증도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 허탈감, 새로운 정치를 만들고 싶은 열망과 그놈이 그놈이라는 걸 확인했을 때의 절망감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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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우리나라는 빠른 속도로 정상 궤도를 되찾고 있단다. 주식 시장도 활개를 띠면서, 국장에 투자했던 사람들이 어깨를 으쓱하는 시절이 되었구나. 하지만 방심하지 말아야 한단다. 언론은 또 자세를 바꾸지 않고, 민주 정부를 깎아 내리려고 할 거야. 그리고 언제 어디서 새로운 악마가 출현할 지 모른단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 들어선 정부는 좀더 국민의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란다. 아빠가 보기에는 지난 한 달 동안 하는 모습을 앞으로 쭉 유지하면 되지 않을까 싶구나. 그렇다면 다시 악마에게 정권을 내주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

 

1.

이번 정부는 정말 할 일이 많단다. 앞서 이야기했던 각종 개혁들도 중요하지만, 미래 세대를 위한 정책들도 시급하단다. 기후 변화는 이제 현실이 되었단다. 작년 여름은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로 더운 여름이었는데, 올 여름은 이미 작년을 뛰어넘는 더위로 우리를 괴롭히고 있단다. 그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에 영향으로 대형 산불이 늘어간다고 한다.

올 봄에 경북 지역에 큰 산불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했잖아. 그런데, 이 책에서는 다른 주장을 했어. 큰 산불이 기후변화의 영향이 아니라, 우리나라 산림정책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말이야. 그 증거로 일본이나 중국에는 큰 산불이 안 생기고, 심지어 2000년 이후로 산불 피해는 줄어들고 있다면서 말이야. 우리나라가 큰 산불이 일어나는 것은 산에 소나무가 많이 심어져서 그렇다는구나. 실제로 올 봄에 큰 불이 난 경북지역은 금강송 등 소나무를 많이 심은 곳이라고 하는구나. 소나무에는 수분을 적게 갖고 있고, 송진이 기름처럼 불에 잘 붙는 성분이라서, 한번 불이 나면 끄기 어렵고 잘 번진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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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일본은 한국과 유사한 기후조건 및 기후변화 특징을 보이고 있지만, 최근 10년간 대형산불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발생 건수 및 피해면적 또한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로, 기후변화가 극심해진 2000년 이후 오히려 산불피해는 급감하고 있다. 반대로 우리나라 산불, 특히 대형산불은 최근 들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 차이를 기후변화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산불을 키우는, 기후변화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것은 산림청이 얘기하지 않는 우리나라 대형산불 발생지역의 중요한 공통점에서 찾을 수 있다. 울진, 삼척, 고성, 밀양, 합천, 홍성, 안동, 강릉 등과 올해 발생한 대참사 의성과 산청 산불 등 대형산불 발생지역은 모두 소나무 우점림에서 간벌과 숲가꾸기 사업이 집중된 곳이다. 분명 기후변화가 아닌, 제도적 행정적 개입의 결과로 변형된 연료조건을 최근 잦아진 대형산불의 원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산불이 기후위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인위적 개입의 부작용을 감추려는 수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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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떤 나무를 심어야 하는가. 활엽수림을 심으면 산불을 저지하거나 완화할 수 있다는구나. 활엽수들은 잎과 가지가 큰데, 그 안에 수분 함량도 많다는구나. 그래서 불이 잘 붙지 않고 불이 붙어도 천천히 붙는다고 하네. 활엽수가 많은 산은 큰 산불이 잘 안 나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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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한편, 소나무림과는 달리 활엽수림은 산불을 자연스럽게 저지하거나 완화하는 방화선역할을 한다. 참나무, 물푸레나무, 느티나무와 같은 활엽수는 잎과 가지에 수분 함량이 높고, 불이 잘 붙지 않으며, 불길이 옮겨붙더라도 천천히 연소된다. 이러한 특성은 산불의 확산 속도를 낮추기 때문에, 진화 인력이 접근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 등 인위적 관리의 손길이 적은 국립공원 지역은 대형산불에서 비교적 자유로운데, 활엽수림으로 전환되는 생태적 과정을 인위적으로 막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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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자유주의 노선의 우파 세력들이 각국의 권력을 잡으면서,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은 점점 뒷걸음치는 것 같아 안타깝더구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기후 변화에 대한 정책과 친환경에서니 정책은 뒷전으로 밀려났어. 그리고 중동과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계속되는 전쟁도 결국은 화석 연료에 대한 패권 전쟁이라고 하는구나. 지난 정부의 우리나라도 기후 정책에 있어 퇴행적이었기 때문에 남 말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단다. 새로운 정부에서는 기후 변화에 대한 정책과 환경 정책에 힘을 쓴다고 하니 기대를 해봐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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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반이민 반기후를 간판 정책으로 내세우는 극우정당의 부상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폐해가 기존의 세계질서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된 현실을 반영한다. 극우세력은 국가, 종교, 인종 같은 이데올로기의 깃발 아래 모여들지만, 그 깃발을 세우기 위해서는 화석연료로 가동되는 자본주의경제라는 지지대가 필요하다. 유럽의 이런 상황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및 중동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에너지 패권전쟁의 배후에는 자본주의경제와 극우 이데올로기의 위험한 밀월관계가 숨겨져 있다. 같은 맥락에서 윤석열 정부가 시도한 퇴행적인 기후 에너지 정책에 대해서도 화석연료에 기반한 제국주의적 세계질서와의 연관성을 물을 수 있다. 원전과 댐 건설이 최선의 기후위기 대응책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의 보수세력과 반이민 반기후를 표방하는 서구 극우세력을 관통하는 역사적 흐름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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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2년 전 <녹색평론>의 출간을 재개하면서, 우리는 무엇보다 사람들한테 필요한잡지를 만들고 싶었다.

책의 끝 문장: 그것은 지극히 어렵지만, 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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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나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그들의 앞 세대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신을 믿었듯이,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시대에 태어났다. 인간의 영혼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에 근거해 판단하는 경향이 있어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의 대체물로 인류를 선택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주변부에 속한 인간이고, 내가 속한 집단뿐만 아니라 집단을 둘러싼 거대한 공간까지 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신을 완전히 내버리지도, 인류를 대체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내 생각에 존재를 증명할 수 없지만 신은 존재할 수도 있고, 그럴 경우 경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반면에 생물학적 개념이라서, 인간이라는 동물종 이상이 될 수 없고, 다른 동물종과 마찬가지로 경배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자유평동의 의식(儀式)과 더불어 인류에 대한 숭배는, 동물이 신처럼 숭배되고 신이 동물의 머리를 지녔던 고대 숭배 신앙의 재현 같았다.


(14)

인생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가는 마차를 기다리며 머물러야 하는 여인숙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이 여인숙에 머물며 기다려야만 하니 감옥으로 여길 수도 있겠고, 여기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사교장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참을성 없는 사람도 평범한 사람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숙을 감옥으로 여기는 건 잠들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방안에 누워 있는 이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사교장으로 여기는 건 음악 소리와 말소리가 편안하게 들려오는 저쪽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들에게 넘긴다. 나는 문가에 앉아 바깥 풍경의 색채와 소리로 눈과 귀를 적시며 마차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만든 유랑의 노래를 천천히 부른다.


(28-29)

완성을 미루고만 있는 우리의 작품이 형편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예 시작하지도 않은 작품은 그보다 더 형편없다. 무엇인가를 만든다면 적어도 남아는 있게 된다. 초라하지만 그래도 존재한다. 다리를 저는 내 이웃의 정원에 놓인 하나뿐인 화가에 핀 조그마한 식물처럼. 그 화분은 내 이웃에게 기쁨을 주며, 때로는 나에게도 즐거움을 준다. 내가 쓰는 글이 형편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의 글 덕분에 상처받은 슬픈 영혼이 잠시 시름을 잊을 수도 있으리라. 그것으로 충분하고, 혹시 충분하지 않다 해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인생사 모든 것이 다 그러하듯.


(35)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언젠가 미래 끝자락에서 누군가 나에 대해 시 한 편을 쓸 테고, 그때 비로소 나는 나의 왕국을 다스리기 시작할 것이다.

신은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이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39)

문학이란 예술과 사상의 결합이며 현실의 흠을 덜어낸 결과로, 인간적인 모든 노력을 기울여 이루어야 하는 목표다. 그것이 동물적인 본성의 여분이 아니라 진정으로 인간적인 것에서 비롯된 노력인 한에서 그러하다. 어떤 사물을 표현하는 것은 추한 부분은 빼버리고 미덕만을 보존하는 일이다. 들판의 푸름에 대한 묘사에서 들판은 실제보다 더욱 푸르다. 상상 속에서 묘사한 꽃의 색깔은 세포의 실제 생명력 이상의 영속성을 갖게 된다.


(40)

수많은 세월이 흐른 후 뒤에 오는 이들에게 우리라는 존재의 모든 것은, 우리가 강렬하게 상상할 것들, 즉 상상을 구체화하여 현실로 이루어낼 것들이다. 역사는 빛바랜 파노라마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해석들의 흐름과 믿을 수 없는 증인들의 혼란스러운 합의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는 모두 소설가이고 우리가 본 것을 말하는데, 보는 것은 다른 모든 일이 그렇듯 복잡한 일이다.


(44)

모두가 잠들어 적막한 집, 벽 뒤편에 걸린 괘종시계가 새벽 네시를 알리는 명징한 종소리가 들린다. 난 아직 잠들지 못했고 잠들기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잠들지 못하게 하는 걱정거리가 있어서도 아니고 편히 쉬지 못하게 하는 육체적인 고통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내 것인데도 낯선 육체는 죽은 듯한 침묵에 싸인 채 가로등의 희미한 달빛 때문에 낯선 육체는 죽은 듯한 침묵에 싸인 채 가로등의 희미한 달빛 때문에 더욱 쓸쓸한 그늘 속에 누워 있다. 너무 잠이 몰려와 생각을 할 수 없고, 잠을 이룰 수 없어서 느낄 수도 없다.


(56-57)

그렇다면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죽음의 불가사의함이야 어차피 내가 꿰뚫어볼 수 없으니 그만두고, 삶이 멈출 때 육신의 감각이 궁금하다. 인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어렴풋이 두려워할 뿐이다. 보통 사람들은 삶의 전투를 잘 이어간다. 그러다 늙거나 병들면 자신이 심연이라고 인정한 무()의 심연을 두려워하며 거의 쳐다보지 않는다. 이 모두가 상상력이 부족한 탓이다. 특히 죽음이 일종의 잠이라는 생각이야말로 재고의 가치가 없다. 죽음은 잠은 닮은 점이라곤 전혀 없는데 왜 그런 말을 할까? 잠의 핵심은 깨어나는 데 있으나 알다시피 죽음은 그렇지 않다. 만일 죽음이 잠과 비슷하다면 죽음에서 깨어난다는 개념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죽음을 깨어나지 않는 잠이라고 생각하는 이건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얘기다. 강조하거니와 죽음은 잠과 닮은 점이 없다. 왜냐하면 잠잘 때 우리는 살아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우리가 아는 무엇과도 닮지 않았는데, 어느 누구도 죽음이나 죽음과 비교할 만한 것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63-64)

책을 읽고 꿈을 꾸고 글쓰기를 생각하면서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교양 있는 삶을 산다면. 삶이 어찌나 조용히 흐르는지 권태에 빠질 것 같지만 너무 생각이 많아 권태에 빠지지 않는 삶을 산다면. 감정과 생각에서 멀리 떨어져 이런 삶을 살되 감정에 대한 생각과 생각에 대한 감정. 그 속에서만 산다면. 꽃들에 둘러싸인 탁한 호수처럼 태양 아래 금빛으로 고여 있다면. 인생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고결한 영혼을 그림자 안에 지닌다면. 꽃잎에 앉은 먼저처럼 오후의 바람을 타고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저물녘의 무기력을 따라 내려앉아 더 큰 것들 사이에 묻힌다면. 즐거움도 슬픔도 없이 명료한 이해만 갖고 빛나는 태양과 머나먼 별들에 감사하면서 그렇게 된다면. 그 이상 원하지도 그 이상 갖지도 그 이상 되지도 않는다면…… 굶주린 자의 음악, 맹인의 노래, 이름 없는 길손의 유골, 짐도 목적지도 없이 사막을 떠도는 낙타 행렬……


(66)

고독은 나를 황폐하게 만들고, 동행은 나를 억압한다. 다른 사람이 곁에 있으면 생각이 방향을 잃는다. 모든 분석력을 동원해도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특이한 방심 상태에서 곁에 있는 존재에 대해 꿈꾸기 때문이다.


(78)

독서로 자유를 얻는다. 독서로 객관성을 획득한다. 나는 내가 되기를 멈추고,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존재가 되기를 그만둔다. 내가 읽는 것은 때로 나를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의복 같은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명료함이고, 만물을 비추는 태양이고, 고요한 대지에 그림자를 드리운 달이고, 바다로 이어지는 거대한 공간이고 녹색 이파리를 흔드는 나무의 견고함이고, 농장 연못에 깃든 평화이고, 포도나무 덩굴이 우거진 해안이 비탈길이다.


(81-82)

환경은 사물의 영혼이다. 모든 사물은 나름대로 자신을 표현하고 이 표현은 외부 조건으로부터 주어진다. 세 가지 요소가 서로 교차하며 한 사물을 이루는데 이는 물질의 양, 우리가 해석하는 방식, 사물이 놓인 환경이다. 이를테면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책상은 나무로 만들었으며, 이름은 책상이고, 이 방에 속한 가구 중 하나다. 이 책상에 대한 생각을 글로 옮긴다면, 글은 이것이 나무로 만들어졌고, 책상이라고 불리며, 일정한 용도와 목적이 있다는 개념들로 구성될 것이다. 또한 책상 위에 놓인 사람의 배열 상태에 따라 영혼을 드러내는 물건들을 수용하고 반영하며 그 물건들에 의해 변형된다는 개념이 포함될 것이다. 책상의 색깔과, 색의 낡은 정도, 얼룩이나 흠 등은 외부 조건에 의해 생긴 것으로 사실 나무라는 본질보다 이런 것들이 책상에 영혼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책상으로서 존재하는 영혼의 내밀한 본질은 역시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고, 바로 그것의 개성을 이룬다.


(92)

지금은 비록 불완전한 내 글을 보며 나는 눈물을 흘리지만, 먼 훗날 사람들이 내 글을 읽는다면 내가 이룰 수도 있었을 완벽함이 아니라 이 눈물에 더 감동받을 것이다. 완벽한 글을 쓸 수 있었다면 울지 않았겠지만 더 이상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완벽은 결코 구현되지 않는다. 성인(聖人)들도 눈물을 흘리고, 그래서 인간이다. 신은 침묵한다. 그래서 우리는 성인은 사랑할 수 있지만 신은 사랑할 수 없다.


(100)

내가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마음 깊이 절실히 느끼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낌을 가지고 생각하는 반면 나는 생각을 가지고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느끼는 것이 사는 것이고,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살지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생각하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고, 느끼는 것은 생각을 키우는 양식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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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한 구가 더 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2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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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작년에 알게 된 시리즈 중에 캐드펠 수사 시리즈란 것이 있어. 중세 시대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추리 소설이었지. 작년에 1권을 읽고 계속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서야 2 <시체 한 구가 더 있다>를 읽었단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오래 전에 번역되어 소개되었다가 작년에 새롭게 디자인되어 개정판이 출간되었어. 천천히 가끔씩 읽어봐야겠구나.

주인공은 시리즈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캐드펠이라는 수사란다. 작년에 1권에서 주인공의 소개를 했으니 오늘은 생략할게.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나이 든 수사 캐드펠이 잉글랜드의 베네딕토회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서 농사일 등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잖아. 그런데 아빠는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가상의 인물인 줄 알았는데, 수도원장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들이 실존 인물이더구나. 그리고 당시 잉글랜드 역사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어.

2권에서는 특히 당시 잉글랜드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단다. 2권은 1138년 잉글랜드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당시 잉글랜드는 왕권을 두고 내전을 벌이고 있던 시기라고 했어. 헨리 왕(헨리 1)은 자신이 죽기 전에 후계자로 자신의 딸이었던 모드 황후를 후계자로 지명했단다.

모드 황후가 왜 황후라고 불렀냐면, 신성로마제국 하인리히 5세 황제의 아내였거든그런데 하인리히 5세가 죽어서 자신의 딸을 잉글랜드로 소환한 거야. 왜냐하면 헨리 왕도 후계자였던 아들이 죽어서 뒤를 이을 사람이 모드 황후밖에 없었거든그런데, 헨리 왕이 죽고 나서, 모드 황후의 사촌이 스티븐이 무력으로 왕을 차지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스티븐 왕을 지지하는 세력과 모드 황후를 지지하는 세력 간의 전쟁이 벌어진 거야.

 

1.

캐드펠 수사가 머물고 있는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은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곳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어. 그래서 수도원이 있는 슈루즈베리 성 사람들은 내전을 피해 국경을 넘어 웨일즈로 가기도 했어. 당시 슈루즈베리는 모드 왕후를 따르는 이들이 다스리고 있었어. 피챌런, 애더니, 아놀프 등이 그들이었단다. 그런데 스티븐 왕의 부대는 슈루즈베리 성을 공격해서 점령했단다. 피챌런, 애더니는 도망을 갔고, 아눌프는 체포당했어.

캐드펠 수사는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었는데, 수도원장이 그의 보조로 17살 소년 고드릭을 보내주었단다. 캐드펠이 유심히 살펴보니 고드릭은 소년이 아닌 소녀였단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지만, 소년으로 위장하여 수도원에 와 있는 것이었어. 그런데 누구라도 유심히 살펴 보면 소녀라는 정체를 알 수 있겠다 싶었어. 캐드펠은 이유는 묻지 않고, 다른 사람들한테 들키지 않게 소년으로 잘 위장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단다. 그러자 소녀는 자신의 정체를 밝혔는데, 자신은 애더니의 딸, 고디스 애더니라고 했어. 아빠가 방금 전 이야기했던 모드 황후 측 사람이었다가 피신한 애더니의 딸이었던 거야. 아버지는 성을 빠져 나가고, 자신은 잠시 몸을 숨기기 위해 수도원으로 피신한 것이라고 했어.

휴 베링어라는 사람이 있단다. 어린 시절 집안 어르신들에 의해 고디스 애더니와 약혼한 사이였단다. 휴 베링어는 원래 모드 황후 진영 사람이었는데, 배신하고 스티븐 왕 진영으로 붙어 버렸어.

스티븐 왕의 부대가 슈루즈베리를 점령한 다음, 모드 황후의 군인들을 교수형으로 죽였어. 얼라인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스티븐 왕을 후원하는 사람의 딸인데, 오빠 자일스는 모드 황후 편에 들어 전쟁에 참여했었어. 얼라인은 교수형 당한 시신을 확인하다가 오빠의 시신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단다. 전쟁은 예나 지금이나 비극을 낳는구나. 교수형을 당한 군인들의 시신 수습과 장례식 준비를 수도원에서 맡았는데, 그 일을 캐드펠 수사가 하게 되었단다.

모두 94명을 교수형에 처했다고 했는데, 캐드펠 수사가 시신을 헤아려보니 95개였단다. 다른 수사 같으면 숫자를 잘못 알려주었나, 하고 그냥 넘어갔을 텐데, 캐드펠은 이런 걸 그냥 넘길 사람이 아니었단다. 그는 교수형에 의해 죽지 않은 하나의 시신을 찾았단다. 젊은 사람의 시신이었는데, 낚싯줄 같은 것에 의해 죽음을 당했단다. 그래서 이번 캐드펠 시리즈의 제목이 <시체 한 구가 더 있다>로구나. 캐드펠은 이 시신의 정체의 밝히기 위해서 여기저기 알렸는데, 이 시신을 아는 이들이 나타나지 않았단다.

캐드펠은 의문의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하게 되자, 수도원으로 데리고 와서 신도들에게 보여주었단다. 신도들 중에 그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말이야. 그런데 고디스가 캐드펠을 조용히 찾아와서 말하길, 자신이 아는 사람이라고 했어. 그 시신의 주인공은 니컬리스 페인트리라는 사람이고, 모드 왕후 측 인사인 피챌런의 향사로 일했던 사람이야. 피챌런은 앞서 이야기했든 고디스의 아버지 애더니와 함께 스티븐 왕으로부터 피신한 사람이란다. 니컬리스 페인트리는 토럴드 브런드와 함께 피챌런의 보화들을 숨기는 임무를 맡고 있었는데, 변을 당하게 된 것이었어. 이제 캐드펠은 니컬리스의 죽음을 조사하기 시작했단다.

 

2.

며칠 뒤 고디스는 부상당한 젊은 남자를 발견하고 캐드펠 수사에게 이야기했어. 캐드펠을 오두막으로 옮기고 치료를 해주었단다. 정신을 차린 젊은이는 자신의 정체를 밝혔는데, 버로 토럴드 브런드였단다. 니컬리스의 파트너말야. 니킬리스와 함께 보화 옮기는 일을 하다가 니컬리스는 죽고 자신을 부상당했다고 했어. 토럴드는 자신을 구해준 고디스가 애더니의 딸이란 것을 알게 되자 더 많은 것을 알려주었어. 토럴드는 부상당하는 와중에도 피챌런의 보화를 강물 속에 잘 숨겨두었다고 했고, 자신의 몸이 다 나으면 그 보화들을 모드 황후에게 전달할 예정이라고 했다. 고디스가 토럴드를 보살펴 주면서 그들 사이는 핑크빛으로 물들었단다.

휴 베링어는 계속 캐드펠 수사를 찾아오는데, 뭔가 감시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찾으려는 것 같기도 했어. 아무래도 사라진 고디스를 찾는 것이 아닐까 싶구나. 그러면서 이상한 부탁을 하나 했어. 전쟁에 징발되기에 아까운 말 두 마리가 있는데, 그걸 숨겨달라는 부탁을 했어. 그래서 캐드펠은 그 말 두 마리를 수도원이 관리하는 외진 농장에 숨겨주었단다.

스티븐 왕의 군인들은 고디스를 찾으러 다녔어. 수도원에 들어와서 수색을 하기도 했어. 이것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고디스는 토럴드의 보화들을 배에 싣고 도망을 갔단다. 무작정 도망을 가긴 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어. 얼마 전에 수도원에서 열린 장례식 때 봤던 얼라인의 집이 강가에 있다는 것이 생각나서 그의 집으로 갔는데, 다행히 얼라인은 고디스를 잘 숨겨주었단다. 스티븐 왕 진영에 쿠셀이라는 장군이 있었는데, 그는 얼라인에 푹 빠져 있어서 얼라인의 집에 와서 수작을 부리면서도 얼라인의 집은 수색을 제대로 하지 않았단다. 자신이 꼬시려는 여자의 집을 수색하는 것은 오히려 점수를 깎이는 일이니까 말이야. 얼라인은 미사를 하려고 수도원에 갔다가 캐드펠에게 고디스의 소식을 전해주었고, 캐드펠은 토럴드에게 이야기해서 고디스와 함께 탈출하라고 지시했단다.

캐드펠은 휴 베링어의 행동을 의심스럽게 보았어. 휴 베링어는 고디스가 수도원에 있다고 의심하는 것 같았고, 고디스가 보화의 위치도 알고 있다고 의심하는 것 같았어. 그런데 이상한 것은 휴 베링어가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혼자 조사하러 다닌다는 거야. 마치 뭔가 큰 것 한방을 노리는 사람 같았어. 캐드펠은 그런 휴 베링어의 의도를 파악했어. 휴 베링어는 보화에만 관심이 있었던 거야. 휴 베링어는 당국에 신고를 하면 보화가 당국에 넘어가게 되니, 혼자 조사해서 보화를 차지하려고 했던 것이란다.

이걸 노리고 캐드펠은 가짜 보화로 휴 베링어를 유인했어. 진짜 보화는 고디스와 토럴드가 함께 빼돌렸고, 휴 베링어는 기쁜 마음에 보화를 차지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돌멩이였단다. 자신이 속은 것을 알면서도 캐드펠의 추리력에 감탄을 하게 되었어. 그러면서 이 때부터는 니컬리스의 살인자를 찾는데 도와주겠다고 했어. 돈 욕심이 있어서 그렇지 본심은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었나 보구나.

고디스를 도망가는데 도움을 준 얼라인의 오빠 자일스가 교수형 당하기 하루 전에 스티븐 왕의 장교를 만났어. , 자일스는 모드 황후의 군대에 있었는데 왜 만났을까. 그는 전세가 기울어진 것을 알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배신을 했던 거야. 자신이 보화의 위치와 어떻게 운반하는 그 장교에게 알려주었어. 하지만 그는 결국 목숨을 구하지 못하고 교수형으로 죽고 말았단다. 배신의 말로가 비참하구나. 그런데 그 스티븐 왕의 장교가 누구인지 아니? 바로 얼라인에게 대시를 했던 쿠셀 장교였어.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던 어떤 소년이 있었는데, 그 소년이 베링어와 캐드펠에게 이야기를 해주었어.

자일스의 단검에서 떨어진 장식이 니컬라스의 살해현장에서 발견되었어. 진실을 알게 된 베링어는 쿠셀의 살인 행위를 스티븐 왕에게 이야기를 하고, 결투로 그의 유죄를 증명하겠다고 했단다. 중세 시대에는 기독교의 믿음이 강했기 때문에 상대방의 유죄라면 그 사람과 결투를 해서 질 수 없다고 믿었어. 하느님이 범죄자를 칼을 통해서 단죄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휴 베링어와 쿠셀 장교는 결투를 하게 되었고, 결투는 공방이 계속 이어지다가 결국 휴 베링어가 이기고 쿠셀은 죽고 말았단다. 이 결투를 가슴 졸이며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있었으니 얼라인이었단다. 베링어와 얼라인은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거야. 이 결투 이후 베링어와 얼라인은 정식 커플이 되었단다. 캐드펠이 추리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짝 맺어주는 큐피드 역할도 잘 하는 것 같구나. 앞서 고디스와 토럴드의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더니, 얼라인과 베링어의 사랑에도 큰 역할을 했단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2 <시체 한 구가 더 있다>는 이렇게 마무리 되었단다. 아빠가 기억력이 안 좋아서 메모를 해두었음에도 몇 군데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잘못된 내용도 있을지 몰라. 아빠가 학창 시절에 책을 거의 읽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 추리 소설은 읽었던 기억이 있단다. 너희들에게 공부하다가 쉴 때 재미있는 추리소설을 추천해주고 싶은데, 다른 것을 하면서 쉬고 싶겠지?^^ 그럼 이 책도 나중에 읽는 것으로….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앞으로도 가끔씩 읽고 이야기해줄게. 그럼, 오늘을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소년이 처음 왔을 때 캐드펠 수사는 연못 옆 작은 텃밭에서 일하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정의와 응보가 미칠 수 있는 그 어디에나 은총의 빛 역시 깃들 수 있는 법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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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드 6 - 오즈마 이야기
그레고리 머과이어 지음, 이지연 옮김 / 민음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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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그레고리 머과이어 <위키드> 시리즈 마지막 6권에 대해 이야기할게. 6권의 제목은오즈마 이야기란다. 오즈마라고 하면 먼 옛날 오즈를 통치하던 왕가의 이름이자 통치자를 지칭하는 것이란다. 오즈는 원래 여자 승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오즈의 마법사가 왕위를 찬탈하고 당시 어린 오즈마 공주는 사라졌는데, 죽었다는 소문도 있고, 어딘가 숨어서 지낸다는 소문도 있었단다. 현재는 여러 번 이야기한 것처럼 엘파바의 남동생인 셸 황제가 통치하고 있단다. 그리고 이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에메랄드 시에 있는 오즈 정부와 독립하려는 먼치킨랜드가 내전 중인 상황이란다.

현재 먼치킨랜드의 총독은 라 몸베이란 사람이란다. 5권의 마지막 부분에서 타임드래곤 부대의 대장 난쟁이, 꼬마 다피, 겁쟁이 사자 브르르는 도로시를 돕기 위해 재판이 열리는 먼치킨랜드로 갔잖니. 6권은 그 이야기에 이어진단다.  그들이 도로시 재판에 참석하는 장면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단다. 도로시가 오즈를 떠나고 18년이 지난 후에 다시 오즈에 돌아온 것이었어. 그런데 신기하게도 도로시는 10살에서 16살의 소녀가 되어 돌아온 거야. 도로시는 18년이 아니라 6년이 지났다고 이야기를 했단다. 도로시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가 도로시인 것이 분명하고, 겉모습으로 보아 18년이 지난 것은 분명히 아니었기에 지나온 시간에 대해 설왕설래 하기도 했단다.

재판은 도로시에게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었어. 먼치킨랜드 사람들에게 동쪽 마녀 네사로즈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거든. 그래서 도로시에 재판 결과는 유죄라 정해 놓고 하는 재판 같았어. 마치 오늘을 우리나라 정치 판사들처럼 말이야. 꼬마 디피는 도로시를 변호하기 위한 발언을 쏟아냈단다. 당시 도로시는 우연의 일치로 사건 현장에 있었을 뿐 의도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고, 그 사건 현장에 있던 사람들도 당시에 모두 그렇게 인정해서 도로시는 아무런 재판도 받지 않고 집에 돌아갔다고 주장했단다. 아주 합당하고 상식적인 주장이었지만, 이미 판결을 정해 놓은 재판부는 도로시에게 사형을 판결했단다. 그렇게 불법적인 판결에는 불법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꼬마 다피는 기질을 발휘하여 브르르의 등에 도로시를 태우고, 자신과 난쟁이까지 브르르의 등에 타고 재판장을 빠져나가 도망쳤단다. 그렇게 6권의 서막이 시작되었단다.

 

1.

한편 리르와 캔들 부부와 그들의 딸 레인, 그리고 리르의 배다른 누이 노르는 함께 지냈단다. 레인이 리르즈와 캔들과 다시 만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 온전한 가족 같은 느낌은 안 들었어. 레인이 워낙 독립성이 강했고 가족의 사랑을 절실히 원하지도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았어.

5권에서 레인이 어린 시절을 글린다와 함께 지냈잖니. 5권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가 6권에서 들려주었단다. 레인이 태어났을 때 리르의 농장에는 나스토야 코끼리 공주가 와 있었는데, 나스토야 공주는 레인에 대해 예언을 하기를 힘들고 고난의 삶이 될 것이라고 했어. 아무래도 레인의 초록색 피부를 보고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닐까 싶구나. 레인이 태어난 지 얼마 안되어 캔들이 레인과 리르 곁을 떠났었는데, 얼마 안 되어 다시 돌아와 같이 지냈단다.

리르와 캔들의 고민은 레인의 초록색 피부였단다. 리르는 자신의 엄마인 엘파바가 초록색 피부로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알고 있었거든. 어느날 농장에 여우가 찾아왔는데, 초록색 피부를 가진 레인을 보고 하는 말이 자신이 아는 큰뱀이 초록색 피부를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단다. 그래서 리르와 캔들은 레인을 데리고 그 뱀을 찾아갔고, 그 뱀은 레인의 피부를 정상으로 만들어주었단다. 정말 다행이구나. 그들의 또 하나 고민거리는 리르가 오즈의 사령관 체리스톤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이야. 그들은 늘 도망을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어. 그래서 그들은 딸 레인을 글린다에게 부탁하기로 했던 것이란다. 그래서 어린 시절을 글린다와 함께 지낸 것이란다.

레인과 다시 만난 이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도망자 신세였단다. 그들 집에 도둑이 들기도 했단다. 다행히 마법의 빗자루와 마법서 <그리머리>는 그대로 있었단다. 리르와 캔들은 레인을 안전한 곳에 두자는 생각으로 레인을 레이너리라는 가명으로 시즈 지역의 세인트 프로스 기숙학교에 입학시켰단다. 그들의 신분을 들쳐내기 어려워서 노르가 엄마인 척 하면서 레인을 입학시켰어. 그리고 리르, 캔들, 노르는 노르의 고향인 키아모코로 돌아가기로 했단다. 한편 레인은 입학시기를 놓쳐 조금 늦게 입학을 하다 보니 남아 있는 기숙사가 없었어. 처음에는 하녀 스탈리와 함께 지붕 밑에 있는 방에서 지내다가 비어 있는 남자 기숙사에서 지내게 되었어. 당시 남학생들은 모두 전쟁에 끌려나가 남자 기숙사가 비어 있었단다. 그런데 남자기숙사에 몰래 숨어 들어온 고아 팁을 알게 되었어. 팁도 잘 곳이 없어 남자 기숙사에 몰래 들어온 곳이었어. 팁은 먹을 것도 없었는데, 레인이 먹을 것을 몰래 구해다 주었단다. 그러면서 둘은 친해졌단다. 얼마 후 전쟁은 점점 심해져서 교장선생님까지 징병되어 전쟁터로 가셨단다. 학교에는 모두 여자 선생님들밖에 없었어.

 

2.

얼마 후 먼치킨랜드에서 <그리머리>를 차지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전쟁 상황은 더 안 좋아졌어.. 이 소식을 들은 레인은 부모님이 걱정되어 학교를 떠나 키아모코로 향했는데 이때 친해진 팁도 함께 가기로 했단다. 가는 길에 팁은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해주었어. 팁은 먼치킨랜드의 라 몸베이 총독 아래에서 일하다가 도망쳤다고 했어. 레인도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팁에게 해주었어. 먼 길을 남녀 둘이 가다 보니 사랑이 싹트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 그들은 6주의 행군 끝에 키아모코에 도착을 했는데 레인에게 슬픈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어. 고모라 할 수 있는 노르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었단다.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리르는 누군지 모를 습격대의 공격을 받아 납치되었어. <그리머리>도 함께 도둑을 맞았단다. 캔들은 리르를 찾아 길을 떠났고, 홀로 지내던 노르는 사고로 인해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고 말았어. 그 때 도로시를 데리고 재판소를 도망친 브르르와 꼬마 다피, 난쟁이가 카이모코에 도착을 해서 그들이 노르의 장례식을 치러주고 있었어. 5권에서 이야기했듯이 노르의 남편이 겁쟁이 사자 브르르였잖니. 브르르는 아내를 잃은 슬픔에 큰 충격에 빠졌어.

.

레인은 카이모코에는 처음 온 것이야. 처음 보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엘파바와 리르를 키운 유모였단다. 위키드 1권부터 나왔던 그 유모가 아직 살아계셨던 거야. 유모는 레인을 보고 엘파바와 똑 닮았다면서 엘파바와 헛갈려 했단다. 레인, 도르시, 난쟁이, 꼬마 다피는 노르의 장례식을 마치고 리르를 찾으러 길을 찾아 나섰단다. 그들이 떠나기 며칠 전 이상한 일이 하나 일어났어. 레인과 함께 도착했던 팁이 레인에게 편지를 남기고 먼저 길을 떠났던 거야. 편지에는 자신이 몸베이를 만나서 리르에 관해 물어보겠다는 것이야. 키아모코에 오기 전에 세인트 프로스 학교에서 먼치킨랜드가 <그리머리>를 얻었다는 소문이 있었으니, 리르를 납치한 것은 먼치린랜드일 확률이 높으니까 말이야.

한편, 리르는 어딘가 감금 당해 고문을 받고 있었어. 알고 보니 예상한 대로 먼치킨랜드였어. 그들을 리르에게 코끼리로 변하게 하는 약을 먹게 한 다음 먼치킨랜드 수도로 데리고 갔어. 리르는 그곳에서 옛 군대 동료 트리즘을 만났단다. 트리즘은 예전에 에메랄드 시에서 드래곤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 먼치킨랜드에서 또 그 일을 하고 있었단다. 도대체 드래곤들이 도 어디서 나타난 걸까? 5권에서 레인과 글린다가 오즈 군대의 한 마리만 빼고 모두 죽였는데, 그 한 마리가 먼치킨랜드에 도망을 와서 알들을 낳게 되었고, 그 알들에서 드래곤들이 다시 태어난 것이었어. 트리즘은 그 드래곤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단다.

레일은 떠난 팁이 먼치킨랜드의 수도에 도착했단다. 몸베이는 팁을 보고 자식을 다시 만난 듯 기뻐했단다. 어쩌면 팁은 몸베이의 숨겨두었던 아들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 몸베이는 리르에게 <그리머리> 사용법에 대해 알려달라고 강요했지만, 리르는 죽는 한이 있어도 가르쳐주지 않겠다고 했어.

..

 

3.

레인 일행은 에메랄드 시로 도착해서 레인과 도로시가 황제 셸을 만났단다. 레인과 셸의 친족관계를 살펴보면 셸은 레인의 할머니의 남동생이니까, 좀 어려운 말로 진외종조부가 되겠구나. 처음 만난 손녀 조카라면 상당히 기뻐할 만 한데, 셸 황제는 그들을 귀찮아 하는 듯 했으며, 리르는 자신이 납치하지 않았다고 했단다. 레인과 도르시가 셸 황제를 만나고 있을 때 드래곤들이 에메랄드 시를 공격해 왔단다. 그들은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고 말았어. 드래곤들의 공격으로 셸 황제는 제대로 반격하고 하지 못하고 전쟁에서 지고 말았단다. 먼치킨랜드의 라 몸베이가 길고 긴 내전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야. 몸베이와 셸은 강화 조약을 맺게 되었어.

몸베이 일행에 팁이 있는 걸 보고 레인의 일행들은 깜짝 놀랐단다. 그들은 팁의 정체를 의심하면서, 팁이 레인에게 일부러 접근한 것은 아닌가, 의심했단다. 팁이 레인의 집의 위치를 먼치킨랜드에 알려준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그래서 리르가 납치되고 <그리머리>도 도둑맞은 것은 아닌지임무가 완수되었기 때문에 팁이 먼저 키아모코를 떠난 것은 것은 아닌지나중에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증명 되었고, 더 놀라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단다.

그곳에 캔들도 도착해서 레인을 만났는데 리르가 죽었다는 슬픈 소식도 전해주었단다. 그런데 아직 시신은 먼치킨랜드에 있어 돌려받지 못했다고 해서, 셸 황제에게 부탁해서 리르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몸베이에게 요청했어. 그러자 몸베이 총독이 말하길, 리르는 아직 죽지 않았다고 했어. 마법에 의해 코끼리로 변신시켰는데, 다시 사람으로 변하지 않고 죽어가는 것을 선택했다는 거야. 그것만이 <그리머리>의 사용법에 대한 비밀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 몸베이는 이제 전쟁에서 승리를 해서 그런지, 리르를 다시 사람으로 변하게 하는 마법을 썼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리르는 다시 사람으로 변하긴 했는데, 멀쩡하던 레인의 피부가 다시 초록색으로 변했고, 더 이상한 것은 몸베이가 쫄딱 망하고 만 거야. 아빠가 뭘 잘못 읽었는지 이렇게 이야기가 전개되었단다. 그리고 팁의 정체도 밝혀지게 되었단다. 팁은 마법에 걸려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실제로는 100년 전에 사라진 오즈마 티페타리우스였던 거야. 오늘 첫 부분에서 이야기했던 사라진 어린 오즈마 공주가 바로 팁이었던 거야. 팁의 마법도 풀려나게 되었어. 셸 황제는 오즈마 공주가 다시 나타났으니 자신의 자리를 팁에게 물려주겠다고 했어. 그렇게 오랜 내전은 끝이 나고 오즈마 공주가 통치하는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단다.

레인 식구들은 다시 서쪽 지역인 키아모코로 갔고, 도로시는 레인의 회오리 마법을 이용하여 다시 캔사스로 돌아가게 되었단다. 그렇게 <위키드>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가 끝을 맺었단다. 이 책을 읽고 오즈마 티페타리우스를 좀 검색했더니,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 2권에 등장한다고 하는구나. 그 책에서도 소년으로 살아가는 팁으로 등장한다고 하네. 아빠는 <위키드>의 작가 그레고리 머과이어가 만들어낸 캐릭터인 줄 알았는데, 겁쟁이 사자 브르르처럼 원작 <오즈의 마법사>에 있는 인물을 새롭게 각색한 것이었구나.

아빠가 읽은 <오즈의 마법사>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의 1권에 불과했단다.. 사실 <오즈의 마법사>의 지은이 라이언 프랭크 바움은 1권의 성공으로 계속해서 시리즈를 냈고,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을 해보면 14권짜리더구나. 아빠는 1권만 읽은 것인데, 그것은 너희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구나. .. <오즈의 마법사> 열네 권을 모두 읽고 싶은데, 읽어야 할 책들은 산더미 같이 밀려 있고, 고민이구나. ‘언젠가는’이라는 단서를 붙여야겠지만, <오즈의 마법사> 전권을 한번 읽어보고 싶구나.

아무튼 오늘로써 <위키드> 시리즈 6권도 끝이 났구나. 시리즈 소설들은 다 읽고 나면 왠지 모를 뿌듯함이 있어 좋구나. 너희들은 숙제 하느라 이 긴 소설을 읽을 시간이 없을 테니, 나중에 숙제에서 해방이 되어 좀 여유로워지면 한번 읽어보렴.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밤이 될 때쯤에는 사자와 한 쌍의 동지가 별다른 사고 없이 국경을 지나 먼치킨랜드로 들어섰다.

책의 끝 문장: 그 모습은 마치 사나운 공기에 휘말려 올라가 빙글빙글 돌며 날아가는 바다 그 자체의 초록색 얼룩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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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이중섭은 날마다 두 가지에 집착했다. 하나는 그림, 또 하나는 가족. 화가들은 대부분 그림과 가족을 한자리에 두지 않았다. 그림을 그릴 땐 가족을 잊고, 가족과 머물 땐 그림을 잊었다. 이중섭은 그림 속에 가족을 두고, 가족 속에 그림을 두었다. 아내가 이남덕이기에 가능했다. 그녀 역시 문화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했기에, 그림을 향한 남편의 진심을 투명하게 받아들였다. 이중섭이 기쁠 땐 화가로 기쁜 것이고 슬픈 땐 화가로 슬픈 것이며 화날 땐 화가로 화난 것이다. 부부의 대화는 그림에서 시작하여 그림으로 끝났다. 태현과 태성은 부부가 나눈 화담(畫談)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두 아들이 훗날 아빠처럼 그림을 업으로 삼을지는 미지수지만, 그림을 평생 가까이 둘 것은 확실하다. 네 사람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일궜다. 한국의 예의와 상식도 아니고 일본의 예의도 상식도 아니었다. 사람으로서의 예의와 상식은 너무 거창한 이야기다. 그들은 그림이라는 나라에서 편안하고 자유로웠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35)

가족을 그렸다. 그림 속에서 가족은 굶주리지 않았고 울지 않았고 아프지 않았고 춥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평화로웠다. 부산과 서귀포의 참담한 현실과 정반대로 그린 까닭을, 아내와 두 아들은 따지지 않았다. 그림에 담긴 이야기들을 일용할 양식처럼 삼키며 하루를 나고 한 달을 나고 일 년을 났다.


(46-47)

밥은 굶어도 담배를 건너뛸 순 없었다. 술 또한 거의 매일 입으로 들어갔다. 이중섭에게 술과 담배는 갈매기의 두 날개처럼 어울리면서도 목적지는 상반된 생필품이었다. 술을 마시고 취기가 오르면 희망은 더 희망적으로 절망은 더 절망적이었다. 과장은 허풍이 술자리의 중요한 안주인 이유였다. 이중섭은 대부분 더 절망적인 쪽이지만, 그 감정을 이야기로 풀진 않았다. 담배는 혼자서는 피우지만, 술은 어울려 마셨다. 벗들이 희망적인 상상에 파안대소하고 절망적인 예감에 호곡성을 터뜨릴 때, 이중섭은 위장병이 도진 듯 우울하고 쓰린 얼굴로 듣기만 했다. 정말 견디기 힘들면 울음을 삼키며 눈물만 떨어뜨렸다. 울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서둘러 마시곤 아무 곳에서나 웅크려잤다.


(64)

빈센트 반 고흐에게 해바라기가 있다면 이중섭에겐 단연코 소다. 대작을 그리겠노라고는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 밝힌 적은 없다. 화우(畫友)들도 따져 묻기보다는 꼭 그리라고, 이제 때가 되었다고 했다. 완성하고 나면 축하주를 마시자는 이도 있었다. 고흐는 해바라기를 오랫동안 많이 그렸다. 두 송이부터 시작해서 열다섯 송이까지, 파리에서도 그렸고, 아를에서도 그렸다. 이중섭 역시 소를 계속 그렸다. 맘을 다 쏟아 그림을 그릴 조건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올리고 그린 것이 소였다. 도쿄에서도 그렸고 원산에서도 그렸다. 서귀포에서는 그리지 않았고, 부산에서는 그리고 싶어 끼적이긴 했지만 흡족하지 않았다. 해바라기를 그린 사람이 고흐 이전에도 많았고 당대에도 많았으며 후대에도 많듯이, 소도 마찬가지다. 조선의 화인들이 그린 소가 몇 마리가 될까. 헤아리기 힘들다. 이중섭과 가까운 선배 중에도 1941년 조선신미술가협회를 함께 만든 진환이 소를 좋아했고 자주 그렸다. 누가 먼저 그렸는가 혹은 얼마나 많이 그렸는가 하는 물음은 어리석다. 문제는 수준이다. 대작이란 두 글자는 작품의 크기가 아니라 최고의 성취를 가리킨다. 이중섭은 통영에서 소를 완전히 새롭게 그려보리라 결심했다. 고흐가 아를에서 전혀 다른 해바라기를 선보였듯이.


(78)

통영은 붉다. 이렇게 밝히면 대부분 고개를 젓는다. ‘통영은 푸르다를 잘못 말한 것이 아닌지 묻는 이도 있다. 이중섭도 통영을 방문객으로 오갈 때는 푸르름에 압도되었다. 전혁림의 그림에서 넘쳐나는 파랑이 과장이 아니라며, 기분 좋게 술잔을 기울였다. 부산에서 그림을 싣고 강구안에 내린 다음 날 새벽, 통영이 붉은 항구란 사실을 목도했다. 늦게까지 마신 환영주에 목이 말라 깨지 않았다면, 숙취로 두통이 심해 바람이라도 쐬자 싶어 산책을 나서지 않았다면, 밤길이 서툴러 되돌아오지 못하고 헤매다가 남망산에 닿지 않았다면, 비가 그치지 않았다면, 중절모를 눌러쓰고 목도리까지 두른 사내가 오르막을 경쾌하게 앞서 걷지 않았다면 통영의 새뜻한 붉음을 영영 몰랐을 것이다.


(89)

시인을 견자(見者) 즉 보는 사람이라 하디. 무슨 것을 봔? 평범한 사람은 아니 보는 걸 본다 이거이야. 기렇게 본 걸, 글로 바꾸문 시인이구 그림으로 바꾸문 화가! 시인은 글 짓는 화가구, 화가는 그림 그리는 시인이다 이 말입네. 화가는 색깔에서 글자를 읽구, 시인은 글자에서 색깔을 본다! A는 흑색이구 E는 백색이며 I는 적색이구 U는 녹색이구 O는 청색이구, 불란서 시인 랭보래 말햇디. 시인이 모음들의 색깔을 맨들 듯, 화가는 색깔들의 모음으로 이야기를 발명해 왓어.”


(92)

통영에선 머리와 손이 따로 노는 이들을 최하로 친다. 말 대신 행동을 믿으며, 그 손으로 그 사람을 평한다. 재산도 학력도 품성도, 단련된 솜씨 앞에선 하찮다.


(118-119)

요쪽은 현실파고 조쪽은 아아파입니더. 유치환 선생님은 아아파의 원로고 윤이상 선배는 허리고 지는 막내축에 속하지예. 삼일 운동 나고 두 파가 생깄십니더. ‘현실파는 일본인들에게 협조해 돈도 벌고 기술도 익혀 실력을 기르자는 입장이고예, ‘아아파는 굶어 죽어도 타협은 못한다는 입장이지예. 윤이상 선배가 운을 딱딱 맞차가 아아파를 설명하신 적이 있심더. 민족의 설움을 제 설움으로 받아들인 아아아아파는 호수같이 맑은 바다 위에 뜬 달을 보고 아아 하구, 봄날 아지랑이 전원서도 아아 하구, 가을 낙엽을 밟으믄서도 아아 한다구 말입니더. ‘아아파들 중엔 옥살이한 사람도 많심더. 팔일오 해방 후에 현실파들은 빠져나간 일본인들 자리를 차지해가 토영 경제권을 잡겄다고 설쳤지예. ‘아아파는 민족혼을 표현하구 가르칠라고 예술가도 되고 교육가도 됐심더. 문호협회도 맨들고…… 펭안남도 평원이 아이라 겡상남도 토영서 태어나싰다믄 돈이나 기술보단 민족의 양심을 지키는 아아파셨을 깁니더.”


(131)

두 사람을 묶어 비교하는 역사는 오래되었다. 카인과 아벨이 그러하고, 유비와 조조가 그러하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그러하다. 음악가인 베토벤과 모차르트, 작가인 괴테와 실러도 이 범주에 든다. 화가들도 종종 언급되었는데, 대중은 고흐와 고갱을 제일 많이 입에 올렸다. 이중섭과 그의 친구들이 자주 논한 화가는 피카소와 마티스였다.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질투도 하고 경쟁도 한, 서로의 작품 세계를 인정한 라이벌이었다. 열에 일곱은 피카소를 우위에 뒀고 마티스를 선호하는 화가는 셋이 될까 말까였다. 이중섭은 소수파에 속했다.


(132)

피카소가 분방한 방외인이라면 마티스는 수도하는 교수다. 피카소는 무리와 어울리며 으뜸이 되기를 갈망했고 마티스는 홀로 숙고한 작품으로 무리에 충격을 주기를 바랐다. 피카소가 불이라면 마티스는 물이다. 물이긴 하되 그림 속에서 펄펄 끓는 물이다. 피카소는 그림 외에도 각종 기행(奇行)으로 유명했다. 때마다 바뀌는 뮤즈의 이름과 사진이 잡지와 신문에 실리고, 작업을 위해 사들인 저택과 사진이 잡지와 신문에 실리고, 작업을 위해 사들인 저택과 즐겨 참여한 파티도 세인들의 주목을 끌었다. 기행은 그림값을 떨어뜨리기는커녕 몇 배 혹은 몇십 배 뛰어오르게 했다. 작품은 작품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들러붙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은 화가가 피카소였다. 스스로 이야깃감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귀찮아하지도 않았다.


(168-169)

사람은 둘로 나뉘디. 전쟁을 겪은 사람과 겪디 않은 사람! 전쟁을 모르는 남해바닷가 사람들보다두 내래 니순신 장군님과 더 가깝다구 느께. 장군님두 나두 전쟁을 겪엇으니까니. 둥세전이냐 현대전이냐, 나라과 나라 사이 전쟁이냐 나라 안 전쟁이냐, 요딴 식으로 나누딘 말라마야…… 전쟁은 전쟁! 전사자보다 몇 배 많은 삶을 뒤흔들구 파괴해. 새로운 무서움이구 낯선 끔찍함이라 이거이야. 죽는 것두 두렵다만, 개진 걸 다 잃구 사는 것두 무시무시하긴 마찬가지디. 가솔두 친구두 돈두 직업두 없이 사는 자의 슬픔과 고통을 장군님께선 아셔. 하루라두 빨리 전쟁을 끝내구 싶으셨던 것이야. 길멘서두 서두르다 패하문 그 피핸 고스란히 백성들에게 가. 냉정하게 버티며 견딘 사내! 전쟁이 무슨것인가를 온몸 온 맘으로 깨달은 사내! 통영 앞바다는 장군님이 오가신 물길이디. 내래 세빙관이나 충렬사나 착량묘에 가문 전쟁부터 떠올려. 장군님과 함께 고민할 문제니까니. 이 망할 전쟁이 몸과 맘에 새긴 상처를 장군님께 보여드리려구 붓을 놀렛던 것이야. 알것어?”


(174)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로 갓 넘어갔을 때, 이중섭은 전투하듯 예술을 하겠노라 말하곤 했다. 그만큼 치열하게, 죽을 각오로 임하겠다는 뜻이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더 이상 예술을 전쟁에 비유하지 않게 되었다. 전쟁과 예술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예술은 평화다. 평화여야 한다.


(202-203)

속삭이는 소, 친구가 많은 소, 여물을 맛보고 찡그리는 소, 코뚜레를 흔들며 나무 그늘에서 조는 소, 우는 소, 되새김질하며 거품 흘리는 소, 기뻐 껑충껑충 뛰는 소, 노리는 소, 송아지를 불러들이는 소, 뒷발질에 열심인 소, 실수하는 소, 떨어진 꽃잎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소, 교접하는 소, 어미 소에게 도움을 청하는 소, 코를 박고 물을 마시는 소, 올려다보다가 별을 발견하고 놀라는 소, 밭 가는 소, 날아가는 멧비둘기와 참새를 따라 고개 돌리는 소, 외톨이를 자처하는 소, 내달리는 소, 빼앗는 소, 머리에 머리를 부딪치는 소, 고집부리는 소, 벽을 들이받는 소, 엎드려 기다리는 소, 가지 않겠다고 버티며 뒷걸음질하는 소, 앞발을 땅을 파헤치는 소, 꼬리를 흔들어 벌레를 쫓는 소, 먼저 알아보고 다가와서 인사하는 소, 오르막길 앞에서 한숨 쉬는 소, 늙었지만 병들지 않은 소, 멍한 눈으로 세월을 되씹는 소, 웃는 소, 새끼 낳는 소, 먼저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소, 어미 소를 싫어하는 소, 숨는 소, 산책을 즐기는 소, 잠든 소, 병들어 마른 소, 절뚝거리는 소, 용서하는 소, 냄새 맡는 소, 멈춰 기다리는 소, 죽은 소.


(246)

이중섭이 가장 오래 가까이 두고 들여다본 화가는 루오였다. 루오를 접한 후부터는 마음의 시소에 얹는 화가들의 위치가 바뀌었다. 루오가 홀로 한쪽을 차지했고 고흐와 고갱과 마티스를 반대쪽에 묶어 얹었다. 고흐와 고갱과 마티스가 제 뜻을 발산하는 방식이라면, 루오는 그것을 색으로도 누르고 형상으로도 눌렀다. 곡진했다. 타인에게 내뿜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난타해 무너뜨렸다. 이중섭은 고흐처럼도 그려 보고 고갱처럼도 그려 보고 마티스처럼도 그려 보았다. 눌변과 머뭇거림과 내면을 파고드는 자신의 성향과 어울리는 화가는 루오였다.


(254)

아우슈비츠 이후, 역사에 대한 낙관을 아예 접은 예술가들도 나왔다. 한국전쟁과 맞닥뜨린 이중섭은 도쿄에서 연애할 때처럼 사랑이 충만한 세상을 줄기차게 그릴 수는 없었다. 피란민의 눈에 비친 세상은 만물이 화평하기는커녕 살아남기 위해 매일매일 죽고 죽이는 전쟁터였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러하기에, 아주 가끔은 아비규환을 잊을 만큼 강력한 유토피아를 그려보고 싶기도 했다. 사람은 희망 없인 살 수 없는 족속이다. 도쿄의 엽서화에서 둘만의 꿈을 속삭였다면, 월남 후 그린 유토피아는 끔찍한 체험에 바탕을 두되, 더 많은 이들이 따스함을 느끼고 미소 짓기를 바랐다. 현실엔 없는 행복이란 비판을 받았지만, 부산과 서귀포와 통영을 떠돈 이중섭만이 발견한 신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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