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데이터의 진정한 위력은 정보의 진위를 가리는 수준을 넘어 의사결정의 민주화를 추동한다는 데 있다. 데이터가 이렇게 많고 평등하게 공개되는 세상이니 점점 정보에 대한 허세, 내가 다 알아라는 으스댐과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는 강요가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서울대 수석합격자가 아무리 예습 복습만 잘하면 누구나 서울대 갈 수 있다고 겸손하게 말해도 데이터와 통계는 이미 우리에게 서울 강남구 출신의 서울대생이 강북구 출신의 21배에 이른다는 냉정한 현실을 말해준다.

 

(87)

그래서 데이터가 필요하다. 내 말을 믿지 않는 상사를 설득하기 위해서도 데이터는 필요하고, 내 감이 타당한지 검증하기 위해서도 데이터가 필요하다. 회사에는 발설자 책임주의라는 게 있기 때문에, 매출 올릴 방안을 마련하라고 회의할 때 누구라도 입을 열면 그 사람이 사업 주체가 되곤 한다. 그런데 그 아이디어가 데이터로 검증되지 않은 것이라면? 만에 하나 말한 대로 되지 않으면 발설자 혼자 책임져야 한다. 그러니 무책임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특히 머릿속 상상으로 만든 고객과 시장과 컨셉을 검증도 하지 않고 아이디어라고 풀어내는 것은 훗날 내 목을 티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을 풀어서 먹고 살던 세상은 가고 있다.

 

(161)

마케터로서 내가 바라보는 시장의 핵심 타깃은 2049, 젊은 층이다. 반면 적어도 나 같은 마케터가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는 계층이 있다. 50대 이상 남성이다. 오죽하면 50세 이상을 겨냥한 프로그램에는 광고도 많이 걸리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은 아무것도 사지 않으니까. 소비를 할 뿐, 아내가 사주거나 점원이 권해주는 대로 산다. 마케터는 구매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에 여성이나 아이들, 젊은이들의 욕구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원하는지 아는 기업이 성공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다. 기업 구성원들의 밥줄이 걸려 있는 중차대한 의사결정을 CEO가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CEO들 중 상당수는 하필이면 시장의 욕구와 괴리된 그들, 50대 이상 남성이다.

 

(178)

내가 하는 일은 데이터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데이터는 수단일 뿐,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마음이다. 인간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온갖 것을 보는데, 그중에서 지금까지는 데이터가 가장 풍부하고 유용한 수단이기에 데이터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틀마다 생겨나는 데이터의 양이 5엑사바이트, 0 18번 붙는 규모다. 하루에 생성되는 한국어 트윗이 500만 건에 이르며, 점점 늘어날 것이다. 이 많은 것들을 관찰하고 분석한다. 그 결과를 가지고 경영관리, 프로세스 관리, 품질관리, 재고관리, 브래드관리, 인사관리 등 기업의 전 영역에 활용할 수 있다.

 

(213)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객관화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내가 당신 어머니는 말야라고 험담하는 말이 불경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시야를 높여 조감(鳥瞰)하듯 바라보면 그 사람도 피해자다. 아내가 한국 문화의 관습의 피해자로서 일시적으로 폭발하는 것이니,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내를 안아주는 것이 현명하리라. 이렇게 객관화해보면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수 있고, 상대방에게 연민이 생기고 공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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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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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번에 읽은 <넛셸>이라는 소설은 영국의 유명한 작가 이언 매큐언의 작품이란다. 신간이라고 하기에는 좀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그의 가장 최신작이야. 아빠는 이언 매큐언의 작품들 중에서는 <칠드런 액트>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어. 그 소설을 괜찮게 읽어서 그의 대표작 중에 하나인 <속죄>를 비롯하여 그의 소설들을 몇 권 더 구매하기는 했는데, 아직 읽어보지는 못하다가 이번에 가장 최신작인 <넛셸>이라는 책을 먼저 읽어보았어.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SNS에서는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많이 소개했었단다. 그 중에 가장 많이 이야기되었던 것이 <햄릿>의 재해석이라는 이야기였어. 그리고 주인공이 뱃속의 태아라는 점이랑상황이 좀 독특해서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끌게 하지 않았나 싶구나. 아빠에게는 이런 사전 지식이 소설을 읽을 때 선입견을 갖게 하기도 했단다. 소설을 읽는 내내이 소설은 햄릿을 재해석한 것이로구나.’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단다. 아빠도 물론 <햄릿>을 읽지는 했지. 햄릿이 왕인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이가 다름아닌 삼촌이라는 것을.. 그리고 삼촌과 엄마의 불륜이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모르고 읽었다면 이 소설이 햄릿의 재해석이라는 것까지는 캐치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고 보면 선입견이라기 보다, 소설을 읽는데 도움을 준 것인가? 모르겠다. 선입견일 수도 있고, 사전 정보일 수도 있고소설을 시작하기 전에 지은이가 <햄릿>을 한 문장을 인용하였는데, 독자들에게 이 소설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

아아, 나는 호두껍데기 속에 갇혀서도

나 자신을 무한한 왕국의 왕으로 여길 수 있네.

악몽만 꾸지 않는다면.

- 셰익스피어, <햄릿>

==============================

이 책 제목 <넛셸>은 호두껍데기라는 뜻인데, 이 소설에서는 아마 자궁을 의미하는 것이겠지?

 

1.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소설의 뱃속 태아이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화자란다. 엄마의 이름은 트루디이고, 아빠의 이름은 존 케언크로스. 둘은 별거 중이고, 아빠인 좀 케언크로스는 시인이면서 가난한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어. 여럿 걸출한 시인들을 배출하긴 했지만, 그들은 대형출판사로 떠나고 존은 여전히 영세한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었어. 보아 하니 존은 트루디와 재결합을 원하고 있는데, 트루디가 원하지 않고 있어. 가끔 존이 찾아와도 트루디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빨리 내쫓곤 했어. 사실 트루디는 클로드라는 사람과 연애를 하고 있었거든

뱃속 아기가 이야기를 끌어가는이고, 뱃속아기라서 이름이 없으니라고 할게. ‘나’는 엄마와 클로드의 대화를 엿듣다가 클로드의 정체를 알고 깜짝 놀라게 돼. 클로도는 바로의 삼촌, 즉 아빠의 동생이었어. 클로드는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있었어. 존을 죽이고 그가 상속받는 부동산을 팔고 그 돈을 트루디와 나누는 것이었어. ‘나’는 복수를 꿈꾸지만, 뱃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어. 클로드와 트루디는 존을 어떻게 죽일까 고민을 했어. 클로디는 확실히 존을 죽이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트루디는 아직 망설였어.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고, 그리고 뱃속아기의 아빠이니 말이야.

 

2.

어느날 트루디와 클로디가 함께 있을 때 존이 방문했어. 그것도 어떤 젊은 여자와 함께... 그 젊은 여자는 엘로디라는 시인이었어. 존은 폭탄선언을 했어. 엘로디와 사랑하는 사이다. 트루디를 죽일만큼 싫어한다. 트루디와 클로드가 사귀는 것 알고 있다. 니들은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한다. 클로드는 큰 집이 있으니, 거기서 살고 이 집에서는 나가라. 엘리디와 여기서 살 것이다. 어리숙하고 내성적인 줄만 알았던 존의 폭탄선언은 일대 파란을 일으켰어. 존과 엘로디가 떠나고 트루디와 클로드는 당황하는 듯했지. 그리고 그들의 계획은 서두르게 되었고, 망설임이 있었던 트루디 역시 클로드의 뜻에 따르기로 했어.

다음날 존은 다시 찾아왔어. 클로드와 트루디는 독이 든 음료수를 건넸고, 존은 의심 없이 그것을 들이켰지. 그리고 존은 운전 중에 죽고 말았어. 신문에서는 경찰의 말을 인용하여 그의 죽음을 자살로 추정했어. 존이 실제로 죽고 나자 트루디는 노심초사했어. 자신이 의심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와 달리 클로드는 아무렇지도 않았어. 시간이 흐를수록 트루디는 후회까지 했어. 아빠가 생각하기에는 그들의 살인계획이 너무 허술했다고 생각해. 자살이라는 추정을 한다고 하지만, 만약 자살이 아니라는 가정을 가시고 수사를 하게 되면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오를 인물들이 바로 아내겠지. 그것도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아내라면 더더욱거기에 독극물을 탄 음료수라니또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이 바로 트루디의 집이었으니 말이야. 하루 전 언쟁을 벌였던 장면을 보았던 사람도 있고 말이야. 존이 데리고 왔던 엘로디.

그 엘로디가 다시 찾아왔어. 엘로디와 찾아와서 말하길, 사실 존의 연인이 아니라고 했어. 자신의 남자친구는 따로 있다고.. 존은 여전히 아내에게 돌아가고 싶다고 했고, 아내의 질투를 일으키게 하려고 엘로디를 데리고 왔었던 것이라고 했어. 하지만 엘로디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존이 자살할 이유는 없다고도 이야기했어. 덧붙여 시인들이 모여 존을 추모하기로 했대. 혹시 시간되면 트루디와 클로드에게도 참석해달하고 했어. 엘로디는 존이 자살할 이유가 없었다고 하지만, 트로디와 클로드는 존이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빚과 아기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고 했어. 이런 이야기들을 뱃속에서 다 들은는 고민에 빠졌어. 이제 자신의 아빠가 죽은 것은 현실이 되었어. 복수를 하는 길은 무엇일까?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 그 시간은 너무나 멀고도 긴 시간이야.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은? 엄마가 감방에 가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엄마가 삼촌과 잘되는 것이 좋을까? 엄마가 감방에 간다면 자신은 감방에서 태어날 텐데.. 괜찮을까? 엄마와 삼촌이 잘된다고 해도, 태어난 다음에는 버려지는 것 아닐까? 고민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좋은 것은 삼촌만 감옥에 가는 것인데그리고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질렀지만, 자신을 가장 사랑해줄 이는 엄마인데, 이 엄마를 미워해야 하는 건가? 뱃속아기는 번뇌를 한다.

==============================

(223)

두 사람 사이가 틀어지면 내가 얻는 건 무엇일지 나는 다시 자문한다. 그들은 파멸할 수도 있다. 그럼 난 트루디를 갖게 될 것이다. 나는 그녀가 감옥에서는 아기를 키우는 엄마가 더 나은 대우를 받는다고 말하는 걸 들어왔다. 하지만 감옥에 가면 나는 내 생득권이자 모든 인간의 꿈인 자유를 잃을 것이다. 반면 클로드와 어머니가 팀워크를 발휘한다면 간신히 위기는 모면할 것이다. 그럼 그들은 나를 버릴 것이다. 어머니는 없지만, 나는 자유로울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편이 나을까? 전에도 몇 번 해본 고민이고, 늘 같은 신성한 지점에, 원칙에 입각한 유일한 결론에 이른다. 나는 물질적 안락을 포기하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동안 너무 오래 갇혀 있었으니까, 나는 자유를 택할 것이다.

==============================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구나. 사람의 의식은 언제 생겨날까? 하고 말이야.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되고 나면 수많은 세포분열이 시작되고, 여러 기관들이 생겨날 텐데, 어느 정도가 되면 의식도 생겨나는 것일까? 이 소설처럼 다 큰 어른과 같은 의식은 아니겠지만, 뱃속 아기도 의식이 있을 텐데뱃속 아기의 의식은 언제쯤 만들어질까? 생명의 신비함은 끝이 없는 것 같구나.

 

3.

드디어 올 것이 왔단다. 앨리슨 경감이 방문했어. 클로드와 트루디는 경찰이 올 것이라고는 예상을 했어. 클로드와 트루디가 그것에 대비해서 말도 맞추고 그랬지만, 현실은 현실이지경찰이 오자, 트루디는 자꾸 오버를 하게 되고, 당황한 모습을 보였어. 경찰은 다시 돌아가고.. 클로드와 트루디는 작전에 차질을 느끼고, 도망가기로 했어. 클로드와 트루디는 급하게 여행 준비를 했지.

‘나’는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 없어. 지금 이 순간 복수의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지. ‘나’의 선택은? 그것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야. 그들이 도망가지 못하게비록 그가 감옥에서 출생을 하게 되더라도.. 그래도 그를 사랑해주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있는 엄마가 있으니까 말이야. ‘는 있는 힘껏 엄마의 배를 걷어차고, 아기문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있는 힘을 쏟았어.. 엄마는 결국 산통으로 아무 곳도 가지 못했고, 삼촌도 혼자 도망가지 못했거든. 클로드가 트루디 혼자 내뺄 수 없게 그의 여권을 숨겨 두었거든

그렇게 삼촌에 대한 복수는 성공하게 된단다. 소설 <햄릿>에서 주인공인 햄릿도 죽는 것과는 달리 ‘나’는 살아남게 되는 것이지비록 삶은 순탄하지 않겠지만 말이야. , 생각해보면 그 어떤 삶이 순탄하겠니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어. 이번 소설은 아빠가 읽은 이언 매큐언의 소설의 두번째였는데, 이번에도 나쁘지 않았단다. 그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봐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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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0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넛셸 읽고 검색하다가 들어오게 되었는데 스토리텔링을 굉장히 잘해주셨네요. 잘 읽고 갑니다^^
 
맑고 향기롭게 - 법정 대표산문선집
법정(法頂) 지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세월이 정말 빠르구나. 법정스님이 입적하신 지도 벌써 7년이 넘어 8년이 다가오고 있구나. 2018년 새해도 어느덧 보름이 훌쩍 지났구나. 너희들은 젊음을 향해 한걸음 또 나아가고, 아빠는 늙음을 향해 한걸음 또 내딛는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빠가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을 생각해보니 법정스님의 책들을 통해서였던 것 같았어. 법정스님은 주로 산속에서 혼자 지내면서 깨달음의 길을 걷고자 하셨지만, 글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셨어. 아빠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한 명이란다. 법정스님께서 살아계실 때는 법정스님의 신간이 나올 때마다 읽곤 했었어. 그래서 법정스님의 책은 거의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읽은 <맑고 향기롭게>라는 책은 안 읽었더구나. 아빠는 이 책도 당연히 읽은 줄 알았어. 제목도 익숙하고, 출간 년도를 보니 아빠가 한창 법정스님의 책을 찾아 읽던 시기였거든.. 그런데 독서목록을 확인해보니 읽지 않은 책이더구나. , 아직 법정스님의 책 중에 안 읽은 책이 있다니반갑더구나. 책이 품절이더구나. 중고서점에서 사서 읽었단다. 회사 일이 언제는 어지럽지 않은 적이 있겠냐마는최근에 더욱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머릿속 복잡한 일들이 많아서이 책을 읽으면서 치유를 받고 싶었단다. 법정스님의 글은 언제 읽어도 깨끗한 산바람을 느끼는 글들이란다. 글에서 꽃내음이 나는 듯 하고, 산새소리가 들리는 듯했어.

 

1.

법정스님은 불교 경전에 관한 책도 출간하셨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산문집이 더 많은 사랑을 받으셨어. 법정스님이 내신 많은 산문집들 중에서 좋은 글들만 선별해서 모은 책이 바로 <맑고 향기롭게>라는 책이야. 법정스님이 직접 가려 뽑은 글들이 책이 출간된 2006년이면 법정스님이 돌아가시기 4년 전이더구나.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자신의 글들을 되돌아보는 것이 아닐까 싶구나. 글을 많이 쓴 사람에게는 더욱 그럴 것 같구나. 법정스님도 그런 심정으로 글을 고르지 않았을까 싶구나. 마치 유서를 쓰는 기분으로 글들을 가려내지 않았을까? 그렇게 모은 법정스님의 글이야말로 그의 삶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법정스님께서 따로 자서전 같은 것은 쓰지 않으셨지만, 이 산문집이 곧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구나. 그렇게 선별한 글이니 그 글들이 주옥 같은 글들의 향연이었어.

아빠가 법정스님의 다른 책들을 통해서 본 글들이 대부분이지만, 아빠의 기억력으로 그 글들을 다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새로 읽고 새로 감동 받았단다. 아빠가 좋은 부분에 대해서는 발췌를 별도로 하는데, 이 책의 경우는 하지 않았어. 책 전체가 옮겨 적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법정스님의 다른 책을 읽고 발췌한 놓은 글도 있고 말이야..

책 제목 <맑고 향기롭게>도 잘 지은 듯하구나. 법정스님의 글의 정확하게 표현한 것 같아. 아빠가 법정스님이 돌아가신 이후 법정스님의 글을 많이 읽지 못했어. 읽고 싶은 책들은 쏟아지다 보니, 한번 읽은 책에 손이 가기는 어려웠거든그런데, 앞으로는 일 년에 한두 권은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빠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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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9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0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142)

일본은 섬나라이면서도 해군이 아닌 육군이 일으킨 나라입니다. 육군이라는 게 너 죽고 나 살기로 대거리를 해야 하는 군대입니다. 바다에서 싸우는 해군과는 적과의 거리가 다릅니다. 해군은 배가 깨지면 지는 거지만 육군은 손으로 찌르고 칼로 베어서 상대를 죽여야 합니다. 일본제국주의를 이끈 주도세력이 육군이었기에 또 바다가 아니라 육지로 기어올라올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조선의 고통이 거기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397)

원자폭탄은 원자핵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는 연쇄적 핵분열을 통해 발생하는 에너지의 파괴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원폭 에너지의 50퍼센트는 충격파를 만들며 폭풍으로 변한다. 2.5킬로미터 안에 있는 모든 목조건물이 산산조각 나고 2층 벽돌건물이 무너지며 불이 붙었다. 철골 건축물은 지붕이 날아가버리고 철교의 상판은 뒤틀렸다. 폭심지에서 15킬로미터 밖의 건물 유리창까지 부서져내렸다.

 

(404~405)

이날 단 한발의 원자폭탄에 의해 24만명으로 추산되던 나가사끼 인구 가운데 7 4천명이 그해 연말까지 목숨을 잃었다. 일본은 그들의 죽음을 사몰(死沒)이라도 표현한다. 시신조차 찾을 길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무너져내린 시가지의 폐허 속에 매몰되거나 한순간에 타버려 가루가 되어 흩어졌기 때문이다. 이 비극적인 수치 안에 2만여명의 조선인 피폭자가 포함된다. 사망 1만명에 부상자 구조활동을 위해 투입되어 2차 방사능 피해를 입은 1만명의 징용공들을 합친 숫자이다.

나가사끼에서 원폭으로 죽어가야 했던 징용공들은 우연과 필연이 교차되는 속에서 죽음을 맞았던 것이다. 그때 거기 있었다는 우연과 미쯔비시의 수많은 군수공장이 포진한 나가사끼에 끌려온 징영공이라는 필연이 교직하면서 만들어낸 나가사끼 조선인 피폭자의 죽음은 그토록 허무하고 무구하다.

 

(413)

나를, 저 일본사람들을, 아니 우리 모두를 이렇게 내몰리게 한 것은 무엇일까. 전쟁, 일본이라는 나라, 그리고 저편에 B29를 번득이며 폭탄을 쏟아붓는 미국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들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닌가. 우리가 만든 것이 우리를 죽이고 불태우고 절멸시키고 있다. 대가리가 꼬리를 물어뜯으며 짓씹어 제가 제 몸을 죽이는 꼬락서니다. 이 혼돈을 어떻게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는 거다.

 

(468)

여기서 흘러간 날들이여. 나가사끼는 나에게 조국이 무엇인가를 가르쳤다. 잊지 않으리라. 나가사끼는 나에게, 나라가 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쳤다. 나가사끼에서의 날들이 없었다면 나는 그걸 이처럼 뼈저리게 느끼지 못하고 살았을 거다. 이제 돌아가서, 젊은 아이들을 가르치자. 내 나라 글, 내 나라 말, 내 나라 풍습과 역사를 가르쳐서 우리에게도 잃어버린 나라가 있음을, 아니 되찾아야 할 조국이 있음을 알려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겪은 고난을 가르치고 기억하게 할 거다. 어제를 잊은 자에게 무슨 내일이 있겠는가. 어제의 고난과 상처를 잊지 않고 담금질할 때만이 내일을 위한 창과 방패가 된다. 어제를 기억하는 자에게만이 내일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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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어디 그뿐이랴. 오랜 역사가 서려 있지 않은가. 지상은 말없이 생각했다. 그놈들이 임진왜란, 정유재란 거치면서 땅에서만 분탕질을 쳤던가. 그때도 돌아가는 배에는 비단 같은 물자에 도자기 만들 흙까지 실려 있었다. 거기다가 석공과 도공 같은 사람들끼리 실어가지 않았나. 선조 임금 때 그렇게 당하고도 30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조선은 또 똑 같은 짓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여기 끌려와 있는 것도 그때와 끈이 닿아 있다고 생각하면 그래서 더 원통하다. 우리는 왜 지난날에서 배우려 하질 않는가. 왜 이다지도 과거를 잘 잊어버리는가.

 

(298)

1938년 가을 수사에 착수한 상록회 사건에 대해 경찰은 <사건기록>에서 상록회는 일본의 국체를 변혁할 목적으로 조직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상록회 사건, 이름하여 춘천공립중학교 학생의 민족혁명운동사건 검거에 관한 건 1939 3 25일 경성지방법원 춘천지청으로 송치될 때까지 졸업생과 재학생 137명을 조사, 검거, 구속하였다. 결국 증거로 제시된 총 147점의 압수품과 함께 법원으로 송치된 상록회원 38명의 피의자 가운데 12명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가운데 백흥기는 수감 중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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