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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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콩쿠르를 소재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단다. 아빠가 이번에 읽은 소설을 신간소개에서 봤을 때, 느낀 생각이야. 지은이는 유명한 일본 작가 온다 리쿠. 그런데 아빠는 온다 리쿠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야….  이 소설로 2017년 나오키상을 수상했다고 했는데, 무려 156회 나오키상이라그럼 나오키상이란 것은 156년 전에 처음 생긴 거란 말이야? 1800년대에 문학상이라는 것을 만들 생각을 했다고?

나오키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갑자기 궁금해졌단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1년에 두 번씩 주는 문학상이더구나. 1935년에 처음 주기 시작했대.. 그러면 그렇지.. 아무튼 이 소설이 나오키상을 받았다고 하는구나. ,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해서 눈이 가는 것은 아니었어. 아빠는 단지 콩쿠르를 소재로 소설을 썼다면 어떻게 썼을까 궁금했어. 11년간의 취재 기간, 집필기간 7년이라고 하는데, 소설가의 첫 번째 덕목은 역시 인내력과 끈질김이 아닐까 싶더구나.

너희들이 피아노를 배우면서, 피아노에 관심을 많아졌잖아. 그래서 얼마 전에 온 식구 다같이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를 봤고... 너희들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그래도 재미있다면서, “치야키 센빠이~”라면서 흉내도 냈었지. 그리고 드라마를 보고 나서도 한동한 드라마 OST를 들었잖아. 그러면서 클래식 작곡가들도 몇몇 알게 되었고그래서인지, 이 책을 더 읽고 싶어져서 이번에 읽었단다.

온다 리쿠의 소설은 처음인데, 책이 술술 읽혔단다. 피아노 연주에 대한 비유도 아주 좋아서, 연주자가 어떤 식으로 연주를 했고, 어떤 소리를 냈겠구나 상상할 수 있었어.

집에서 읽을 때는 소설 속에 나오는 음악을 검색해서 들으면서 읽었어. 너희들과 잠깐 여행을 갔을 때, 너희들이 자고 있을 때도 아빠는 이 소설을 늦게까지 읽었는데여행지에서 맥주 한잔 마시면서 읽는 재미있는 소설책너무 좋더구나. 그래서 이 소설의 기억은 더 오래 남을 것 같구나.

 

1.

이 소설은 일본 하마마쓰시에서 3년마다 열리는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모델로 했다고 하는구나. 이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리나라 조성진도 수성을 했었대. 이후 조성진은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고그런 인연이 있어서인지 지은이는 특별히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조성진과 인연도 이야기했어. 그리고 콩쿠르에 참가자들 중에 한국사람들은 많은 것으로 설정을 했더구나.

.

, 그럼 소설의 줄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 사가 미에코 교수는 피아니스트이자 교수였어. 요가시에 피아노 콩쿠르 지역 예선이 열리고 있었는데, 미에코는 프랑스 파리의 심사위원이기도 했지. 서류 심사에서 떨어진 이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오디션이었어. 참가자 중에 잠을 확 깨우는 놀라운 실력자가 한 명 있었어. 가자마 진이라는 일본인으로 음악에 대한 아무런 경력은 없고, 단지 유지 폰 호프만이라는 유명한 피아니스트로부터 사사를 받았다고 했어.

유지 폰 호프만.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인데, 몇 달 전에 죽었는데, 죽기 전 유언으로 폭탄을 설치했다고 했는데, 미에코는 가자마 진의 피아노를 듣자마자 호프만의 유언이 떠올랐어. 그가 남긴 폭탄이 바로 가자마 진일 거라고 생각했어

가자마 진의 아버지는 양봉업자이고, 가자마 진은 아버지의 일을 도와주다가 바로 오디션에 와서 옷도 추레하고 더러웠지만, 그의 음악은 진흙 속 연꽃과도 같았어. 그는 자신의 연주만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어. 미에코를 비롯한 심사위원들은 진의 연주에 깜짝 놀랐고,  두려움마저 느꼈단다. 그래서 호프만이 폭탄이라고 했던 것 같아. 미에코는 그 두려운 감정 때문에 불합격 처리하려고 했지만, 다른 심사위원의 설득으로 합격 처리를 했단다.

소설의 시작은 콩쿠르에 참가하는 주인공들의 소개로 시작하고 있었어. 앞서 가자마 진을 소개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에이덴 아야라는 사람이야. 에이덴 아야는 어려서부터 천재소녀로 불렀고, 이미 많은 리사이틀을 비롯하여 연주회도 가졌어. 그런데 갑자기 후원자인 엄마가 돌아가시고, 피아노를 그만 두었어.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지. 3 , 엄마의 대학 동기이자 어떤 대학의 음대학장인 하마자키 교수가 찾아와서 아야의 피아노 연주를 들어보고 싶다고 했어. 하마자키 교수는 아야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자신의 학교에 오라고 했어. 그리고 시험을 통해 입학을 했지. 잊고 지냈던 피아노를 다시 연주하게 된 거야. 하마자키 교수는 아야에게 콩쿠르를 권했고, 아야도 고마움에 참가하겠다고 했어.

다카시마 아카시. 28살의 유부남이자 이번 콩쿠르 참가자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야. 예전에 피아노를 쳤으나 그 꿈을 접고, 악기 회사에 다니던 그는,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콩쿠르 참가를 결심했단다. 일년 동안 준비를 하고 드디어 예선을 앞두고 있었지.

마사루. 줄리어드 음대의 비밀 병기라 불렸어. 미국인으로 참가하지만, 그녀의 엄마는 일본계 페루인이고, 아빠는 프랑스사람이야. 어렸을 때 일본에서 잠시 살기도 했는데, 그때 이웃집 소녀(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그 소녀가 아야일 거라고 쉽게 추측이 되는…^^)때문에 피아노를 접했어. 그때 마사루가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야와 아야의 선생님은 마사루에게 피아노를 배우라고 이야기했어. 마사루는 프랑스로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2년 만에 두각을 나타내면서 줄리어드 음대까지 입학하게 된 거야. 아직 어렸을 때 일본에서 만난 어린 소녀를 잊지 못하고, 소녀가 선물로 준, 피아노가 그려진 음악학원 가방을 간직하고 있었어. 그리고 마사루는 큰 키에 준수한 외모로 인기가 좋았다고 하는구나.

이렇게 주요 참가자는 네 명이란다.

가자마 진, 에이덴 아야, 다카시마 아카시, 마사루

 

2.

아야는 하마자키 교수의 딸 가나데가 콩쿠르 준비를 도와주었어. 가나데는 아야의 어렸을 때부터 팬이었대. 콩쿠르에 나갈 때 입을 옷도 빌려주었어. 적극적인 협조를 했어. 아야는 연습하러 학교에 갔다가 정말 잘 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피아노 연주 소리에 이끌려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어. 그곳에는 어떤 소년이 피아노를 치고 있었는데, 그 소년은 아야와 눈이 마주치자 잽싸게 도망을 쳤단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소년은 바로 가마자 진이었단다.

드디어 1차 예선. 5일간 진행되며 참가자 90. 한 사람당 20첫째 날, 눈에 띠는 참가자는 미국 줄리어드 음대에서 온 제니퍼 챈과 마지막 주자였던 다카시아 아카시였어…. 둘째 날은 단연 마사루가 돋보였어. 피아노 실력뿐만 아니라 외모까지 뛰어나 곧바로 스타가 되었단다. 마사루 때문에 마사루 다음에 연주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기도 했단다. 아야와 하자마 진은 마지막 날 연주했어. 하자마 진은 프랑스 지역 예선 때 있었던 일로 이미 소문이 자자해졌고, 아버지를 따라 양봉업을 해서 꿀벌왕자라는 별명도 붙었어. 그리고 그 소문이 헛된 것이 아님을 단 20분만에 보여주었어. 그리고 아야의 연주도 깊은 여운을 남겼단다. 아야의 연주를 관객석에 본 마사루.. 한 눈에 아야가 어렸을 적 일본에서 알게 된, 잊지 못하고 있던 그 소녀라는 것을 알았어. 아야의 연주가 끝나고 마사루가 아야를 찾아가고 재회를 했지. 아야는 마사루를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마사루의 이야기를 듣고 기억을 해냈어. 1차 예선이 끝나고 2차 예선에 통과한 사람은 모두 24명이었고, 예상대로 4명은 모두 통과했단다..

2차 예선은 40분 내외를 연주해야 해. 연주할 곡들은 주최측에서 선정한 주제곡들 중에서 고르고, 모든 참가자들이 주최국의 작곡가의 신곡을 연주하는 것이 있어. 올해는 히시누마의 <봄과 수라>라는 곡이야. 마사루와 아야는 서로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준비를 했어. 그들은 콩쿠르가 끝날 때까지 어렸을 때 쌓다 말았던 우정을 다시 쌓았단다. 소설책 너머에서는 사랑이라는 감정까지 발전하지 않았을까 싶어.

아카시는 무난하게 2차 예선을 연주했단다. 점점 실력도 늘어나는 것 같았어. 가자마 진은 스승님이 죽기 전에 해주신 말들을 생각하면서 준비를 했고, 가자마 진은 콩쿠르가 좋은 음악들을 많이 들을 수 있는 기회라며 좋아했어. 마사루는 2차 예선에도 뛰어난 실력을 보였으나, 특히 <봄과 수라>라는 곡의 카덴차가 뛰어났어. 카덴차라는 것은 연주자의 즉흥연주라고 생각하면 돼. 작곡자가 악보에 어떤 부분을 비어두어 연주가 즉흥연주를 할 수 있는 것이란다.

콩쿠르에서 참가자들이 같은 곡을 연주하게 될 때, 이 카덴차 부분의 연주에 따라 곡의 성격이 많이 바뀔 것 같구나. 아무튼 마사루의 카덴차가 너무 뛰어나서,  아야는 그 음이 잊혀지지 않아 자신의 카덴차에 영향을 받을 것 같았어. 그래서 카덴차를 연습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스승님의 친구의 집에서 연습을 했어. 그런데 아야를 몰래 쫓아오는 이가 있었으니 가자마 진이었어. 진은 같이 연주를 하자고 제안했어. 그러면서 아야는 진과도 친해졌지. 그리고 진과 피아노 연주를 하고 난 이후, 아야는 무엇인가 변한 듯한 모습이었어. 진의 연주를 통해 자신의 실력도 올라갔고, 자신만의 카덴차를 완성할 수 있었단다.

..

2차 예선 마지막날, 진의 파격적인 연주로 연주회장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어. 진의 뒤이어 나온 아야는 그 뜨거운 열기를 다른 방식으로 감각적으로 색다른 연주를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단다. 2차 예선 결과 12명이 통과했는데, 주인공들 중에서는 아카시가 탈락했단다. 그리고 줄리어드 음대에서 온 제니퍼 챈이 탈락했는데, 제니퍼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거친 항의를 하기도 했대.

가마자 진은 턱걸이로 합격을 했는데,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확실히 갈렸어. 그런데 공통적인 생각들은 다음 연주를 또 듣고 싶게 만드는 연주라는 거야.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불호보다 호가 점점 많아졌어. 한국 참가자들도 4명이나 12명이 하는 3차 예선에 통과한 것으로 나오는구나. 우리나라의 어린 피아니스트들이 국제 콩쿠르 대회를 많이 참석하는가 보구나. 그리고 이어지는 3차 예선과 여섯 명만 남은 본선그리고 최종 수상자…. 과연 누가 일등을 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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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통해서 콩쿠르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도 알게 되어 좋았단다. 이 책에서 소개된 음악도 찾아서 들어보았는데, 아주 좋았단다. 책의 앞부분에 이 책에서 소개된 음악의 작곡가와 제목을 정리해 주어서 찾아보기 편했단다. 새로 알게 된 음악가들도 있어서 좋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온다 리쿠라는 좋은 작가를 뒤늦게 알게 되어 좋았단다. 그의 다른 책들도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305)
음악은 항상 ‘현재’여야만 한다. 박물관에 진열돼 있는 전시품이 아니라,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예술이 아니면 의미가 없어. 아름다운 화석을 캐냈다고 거기에 만족해서는 그냥 표본에 그쳐버리기 때문이지.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방금 전 다카시마 아카시라는 사람의 연주는 재미있었다. 수면의 잔물결, 시원스레 지나가는 바람, 칠흑 같은 우주까지 보였다. 저 사람 역시 자기만의 음악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641)
라흐마니노프의 악보를 처음 보았을 때는 이런 걸 어떻게 치란 말이야,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야말로 악보 밖으로 흘러넘치는 것 아닌가 싶을 만큼 수많은 음표들. 양손 화음이 끝도 없이 잔뜩 늘어서 있는 새까만 악보.
동경하던 낭만적인 2번을 몰래 연습해보았을 때는 해서는 안 될 장난을 치는 기분이었지. 물론 그때는 결국 흉내도 내지 못했다. 띄엄띄엄 연주하는 게 고작이라, 한 곡을 끝까지 연주할 체력도 기력도 없었던 것이다.

(654)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에 아주 조금, 지상의 중력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나기 위한 무언가를 덧붙인다면.
‘음악을 한다’는 것이 그에 가장 합당한 답 아닐까? 눈에 보이지도 않고, 나타나는 순간에 곧 사라지는 음악. 그 행위에 정열을 쏟고, 인생을 바치고, 마음을 강하게 빼앗기기 때문에 다른 생물과 구별되는, 인간에게 덧붙은 작은 마법 같은 옵션 기능이 아닐까?
응, 어느 정도 진실을 담아낸 답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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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단순하게 말해서, 자연 순환의 질서를 깨뜨리고 인간이 마음대로 인위적인 무언가를 하는 게 공업이라고 한다면, 농업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조종하기보다 자연의 순환이라는 큰 틀에 순응해서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거예요. 또 그 과정에서 부산물을 땅으로 돌려 땅을 비옥하게 하고 자연환경을 더 풍요롭게 만들면서요. 그런데 아무리 사람이 순환의 틀에 순응하면서 산다고 해도 훼손은 되거든요. 자연이 소모가 돼요. 그렇지만 그걸 최소화할 수는 있어요. 그 방법이 유기농업적 삶의 방식이라고 나는 보는 것이죠.

(22)

이야기를 마치고 나는 농장을 둘러보았다. 집 뒤에는 농산물 가공작업을 하는 건물이 있고 안에는 저온창고, 곡물 가루를 찌는 커다란 솥, 제분기, 반죽기, 발효기 등의 설비가 잔뜩 있었다. 거의 모두 선생이 손수 설계하여 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뒤편에 강의실 겸 식당, 주방, 숙소로 사용되는 건물이 있고, 또 그 뒤에 축사가 있었다. 널찍한 축사에는 20여 마리의 암소와 송아지, 돼지 20여 마리, 산양, 닭이 느긋이 어울려 놀고 있었다. 바깥으로 나와 보니 잔돌이 많은 넓은 밭이 겨울 동안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한쪽에선 마늘과 양파가 추위를 피해 비닐을 덮고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집 옆에는 작은 비닐하우스 여섯 동이 나란히 서 있었는데, 모두 녹비작물로 덮여 있었다. 증폭제를 만들어 보관해둔 상자도 눈에 뜨였다. 5,000여 평 땅에서 이 많은 일을, 선생 내외분의 힘으로 감당해오신 것이다. 이 농장은 선생 가족의 보금자리인 동시에 농업의 가치를 알리는 학교이며, 선생이 이루고자 했던 바로 그 낙원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39)

산업농은 단절된 부분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식품생산과 인간의 영양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즉각적인 금전적 수익 추구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는 농민들과 농기업들은 갈수록 옥수수처럼 영양가 낮은 작물의 단일 재배에 집중하고 있다. 옥수수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작물인데, 흔히 영양가 없고 열량만 높은 식료품으로 가공된다. 그 결과 1990년에서 2010년 사이에 빈곤지역을 포함해서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불건강한 식생활 패턴이 빠르게 증가했다. 오늘날 비전염성 질환의 대부분이 식사와 관련되어 있는데, 2020년이 되면 그러한 질병이 전세계 사망 원인의 대략 75%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88)

현재 아베 정권은 단계적으로 현행 평화헌법을 전쟁이 가능한 헌법으로 개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와 아울러  교과서 내용에서도 점진적으로 제국주의시대를 긍정적으로 기술하는 분량을 늘려가고 있다. 또한 국가 틀(헌법)의 개편과 함께 국민들의 제국주의 역사와의 친화를 도모하기 위한 분위기를 유도하고 있다. 메이지유신 150주년은 그것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메이지유신의 일등 공로자인 사이고 다카도리는 평화사절 파견론자로 계속 미화될 것이다. 그의 일대기를 그린 일본 공영방송의 대화드라마는 역사의 진실에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을까?

(102)

역사를 사람들의 주체적 선택의 누적으로 봐야, 역사의 실패도 잘못도 반성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는 현재의 우리가 자립성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과 표리의 관계에 있다. 그러한 자립한 자각적 주체성의 결여야말로 전쟁이라는 비참한 사태를 초래한 원인이 아니었던가. 모든 것을 시세나 대세에 맡기고 책임을 방기하는 태도야말로 사대주의이고, 극복하지 않으면 안될 문제이다.

(148)

탈원전은 이미 역사의 대세다. 우리가 지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화력발전을 확실히 포기하는 일이다. 원전을 폐쇄해도 갈탄 사용을 중단하지 않고는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 독일은 세계 갈탄 소비 국가이고, 대형 전력회사들과 지자체들이 관련되어 있어 탈석탄은 쉽지 않다. 독일에는 이미 폐쇄된 원전들이 있는데, 해당 지역에 그와 연계된 일자리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발전소 폐쇄가 지역경제에 실질적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갈탄은 다르다. 게다가 이 지역들은 구조적으로 취약하며 높은 실업률과 인구 감소까지 겪고 있다. 따라서 갈탄산업을 대체하려면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전망을 주어야 한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주에 대해서는 연방정부의 지원도 고려해야 한다.

(165)

문재인 정부는 단지 양심적인 진보파 정부라는 자기인식을 벗어나야 한다. 적어도 동확농민전쟁 이후 최초로 성립된 민주정부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사실 김대중 정부도 군사독재세력(김종필)과 연합함으로써 가능했고, 노무현 정부의 출현 역시 재벌세력(정몽준)과 어느 정도 손을 잡은 결과였다. 그래서 결국, 정권 탄생 시의 근본적인 한계로 말미암아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이명박이라는 희대의 사기꾼과 박근혜라는 극단적으로 아둔하고 무책임한 인물에게 정권을 내주는 참사가 빚어졌던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 등은 물론 군사독재와 오랫동안 싸워왔던 민주화 투사들이 집권하여 정부를 운영한 정권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명실상부한 민주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최초이다. 이 사실을 예리하게 인식하고 있다면, 이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요소요소에 최고의 인재들을 등용하여, 사생결단을 한다는 각오로 온갖 부패, 비리, 부조리에 구조를 혁파하고, 역사의 진로를 용기 있게 개척해야 한다. 그런 안목과 결연한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할 텐데, 좀더 두고 볼 일이지만, 실은 걱정이 많이 된다.

(174)

예를 들어, 당장 개헌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금의 국회에서는 결코 정당한 개헌안이 나오지 못할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최대 관심사는 다음 선거에서의 재선이다. 선거법을 개정하고 헌법을 보다 민주적으로 고쳐야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부차적인 관심사일 뿐이다. 게다가 자기들의 재선 가능성을 줄이거나 특권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선거법 개정은 절대로 용납할 리가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개헌이나 선거법 개정도 지난번 원전문제를 처리할 때처럼 공론조사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다. 실은 최근에 몽골에서도 헌법을 개정하면서 공론조사 방법을 채택했다고 한다.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시민들이 나서서 이를 관철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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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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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번에 아빠가 읽은 <개인주의자 선언>이란 책은 손석희 앵커가 추천한 책으로 더욱 유명해진 책이란다. 지은이는 문유석이라는 현직 부장판사란다. 요즘 판사라고 하면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해서 시민들에게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직업군이란다. 아빠도 요즘 이슈가 되는 재판 결과를 보면, 법에 의한 잣대라기보다 그 재판의 판사가 누구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재판이야말로 가장 먼저 AI가 도입되어야 하는 직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단다.

판사들 중에 약자의 눈물에 같이 눈물을 흘려주는 판사들이 없지야 않겠지만, 그 수가 극히 적어 보이고, 오히려 돈에 약하고 권력에 약한 판사들이 더 많아 보이니 AI로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거야. 이 책의 지은이 문유석이라는 분은 어떤 판결을 했는지 모르겠구나. 자신은 합리적 개인주의자라고 하니,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그리고 손석희님이 추천한 글에서 보면 지은이 문유석이라는 분의 따뜻한 시선이 반가웠다고 하니, 그는 판사 중에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런 판사이지 싶구나.

문유석 판사. 이 책은 아빠가 읽은 문유석 판사의 두 번째 책이야. 전에 소설 <미스 함부라비>라는 책이었잖아. 이 책도 읽기는 쉬었단다. 내용은 분명 묵직했지만….. 글 쓰는 재주도 많으신 분 같구나. 그가 이야기했듯이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 쌓인 내공이 글쓰기로 나타나는 것 같더구나.

1.

개인주의자라고 하면 이기주의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개인주의에는 앞에합리적이라는 말이 붙는단다. 현대사회에 오면서 혼밥, 혼술, 혼삶이라는 신조어들이 산출되는 것처럼 혼자 하는 것들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어. 개인적인 삶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세상이라는 것이 혼자 살 수는 없고, 둘 이상의 사회라는 것에서 생활할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행복이 아닐까 싶구나. 그런 기본적이고 본능적인 개인의 행복이 예전에는 단체의 이익, 집단의 행복 등에서 우선 순위가 밀렸지만, 최근에는 그보다 개인의 행복이 우선시되고 있는 분위기야.

그래서 얼마 전에 끝난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팀 동료의 승리를 위한 희생을 아름다움 희생만으로 보지 않는 분위기도 이해가 가고, 아빠도 공감이 가더구나. 하루 중에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있는 아빠도 아무래도 개인적인 시간보다 집단 생활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그리 사교적이지 못한 아빠로서는 그 시간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단다. 퇴근하고 와서 너희들이 모든 잠든 이후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으로 그런 스트레스를 푸는 좋은 시간이 되는 것을 보면 아빠도 개인주의자인가 보구나.

아빠가 생각하는 개인주의도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합리적 개인주의에 동의한단다. 그것을 다음처럼 정의 내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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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여기서 말하는 개인주의란 유아적인 이기주의나 사회를 거부하는 고립주의가 아니다. 개인주의는 근대 계몽주의, 합리주의와 함께 발전하며 서구사회의 근간을 형성했다. 합리적 개인주의자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이루어 살 수밖에 없고, 그것이 개인의 행복 추구에 필수적임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사회에는 공정한 규칙이 필요하고, 자신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될 수 있음을 수긍하고, 더 나아가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 타협할 줄 알며, 개인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들과 연대한다. 개인주의, 합리주의, 사회의식이 균형을 이룬 사회가 바로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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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개성이 전부 다른데 집단에서 균일하게 요구하는 개인이 될 수는 없잖아. 각자 살아온 길이 다르고,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이 다르고, 그가 쌓아온 경험이 다르고, 읽은 책들이 다른데 말이야. 그런 것들이 쌓여가 만들어진 거야. 너희들도 커가면서 남들과 다른 자신을 만들어가게 될 거야.

2.

누군가 자신은 개인주의자라고 하면, 왜 그는 개인주의자가 되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분명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일 거야. 행복이라는 것을 서인국 교수라는 분이 쓰신 책을 인용하여 설명하는데, 아빠도 그 내용이 무척 공감이 가더구나. 행복이란 것은 뇌에서 느끼는 쾌감인데, 그것은 결국 인간관계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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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서교수(서은국 교수)에 따르면, 행복감이란 결국 뇌에서 느끼는 쾌감이다. 뇌가 특정한 종류의 경험들에 대해 기쁨, 즐거움, 설렘 등의 쾌감을 느끼도록 진화한 것이다. 그런데 실증적 연구 결과, 인간이 행복감을 가장 많이, 자주 느끼는 원천은 바로 인간이었다. 가족, 연인, 친구, 동료…… 인간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많은 쾌감을 느끼는, 뼛속까지 사회적인 동물이었던 것이다. 돈은 어느 정도의 문화적 생활이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감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그룹의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사회성이 높은 외향적인 성격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모든 생명체처럼 인간에게도 생존과 번식이라는 유전자의 명령이 핵심 과제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인간에게 생존과 번식에 가장 필수적인 자원은 동료 인간들이었다. 그러니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활동, 즉 동료 및 이성과 어울리는 활동을 할 때 뇌에서 쾌감이라는 보상을 주어 이를 촉진시키는 쪽으로 진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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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사람마다 모두 다르잖아. 인간관계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많지만 성격에 따라 인간관계의 깊고 얕음이 있다고 하는구나.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다른 것처럼 말이야. 어떤 사람은 맛있으면서 맛이 강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담백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인간관계에게 적절한 거리가 유지되어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야. 주로 내성적인 사람들의 경우가 그렇단다. 아빠가 내성적이다 보니 이 말에 공감이 많이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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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내성적인 이들도 외향적인 이들과 마찬가지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지만 적절한 거리가 유지되어야 행복을 느끼는 체질인 것이다. 미각이 지나치게 예민해 강한 맛의 음식에는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이런 차이를 인정해주지 않고 무조건 집단이 요구하는 술 잘 먹고 윗분 잘 모시고 분위기 잘 띄우는 씩씩한 전사로 거듭날 것을 강요하는, 그래야 어른 되었다고 취급하는 문화 속에서 예민하고 내향적인 사람들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함부로 간섭하지 않고 배려하는 성숙한 개인주의 문화의 사회라면 이들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집단의 강요 없이, 자기가 스스로 선택한 취향이 맞는 작은 인간관계들의 고리 속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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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인주의자들이 모여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한 그의 생각들도 이야기를 했단다. 개인주의자들이 모여 있는 우리 시스템. 알면 알수록 답답하고 억울하지만 바꾸기는 어려운 시스템. 그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 정치인들인데, 아빠의 개인적인 생각은 현재 제1야당만 사라지면 무엇인가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어.

그 전에는 그들의 생트집그들에게는 그것이 생존의 이유일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생트집은 나라와 우리나리 시스템을 발전과 변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보여. 그저 자신들의 밥그릇 챙기려는 것으로만 보여. 나라와 국민이 어떻게 되든 생각하지 않고 말이야.모든 사회적인 이슈를 정치적으로만 이용하려고 말이야.. 정말 꼴보기 싫은 집단이란다.

이 책이 출간된 것이 2015년인데, 그때는 지금의 제1야당이 여당으로 8년째 정권을 잡고 있던 시기였으니 우리나라의 시스템은 썩을 대로 썩었을 때였어. 우리나라 시스템을 바라보고 있으면 얼마나 답답했겠니. 그런 엉망이고 답답한 시스템을 만든 이들이 바로 지금의 제1야당이란다. 나라를 믿지 못하게 만든 사람들….

그나마 위대한 촛불 혁명을 통해 대통령과 정부를 바꾸어서 숨통을 좀 트였지만, 아직 우리나라 시스템을 바꾸기에는 막강한 반대세력이 국회에 자리를 잡고 있단다. 그들마저 내쫓고 나면 더욱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싶구나. 그들을 촛불로 내쫓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구나. 선거로 내쫓아야 하는데, 아직도 2년이나 남았구나. 지금이라도 지난 9년 동안 잘못한 일들이 드러나면 벌이라도 제대로 받았으면 좋겠구나.

촛불혁명 때 국민들이 깨달았던 바를 앞으로도 잊지 말고, 어떻게 선거를 해야 하는지 마음 속에 잘 간직했으면 좋겠어. 합리적인 개인주의자들이 더욱 늘어나서, 비합리적인 집단주의자들을 내몰아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단다.

이 분은 학력고사 세대인데, 대학입학 시험에서 전국 수석이라는 독특하면서, 대단한 경험을 가지고 있더구나. 그러면서 오늘날 입시제도에 대한 문제점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이야기했는데, 앞으로 너희들이 가야 할 길인데, 공정하지 못한 길인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단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면 평등한 기회의 장이 되어야 하지만,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그 기회의 장의 크기가 다른 것이 현실이구나. 하루 아침에 시스템을 다 바꿀 수도 없는 상황이고, 이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란 쉽지 않은 것 같더구나. 이것도 조금씩 변해서 너희들이 입시를 준비할 때 쯤이면 지금보다는 공정한 시스템이 되었으면 좋겠고,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스트레스를 적게 받았으면 좋겠구나.


(51)
서교수(서은국 교수)에 따르면, 행복감이란 결국 뇌에서 느끼는 쾌감이다. 뇌가 특정한 종류의 경험들에 대해 기쁨, 즐거움, 설렘 등의 쾌감을 느끼도록 진화한 것이다. 그런데 실증적 연구 결과, 인간이 행복감을 가장 많이, 자주 느끼는 원천은 바로 인간이었다. 가족, 연인, 친구, 동료…… 인간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많은 쾌감을 느끼는, 뼛속까지 사회적인 동물이었던 것이다. 돈은 어느 정도의 문화적 생활이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감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그룹의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사회성이 높은 외향적인 성격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모든 생명체처럼 인간에게도 생존과 번식이라는 유전자의 명령이 핵심 과제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인간에게 생존과 번식에 가장 필수적인 자원은 동료 인간들이었다. 그러니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활동, 즉 동료 및 이성과 어울리는 활동을 할 때 뇌에서 쾌감이라는 보상을 주어 이를 촉진시키는 쪽으로 진화한 것이다.

(57)
내성적인 이들도 외향적인 이들과 마찬가지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지만 적절한 거리가 유지되어야 행복을 느끼는 체질인 것이다. 미각이 지나치게 예민해 강한 맛의 음식에는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이런 차이를 인정해주지 않고 무조건 집단이 요구하는 술 잘 먹고 윗분 잘 모시고 분위기 잘 띄우는 씩씩한 전사로 거듭날 것을 강요하는, 그래야 어른 되었다고 취급하는 문화 속에서 예민하고 내향적인 사람들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함부로 간섭하지 않고 배려하는 성숙한 개인주의 문화의 사회라면 이들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집단의 강요 없이, 자기가 스스로 선택한 취향이 맞는 작은 인간관계들의 고리 속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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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 2권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게. 1권의 줄거리는 생각나지? 주인공 자크가 엄마 카롤린을 찾아 세노이 족이 살고 있는 말레이시아의 무인도에 도착을 했잖아. 그리고 엄마는 자크가 도착하기 며칠 전 관광업자들의 용병들한테 죽었고 말이야.

그 용병들을 보냈던 관광업자이자 부동산업자인 키암방이라는 사람이 용병을 데리고 자크를 납치를 했단다. 그리고 자크의 엄마 카롤린에게 했던 협박을 자크에게 다시 했어. 무인도를 넘기라고 말이야. 자크는 거절했지. 결국 자크를 바다를 빠뜨려 죽이려고 했어. 극적인 순간에 프랭키가 세노이 족과 함께 와서 구출을 해주었단다. 세노이 족의 추장 딸 샴바야가 꿈을 통해 자크의 위치를 알아낸 거야.

샴바야는 맹인이지만 그런 신비한 능력이 있었단다. 세노이 족은 샴바야를 해몽현녀라고 부르기도 했어. 꿈에 대한 해몽도 잘 해주었거든샴바야는 카롤린으로부터 프랑스말도 배워서 어느 정도 프랑스어로 대화를 할 수 있었어. 자크의 말을 다른 세노이 족 사람들에게 통역해주는 일도 했어.

계속되는 관광업자의 협박과 공격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지 몰랐어. 그런데 꿈에서 다시 20년 후의 자신이 나타났어. 그리고 그가 해법을 알려주었는데, 착한 기업체에게 개발권을 넘겨서 세노이족과 공존할 수 있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어. 그렇게 자크와 세노이 족은 세레니티스라고 하는 착한 기업에 개발권을 넘겼어. 호텔을 짓기는 하되, 관광객의 수를 일주일에 12명으로 제한하기로 했어. 그리고 세노이 족의 문화와 생활을 존중해달라고 했어.

처음에는 세노이 족 사람들은 반대를 했지만, 그것만이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라며 설득을 했단다. 자크는 세노이 족을 유튜브를 통해 세상에 알리기도 했어. 그렇게 존재를 알리는 것이 위협적인 단체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거든. 샴바야를 비롯한 세노이 족의 수면에 대한 특수한 능력과 자각몽은 유명해졌어.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닌 거 보네. 가끔 믿음이 배신으로 돌아올 수도 있지만, 이 소설에서 그런 배신은 일어나지 않았단다.

1.

자크와 프랭키는 세노이 족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에 만족했어. 그리고 그들과 결혼도 했어. 자크는 샴바야와 결혼을 했단다. 샴바야는 자크에게 자각몽을 꾸는 방법을 알려주었어. 자각몽이라는 것은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꿈을 꾸면서 알고 있는 것이야. 그 정도는 일반 사람들도 꾸는 사람들이 있어. 아빠도 간혹 꿈을 꾸면서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경우가 있거든.

그런데 샴바야 족 사람들이 꾸는 자각몽은 내가 나의 꿈을 조정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 꿈 속 여행을 할 수 있었어. 그래서 꿈을 통해 유명한 수행자나 명상가들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꿈 속의 정보들의 모여 있는 곳, 노스피어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법을 알려주었어. 이것은 인터넷이나 클라우드에서 정보를 얻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어. 자크는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물을 무서워해서 수영도 못했는데, 샴바야가 꿈치료를 해주어 자크는 물공포증도 없애고, 수영도 배우게 되었어.

.

앞서 이야기했던 착한 기업 세레니티스라는 회사에서 실뱅이라는 사람이 찾아왔어. 그는 자크가 제안한 계약 조건에 만족을 했고, 바로 호텔을 짓기 시작했단다. 자크와 샴바야는 꿈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자크는 인터넷을 통해 자각몽 교본을 올리게 되었는데, 그것에 큰 인기를 끌어영적 관광 프로젝트를 계획했어.

...

시간이 흐르고 자크와 샴비야는 아들 이카르를 낳았단다. 그들은 그들과 세노이 족이 살고 있는 이 섬을 플라우 세노이라고 불렀어. 더 이상 무인도가 아니니까 말이야. 관광사업도 잘 되고, 세노이 족도 번창하여 평화롭게 지냈어.

2.

세월은 쏜살같이 흐르고, 자크는 어느덧 44살이 되었어. 한동안 꿈에서 나타나지 않는 스무 살 많은 자크가 오랜만에 나타났어.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빨리 파리로 돌아가라고엄마가 살아있다고이건 또 무슨 소리

잠에서 깬 자크는 엄마의 무덤을 파헤치자, 그곳에는 돌만 가득했어. 샴바야에게 물어보니, 16년 전 자크가 이 섬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세노이 족에게 그렇게 부탁을 한 것이래. 엄마 카롤린은 몰래 파리로 돌아갔다고 말이야..

왜 그랬을까? 그 때는 자신의 몽유병을 아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고 해도 보고 싶은 아들을 16년 동안 안보고 살 수 있을까? 아들의 입장은 또 어떻고? 아빠가 생각하기에 이 부분에 대한 소설의 설정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약간의 억지가 포함된....

다시 이야기를 이어서 해줄게. 자크는 시간을 미루다가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곧바로 파리로 향했단다. 샴바야와 아들 이카르도 함께 했어. 파리에 있는 집에 왔는데, 엄마는 여전히 몽유병을 가지고 있었어. 1년 동안 샴바야와 생활을 하고도 고치지 못했구나. 그렇다면 더욱 샴바야 족을 떠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구나.

자크가 집에 도착을 했을 때 카롤린은 잠이 든 채로 지붕에 있었어. 위험천만자크가 엄마를 구하러 갔다가 오히려 엄마가 잠에서 깨어나서 자크를 보고 놀랬고, 그렇게 놀래다가 지붕에서 미끄러져 땅으로 떨어졌어.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지

.

파리에서 엄마는 그동안 예전의 상사였던 에리크 자코메티와 모르페루스 클리닉을 차리고 수면 치료를 하면서 잠의 6단계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어. 파리로 돌아온 자크도 모르페우스 클리익에서 일하면서 엄마가 하던 연구를 계속했어. 샴바야도 클리닉에서 자각몽에 관련된 강좌와 일을 했단다.

자크가 기존 수면제 벤조디아제핀의 부작용을 언론의 인터뷰에서 이야기를 했다가 제약회사로부터 맹공격을 받게 되었어. 클리닉을 문 닫을 정도의 위험에 빠졌는데, 그때 옛 여자친구 샤를로트가 나타나서 도움을 주었어. 남편이 고위공무원이었는데, 수면치료를 통해 군대 효율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국가에서 지원을 해주겠다고 했어. 그래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어.

샤를로트는 꿈을 영상화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자크의 아들 이카르의 도움으로 성공을 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어. 이카르도 자각몽을 꿀 수 있었는데, 이카르가 꿈을 연출을 하게 되면 그것이 영상으로 전환할 수 있었던 거야. 나중에라도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궁금하네.

3.

자크는 자각몽을 통해 노스피어에 가서 명상가들의 영혼을 만나고 6단계에 진입하는 방법을 깨우치게 되었어. 그래서 다시 6단계의 진입을 시도하였지. 위험부담이 있었기 때문에 자크 본인이 직접 했어. 6단계는 잠과 죽음의 중간단계였기 때문에 무척 위험했어. 체온을 낮게 유지하고, 심박수를 줄여야 했거든. 자크는 결국 그 6단계를 성공했어.

그곳에서 자신의 무의식을 만나고, 스무 살 많은 자신도 다 만났어. 그리고 신경계 뉴런을 조정하여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클라인 병처럼 뉴런을 조정하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아톤이라는 장치를 만들었어. 물론 꿈속에서 말이야.. 그리고 20년 전 자신의 꿈속에 들어가서. 20살 어린 자신을 만나게 되는 거야. 1권에서 이야기했던 그 순간 말이야. 엄마가 위험에 빠져 있다고 이야기했던 그 순간 말이야. 스무 살 어린 자신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다시 스무 살 많은 자신을 만났어. 스무 살 많은 자크는 6단계 치료를 이용하면 엄마도 살릴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었어.

잠의 6단계 체험에 성공한 자크는 깨어나자마자 의식불명 상태인 엄마를 데리고 왔어. 6단계 진입 시도생각보다 길게 이어지는 시간다들 포기하고 있던 그 시점에 엄마는 깨어났단다. 그렇게 소설은 해피 엔딩으로 끝을 맺었어.

정말 꿈을 조정할 수 있다고 하면 어떨까? 아빠가 지금까지는 꿈을 꾸지 않는 것이 숙면을 취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꿈과 숙면은 관계가 없는 것일까? 문득 꿈 하면 대표적인 사람 프로이트가 생각이 나는구나. 그리고 프로이트의 대표작 꿈의 해석이라는 책도 읽어보고 싶고

아빠는 꿈을 자주 꾸는 편인데, 그 꿈들을 그냥 꿈으로 버리지 말고, 이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수첩에 모두 적어볼까? 사실 아빠도 너무 실감나는 꿈들이나 이상한 꿈은 아주 가끔 일기에 적기도 하는데침대 옆에 수첩을 두고 꿈을 꿀 때마다 적어볼까? 에이, 좀 귀찮을 것 같구아..^^ 그리고 이 소설에서 수면을 분석해주는 앱 이야기를 해서 찾아보니, 그런 어플리케이션이 정말 있더구나. 그걸 한번 다운 받아볼까? 건강한 잠에 도움이 되려나?^^


(126)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장님이에요. 그 사실을 알고 인정하는 사람도 있고,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우리는 어차피 감각이 일정 정도 왜곡해서 전달하는 신호들을 해석하고 있을 뿐이에요. 실재와 지각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은 꿈속에서뿐이죠. 내가 꾸는 꿈이 앞을 보는 사람들이 꾸는 꿈보다 아름다운 이유는 그 꿈이 현실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에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내가 끊임없이 재창조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299)
그렇다면 클라인의 병도 펠릭스 클라인 이전에 이미 존재했다. 단지 미래의 펠릭스 클라인이 꿈속에서 그에게 영감을 주었을 뿐이다. 그렇지 않을까?
7년의 풍작 뒤에 7년의 흉작이 오리라는 노예 요셉의 예언을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대서양 건너편에 미지의 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사실을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세계는 꿈에서 <설득력 있는> 미래의 자신과 대화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뱀 두 마리가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고 나서 DNA의 이중 나선 구조가 발견되었다.
분자의 구조를 발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프리드리히 케쿨레의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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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815 해방 당시 조선에 관한 한 루즈벨트는 스탈린보다 무지했고, 미국 정부는 아시아보다 유럽에 관심 있었고, 태평양 사령관 맥아더는 조선보다는 일본에 몰두했으며, 군정책임자인 하지 중장은 한국엔 처음이었다. 하지는 어느 정파가 자신의 우군인지, 이 난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될 정치지도자가 누구인지 헷갈렸다. 미군정이 남로당을 불법화시키는 한편 이승만, 김구 같은 극우로도 복잡한 한국 문제를 풀기 어렵다는 판단에 도달한 끝에 그 중간 지대의 여운형과 김규식을 자신의 파트너로 찍었을 때 여운형이 암살돼버렸다.

분할점령이 영구 분단으로 흘러가는 와중에 분단을 피할 수 있는 선택의 기회들이 주어졌지만 불발의 역사에 그치고 만 것은 남북을 통틀어 그것을 현실화시킬 능력을 가진 정치지도자가 없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다만 가장 근접한 인물이라면 그건 여운형이었을 것이다.

(265)

이광수 선생의 뒤는 홍명희 부수상께서 수습하셨다 합니다.”

두 사람의 우정은 시작과 끝이 수미일관(首尾一貫)했다. 한일합방 날 자결한 금산 군수의 아들로 유서 깊은 양반 가문 출신인 홍명희가 지지리도 가난한 집 아들로 양친 모두 콜레라로 잃고 열한 살에 고아가 된 이광수. 일본 유학 시절 이래 이광수는 홍명희에게 친구이자 친형처럼 의지했고 번갈아가며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했고 이광수가 어마어마한 작품을 양산하는 동안 홍명희는 <임꺽정> 하나를 썼고 이광수가 친일노선에 발가벗고 나선 일제 말기를 홍명희는 은둔과 침묵으로 보냈고 서로 인생관과 정치관이 엇갈려 꽤 긴 시간을 멀찍이 바라보는 사이였지만 결국 이광수의 최후를 홍명희가 거두었다. 이광수는 잘나갈 때도 노심초사 불행해 보였고 홍명희는 풍족할 때나 궁핍할 때나 느긋한 한량이었다. 정숙은 춘원에 대해 늘 안간힘 쓰며 최선을 다하는 천재로 기억했다. 소설 쓸 때도, 친일할 때도, 그랬다.

(282)

세죽에겐 함흥에서 어린 시절부터 늘 그랬다. 사는 건 고달프고 힘든 일이었다. 겨울이면 춥고 배고프고 여름이면 덥고 배고팠다. 게다가 고향도 조국도 잃고 남편을 두 번 잃고 아들도 잃고 낯선 나라에서 유형수로 홀로 늙어가다니, 상상도 못 한 불운이 끝없이 밀려왔다. 남편이 감옥에서 고문당해 미치면서 마음자리가 한 번 깨지고 난 이후론 밑 빠진 독처럼 행복이 고이질 않았다. 사랑이 두려웠고 희망은 슬펐다. 단야와의 결혼생활도 언제 깨질지 몰라 늘 불안했고 결과는 걱정한 대로였다. 어쩌면 그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건 신혼의 훈정동 시절인지 모른다. 좁은 방에서 버글버글한 객식구들에 시달리며 끼니 걱정하고 밥해대느라 손이 마를 날 없었던 시절을 생각하자 세죽은 슬며시 웃음이 나면서 마음이 따스해졌다.

(294)

불굴의 박헌영은 평양에 온 이래 김일성의 오른편에 앉아 점점 순한 양이 되어갔다. 남자는 김일성 하나로 족했고 그 주위에서 모든 왕년의 혁혁한 혁명가들이 조금씩 거세되었다. 박헌영 역시 현실정치의 매너를 배우던 끝에 굴종에 이르는가 싶었다. 하지만 지금 한때 불굴의 청년혁명가였던 자의 자존심이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헌영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동안 정숙은 상해에서 경성, 평양에 이르는 지난 세월이 한꺼번에 되살아오고 박헌영과 김일성 두 남자에 대한 애증이 뒤엉키면서 두통이 밀려왔다. 헌영이 칼을 뽑아들었는데 그것이 역사 논문 쓰는 것으로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정숙은 그다음에 기다리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모종의 군사행동을 예비해둔 것일까. 아니, 작전이 이미 시작된 건지도 몰랐다.

(297-298)

그녀는 적이 당황스러웠다. 내 나이 오십, 귀찮은 것이 많아지는 나이로구나. 아니, 사람에 대한, 사람들 집단에 대한 기대가 사라져버린 것 아닌가. 누가 잡든 권력의 속성은 똑같다는 생각, 어느 개인이 더 현명하든 덜 현명하든 집단이 되면 어리석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 그렇다면 권력을 포식한 집단이 권력에 굶주린 집단보다 낫지 않을까. 굶주린 이리떼보다 배부른 사자 떼가 낫지 않을까. 이건 가장 저급하고 비겁한 보수주의자의 사고방식인데 자신의 어느 결에 이토록 회의주의자가 되었던가, 하고 정숙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 역사에 대한 믿음, 한때 태산도 옮길 것 같았던 그 믿음이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347)

수상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욕망과 집착이 믿을 수 없을 만치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신 그동안 참고 참았던 분노와 환멸이 치밀어 올랐다. 지하감옥의 시멘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뒤에야 정숙은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막대한 분노를 참고 견뎠는지를 깨달았다. 평양은 참을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김일성은 점점 몹쓸 인간이 돼가고 있고 근사하고 점잖은 사람은 씨가 말라가는 대신 아첨꾼과 모사꾼들만 살아남았다. 마르크스는 혁명가들이야말로 고귀하고 선량한 인간의 전형이라 했지만 진짜 그런가. 만경대 조성사업 따위는 다 뭐며 역사를 멋대로 뜯어고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불행한 조국에 생명의 불을 가져다줄 프로메테우스들이 동족의 손에 총살당하거나 시골에서 돼지나 치고 있구나. 실컷 분노하고 화를 내자 묵은 체증이 가시는 느낌이었다.

(349-350)

다시 이틀 동안 정숙은 혼자였다. 생각을 좀 더 깊이 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고독은 추억을 낳고 추억은 그리움을 낳고 그리움은 증오를 낳고 증오는 인간이며 이념이며 혁명이며 정치며 그 모든 것에 회의를 낳았다. 회의가 휘젓고 지나가자 모든 투명하던 것들이 탁해졌다. 하지만 회색의 거품 아래 침몰해가는 것들 속에서 그녀는 마르크스 엥겔스와 레닌을 건져냈다. 그것이 인류의 절반을 노예 상태에서 구해낸 거 아닌가. 중국, 소련은 50년 전만 해도 황제와 차르의 사회였고 모두 마르크스를 지렛대로 봉건군주제를 뛰어넘었다. 북조선도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토지개혁도 근사했지. 마르크스레닌주의자로서 그 사상 위에 정부를 세우는 일을 해보았으니 행운이었다. 권력이라는 것도 누려보았다. 그녀는 남자들이 그것에 목을 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 팔자를 고쳐줄 수 있는 힘, 싫어하는 사람을 나락에 떨어뜨릴 수 있는 힘이 권력이다. 권력은 권력자로 하여금 그것이 그대로 자신의 인격이라 믿게 만든다. 또 주위에 모여드는 사람들이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 권력은 자아도취에 빠지게 만들고 그 마력이란 때로 목숨과 바꿀 만큼 강력하다. 그녀도 권력의 맛을 보았다. 하지만 이상한 게 묻으면 언제든 버릴 수 있다. 그녀는 땅에 떨어져서 흙이 묻어 있는 것도, 똥이 묻어 있는 것도, 그게 권력이라면 털지도 않고 주워 먹는 남자들을 많이 보았다.

(371-372)

1848년 팸플릿에서 시작된 19세기의 이론은 20세기에 세계적 규모의 이데올로기투쟁으로 전개됐지만 세기가 바뀌기 전에 종료되었다. 한반도 북쪽의 소비에트 실험은 일찍이 공산주의 트랙에서 튕겨나와 해괴한 파시즘으로 가버렸다. 21세기로 넘어와서 마르크스주의는 체제나 혁명이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과 태도와 정책의 문제로 남았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대경합의 시대에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마르크스 이론과 레닌의 혁명은 그들을 추종한 공산주의 세계를 행복하게 만드는 대신 반대편의 자본주의의 세계를 더 인간답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것은 하나의 역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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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3-23 19: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께서는 「태백산맥」필사를 하신만큼「세 여자」를 읽으시면서 「태백산맥」을 많이 떠올리실 듯 합니다^^:)

bookholic 2018-03-23 22:42   좋아요 2 | URL
ㅎㅎ 돗자리를 깔으셔야겠어요~~ <태백산맥>도 생각나고, 당시를 드라마로 그렸던 <1945>도 많이 생각났어요~~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