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혼자 있다고 꼭 고독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고독은 물론 다른 사람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만 이 순간 나는 나 자신을 벗삼고 있다. 반면 내자 혼자 있든 누구와 함께 있든 나 자신이 내게 결핍되어 있을 때, ‘내게 결핍되어 있는 그 누구가 다름이 아닌 나 자신일 때, 이런 상태는 고립이다. (반대로 사랑은 상대방이 거기 있을 때조차 그가 그리운 상태를 말한다.) 고독 속에 있다는 것은 상대방이 거기, 내 안에 있다는 확신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상대방과 내가 모두 결핍되어 있는 단절도 있다.

(34)

예술가는 고독 속에서만 진정으로 일할 수 있다. 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이 끊임없이 통제되는 그런 환경 속에서만. 그것이 없다면 관념과 이 관념의 실현간의 불가분의 통일성이 외부의 침입에 의해 깨어질 수도 있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어떤 비율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보낸 매시간에 대해 X시간을 혼자 보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늘 직감적으로 느껴 왔다. X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얼마만큼을 의미하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중요한 시간이다. 아무튼 어린 시절부터 라디오는 내게 매우 친근한 의사 소통의 수단이었으며, 나는 거의 중단 없이 라디오를 들어왔다. 내게 라디오는 벽지와도 같았다. 나는 라디오와 함께 잠이 들었으며, 넴뷰탈을 포기한 후로는 라디오 없이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고독의 메타포인 라디오는 여러 유리한 점을 지니고 있다. 마음내키는 대로 틀거나 끌 수 있으니까 우리가 원할 때 자리에 없고, 없어도 좋을 때 곁에 와 있는 타인들과는 달리.)

(41)

굴드는 청중 쪽으로 등을 반쯤 돌린 채 다리를 꼬고, 거의 비스듬히 앉은 자세로 첫번째 악장을 연주했다. 그리고 나서 느린 악장에 이르자 입이 반쯤 벌어지고 무대 천장에 눈이 고정된 그의 모습은 황홀경에 빠진 사람과도 같았다. 그 다음 마지막 악장에 가 거의 뒤로 나자빠진 듯한 자세가 된 그의 머리는 건반에서 너무도 떨어져 있어, 자신의 손을 마치 자기 것이 아닌 양 바라보는 것 같았다.

(59)

음악의 핵심 속으로의 온전한 칩거, 모든 것으로부터의 결별, 성급한 떠남, 이 모든 일은 굴드가 무대를 떠난 순간 이미 일어나 있었던 일이었다. 1963년의 사건은 그의 긴 탐구의 첫 단계가 아니고 마지막 단계였다. 후퇴 혹은 은거는 결렬이라기보다 음악과 이 반복되는 실종간의 해묵은 내밀한 공모였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음악은 그에게 참으로 존재하며, 그를 사로잡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 밖의 것은 모두, 연주회는 한층 고통스럽게 그를 음악으로부터 갈라 놓는 것이었다. 집착하는 모든 것, 만남, 아이들, 일상의 작업들과 같은 기쁨과 고통의 이 매듭들은 늘 그에게 탈주를 꿈꾸게 했다. “아무곳이든지, 세상 밖으로.”

(74)

그는 음악에 옷을 입히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음악이 옷을 벗기를 원했다. 또한 음악이 우리를 헐벗게 하고 살가죽을 벗기는 것을, 털을 곤두서게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 사진들 속의 그는 몹시 마른 모습이다. 뼈의 열기를 식히기 위한 살의 부드러움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 몸에는 엄청난 힘이 배어 있다. 일상의 과육이 해체되는 이 순간, 푸가의 골격에서 찾아지는 그런 힘이.

(99)

더 잘 연주하기 위해 거리를 둘 것. 이것이 굴드의 미학이다. 시토회 수도자 토마스 머튼의 개념과도 비슷한 후퇴의 미학.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피아노 자신과도 거리를 둘 것. 그는 녹음이 있기 전 며칠 동안 자신의 피아노를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피아노는 손가락이 아니라 머리로 연주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연주하는 것의 정신적인 형상과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순간의 손가락의 속박 사이에 일정의 투쟁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 손가락의 속박에서 우리가 해방된다. 형상이 그 개념의 순수성으로부터 한눈을 팔아 피아노에 부딪치는 일이 없었던것이다. 그는 또 피아노를 연주하는 비결은 어느 정도 자신을 악기로부터 떼어 놓는 방식에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분리의 순간들, 피아노와 음악을 분리시키는 기술들을 되새겨 보자.

(102-103)

굴드의 악기의 고독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싶어했다. 헐벗은 연주. 악기가 미혹시킨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장식적인 기능을 삭제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바흐의 장식음들을 그는 마치 장식음이 아닌, 악절의 다름 음들과 똑 같은 멜로디와 화음의 가치를 지닌 음들처럼 연주한다. 이들의 필연성과 절박함을 발견하기 위해서인 양, 분해되어 나온 뚜렷한 음들로 천천히 연주한다. 그러므로 페달이 사용되지 않는다. 페달은 옷을 입히고 가리기 때문이다. 그는 음악의 몸이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가기를 원했다. 우리의 몸이 인위적인 장식들을 박탈당한 채 벌거숭이가 되어, 살덩이의 치욕 속에 버려져 죽음으로 가듯이.

(106)

음악에 대해 그가 행사한 지배력은 음악 안에서의 지배력에 지나지 않았다. 음악에 오롯이 사로잡혀 있던 그는 절대로 음악이 그의 수중에 든 것처럼, 자신 안에 축적되고 정리되어 있거나 위협하는 것처럼 연주하지 않았다. 음악을 밖으로 끄집어 내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그는 이를테면 아라우처럼 음악이 스스로 다가오도록 하는 식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어린아이를 낳을 때처럼 안에서 밖으로, 위에서 아래로, 음악을 수행하는 식이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따고, 들어올리고, 아니면 공중에서 낚아채는 듯했다. 언제나 밖에서, 뒤로 물러서며 끝없이 한계를 넓혀 가는 어떤 공간 속에 있듯이 그는 음악 속에 있었다. 더 가까워질수록, 더 많이 알게 될수록, 그는 그것이 포착되지 않기를 바랐다. 친숙해지면 음악은 꺼져 버리고 만다. 근원은 우리가 그것을 찾아나서면 자취를 감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무서운 것이 잊혀지고 나면 아름다움은 부재한다.

(108)

굴드의 연주에는 몹시도 신비한 무엇이 들어 있다. 아주 스타카토적이고 점묘적이라고까지 할 만한 이 세코(secco)식이 연주를 통해 탁월한 밀도와 놀라운 연속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굴드는 페달을 통한 음의 용해나 손가락의 레가토 연주 증 외부적인 무엇으로 연결성을 만들어 내지 않고, 크레셴도와 디크레셴도를 통해 리드미컬하다기보다는 강양이 위주가 된 프레이징을 만들어 낸다. 연속성은 인접성을 통해서가 아니고, 완전히 별개인 음들의 꾸준한 단계적 상승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렇게 해서 재봉틀로 땀을 드느냐, 모호한 후광을 만들어 내느냐 하는 딜레마를 비켜 간다.

(124)

굴드는 불가능한 무엇을 추구하고 있었다.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두고 그가 음악의 무형성이라고 지칭한 그것이었다. 그가 보기에(아니면 실제로) 음악은 양극단 사이의 긴장이다. 대수의 복잡성과, 더 큰 초연을 지향하는 사고의 움직임. 그리고 음들 속에 감추어진 확고부동한 기반.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굴드가 확신했듯이 피아노 앞에 앉자마자, 음악이 모습을 갖추자마자, 유한한 공간이 음악을 삼켜 버린다고, 결함과 결핍, 실추가 불가피하다고 믿어야 할까? 아니면 굴드의 연주를 듣고 내가 확신하듯이, 이 같은 타락 속에서만 무언가를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일까?

(149)

고독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음악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따금 음악이 일체를 엄습해 깡그리 지워 버리고 만다. 그리고 음향 외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곳에 없을 수도 있지만, 음향은 거기에 있다. 그것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이다. 때론 아주 미미한 것, 거의 무효화된, 아니면 부서진 무엇일 때도 있다. 하지만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음악은 내 안에 있고, 나는 음악 안에 있다.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내부에서 외부로, 내면이 된 외부로 나아감이다. 마치 내면에 이미 외부가 존재하는 양. 음악은 신의 자질들을 지니고 있어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듯이 보존하면서 채운다. 그것은 에워싸고 조여 온다. 그러면서도 귀로 올라오는 기쁨, 혹은 첨예한 고통으로서, 아주 작은 부분이 되어 내부에 머문다.

(169)

굴드는 혼자 살았지만, 절대로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머리는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면 자신을 보호하고 그가 나누고 있는 말, 때론 광적인 환희를 담고 있는 말로부터 스스로를 추방하기 위해 늘 배후에 음악을 두고 있었다. 종종 그는 말을 하다말고 물었다. “지금 내 생각 깊은 곳에 어떤 음악이 있는지 아십니까?”라고. 생의 말기로 접어들면서 그 대답은 점점 더 예측 가능한 것이 되었다. 그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변신>이었다. 거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존 리 로버츠는 굴드를 사로잡고 있는 음악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추측해 보아야 했다. 어떤 음악이 그의 말을 가로막고, 그의 내부에서 말을 하는지. 이번에 로버츠는 빗나가고 말았다. 굴드는 여전히 슈트라우스. 그의 마지막 작품 <4개의 마지막 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잠시 뒤 굴드는 완전히 지친 듯이 보였다. “나는 당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알 것 같습니다.”라고 상대방이 그에게 말한다. “그렇습니까? –벌써 마지막 노래에 와 있군요?-맞습니다. 정확히 그곳에 와 있습니다.” 여기서 시가 말한다. “벌써 죽음인가?” 악보에는 여전히 보다 느리게라고 적혀 있으며, 그 다음에는 리타르단도, 그리고 죽음이라는 단어에서 이끎음 Bb이 으뜸음 Cb과 경합할 때는 아주 느리게가 된다.

(185)

누가 진실 속에 있는 것일까? 누가 알겠는가? 그걸 알아야 할까? 사랑하려면 알아야 할까? 물론 그렇지 않다. 사랑에는, 아니면 단지 귀기울이는 데에는 전기적인 앎과는 다른 앎이 있다. 설령 앎이 사랑을 확장시키고 활력을 줄 수 있다손 치더라도 절대로 사랑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이해하려면 사랑에 빠지지 않으면 안 된다.

(190)

나는 굴드가 연주한 <골트베르크 변주곡>의 마지막 녹음의 마지막 부분(아리아의 재현)의 마지막 음들을 듣는다. 지속된 화음이 잠시, 새가 날아가 버린 가지가 희미하게 떨리듯이 부르르 떤다. 굴드를 들으며, 굴드에 관해 쓰며 결국 알게 된 것은 나 자신이다. 자신들의 삶을 살지 않았던 예술가들, 그러나 이들 덕분에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그나마 괜찮게 살 수 있게 된 그런 예술가들을 경험할 때 늘 그렇듯이. 이 놀라움은 놀래키고 당황하게 만들고 기발하게 보이려는 욕구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참된 놀라움은 아름다움 앞에서 우리가 그래, 이거야. 이렇게밖에는 될 수 없었어리고 말하도록 만든다. 발설된 것은 방금 전까지도 생각할 수 없었지만 이젠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예술은 가장 높은 사명을 지닐 때 거의 인간적이 아닌 무엇이 되어 버린다.”고 언젠가 굴드도 말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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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꿈꾸는 나라 지혜의 시대
노회찬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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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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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에서 또 만나요.

 

우리에게 다음 생이란 없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그렇다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다음 생이 또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만나는 세상이 더 정의롭고, 더 평화로운 곳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온전하게 자기 자신에게 행복한 삶을 살아도 되면 좋겠습니다.

회찬이 형, 늘 형으로 여겼지만 단 한 번도 형이라고 불러보지는 못 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불러볼게요

 

! 다음 생에는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나세요.

더 자주 더 멋지게, 첼로를 켜고,

더 아름다운 글을 더 많이 쓰고

김지선님을 또 만나서 더 크고 더 깊은 사랑을 나누세요

그리고 가끔씩은 물 맑은 호수로 저와 단둘이 낚시를 가기로 해요.

 

회찬이 형.

완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어서 형을 좋아했어요.

 

다음 생은 저도 더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때는, 만나는 첫 순간부터 형이라고 할게요.

 

잘 가요, 회찬이 형.

아시죠? 형과 함께한 모든 시간이 좋았다는 것을요.

                          - 유시민 추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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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덧 세 달이 다 되어가는구나. 아빠가 정말 좋아했던 정치인이라서 그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뉴스를 접하고 얼마나 가슴이 아파했는지 몰라. 집에 와서 유투브로 그의 영상을 보니 눈물이 절로 나왔단다.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청렴한 분을 세상을 등지게 만들 수 밖에 없을까. 너무 억울한 죽음이 아닐 수 없구나. 9년 전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세상을 등지셨을 때의 생각도 떠올라 또 가슴 아팠으며, 왜 이런 일이 반복되어야만 하는가, 개탄했단다.

세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의 부재는 믿기지 않고, 팟캐스트나 라디오, TV 토론에 불쑥 나와서 촌철살인의 입담을 보여줄 것 같더구나. 노회찬님이 세상을 등지고 많은 분들이 애통해 하셨는데, 유시민님 또한 많이 마음 아파하셨을 거야. 유시민님이 추도사를 읽는 장면을 보았을 때 아빠도 같이 울었는데, 이 책의 시작을 유시민님이 쓰신 추도사로 시작하더구나. 그 글을 읽고 또 눈시울이 붉어졌어.

 

 

1.

이 책은 창비에서 <지혜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기획한 강연을 책으로 엮은 것이란다. 지난 2월 노회찬님이 새로운 대한민국에서 더 새로운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어. 노회찬님이 워낙 말씀을 재미있게 잘 해주시다 보니, 책을 읽고 있으면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어. 그것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내용으로 말이야.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들은 촛불이 세상을 바꾼 시대를 살고 있는 촛불세대라고 부를 수도 있어.

촛불로 만든 새로운 대한민국. 하지만 그 동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던 대한민국은 하루 아침에 정상국가가 될 수는 없단다. 아직도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이야. 노회찬님은 우리나라가 가야 할 길을 평등, 공정, 평화.. 이렇게 세가지로 보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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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0)

지금은 촛불 이후 시대입니다. 촛불이 세상을 바꾸었고, 촛불이 변화의 첫 단추를 끼워놓은 상황이지요. 그래서 촛불의 과제는 무엇일까요? 무엇을 해야 촛불의 정신이 구현되고, 역사적으로 비약적 발전을 이룰 새로운 시대를 만들 수 있을까요? 앞서 이야기한 것들을 바탕으로 저는 촛불시대의 과제를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바로 불평등을 평등으로, 불공정으로 공정으로,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평화의 정착으로, 이 세가지가 우리에게 떨어진 시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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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세 가지 주제에 대해서 하나씩 설명을 주셨고,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할지 길을 제시해주셨단다. 물론 국회, 정부에서도 새로운 대한민국 만들기에 노력을 해야겠지. 그러나 그런 국회와 정부를 제대로 된 길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로 국민이란다. 국민들이 나랏일에 무관심하면 엉뚱한 사람들이 권력을 차지해서 나라를 다시 엉망으로 만들어 놓을지도 모른단다. 그러니까 이 나라의 주체는 바로 국민이 되어야 하는 거야. 참여하는 시민이 되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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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누가 결정해야 합니까? 국민이 결정해야 합니다. 일하는 사람도 국민이고, 세금을 내는 사람도 국민이고, 나누는 주체도 국민이라면, 우리나라 복지를 어느 수준으로 하고 어떻게 나눌지는 국민이 결정해야 합니다. 다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지요. 28퍼센트에 머물 것인가, 매년 1퍼센트씩 높여서 10년 후 38퍼센트로 나아갈 것인가. 우리는 이런 문제를 스스로 결정한 적이 없습니다. 어떤 대통령 후보가 28퍼센트를 유지하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28퍼센트가 유지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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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님은 좀더 적극적인 참여를 이야기하더구나. 정당에 가입하라는 것이야. 아빠도 몇 년 전부터 원외정당이긴 하지만 정당에 가입했어. 노회찬님이 몸담고 있던 정의당이 아니었지만, 아빠는 늘 정의당을 응원했단다. 우리나라는 1 1당제도 때문에 정의당 가입을 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지만, 원내정당에서 중에서는 늘 정의당을 지지하고 있단다. 정의당이 제 1 야당이 되고, 야당을 넘어 집권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길 정말 진심으로 바란단다. 그렇게 되려면 선거제도가 확 바꾸어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구나. 하지만 이것도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다면 바꿀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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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11)

그렇다면 가장 역동적이며 직접적인 참여는 무엇일까요? 정당에 가입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정당에 가입하는 사람을 권력지향적이거나 권력에 매수당한 사람으로 오인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실제로 과거에는 그렇기도 했습니다만, 지금은 다릅니다. 달라지기 시작했지요. 어느 당이 좋을지 고민이라면, 일단 지금 가장 자신과 뜻이 맞는 곳에 가입하십시오. 정당에 가입해서 당비를 내고 당원 투표에도 참여하면서 다른 당도 바라보면 됩니다. 그러다 다른 당이 더 낫겠다 싶으면 옮겨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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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노회찬님의 강연 마지막 문장을 읽는데 자꾸 뭉클해지는구나. 이것이 저의 꿈이기에 앞으로도 계속하겠다는 말씀. 그 약속을 지키셨어야죠. 지지자들의 마음을 조금만 더 헤아려 주시지 않고요노회찬님이 멈춘 그 자리에서 더 많은 노회찬들이 노회찬님의 뜻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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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138)

인생은 그리 길지 않고, 한가지 일만 하기에도 짧습니다. 그렇기에 한가지라도 제대로 해낸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클 것입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떤 직업이든 심혈을 기울여서 일하고 가치를 창출한다면, 세상에서 내리는 평가 이상의 거룩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더 훌륭하고 좋은 일들이 많지요. 하지만 직업에 귀천이 없듯이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다른 일을 할 생각과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일로써 우리나라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저의 꿈이기에 앞으로도 계속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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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우주이론이란 것이 있단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와 같은 우주가 무수히 많다고 말이야. 우주 어디선가에서는 정의로운 세상이 있어 그곳에서는 미소 가득한 모습으로 지내고 계셨으면 좋겠구나. 또는 유시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다음 생이 있어 그곳에서는 행복한 자신의 삶을 사셨으면 좋겠구나.

 

 

3.

노회찬님을 세상 끝으로 내몰았던 드루킹이라는 작자는 얼마 전에, 노회찬에 5,000만원 지급했다고 말한 것은 특검의 회유에 의한 거짓 자백이라고 이야기했어. 지금 와서 그렇게 이야기한들 노회찬님이 다시 돌아올 수도 없지만, 그 드루킹이라는 자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회유를 한 특검 나리를 깜방에 쳐넣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구나. 그에게는 용서를 빌 기회도 주고 싶지 않는 분노가 치밀러 올라오는구나.

 

PS:

책의 첫 문장 : ‘지혜의 시대특강에서 여러분을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책의 끝 문장 : 이것이 저의 꿈이기에 앞으로도 계속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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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틈에 2018-11-01 2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어야지 하면서 아직 못읽고 있네요...

bookholic 2018-11-04 13:52   좋아요 0 | URL
네, 세상틈에님도 즐독하세요... 노회찬님과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영웅문‘ 김용 타계..무협소설 대가 쓰러지다
https://news.v.daum.net/v/20181030235400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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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10-31 2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작가분인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bookholic 2018-11-01 13:43   좋아요 1 | URL
어제는 김용님 때문에 다들 옛날을 회상했을 것 같아요.. 즐거운 11월 되십시오~~
 
대논쟁! 철학 배틀
하타케야마 소우 지음, 이와모토 다쓰로 그림, 김경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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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에게 철학이란 다가가고 싶지만, 받아주지 않는 영역이란다. 철학이란 무엇일까? 아빠가 생각하는 철학이란, 사람에 과한 어떤 질문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것 정도로 이해하고 있어. 이 책은 철학이 무엇인지 간단히 정의 내리고 시작한단다. 어떤 주장에 대한 근거를 생각하고 가치를 판단하는 일그리고왜 그럴까?’라는 묻는 대화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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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마디로 철학이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어떤 주장에 대한 근거를 생각하거나 가치를 판단하고 음미하는 작업입니다. 가치나 본질에 대해왜 그럴까?’를 묻는대화입니다. 아주 쉽지 않나요? 철학은 바로 음미와 대화라는 행위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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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사회는 타인과 대화를 많이 하곤 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철학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어. 이 책의 지은이는 일본의 유명한 학원 강사라고 하는구나. 대학에서는 철학을 전공하고 학원에서 윤리와 정치경제 담당을 하고 있대. 유명한 학원 강사이니 말을 재미있게 잘 하겠지? 그런 실력을 바탕으로 이 책을 쓰지 않았나 싶구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다른 사람과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대화하는 것도 철학이라고 했잖아. 즉 토론도 그런 것에 해당해. 이 책은 역사 속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가상 토론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단다. 주제는 모두 15가지이고, 각각의 주제는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주제들이야. 그래서 각 철학자들은 논리적인 의견으로 각 주제에 대해 찬반으로 나뉘어 토론을 하게 된단다. 물론 소환된 철학자들은 그들이 생전에 주장했던 사상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야.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책 속의 토론을 보면서 각각의 철학자들이 어떤 주장들을 해왔는지 알게 된단다. 그래서 뒤로 갈수록 앞서 나왔던 철학자들이 다시 등장하게 되면 그 철학자는 어떻게 이야기할 것 같다고 예상도 할 수 있게 된단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면 관심이 가는 철학자가 생길 수도 있지. 그러면 그 철학자에 좀더 깊게 읽고 싶다면, 그 철학자가 쓴 책들이나 그 철학자에 관한 책들을 읽어보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구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책에는 15개의 질문을 던지고, 상반된 두 개의 그룹의 철학자들의 토론을 하는 거야. 이쪽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쪽 사람 이야기가 맞는 것 같고, 저쪽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쪽 사람 이야기가 맞는 것 같더구나. 그리고 각 토론을 읽기 전에 그 질문에 대해 아빠도 생각해 본단다. 아빠는 그 질문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이야. 그리고 토론을 읽어본 다음에 아빠의 생각이 바뀐 경우가 있었을까? 없더구나. 아빠도 이제 나이를 먹어 생각의 유연성이 없어진 것인지, 오랜 시간 만들어진 생각이 잘 바뀌어지지 않는 나이가 된 것인지그렇지만, 상대방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다를 뿐이라는 것은 아빠도 잘 알고 있어그럼, 됐지..

 

1.

그럼, 이 책에서 던진 15개의 질문 중에서 몇몇을 뽑아서 같이 이야기해보자꾸나. 15개를 모두 이야기했으면 좋겠지만,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구나. 그래서 몇 개만 이야기 해보자꾸나. 각각의 질문에 대해서 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아보고 말이야.

먼저 빈부의 격차에 대한 생각이야.. 빈부의 격차를 용인해야 하는가, 아니면 조절을 해서 격차를 줄여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야. 지구 상의 상위 20%의 사람들이 세계 부의 80%를 차지하고 있대. 우리나라도 신자유주의 경제의 영향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빈부의 격차가 커지고 있어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폴리스적 동물이라고 주장으로 했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서 다르게 배분되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했어. 애덤 스미스도 비슷한 입장을 보였는데, 그는 보이지 않는 손을 주장하면서 정부의 개입을 반대했던 사람이란다. 즉 개인적인 격차는 인정을 했고, 그런 개인들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전체 이익이 된다고 주장했어. 아리스토텔레스와 애덤 스미스와 달리, 마르크스와 롤스는 빈부의 격차는 강제로라도 조절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마르크스는 빈부의 격차가 차이 나는 이유는 자본가가 노동자의 잉여가치를 수탈하기 때문이라고 했어. 그래서 빈부의 격차의 원인인 자본주주의가 붕괴되고 공산주의가 생겨나야 한다고 주장했어. 존 롤스라는 사람은무지의 베일이라는 말을 만들어냈어. 무지의 베일은 자연적, 사회적 환경을 배제하고 보는 관점으로 공정함을 정의하는 것인데, 그가 이야기하는 공정함은정치적 평등, 사회 경제적 평동을 주장했는데,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불평등한 사회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올바른 경쟁을 할 수 없다고 했단다. 그래서 빈부의 격차는 사회 문제로 보고 접근해야 한다고 했어. 아빠는 어느 정도 사람에 따른 빈부의 격차가 생길 수 있지만, 극심한 빈부의 격차는 조절을 해야 한다는 생각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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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제는 살인은 절대악인가라는 질문이야. 당연히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살인도 있다면 반론을 하는 이도 있단다. 제레미 반담과 모리 오가이가가 그런 사람들이야. 옛날에 미뇨네트 호 사건이 있었대. 미뇨네트 호라는 배에서 조난을 당한 다섯 명이 있었는데, 그 중에 네 명이 한 명을 죽이고 그 시체를 먹으면 살아남아서 결국 구조되어 귀환한 사건이었대. 그렇게 한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면 모두 죽었을 것이라서 했어. 그렇다면 그들의 살인은 정당한가? 아빠는 그 엽기적인 사건을 보고 있을 수 없는 죄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제레미 벤담은 사회 전체의 쾌락을 중심으로 봤단다. 그가 주장한 유명한 것 중에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란 것이 있단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희생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어. 그러니까 미뇨네트 호 사건도 그냥 있었으면 다섯 명 모두 죽었고, 한 명이 희생하면서 네 명이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 살인을 최대 다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주장했어. 그에 반해 칸트는 인간의 존엄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어. 그래서 그 어떤 살인도 용납할 수 없다고 했어.. 살인 그 자체가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야. 살인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정언명령이라고 했어. 정언명령이란 어떤 이유도 붙일 수 없는 절대적인 명령이라는 뜻이야. 이런 명령을 따르는 것은 의무의 윤리하고 했어. 루스라는 사람도 비슷한 주장을 했는데, 인간은 자기애와 연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살인은 안 된다고 했어. 여기서 연민이란 타자를 향한 자기애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를 이야기하는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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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아빠가 일본 소설 <고백>을 읽었잖아. 그 소설에서 다루었던 내용 중에 하나가 소년법이라는 것이었어. 어린 아이들의 범죄에 대해서 용서를 해주는 것이야. 이것은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여러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인데, 그 찬반 논란은 여전한데, 이 책에서도 그 주제를 다뤘단다. 어린 아이들의 범죄로 마찬가지로 엄벌을 주어야 한다는 의견과 지금처럼 소년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토론을 했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엄벌을 주장하면서, 손해를 입게 되면 나이를 불문하고 그만큼 손해를 안겨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어. 형벌로 사회를 조정하고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존 스튜어트 밀은 양심의 가책이라는 내적 제재가 사회 질서 유지에 중요하다고 했어. 형벌도 결국은 인간을 교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년법으로 조절해야 하는 거야. 공자는 소년의 죄는 소년 자신 뿐만 아니라 가정, 사회, 정치에 문제가 있다고 보았어. 그렇게 때문에 어린 아이들의 죄는 엄벌을 주면 안 된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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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설과 성악설아빠가 어렸을 때 맹자는 성선설,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했다고 외우곤 했어. 성선설은 착하게 태어나는 것이고, 성악설은 악하게 태어나서 나중에 착함을 배우게 된다고 것이야. 아기의 모습에서 악함을 본 순자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아빠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단다. 순자는 인간은 교육에 의해 선행을 하는 것이지, 순자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서양의 철학자가 있었어. 토머스 홉스는 자기 보존을 전제로 하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며, 사회 정치는 상호 투쟁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했단다. 이와 반하여, 맹자는 인간은 태어나면서 사랑을 갖고 태어난다고 했어. 그래서 불행은 못 본 체 할 수 없다고 했어. 루소는 인간의 본성이 선해서 서로 도우면서 사회를 존속해 왔다면서 맹자와 비슷한 주장을 했단다. 아빠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린 아이들에게서 악을 찾아낼 수 없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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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절대악인가? 라는 주제를 이야기했는데, 여기에 절대악이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전쟁이 있다고 하는 철학자들도 있어. 앞서 살인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도 나왔던 제레미 벤담이 나올 줄 알았어. 그가 주장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살인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듯이 어쩔 수 없는 전쟁도 있을 수 있다고 주장을 했어. 책상머리에 앉아서 참 편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안에 이런 그의 생각들이 있었다니, 놀랍더구나. 아빠는 지금까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고 해서 적절한 분배와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서 살인과 전쟁이라는 수단도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이 들어있다니 말이야홉스라는 사람은 좀 다른 이유를 전쟁이 있을 수 있다고 했어. 자연권, 즉 자기 보존을 위한 전쟁은 용인할 수 있다는 것이었어. 살인에 관한 토론에서 어떠한 이유를 들어서라도 살인은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한 칸트와 루소는 비슷한 이유로 어떠한 전쟁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단다. 그래, 넓게 보면 전쟁도 살인행위에 포함되는 것이니까 말이야.

신은 존재하는가? 이 토론에서는 신이 죽었다고 주장한 니체의 등장할 것을 누구나 의심치 않았을 거야.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학자였으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기독교의 가치가 허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생각의 끝에 신은 죽었다고 이야기를 하였단다. 그리고 신에 의지하지 말아야 인간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이야기했대. 그리고 루트비히 포이어 바흐라는 사람은 헤겔의 제자였으나, 헤겔과 결별을 하게 된 이후 유물론을 주장하면서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고 하는구나. 이와 반대로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는 근원적 존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신의 존재를 믿는 이가 있었으니, 종교개혁으로 유명한 칼뱅이라는 사람이었단다. 그리고 야스퍼스라는 사람은, 인간이 한계상황에 다다르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신을 찾게 되는 것을 보고 신은 있다고 주장하였다고 하는구나. 과연 신이 있을까?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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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로 몇 가지 토론 주제에 대해서 알아보았단다. 이 책에는 15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했지만, 토론 주제는 찾으라고 하면 더 많은 토론 거리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 주제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도 있고 말이야. 아빠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너희들과도 어떤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요즘 너희들이 빠져 있는 어벤져스의 주인공들에 관한 토론도 좋을 것 같고..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에 대한 토론도 좋을 것 같고.. 우리나라는 학교 교육 과정에서 토론 문화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빠가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 보면 어떤 회의를 하더라도 한 명이 앞에 나와서 회의를 진행한 게 전부였던 것 같거든토론식의 회의 진행을 해보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은데 말이야

 

 

PS:

책의 첫 문장 : 에헴, 난 의장을 맡은 소크라테스라고 하네.

책의 끝 문장 : 지혜를 사랑하는 분들, 아무쪼록 행복한 삶을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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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

코니는 귀 기울여 들으면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나도 뭔가를 주고 싶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러나 내게는 그것이 허용이 안 돼요. 지금은 모든 것을 돈으로 사고팔아요. 당신이 말한 그 모든 것 또한, 랙비와 시플리가 사람들에게 상당한 이익을 나미고 팔고 있는 거지요. 모든 것은 돈을 주고 사야 해요. 당신은 심장 박동 한 번만큼도 진정한 공감을 나눠 주지 않아요. 그리고 게다가 누가 그들에게서 자연스러운 삶과 인간다움을 빼앗아 저리고 이 끔찍한 산업의 현실을 준 거죠? 누가 그런 짓을 했나요?”

(371)

그리고 잘못 생각하지 마오. 당신이 말하는 그 사람이라는 말의 의미에서 보면 그들은 사람이 아니오. 그들은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고 앞으로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동물이오.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의 착각을 강요하지 마오. 대중은 언제나 똑같았고 앞으로도 항상 똑같을 거요. 네로의 노예들은 우리 광부들이나 포드 자동차 공장의 노동자들과 거의 다를 바가 없었소. 내 말은 네로의 광산 노예들과 들에서 일한 노예들 말이오. 그것이 하층 대중이오. 그들은 절대 바뀌지 않소. 간혹 어떤 개인이 하층 대중에서 벗어날 수 있소. 그러나 그걸헤 개인들이 벗어난다 해도 대중을 바꾸지는 못하오. 대중은 변할 수 없소. 그것이 사회학의 가장 중요한 사실 중 하나요. <빵과 오락>! 오로지 오늘날에만 교육이 오락을 대신하는 나쁜 대체물 중 하나가 되었소. 오늘날 잘못된 것은 바로 우리가 빵과 오락이라는 프로그램 중에서 오락 부분을 완전히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약간의 교육으로 하층 대중에게 해로운 독을 주입했다는 거요.”

(393)

당신 같은 사람이 지배한다고요?”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지배하지 않아요. 우쭐대지 마요. 당신은 그저 당신이 받을 몫보다 더 많은 돈을 가졌을 뿐이고, 주급 2파운드를 주면서 당신을 위해 일하게 만들고 그렇지 않으면 굶어 죽을 거라고 사람들을 협박하는 거죠. 지배한다고요! 그 지배로 당신은 무엇을 해주고 있나요? 아니, 당신은 메말랐어요! 당신은 유대인이나 악덕업자처럼 당신 돈을 가지고 횡포를 부릴 뿐이예요!”

(445-446)

여러분 자신의 모습을 보십시오! 돈만을 위해 일하고 잇는 자신들의 모습을! 여러분 자신들의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돈만을 위해 일하고 있는 자신들의 소리를. 여러분은 돈을 위해 일해 왔습니다! 테버셜을 보십시오! 그것은 흉측합니다. 바로 여러분이 돈을 위해 일하는 동안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여자를 보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 자신에게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돈을 위해 일하고 돈에만 신경을 쓰면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고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며 여자와 잘 지내지도 못합니다. 여러분은 살아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보십시오!

(447)

인간 세상이 파멸할 운명이고, 그 자체의 비열한 야만성에 의해 스스로 파멸할 운명이 되었다고 느꼈을 때, 그럴 때면 식민지들도 안전하게 도망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소. 달조차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을 거요. 그곳에서도 뒤를 돌아보면 온갖 별들 가운데 지저분하고 짐승 같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지구가 보일 테니까 말이오. 인간들에 의해 더렵혀진 지구가 말이오. 그러면 난 쓸개를 삼켜서 그것이 내 속을 갉아먹고 있으며 안전하게 도망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멀리 떨어진 곳이 어디에도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드오. 그러나 기분이 바뀌면 난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리오. 지난 백 년 동안 인간들에게 일어난 일들은 정말 수치스럽기 짝이 없소. 남자들은 오로지 일벌레로 바뀌었고, 남자다움과 진짜 삶을 모두 빼앗겨 버렸소. 난 지상에서 다시 기계들을 다 쓸어내 버리고 산업 시대를 완전히 끝내고 싶소. 끔찍한 실수를 끝내는 것처럼 말이오. 그러나 그렇게 할 수가 없고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난 나만의 평화를 유지하면서 나 자신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게 나을 것 같소. 내가 살아야 할 삶이 있다면 말이오. 그게 있을지 의심스럽긴 하지만 말이오.”

(477)

육체의 삶이라.” 그가 말했다. “그건 동물의 삶일 뿐이오.”

그렇다면 그것이 지성만 발달하고 몸은 죽은 시체의 삶보다 더 나아요. 그리고 당신 말은 맞지 않아요! 인간의 육체는 이제야 겨우 진정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어요. 육체는 그리스인들에게 아름다운 불꽃을 한 번 깜빡여 주었지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것을 꺼버렸고 예수가 완전히 끝장을 내버렸죠. 하지만 이제 육체가 진정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고, 정말로 무덤에서 다시 일어나고 있어요. 그리고 아름다운 우주 속에서 아름다운, 정말로 아름다운 삶으로 피어날 거예요. 인간의 육체적 삶이 말이에요.”

(479)

그런가요? 그런데 남자들은 다 똑같아요. 그저 아기들이나 마찬가지예요. 칭찬해 주고 얼러 주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면 돼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마님?”

(614)

그러나 물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유는 당신과 내가 함께 살기 위한 것이오. 사실 난 무섭소. 악마가 허공에 도사리고 있는 게 느껴지고, 그 악마가 우리를 덮치려고 할 거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악마라기보다 맘몬(부와 탐욕의 신)이오. 난 그것이 결국 사람들의 집단 의지, 즉 돈을 원하고 삶을 증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오. 어쨌든, 커다랗고 하얀 두 손이 허공에서 사방을 더듬으며 살려고 애쓰는 사람을, 돈을 초월해서 살려고 애쓰는 사람의 목을 비틀어서 목숨을 끊어 놓으려고 하는 것이 느껴진다오. 어려운 시간이 다가오고 있소. 힘든 시간이 다가오고 있소. , 정말로 고난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소! 세상이 지금처럼 계속 돌아간다면 미래에는 이 산업 대중에게 죽음과 파괴만 있을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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