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김명남 엮고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많은 애서가들의 반응이 뜨거웠단다. 드디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책이 출간되었다고 말이야. 그리고 김명남이 번역을 했다면서 기대된다는 반응들이었어. 하나 둘 읽은 이들이 올린 평점들은 별 다섯 개가 기본이었어. 아빠는 처음 보는 작가인데 꽤 유명한 작가인가보다 했어. 그래서 검색해봤더니 우리나라에서는 이번이 두 번째 출간된 책인 것 같았어. 첫 번째 출간된 책도 제법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이고 말이야. 그런데도 많은 애서가들의 사랑을 받다니, 꽤 유명한 사람이고 그의 책 또한 꽤 재미있을 것이란 생각을 가졌어. 그래서 이 책을 읽었단다.

지은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더구나. 미국 사람인데 1962년에 태어나서 2008 46세 젊은 나이에 죽었다고 하는구나. 이십 대부터 우울증을 앓아와서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가지 치료를 많이 받고, 치료에 효과가 없어서인지 술, 마약 등에도 빠지고 나중에는 항우울제 부작용으로 그만 죽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힘든 삶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글 쓰는 일은 계속했다고 해. 죽기 직전까지 소설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내놓은 책들은 미국에서 문제작으로 거론되며 많은 이슈를 받았대.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작가이고, 그의 소설들은 가볍게 읽기는 쉽지 않은 책들이라고 하는구나. 이 책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책은 <이것은 물이다>가 전부인데, 이것도 소설은 아니고 캐니언 대학 졸업 축사를 바탕으로 한 에세이라고 하는구나. 이번에 출간된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이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책은, 그의 여러 산문집들 중에서 옮긴이 김명남님이 골라 엮어서 묶은 책이란다. 그의 유명한 산문들을 한 권의 책에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되지만, 사실 아빠는 이런 편집은 별로야. 번역본의 경우 원래 지은이가 출간한 그대로를 번역 출간해야 한다고 생각해. 누군가에 의해서 골라서 새로 엮은 스타일은 별로 안 좋아한단다. 누군가에 의해 선택되지 않은 작품들 중에는 아빠가 좋아할 수도 있는 작품들이 있을 수 있잖아. 그냥 시간이 좀 들어도, 사람들이 좀 적게 찾더라도 원전 그대로 번역해서 출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1.

이 책에는 총 아홉 개의 길고 짧은 에세이가 나온단다. 그 중에 첫 번째 글이 책의 제목으로 따온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이란다. 지은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잡지사로부터 지원을 받고 호화 크루즈를 타고 쓴 기행문이라고 볼 수 있어. , 뭐랄까아주 길게 쓴 크루즈 솔직 후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크루즈의 이름은 네이디어 호였어. 배에 관한 이야기, 배의 직원들에 관한 이야기, 같이 승선한 손님들의 이야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솔직 후기이다 보니, 흠이 있으면 흠이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어. 그리고 과도한 친절, 프로페셔날한 미소에 대한 비판도 했어. 그들의 과도한 서비스가 오히려 불편했다고 말이지아무튼 일주일 간의 크루즈 여행을 하면서 150페이지가 넘는 기행문을 쏟아낼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그의 필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구나.

이 책에 실린 에세이 중에는 책의 서평들도 실려 있었어. <현대 미국 영어 어법 사전>이라는 사전에 대한 서평도 실렸는데, 영어 어법 사전에 대한 서평이니 한국사람인 아빠가 읽기 얼마나 어려웠겠니이 서평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 중에 하나가 문법 파괴에 대한 비난이란다. 우리나라에서 문법 파괴에 대해 심심치 않게 문제 삼는 경우가 있어. 말이라는 것이 세대에 따라 변하고 새로운 말이 등장하는 것은 아빠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너무 엄격한 잣대의 문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좀 반댈세.

그리고 조지프 프랭크라는 사람이 쓴 도스토옙스키 전기에 관한 책의 서평도 있었어. 아빠가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많이 읽지 않았지만, 읽은 책들로 인해 강한 인상을 받아서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하는 작가 쪽으로 생각하고 있단다. 그래서 이 에세이를 좀 관심 있게 봤단다. 아빠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었을 때 책 뒷편에 도스토옙스키의 삶에 대해 간략하게 나온 것을 보고 살인 선고를 받았다가 극적으로 살아났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의 삶에 전반적인 것은 모르고 있었거든. 그래서 이 서평을 읽다 보니, 도스토옙스키의 전기에 대해 읽어보고 싶더구나. 이 책에서 소개된 조지프 프랭크의 도스토옙스키 전기는 안타깝게도 출간되지 않은 것 같더구나. 다른 전기라도 한번 볼까? 갑자기 무척 궁금해지네. 지은이가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쓴 이유는 지은이 또한 도스토엡스키를 무척 뛰어난 작가로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지은이가 생각하는 도스토엡스키 소설의 위대함을 잠시 읽어보렴.

=======================================

(352)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그리고 이 점은 틀림없이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어떤 예술은 온갖 장애물을 넘는 추가의 노력을 들이고서라도 감상할 가치가 있으며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단연코 그런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는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도스토옙스키가 서구 고전문학을 압도하는 거물이라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고전과 필수 교과로 추앙됨으로써 오히려 가려지는 사실이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도스토옙스키가 위대할뿐더러 재미있는 작가라는 사실이다. 그의 소설에는 거의 늘 좋은 플롯이 있다. 강렬하고 복잡하고 철저하게 극적인 플롯이 있다. 살인과 살인 미수와 경찰과 문제 있는 집안의 반목과 스파이가 나오고, 터프 가이와 아름답고 타락한 여인과 간지러운 사기꾼과 소모성 질환과 뜻밖의 유산과 반드르르한 악당과 흉계와 창녀가 나온다.

=======================================

또 하나의 후기. 어떤 지방의 랍스터 축제 후기. 이번에도 솔직 후기. 랍스터 축제를 다녀오면서 랍스터의 맛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랍스터의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단다. 인간들의 쾌락을 위해서 동물들이 하루에 몇 톤씩 희생되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냐우리나라에도 많은 먹거리 축제가 있는데, 랍스터 축제가 주제여서 그런지 대게 축제나 대하 축제가 떠오르긴 하더구나. 그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되면 뭐든 하는 것이 뭐 먹거리 축제뿐이겠냐. 이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된 것이 있는데, 예전에는 랍스터가 혐오음식이었다는 사실이야. 오호.. 대박

=======================================

(309)

랍스터는 그 자체로도 먹기 좋다. 적어도 요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1880년대까지만 해도 랍스터는 말 그대로 하층 계급의 음식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이나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만 먹었다. 초기 미국의 감옥 환경이 가혹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식민지는 수감자들에게 랍스터를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먹이는 것을 법으로 금했는데, 왜나하면 그것은 꼭 사람에게 쥐를 먹이는 것처럼 잔인하고 지난친 고문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랍스터의 비천한 지위는 옛 뉴잉글랜드에 랍스터가 엄청나게 많았던 것이 한 가지 이유였다.

=======================================

아빠가 테니스를 보는 것이든, 하는 것이든 좋아하는 편은 아니란다. 하지만 스위스의 천재 테니스 선수 페더러는 알고 있어. 오랫동안 테니스의 황제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지. 그리고 올 초에는 메이저대회 4강에서 우리나라의 정현 선수와 맞붙기도 한 테니스 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야. 어느덧 그의 나이 삼십 대 후반이지만, 여전히 많은 우승 트로피는 그의 것이란다. 테니스를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 같아. 이 책에는 그에 대한 찬사로 도배된 에세이가 한편 실려 있단다. 그러나 그 찬사들은 모두가 인정하는 찬사란다. 그 글을 읽다 보면 지은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도 테니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았어. 마치 테니스 전문 기자나 해설의원이나 할 수 있는 말들을 쏟아내더구나.

아빠가 비록 테니스에는 관심이 없지만, 페더러라는 사람은 너무나 유명한 사람이다 보니 이 글이 쏙쏙 눈에 잘 들어오더구나. 그냥 명성만 익히 알던 페더러라는 사람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 수 있었어. 운동장뿐만 아니라 운동장 밖에서의 선행도 멋진 선수라는 것을 알았어. 코트의 신사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구나. 지은이가 페더러가 왜 그렇게 뛰어난 선수인지 엄청 길게 적었는데, 일부만 발췌해 보았단다.

=======================================

(384)

페더러의 서브 속도는 세계 정상급이고, 서브의 위치와 다양성은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서브를 넣는 움직임은 유연하고 딱히 별난 점은 없는데, (TV로 볼 경우) 특징이라면 공을 때리는 순간 온몸에 뱀장어처럼 스냅이 들어간다는 것 정도다. 페더러는 공을 예상하는 능력과 코트 감각이 비현실적인 수준이고, 발놀림은 이 게임의 역사상 최고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어릴 때 축구 신동이었다. 이 모든 말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중 어떤 말도 이 선수가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본 경험을, 그의 시합에 담긴 아름다움과 천재성을 직접 목격한 경험을 제대로 묘사하거나 환기시키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미학적인 것에는 비딱하게 접근하는 수밖에 없다. 에둘러 말하는 수밖에 없다. 혹은-아퀴나스가 자신의 형언할 수 없는 주제에 대해 그렇게 했듯이-그것이 무엇이 아닌가를 말함으로써 그것을 정의하는 수밖에 없다.

=======================================

 

 

2.

책을 덮고 제목을 다시 보았어. 분명 지은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다른 작가들과 다른 면이 있는 것은 확실해. 글을 씀에 있어 망설임이 없고, 자유분방을 느낄 수 있으며, 아주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문학적인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 다만 아빠의 스타일과는 맞지 않는 것 같구나.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평점 별 다섯 개의 리뷰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평점 별 세 개의 리뷰들에 공감이 가더라구. 그러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 이 책은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읽지 않을 책이라고 말이야.


(106)
호화 크루즈 여행에서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절망은 내가 무슨 수를 써도 나의 본질적이고 새삼 불쾌한 미국인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일부 비롯한다. 그리고 이 절망은 항구에서 절정에 달한다. 난간에 서서 내가 어쩔 수 없이 그 안에 속하는 사람들 무리를 내려다볼 때. 이 위에 있든 저 밑에 있든 나는 미국인 관광객이고, 따라서 그 정체성상 크고, 살찌고, 벌겋고, 시끄럽고, 거칠고, 오만하고, 자기 생각뿐이고, 응석꾸러기이고, 외모에 신경 쓰고, 창피해하고, 절망하고, 탐욕스럽다. 우리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알려진 솟과 육식동물이다.

(322~323)
이야기를 더 진행하기 전에 이 점부터 인정하고 넘어가자. 동물이 통증을 느낄 줄 아는가. 느낄 줄 안다면 어떤 방식으로 느끼는가, 우리가 그들을 먹기 위해서 그들에게 통증을 가하는 일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정당화되다면 어떤 이유로 되는가 하는 질문들은 극도로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들이다. 비교신경해부학은 문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통증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정신적 경험이므로, 우리는 자신 외에 다른 인간이나 다른 동물의 통증을 직접 알아볼 수 없다. 게다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인간도 통증을 경험하고 따라서 그도 통증을 겪지 않으려는 타당한 이해를 갖고 있다고 추론하도록 이끄는 원칙들은 본격적인 철학의-형이상학, 인식론, 가치 이론, 윤리학의-영역이다.

(366)
정보의 억압, 국가의 검열, 특히 그가 소중하게 여기고 글을 쓰고 싶어 했던 자신의 신념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경우가 많았던 계몽주의 이후 유럽 사상이 인기를 끄는 현실. 내가 도스토옙스키에게 정말로 놀랍고 감동적이라고 느끼는 점은 그가 천재였다는 것만이 아니다. 그는 용감하기도 했다. 그는 문학적 평판에 대한 걱정을 한시도 놓지 못했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은 굳게 믿되 세상에서는 인기 없는 신념을 세상에 퍼뜨리는 작업을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더구나 자신에게 불친절한 문화적 환경을 무시하는 방식이 아니라(요즘은 이런 방식을 "초월한다"거나 "전복한다"고 표현한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거명하면서 그것에 대항하고 그것에 관여하는 방식으로 해냈다.

(379)
이 윔블던 결승전에는 복수의 내러티브가, 왕 대 제왕 살해의 구도가, 극단적인 인물 대조가 갖춰져 있다. 이것은 남유럽의 열정적인 남성상과 북유럽의 섬세하고 임상적인 예술성의 대결이다. 디오니소스 대 아폴론이다. 식칼 대 메스다. 왼손잡이 대 오른손잡이다. 세계 이인자 대 일인자다. 나달은 현대적인 파워 베이스라인 게임을 최대한 밀어붙인 선수이고… 그 상대는 속도와 발놀림 못지않게 뛰어난 정확도와 다양성으로 이 현대적 게임을 또 다르게 바꿔놓은 인물이지만, 앞의 선수에게만큼은 유난히 맥을 못 추는, 혹은 기가 눌리는 선수다. 영국의 어느 스포츠 기자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면서 기자단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두 번이나. "이 시합은 전쟁이 될 거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ya7676 2018-11-15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주는 독서편지~독서가 편지가 된다는걸 첨 알았습니다. 멋지세요.

bookholic 2018-11-16 16:05   좋아요 1 | URL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40)

자클린느의 정수 너그럽고, 밝고, 재능 있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큰마음 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 저 깊숙한 곳의 어떤 감정들이 용인되지 않음을 어릴 때부터 알았고 그래서 그런 감정들을 미소 띤 얼굴로 감추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해맑은 웃음 뒤에는 사적이고, 역설적인 성격이 있었으며 그중 일부는 그녀조차 꿰뚫어볼 수 없는 불가사의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부분이 자클린느 자신을 통해 그리고 그녀의 삶에서 다양한 역할을 한 사람들의 통찰력과 관찰을 통해 조금씩 베일을 벗었다. 마치 용액 속의 사진처럼 차츰 하나의 모습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95-96)

플리스가 <첼로>에서 결국 연주는, 음악이라곤 배운 적도 없지만 아이의 머리맡에서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유모의 노래처럼 비과학적이고 구속이 없는 소리여야 한다고 했다. 첼리스트는 이러한 무위의 환영에 이르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단 하나의 악구에서도 무궁무진한 다양성을 창출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운지, 운궁, 뉘앙스를 생각하고 연습한다. 첼로는 피아노와 기타 많은 악기들과 달리 오른손과 왼손의 기능이 전혀 다르다. 마치 배를 쓰다듬으면서 머리를 문지르되 끊임없이 미묘한 변형이 이뤄지는 것과 비슷하다. 오른손은 소리를 내고, 왼손은 색을 입힌다. “연주를 할 때는 마치 맹인이 손과 손가락 끝으로 사물을 느끼듯이 오른손과 손가락 끝이 음악의 테두디를 훑고 지나간다고 상상하라고 플리스는 말한다. 이와 달리 왼손음악이 지시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도록 온전히 자유로워야 한다. 마치 살랑대는 미풍에도 흔들릴 만큼 기름을 매끈하게 바른, 교회 꼭대기의 바람개비처럼.”

(99-100)

자클린느는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것에 대해 자주 후회를 하지만, 첼로와 보낸 시간에 대해서는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첼로는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다는 것, 필요할 때마다 홀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 첼로는 나의 멋진 비밀이었다. 생명이 없는 대상이었지만 나는 첼로에게 나의 슬픔과 문제들을 모두 다 말하곤 했다. 그것은 내가 필요로 하고 원하는 건 뭐든 다 주었다. 첼로를 연주하는 일이 가장 좋았다. 연주를 할 때면 어떤 일이 일어나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첼로 연주를 통해 사람들을 대하는 법을 알 수는 없음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116)

지난 몇 주, 런던의 청중들은 전도가 유망한 다소 어린 솔리스트들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이들 가운데 지난밤 위그모어에서 첼로를 연주한 자클린느 뒤 프레 양은 열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어린 연주자라고 믿기 어려운 기량을 가졌기에 그녀의 공연 논평을 쓰면서 전도유망을 언급한다는 것이 모욕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123)

퍼시 케이터느는 <데일리 메일>에 이렇게 적었다.

현재 빛나는 첼리스트이며, 이제 곧 저명한 첼리스트가 될 것이라고 여겨지는 17세의 자클린느 뒤 프레는 지난 밤 로열 페스트벌 홀에서 엘가의 첼로 협주곡으로 성인데뷔무대를 치렀다. 그녀의 연주는 기교의 자유로운 구사에 나이에 비춰 감탄을 자아낼 만한, 감정의 성숙이 결합된 것이었다. 연주가 끝나자 지휘자가 루돌프 슈바르츠와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함께 연주한 동료들이 열렬한 갈채를 보냈다. 홀을 메운 관중들이 진심어린 마음으로 세 번이나 그녀를 무대를 불러냈다. 중후미의 요소들이 있고 분위기와 템포가 자주 바뀌는 엘가의 협주곡은 곡해석이 난해하다. 연한 푸른빛의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첼로를 연주하는 하얀 피부의 키가 훌쩍 큰 소녀는 29분 내내 신들린 듯한 모습이었다.

(133-134)

영재 아동을 둔 가족들은 부러움이 아니라 동정을 받을 만한데, 신동의 재능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인 탓이다. 비범한 재능은 가족의 활동과 우선순위에 영향을 미치며 시간, 에너지, 재력, 감정적 지원이라는 자원을 무리하게 쓰게 만든다. 교육자나 심리학자들은 신동이 한 가족의 평형에 미치는 영향은 정신적 혹은 신체적 장애아만큼이나 크다고 입을 모은다. 가족의 모든 구성원들은 명시적 혹은 묵시적으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아이는 자신의 운명을 따를 것이라는 전언을 듣는다.

(155)

그녀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 첼로는 도대체 만족이라곤 모르는 가혹한 공사감독이 되어버렸다. 헌신, 직관 그리고 타고난 재능이 그녀를 여기 멀리까지 데려왔고 더 멀리 나가기 위해서는 명료한 선택이, 일상의 삶을 넘어 완벽한 연주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필요해 보였다. 음악적 통찰력을 더욱 날카롭게 하려면 삶의 무게, 경험의 무게가 필요할 터였다. 하지만 과거에 그랬듯이 앞뒤 보지 않고 오로지 연주만 계속한다면 언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딜레마는 더 깊은 고립감을 안겨주었다. 조운 클루이드가 그녀를 이해해주었지만, 자클린느에게는 자기 세대의 누군가로부터의 지지가 필요했다. 그녀는 조지 데버넘에게 눈을 돌렸고, 그는 흔쾌히 그녀에게 지지를 보냈다.

(183-184)

자클린느는 첼로의 소리를 내장과 가슴에서 올라오는 뭔가 기본적이고 세속적인 것으로 묘사한 적이 있다. 첼로는 어떤 악기보다도 인간의 목소리와 흡사하다. 고음역의 소리는 통렬하고 애처로우며 반대쪽 음역의 끝에서 나는 소리는 심원하다.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중간 음역에서는 좀더 익숙하고 부드러운 바리톤 소리가 난다. 어떤 음역이든 소리, 모양, 나무의 온기 그리고 연주자가 실제로 껴안듯 연주하는 모습은 첼로를 가장 관능적인 악기로 만든다. 동시에 첼로와 활은 나무, , 장선, 금속으로 이루어졌을 뿐이며 여기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몸 전체를 사용해야 한다. 발은 굳건히 땅에 붙여 균형을 유지하고, 무릎으로는 악기를 흔들리지 않게 잡으며, 어깨에서 허리까지의 팔근육은 몇 시간이나 계속되는 활 켜기를 해야 하고, 강철 같은 손가락은 길게 잡아 늘여 두껍고 길며 20파운드가 넘기도 하는 압력이 필요한 줄들을 내리눌러야 한다. 연주회 끝부분에서 지판에 대한 얘기를 하기도 했던 카잘스는 첼리스트에게 요구되는 신체의 이용과 기민함을 나무를 자르면서 동시에 한 꾸러미의 바늘에 실을 꿰는 일에 비교했다.

(238)

자클린느는 말로 표현 못하는 것을 음악을 통해 웅변적으로 전달했다. 그녀와 바렌보임은 브람스의 F장조 소나타와 베토벤의 A장조 소나타를 연주했고 밤이 깊도록 연주를 계속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거나 다른 방으로 건너갔다. 수지 매콰이어는 이렇게 회상한다. “재키는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 않았고 기운도 별로 없었지만 다니엘은 회복 중이었을 텐데도 기력이 왕성한 것 같았어요물론 재키도 일단 연주를 시작하자, 완전히 몰입했지만요. 다니엘은 스타로서 재키를 동경했어요. 그 둘이 처음으로 함께 하는 연주를 듣는 것은 정말 기억에 남는 일이었지요. 음악을 통한 합일이라고나 할까요. 우리가 틀림없이 식사는 했을 텐데 그런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요. 단지 이 방에서, 나머지 우리들은 다른 걸 다 망각한 채, 연주에 빠진 그 둘을 바라봤다는 것만 기억납니다. 다니엘이 이 방을 나서면서 꼭 다시 그녀를 만날 거라고 한 말이 생각나네요.”

(318)

다발성경화증은 가장 초기 단계엔 진단조차 어려운 악마의 측면이 있다. 증상이 나타났다 돌연 사라지기도 하고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으며, 잠깐 나타났다가는 어느새 그랬냐는 듯 없어져서 쉽게 잊어버리기도 하며, 혹은 자클린느의 경우처럼 신경쇄약의 징후로 보이기도 한다. 그녀가 호주에 있을 때 좀처럼 피로가 사라지지 않고 가끔 오른쪽 눈에 사물이 두 개로 겹쳐 보여서 진찰을 받았을 때 의사는 사춘기 외상장애라고 일축하고, 긴장을 풀 수 있는 취미를 시작해보라고 했다.

(356-357)

다발성경화증은 뇌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신경섬위의 절연체와 척수를 침범하는, 중추신경계에 일어나는 만성적이고 점진적인 질병이다. 손상을 입은 곳은 신경섬유를 감싸는 수초가 두껍고 딱딱한 경화성상처 조각으로 대체되어, 뇌에서 근육과 장기로 전달되는 메시지들을 방해한다.

(386)

그녀에게는 사랑이 부족했지요. 그녀는 마치 스펀지처럼 사랑을 다 빨아들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받아도 충분하지가 않았지요. 그녀는 클 줄기가 딱 하나뿐인 강인한 식물로 자랐어요. 그런데 그 줄기가 잘려져 나간 겁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줄기가 잘리면 곁가지가 다시 자라기 시작하지요. 재키는 그렇지 않았어요. 마치 큰 줄기에서 줄곧 피가 흐르는 듯했습니다. 나는 그녀가 밖으로 나아갈 수 있게 날개를 펴도록 용기를 주려고 애썼어요. 나는 그녀가 삶은 계속된다는 것, 남들에게 줄 게 있다는 생각을 갖길 바랐습니다. – 소니아(물리치료사)

(446)

나는 그 놀라운 양면성을 지켜보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사랑스럽고 유쾌하고 아무 걱정 없는 소녀가, 계속해서 울어댈 이유가 있지만 그럼에도 항상 사랑스럽고 따뜻하며 잘 웃어대는 이 소녀가 있습니다. 반면에 우울해하는 모습을 본 건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 몇 년간 뿐이었으니까요. 그녀는 말하곤 했지요. ‘왜 내게 이런 병이 생긴 걸까?’ 처음에는 이렇게 대꾸하지요. ‘ 오 세셍에, 너무 두렵지?’ 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됩니다. 아무런 할 말이 없다는 것을요.

(450)

자클린느는 자신이 연주한 슈만의 협주곡 음반을 사랑했다. 어둡고 감상적인 그녀의 해석은 표현할 수 없는 것까지 표현했다. 슈만 협주곡의 연결된 세 악장은 정류해낸 순수의 감정이다. 졸라는 이를 절망의 관능이라 했다. 첫 악장은 갈망으로 채워지고, 두 번째 악장은 부드럽고 시적이다. 마지막을 향해 가면 이행부가 있고 그 뒤 오케스트라와 첼로가 함께, 마치 슈만이 자신의 삶이 저물어가는 걸 지켜보기라도 하듯, 조용히 향수에 젖은 연주를 시작한다. 엔딩은 강력하고, 폭발적인 마지막 작별인사로 우리 모두를 울게 한다. 그리고 우리를 위로한다.

아직도 음악은 흐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탕 2 - 열두 명이 사라진 밤, 김영탁 장편소설
김영탁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 그럼 거두절미하고 곰탕 2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소설의 재미를 잘 살려서 너희들에게 줄거리를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해해 주길 바래.

김화영.

그는 순간이동을 해서 경찰서와 부검장에 나타나서 시신을 확인하고, 이우환이 범인이란 것을 알게 되고 괴로워했어. 이우환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었잖아. 김화영은 다급한 마음에 순간이동을 아무 때나 시도 때도 없이 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모두 보게 되었고, 그의 이런 행각은 SNS에도 공개가 되어 유명해지게 되었어.

1권 마지막 부분에서 경찰서에서 신문을 받던 류정훈은 가짜 류정훈으로 밝혀졌잖아. 그래서 양창근은 다시 박종대를 불러왔어. 양창근과 강도영은 그들의 정체를 밝혀보려고 했고, 이제 거의 다 된 것 같았어. 그런데 윗선에서 갑자기 박종대를 풀어주라고 했어. 박종대는 그전에 미래의 대통령이 될 사람인 김주한에게 접근을 해서 친분을 쌓았고, 김주한은 박종대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고 조금씩 믿고 있었어. 김주한은 비록 지금은 지방선거에서 떨어졌지만, 자신이 모시는 국회의원에게 부탁을 해서 박종대를 꺼내줄 수 있었던 거야.

그런데 바로 그때 경찰서로 레이저총이 난사되었어. 경찰서 벽이 뚫리고 사람들이 다치고 난리가 아니었어. 그 중에 하나가 신문을 받던 류정훈의 얼굴을 정확하게 날렸단다. 그렇게 류정훈은 진실을 말하기 전에 죽고 말았어. 이것은 박종대가 사전에 시킨 일이야. 누구한테 시켰냐고? 바로 이순희한테 시켰던 것이야. 아빠는 이순희가 착한 아이로 크길 바랬지만, 이순희는 박종대의 포섭에 넘어갔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레이저 총을 이순희에게 전해준 것이야. 그리고 레이저 총으로 경찰서를 공격한 것이었단다. 이 습격으로 류정훈은 죽고 경찰서장은 오른팔을 잃는 중상을 입었단다. 그리고 박종대는 혐의 없이 풀려나게 되었단다.

 

1.

한편 이우환은 뉴스를 통해서 자신과 같이 배에 탔던 12명을 본의 아니게 죽인 것을 알고 괴로워했어. 심한 죄책감을 가졌지만, 이제 어쩔 수 없는 일. 그들의 몫까지 행복하게 살겠다고 다짐을 했어. 

양창근과 강도영은 박종대를 추적하여 물증을 찾으려고 했어. 그리고 최근에 부산지역으로 들어온 이우환도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어. 이우환에게 신분증 확인을 요청을 하자, 이우환은 걸릴 것을 우려하여 박종대에게 도망을 갔어. 박종대가 있는 영진 아파트에 갔다가 그곳에서 순희를 만났어. 그런데 왜 박종대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이순희를 포섭했을까? 그는 과거로 오기 전에 신문을 잔뜩 읽고 왔다고 했잖아. 그래서 이미 이순희가 악명높인 범죄인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왔던 거야. 그래서 이순희가 그렇게 무서운 일도 눈 깜박하지 않고 할 거라 생각했어.

.

김화영은 본격적으로 이우환을 쫓기 시작했어. 이우환을 쫓기 위해 순간이동도 서슴지 않았고, 레이저 총도 마구 쏘았단다. 그러다가 어디서 날아온 레이저총에 자신도 맞을 뻔했어. 뭐야! 레이저총이 또 있단 말이야

박종대 역시 레이저총을 쏘고 순간이동을 해서 난리를 핀 김화영의 존재를 알게 되었어. 김화영이 몰이꾼이라는 것도 알아봤어. 몰이꾼은 시간여행을 와서 미래를 돌아가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내는 사람이야. 보통 몰이꾼은 순간 이동의 능력은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레이저 총까지 가지고 있다니박종대도 놀랬어. 몰이꾼은 잔류자들의 적이기 때문에 그동안 몰이꾼이 나타나면 박종대가 처치했어. 1권에서 교실 바닥에 갑자기 나타났던, 배에 큰 반원 구멍이 뚫렸던 시신 기억나니? 그 시신도 몰이꾼이었는데, 박종대가 처치했던 것이거든. 그런데 이번에 나타난 몰이꾼은 순간이동에 레이저 총까지자신들보다 더 월등한 능력이 있는 거잖아. 그래서 박종대는 이순희에게도 순간이동의 능력을 주려고 했어. 그래야 동급이 되어 싸워볼 만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교실 바닥에 갑자기 나타났던, 배에 큰 반원 구멍이 뚫렸던 시신의 머릿속에서 꺼낸 칩을 훔쳐와서 이순희의 뇌에 넣는 수술을 했어. 수술은 성공적이었어. 이제 이순희도 순간 이동도 가능하고 레이저 총이 있었어. 다이다이라고 해야 하나.

 

 

2.

김화영도 이순희의 존재를 알게 되었어. , 이제 김화영과 이순희의 판타스틱한 대결을 벌인단다.. 순간이동을 하면서 레이저 총을 쏘아대는영화속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대결그러다가 어찌저찌하여 그들은 비 내리는 바닷가에서 이우환까지 포함하여 대결구도를 갖게 되었어. 이우환은 과거에 남겠다고 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화영에게 죽음을 당하기로 했어. 하지만, 순희는 이우환을 지키려고 했고, 그렇게 이우환을 지키려고 방어를 하다가 의도치 않게 김화영을 죽이게 되었어.

.

앞서 이순희와 김화영이 난동을 부리면서 싸우다가 영진아파트 403호에 레이저총으로 구멍이 나버렸거든. 그래서 경찰들이 대거 출동했어. 경찰들은 영진아파트 403호에서 놀랍게도 대형냉장고를 발견했고 그 대형냉장고 안에서 더 놀라운 시신들을 무더기로 발견했어. 그리고 그 403호에서 멍하니 있는 도축업자 한 명을 체포했어.

그 도축업자가 한 일은박종대가 잔류자의 얼굴을 바꿔주고 원래 얼굴의 주인을 죽이고 나서 그 주인으로부터 도깨비라고 부르는, (1권에서 이야기했었는데 생각나지?) 전직 성형외과의사가 장기 적출을 해내고, 남은 시신을 절단하는 일을 했던 사람이야. 그 실력이 뛰어나서 그들끼리는 그를 예술가로 불렀어. , 너무 잔인하구나

경찰서에 연행된 예술가는 이제 포기하고 모든 것을 실토하기로 했어. 그런데, 그 순간 부산에서 대형 사고가 일어났단다. 부산경찰청 옆에 고층빌딩이 있었는데 그 빌딩이 고목 쓰러지듯이 넘어져 버린 거야. 그렇게 넘어지면 부산경찰청을 덮쳐서 부산경찰청도 다 무너졌단다. 그런데 그곳에 무엇이 있었냐. 바로 과학수사센터가 있었고, 그곳에 모든 부산시민들의 지문이 있었단다. 과학수사센터가 무너지면서 부산시민들의 지문도 싹 사라져 버린 거야. .. 소설적 설정인가? 실제 그런가? 지문같이 중요한 정보를 다른 곳에 백업을 안 해두었을까? 아무래도 다른 곳에 백업을 해두었을 것 같은데 말이야. 아무튼 이 소설에서는 그렇게 설정을 했단다.

냄새가 나지? 이 일을 벌인 것은 박종대의 지령을 받은 이순희의 짓이야. 순간이동으로 부산경찰청 옆 고층빌딩의 기둥으로 이동하면서 레이저 총으로 쏘아댄 거야. 그렇게 레이저 총으로 미친 듯이 고층빌딩의 기둥을 쏘아대다가 그만 자신도 깔리게 되었고, 뒤늦게 순간이동을 했는데, 중상을 입은 채로 제어가 잘 안되어 바닷속으로 빠져들어갔어. 고층빌딩에는 순희의 신발만 있었어.

그렇게 고층빌딩이 쓰러지고 있던 순간, 양창근이 일하는 경찰서에는 불만 가득한 영진 아파트의 주민들이 와 있었어. 양창근이 영진 아파트 사람들이 모두 박종대, 류정훈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직감하고 영장을 발행하여 경찰서로 소환을 한 거야. 그리고 한 사람씩 지문 조회를 해보려고 했어. 그런데 그 순간에 부산경찰청이 무너지면서 지문조회는 할 수가 없었단다. 왜 박종대가 이순희에게 그런 짓을 시켰는지 알겠지? 지문이 사라진 부산사람들은 주민센터에 가서 다시 지문을 등록을 해야만 했어. 영진 아파트의 주민들도 마찬가지였어. 미래에서 온 그들은 이제 당당하게 지문을 등록할 수 있게 된 거야.

 

 

3.

이우환은 깊은 고민에 빠졌어. 미래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순희와 강희와 함께 살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신분 세탁즉 안면이식 수술을 해야 하잖아. 그는 한참 고민을 하다가 결국 하기로 했어. 그 대상은 바로 부산곰탕의 주인이자 이순희의 아버지이자, 이우환 자신의 할아버지인 이종인이었어. 이종인에게 미안함이 있었지만, 이우환은 이곳에서 이순희와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어. 수술에서 깨어난 이우환이종인으로 다시 태어난 이우환. 이우환이 깨어나자마자 들은 소식은 무너진 빌딩 속에서 순희가 깔렸다는 것이었어. 이우환은 종인까지 죽이면서 자신이 이곳에 있으려고 했던 이유가 사라진 것이야. 분개했어.

그는 이 일을 시킨 박종대를 찾아갔어. 칼을 들고 말이야. 그런데 그때는 한참 도깨비가 박종대의 안면을 바꾸는 수술을 하고 있던 참이었어. 박종대는 다시 한번 얼굴을 바꾸려고 했어. 누구의 얼굴이냐고? 김주한알지? 몇 년 뒤에 대통령이 되는 그 김주한. 박종대는 얼굴을 바꾸고 자신이 직접 대통령이 되려고 했던 거야. 분노한 이우환에게 보이는 게 없었어. 수술을 하고 있던 도깨비를 그 자리에서 죽었어. 그리고 반쯤 봉합이 끝난 박종대는 그대로 두었어. 마취가 깨어난 후 박종대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어. 반쯤 봉합된 흉측한 얼굴. 이우환의 짓이란 것을 알고 쫓아갔지만 이우환을 따라잡지는 못했지. 이우환은 후회를 했어. 그리고 다시 미래로 가기로 했어. 이곳에서는 상처만 남았지. 미래로 돌아가면서 미래의 식당주인의 심부름이었던 곰탕재료를 가지고 갔단다.

이우환이 떠나고…. 임신하고 있던 강희는 아이를 낳으려고 오토바이를 타고 병원에 가다가 넘어져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으려다 아이만 낳고 죽고 말았단다. 그 아이의 이름을 이우환, 알겠지? 그리고 바닷속에 빠졌던 순희는 다행히 해변으로 밀려왔어. 간신히 구조되고 나서 순희는 경찰서에 가서 자수를 했단다. 순희는 강희가 자신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알았어. 그래서인지 순희는 감옥에서 깊이 반성하고 모범적인 생활을 했어. 무기징역을 복역하고 있다가 칠십 후반이 되어서야 모범수로 출감할 수 있었단다.

 

 

4.

미래로 돌아온 이우환. 자신이 과거로 가기 전의 미래와는 다른 모습이었어. 오른쪽 팔을 잃었던 식당 사장은 두 팔이 온전히 있었어. 그리고 사장은 이우환을 알아보지 못했어. 당연하겠지. 미래로 돌아온 이우환은 이종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잖아. 그 식당 주인은 바로 경찰이었던 양창근이었어. 이우환이 과거로 돌아가기 전에 양창근은 오른팔이 없었다고 했잖아. 그 이유는 악명 높은 범죄자 이순희를 추격하다가 그에게 오른팔을 잃었던 거야. 이순희는 여전히 아수라라는 조직의 두목으로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어. 양창근은 경찰을 은퇴하고 부산곰탕의 곰탕 맛을 잊지 못하고 식당을 차렸던 거야.

그런데 과거로 돌아온 이후의 양창근의 오른팔이 멀쩡했던. 이순희가 공격을 받지 않았던 거야. 이우환이 과거로 돌아가서 곰탕재료만 가지고 온 것이 아니었어. 그곳에서 이순희를 만나면서 본의 아니게 이순희를 변화시켜 놓은 것이지. 그렇게 과거가 변해서 다시 돌아온 미래는 변해 있었던 거야. 이종인의 얼굴을 한 이종인을 양창근은 못 알아보았다고 했지. 그런데 이종인의 얼굴은 알아봤어. 양창근은 그 옛날 실종된 이종인을 못 찾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된 거야.

모범수로 석방된 이순희는 이미 칠십 후반이었어. 그리고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이순희는 오십 대가 된 이우환을 만나게 되었단다. 그리고 이순희의 마지막 한마디와 함께 소설은 끝이 났단다.

“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모든 게 달라졌다. 니가 태어난 후로.”

.

곰탕이라는 소설을 읽고 있을 때 너희들이 소설 제목이 곰탕이냐면서 어떤 내용이냐고 물어봤잖아. 그러면서 곰탕 좋아하니까 나중에 이 책을 읽겠다고 했지. 그래, 좀더 크면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구나.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도 들었어. 아빠가 1권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지은이가 영화감독이다 보니 영화 보듯이 읽는다고 했잖아. 지은이도 이 영화를 영화연출을 하는 것처럼 쓰지 않았을까 싶구나. 이 소설이 지은이의 첫 번째 작품인데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구나. 그리고 이 소설은 영화에서도 한번 만났으면 좋겠구나. ,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 ‘그 머리카락들, 누구 거죠? 셋이 다 가족이던데.’

책의 끝 문장 : “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모든 게 달라졌다. 니가 태어난 후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탕 1 - 미래에서 온 살인자, 김영탁 장편소설
김영탁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번에 읽은 <곰탕>이라는 책은 알라딘 북플을 통해서 알게 된 책이란다. 먼저 읽은 이들의 폭풍과 같은 호응이 있었어. 그래서 눈 여겨보고 있다가 이번에 읽었단다. 지은이는 김영탁이라는 분인데 영화감독이자 작가라고 하는구나. 영화 <헬로우 고스트> <슬로우 비디오>라는 영화를 감독했는데, 아쉽게도 아빠는 두 영화 모두 보지는 못했어. 그리고 소설로는 이번 <곰탕>이 첫번째 소설이라고 하는구나. 아무래도 지은이가 영화감독이다 보니, 이 소설도 나중에는 영화로 나오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인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영화의 장면을 떠오르게 되더구나. 각각의 소설의 장면을 영화로 만든다면 어떻게 할까? 아빠도 상상을 하면서 소설을 읽었단다.

제목이 독특하게도 곰탕이구나. 곰탕 1권의 부제는 미래에서 온 살인자였어. 곰탕과 미래에서 온 살인자. 참 안 어울린다 싶었고,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궁금했어. 그럼 먼저 곰탕 1권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게.

 

 

1.

때는 2063년 부산지금보다 40년도 훨씬 지난 미래로구나. 밝은 미래로 그려졌으면 좋겠지만, 미래의 모습은 대개 암울한 모습인 경우가 많지. 디스토피아의 모습. 2063년의 부산은 몇 번의 쓰나미를 겪었고, 조류독감과 구제역이 자주 발생하여 모든 가축들을 죽였단다. 그래서 사람들은 통통한 쥐 모양의 새로운 고기를 만들어냈단다. 고기의 이름도 정하지 않아이것또는그것으로 불렀어.

주인공 이우환은 어렸을 때 고아원에서 자라서 열여덟 살부터 한 식당에서 식당 보조를 하고 있었고, 어느덧 그의 나이 사십 대 중반이 되었어. ‘이것’으로 국을 만들기는 하나, 맛이라는 하나 없는 그런 국이었단다. 식당 주인은 오른쪽 팔이 없는 노친네였는데, 그는 이우환에게 한 가지 미션을 주었어. 시간여행을 해서 곰탕 요리법과 곰탕의 재료인 아롱사태를 가지고 오라고 했어.

2063년은 시간여행이 가능하긴 했는데, 과거로만 갈 수 있었고, 여행 중에 죽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를 두고 여행이라 할 수 있는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은 돈을 주고 심부름을 보내는 것으로 시간여행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과거로 실어 나르고 있단다. 이우환은 지금 자신의 삶이라면 죽어도 상관없다면서 가겠다고 했어. 시간여행의 정원은 13명이고 배 같은 것을 타고 바다로 나가서 특정 지점에서 과거로 가게 된단다. 이우환도 13명이 같이 갔는데, 과거 2019년에 살아서 도착한 사람은 2명 뿐이었어.. 이우환과 심부름으로 사람을 죽이러 왔다고 하는 김화영, 둘 뿐이었어. 사실, 김화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것을 이우환이 살려 준 것이란다.

 

 

2.

양창근이라는 사람은 경찰이야. 얼마 전까지 인천에서 일하다가 이번에 부산으로 왔어. 어느날 교실에서 이상한 사고가 일어났다는 접수를 받았어. 학생들끼리 싸우고 있었는데 어떤 사내가 피 흘리고 죽은 상태로 교실바닥에 나타났다는 거야. 아이들의 황당한 이야기를 믿지 못하고 그 죽은 사람 옆에서 싸움질하던 이순희를 용의자로 경찰서로 데리고 왔어. 또 다른 경찰 강도영의 말에 따르면 이순희는 그 전부터 경찰서에 몇 번 들락거렸던 말썽쟁이라고 했어.

교실에서 발견된 시신은 부검을 했는데 시신은 의문투성이였단다. 복부에 큰 반원으로 잘려나갔고, 절단면은 깨끗하고. 잘려나간 부분은 교실에서 발견되지 않았으며, 머릿속에는 이상한 칩이 들어있었대. 시신의 지문으로 신원 확인을 해보려고 했으나 검색이 안되었대. 정말 이상한 사건이었어.

 

 

3.

한편 이우환은 식당 사장이 알려준 부산곰탕이라는 식당에 찾아가서 곰탕을 먹어봤는데, 그 맛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단다. 그리고 애원을 해서 그곳에 취직을 하게 되었어. 부산곰탕은 중년의 이종인이라는 남자가 혼자 운영하는데, 얼마 전까지 부인이랑 같이 일했지만, 부인이 병에 걸려 세상을 뜨고 혼자 식당 일을 하고 있어서 우환을 받아들이기로 했단다.

그런데 이종인의 아들이 바로 앞서 이야기했던 이순희였단다. 이순희가 경찰서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종인은 경찰서에 갔단다. 이종인이 이순희의 피묻은 교복을 가지고 왔는데, 이우환이 그 옷을 빨게 되었고, 피 묻은 이순희의 교복을 빨다가 교복의 새겨진 이름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된단다. 어렸을 때 자신을 버린 아버지의 이름과 똑같았거든. 이순희. 그저 우연의 일치겠지 하고 생각했어.

...

시신의 부검 결과 이순희의 짓이 아니라고 판단한 경찰은 이순희를 풀어주었어. 이순희는 가끔씩 여자친구를 데리고 식당에 왔는데, 여자친구의 이름을 듣고 이우환은 또다시 한번 놀랬단다. 어렸을 때 자신을 버린 어머니의 이름과 똑같았거든. 유강희. , 이제 확실해졌어. 이우환은 과거로 돌아와서 아직 고등학생인, 자신을 버린 부모를 만나게 된 거야. 이우환은 자신을 버린 이순희와 유강희를 갈라 놓으려고 했어. 그렇게 되어 자신이 없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했어. 자신은 인생이 너무 비참했기 때문에 말이야.

 

 

4.

경찰은 여전이 교실의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을 수사했어. 부산 지역의 곳곳의 CCTV를 확인하여 교실에서 시신이 발견된 시간에 강한 빛을 받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한 남자를 CCTV에서 찾아냈단다. 양창근은 그 거리를 찾아가 보았어. 구멍이 난 세 개의 벽을 볼 수 있었고, 그것은 마치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레이저 총으로 쏜 것 같았어. 그 세 개의 구멍이 어디서 왔나 보니 영진 아파트에서 온 것처럼 보였고, 양창근은 그 영진 아파트로 가 보았어. 오래된 아파트. 영진 아파트 단지에 있는 영진 부동산에 들러보았단다. 영진 부동산의 사장은 박종대라는 사람이었어. 그와 이야기를 해보면 특별한 것은 없었어. 한 가지만 빼고양쪽 귀 뒤쪽을 자주 긁는 습관이 있었어.

양창근은 주민센터에도 들렀단다. 특이사항이라고 해야 하나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긴 했어. 최근5년 사이에 전입신고가 많아졌는데 모두 외지에서 살던 집주인의 아들들이 들어왔다는 거야. 그리고 그 집의 부모들이 대부분 치매로 정신병원에 요양 중이라는 거야. 작은 아파트 단지 치고는 사람수가 좀 많았단다. 13.

양창근은 박종대와 영진아파트 사이에 무엇인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찾지는 못했단다. 양창근은 치매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소망병원에 가서 13명을 모두 만나봤어. 그리고 폐쇄병동에 갇혀 있는 비교적 젊은 환자도 한 명 만났는데, 그 환자는 흉측하게도 얼굴 가죽이 없었어…. 하지만 여전히 특이한 점은 찾지 못했단다.

 

 

5.

아까 이우환과 함께 과거 여행을 온 남자가 한 명 있었지. 김화영. 그는 어떤 사연으로 과거에 왔는지 이야기해줄게. 그는 가난했는데, 여행사의 제안이 들어왔어. 시간여행 가이드를 해달라고 했어. 가이드는 일반 여행자들과 달리 순간이동이 가능하도록 머릿속에 칩을 넣어서 생존 확률도 높다고 했단다. 머릿속의 칩이라교실에서 죽은 사람도 머릿속에 칩에 있다고 했잖아. 그 칩은 바로 순간이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칩이었던 거야. 아무튼 김화영은 그 가이드 역할을 받아들였단다. 그런데 또 어떤 부자의 제안도 있었어. 과거에 가면 12명을 죽인 살인자가 있을 거라고 했어. 그 살인자를 찾아서 죽이라는 했어. 그러면 큰 돈을 주겠다고 했단다. 이 제안도 김화영은 받아들이고, 과거로 온 것이었단다.

강도영 형사는 장기 적출하는 도깨비라고 부르는 전직 성형외과 의사를 현행범으로 잡아왔단다. 도깨비를 신문하여 윗선을 밝혀내려고 했으나, 모른다고 했고 자신은 스카우터라고 부르는 류정훈이라는 사람만 안다고 했어. 그래서 류정훈을 잡아오고 도깨비는 일단 풀어주었단다. 도깨비는 박종대를 찾아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어.

박종대. 이 사람의 정체를 이야기할 때가 된 것 같구나. 이 사람은 첫 번째 시간여행으로 과거로 온 사람이야. 그는 심부름을 받고 왔지만 처음부터 미래로 다시 갈 생각이 없었어. 그래서 그는 과거로 오기 전에 과거의 신문을 모조리 보고 왔단다. 특히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지 알고 왔고, 미래에 대통령이 될 사람에게 접근해서 그의 측근이 되려고 했단다. 그리고 또 하나 정당한 신분을 얻어야 했어. 얼굴을 바꾸는 수술을 받게 되었단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박종대는 그러니까 본명이 아니야. 박종대라는 사람을 죽이고 그 사람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로 이식하고 자신이 박종대로 살아가는 거야.

박종대는 자신처럼 미래로 돌아가지 않고 과거에 머물러 살고 싶어하는 시간여행자에게 얼굴 이식 수술을 알선하는 일도 했어. 도깨비라고 부르는 전직성형외과 의사의 본업은 그러니까 안면이식수술이고, 부업이 장기 적출이었던 것이란다. 너무 잔인하구나. 박종대는 부동산업도 하고 있으니까, 얼굴 이식을 한 시간여행자들을 영진 아파트로 전입을 시킨 것이고, 가족들이 그들을 알아챌까 봐 치매나 정신병으로 몰아서 병원에 입원을 시켰던 것이란다. , 이제 앞뒤 이야기가 어떻게 된 것인지 알겠지? 박종대는 첫 번째 얼굴이식 수술을 했을 때, 도깨비가 아닌 다른 사람이 수술을 했어. 실력이 도깨비만큼 훌륭하지 않아서 부작용으로 귀 뒷쪽을 자주 긁는 것이었어.

 

 

6.

이우환은 식당을 하면서 이순희와 유강희를 자주 보았는데, 그들을 갈라 놓으려는 의도와 갈리 점점 그들에게 정이 갔단다. 순희와 강희도 이우환을 점점 따르고 친해졌어. 그들 셋은 오토바이 한 대에 같이 타고 다니기도 했어. 이우환이 온지 한 달이 된 이후에 곰탕 기술을 어느 정도 익히고, 직접 곰탕을 끓이는 수준까지 되었어.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임무를 완수했다고 생각해서 미래로 돌아가려고 했어. 여행사에서 준 시계를 확인하여 돌아가는 배편 시간도 확인했어. 정해진 시간에 약속된 장소에 가보니 모두 13명의 귀환자가 있었어. 그들과 함께 배를 타고 출발을 했어불현듯 이우환은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순희와 강희와 함께 말이야. 그만큼 정도 꽤 들었거든. 그래서 바닷속으로 가라앉던 배에서 뛰어내려 다시 헤엄쳐서 다시 부산곰탕으로 돌아왔단다. 그리고 박종대를 찾아갔어. 과거에 남고 싶다고 그에게 이야기했어.

한편, 부산앞바다에 12개의 시신이 바닷가로 밀려온 사건이 일어났단다. 12개 시신은 지문 조회를 해봐도 일치하는 사람이 없었어. 경찰은 난리가 났고, 온갖 뉴스는 이 소식으로 도배가 되었어. 김화영도 이 뉴스를 봤단다. 12개의 시신시간여행 가이드인 김화영은 그 시신의 정체를 알았어. 그리고 그 배에 이우환이 타고 있었다는 것도 알았어. 김화영은 순간이동 기술을 이용하여 시신보관소에서 12개의 시신을 모두 확인했어. 이우환만 빼고 모두 있었지. 드디어 자신이 죽여야 할 사람이 나타난 것이야. 그런데 그 사람이 이우환이라니자신을 살려주었던 이우환이라니..

경찰서에서는 류정훈을 신문하고 있지만 증거불충분이었어. 그런데 소망병원에서 연락이 왔어. 양창근이 만났던 얼굴 없는 환자 있었잖아. 그 환자가 엄마를 병원에서 만났다고 했어. 그리고 그 사람 이름이 다름 아닌 류정훈이라고 했어. 뭐라고? 경찰에서 신문 받고 있던 그 류정훈? 아빠가 앞서 박종대 이야기를 하면서 했던 이야기 생각나지? 시간 여행자의 얼굴 바꾸기 수술.. 경찰서에 있던 류정훈도 바로 시간여행자였던 거야.

여기까지 1권의 이야기란다. 지은이의 첫번째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재미있었단다. 이런 실력을 어찌 이제서야 발휘했단 말인가. 아빠가 부지런을 떨어서 조만간에 곧 2권도 해줄게. 오늘은 이만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 가까운 미래에 시간 여행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하다.

책의 끝 문장 : 그를 찾아 죽여야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11-07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07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07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07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2)

혼자 있다고 꼭 고독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고독은 물론 다른 사람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만 이 순간 나는 나 자신을 벗삼고 있다. 반면 내자 혼자 있든 누구와 함께 있든 나 자신이 내게 결핍되어 있을 때, ‘내게 결핍되어 있는 그 누구가 다름이 아닌 나 자신일 때, 이런 상태는 고립이다. (반대로 사랑은 상대방이 거기 있을 때조차 그가 그리운 상태를 말한다.) 고독 속에 있다는 것은 상대방이 거기, 내 안에 있다는 확신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상대방과 내가 모두 결핍되어 있는 단절도 있다.

(34)

예술가는 고독 속에서만 진정으로 일할 수 있다. 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이 끊임없이 통제되는 그런 환경 속에서만. 그것이 없다면 관념과 이 관념의 실현간의 불가분의 통일성이 외부의 침입에 의해 깨어질 수도 있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어떤 비율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보낸 매시간에 대해 X시간을 혼자 보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늘 직감적으로 느껴 왔다. X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얼마만큼을 의미하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중요한 시간이다. 아무튼 어린 시절부터 라디오는 내게 매우 친근한 의사 소통의 수단이었으며, 나는 거의 중단 없이 라디오를 들어왔다. 내게 라디오는 벽지와도 같았다. 나는 라디오와 함께 잠이 들었으며, 넴뷰탈을 포기한 후로는 라디오 없이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고독의 메타포인 라디오는 여러 유리한 점을 지니고 있다. 마음내키는 대로 틀거나 끌 수 있으니까 우리가 원할 때 자리에 없고, 없어도 좋을 때 곁에 와 있는 타인들과는 달리.)

(41)

굴드는 청중 쪽으로 등을 반쯤 돌린 채 다리를 꼬고, 거의 비스듬히 앉은 자세로 첫번째 악장을 연주했다. 그리고 나서 느린 악장에 이르자 입이 반쯤 벌어지고 무대 천장에 눈이 고정된 그의 모습은 황홀경에 빠진 사람과도 같았다. 그 다음 마지막 악장에 가 거의 뒤로 나자빠진 듯한 자세가 된 그의 머리는 건반에서 너무도 떨어져 있어, 자신의 손을 마치 자기 것이 아닌 양 바라보는 것 같았다.

(59)

음악의 핵심 속으로의 온전한 칩거, 모든 것으로부터의 결별, 성급한 떠남, 이 모든 일은 굴드가 무대를 떠난 순간 이미 일어나 있었던 일이었다. 1963년의 사건은 그의 긴 탐구의 첫 단계가 아니고 마지막 단계였다. 후퇴 혹은 은거는 결렬이라기보다 음악과 이 반복되는 실종간의 해묵은 내밀한 공모였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음악은 그에게 참으로 존재하며, 그를 사로잡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 밖의 것은 모두, 연주회는 한층 고통스럽게 그를 음악으로부터 갈라 놓는 것이었다. 집착하는 모든 것, 만남, 아이들, 일상의 작업들과 같은 기쁨과 고통의 이 매듭들은 늘 그에게 탈주를 꿈꾸게 했다. “아무곳이든지, 세상 밖으로.”

(74)

그는 음악에 옷을 입히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음악이 옷을 벗기를 원했다. 또한 음악이 우리를 헐벗게 하고 살가죽을 벗기는 것을, 털을 곤두서게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 사진들 속의 그는 몹시 마른 모습이다. 뼈의 열기를 식히기 위한 살의 부드러움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 몸에는 엄청난 힘이 배어 있다. 일상의 과육이 해체되는 이 순간, 푸가의 골격에서 찾아지는 그런 힘이.

(99)

더 잘 연주하기 위해 거리를 둘 것. 이것이 굴드의 미학이다. 시토회 수도자 토마스 머튼의 개념과도 비슷한 후퇴의 미학.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피아노 자신과도 거리를 둘 것. 그는 녹음이 있기 전 며칠 동안 자신의 피아노를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피아노는 손가락이 아니라 머리로 연주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연주하는 것의 정신적인 형상과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순간의 손가락의 속박 사이에 일정의 투쟁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 손가락의 속박에서 우리가 해방된다. 형상이 그 개념의 순수성으로부터 한눈을 팔아 피아노에 부딪치는 일이 없었던것이다. 그는 또 피아노를 연주하는 비결은 어느 정도 자신을 악기로부터 떼어 놓는 방식에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분리의 순간들, 피아노와 음악을 분리시키는 기술들을 되새겨 보자.

(102-103)

굴드의 악기의 고독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싶어했다. 헐벗은 연주. 악기가 미혹시킨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장식적인 기능을 삭제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바흐의 장식음들을 그는 마치 장식음이 아닌, 악절의 다름 음들과 똑 같은 멜로디와 화음의 가치를 지닌 음들처럼 연주한다. 이들의 필연성과 절박함을 발견하기 위해서인 양, 분해되어 나온 뚜렷한 음들로 천천히 연주한다. 그러므로 페달이 사용되지 않는다. 페달은 옷을 입히고 가리기 때문이다. 그는 음악의 몸이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가기를 원했다. 우리의 몸이 인위적인 장식들을 박탈당한 채 벌거숭이가 되어, 살덩이의 치욕 속에 버려져 죽음으로 가듯이.

(106)

음악에 대해 그가 행사한 지배력은 음악 안에서의 지배력에 지나지 않았다. 음악에 오롯이 사로잡혀 있던 그는 절대로 음악이 그의 수중에 든 것처럼, 자신 안에 축적되고 정리되어 있거나 위협하는 것처럼 연주하지 않았다. 음악을 밖으로 끄집어 내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그는 이를테면 아라우처럼 음악이 스스로 다가오도록 하는 식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어린아이를 낳을 때처럼 안에서 밖으로, 위에서 아래로, 음악을 수행하는 식이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따고, 들어올리고, 아니면 공중에서 낚아채는 듯했다. 언제나 밖에서, 뒤로 물러서며 끝없이 한계를 넓혀 가는 어떤 공간 속에 있듯이 그는 음악 속에 있었다. 더 가까워질수록, 더 많이 알게 될수록, 그는 그것이 포착되지 않기를 바랐다. 친숙해지면 음악은 꺼져 버리고 만다. 근원은 우리가 그것을 찾아나서면 자취를 감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무서운 것이 잊혀지고 나면 아름다움은 부재한다.

(108)

굴드의 연주에는 몹시도 신비한 무엇이 들어 있다. 아주 스타카토적이고 점묘적이라고까지 할 만한 이 세코(secco)식이 연주를 통해 탁월한 밀도와 놀라운 연속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굴드는 페달을 통한 음의 용해나 손가락의 레가토 연주 증 외부적인 무엇으로 연결성을 만들어 내지 않고, 크레셴도와 디크레셴도를 통해 리드미컬하다기보다는 강양이 위주가 된 프레이징을 만들어 낸다. 연속성은 인접성을 통해서가 아니고, 완전히 별개인 음들의 꾸준한 단계적 상승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렇게 해서 재봉틀로 땀을 드느냐, 모호한 후광을 만들어 내느냐 하는 딜레마를 비켜 간다.

(124)

굴드는 불가능한 무엇을 추구하고 있었다.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두고 그가 음악의 무형성이라고 지칭한 그것이었다. 그가 보기에(아니면 실제로) 음악은 양극단 사이의 긴장이다. 대수의 복잡성과, 더 큰 초연을 지향하는 사고의 움직임. 그리고 음들 속에 감추어진 확고부동한 기반.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굴드가 확신했듯이 피아노 앞에 앉자마자, 음악이 모습을 갖추자마자, 유한한 공간이 음악을 삼켜 버린다고, 결함과 결핍, 실추가 불가피하다고 믿어야 할까? 아니면 굴드의 연주를 듣고 내가 확신하듯이, 이 같은 타락 속에서만 무언가를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일까?

(149)

고독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음악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따금 음악이 일체를 엄습해 깡그리 지워 버리고 만다. 그리고 음향 외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곳에 없을 수도 있지만, 음향은 거기에 있다. 그것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이다. 때론 아주 미미한 것, 거의 무효화된, 아니면 부서진 무엇일 때도 있다. 하지만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음악은 내 안에 있고, 나는 음악 안에 있다.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내부에서 외부로, 내면이 된 외부로 나아감이다. 마치 내면에 이미 외부가 존재하는 양. 음악은 신의 자질들을 지니고 있어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듯이 보존하면서 채운다. 그것은 에워싸고 조여 온다. 그러면서도 귀로 올라오는 기쁨, 혹은 첨예한 고통으로서, 아주 작은 부분이 되어 내부에 머문다.

(169)

굴드는 혼자 살았지만, 절대로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머리는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면 자신을 보호하고 그가 나누고 있는 말, 때론 광적인 환희를 담고 있는 말로부터 스스로를 추방하기 위해 늘 배후에 음악을 두고 있었다. 종종 그는 말을 하다말고 물었다. “지금 내 생각 깊은 곳에 어떤 음악이 있는지 아십니까?”라고. 생의 말기로 접어들면서 그 대답은 점점 더 예측 가능한 것이 되었다. 그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변신>이었다. 거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존 리 로버츠는 굴드를 사로잡고 있는 음악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추측해 보아야 했다. 어떤 음악이 그의 말을 가로막고, 그의 내부에서 말을 하는지. 이번에 로버츠는 빗나가고 말았다. 굴드는 여전히 슈트라우스. 그의 마지막 작품 <4개의 마지막 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잠시 뒤 굴드는 완전히 지친 듯이 보였다. “나는 당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알 것 같습니다.”라고 상대방이 그에게 말한다. “그렇습니까? –벌써 마지막 노래에 와 있군요?-맞습니다. 정확히 그곳에 와 있습니다.” 여기서 시가 말한다. “벌써 죽음인가?” 악보에는 여전히 보다 느리게라고 적혀 있으며, 그 다음에는 리타르단도, 그리고 죽음이라는 단어에서 이끎음 Bb이 으뜸음 Cb과 경합할 때는 아주 느리게가 된다.

(185)

누가 진실 속에 있는 것일까? 누가 알겠는가? 그걸 알아야 할까? 사랑하려면 알아야 할까? 물론 그렇지 않다. 사랑에는, 아니면 단지 귀기울이는 데에는 전기적인 앎과는 다른 앎이 있다. 설령 앎이 사랑을 확장시키고 활력을 줄 수 있다손 치더라도 절대로 사랑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이해하려면 사랑에 빠지지 않으면 안 된다.

(190)

나는 굴드가 연주한 <골트베르크 변주곡>의 마지막 녹음의 마지막 부분(아리아의 재현)의 마지막 음들을 듣는다. 지속된 화음이 잠시, 새가 날아가 버린 가지가 희미하게 떨리듯이 부르르 떤다. 굴드를 들으며, 굴드에 관해 쓰며 결국 알게 된 것은 나 자신이다. 자신들의 삶을 살지 않았던 예술가들, 그러나 이들 덕분에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그나마 괜찮게 살 수 있게 된 그런 예술가들을 경험할 때 늘 그렇듯이. 이 놀라움은 놀래키고 당황하게 만들고 기발하게 보이려는 욕구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참된 놀라움은 아름다움 앞에서 우리가 그래, 이거야. 이렇게밖에는 될 수 없었어리고 말하도록 만든다. 발설된 것은 방금 전까지도 생각할 수 없었지만 이젠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예술은 가장 높은 사명을 지닐 때 거의 인간적이 아닌 무엇이 되어 버린다.”고 언젠가 굴드도 말한 적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