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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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그럴 수도 있구나.

작품이 쓰여진 지 50년이 지나고 나서 큰 인기를 끌다니이미 그 작품을 쓴 지은이 존 윌리엄스는 세상을 떠난 후이고 말이야. 이 소설은 그런 이력을 가지고 있단다. 1965년에 소설을 쓰여졌지만, 당시 호평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는 인기를 끌지 못했대. 그러다가 약 50년이 흐르고, 이 소설이 출간되었던 미국이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에서 뜨거운 인기를 얻었대. 그리고 2013년에는 영국의 최대 체인 서점인 워터스톤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는구나.

그런 인기의 여세를 몰아 우리나라에도 출간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단다. 그리고 그의 다른 책들도 차례로 출간되었단다. 아빠는 <스토너> 보다 존 윌리엄스의 소설은 <아우구스투스>라는 소설을 먼저 읽었단다. 그 소설을 재미있게 읽어서, 무덤 속에 들어간 존 윌리엄스를 다시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그 소설 <스토너>를 더욱 읽어보고 싶더구나.

그리고 이번에 그 소설을 읽게 된 거야. 한 남자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였어. 아빠와 상황도 다르고, 직업도 다른데도 읽는 내내 감정이입이 되던지.. 정말 진심으로 주인공 스토너의 행복을 빌었단다. , 그럼 그의 삶이 어땠는지 이야기해줄게.

1.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 살에 미주리 대학에 입학을 했어.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농사를 도왔던 그에게 대학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인데, 아버지는 스토너가 농과대학을 내오면 농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스토너는 미주리대학교 농과대학에 들어갔어. 그런데, 2학년 때 문학 수업 때 알게 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가 그의 삶을 바꿔놓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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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내게서 계절을 보리

추위에 떠는 나뭇가지에

노란 이파리들이 몇 잎 또는 하나도 없는 계절

얼마 전 예쁜 새들이 노래했으나 살풍경한 폐허가 된 성가대석을

내게서 그대 그 날의 황혼을 보리

석양이 서쪽에서 희미해졌을 때처럼

머지않아 암흑의 밤이 가져갈 황혼

모든 것을 안식에 봉인하는 죽음의 두 번째 자아

그 암흑의 밤이 닥쳐올 황혼을.

내게서 그대 그렇게 타는 불꽃의 빛을 보리.

양분이 되었던 것과 함께 소진되어

반드시 목숨을 다해야 할 죽음의 침상처럼

젊음이 타고 남은 재 위에 놓인 불꽃

그대 이것을 알아차리면 그대의 사랑이 더욱 강해져

머지않아 떠나야 하는 것을 잘 사랑하리.

그대 이것을 알아차리면 그대의 사랑이 더욱 강해져

머지않아 떠나야 하는 것을 잘 사랑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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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는 이 소네트를 알게 되고 난 후 세상은 다른 모습으로 보였어. 숨 하나가 다른 의미로 다가왔고, 햇빛 한 줄기에 의미가 있었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신비롭게 느껴졌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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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윌리엄 스토너는 자신이 한참 동안 숨을 멈추고 있었음을 깨달았다.그는 부드럽게 숨을 내쉬면서 허파에서 숨이 빠져나갈 때마다 옷이 움직이는 것을 세심하게 인식했다. 그는 슬론에게서 시선을 떼어 강의실 안을 둘러보았다. 창문으로 비스듬히 들어온 햇빛이 동료 학생들의 얼굴에 안착해서, 마치 그들의 안에서 나온 빛이 어둠에 맞서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한 학생이 눈을 깜빡이자 가느다란 그림자 하나가 뺨에 내려앉았다. 햇빛이 뺨의 솜털에 붙들려 있었다. 스토너는 책상을 꽉 붙들고 있던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손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그 갈색 피부에 감탄하고, 뭉툭한 손끝에 꼭 맞게 손톱을 만들어준 그 복잡한 메카니즘에 감탄했다. 작고 작은 정맥과 동맥 속에서 섬세하게 박동하며 손끝에서 온몸으로 불안하게 흐르는 피가 느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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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스토너는 문학으로 전공을 바꾸었어. 부모님한테는 이야기하지 못하다가 졸업식에 되어서야 이야기를 꺼냈어. 부모님은 크게 실망을 했지만, 스토너의 의지는 굽힐 수 없었어. 스토너는 석사, 박사 과정까지 공부를 했고, 나중에는 그 학교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기까지 했어..

그렇게 오랜 학교 생활을 했지만, 스토너는 친구를 많이 사귀지는 않았어. 박사 과정을 하면서 데이브 매스터스와 고든 핀치와 친하게 지냈는데, 1차 세계 대전 자원 여부를 두고 사이가 안 좋아지기도 했어. 데이브와 고든은 군대에 자원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스토너는 고심 끝에 자원을 안했거든. 데이브는 전쟁에 나간 지 일 년도 되지 않아서 전사 소식이 전해졌단다.

2.

스토너는 셰익스피어를 처음 만났을 때의 전율을 또 한 번 느꼈어. 이번에는 이디스라고 하는 여인한테였어. 첫 눈에 반한 스토너는 이디스에게 구애 끝내 사귀게 되었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어. 하지만, 이 결혼은 완벽한 실패였단다. 이디스는 심한 히스테리를 겪고 있었어. 이디스의 비위를 맞추기가 정말 힘들었어. 이디스가 스토너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거든. 이디스의 감정은 이랬다 저랬다,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했어. 잠자리도 늘 거부를 했어.

그러다가 결혼 3년 차에 갑자기 이번에는 임신을 하고 싶다고 했어. 이디스가 좀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어. 히스테리는 점점 심해졌지. 스토너의 가정 생활은 최악을 걷다가 딸 그레이스를 얻고 나서 좀 나아졌단다. 딸이 커가면서 딸과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어. 히스테리로 신경이 날카로운 이디스는 주로 혼자 지냈고, 스토너는 어린 그레이스와 함께 서재에서 함께 했어. 둘이 같이 있으면 웃음꽃도 피웠고, 그레이스도 아빠를 잘 따랐단다.

그런데 어느날 이디스가 아빠 일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그레이스를 서재에 못 들어가게 했어. 그것뿐만 아니라 이디스는 자신이 그레이스를 끼고 있었어. 스토너는 이제 집에 와도 그레이스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어. 그레이스도 점점 살이 빠져가면서 웃음을 잃은 아이가 되어갔어. 하지만 이디스의 히스테리에 소심한 스토너는 그냥 지켜봐야 했어.

스토너가 학교에서 대학교수로 일하고 있었는데, 집에서의 생활이 이렇다 보니 주로 학교에서 보내곤 했어. 학교에서의 생활은 그래도 무난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괴짜 교수인 로맥스의 제자 찰슨 워커가 스토너의 세미나를 들으면서 학교 생활도 삐그덕거렸어. 찰슨 워커는 오만과 교만으로 가득 찬 학생인데, 그의 발표의 내용도 다른 학생의 발표를 공격하는 내용이었어. 스토너가 생각하기에 찰슨 워커는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워커는 이 일에 크게 불만을 갖고 이의신청을 했고, 구두시험으로 재시험을 진행하게 되었어. 심사위원으로 스토너도 참석을 했는데, 거만한 워커와 지도교사인 로맥스가 사전에 준비한 질문과 답변으로 진행되는 것 같았어. 스토너는 영문학에 있어서 아주 기본적인 질문들을 던졌지만, 워커는 제대로 된 답변을 하나도 하지 못했어. 로맥스가 자신의 제자를 변호했지만, 윌리엄은 불합격을 줄 수밖에 없다고 했어.

그런데 로맥스 교수는 얼마 뒤 학과장이 되었어. 그리고 그는 학과장의 권한으로 워커에게 기회를 주어 회생하게 했고, 스토너에게는 좋지 않은 시간대의 좋지 않은 교과목을 할당하는 것으로 비겁한 복수를 했지.

3.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삶의 의미를 잃은 스토너. 그레이스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이디스가 가로막았어. 그러던 어느날 예상치도 못했던 방향에서 변화가 찾아왔어.

옛날 세미나에서 들었던 젊은 강사 캐서린이 찾아와서 논문을 봐달라고 했어. 당시 삶의 의욕을 잃었던 스토너는 그 논문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 그러다가 약속했던 시간이 다 되어 예의상 열어본 그 논문에 큰 감명을 받았어. 너무 훌륭한 논문이었어. 그 사실을 이야기해주고 싶어서 바로 캐서린을 찾아가 논문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부터 캐서린에게 사랑을 감정을 느꼈어. 이후 이런저런 핑계를 찾아 그녀의 집에 가서 이야기를 나눴어. 그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사랑이라는 것이 가릴 수 있다고 가려지겠니.

스토너는 자신의 이런 감정이 캐서린에게 방해가 될까봐 서서히 연락을 끊었단다. 그런데 캐서린이 병가를 냈어. 위로 차 찾아갔더니, 캐서린도 사실 스토너를 무척 좋아하고 있었던 거야. 그들은 이후 뜨거운 사랑을 하게 되었어. 이디스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캐서린으로부터 그것도 진심 어린 사랑을 받게 되었단다. 나이 43살에 스토너는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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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

나이 마흔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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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과 사랑에 빠진 이후 스토너는 다시 삶의 의미를 찾았어. 활력도 되찾았어. 집에서도 이디스와 사이가 좋아지기도 했어. 그런데 알고 보니 이디스도 이미 캐서린과 관계를 알고 있었던 거야. 이디스는 그런 관계에 대해 개의치 않았어. 이디스가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그레이스와 함께 친정에 갔어. 그 덕에 스토너에게 있어 이디스와 온전히 일주일을 보낼 수 있었어. 일주일 간 산장에 머물면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게 된단다.

그들의 사랑은 학교에서도 소문이 나고, 앙숙인 로맥스 교수는 핀치 학장에게 항의를 하고, 핀치는 스토너에게 친구로서 조언을 했어. 캐서린도 이미 소문을 알고 있었고, 스토너와 사랑이 영원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 캐서린은 스토너를 이해한다면서, 마지막 사랑을 나누고 콜롬비아를 떠났단다.

아빠가 생각하기에 그때 스토너의 삶도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한번뿐인 삶인데, 스토너의 선택은 옳은 것인가? 그렇게 캐서린을 보내고 나면 스토너 자신은 또다시 삶의 의미를 잃게 되는데, 남의 시선을 의식한 윤리적인 선택을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3.

딸 그레이스는 엄마의 영향으로 불안정한 정서를 가진 아이로 자라났어. 스토너는 그레이스를 해방시켜 주기 위해서 대학을 집에서 먼 곳으로 보내려고 했으나, 이디스의 강력한 반대로 그레이스도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어. 입학하자마자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이디스는 분노를 했어. 하지만, 남자 집안이 괜찮아서 이내 결혼을 시키기로 했어. 그래서 이디스는 결혼을 하고 시댁인 세인트루이스로 갔어.

그런데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남편은 2차 세계 대전으로 군대에 끌려가 죽고 말았단다. 이디스가 집에 오라고 했지만, 그레이스는 오지 않겠다고 했어. 그렇게 그레이스는 엄마로부터 해방을 한 것이었지. 하지만 스토너는 여전히 해방하지 못하고, 이디스의 히스테리 울타리 안에 살고 있었어. 캐서린이 떠난 이후로 그는 폭삭 늙은 것처럼 보였고, 그냥 시간이 흐르는 대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살았어. 그리고 불현듯 찾아온 암. 스토너에게 암을 이겨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 같았어.

캐서린…

그녀의 소식도 멀리서 들려왔지. 동부 지역에서 그녀가 쓴 책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접했어. 물론 직접 전해들은 것은 아니고그 책을 사 보았는데 “W.S에게는 헌사가 적혀 있었단다.

스토너에게 가장 소중한 두 사람

딸 그레이스와

그리고…. 캐서린

결국 캐서린과 다시 만나지 못하고 눈을 감았어.

끝내…

.

스토너의 삶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그래도 스토너에게는짧지만 깊은 진정한 사랑이 있었고, 자신이 사랑하는 문학을 죽을 때까지 공부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괜찮았던 삶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의 삶에 캐서린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어.

소설 한 권에 빠져 읽다 보니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버렸어. 그렇게 인생은 짧은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구나. 아빠도 요즘 문득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어. 이렇게 세월이 지나버렸다니엊그제 같았던 대학 생활도 20년을 넘겼다니그때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한데 말이야

삶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린 답을 구할 수 있을까?

답을 구할 필요는 있을까?

이 책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단다. 뒤늦게 이 책이 유명해져서 아빠도 읽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검색을 좀 해보니 이 소설을 영화로도 만든다고 하는구나. 고인이 된지 한참이 지난 이 책의 지은이 존 윌리엄스는 그가 죽은 다음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을까?


(252)

모든 사람이 이 의문이 이토록 비정하게 다가오는지 궁금했다. 이 의문은 슬픔도 함께 가져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신이나 그의 운명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반적인 슬픔이었다.(그의 생각에는 그런 것 같았다.) 문제의 의문이 지금 자신이 직면한 가장 뻔한 원인, 즉 자신의 삶에서 튀어나온 것인지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나이를 먹은 탓에, 그가 우연히 겪은 일들과 주변 상황이 강렬한 탓에, 자신이 그 일들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탓에 그런 의문이 생겨난 것 같았다. 그는 보잘것없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배운 것들 덕분에 이런 지식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우울하고 역설적인 기쁨을 느꼈다. 결국은 모든 것이, 심지어 그에게 이런 지식을 알려준 배움까지도 무익하고 공허하며, 궁극적으로는 배움으로도 변하지 않는 무(無)로 졸아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276)

그녀는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요, 정숙하고 말고요!" 그녀는 조금 차분해져서 과거를 돌아보는 듯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나도 나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정숙함을 던져 버릴 이유가 없을 때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정숙해 보이는지!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서는 사랑에 빠져보아야 해요. 당신과 함께 있을 때 나는 가끔 내가 세계 최고의 헤픈 여자가 된 것 같아요. 헤프지만 열정적이고 신실한 여자. 그 정도면 정숙해 보이나요?"


(289)

어느 날 저녁, 그러니까 함께 보내는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캐서린이 조용히 말했다. 마치 멍하니 다른 생각에 잠긴 것 같은 표정이었다. "빌, 우리가 앞으로 다른 것을 결코 누릴 수 없게 된다 해도, 이번 주의 기억은 남아 있을 거예요. 너무 소녀 같은 말인가요?"

"그것이 소녀 같은 말이든 아니든 상관없고." 스토너는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사실이니까."

"그럼 말할래요." 캐서린이 말했다. "이번 주의 기억은 우리에게 남아 있을 거예요."

마지막 날 아침에 캐서린은 오두막 안의 가구들을 정돈하고, 천천히 세심하게 청소를 했다. 그리고 그동안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빼서 벽과 벽난로 사이의 틈새에 끼워놓았다. 그녀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에 우리 물건을 하나 남겨두고 싶어서요. 이곳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남아 있을 만한 물건으로. 바보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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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5 - 시오리코 씨와 인연이 이어질 때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부 5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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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비블리아 고서당 이야기, 어느덧 다섯 번째 책을 읽었단다. 책 이야기와 애틋하고 달달한 사랑이야기가 여전히 재미있구나. 거두절미하고 바로 어떤 이야기들이 실려 있는지 이야기해줄게.

5권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다룬 책은 <호쇼>라는 월간 잡지책이란다. 이 잡지책은 1985년에 시작한 고서적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잡지였어. 2010년에 폐간이 되었다고 하는구나. 최근에 고서점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대. 어떤 중년 부인이 50여권의 월간 <호쇼>를 팔았다가 얼마 뒤, 자신이 팔았던 고서적을 다시 사간다는 거야. 자신에게는 큰 손해일 텐데 말이야.

아무래도 팔 때보다 살 때가 가격이 비쌀 테니 말이야. 그런데 그 일을 다른 고서적에 가서 또 반복을 한다는 거야. 아빠는 이야기를 듣고 어떤 사람을 찾는가 싶었어. 그런데 그 중년 부인이 비블리아 고서당에서 왔단다. 마찬가지로 50여권의 월간 <호쇼>를 가지고 와서 팔았어. 그 중년 부인의 이름은 미야우치였어. 50여권의 책들은 책등에 동일한 표시가 있었고, 책들에는닛타라는 메모가 있었어.

그리고 며칠 뒤 시다와 함께 온 어떤 노인이 있었어. 시다는 전에도 여러 번 출현했으니, 따로 설명은 안 할게. 그 노인은 시다에게 부탁해서 미야우치가 판 월간 <호쇼>를 모두 사갔어. 시오리코가 시다에게 노인의 정체를 물어보았지만, 알려주지 않았어.

..

며칠 뒤 미야우치가 찾아와 잡지책을 다시 사겠다고 했으나, 이미 모두 팔린 뒤였지. 그러자 미야우치는 그 책을 사간 사람을 알려달라고 했어. 아빠가 앞서 예상한 것처럼 미야우치는 사람, 정확히 이야기하면 남편을 찾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그 잡지책에 적어 놓은닛타라는 것은 역이름이었고, 자신이 거기에 살고 있으니 찾으러 오라는 것이었어. 미야우치의 남편은 책만 아는 사람이라고 했어.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젬병이라고 했어. 그런데 그런 남편이 3년 전에 회사 공금을 자기고 전처한테 가버렸다고 했어. 그때는 남편을 용서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시오리코에게 남편을 만나면 꼭 연락해달라고 했지.

이쯤 읽으면 시다와 함께 온 그 노인이 미야우치의 남편이겠지, 라는 생각이 들 거야. 그런데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를 다섯 권째 읽다 보니, 반전이 있겠구나 싶었어. 그래서 미야오치의 남편은 바로 시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시다가 책밖에 모르고, 지금은 혼자서 걸인 생활을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시오리코도 그렇게 예상을 했어시다를 찾아갔어.

시다는 그 동안의 이야기를 꺼내놓았어. 전처한테 사기를 당해서, 회사 공금까지 갖다 주었다고전처는 이혼 후 시다의 아들을 낳았다고 이야기했대. 그런데 그 아들이 많이 아파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어.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 돈을 주었더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야. 모두 거짓말이었던 것이야.. 시다는 미안함에 미야우치에게 연락도 못하고 죄책감에 걸인 생활을 해왔던 거야. 미야우치가 이제 시다를 용서한다고 했으니, 시다도 걸인 생활을 접을 수 있지 않을까?

.

시오리코는 그 일과 별도로 시다에게 엄마 지에코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어. 시다가 자신의 엄마와 연락을 하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던 거야. 시다는 자신도 최근에는 지에코와 연락이 끊겨서 모른다고 했어. 시오리코는 왜 갑자기 엄마한테 연락을 하려는 것일까? 앙숙이 되어버린 엄마와

그것은 다이스케 때문이야. 다이스케 알지? 비블리아 고서당의 아르바이트이자 이 소설의 주인공. 그런데 줄거리를 이야기하다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잘 안 하게 되네. 왜냐하면 다이스케는 주로 시오리코를 도와주는 역할이라서 그런가 보다. 그런 다이스케가 시오리코를 처음부터 짝사랑을 했는데, 드디어 고백을 했거든.

시오리코도 다이스케가 싫지는 않지만, 아니 좋아하지만, 자신의 엄마처럼 가족을 버릴까 봐 결혼을 하지 않으려고 했거든그래서 다이스케의 고백에 답하기 전에 엄마에게 무엇인가 물어보려고 하는 것 같았어.

1.

데즈카 오사무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지만, 그의 작품 중에는 아빠도 아는 유명한 것이 있단다. 바로 아톰, 우주소년 아톰…. 아빠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만화주인공. 그 만화의 원작 작가가 바로 데즈카 오사무란다. 일본에서는블랙잭 시리즈로 더 유명하대. 시오리코의 친구 다키노 류의 후배의 부탁으로 잃어버린 책을 찾아달라고 했어. 그 후배의 이름은 마가베 나나코인데, 아버지의 책 블랙잭 시리즈 중 4편이 없어졌다는 거야.

그 책이 집에 다섯 권이나 있었는데 그 중에 두 권이 없어졌대. 사실 범인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다고 했어. 동생 신야. 신야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어. 왜냐하면 5년 전에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엄마가 사경을 헤맬 때 조차도 병원에 가는 길에 책방에 들러 책을 샀다는 거야. 그래서 그 시간 때문에 병원에 늦게 도착했고, 결국 엄마와 작별 인사를 하지 못했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의식을 잃으셨고, 얼마 뒤 돌아가셨거든

신야에게 아빠는 엄마보다 책을 더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생각했어. 그 일이 있은 후로, 신야와 아버지는 사이가 안 좋아졌어. 신야의 아버지가 출장을 간 사이에 신야는 아버지가 아끼는 책을 몰래 훔친 것이라고 했어. 이번 에피소드는 블랙잭 시리즈에 대한 사연을 위한 에피소드였어.

블랙잭 시리즈의 팬이었던 신야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블랙잭 시리즈로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 거야. 그리고 5년 전에 신야의 아버지가 병원 가는 길에 책방을 들렀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어. 그 책방에 신야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추억이 깃들어 있던 책이 있었거든. 그래서 그 책을 사가지고 가면 엄마가 깨어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시간을 내서 일부러 그 책방에 들러서 그 책을 산 것이었어. 이런 숨어 있는 사연은 시오리코의 추리에 의해서 밝혀졌단다. 이제 신야도 아버지와 화해를 하겠지

2.

세 번째 에피소드에 나오는 데라야마 슈지라는 사람은 일본의 유명한 시인이라고 하는구나. 아빠는 이 사람의 이름도 처음 들어보았어. 이번 5권에서는 모두 일본 작가와 책에 대한 이야기로구나. 그리고 5권에서 소개된 책들은 아빠가 특별히 땡기는 책들은 아니더구나. 전에는 몇몇 땡기는 책들이 있어서 산 것도 있는데 말이야.

암튼… 5권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간단하게 이야기해줄게. 마지막 에피소드는 시오리코의 엄마 지에코가 시오리코에게 낸 문제와 같은 것이었어.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시오리코에게 배달된 엄마의 문제이 문제를 해결해야 엄마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했어. 이번에도 어떤 사람이 책에 관한 일을 의뢰했어.

가도오 스미오라는 사람인데, 그는 삼형제의 막내였는데, 그의 큰형은 장서가였어. 그 큰형이 죽기 전에 희귀본이었던 데라야마 슈지의 <나에게 5월을>이라는 시집을 준다고 했어. 그런데, 형수와 둘째 형은 믿지 않았어. 큰형은 생전에 가도오 스미오를 미워했었거든. 그런 큰형이 스미오에게 그렇게 고귀한 책을 줄 리가 없다고 했지. 스미오는 큰형이 한 말을 듣고 이미 그 책을 살 사람에게 돈까지 받아서 그 책을 가져가야 한다고 했어. 이 일을 시오리코에게 부탁을 한 거야.

스미오가 큰형과 사이가 틀어진 이유는 스미오는 기억조차 희미한 어린 시절의 일 때문이었어. 큰형과 스미오는 나이차이가 많이 났어. 스미오가 다섯 살 때 큰형은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어. 스미오가 다섯 살 때 형의 서재에서 형이 아끼는 데라야마 슈지가 직접 쓴 원고를 망친 일이 있거든. 그 이후 형에게 꾸지람을 듣고 그 이후에는 관계가 별로 좋지 않았어.

스미오도 뭐 그리 모범적인 생활을 한 것도 아니라서, 집안에서 내놓은 자식 수준이었지. 시오리코는 이 일을 조사하면서,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게 된단다. 다섯 살 때 일어났던 그 일은 사실 스미오가 잘못한 것이 아니었어. 형수가 질투심으로 고의로 그런 것을 스미오에 덮어 씌운 것이었어. 그때 질투심의 대상이 글쎄, 누구였냐면…. 바로 시오리코의 엄마 지에코였다고 하는구나.

고서를 추적하다 보면 시오리코의 엄마 지에코가 꼭 등장하는구나. 그렇게 사연이 얽히고 또 얽히고 있었던 거야. 큰형은 죽기 전에 그 어찌저찌하여 내막을 알게 되어 동생에게 사과를 하는 의미에서 자신이 가장 아끼던 데라야마 슈지의 <나에게 5월을>이라는 시를 동생에게 주려고 했던 거야.

그리고 가도오 스미오가 책을 이미 팔았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이 책을 무척 좋아하지만, 돈이 없어서 사지 못하는 이에게 공짜로 주기로 했던 것이란다. 가도오 스미오의 심성은 원래 좋았던 거야..

이로서 시오리코는 엄마가 낸 문제를 풀었어. 그래서 엄마로부터 연락이 오고 시오리코는 엄마를 만나게 되었어. 시오리코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엄마가 어떻게 만났는지, 그리고 왜 엄마가 10년 전에 자신들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이야기를 들었어. 그리고 결심했어. 자신이 엄마처럼 책을 엄청 좋아하지만, 엄마처럼 가족을 떠나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돌아온 비블리아 고서당..

그 고서당을 지키고 있던 다이스케에게 고백에 대한 답을 전했단다. 예스.^^

소설 속 인물들이지만, 둘이 잘 되어 다행이구나. 앞으로 남은 두 권에서는 그들의 더욱 달달한 로맨스가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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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

음악은 항상 현재여야만 한다. 박물관에 진열돼 있는 전시품이 아니라,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예술이 아니면 의미가 없어. 아름다운 화석을 캐냈다고 거기에 만족해서는 그냥 표본에 그쳐버리기 때문이지.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방금 전 다카시마 아카시라는 사람의 연주는 재미있었다. 수면의 잔물결, 시원스레 지나가는 바람, 칠흑 같은 우주까지 보였다. 저 사람 역시 자기만의 음악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308)

하지만 굉장히 어려울 거야. 진정한 의미로 음악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지? 음악을 가둬두는 건 홀이나 교회가 아니다. 사람들의 의식이야. 경치가 아름다운 바깥으로 데리고 나갔다고 해서 진정소리를 데리고 나갔다고 할 수 있을까? 해방했다고 할 수 있을까?

(433)

은하계 변두리 어딘가에 지구하고 비슷한 조건의 별이 있고, 비슷한 공기에 음파도 비슷하게 전달된다면 역시 음악이 발달하지 않을까? 그러면 비슷한 악기가 발달한 테고, 피아노 같은 무언가를 은하 어디선가 열심히 연주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 글쎄.”

마사루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가능성은 있겠다. 그러면 그 별에도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있을지 몰라.”

(468)

프란츠 리스트 작곡, 피아노 소나타 나단조.

1852년부터 1853년 사이에 작곡, 초연은 1857.

리스트는 이미 피아니스트에서 은퇴했기 때문에 그의 제자 한스 폰 뵐로가 연주했다.

걸작으로 칭송받는 이 곡은 소나타 형식으로는 상당히 이색적이다. 소나타라는 이름을 붙인 탓에 발표 당시 이 곡이 소나타인지 아닌지를 둘러싸고 심각한 논쟁이 벌어졌다. 너무나 참신한 구조 때문에 매섭게 비난받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반적인 소나타 형식에서는 주제부와 전개부가 악장별로 연주되는데, 이 곡은 악장이 나뉘어 있지 않고 전체가 하나로 이어진 1악장 형식이라는 점을 가장 큰 특징으로 들 수 있다.

30분 가까운 대작으로 어려운 곡이 많기로 유명한 리스트의 곡 중에서도 다양한 기량이 요구되는 최고 난이도의 곡이다.

(538)

가자마 진이 허공을 힐끔 올려다보았다.

세상에 나 혼자 남아도 들판에 피아노가 굴러다니면 끝없이 연주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해.’

세상에 나 혼자.

이런 곳이야?’

아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황야.

바람이 분다. 어딘가 멀리서 새소리가 들린다.

드높은 곳에서 빛이 쏟아진다.

휑하고 척박하지만, 어쩐지 마음이 충만해지는 장소.

맞아, 이런 곳이야.’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음악가라고 할 수 있을까?’

모르겠어. 하지만 음악은 본능인걸. 새는 세상에 한 마리만 남아도 노래하잖아. 똑 같은 것 아닐까?’

(641)

라흐마니노프의 악보를 처음 보았을 때는 이런 걸 어떻게 치란 말이야,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야말로 악보 밖으로 흘러넘치는 것 아닌가 싶을 만큼 수많은 음표들. 양손 화음이 끝도 없이 잔뜩 늘어서 있는 새까만 악보.

동경하던 낭만적인 2번을 몰래 연습해보았을 때는 해서는 안 될 장난을 치는 기분이었지. 물론 그때는 결국 흉내도 내지 못했다. 띄엄띄엄 연주하는 게 고작이라, 한 곡을 끝까지 연주할 체력도 기력도 없었던 것이다.

(654)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에 아주 조금, 지상의 중력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나기 위한 무언가를 덧붙인다면.

음악을 한다는 것이 그에 가장 합당한 답 아닐까? 눈에 보이지도 않고, 나타나는 순간에 곧 사라지는 음악. 그 행위에 정열을 쏟고, 인생을 바치고, 마음을 강하게 빼앗기기 때문에 다른 생물과 구별되는, 인간에게 덧붙은 작은 마법 같은 옵션 기능이 아닐까?

, 어느 정도 진실을 담아낸 답인 것 같아.

(674)

아아, 알 것 같아. 옛날에는 자연 속에서 음악을 듣고 기록해왔는데, 지금은 아무도 자연 속에서 음악을 듣지 않고 자기 귓속에 가두어두지. 다들 그게 음악이라고 생각해.

맞아. 그러니까 갇혀 있던 음악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자고 얘기했어. 어떻게 해야 할지는 선생님도, 나도 몰랐어. 선생님은 이제 안 계시지만 나는 계속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어.

(693)

뮤직. 그 어원은 신들의 기술이라고 한다. 뮤즈의 결실.

소년은 뮤직이다.

그가 곧,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곧 음악이다.

음악이 달려간다.

이 축복받은 세상 속에서 한 사람의 음악이, 하나의 음악이, 고요한 아침을 가르며 바람처럼 멀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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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환상문학전집 4
마가렛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 책의 지은이 마거릿 애트우드는 꽤나 유명한 사람인 것 같구나. 아빠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말이야. 작년에 겉표지를 싹 바꾸어 특별판이 출간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 책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어. 당시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방영되었기 때문에 이 책의 특별판을 제작해서 출간하지 않았나 싶더구나. 작년에 사람들이 이 소설과 이 작가에 대해 엄지척을 드니, 귀가 얇은 아빠도 관심리스트에 책목록을 적어놓았단다.

이 소설은 1985년에 쓴 책이라고 하는구나. 디스토피아에 관한 이야기. 대충 이 정도 사전 지식을 가지고 책을 집어 들었어.

가까운 미래북아메리카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시스템이 변해 있었단다. 나라이름도 길리어드 공화국이라는 나라가 생겼고, 여전히 국경 지역에서는 전쟁을 하고 있었어. 자유를 상징하고 최우선 하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자유가 억압된 사회가 될 수 있을까, 싶었단다. 아무리 소설이라고 하지만 이런 사회가 될 수 있을까 싶어. 소설의 시작에는 어떻게 그런 사회가 되었는지 알려주지 않았어.

주인공 오브프레드의 글을 통해서 당시 사회를 추측해야만 해. 오브프레드도 본명은 아니고, “of”라는 소유격을 뜻하는 전치사와 그녀의 주인 이름인프레드가 합쳐진 이름이야.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 미국이라는 나라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길리아드 공화국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을 이해해야 해.

우선 철저한 계급사회처럼 보였어. 사령관이라고 하는 사람의 집에 많은 하인들, 시녀들이 있었고. 오브프레드도 그런 시녀들 중에 한 명이었지. 오브프레드는 그 이전에도 다른 사령관의 집에 있었고, 이번에도 새로운 사령관의 집에 발령받은 거야. 시녀들은 그 전에 단체로 교육을 받곤 하는 것 같았는데, 그 교육을 관할하는 사람의 직급을아주머니라고 부르는 것 같았어. 길리아드 공화국에서는 사랑도 할 수 없고, 연애도 할 수 없었어. 그런 억압된 규칙에 위반한 자들은 교수형에 처해져서 장벽에 걸려 있었어. 낙태 수술을 했던 의사들, 동성애자들도 교수형에 처해졌단다.

시녀들의 역할은 무엇인고 하니, 사령관의 아이를 낳는 것이었어. 그렇다고 은밀한 침실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도 아니었어. 사령관의 아내가 시녀의 상반신을 잡고 있으면, 사령관이 서서 그 짓을 하는 것이었어. 이것은 성스러운 사랑 행위도 아니고, 동물들이 하는 교미와 다를 바 없었단다. 어쩌다가 이런 사회가 되었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그 궁금증과 함께 페이지를 넘겼단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렇게 세상이 변한다고, 사람들이 순순히 따를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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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대재앙 직후, 그들은 대통령을 쏘아죽이고 의회를 기관단총으로 쓸어 버렸고, 군대는 계엄령을 선언했다. 당시 그들은 이슬람 광신주의자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침착하십시오. 그들은 텔레비전에 나와 말했다. 상황은 완벽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누구나 충격을 받았을 거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정부 전체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다니. 그들은 어떻게 침입했을까.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때가 바로 그들이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켰을 때다. 그들은 한시적인 조치라고 했다. 거리에선 소요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밤마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지시를 기다렸다. 사태의 주범이라고 지목할 수 있는 확실한 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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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렇게 변한 것이라고 짧게 이야기하고 있단다. 물론 초기에는 저항 세력도 많았고, 저항을 할 수 없다면 국경 넘어 도망가려는 사람도 많았어. 오브프레드의 남편이었던 루크도 그런 사람이었어. 오브프레드와 루크 사이에는 사랑스러운 딸도 있었어.

그들은 길리아드 공화국 초창기 시절, 아직 어수선한 분위기일 때, 오브프레드와 루크는 소풍 가는 척하면서 국경을 넘으려고 했지만, 실패를 했고, 그 이후로 그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어. 딸은 입양되었고, 루크도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어. 이건 그들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야.  탈출 실패에는 죽음 만에 기다리고 있었지. 가장 친했던 친구 모이라도 탈출 시도를 했는데,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몰랐어. 행방불명.

2.

시녀들은 아이를 낳지 못하면 쓰레기 폐기 처분하는 것처럼비여성이라는 딱지를 붙여 죽였어. 그들의 역할은 아이를 낳는 거니까 말이야. 한 달에 한번 병원에서 가서 의무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했어. 그런 시녀들의 운명을 알고 있는 의사들이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위험한 유혹을 하기도 해. 어차피 임신을 하지 못하면 죽게 되니까, 자신이 임신을 시켜주겠다고 말이야.. , 끔찍한 사회로구나.

그런데 어느날 남자 하인 닉이 찾아와서 사령관의 서재로 오라고 이야기했어. 사령관의 명령이라고 말이야. 아내 몰래 오브프레드를 서재를 불러들인 사령관. 아빠는 음침한 짓을 하려는 줄 알았어. 그런데 사령관은 스크래블 게임을 하자고 했어. 길리아드 공화국에서는 사라졌지만, 예전에 많이 했던 보드 게임이었지. 낱말 맞추기 보드 게임.

지금 이런 게임을 하는 것은 불법이었어. 그렇게 사령관은 오브프레드와 함께 스크래블 게임을 했어. 매일 얼굴을 보면 정이 든다고 했나? 두 번째 의례가 있는 날은 첫 번째와 다른 감정이 있을 수밖에 없었어. 사령관뿐만 아니라 오브프레드에게도 말이야. 그런 다른 감정을 사령관의 아내가 눈치를 채면 어쩌나 걱정을 했지.

오브프레드는 사령관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와 몰래 만나게 되면서 사람다움을 찾았다고 생각했어. 그로 인해 행복마저 느끼게 되었지. 사령관과는 이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사령관은 지금은 금기가 된 잡지책을 오브프레드에게 보여주기도 했어.

그리고 좀더 나아가 어떤 날은 오브프레드를 어디론가 데리고 갔어. 그곳은 사령관과 비슷한 사람들, 즉 다른 사령관들이 여자들을 몰래 데리고 와서 만나는 일종의 클럽이었던 거야. 그곳은 길리아드 공화국 이전의 세상 같았어. 남자들과 여자들이 어울리는 그런 곳이었지. 상위 계급에 있는 사람들도 진정한 사람 사는 곳을 열망하고 있던 거야. 그리고 그 클럽에서 죽은 줄만 알았던 모이라를 다시 만났단다. 탈출했다가 다시 잡혀 온 이후 겪었던 숱한 고생을 모이라는 이야기해주었어. 클럽에서의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모이라를 다시 만나 기뻤단다.

.

3.

자신 전에도 사령관과 이런 밀담을 나눈 시녀가 있었다고 했어. 그러다가 사령관의 아내에게 들킨 이후 자살을 했다고 했어. 오브프레드는 어떻게 될까. 사령관의 아내의 이름은 세레나인데, 그 세레나는 아이를 무척 갖고 싶었지만, 사령관의 임신시도가 계속 실패를 하자, 오브프레드를 몰래 찾아와서 은밀한 부탁을 했어. 하인 닉과 자리를 주선해줄 테니, 닉의 아이를 임신하고, 사령관의 아이인척 하라고 말이야.그 정도로 아이를 원했던 것 같아.

오브프레드도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가져야 하니까 그러겠다고 했어. 그 이후 오브프레드는 닉에게 사랑을 느꼈어. 닉을 몰래 찾아가 사랑을 나누기도 했지. 닉은 무슨 조직에 있었던 것 같았어. 닉과 같이 무기를 들고 들이닥친들에게 오브프레드가 끌려갔어. “눈”들은 비밀 경찰 같은 사람들이었지. 국가기밀법 위반이라는 죄목이라고 했고, 사광관과 세레나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단다.

사실 그 일은 오브프레드를 탈출시키기 위한 속임수였거든…. 그렇게 오브프레드의 글은 맺었어. 그 이후 오브프레드는 다시 자유를 찾았는데, 다시 잡혀왔는지 알 수는 없었단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오브프레드의 글이 발견되어 그 글에 대한 연구논문이 쓰여졌지만, 그녀가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기술되지 않은 채 소설은 끝을 맺게 되었단다.

미래를 그린 소설이긴 한데, 너무 어둡게 미래를 그렸단다. 그리고 주인공의 행방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른 채 소설이 끝이 났단다. 오브프레드가 길리아드 공화국에 대항하는 해방군에 합류를 하면서 끝이 났다면 희망을 볼 수도 있을 텐데 말이야마지막 그녀의 연구 논문을 발표하는 사람들의 분위기로 길리아드 공화국 이후의 세상을 추측해야 하는 것 같은데, 아빠로서는 그것까지 추측하기에는 능력 부족이로구나.


(102쪽)
나는 기다린다.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내 자아는 지금부터 내가 구성해야만 하는 물건이다. 연설을 짜맞춰 구성하듯이. 지금부터 내가 내놓아야 하는 것은 선천적인 아니라, 후천적으로 만들어낸 인공적인 무엇이다.

(126~127)
우리는 기다리고, 복도의 시계는 똑딱거리고, 세레나는 담배를 한 개비 더 꺼내 불을 붙인다. 그 사이 나는 자동차 속으로 들어간다. 토요일 아침이고 9월이다. 우리한테는 아직 자동차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사정이 나빠져서 자동차를 다 팔아야만 했다. 내 이름은 오브프레드가 아닌 다른 이름이다. 지금은 금지된 이름이라 아무도 불러주지 않지만. 나는 상관없다고 스스로를 타이른다. 이름이란 건 전화번호와 같아서 다른 사람들에게나 쓸모 있는 거라고. 하지만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일 뿐 사실이 아니다. 이름은 중요한 문제다. 나는 그 이름의 기억을 숨겨놓은 보물처럼 언젠가 다시 돌아와 파낼 나만의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그 이름이 묻혀 있다고 여기고 있다. 나의 진짜 이름에는 마력이 있다. 상상할 수도 없이 아득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부적 같은 마력이. 밤마다 내 싱글 침대에 누워 두 눈을 감으면 그 이름이 눈앞에 어른거미려 떠다닌다. 손에 닿을락 말락 어둠 속에서 빛을 내며 떠다닌다.

(336)
옛날 우리의 사고 방식을 돌이켜 보면 낯설기만 하다. 손만 뻗으면 뭐든 가능할 것처럼 생각했다. 우연이라든가 한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한없이 뻗어가는 우리 삶의 경계를 마음대로 빚고 수정하는 일을 영원히 계속할 수 있을 것처럼, 우리는 믿고 생각했지.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나 역시 그렇게 행동했다. 루크는 내게 첫 남자가 아니었고, 어쩌면 마지막 남자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 얼어붙어 버리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시간 속에, 허공 한가운데, 그때 그 나무들 사이에 떨어지는 모습으로, 그렇게 정지해 죽어 버리지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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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03-04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특별판으로 사둔 책이 책장에서 반짝거리는데 얼릉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독서시간이 아빠와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도외시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데요.
북홀릭님의 자녀들에 대한 편지를 보며
훌륭한 대안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언젠가 따라해도 되죠? ㅎㅎ

bookholic 2018-03-05 00:08   좋아요 1 | URL
물론이지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애들이 어려서..) 아직 이 독서편지의 존재를 모릅니다. ㅎㅎ
나중에 커서 보면... 읽다가 꾸벅꾸벅 졸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녀이야기> 즐독하시고요.
월요일인데, 즐거운 한주 되십시오^^
 














(9)

아무리 객관적인 척 논리를 펴도 결국 인간이란 자신의 선호, 자기가 살아온 방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게다가 현대 심리학의 연구 결과는 인간의 성격조차 타고난 요소, 즉 유전자의 영향이 상당하다고 말해준다. 그 바탕 위에 인간관계, , 독서 등을 통해 쌓아온 직간접 경험들이 결국 라는 고유한 개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26)

여기서 말하는 개인주의란 유아적인 이기주의나 사회를 거부하는 고립주의가 아니다. 개인주의는 근대 계몽주의, 합리주의와 함께 발전하며 서구사회의 근간을 형성했다. 합리적 개인주의자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이루어 살 수밖에 없고, 그것이 개인의 행복 추구에 필수적임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사회에는 공정한 규칙이 필요하고, 자신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될 수 있음을 수긍하고, 더 나아가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 타협할 줄 알며, 개인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들과 연대한다. 개인주의, 합리주의, 사회의식이 균형을 이룬 사회가 바로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다.

(51)

서교수(서은국 교수)에 따르면, 행복감이란 결국 뇌에서 느끼는 쾌감이다. 뇌가 특정한 종류의 경험들에 대해 기쁨, 즐거움, 설렘 등의 쾌감을 느끼도록 진화한 것이다. 그런데 실증적 연구 결과, 인간이 행복감을 가장 많이, 자주 느끼는 원천은 바로 인간이었다. 가족, 연인, 친구, 동료…… 인간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많은 쾌감을 느끼는, 뼛속까지 사회적인 동물이었던 것이다. 돈은 어느 정도의 문화적 생활이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감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그룹의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사회성이 높은 외향적인 성격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모든 생명체처럼 인간에게도 생존과 번식이라는 유전자의 명령이 핵심 과제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인간에게 생존과 번식에 가장 필수적인 자원은 동료 인간들이었다. 그러니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활동, 즉 동료 및 이성과 어울리는 활동을 할 때 뇌에서 쾌감이라는 보상을 주어 이를 촉진시키는 쪽으로 진화한 것이다.

(57)

내성적인 이들도 외향적인 이들과 마찬가지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지만 적절한 거리가 유지되어야 행복을 느끼는 체질인 것이다. 미각이 지나치게 예민해 강한 맛의 음식에는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이런 차이를 인정해주지 않고 무조건 집단이 요구하는 술 잘 먹고 윗분 잘 모시고 분위기 잘 띄우는 씩씩한 전사로 거듭날 것을 강요하는, 그래야 어른 되었다고 취급하는 문화 속에서 예민하고 내향적인 사람들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함부로 간섭하지 않고 배려하는 성숙한 개인주의 문화의 사회라면 이들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집단의 강요 없이, 자기가 스스로 선택한 취향이 맞는 작은 인간관계들의 고리 속에서 말이다.

(93)

인간은 자기 경험의 한계에 갇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결국 나 또한 과거의 나 자신과 비슷한 아이들이 기회를 빼앗기는 것에 가장 분노하는 것이다. 물론 계층 이동의 사다리, 공정성 측면에서 이것도 중요한 이야기다.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니다. 소수의 공부 잘하는 아이뿐 아니라 다수의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에 대한 고민이 사실 더 중요하다. 또한 사회에는 공부 잘하는 것 외에 다양한 재능이 필요하다. 대학 입시를 봉건시대의 과거제도처럼 생각하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생각은 자칫 엘리트주의로 흐를 수 있다. 공공의식이 부족한 엘리트는 사회에 오히려 더 큰 해악만 끼칠 수 있다는 것 역시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136)

법관들도 말에 대해 주의하고 반성하기 위해 전문가의 강의를 듣는다. 그때 배운 것이 있다. 데이의 <세 황금문>이다. 누구나 말하기 전에 세 문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흔히들 첫번째 질문만 생각한다. 살집이 좀 있는 사람에게 뚱뚱하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 아니다. 그러나 참말이기는 하지만 굳이 입 밖에 낼 필요는 없는 말이다. 사실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말라는 두번째 문만 잘 지켜도 대부분의 잘못은 막을 수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필요 없는 말로 남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가고 있는지……

(162-163)

실제로 의미있는 변화를 도출하는 것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는 과격한 목소리들이 아니다. 이는 오히려 반대 의견을 가진 집단의 반발과 결속만 강하게 만들어 의견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뿐이다. 한 진영 내부에 생기는 작은 균열에서 변화의 지점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균열을 만드는 것은 같은 진영 내의 온건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작고 부드러운 다른목소리들이다. 작은 균열들이 생기기 시작하면 선거와 같은 큰 세력 다툼의 시기를 전후하여 집단 내부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생긴다.

(192)

앞서 얘기했듯이 인간의 마음은 아직도 수십만 년 전 원시시대의 자연선택 과정에서 형성된 뇌의 지배를 받고 있다. 이 시차는 금방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인간에게 끌린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인간에게 있어 동료 인간이 가장 큰 행복의 원천이라는 점은 미래에도 유지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기계가 발전해도 인간은 대체불가능한 자원일 수 있다.

(256)

높은 세 부담을 북유럽 사람들이 감수하는 것은 내가 낸 세금이 효율적으로 쓰여서 반드시 내게 혜택이 돌아온다는 신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청렴하고 유능한 정부와 공무원들이 오랫동안의 실적으로 그런 신뢰를 얻어낸 것이다. 사회를 바꾸려면 도덕적인 것만으로 부족하고 유능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국민이 높은 세율을 감수하게 하려면 먼저 세금이 효율적으로 사용되어 국민에게 골고루 그 혜택이 돌아온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구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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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북유럽사회에서 배울 것은 정치나 제도 이전에 먼저 그들의 문화적 전통이 아닐까 한다. 스웨덴의 문화적 전통 중 중요한 것으로 라곰(Lagom)’이 있다.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게, 적당히라는 뜻이다. 바이킹 시대 술통을 돌려가며 마시는 풍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 사람이 너무 많이 마셔버리면 다음 사람이 마시지 못하니 적당히 나눠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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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미래가 고정되어 있지 않은 이상 20세기의 경험만으로 모델을 찾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움직이는 과녁에 화살을 쏘아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우리 현실에 맞게 응용할 수 있을 뿐 그대로 베끼면 되는 모범답안은 세상에 없다. 할 일은 지금 우리가 처한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하나하나 실용적으로 찾아가며 앞서가는 나라들의 장점이나 경험을 부분적으로 참고하는 것이다. 도그마에 빠지지 말고, 유토피아적 환상을 경계하며, 더디더라도 분명히 내일은 오늘보다 낫게 만들 수 있다는 담대한 낙관주의를 가지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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