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탈핵은 가능하다. 탈핵의 대안이 무어냐고 묻지만,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탈핵은 그 자체로 대안이다. 탈핵이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우리는 길을 닦아야 한다. 우리의 삶과 미래를 핵 마피아들에게 저당 잡힐 수는 없다. 설계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를 폐쇄할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 수명 연장을 할 것인가의 문제를 누가 정해야 할까? ‘우리 원자력계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관료들이 밀실에서 짬짜미하는 것을 계속 내버려둘 것인가, 아니면 공론의 장에서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결정할 것인가? 핵발전소를 더 지을 것인가, 아니면 대체 에너지에 과감한 투자를 시작할 것인가? 이런 문제는 모두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 독일이 탈핵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 문제를 핵발전 전문가들이 아니라 일반인의 상식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탈핵을 결정한 17인의 윤리 위원회에는 소위 말하는 핵발전 전문가는 한 명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민주주의란 결국 일반인의 상식에 의해서, 또 일반인들의 이해관계가 반영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이다.

(28)        

더욱 중요한 것은 1mSv라는 기준의 정확한 의미입니다. 이 수치는 어떤 기분으로 만들어졌을까요? 전문가들에게 물어봤더니, 의외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이 선을 넘으면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이 선 아래면 괜찮다는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자연환경에서 나오는 자연 방사선(혹은 바탕 방사선이라 부르며, 절반 정도는 땅에서 올라오는 라돈으로 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을 제외하고, 일상적으로 불가피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인위적은 상사선량을 어느 정도 낮은 수준까지 관리할 수 있는가로 기준을 잡은 것입니다. 건강이 아니라 통제(control) 가능성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1mSv라는 수치는 국가적으로 볼 때 그 이상의 인위적인 초과 노출은 관리할 수 있되, 그보다 더 낮게는 관리하기가 어려운 수준 정도로 보면 되겠습니다.

(30)

방사선의 생물학전 영향은 방사선(에너지)이 사람 몸을 관통하면서 세포 내의 DNA 연기 서열을 끊거나 손상시키면서 시작됩니다. 본래의 염기 서열을 끊거나 손상시키면서 시작됩니다. 본래의 염기 서열이 끊어지거나 훼손되면 생체는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 수리 작업을 하게 되는데, 이때 일부 수리 작업이 잘못되면서 비정상적인 세포, 즉 암세포가 발생하게 됩니다. 잘못된 DNA에서부터 암 발생까지의 과정이 짧게는 2(백혈병의 경우)부터 위암, 폐암, 간암 같은 고형 암(딱딱한 덩어리 암)의 경우는 20~30년까지 소요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암 발생 초기에 적절하게 치료하지 않으면, 해당 암 세포들이 혈액이나 체액을 통해 다른 장기로 퍼지면서 전이가 됩니다.

(34)

세계적으로 위 내시경으로 위함 조기 검진을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위 내시경 검진 제도는 일본을 따랐던 것인데 일본조차도 현재 이 제도를 포기하려고 검토 중에 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해봤으나 이를 통해 생존율이 높아졌다는 근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위 내시경 검사를 열심히 해서 위암을 발견해 치료하는 효과나, ‘아프기 시작할 때 병원에 갈 수만 있다면(즉 의료 이용 접근성이 일정하게 보장만 된다면)’ 병원을 찾아가 그때 치료하는 효과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위 내시경 검사는 종종 부작용까지 수반되는 위험한 검사합니다. 위 속에서 기구가 잘못 움직이다가 위벽에 상처를 내거나 심한 경우 구멍을 뚫게 되어(위장 천공) 결국은 배를 째고 수술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위 내시경 검사 도중에 조직 검사 등을 많이 하는데, 조직을 떼어낸 후 지혈이 잘 안 되어서 계속되는 출혈로 2차 처치를 받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이런 합병증 리스크까지 계산하면, 정책적으로 이러한 제도를 고수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 심각하게 재고해봐야 합니다. 세계보건기구의 건강검진 항목이나 미국에서 나오는 자료들에는 건강검진으로서 위 내시경 검사는 하지 말라는 권고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위 내시경 검사는 합병증 리스크가 더 높을 수 있고 검진의 효과는 증명된 바 없다는 것이 세계보건기구의 공식 보고서 내용입니다.

(65)

지금 기준치인 100Bq/kg을 넘은 일본 수산물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단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이 기준치 때문에 통과시키지 않은 일본산 수산물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건 경부고속도로의 속도제한이 시속 1000km로 되어 있는 것과 같아요. 도저히 위반할 수 없는 기준이죠. 그래서 우리 국민들의 피폭량을 줄이는 데 정부의 기준치가 한 번도 제 역할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반만 년 역사에 한 번도 발견되어본 적이 없는 숫자를 기준치로 두고는 그 이하는 모두 안전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113)

그럼 왜 포장 인도 위에서 유독 방사선량이 높았던 걸까요? 사실 모니터링 포스트를 세울 때는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합니다. 또 포스트가 넘어지지 않도록 바닥에 콘크리트와 철판도 깔지요. 이런 요소들이 방사선을 조금 차단해주기는 할 겁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보도에 깔린 부드러운 타일입니다. 도로에는 눈이 와도 잘 녹도록, 또 걷는 사람들의 무릎에 충격이 덜 가도록 부드러운 타일을 까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통행인을 배려한 것이지요. 하지만 소재가 부드럽다는 건 빗물이 스며들기 쉽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보도블록에는 방사선이 많이 섞인 비가 스며들어 남아 있습니다. 수압이 높은 물 청소기로 씻어내도 다 씻기지 않아요. 그러니 저 보도에서 방사선을 줄이려면 블록을 다 철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철거한다 한들 그 철거한 보도블록을 보관할 장소도 마땅치 않습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저런 보도블록은 통학로처럼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길 주변에 많이 채택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161-162)

핵발전은 본질적으로 물질에 대한 끝없는 탐욕과 에너지 중독의 산물입니다. 인간성 파괴를 부추기는 악마의 발명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이것은 가장 비민주적인 속성을 지녔지요. 핵발전은 핵무기와 직결되는 민감한 문제라서 공개적으로 운영할 수가 없습니다. 관련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제대로 보도도 되지 않지요. 독점적이고 대규모로 집중적으로 반공동체, 반인권, 반생명적이라는 속성도 명백합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핵발전은 자연의 질서를 근원적으로 교란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자연과 별개로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핵에너지란 본질적으로 인간 능력의 한계 밖에 있는 문제입니다. 비유하자면 핵에너지는 현대판 판도라의 상자이자, 기독교 관점으로 보자면 선악과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아주 달콤해 보이는 에너지원이지만 자손 수천 대에 이르는 재앙을 가져올 수 있고 나아가 인류의 파멸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188)

탈핵은 거저 실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제기하고, 논증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함께할 사람들을 모아야 합니다. 이런 것이 탈핵을 위한 시민 행동입니다. 법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도 이 일에 함께해야 합니다. 가깝게는 탈핵을 주장하는 정치인에게 투표하는 일부터, 멀게는 탈핵 프로세스를 짜고 단계별로 국회를 압박하며, 탈핵을 위해 동아시아 시민들이 연대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실행에 옳기는 일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많습니다. 브레이크 없는 핵발전 기관차를 멈출 힘은 행동하는 국민만이 갖고 있습니다.

(246)

서울의 방사능이 왜 이렇게 도쿄보다 높은지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환경운동가인 최병성 목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건축이나 도로 포장에 쓰이는 시멘트와 아스팔트에는 방사능이 섞인 산업 쓰레기와 철근들이 무차별로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한심한 일입니다. 저질 시멘트나 아스팔트도 문제겠지만, 후쿠시마 사고의 영향을 지금 우리나라도 전국적으로 계속 받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저는 한동안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를 가지고 다니다가 포기했습니다. 방사능이 전국적으로 다 나오니 갖고 다니는 게 의미가 없더군요.

(257)

우리가 사람답게 살려면 기본적으로 인간다운 위엄을 갖춰야 합니다. 품위 있게, 예의 바르게 남의 처지를 이해해야 사회가 성립됩니다 아무리 제도와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것은 한 사람, 한사람에게서 출발합니다. 현대인들이 옛날 사람들에 비해 인간적으로 왜소한 것은 틀림없어요. 하지만 지금 현대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복합적인 위기 상황은, 과거의 그 어떤 세대도 경험하지 못했던 정신력과 지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녹색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서 재생 가능한 태양에너지와 식량 자급 시스템을 확보하고, 전쟁을 그만 두고, 평화 체제를 확립하고, 무엇보다 경제성장을 멈추고 생활수준을 낮추어 가난하고 소박한 상부상보의 생활에 만족을 느끼는 삶의 방식을 재창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강인한 정신력과 탁월한 지혜가 필요한데, 지금같이 상상력이 결핍된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것이 과연 가능할지 참으로 걱정입니다.

(289)

사실 친환경 식품이라도 먼 거리에서 온 제품이거나 소비 규모가 크다면 에너지의 관점에서 친환경적이기 어렵습니다. 또 유기농이라고 해도 화학비료를 쓰지 않았을 뿐, 에너지를 투입하는 가온 재배로 얻어낸 것일 수도 있어요. 즉 비닐하우스에서 전기나 석유 등으로 열을 투입해서 채소를 기른다면 재배 과정에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환경적으로 건전하다고 보기는 어렵지요. 그래서 일부 생활협동조합에서는 가온 재배를 하지 않도록 생산 농가와 따로 계약을 맺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계절과 관계없이 어떤 채소든 1년내내 소비하려 하면 저온 저장 시설을 가동해야 하니 또다시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게 됩니다. 그러니 당장 내 입에 들어가는 것이 깨끗하다고 해서 친환경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식품 소비에 있어 에너지 문제까지 확장해 고민할 때 본질적으로 친환경적인 내용을 갖추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까지 다다른 사람이 많지 않은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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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us_fugit 2018-05-21 0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미나에서 알게된 한 일본인 시만단체 회원분이 일본에서 측정되는 방사능 수치조차 믿을 수 없다는 말을 한 적 있습니다. 측정소가 정확한 위치에 있지도 않거니와 측정기를 비닐로 덮어 씌우거나 한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일본 정부는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때도 한동안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국민의 동요를 걱정해서 였다지만 음.... 현 상황과 비교해봐도 참으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녹색평론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후쿠시마 건은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습니다.

bookholic 2018-05-22 00:07   좋아요 1 | URL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방사능과 핵발전소는 정말 지구의 암덩어리로 미래의 걱정거리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이런저런 피해를 주고 있지만, 인류의 후세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래의 세대들이 지금의 세대들에게 많은 원망을 할 것 같습니다.
더 늦기 전에 탈핵을 해야 할 텐데요...

Tempus_fugit 2018-05-22 00:53   좋아요 1 | URL
정말 정말 옳으신 말씀입니다! 말씀하신 바와 같이 미래 세대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세대에게 그럴 권리도 없습니다. 사용 후 핵연료 관리비용도 천문학적이지만 더 나아가 현재 우리들, 미래세대들의 불안으로 인한 비용을 경제적으로 환산한 것을 더한다면 실로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와닿지는 않겠지만 탈핵 쪽으로 더 여론이 조성되었으면 하는 bookholic님과 같은 바램입니다.
 
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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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에 출간되어 아빠가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올라 있던 <영초언니>를 이번에 읽었단다.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소설인줄 알았어. 그런데, 소설이 아니고 지은이 서명숙과 그와 함께 젊음을 불태웠던 언니들과 동료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꼭 한번 읽고 싶었어. 아빠와는 약 20년 차이를 두고 대학 생활을 했던 그들그들의 젊음은 어땠는지 알고 싶었어.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은 <세 여자>라는 소설이 떠올랐단다. 시대는 달리 했지만, <세 여자>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영초언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공통점이 있었지. 불의에 참지 않았고, 부조리한 사회를 손수 고치려 했고, 무식한 권력에 저항했던 여인들행동하는 지식인들

아빠가 책을 읽을 때 북커버를 두르고 읽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북커버를 벗겼는데, 책 뒷면에 유명 인사들의 추천사가 실려 있었단다. 그들 중에는 아빠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조정래, 손석희, 유시민도 있었어. 이렇게 훌륭하신 분들이 추천한 책이었다니.. 그들의 추천사 중에서 유시민의 추천사를 발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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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그린 것은옛사랑이 아니라첫사랑이다. 세상에 대한 첫사랑으로 불타올랐던 청춘, 같은 대상을 두고 첫사랑에 빠졌던 여자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설명할 길 없는 불운 때문에 말을 잃어버린영초언니를 대신해, 대책 없이 씩씩했고 지금도 여전히 어여쁜 그 첫사랑의 떨림과 짜릿함을 전해준 서명숙이 내게 물었다. 짧고, 부질없으며,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못할 우리네 인생에서 이것 말고 다른 무엇이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나는 대답한다.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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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래 선생님의 추천사도 소개해주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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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겨울의 매서운 밤추위를 무릅쓰며 1700만 개의 촛불을 밝혀 끝내 민주시민 혁명을 이룩해냈다. 그 줄기찬 협동과 용기와 인내는 어디서 온 것인가. 그 뿌리는 바로 유신독재 투쟁으로 이어져 있다. 우리가 더 온전한민주세상을 갈망한다면 필히 이 <영초언니>를 읽어야 한다. 영초언니의 희생에 사죄하는 마음으로, 역사에 대해 책임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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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의 지은이 서명숙은 제주 서귀포 출신으로 올레길 개척자로도 유명한 사람이란다. 기자 출신이라고 해서 취재한 글을 모은 책인 줄 알았는데,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을 적은 글이었어. 서귀포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는 제주도 안에서만 자랐어.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으니, 바깥세상을 접할 수 있는 것은 왜곡된 텔레비전 방송뿐이었지. 그렇다 보니 서명숙은 어린 시절 박정희를 존경했다는구나.

그러다가 1976년 고려대에 입학하게 되고, 고대 학보사에서 기자생활을 했대. 그러면서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잘못 알고 지냈는지 깨닫게 되었대. 점점 세상을 볼 수 있는 진짜 눈을 갖게 된 거야. 그런데, 그 세상이라는 것이 그동안 생각했던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라, 온갖 불의가 판을 치고, 부조리한 세상이었어. 그들의 아름다운 청춘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상.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들은 총칼 앞에 조용히 지낼 수 밖에 없었단다. 몇 해 전부터 연이어 내려진 긴급조치 때문에 대학에는 사복경찰들이 잠복해 있었고, 대학가에서 시위가 사라진 것도 한참 전이었지. 그렇게 1970년대 대학가는 암흑의 도시와 같았단다. 그러고 보면 199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아빠는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다가도, 앞서 1970년대, 19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선배님들의 저항에 감사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서명숙은 학보사 선후배 모임에서 졸업생인 천영초를 알게 되었어. 말로만 들었던 전설적인 선배, 천영초. 천영초의 권유에 따라 같이 자취를 하게 되었단다. 천영초는 72학번으로 고대를 졸업하고 한신대에서 대학원으로 다니고 있었어. 천영초를 통해서 고려대 여학생 선후배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은가라열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대. 그 모임을 통해 같이 공부도 하고, 여권 운동도 했었대.

2.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긴급조치로 인해 시위가 없었다고 했잖아. 대학생들이 암암리에 약속을 해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습적인 시위를 했대. 천영초도 이 시위를 주도한 것으로 나와. 서명숙은 같은 학보사 동기 엄주웅의 제안으로 야학활동을 하기도 했어. 구로동에 공장들이 많아서 그곳에서 야학교사로 일했고, 그러면서 다른 대학들의 학생들과 교류도 많이 했대. 그때 반가운 이름도 등장을 했단다. 서울대 78학번 서울대 새내기 유시민유시민의 등장은 이 책의 큰 줄기에 관련 없는 이야기지만, 아빠가 좋아하는 유시민이 까메오처럼 등장해서 반가워서 이야기한 것이란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습 시위 이후 경찰의 단속은 더욱 심해졌고, 대학가에서도 심심치 않게 다시 시위가 벌어졌어. 학생들의 용기들이 커져갔어. 아니, 시대가 점점 절박한 상황이 되어갔던 거야. 고려대에서도 각종 학생회에서 시위를 준비를 했는데, 가라열 모임에서미모를 담당했던 생물학과 혜자언니의 시위 주동은 뜻밖이었다고 하는구나. 당시 주위 시동을 하게 되면, 감옥에 가는 것은 정해져 있는 것이고, 감옥에 가면 모진 고문을 받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그럼에도 시위의 주동을 하겠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것이었어. 얌전하고 조용하던 혜자언니가 그걸 해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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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그도 그럴 것이 이날 언니가 연단에 선 장면은 그동안 우리 모두의 잠재의식에 깔려 있던 고정관념, 운동권의 기존 프레임을 일거에 무너뜨린 것이었다. 입학하고 난 뒤에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이 들은 이야기는 데모할 때 여학생이 남학생에게 돌을 날라다주거나 마실 물을 떠다주거나 피를 닦아주었다는 등의 미담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에서 치마폭으로 돌을 나른 조선시대 여인들의 현대판이라고나 할까. 그런 남성 중심적인 대학에서 이념서클 출신도 아니고, 운동권에서도 사실상 무명이나 다름없는 여학생이 데모를 주동하다니, 일대 사건이었다. 그동안 소문으로 무성하게 나돌던데모 주동자 예상 명단에 혜자언니는 올라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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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자언니는 예상했듯이 감옥에 갔고, 예상했듯 모진 고문에 시달려야 했어. 이후 혜자언니는 줄곧 노동운동 일선에 있었고, 나중에 결혼도 노동운동 때 만난 운동가와 했으며, 최근까지도 활동을 하고 있다는구나.

티격태격하던 학보사 동기 엄주웅이 어느날 늦은밤 찾아와 사랑 고백을 했어. 그리고 바로 다음날 시위를 주동하고 경찰에 잡혀 감옥에 갔다고 하는구나. 서명숙 또한 감옥에 다녀왔어. 조금이라도 학생운동을 했다가는 긴급조치에 걸려서 감옥 구경을 아니할 수 없던 시절이었지. 교생실습 때문에 고향에 내려왔다가 교생실습은 나가보지도 못하고, 다시 서울로 끌려와 감옥에 갔단다. 당시는 그런 시대였어. 그리고 그런 시대는 한 발의 총알이 유신의 심장을 멈추게 할 때까지 계속되었단다.

3.

시대가 바뀌어 1980년대가 되었지만, 불운하게도 봄은 오지 않았어. 여전히 군사독재시대.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에 희생된 많은 사람들. 하지만 그 소식은 콱 막혀서 전혀 알지 못했어. 영초언니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밝히려는 운동을 했어. 영초언니는 늘 그랬어.  언제나 그런 사람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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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그 좁은 방에서 영초언니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는 유인물을 만들어서 등사하고 있었다. 본인이 직접 광주를 찾아가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어떻게든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시기에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뜯어말리고 싶었지만, 온몸으로 결기를 내뿜는 그녀 앞에서 말을 꺼낼 수조차 없었다. 경험칙상 많은 걸 안다는 건 그만큼 위험해지는 지름길이었다. 이렇게 만든 유인물을 누구를 시켜서 어디에 배포할 것인지 나는 굳이 물으려 하지 않았다. 언니도 내게 같이하기를 권하지 않았다. 자기 때문에 한 차례 구속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미안해하고 가슴 아파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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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밝히려고만 했을 뿐인데, 그런 일들로 영초언니는 감옥을 들락날락해야만 했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불과 몇 십 년 전 이야기란다. 영초언니는 같이 운동을 하던 정문화라는 사람과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으면서 영초언니도 젊은 날의 열정이 점점 사그러들었다고 하는구나. 결혼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나봐. 그리고 정문화와 헤어지고, 아이와 둘이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고 하는구나. 아이가 한국에서 왕따를 당해서 이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대. 홀로 남은 정문화는 젊은 나이에 큰병을 얻어 그만 세상을 일찍 뜨고 말았대. 다른 운동권들이 정치계에 뛰어들어 이름을 날리던 것과 상반되게, 그의 죽음은 너무 허망했단다.

지은이 서명숙은 가끔 영초언니와 안부를 주고받았는데, 캐나다에 정착을 하고 나서 영초언니가드디어행복하다는 이야기도 들었어. 비록 완벽한 행복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얻은 행복이었지.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어. 캐나다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 뇌를 크게 다쳐서 시력을 잃고, 기억의 대부분을 잃어버렸다고 하는구나. 사고소식을 듣고 서명숙은 바로 캐나다로 날아가서 영초언니를 만났지만, 아무 기억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영초언니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어. 그저 눈물만….

영초언니는 나중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요양을 하고 있대. 기억은 작은 파편들만 기억하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정신연령도 서너 살 정도라고 하는구나. 그렇게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있던 영혼은 타지의 교통사고와 함께 육신 밖으로 튕겨 나간 다음에 찾아오지 못했던 거야.

그리고 모두에게 잊혀진 사람이 되었어. 서명숙은 그런 영초언니의 기억을 이 책을 통해 기록한 것이야. 그러면서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었어. ,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지하지만 우리고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데 자신의 젊음을 마쳤던 사람을 알게 되고, 고마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어.

바람이 있다면, 기적이 일어나서, 영초언니의 영혼이 잃어버린 육신을 찾아 돌아와, 모든 기억을 되찾아 민주주의 완성체가 되어가는 대한민국의 모습에 보고 환하게 웃으셨으면 좋겠구나.


(43)
더 큰 자괴감은 외부검열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자기검열을 하기 시작하면서 찾아들었다. 교수님이나 간사 선배에게 한소리 안 듣기 위해, 막판에 대형사고를 치지 않으려고, 우리는 스스로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누가 기획안을 내놓으면 "그거 되겠어? 나갈 수 있겠어?" 자조 섞인 농담이 오갔다. 물정 모르고 용감한 제안을 내놓는 동료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도 형성되었다. 처음에는 안팎의 압력에 대해 반발하고 저항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부자유를 스스로 선택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표현도 점점 에둘러서, 비판인지 아닌지 꽈배기처럼 배배 꼬인 문장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래야만 검열의 눈을 피해가고 비껴갈 수 있었기에.

(49)
"담배 없이 대체 무슨 낙으로 사니? 이 답답한 세상에 담배라도 없으면 정말 숨막혀 죽을 것 같 같은…… 너도 한번 피워볼래?"
‘담배 없이 무슨 낙으로’라는 말이 내 가슴에 탁 꽂혔다. 그즈음 나는 방황하고 있었다. 대학과 학보사를 둘러싼 숨막히는 분위기, 신문사를 떠난 동기, 야학과 신문사 사이에서 흔들리는 나……

(117)
무고한 양민들이 좌익으로 몰려서 죽어간 4.3의 영향 탓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도로 친정부적인 정치의식을 갖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억울하게 몰리지 않으려는 일종의 자기방어 기제였으리라. 시장통에서 식료품 가게를 하면서 바쁜 일상에 휘둘리던 우리 부모의 정치의식도 제주도민의 평균의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평균 이상의 ‘우파 보수층’이었다. 이북 출신인 아버지는 인민군으로 강제 징용당해서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혔지만 김일성 치하의 북한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남한을 선택한 이른바 ‘반공청년단’ 소속이었다. 게다가 엄마는 당시 같은 문중이던 현씨 집안이 배출한 현오봉 국회의원의 선거운동을 열심히 하던, 시장통의 공화당 조직책이었다.

(237)
그 좁은 방에서 영초언니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는 유인물을 만들어서 등사하고 있었다. 본인이 직접 광주를 찾아가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어떻게든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시기에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뜯어말리고 싶었지만, 온몸으로 결기를 내뿜는 그녀 앞에서 말을 꺼낼 수조차 없었다. 경험칙상 많은 걸 안다는 건 그만큼 위험해지는 지름길이었다. 이렇게 만든 유인물을 누구를 시켜서 어디에 배포할 것인지 나는 굳이 물으려 하지 않았다. 언니도 내게 같이하기를 권하지 않았다. 자기 때문에 한 차례 구속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미안해하고 가슴 아파했으므로.

(272)
행복! 당시의 내게는 참으로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단어였다. 사전 속에서나 존재할 뿐, 실재하지 않는 그런 단어로 여겨졌다.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정치부 기자들의 최대 전쟁터, 시사지의 판도를 좌우하는 대목인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시사지 편집장인 내게 ‘행복’은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잠시 한눈을 팔았다가는 총 맞고 전사하기 딱 좋은 전쟁터에서 이 악물고 용케 버텨내고 있었기에.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걸어가는 느낌이었고, 내 영혼의 우물물은 바싹 말라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자각에서 진저리치는 나날이었다.

(280)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순간, 뭐라 형용하기 힘든 비참한 심경이 들더라고. 우리가 그토록 목숨 걸고 맞서 싸웠던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한 향수가 그 딸을 다시 대통령으로 만들다니. 우리가 젊은 날 한 그 모든 일들이 역사로부터, 국민들로부터 모욕당하고 조롱받는 느낌이랄까. 박대통령이 당선된 뒤로 나는 텔레비전 뉴스만 봐도 입는 것 같아서 한동안 뉴스조차 보지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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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김탁환 지음 / 돌베개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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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김탁환 작가가 있어. 그는 조선시대와 근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로 유명한 사람이야. 아빠도 그의 그런 역사소설로 그를 알게 되었고, 그의 소설들을 꽤 많이 읽었어. 그렇게 캐릭터가 강했던 김탁환은 세월호 사건 이후 세월호 작가가 되었단다. 김탁환의 심장은 끔찍한 불행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심장을 가지고 있던 이였어. 어이 없는 사고로 300명이나 넘는 사람들이 죽었는데, 그 의문투성이 사건에 대해 진실을 밝혀야 하는 국가는, 그 진실을 은폐하려고 했으니, 유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들은 분노했단다. 그래서 스스로 진실을 밝혀내고자 하는 이들이 각계에 있었는데, 김탁환도 그런 분들 중에 한 명이었어.

그 사건 이후 김탁환은 소설을 통해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이야기하려고 했고, 세월호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주었어. 그런 작품으로 먼저 <거짓말이다>라는 장편 소설을 썼어. 아빠는 그 책이 재미있었지만, 너무 슬펐어. 그 소설은 가상이 아니라, 실제였기에 그냥 재미로만 볼 수는 없었거든. 슬픔이 밀려들어 눈물이 핑 돌게 했단다. 그리고 작년에는 단편소설집으로 다시 한번 세월호를 이야기했어.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이 소설집에는 8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는데, 각 이야기에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주인공이었단다. 그들은 모두 공통의 슬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어. 아빠는 이 책을 세월호 4주기에 맞춰 읽었단다. 아빠가 게을러서 이제서야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하지만 말이야.

아빠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세월호 사건을 잊지 않는 것이잖아. 아빠는 아빠 나름대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을 추모하면서, 다시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지금이라도 진짜 진실이 다시 밝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1.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어. 그들의 가족들과 친척들, 친구들을 포함하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갖게 되었어. 평생 잊지 못할 아픔. 그리고 그걸 뉴스에서 접한 모든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을 거야. 4주기 즈음에 당시 배 안에서 찍었던 동영상들이 자주 매체를 통해 보게 되는데사실, 아빠는 못 보겠더구나.  구출을 기다리던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어.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말이야.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몰라. 그렇게 끔찍한 사건이었지만,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었어. 아름다운 사람들.

학생들을 구출하던 일반인 생존자. 그가 학생들을 많이 구출해서 영웅이라고 불렀지만, 그에게는 구하지 못한 학생들을 남겨두고, 자신이 탈출할 수 밖에 없던 순간이 있었어. 그리고 자신이 구하지 못한 학생의 눈동자는 그의 머릿속에 박혀 있었고, 그로 인해 그 학생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 속에 살아갔어. 우연히 그 눈동자와 똑 같은 사람을 만났어. 그 학생의 부모였지. 그 학생의 부모와 만나서, 그 학생의 마지막 순간을 이야기해주었어. 그러면서, 그 자신 또한 그 학생의 부모로부터 위로를 받기도 했어.

어떤 희생된 학생의 부모는 학생이 읽던 책들을 어떤 대안학교 도서관에 기증했다는 이야기도 있어. 그 학생의 부모는 학생의 책을 집에 싸두는 것보다 학교에 기증하여 다른 학생들이 읽는 것이, 자기 아이의 영혼이 다른 이들과 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민간인 잠수사 이야기도 있었어. 세월호에서 시신 수습 활동의 후유증으로 병이 생겨 평생 투석을 해야 하는 잠수사. 대학생 외동딸은 자신의 병의 치료비를 보태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하고그 잠수사는 딸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자살을 시도했어. 자살하기 직전에 누군가의 전화가 왔어. 희생 학생의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이, 자기 손주를 수습한 잠수사를 만나보고 싶다는 것이었대. 그 잠수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자살을 미루고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어. 그리고 그는 어찌저찌하여 다시 삶에서 희망을 찾게 된다는 이야기.

2025년 가상편지생존학생이 11년이 지나고, 모교의 그 반 2학년 1반 담임 선생님이 되어 11년 전 세월호 사건 때 돌아가신 담임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가상 편지였지만, 가슴이 찡했단다.

.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을 위해 일했던 변호사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는데그를 위해서 몰래 인형탈을 쓰고 선거 운동을 도와주었던 유가족 이야기.. 이 이야기도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란다. 박주민 의원의 선거 운동을 세월호 유가족들이 함께 해주었거든. 그 이야기를 소설로 각색한 이야기였어.

또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은 안개만 찍는 사직작가였어. 4 15일 연안부두에 갔다가 너무 안개가 짙고 날이 안 좋아서 집으로 돌아왔지. 그런데 그날 그가 타려고 했던 배에서 사고가 난 거야. 그날 죽은 학생 중에 사진작가가 꿈이었던 이가 있었고, 그 학생이 주인공의 전시회에도 몇 번이나 참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주인공 사진작가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그 학생의 사진을 모아 전시회도 하고, 그 학생이 되어서, 그 학생 관점으로 그 학생의 친구들과 가족들의 사진을 찍어 주었단다. 그렇게 그 학생의 친구들과 가족과 주인공 사진작가는 그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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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지역에서 청소년 상담일을 하다가 특조위 활동을 한 사람의 이야기도 들려 주었어. 그가 상담을 했던 학생들 중에 세월호 사건에서 희생된 학생들도 있고, 살아남은 학생들도 있었어. 상담사였던 그 또한 이 현실이 얼마나 힘들었겠니…. 그래도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그의 일이니, 생존학생들과 또 상담을 했어. 그런데 어떤 학생은 의도적으로 상담을 피하는 학생들도 있었어. 늘 같이 지냈던 친구인데, 자신은 살고, 친구는 죽고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기억으로 어떻게 살겠지. 잊겠다고 잊혀지는 것도 아니고..

2.

각 소설들에는 아름다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단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아름다운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야. 정말 몰상식한 사람들도 있어. 세월호 사건을 추모하는 이들 앞에서 포식행위를 하는 사람들세월호 사건을 이야기하면 이제 그만하라고 하는 정치인들그들 내면에 어떤 것이 그들을 그렇게 행동하게 하는 것일까? 궁금하더구나. 그래도, 그런 인간 같지도 않은 사람들보다 상식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단다. 그들의 슬픔에 공감을 하고, 그들이 곁에 있으면 그들을 위로해 줄 거야.

그렇게 상식적인 사람들이 많았기에, 촛불 혁명을 일으켰고, 상식적인 대통령을 뽑았잖니. 대통령이 바뀌고 대한민국도 점점 상식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구나. 하지만 아직도 국회에는 몰상식을 가진 이들이 꽤 많이 있단다. 그들도 촛불로 몰아낼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건 어려울 것 같고, 선거를 이용해야 하는데국회의원 선거가 아직 한참 남았구나. 아쉽구나.

이 책을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을 하고 싶구나. 책을 읽을 때 손수건을 준비하라고 이야기도 해야겠지. 아참, 최근에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다큐멘터리 영화 <그날, 바다>가 개봉되었어. 몇 해 전 <김어준의 파파이스>라는 팟캐스트에 어떤 다큐 감독이 찍고 있다고 했던 영화인데, 이번에 드디어 개봉이 되었구나. 많은 사람들이 보고 괜찮다고 하고, 박스오피스에도 계속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더구나.

아빠는 너무 가슴 아픔 장면들이 나올 것 같아서 아직 못보고 있어. 그래도 꼭 보려고 해. 분명 가슴 아픈 장면들도 나오겠지만, 그들을 기억하기 위한 일은 작은 일이라도 해야 하니까.

.

, 오늘은 여기서 마칠게.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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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모어는 유토피아 개념을 지나치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위험하다고 이해했다. 철학자이자 선도적인 유토피아 전문가 라이먼 타워 사전트는 이렇게 주장했다. “인간은 유토피아의 존재를 열정적으로 믿을 수 있어야 하고, 아울러 자기 신념에 깃든 부조리를 꿰뚫어보고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유머나 풍자와 마찬가지로 유토피아는 정신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젖힌다. 사람이든 사회든 점차 나이 들어가며 현상에 익숙해지므로 자유는 감옥으로 진실은 거짓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현대 신조나 더욱 안타깝게는 믿을 것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신념 탓에 우리는 여전히 주변을 매일 에워싸고 있는 근시안적 사고와 불공정성을 보지 못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어째서 우리는 1980년대 이후 어느 대보다 부유해졌는데도 점점 더 열심히 일하고 있을까? 어째서 빈곤을 완전히 퇴치하고도 남을 만큼 부유한데도 인구 수백만만 영이 여전히 빈곤에 허덕일까? 어째서 개인소득의 60% 이상을 자신이 어쩌다 태어나게 됐을 뿐인 국가가 좌지우지할까?

(28)

이러한 현상을 부채질하는 것은 거의 허울뿐인 자유주의이념이다. 오늘날은 너 자신이 돼라네 일을 하라가 중요하다. 자유는 우리가 추구하는 최고의 이상일지 모르나 공허해지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도덕적 고찰은 두려움의 대상이므로 공공 토론에서 일종의 금기가 되었다. 결국 공공의 장은 중립적이어야 하지만 지금은 어느 때보다 온정주의적이다. 거리마다 진탕 마시고 떠들고, 빌리고, 사고, 힘써 일하고, 스트레스에 짓눌리고, 부정을 저지르라고 유혹하는 덫이 널려 있다. 사상 표현의 자유에 대해 스스로 무엇이라 말하든 우리의 가치는 황금시간대에 광고를 내보낼 수 있는 재력을 갖춘 기업에 과대선전하는 가치에 가깝다. 광고 산업이 우리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의 일부가 어느 정당이나 종교 교파에서 비롯된다면 우리는 반기를 들 것이다. 하지만 대상이 시장이므로 중립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30)

세상은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청년이 정신과 진료를 받고, 경력 초기에 몸과 마음이 탈진하고, 항우울제를 상용한다. 사회는 실업과 불만, 우울증 같은 집단적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개인 탓이라고 거듭 비난한다. 성공이 선택이라면 실패도 선택이다. 일자리를 잃었는가? 더욱 열심히 일했어야 했다. 몸이 아픈가? 건강한 생활방식을 실천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불행한가? 약을 복용하라.

(72~73)

하지만 돈은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게 해주는 열쇠여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맞다. 하지만 한 국가를 전체로 보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까지만 그렇다. 기대수명이 자동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는 시기는 일인당 국내총생산이 연간 약 5,000달러까지일 때다. 하지만 일단 충분한 양의 음식, 비가 새지 않는 주택, 깨끗한 식수가 확보되고 난 후라면 경제 성장은 더 이상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이때부터 행복 정도를 훨씬 정확하게 가리키는 지표는 불평등하다.

(124)

진보를 측정하는 기준에 따른 문제는 시대마다 다르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통계는 더 이상 경제의 진짜 모습을 포착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시대마다 해당 시대에 맞는 진보를 가리키는 수치가 필요하다. 18세기에는 수확의 규모가 중요했다. 19세기에는 철도망의 반경, 공장 수, 탄광업의 생산량이 중요했다. 20세기 들어서는 국민국가의 경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산업의 대량 생산이 중요했다.

(149)

현대 지식 경제에서는 주당 40시간의 근로시간도 지나치게 많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의 창의적인 능력을 계속 사용하는 사람은 평균적으로 하루 6시간 이상 생산성을 발휘할 수 없다. 창의적인 자질과 높은 교육수준을 갖춘 인재를 보유하고 있는 부유한 국가들이 주당 근로시간을 가장 많이 줄이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222)

수십억 인구는 풍요의 땅에서 제품 가격의 작은 일부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고 노동력을 팔도록 강요당한다. 모두 국경이 있기 때문이다. 국경은 세계 역사를 통틀어 최대 단독 차별 요인이다. 같은 국가의 국민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 차이는 분리된 세계 시민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 차이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오늘날은 소득 상위 8% 부자가 전체 세계 소득의 절반을 차지하고, 상위 1% 부자가 세계 부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최하위층 10억 명이 소비하는 금액은 세계 전체 소비액의 1%에 불과하지만 최상위층 10억 명의 소비액은 72%이다.

(236)

새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옛 아이디어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렵다.

- 존 메이너드 케인스

(269)

따라서 이 책에서 제안한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모두에게 마지막으로 두 가지 조언을 하고 싶다. 첫째, 당신과 같은 사람이 바깥에 더욱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라. 정말 많다. 내가 만났던 수없이 많은 독자들은 이 책에 소개한 개념을 전적으로 믿으며 세상이 부패하고 탐욕스럽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나는 텔레비전을 끄고 주위를 돌아보고 조직을 결성하라고 촉구했다. 세상에는 진심으로 좋은 의도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둘째, 낯이 두꺼워져라. 무엇이 중요한지 아무도 당신에게 명령하지 못하게 하라.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비현실적이고 비이성적이어야 하고, 불가능에 도전해야 한다. 이 점을 기억하라.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고, 동성 결혼을 요구했던 사람들도 처음에는 미치광이라는 낙인이 찍혔었다.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역사가 증명할 때까지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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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다시 벚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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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 책을 구입한 것은 꽤 되는데, 책 제목에 벚꽃이 무려 두 번이나 나와서, 벚꽃 피는 시절에 읽으려고 재워두었다가 꺼냈단다. 요즘 지구온난화로 인해서 꽃피는 날짜가 예상을 할 수 없어서, 자칫 잘못하면 이 책 읽는 시기를 놓칠 뻔했어.^^ 아빠가 이 책을 읽을 즈음출퇴근길에 벚꽃이 활짝 핀 것을 보고 이 책을 읽는 날짜를 제대로 맞췄구나 하면서 미소를 짓기도 했단다. 그런데, 너희들에게는 너무 늦게 이야기해주었구나. 미안~ .. 시간 참 빨리도 가는구나. 눈깜짝할 사이에 일주일을 덥석덥석 먹어 치우는구나.

아무튼 그렇게 오랜만에 미미여사의 책을 만났단다. 사람들이 미야베 미유키를 미미여사로 부르더구나. 그래서 아빠도 그렇게 부르곤 해… 미야베 미유케의 책들을 꽤 읽은 것 같아. 일단 어느 정도 재미를 보장하니까자꾸 손이 가는구나. 이번에 읽은 <벚꽃다시 벚꽃>은 아빠가 그 동안 읽은 미미여사의 책들과 조금 달랐어. 그것은 아마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현대가 아니라 에도 시대라서 그런 것 같구나.

미미여사는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도 많이 썼다고 하는데, 아빠는 에도시대를 배경을 한 미미여사의 소설이 이번이 처음이야. 이 책의 원제는 “사쿠라호사라(:벚꽃박죽)”로 이런 일 저런 일 온갖 일이 벌어져서 큰일 났다난리 났다라는 고슈 지방 표현인 “사사라호사라(:뒤죽박죽)”을 응용한 것이라고 하는구나.

 

1. 

아빠가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이 없어. 그래서 에도 시대에 일본의 상황에 대해서도 잘 몰라. 이 소설을 읽다 보니, 에도 시대는 지방 봉건제가 활발했던 시대인 것 같구나. 중국의 역사는 그래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데, 일본의 역사는 메이지 유신 이후 근현대사만 좀 알지, 그 이전 시대는 잘 몰라.

아무래도 우리나라에 영향을 크게 주었던 시절이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 아빠도 일본의 역사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 같아. 아무리 생각해도 예전에 최인호 역사소설을 통해 알게 된 일본 고대사 일부하고, 임진왜란 전후의 사정 아주 쪼금 정도가 전부인 것 같구나. 사두고 책장 속에 먼지만 먹고 있는 일본역사책을 읽어보긴 해야 하는데… 우선순위가 그리 높지 않아서….

그건 그렇고… 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육백 페이지가 넘는 무지 두꺼운 소설이지만줄거리는 짧게 하려고 노력은 해볼게. 후루하시 쇼노스케라는 젊은이가 주인공이야. 1815년에 무사 집안에서 태어나서, 이야기가 벌어지는 시점에는 이십 대 초반이었어무사 집안이다 보니자연히 쇼노스케도 무사가 되었지만, 아버지 소자에몬을 닮아서 온화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어. 그에 비해 형 가쓰노스케는 승부욕이 강하고 칼솜씨도 좋은 진정한 무사다운 사람이었어. 가쓰노스케의 그런 성격은 아마 엄마 사토에를 닮았던 것 같아. 쇼노스케의 엄마 사토에는 억센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사별로 첫 번째 남편과 헤어지고시댁과 갈등으로 두 번째 남편과 헤어지고, 소자에몬과 세 번째 결혼을 했던 거야.

그런데 소자에몬이 자신의 필적까지 모방한 위조문서로 뇌물을 받았다는 누명을 쓰게 된 거야. 소자에몬은 결백을 주장했지만,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모든 죄를 감수하고 할복자살을 했어. 아버지의 그런 죽은 후루하시 가문의 몰락을 의미했어. 쇼노스케는 근신하면서 글공부나 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에도 대행을 찾아가서 후루하시 재건을 부탁하라고 했어.

에도 대행은 사카자키 시게히데라는 사람인데, 엄마가 사별한 첫 번째 남편의 숙부였기 때문에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야. 사카자키를 만난 쇼노스케… 사카자키는 쇼노스케에게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운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내라고 했어. 그러기 위해서 자신이 적절한 사람을 소개시켜준다고 했어. 그 사람은 무라타야 서점의 대본소 관리인인 지헤에라는 사람이었어. 지헤에는 쇼노스케에게 책을 필사하는 일을 의뢰했지. 쇼노스케는 책을 필사하는 일을 하면서필적 모방자를 찾아내라는 것이었어. 당시 책을 필사하는 이유는 당시 책을 다량 출판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서 책이 필요하면 책을 일일이 복사할 수 밖에 없었거든. 서점은 그렇게 필요한 책들을 팔았단다.

쇼노스케는 그 일을 위해 에도에 혼자 지냈고, 도미칸 나가야라는 곳에 머물렀단다. 나가야라는 것은 칸을 막아서 여러 가구가 함께 살 수 있는 집이야.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돼.

 

2. 

아버지의 필적모방자를 찾아내는 것인 목적이지만, 쇼노스케는 책을 필사하는 일이 적성에 맞는 것 같았어. 지헤에는 단순히 필사뿐만 아니라소설을 개작해달라는 요청도 했어. 잔인하고 지루한 소설을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개작을 해 달라는 것이었지.

이 책의 주요 이야기는 쇼노스케가 필적모방자를 찾는 것이지만, 그보다 쇼노스케와 이웃 사람들의 훈훈한 이야기들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각 챕터별로 하나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어서 연작소설로 봐도 된단다.

그 동네에 도자기 상인이 꽃놀이를 맞이하여 먹기 겨루기 대회를 개최했어. 도미칸 나가야의 가난한 사람들은 대거 참석을 했어. 쇼노스케는 참석은 아니지만 구경을 하러 갔다가 어떤 여인을 봤단다. 얼마 전에 꿈 속에서 봤다고 생각했던 단발머리의 미인인데, 그 여인을 다시 본 것이야. 그러니까 얼마 전에 본 여인이 꿈속에서 본 것이 아니고 실제에서 본 것이지. 지헤에에게 물어보니 자신의 단골손님이라고 했어. 이름은 와카이고재봉점의 외동딸이었어. 와카는 얼굴과 몸에 붉고 큰 반점이 있어서 외출을 거의 안하고, 하더라도 얼굴을 가리고 외출을 한대. 지헤에의 소개로 쇼노스케는 와카와 알게 되었어. 그들은 책 이야기를 하면서 친분을 쌓아갔단다.

어느날 낯선 손님이 찾아왔어. 미야노 번의 무사 니가호리 긴고로라는 사람이야. 자신이 모시던 번주가 젊은 아들에게 번주 자리를 물려주었대. 미야노 번이 궁핍해서 백성들이 힘들게 살고 있었어. 그래서 새로운 번주는 그것을 개혁한다고 아버지 번주가 해왔던 정책들을 다 뒤집어 버렸대. 아버지 번주는 그거 때문에 화가 나서 기분이 안 좋았는데, 거기에 아끼던 애첩과 애마가 연이어 죽게 되었대. 점점 우울증이 심해지고 실성까지 했다는 거야.

쇼노스케를 찾아온 손님 긴고로는 그 아버지 번주를 모셨던 무사였어. 여전히 충성심이 강한 그는 번주를 위해서 사람을 한 명 찾으러 다니고 있대. 아버지 번주가 젊었을 때 교류를 했던 후루하시 쇼노스케라는 무사였어. 그래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후루하시 쇼노스케라는 이름의 무사를 다 찾아 다니는데 쇼노스케가 열한 번째라는구나. 왜 찾고자 하냐면 자신의 번주가 후루하시 쇼노스케라는 무사와 주고받은 암호로 된 편지만 본다는 거야. 우리의 주인공 쇼노스케가 긴고로 자신이 찾는 쇼노스케는 아니었지만, 쇼노스케의 친절함에 암호로 된 편지를 세 통 주겠다고 했어. 그러면서 혹시 암호를 풀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어.

긴고로가 가고 나서, 쇼노스케는 암호 해독에 열을 냈어. 암호 해독이 알 듯 말 듯 해서… 쇼노스케는 밥과 잠도 잊고 매달렸단다. 나중에는 동네 사람들과 다 같이 보고 와카도 머리를 맞대고 암호를 풀어보았지만 결국 못 풀었어. 어떤 사람의 아이디어로 동네 주점 벽에 그 암호를 적어보자고 했어. 혹시 아는 사람이 찾아올지 모른다고… 그랬더니 정말 그 암호를 알고 있는 시즈에라는 중년의 여자가 찾아왔어. 시즈에의 전남편이 바로 후루하시 쇼노스케라고 했어. 하지만 그는 이미 그는 이미 죽었다고… 그 편지는 연서였는데미야노 번주가 시즈에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고 했어. 물론 시즈에는 죽은 남편에 마음을 주고 있었지. 정신을 잃어도 젊은 시절 자신이 짝사랑했던 여인을 잊지 못하고 그 암호로 된 편지를 계속 썼던 것이 아니었을까.

 

3. 

어느날 지헤에가 며칠 동안 행방불명이 되었다가 나타났어. 마카와야라는 어떤 부잣집의 무남독녀 기치가 사라졌다고 해서 도와주고 왔다고 했어. 그런데 기치를 납치한 일당으로부터 연락이 왔어. 기치를 돌려주는 대신 돈 삼백 냥을 요구했대. 기치의 엄마 가쓰에는 딸을 위해서 그 정도 돈을 줄 수 있다고 하고… 그 돈을 주겠다고 했어. 그 돈을 전달해주는 자리에 호위를 쇼노스케에게 부탁을 했어. 비록 무늬일지 모르지만 쇼노스케는 무사이잖아. 그런데 돈을 전달해주는 자리에 딸 기치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어. 그래서 쇼노스케는 돈을 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기치의 엄마 가쓰에는 범인들의 말을 믿고 돈을 건네주었어. 쇼노스케의 예상대로 돈만 주고 기치는 돌아오지 않았어.

쇼노스케는 이제 기치를 납치한 일당을 추적하는 일을 시작했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 딸 기치와 엄마 가쓰에는 사이가 무척 좋지 않았대.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날아온 협박편지의 필체였어. 집안 사람들을 모두 모아서 자신이 사용하는 붓과 먹을 이용해서 자신이 사용하지 않는 손으로 글을 쓰라고 했어. 쇼노스케는 그 협박편지의 글과 비슷한 글씨체를 찾았는데 그것은 바로 기치의 아빠 주에몬이었어. 그래서 쇼노스케는 주에몬과 기치의 자작극이라고 생각했어. 이미 아버지 주에몬은 기치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

이 집안의 숨겨진 사연을 추리해 나갔어와카와 함께… 그리고 주에몬 집안의 비밀을 밟혀냈고기치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아냈단다. 옛날에 이 집안에 16살 어린 하녀가 아비가 누구인지 모르는 딸을 하나 낳았었대. 자식이 없던 주에몬 부부는 그 딸을 대신 키웠는데 그 딸이 바로 기치였어. 그런데 최근에 기치가 그 사실을 알고 친모를 찾아간 거야. 가뜩이나 엄마 가쓰에와 사이가 안 좋아서 더욱 친모에 애정을 가지게 되었던 거야. 친모는 어떤 늙은 홀아비와 결혼했는데그 홀아비는 아들이 하나 있었어. 그런데 그 아들이 머리를 굴려서 기치를 이용해서 돈을 빼앗으려고 했던 거야. 기치는 기치 나름대로 자신을 속인 부모에 분풀이를 하려고 했던 것이고…

이 일은 지헤에의 지혜와 용기로 잘 해결이 되었단다. 기치는 자신을 키워준 부모 주에몬과 가쓰에의 진심을 알게 되었고, 주에몬과 가쓰에는 기치의 친모와 그 친모의 늙은 남편을 데리고 와서 같이 살게 했대. 아빠가 줄거리를 너무 짧게 쓰긴 했는데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모두 합심했고, 서로 어려운 처지를 이해해주었단다. 그야말로 사람냄새 풀풀 나는 이야기였단다.

 

4.

이제 다시 아버지의 필적 모방을 한 대서인을 어떻게 찾게 되는지 알아보자.(남을 대신하여 서류나 편지를 써 주는 사람을 대서인이라고 해.) 쇼노스케가 그런 사람을 찾는다는 것도 소문이 났어. 그리고 어느날 쇼노스케의 아버지의 필적을 모방했다고 하는 대서인이 직접 찾아왔어. 완전 술주정뱅이였지만그가 아버지의 필적으로 글씨를 썼는데 정말 똑같았어. 그 대서인은 오히려 당당했어. 자신은 시킨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이야. 오히려 쇼노스케가 당황했지.

그 대서인은 멀리 있던 사람이 아니었어. 지헤에와 거래를 했던 사람이고, 그의 책을 쇼노스케가 개작을 하기도 했어.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나. 물론 지헤에도 그 대서인이 쇼노스케의 원수로 찾는 사람인지 처음에는 몰랐대. 최근에 알게 되었지만자헤에와 그 대서인에 대해 불쌍하게 여기도 있던 차였어. 그래서 쇼노스케에게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던 거야. 그리고 그 대서인에 대해 계속 조사를 해봤더니.. 충격적인 배후 인물이 나왔어. 그것은 바로 쇼노스케의 형 가쓰노스케였어.

아니형이 왜 아버지를… 다시 에도에는 권력 암투가 무척 심했는데, 가쓰노스케도 그 권력 다툼에 휩싸이게 되었고, 그는 속아서 이용당하고 만 것이었어. 쇼노스케는 이 사실을 알고 에도 대행인 사카자키를 찾아갔는데, 그곳에 놀랍게도 형 가쓰노스케가 있었어. 사카자키도 최근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던 거야. 사카자키는 가쓰노스케도 이용당한 것을 알고 용서를 해주고 제대로 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자신의 도리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가쓰노스케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어. 그래서 가쓰노스케에게 도망갈 기회를 준 것이지. 쇼노스케는 사카자키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지.

형 가쓰노스케는 떠나고 쇼노스케는 머릿속이 복잡해서 에도 생활을 정리를 하기로 했어. 애정이 싹트고 있었던 와카와도 헤어지려고 했어. 그런데 도망갔던 형이 다시 나타났어. 그러면서 쇼노스케를 칼로 죽이려고 했지… 가쓰노스케는 그렇게 무정한 사람이었어. 그 장면을 본 이웃집 소년 다이치가 재치 있게 불이 났다고 소리쳤어. 그 소리에 동네 사람들은 뛰쳐나왔고 가쓰노스케는 도망을 갔어. 형의 공격으로 중상을 입은 쇼노스케… 이웃 사람들의 적극적인 도움과 보살핌으로 간신히 살아났단다. 그를 치료했던 의사도 희망이 없었다고 했는데 말이야. 그 중에 특히 와카의 보살핌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 다시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한 쇼노스케… 지헤에의 조언으로 가명으로 살아가기로 했단다. 이 일을 계기로 와카와의 사랑은 좀더 깊어지고 말이야.

이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이번 편지를 쓰고 다시 읽어보니, 아빠가 짧게 쓰려고 중간중간 이야기를 뭉텅뭉텅 잘라내고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무슨 이야기인지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렇다고 다시 쓰기에는 아빠가 밀린 독서편지가 너무 많아. 이번 편지를 마무리하고 다음 독서편지도 또 시작해야 돼…^^ 그러니 이해해주렴…

이번 편지에서 줄거리만 쭉 이야기를 했는데, 이 사건이 벌어진 것이 벚꽃 날리는 그런 곳에서 주로 이루어졌단다. 책제목과도 연관이 지어진 부분이야. 올해는 벚꽃이 필 즈음에 아빠가 바빠서  같이 벚꽃놀이도 가지 못했는데.. 아빠가 미안하구나내년에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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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5-06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밀린 독서편지가 너무 많아. 다음 독서편지도 또 시작해야 돼.˝ 이 부분에서 빵 터졌다가 잠시 후 씁쓸해졌습니다.

그야말로 책 읽는 우리 모두의 고민거리지요......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독서편지^-^

bookholic 2018-05-06 22:19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리뷰에 너무 집착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리뷰를 안 쓰면 응가를 하고 밑을 닦지 않은 기분이랄까요? ^^

제가 내성적이라 댓글을 많이 쓰지는 않지만, syo님의 위트있는 글들로 하루 스트레스를 풀곤 한답니다.^^ 열렬 구독자로써 늘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어요.. 남은 연휴 하루, 열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