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역사 서술은 사실을 기록하는 작업이자 사회 변화의 원인과 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활동이며 어떤 대상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창작 행위이기도 하다. 성실한 역사가는 사실을 수집해 검증하고 평가하며 중요한 역사의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한다. 뛰어난 역사가는 사실들 사이에 관계를 탐색해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밝혀내며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과 역사 변화의 패턴 또는 역사법칙을 찾아낸다. 위대한 역사가는 의미 있는 역사적 사실로 엮은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독자의 내면에 인간과 사회와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과 감정의 물결을 일으킨다.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는 데서 출발해 과학을 껴안으며 예술로 완성된다.

(45)

<펠로폰네포스 전쟁사>에는 전쟁을 벌일 것인지, 아니면 협상으로 사태를 해결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여러 도시국가 정치 지도자와 장군들이 벌린 논쟁이 숱하게 등장한다. 그들의 연설문은 대부분 출처도 없고, 정보 제공자의 이름도 없다. 투키디데스가 여러 전언을 분석하고 종합해 그럴 듯하게 재창조했기 때문이다. 기록이 없고 목격자도 불확실하며 전해지는 정보마저 과장, 왜곡, 각색되었을 경우 역사가는 이런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역사가는 때로 사료의 공백을 상상력으로 극복해야 한다. 사실을 검증하고 정보의 출처를 밝히는 일은 오늘날 역사 서술 작업의 기본에 속하지만 고대에는 매우 어려운 과제였던 만큼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그 일을 철저하게 못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다.

(48)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서구에서 역사의 창시자 대접을 받는 것은 책이 훌륭해서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었고 지금도 읽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의 역사에 남은 역사서를 쓴 서구 역사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그리스 고전에 통달했고, <역사>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들의 책은 왜 그렇게 오래 그리고 널리 읽혔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은 서사의 힘이다. 그들은 뚜렷한 목적을 품고, 명확하게 특정할 수 있는 대상에 관하여, 최대한 사실에 토대를 두고,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들으면서 지적 자극을 받고 정서적 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를 꾸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가 지적 자극을 받고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만드는 일이다.

(52)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역사는, 문명이 발전해도 전쟁과 내전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해명해준다. 국제전이든 내전이든, 폭력을 동원한 집단적 충돌은 모두 인간의 능력과 사회 조직 사이의 부조화 때문에 일어난다. B.C. 5세기 그리스인들은 과학과 생산 기술, 항해술, 군사 기술 등 모든 면에서 작은 도시 국가에 갇혀 살기에는 너무나 높게 발전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느슨한 도시국가 연합을 넘어 남유럽과 지중해 일대를 아우르는 새로운 국가 질서를 창출했다면 그 능력을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데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페르시아 전쟁은 생사를 가르는 위기였지만 더 높은 수준의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기회를 외면하고 적대적인 두 동맹으로 분열해 내전을 벌이면서 모든 에너지를 소모한 후 함께 멸망하는 길을 걸었다. 20세기 초반과 중반 유럽의 국민국가들도 그 길을 답습해, 유럽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제국을 형성해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길을 외면하고 식민지 쟁탈전과 패권 경쟁에 매달린 끝에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70)

<사기>가 그저 가치 있는 역사 기록일 뿐이라면 전문 역사 연구자들이나 들여다보는 책으로 남았을 것이다. 수많은 역사 애호가들이 지금도 <사기>를 읽는 것은 그 안에 인간의 이야기가 있어서다. <사기>에서 우리는 사람답고 훌륭한 삶을 추구하면서도 부질없는 욕망과 야수 같은 충동에 휘둘리는 인간 존재의 모순을 발견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남을 지배하는데 요긴한 처세술을 배우려고 읽으며, 또 어떤 이들은 무엇으로 어떻게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 나가야 할지 고민하면서 읽는다.

(76)

사마천은 국가와 사회는 정치권력과 경제 제도, 사회 제도, 법률, 예술과 문화 양식의 복합체이며 그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 구조와 양상을 분석했다. 권세와 지위는 없었으나 독특하고 자주적인 인생을 살아 나감으로써 인간의 본성과 삶의 의미를 사유할 실마리를 던진 이들을 망각의 어둠에서 건져냈다. <사기>는 또한 개인사의 치욕을 견뎌 낸 사마천이 역사의 수많은 사실을 마주하면서 느꼈던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과 감정도 전해 준다.

(112-3)

할둔이 군주와 백성의 관계를 이야기한 다음 대목을 보면서 그때를 대비해 미리 눈을 정화해 두자..

군주가 억압과 폭력을 사용하고 함부로 형벌을 가하고 백성의 잘못을 찾아내어 그 죄를 세기 시작한다면, 백성들은 처벌을 두려워하고, 비천한 마음을 품게 되며, 거짓을 말하고, 사기를 치고, 기만을 일삼게 되어 이런 성질이 백성의 성품이 될 것이다. 이런 백성은 전쟁터에서 군주를 배신하기 쉬우며 급기야 군주를 시해하려는 음모를 꾸미게 된다. 왕조는 쇠퇴하고, 왕조를 보호하는 울타리도 망가진다. 군주가 온후한 정책을 펴고 백성의 결점을 포용하면, 백성은 군주를 신뢰하고 그에게서 안식처를 찾으려 할 것이다. 그들은 진정으로 군주를 사랑하고 전쟁터에서 기꺼이 목숨을 바치려 할 것이다. 선량한 지배권이라 함은 백성에게 친절과 보호를 베푸는 것이다. 왕권의 진정한 의미는 군주가 백성을 보호할 때 실현된다. 백성에게 친절하고 선량하다는 것은 백성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다. 이는 군주가 백성을 보호할 때 실현된다. 백성에게 친절하고 선량하다는 것은 백성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다. 이는 군주가 백성에게 사랑을 보여주는 근본이다.

(139)

게다가 역사는 언어의 그물로 길어 올린 과거. 달리 말하면 역사는 문자 텍스트로 재구성한 과거 이야기다. 언어는 말과 글로 이루어지며, 인류는 문자를 발명하기 전에 먼저 말을 했다. 말에 담은 과거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견뎌 내지 못하며 압축, 누락, 과장, 왜곡, 각색을 거쳐 입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역사는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후에야 나타났다. 하지만 문자 텍스트도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아니다. 설령 완전하게 표현했다고 해도 읽는 사람이 쓴 사람의 의도대로 똑같이 해석한다는 보장은 없다.

(141)

랑케는 배울 것이 많지만 반면교사로 삼기에도 좋은 역사가다. 역사가는 해부학을 배우는 학생이 아니라 노련한 과학수사대 요원과 법의학자가 시신을 다루는 자세로 역사의 사실을 대면해야 한다. 시신을 해부해서 거기 무엇이 있는지를 기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신의 상태를 보고 사망 원인과 시간을 알아낼 뿐만 아니라 망자의 작업과 생활환경, 생전의 건강 상태와 습관까지 추론해 내야 하며, 유류품이 담고 있는 정보를 연결해 그 사람의 인생 행로를 추측할 수 있어야 한다. 니체가 아프게 지적한 것처럼, 랑케는 역사의 사실에서 인간의 이야기를 끌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쓴 책들은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귀중한 문헌을 보관하는 도서관 깊은 곳에 잠겨 있는 것이다.

(199-200)

역사는 사람이 만들지만 모든 사람이 역사에 흔적을 남기지는 않는다. 남다른 성취를 이루거나 빛나는 선행을 한 사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기 어려운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그러나 역사는 모든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준다. 신채호의 삶도 시대 상황에 크게 비틀렸다. 그러나 그는 시대가 비튼 인생을 받아들이고 시대의 요구를 실현하려고 분투함으로써 역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신채호는 고대사 연구자로 활동하기에 적합한 재능을 가졌고 그에 필요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오늘날 태어났다면 작가나 철학자로도 크게 성공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평생 일제 경찰과 헌병의 추적을 받으면서 무장 투쟁을 벌이는 일에 골몰했으니 화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0)

치안유지법 위반과 유가증권 위조 혐의로 붙잡혀 법정에 선 신채호는 민족을 위해서라면 도둑질도 정당하며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1929년 뤼순 감옥 독방에 갇힌 후 영양실조와 고문 후유증, 동상으로 혹심한 고통을 겪다가 뇌일혈로 쓰러져 지켜보는 이가 아무도 없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1936 2 21, 그의 나이 57세였다. 그런 인생이 좋아서 그렇게 살았던 게 아니다. 일제 강점이라는 시대 상황이 그런 삶을 요구했고, 그 요구를 피할 수 없어서 그렇게 살다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가 <조선상고사>를 남겼기에 우리는 그 책을 읽으면서 인간 신채호와 역사가 신채호를 느낄 수 있다. 다행이다.

(318)

나는 역사를 역사답게 하는 것이 서사의 힘또는 이야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의 꿈과 욕망, 사람의 의지와 분투, 사람의 관계와 부딪침, 사람이 개인이나 집단으로 겪은 비극과 이룩한 성취, 사람이 세운 권력의 광휘와 어둠, 사람이 만든 문명의 흥망과 충돌과 융합에 관한 이야기다. 변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 예측할 수 없는 우연, 사회 제도와 자연환경이 뒤엉켜 빚어낸 과거의 사건들 가운데 당대의 역사가들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을 언어로 엮어낸 서사다. 역사의 역사가 드러내 보이는, ‘발전이라고 하는 몇 가지 역사 서술 환경과 내용과 관점과 방법의 변화는 힘 있는 서사로 구현할 때만 독자의 생각과 감정을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역사의 역사에 남은 역사서들을 만나 본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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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8-06-28 10: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bookholic님.
유시민이 창작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썰전에서 하차한다는 소식을 들을 무렵, 이책을 만나게 됐는데,
내용을 갈무리하신 이 페이퍼를 보니 유독 반갑습니다.
귀하게 아껴 읽어야 겠어요~^^

bookholic 2018-06-28 18:51   좋아요 3 | URL
TV로 만나도 좋고.. 책으로 만나도 좋고..
또다른 모습으로(예를 들면 청와대에서^^) 만나도 좋습니다.
양철나무꾼님도 즐독하십시오~~

카알벨루치 2018-06-28 19: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기 시작했는데, 벌여놓은게 많아 ㅎ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100페이지 정도 읽다가 포즈중인데...모두 즐독하소서!

bookholic 2018-06-29 00:51   좋아요 2 | URL
카알벨루치님도 즐독하시고요... 좋은 독후감 부탁드려요~~^^

Tempus_fugit 2018-06-28 2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분명 유작가님이 전작보다는 쉽다고 하셨는데 첨맘님 책중에 가장 난해하게 느껴졌어요. 아무래도 역사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탓해야 할 것 같습니다. bookholic님의 글을 보니 다시 읽어보고 싶어 졌습니다. 참고문헌 중 절판된 책이 있는 것은 조금 아쉽지만, 시간 내서 다시 참고문헌과 함께 꼼꼼하게 읽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bookholic 2018-06-29 00:54   좋아요 1 | URL
저도 워낙 산만한 성격이라서, 신경써서 집중을 하지 않으면 자꾸 맥락을 놓쳤습니다. 소개된 역사들책도 쉽지 않은 책들이구요... 그래도 어려운 역사책들을 조금은 쉽게 잘 소개해 준 것 같습니다. 아, 이런 역사책들이 있구나... 읽어보고 싶지만 몇몇 책들은 도전하는데는 큰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에너미 오브 갓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2 아서 왕 연대기 2
버나드 콘웰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번에 읽은 책은 버나드 콘웰의 아서왕 연대기 시리즈 2 <에너미 오브 갓>이란다. 이 책은 좀 구하기 어려웠단다. 왜냐하면 버나드 콘웰의 아서왕 연대기 시리즈가 모두 3권인데, 아빠가 이 책을 구매할 때 1권과 3권은 팔고 있는데 2권 바로 이 책 <에너미 오브 갓>은 품절 상태였단다. 어찌 시리즈의 가운데에 있는 책이 가장 먼저 품절이 되었는지… 헌책방에도 이 책이 없었어. 그래서 알라딘 중고서점 등록 알림을 걸어놓고 기다렸어. 한참의 기다림에 알림이 떴는데 아빠가 사기 전에 다른 사람이 먼저 사갔단다으… 그리고 또 오랜 기다림…. 다시 알림 문자가 왔고그때는 오자마자 잽싸게 결재를 해서 구입을 했단다. 그런데 아빠가 게을러서 그렇게 어렵게 구해놓고 바로 읽지는 않고, 책장에 잘 묵혀두었다가 이번에 읽게 된 것이란다. 그럼 할 이야기가 많으니까 어두절미하고 바로 이야기를 해줄게…

 

 

1.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니까 정신 없더라도 이해해주고… 1권의 마지막 부분에 대단한 전투가 있었던 거 기억나지? 러그 계곡에서 있었던 혈투에서 아서가 이끈 둠노이아 연합군이 이겼잖아. 이 전투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그 중에 포위스 왕이었던 고르버디드 왕도 죽었어. 그래서 새로운 왕 퀘네글라스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단다. 전투의 승자의 자격으로 아서는 데르벨을 보냈어. 데르벨은 내심 케인윈도 만나볼 수 있다고 생각했어. 비록 상대편에서 싸웠지만 퀘네글라스는 데르벨과 친분이 있어서 적대적이지 않았단다. 데르벨은 퀘네글라스와 만난 뒤에 케인윈을 찾아가서 이번에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어. 하지만 이전에 러그 계곡 전투의 결과로 케인윈은 란슬롯과 정략 결혼을 맺기로 되어 있었단다.

란슬롯과 케인윈의 약혼을 위해 아서귀니비어란슬롯멀린 등이 포위스로 왔어. 그럼 여기서 간단하게 러그 계곡의 전투 결과로 일어나는 일을 정리해 볼게. 먼저 포위스는 퀘네글라스가 왕위에 올랐어. 퀘네글라스는 원래 전투보다는 화의를 원했던 사람이고, 그 전부터 아서와 친분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했기 때문에 러그 계곡 전투의 패배했더라도 아서에게 반감을 가지지 않았단다. 그리고 실루리아의 왕이었던 군들레우스가 레그계곡 전투에서 죽었기 때문에 그 빈자리를 란슬롯이 통치하기로 되어 있었단다. 그 란슬롯은 퀘네글라스의 동생인 포위스의 공주 케인윈과 결혼하기로 했어. 케인윈을 사랑하고 있던 데르벨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니.

멀린은 데르벨의 그런 마음을 알고 있었어. 그러면서 주술이 담긴 동물뼈를 건네주면서 그것을 부러뜨리면 케인윈과 란슬롯의 관계가 깨지고 데르벨과 케인윈의 사랑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어. 데르벨은 그것을 믿지 않을뿐더러 믿더라도 란슬롯과 케인윈의 정략결혼은 브리튼의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갈등을 했단다.

드디어 란슬롯과 케인윈의 약혼연회가 열렸어. 데르벨은 멀린이 건네 준 동물뼈를 손에 쥐고 망설였어. 그리고 결국 그 동물뼈를 부러뜨렸단다. 그러자 우연인지 모르겠지만케인윈이 행진 도중 걸음을 멈추고,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그 도착지는 바로 데르벨이 있는 곳이었어. 그리고 데르벨과 케인윈은 함께 그 약혼 연회장을 뛰쳐나갔단다. 그들은 쿤아시브라는 숲속의 작은 집에 숨어 있었어. 이로써그럼 다시 평화는 깨지는 것인가… 둠노니아로 돌아가던 아서가 데르벨을 찾아왔어. 오히려 아서는 화를 안 내고 이해한다고 했어. 사실정략 결혼을 깬 것은 아서 본인도 그랬었으니까 말이야. 1 <윈터킹>에서 케인윈과 정략결혼을 하기로 했는데, 그것을 뿌리치고 귀니비어와 도망을 갔었잖아. 그것이 대규모 전쟁까지 불러오고 말이야.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어. 케인윈의 오빠이자 포위스의 새 왕 퀘네글라스도 그냥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어. 여동생은 자신이 말린다고 되는 사람이 아니라면서… 케인윈과 결혼하기로 했던 란슬롯도 혼자 실루리아로 했었어… 그렇게 케인윈의 일탈은 다행히 브리튼 평화에 큰 위협을 주지는 않았단다. 데르벨도 그렇게 원하던 사랑도 찾고 말이야.

케인윈은 말린과 니무에의 설득으로 클러드노 에이든의 솥을 찾는 길에 따라 나서기로 했어. 케인윈이 약혼 연회에서 그런 일탈을 하는데 니무에와 멀린이 도와주기도 했거든. 멀린이 이야기하기를 처녀가 가야 그 솥을 찾을 수 있다고 했어. 케인윈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고, 데르벨과 결혼도 솥을 찾고 나서 하자고 했어. 데르벨도 케인윈의 결정을 존중하였으며, 본인도 같이 솥을 찾으러 가기로 했어. 출발 전에 데르벨과 케인윈은 숲 속의 작은집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단다. 브리튼의 마지막 보물 클러드노 에이든의 솥은 북쪽 어니스 몬 지방에 있었고 그 길은 그리 쉬운 길은 아니라고 했어. 데르벨의 친구인 갤러해드가 군사들을 데리고 데르벨을 찾아왔고, 함께 가기로 했단다.

 

2.

멀린니무에데르벨케인윈 등 솥을 찾아가는 일행이 가는 길은 쉽지 않은 길이었어. 왜냐하면 그곳에는 잔인한 아일랜드 왕 디우르나흐가 있었고, 그들은 자신의 영역에 침입한 이들을 그냥 보내주지 않았거든. 전투는 불가피했고수적으로 적어서 도망을 갈 수 밖에 없었단다. 그렇게 도망을 가면서도 솥의 위치도 찾아내야 했어. 어느날 케인윈이 꿈속에서 솥의 위치가 나왔고그곳으로 갔더니 진짜 솥이 있었어. 드디어 솥을 찾기는 했지만 오랜 여정 때문인지 나이가 많은 멀린은 의식을 잃어버렸어…

그리고 그들이 있는 언덕을 중심으로 사방에 디우르나흐의 군대가 포위하고 있었단다.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이었어. 의식을 잃은 멀린은 숨도 제대로 쉬지 않고 체온도 떨어지고… 케인윈은 멀린이 죽었다고 생각했어. 다들 어떻게 할지 몰라서 그 자리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어. 추위에 배고픔에 지쳐 잠들어 있었을 때 언제 아팠냐는 듯이 멀린이 멀쩡하게 깨어났단다. 그리고는 다른 일행들을 깨우고… 주술로 안개를 잔뜩 끼게 하고… 안개 속에 몰래 다우르나흐의 군대의 포위를 뚫고 빠져나갔단다. 물론 솥도 같이 가져 갔지… 후에 디우르나흐 군은 멀린 일행이 도망간 것을 보지 못해서, 멀린이 주술을 걸어 하늘로 날아서 그들의 포위를 뚫었다는 전설이 만들어졌단다.

.

다시 숲속의 작은 집이 있던 쿤아시브에 도착을 했어. 케인윈과 정식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같이 살게 되었고, 케인윈은 임신도 했어. 둠노니아에서 아서가 찾아왔어. 귀니비어가 아들을 낳았다고 소식도 전해주었고, 그 아들의 이름은 귀드레라고 지었다고 했어.  아서가 이야기하길, 색슨 족과 전투가 있을 예정이니 도와달라고 했어. 아서는 자신이 존경하는 장군이니 데르벨은 당연하다고 했고, 케인윈을 포위스 왕 퀘네글라스에게 보내고 데르벨은 아서와 함께 둠노니아로 향했단다. 란슬롯은 실루리아의 왕이 마음에 안든다면서 둠노니아에 와 머물고 있었는데, 아서는 여선히 란슬롯을 포용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그런 점에 있어서 데르벨은 반대 의사를 보였단다. 란슬롯과는 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란슬롯은 산쉼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단다.

.

 

 

3.

아서가 전쟁을 하려고 하는 색슨족 상황을 이야기해줄게. 색슨족이 머물고 있는 동쪽의 넓은 땅을 흘로이기르라고 하는데 그곳에는 앨레와 케르디치라는 두 왕이 있었어. 그들은 때론 대립하고 때론 연합하고 그랬단다. 아서의 작전은 앨레를 먼저 공격하는 것이었어. 브리튼 연합군은 앨레를 공격하기 위해 원정을 떠났단다. 포위스의 왕 퀘네글라스궨트의 왕주 메이리그아서데르벨, 케르노우의 왕자 트리스탄갤러해드그리고 멀린이 함께 했단다. 멀린은 런던에 있는 브리튼 보물을 찾기 위해서라고 했어. 그리고 아서는 일부러 란슬롯을 제외시켰단다. 브리튼 연합군은 색슨족 진영으로 공격하여 앨레를 거의 무너뜨리기 직전까지 갔는데 그때 또다른 색슨왕 케르디치가 군대를 데리고 와서 아서를 지원하겠다고 했어. 이게 무슨 상황이지의아해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란슬롯이 케르디치를 찾아가서 동맹을 맺고 전쟁터로 데리고 온 것이었어.

이건 아서의 계획에 없던 일이었단다. 그들이 오는 시점이 전투의 시작이라면 모를까… 온 힘을 다해 전투가 이기는 것으로 끝나는 시점에 오는 것은 오히려 독이었어. 왜냐하면 지친 그들을 케르디치가 다른 마음을 품고 공격하면 더 큰 희생을 따를 수밖에 없었거든… 란슬롯의 커다란 잘못된 판단이었지… 이런 상황을 알게 된 아서는 크게 분노했어. 하지만 겉으로는 침착하게 대처했어… 케르디치는 영리하게 자신들이 지원을 위해 먼 길을 왔기 때문에 보상이 필요하다고 했어. 앨레의 땅…. 아서는 여기서 자신들의 희생을 줄이는 방법은 케르디치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뿐이라고 했어. 그것을 거절하면 또다시 힘겨운 전투를 해야했거든… 케르디치는 앨레 땅 뿐만 아니라 남부 지역의 자신의 영역과 닿은 브리튼의 땅 벨가이 땅도 달라고 했어. 아서는 그것만은 안 된다고 했어.. 그러자 케르디치도 한발 물러나면서대신 란슬롯이 벨가이 땅을 통치하도록 요청했어. 아서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사전에 케르디치와 란슬롯이 다 짠 계획이었던 것 같아. 란슬롯이 나쁜 놈…

한편멀린은 런던에서 브리튼의 보물인 바퀴 모양의 화차를 찾았지만, 그것도 케드리치에게 빼앗기고 말았단다. 그리고 더 불행한 것은 멀린의 성이 있는 토르에 큰 화재가 발생해서 그동안 모아두었던 보물이 모두 다 타버린 거야.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화재를 빙자해서 누군가 다 훔쳐간 것이었단다. 다행히 브리튼의 보물 중에 흐리데리흐의 검은 빼앗기지 않았대. 왜냐하면 그 검은 바로 아서가 가지고 다니는 액스칼리버였거든… 아서는 그것이 브리튼의 보물이라는 것을 모른 채 갖고 다니고 있었어…

 

 

4.

아서는 브리튼의 평화를 위해 브리튼 전우회라는 것을 만들었어… 그들이 앉은 곳이 우연히 원탁이었는데, 후에 사람들은 그들을 원탁의 기사로 불렀단다. 색슨 족과 전쟁을 마친 데르벨은 케인윈과 다시 만나서 둠노니아에 왔어. 그리고 세월이 흘렀어. 데르벨은 아이를 다섯이나 낳았는데 아들 둘은 그만 어려서 죽고 딸만 셋이 있었단다. 그리고 데르벨은 아서의 부탁으로 둠노니아의 왕자 모드레드를 맡아 키웠어. 그런데 그 모드레드는 장난꾸러기를 넘어 사악한 성격을 가진 아이였어. 독사와 독버섯을 가지고 장난을 쳤고, 실제로 하인 한명이 독버섯을 먹고 죽는 사건도 있었어. 모드레드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매질을 해도 모드레드는 더욱 대들기만 할 뿐 고쳐지지 않았어. 그런 모드레드가 장래 둠노니아의 왕이 된다니…

브리튼족은 아서에 의해 화의를 하게 되었고그로 인해 평화의 시대가 왔어. 유일한 고민은 사악한 모드레드가 왕위에 오를 나이가 거의 다 되었다는 점이었어. 여기저기서 아서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했어… 앙숙인 기독교도들만 빼고…. 아서는 모드레드가 왕위에 오르면 바뀔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었어.

그런데 한가지 사건이 일어났어. 케르노우의 왕자 트리스탄과 왕비 이죌트가 사랑을 찾아 둠노니아로 피신하는 사건이 있었단다. 케르노우의 왕자 트리스탄은 아서데르벨 등과 친분을 쌓았던 인물로 그동안 아서와 데르벨이 이끈 전투에 자진하여 참석했던 인물이잖아. 그런 그가 왕비그러니까 공식적으로는 어머니와 사랑에 빠져 피신을 하였다고?

사연인즉, 케르노우의 왕 마크는 그동안 왕비를 숱하게 바꾸었단다그것도 젊은 왕비로… 이번에도 15살의 이죌트라는 여인을 새로 왕비로 받아들였어. 그런데 그 이죌트와 트리스탄이 사랑에 빠진 거야. 트리스탄도 이죌트보다 나이가 한참 많기는 하지만 트리스탄은 아직 총각이야. 트리스탄은 이죌트와 함께 케르노우를 탈출하여 둠노니아로 온 것이야.

데르벨은 무조건 트리스탄을 살려주어야 한다고 했지만 아서는 고민을 했어… 트리스탄이 그동안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긴 했지만이건 또다른 문제인 것이야. 트리스탄의 편을 들 경우 케르노우와 적대관계가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어. 다시 브리튼의 평화에 균열이 올 수 있는… 결국 아서는 원칙대로 하기로 했어… 마크왕이 이 일로 둠노니아로 찾아왔는데, 검의 재판으로 하기로 했어. 마크 왕은 최고의 전사가 대신 참석하기로 했어. 데르벨퀠후흐 등 트리스탄과 친분이 있는 이들이 트리스탄 대신 결투에 참석하려고 했으나 모두 저지당했단다. 그렇게 트리스탄은 결투에 참석을 하게 되었고결국 죽음으로 패배하고 말았어. 그리고 이죌트도 화형을 당했고 말이야… 아…늙은 마크 왕은 이후 일년도 안되고 죽고 말았다고 하던데… 아서의 결정이 옳았던 것일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트리스탄과 이죌트…. 사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로 더 유명하단다. 아빠도 바그너의 오페라로만 알고 있지그 줄거리는 몰랐는데, 이런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였구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을 그린 책이나 영화를 한번 봐야겠구나. 아무튼 이 일로 데르벨은 아서에게 큰 실망을 하고 한동안 멀리하였단다.

 

 

5.

일 년 뒤모드레드의 왕위 즉위식이 올렸어. 모드레드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복수의 칼을 뽑았어. 옛날 자신의 어머니가 죽을 때 배신한 리게삭을 잡아오라고 아서와 데르벨에게 명령했어. 리게삭은 이미 늙었고실루리아에 은둔하고 있어서 그를 데리러 가는 것은 창병 몇 명이면 될 텐데… 모드레드는 끝내 아서와 데르벨에게 명령을 내렸단다. 데르벨은 아서와 화해를 하고 같이 리게삭을 잡으러 갔어… 그런데 리게삭의 주변에는 아서와 데르벨이 올 것을 알고 매복해 있던 이들이 있었어. 도대체 이 정보를 누가 흘린 거지? 아서와 데르벨은 갑작스런 기습을 간신히 방어하고 리게삭을 잡을 수 있있어.

임무를 완수하고, 데르벨은 실루리아에 온 김에 소문으로만 듣고 있던 자신의 친어머니를 찾아갔어. 그리고 친어머니를 수십 년 만에 만나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단다. 데르벨의 아버지가 다름아닌 색슨 왕인 앨레라는 거야. 데르벨은 다시 둠노니아로 돌아왔어. 그런데 좀 이상한 분위기가 돌았단다. 그래서 몰래 상황을 지켜봤어. 란슬롯이 죽은 모드레드의 엄마의 유골을 꺼내서 결혼식을 여는 거야. 그렇게 몰래 지켜보고 있는 모르간이 나타났어… 그러면서 그동안 둠노니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모르간 기억나니? 1 <윈터킹>에서도 나왔던 사람인데… 아서의 누나였잖아멀린의 후계자이기도 했고… 그런데 지금은 산쉼 주교와 결혼을 했단다. 산쉼 주교는 기독교이고, 모르간은 드루이드였는데모르간도 이제 기독교로 바꾸었단다.

아무튼모르간이 이야기하기를… 모드레즈는 사냥 중에 죽었고아서는 실루리아에서 죽었다는 거야. 데르벨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서와 함께 있었는데아서가 죽다니… 이게 무슨 소리…. 그렇게 아서와 모르레드가 죽어서둠노니아의 실질적 왕이 사라진 마당에, 란슬롯이 둠노니아를 합법적으로 접수하기 위해 노르웨나의 유골과 결혼을 한 거야..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이것은 란슬롯과 산쉼주교의 음모였던 거야. 이쯤 되면 데르벨은 가족들도 위험에 빠졌을 것으로 생각하고가족에게 달려갔어. 이미 란슬롯의 부하들에게 포위를 당한 상태였어. 데르벨은 그들과 결투를 했지만, 막내딸 디안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단다. 란슬롯의 드루이드 디나스라베인도 왔는데 이들은 위험에 빠지자 도망을 갔단다. 막내딸을 잃은 데르벨은 크게 슬퍼하고복수를 다짐했단다.

뒤늦게 실루리아에서 아서가 돌아왔어. 데르벨로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이야기를 들었어. 하지만 란슬롯의 왕위찬탈을 두고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을 했어. 이런 상황에서도 아서는 냉정하게 이해득실을 따졌어. 란슬롯과 싸우게 되면 이는 곧 브리튼의 내분으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어. 이런 브리튼의 내분은 색슨족에게만 유리한 것이었거든… 그러면서 란슬롯이 모드레드보다 낫지 않냐면서 명분도 없다고 했어. 아서는 늘 그랬어자신은 왕 노릇 하기 싫다면서… 그런데 죽었다고 하는 모드레드를 갤러해드가 데리고 왔어. 아서도 이젠 란슬롯을 공격할 명분이 생겼어. 란슬롯이 왕위를 빼앗은 것이 되잖아왕인 모드레드가 돌아왔는데… 하지만공격은 조심스러웠어. 아서의 아내 귀네비어아들 귀드레가 란슬롯에게 잡혀 있거든..

그리고 또 하나의 방해가 있었어. 아서의 많은 부하들이 모드레드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거야. 공격에 동참하지 않으려고 했어. 아서는 결국 시대의 부름을 거절하지 못하고한걸음 양보했어. 자신이 아니라 참사회가 왕을 대신한다고 했어. 참사회를 아서가 이끌고 있으니까 사람들은 아서가 둠노니아를 통치한다고 생각했을 거야. 어찌 되었든지 아서를 역사로 만들어갔어.

아서와 데르벨은 먼저 귀니비어와 귀드레가 갇혀 있는 곳에 몰래 침입했어. 그런데 그곳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단다. 귀니비어가 로마의 옛 이교도 이시스의 비밀의식을 주도하고 있었어. 그것도 옷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성행위를 하고 있었어. 그리고 란슬롯을 왕을 기원하고 있었어. 멀린이 잃어버린 브리튼의 보물들도 그곳에 모두 있었어… 브리튼의 보물들도 모두 훔쳐온 것이 바로 귀니비어란슬롯이었던 거야. 아서도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분노의 칼질을 했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하다니… 하지만 그 사랑하는 감정은 여전히 남아서 귀니비어는 죽이지 못했단다. 이런 난리가 난 가운데 영악한 란슬롯은 도망을 갔단다.

여기까지가 아서와 연대기 2 <에너미 오브 갓>의 이야기란다. 길고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소설의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늘 쉽지 않구나. 갑자기 튀어나와 앞뒤와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고… 이해해주렴…^^ 조만간에 아서와 연대기 마지막 이야기 <액스칼리버>도 읽고 이야기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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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 - 노무현 대통령 어록집
노무현.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지음 /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 / 2018년 5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나이를 먹으면서 아무리 기억력 쇠퇴가 엊그제 기억마저 앗아가더라도 잊지 못할 날의 기억들은 10분 전처럼 생생한 경우가 있단다. 아빠의 그런 기억에 노무현 대통령님에 대한 기억도 꽤 있단다. 대통령이 되시기 전 광주 경선에서 승리하던 날. 2002 12 19일 오후 6시 출구 조사 카운트다운을 하던 순간.. 그리고, 2009 5 23.. 믿기지 않은 뉴스 소식…… 노무현 대통령님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덧 9년이 흘렀구나.

그가 떠난 직후 우리나라는 오랜 암흑의 시대가 되었단다. 그 오랜 암흑의 시대를 시민들의 촛불로 몰아내고, 화창한 시대를 맞이한 지도 일여 년이 지났구나. 지난 암흑의 시대가 길었기 때문인지 지난 일년은 너무나 금방 휙 지나가 버렸구나. 그리고 올 5월도 또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했단다. 그리고 하나의 아쉬움. 그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이 만들어지고 있는 이 시점을 그와 함께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하늘에서 김대중 대통령님과 함께 변화된 대한민국을 보시면서 흐뭇하게 웃고 계시길아빠는 매년 5월이면 노무현 대통령님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그를 추모하는 시간을 갖는단다. 5월에 읽은 책은 노무현 대통령의 어록집인 <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책이란다. 5월말에 읽었는데, 아빠가 게을러서 이제서야 이야기해주는구나. 이 책은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에서 출간된 책인데,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봉사한다는 생각이었는지 책 가격도 아주 싸게 냈더구나. 그리고 선물로 엽서도 3장이 실려 있었어. 그 중에는 친구이자 동료였던 문재인 대통령님과 함께 한 사진으로 만든 엽서도 있었는데 그 사진을 보고 있으니 울컥하면서도 마음 한 켠으로는 따뜻함이 느껴지더구나. 이 두 분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일년이 또 휙 지나가 내년 5월은 노무현 대통령님이 떠나신 지 10주년이 되겠구나. 아빠는 사람 많은 것을 싫어해서 노무현 대통령님이 계신 곳을 5월에는 가보지 않았는데, 내년에는 10주년 추모하는 자리에 함께 있고 싶더구나.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님을 그리워하고 불러보고 싶구나.

 

 

1.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님의 어록집이란다. 노무현 대통령님은 정치인 이전에 학자였어. 그것도 대단히 똑똑한 학자.. 천재이셨지. 특히 정치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거의 일인자가 아닐까 싶구나. 다른 정치인들이 그가 지향하는 바를 쫓아오지 못해서, 늘 열등감으로 그를 헐뜯기만 했었지. 언론도 같이 열등감을 가지고 헐뜯었고 말이야. 반대로 아빠처럼 그의 고귀한 영혼과 사상에 감탄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정치? 어렵지… 물론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처럼 하는 것도 정치라면 쉽다고도 할 수 있어. 하지만 제대로 된 정치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아. 누군가 제대로 된 정치를 하고 싶다면 이 얇은 책 한 권을 추천해 주고 싶구나. 이 책 한 권만 완독하고 책에 나온 대로만 하면 그는 금방 인기 있는 정치인이 될 것이고, 대권후보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싶구나. 그만큼 이 책에는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 잘 정리되어 있단다. 문재인 대통령님이 지지도가 높은 이유가 바로 이 책에 있는 내용들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정치인이기도 해서일 거야. 정치한다고 어려운 책 집어 들지 말고 이 책 하나면 될 것 같아.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님이 얼마나 쉽게 말씀을 잘 하시냐그 말씀을 그대로 적은 글들이라서, 눈에 쏙쏙 들어온단다.

읽다 보면 노무현 대통령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어. 그동안 동영상이나 다른 책들을 통해서 익숙한 글들이지만, 다시 한번 그를 추모하는데 잘 정리된 책인 것 같더구나.

 

 

2.

문재인 대통령님이 쓰신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 노무현 대통령님이 남긴 숙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이야기했단다. 이 책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님이 문재인 대통령님에게 남긴 숙제가 아닌가 싶구나.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님은 숙제를 시작한 지 일년이 지났고그런데 그 숙제를 너무 열심히 하고 너무 잘 하고 계신 것 같구나. 요즘 퇴근길에 마주치는 낯선 우리나라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확실히 몇 년 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 좀더 편안해 보이고 여유도 있어 보이고 행복해 보이기도 하고문재인 대통령님이 숙제를 열심히 하고 계시니까, 우리 국민들이 행복해지는구나.

문재인 대통령님 남은 임기 내내 노무현 대통령님이 내준 숙제를 잘 해주실 믿는단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님은 임기를 마무리하면서, 또 다음 대통령에게 숙제를 남기고, 그 숙제를 할만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문재인 대통령님이 내 준 숙제를 또 열심히 하면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되지 않을까 싶구나. 미래가 기대되는구나. 통일도 멀지 않을 것 같고, 기차 타고 유럽까지 가는 일은 더욱 가까운 시일에 할 수 있을 것 같구나.

 

 

3.

아빠가 앞서 이 책의 내용들이 정치 교과서라고 했잖아. 모든 내용들이 주옥 같은 글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오늘날 우리나라 상황에도 딱 들어맞는 글들을 발췌해 보았단다. 아빠가 책에서 발췌한 것들만 따로 정리하는데, 오늘은 여기 독서편지에고 그 발췌한 것 모두를 실어보았단다. 몇 번을 보아도 좋은 글이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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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민주주의는 투쟁으로 쟁취하는 것이지만 성숙한 민주주의는 투쟁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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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민주주의는 공존과 통합의 기술입니다. 민주주의는 사상과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람들 모두 포섭사고 그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제도입니다. 다원적인 가치와 이익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집단을 이루어서 분파를 만들고 투쟁과 타협으로 분열을 극복하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통합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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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민주주의에 완성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끊임없이 진보합니다. 우리 민주주의도 선진국 수준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뤄 가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인 대화와 타협, 관용, 통합을 실천해야 합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민주주의와 완전한 이상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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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민주주의 원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관용입니다. 이것은 상대주의의 귀결이기도 하고, 상대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는 통합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관용이란 무엇인가? 소극적 의미로 보면, 관용은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생각이 다르다 하여 타도하고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민주주의 공동체를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 공동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관용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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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민주주의 정치에서 진보다 보수도 중도다 하는 노선도 매우 중요한 가치지만 그 가치의 상위에 원칙이란 가치가 있습니다. 게임의 규칙을 지킬 수 있는 원칙을 존중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 정치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원칙을 파괴하고 반칙하는 사람은 진보든 보수든 관계없이 정치인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선거를 위해서 후보를 위해서 그렇게 하게 됐을 때 우리 정치는 한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너도 나도 진보를 얘기하고 개혁을 얘기하고 새로운 정치를 얘기하지만 원칙을 지킬 줄 모르면 그 정치는 한발도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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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정부를 끝까지 지켜줄 수 있는 힘은 국민입니다. 스스로의 투명한 자세입니다. 잘못이 있으면 국민이게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할 것입니다. 검찰에 의지하다 보면 검찰에게 뭔가 특별한 권력을 주어야 하고, 그 검찰은 국민 위에 군림하게 됩니다. 아무도 규제를 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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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내가 원하는 것은분열구도를 극복하자고 하는 역사적인 과제입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있지만, 한때에는 이 지역주의라는 것이 전 국민적인 관심사였습니다.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이 문제 특히 정치의 분열구도만이라도 극복하자는 것입니다. 정치의 분열구도만이라도 좀 해소할 수 있게 선거제도를 고쳐달라는 것이 나의 요구이고 이를 위해 정말 진지하게 논의해보자는 것입니다. 상생의 정치를 하려면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있어야 되고, 바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대화와 타협을 제안하고 있는 것입니다. 협의상의 제안이 대화와 타협의 제안인데, 한두 가지 표현에 집착하지 말고 내용을 가지고 얘기 좀 하자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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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진실을 토대로 하지 않는 정치는 어떤 제도로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자기 말에 가치가 실리지 않고, 일관성이 실리지 않는 정치는 어떤 경우에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어떤 제도로도 이것은 치유할 수 없습니다. 보증해 줄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좋은 헌법이 있어도 자기가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정치를 가지고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정치가 가능한 토양, 적어도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의 토양이 갖춰져야 합니다. (개헌은) 그 토양을 갖추자고 하는 제안입니다. 그것을 우습게 생각하는 정치 문화에서 정치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민주주의는 결코 성공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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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내가 싸울 상대는 무형의 것이다. 그것은 제도이다. 변화를 필요로 하는 구문화와 관습이 내 싸움의 상대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은 내 시대와 내게 빛과 영광을 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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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사회가 발전하려면 언론이 달라져야 합니다. 언론의 수준을 높이는 가장 강력한 힘은 깨어 있는 시민의 참여입니다. 더 많은 시민들이 기사의 생산과 유통에 참여하고, 책임 있는 비판으로 언론의 정치권력화를 견제해 나갈 때 언론의 수준과 기사의 품질은 더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시민참여언론 간의 활발한 연대는 전 세계의 민주주의 발전시키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저도 임기를 마치면 시민주권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운동에 적극 참여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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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혁신에 성공한 모든 경험에는 반드시 리더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리더가 관심이 없는 혁신이 성공한 사례도 없습니다. 학습 없이 성공한 일도 없지만 리더가 무관심한 혁신은 성공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성패의 관건이고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많은 사람이 비전을 얘기합니다. 그런데 비전으로 비번이 실현되지 않습니다. 전략이 있어야 합니다. 전략 없이 목표달성은 없습니다. 전략은 거저 나오지 않고 풍부한 아이디어가 있어야 합니다. 리더 스스로 대단히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고, 조직 전체에서 활발히 새로운 제안이 나오게 만들어 가야 합니다. 결국 혁신이 구체적으로 이뤄지는 단초는 아이디어입니다. 목표만 가지고는 절대 안 됩니다. 아이디어가 나와야 합니다. 그 다음에 필요한 건 열정입니다. 열정 없이는 아이디어도 안 나오고 추진도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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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혁신을 새로운 것을 하자는 것보다는 일을 제대로 하자는 것입니다. 무슨 대단한 진보를 이루자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시스템을 제대로 정비하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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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큰 틀의 원칙을 지키되 구체적인 외교행위는 융통성을 가져야 합니다. 외교는 현실입니다. 외교는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라 쌍방적인 행위입니다. 따질 것은 따지더라도 상대를 존중할 것은 존중해야 합니다. 균형외교이든 자주국방이든 점진적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기존의 관계를 갑자기 바꾸려고 하면 마음이 상하기 쉽습니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미 관계를 비롯한 주변국과의 외교관계를 옛날대로 가자고 하는 주장은 원칙에 맞지 않고 일거에 바꾸자고 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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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한반도에 냉전체제가 계속되는 한 동북아시아의 대립과 긴장은 해소되기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 문제의 해결은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여는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불안과 경계의 시선을 거둘 수 있도록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래서 국민들 가슴속에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자리잡게 해야 합니다. 저는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야말로 역내 지도자들이 국민들에게 이야기해야 할 공동의 미래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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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민주주의 발전은 순조롭게 가고 있습니다. 독재는 없어지고 특권과 권력의 횡포도 어느 정도 해소됐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수준이 더 높은 수준으로 향상될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민주주의라는 것이 바로 사회적 자본이라고 말하는 신뢰와 통합, 그리고 갈등의 극복, 이런 것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복지도 우리가 그동안에 그저 생산성 없는 분배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고, 생산과 분배는 서로 배치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은 별도의 것이라는 생각도 많았습니다. 이제 이것은 맞지 않다는 이론이 이미 세계적으로 확립돼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성숙이라는 것은 아주 중요한 국가 전략이고, 그 다음에 사회 복지 투자를 훨씬 더 늘리고 효율성을 높이는 것, 이것이 국가 발전의 중요한 전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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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역사는 더디다. 그러나 인간이 소망하는 희망의 들불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이상이란 것은 더디지만, 그것이 역사에서 실현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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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우리가 미래에 추구해야 될 가장 적절한 민주주의 형태를 저는 진보적 시민민주주의라고 이름 붙여 보았습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인간다운 삶이라고 하는 가치를 어떻게 실현해나가느냐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독선과 부패의 역사, 분열의 역사, 패배의 역사, 굴욕의 역사 여기에서부터 비롯돼 왔던 패배주의와 기회주의 문화를 오늘날 민주주의 시민사회의 시민문화로 변화시켜나가야 합니다. 물려받은 역사의 오염된 찌꺼기들을 해소해나가야 합니다. 결국 우리 한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시민적 주체 세력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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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정치지도자는 원칙이 분명해야 한다. 투명해야 한다. 공정해야 한다. 그리고 통찰력이다. 통찰력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대한 철학적 이해다. 꼭 필요하다. 그래야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통찰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30년 전의 낡은 이념에 매달려서 현실에 맞지 않는 교조적인 주장을 한다. 변화된 사실, 역사의 변화를 통찰력 있게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 다음에 정직하고 성실하고 인간적 신의가 있어야 한다.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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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열심히 일하면 땀 흘린 만큼 잘 사는 사회, 바로 우리가 꿈꾸는 새로운 대한민국입니다. 이제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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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협상을 하면서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그냥 모순이지요. 실제로 남북 간 협상에서는 정통성에 관련되는 발언 시비로 항상 협상 자체가 무산되거나 시간만 낭비하는 날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고 감정과 비난을 일삼는 일도 역시 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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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만약 중력의 크기가 조금이라도 달랐다면, 우주의 역사는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나자마자 순식간에 강한 중력으로 인해 무너져 버리든지, 반대로 앗 하는 사이에 팽창해서 완전히 식어 버려서 생명은커녕 별조차 만들어지지 못하고 어두운 허무의 세계가 영원히 지속되는 우주가 되었을 것이다. 우주가 긴 시간을 들여 별이나 은하를 만들고 생명체가 태어날 수 있게 된 것은 중력이 딱 적당했기때문이다.

(59)

물론 광속이 일정하다는 것은 이미 맥스웰 이론에서 보여준 바 있지만, 그렇다면 이와 모순되는 뉴턴의 이론은 어떻게 될까. 그쪽은 그쪽대로 광속 이외의 분야는 정확히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틀렸다고 팽개쳐 버릴 수는 없다.

그래서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뉴턴의 이론을 수정하기 시작하였다.

(108-9)

관측 결과 별빛이 휘어지는 각도는 아인슈타인 이론에서 예측한 것과 거의 일치하였다. 여기서도 아인슈타인 이론이 승리한 것이다. 이 획기적인 발견은 대서특필되어 제1차 세계대전으로 지쳐 있던 유럽인들에게 오랜만에 밝은 소식을 안겨 주었다. 독일과 영국은 서로 전쟁중인 적대국 관계였다. 하지만 독일인 아인슈타인이 만든 이론을 영국인 에딩턴이 증명한 것이다. 이 관측은 차갑게 식었던 독일과 영국의 관계를 회복시켰다는 의미로도 사회적 큰 영향을 미쳤다.

(114)

그렇다면 무엇이 쌍성의 에너지를 가져가는 것일까. 범인으로 여겨지는 것이 중력파다. 휴대전화가 전자의 진동에 의해 전자기파를 발생시키는 것처럼 쌍성이 빙글빙글 회전하면 중력장이 진동하여 파동이 전해지게 된다. 파동이 전해지기 위해선 에너지와 필요하기 때문에 어디서든 그 에너지를 조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때문에 쌍성의 공전운동의 에너지가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치가 맞다.

(117-8)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인공위성은 움직이기 때문에 지상에서 보면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광속에 비하면 인공위성의 비행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얼마 안 되는 차이지만, 인공위성에 탑재된 시계는 지상의 시계보다 매일 7마이크로씩 늦어진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강해질수록 시간이 천천히 흐르게 된다. ‘원주율=3.14……가 성립하지 않는 세계인 우주정거장에서는 우주정거장이 빠르게 회전할수록, 즉 그 안의 인공중력이 강해질수록 시간이 더욱 천천히 흐른다. 때문에 지구의 지표에서 보면 지구의 중력이 약한 인공위성에 탑재된 시계는 더 빠르게 보인다. 그래서 하루에 46마이크로초씩 빨라진다. 여기에 특수상대성이론 효과에 의해 생겨난 인공위성 시간의 늦어짐(7마이크로초)을 빼면 하루 39마이크로초 만큼 인공위성의 시계는 빨라진다.

(121)

18세가 끝날 무렵 영국의 존 미셸(납 구슬 사이의 중력을 측정한 캐번디시의 실험을 고안했음)과 프랑스의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라플라스의 악마 이야기로 유명) 두 명과 과학자가 블랙홀을 예견하였다. 질량이 클수록 중력은 강해진다. 그렇다면 굉장히 질량이 큰 별이 있다면 그 별에서는 빛의 속도로도 탈출하지 못할 것이다. 즉 빛이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그 별은 어두워서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127)

그 후 계속된 연구로 퀘이사가 은하의 중심에 있는 초거대 블랙홀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빛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밝게 빛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지만, 그건 블랙홀 자체의 빛이 아니다. 블랙홀이 강혼 중력으로 주위의 가스를 빨아들이면 그 가스들이 맹렬한 기세로 블랙홀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게 된다. 그 가스가 마찰열에 의해 강하게 빛을 방출하는 것이다. 블랙홀에 삼켜지기 전에 지르는 비명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133)

그런데 은하가 멀어지는 속도가 거리에 비례한다면,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거리가 멀수록 빠른 속도로 멀어진다면, 특정 정도 이상으로 떨어져 있는 은하가 지구에서부터 멀어지는 속도는 광속을 넘게 된다. 광속을 우주의 제한속도라고 한 아인슈타인 이론에 반대되는 생각이지만, 그 이론은 우주 안에서 이동속도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우주 그 자체가 광속 이상으로 팽창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150)

그것이 바로 양자역학이다. 단순히 말하면 매크로 세계를 다루는 상대성이론이 있다면, 양자역학은 마이크로 세계를 다루는 물리학이다. 우주의 시초에는 공간이 극한으로 압축되어 있었기 때문에 중력이론뿐만 아니라 마이크로 세계의 이론 또한 필요하다. 우주 시초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아인슈타인 이론의 한계를 넘어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두 이론을 결합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다음에, 모든 자연계 현상의 기초가 되는 궁극의 통일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87-8)

그 기본 법칙은 우리 경험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더욱 깊어지게 된다. 처음에는 뉴턴 이론만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보다 거대한 세계와 만나게 되자 아인슈타인 이론이 필요하게 되었고, 아주 작은 마이크로 세계에서는 양자역학이 필요하게 되었다.

또 물리학의 세계에서는 새로운 영역이 열릴 때마다 기존 이론을 통합하는 새로운 이론을 구축해 왔다. 예를 들어 맥스웰은 전기현상과 자기현상을 통합하여 전자기학을 확립하였고, 그 맥스웰 이론과 뉴턴 이론의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서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구축했다. 그리고 특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융합시키는 장의 양자론이 제기되는 방식이다.

(256)

다만 우주의 심지인 마이크로 세계를 취급하는 초끈이론에서는 양자역학이 어떤 의미로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모순을 해소한 결과 양자역학은 그대로 사용되었고, 상대성이론은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뉴턴역학과 맥스웰 전자기학의 모순을 해소하려 했던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에 있어서 맥스웰 이론을 그대로 사용하고, 뉴턴의 속도 합성법칙을 변경했던 것과 같은 경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초끈이론에 있어서 커다란 성공이었다. 블랙홀의 증발에 있어서 인과율이 무너져 버린다는 주장은 철저하게 논파되었다. 게다가 다음 장에서 나오듯이, 생각하지 못했던 덤도 함께 나왔다.

(262)

초전도란 금속의 등의 물질을 냉각시켰을 때 전기저항이 급격하게 0으로 되는 현상을 말한다. 가령 알루미늄은 절대온도 1(섭씨 -272)에서 초전도상태가 된다. 그런데 25년 전, 그때까지보다 훨씬 고온(현재는 절대온도 100도 이상)에서 초전도현상을 보여주는 물질이 발견되어 물리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발견 직후 열린 미국 물리학회에 전 세계에서 수많은 연구자들이 몰려와, ‘물리학의 우드수탁이라고 불릴 정도였다.(우드스탁:뉴욕의 베델에서 사흘 동안 열린 록 음악 축제-역주). 하지만 이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은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초전도를 이론으로 해명하기까지는 최초의 실험으로부터 47년이 걸렸기 때문에, 지금부터 20년이 더 걸린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홀로그래피 원리에 의한 연구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좀 더 빨리 고온 초전도의 구조를 밝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272)

다행스럽게 초끈이론은 소립자의 표준모형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전부 갖추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80년 넘게 해결되지 못했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융합이라는 곤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가 된 것이다. 두꺼운 암반의 틈에서 새어나온 한줄기의 빛과 같은 이론인 것이다. 물론 실험으로 검증이 필요하다. 현재 이 분야는 이론이 앞선 만큼 그것을 검증하는 작업이 따르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초끈이론을 검증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의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하지만 물리학에서는 이론을 검증하는 실험이 이루어지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 경우가 적지 않다. 뉴턴역학도 이론으로서의 유효성은 곧바로 확립되었지만, 그 중력이 만물에 존재한다는 것이 캐번디시의 실험으로 검증되기까지는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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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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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 책은 아빠가 예전부터 읽어보고 싶어하던 책이야. 그러던 중 작년 하반기에 <알쓸신잡>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유시민님이 추천을 하고 나서 더욱 읽어보고 싶은 책이 되었단다. 유시민님의 영향력으로 인해 베스트셀러에도 오랫동안 상위랭크 되었었어.

랩 걸. 왜 제목이 랩 걸일까 싶었었단다. 보통 Lab이라고 하면 실험실이라는 뜻이거든.. 이 책을 읽은 지 얼마 안되어 왜 제목이 랩 걸인지 바로 알겠더구나. 지은이가 평생을 실험실에 살았던 여자 과학자였기 때문이야. 호프 자런이라고 하는 과학자란다. 당연히 아빠는 이 사람의 이름을 처음 들어보았지만, 미국에서는 꽤 유명한 과학자인가 봐. 2016년에는 <타임>지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도 선정이 되었대. 1969년생이니까 아직도 현역으로 열심히 연구하고 있겠구나.

1.

호프 자런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실험실에서 살았어. 그의 아버지는 미네소타 대학교의 물리학, 천문학 교수였거든. 호프 자런에게 실험실은 놀이터였어.

호프 자런에게 실험실이라 어떤 곳이었냐 하면

불이 항상 켜져 있는 곳.

내가 하지 않을 일에 대한 죄책감이 내가 해내고 있는 일들로 대체되는 곳.

교회와 같은 곳. 내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곤 하기 때문에

글을 쓰는 곳. 글에는 내가 써야 하는 이야기와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어.

이 책은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고 보면 돼. 그냥 누군가에게는 실험실은 그저 실험만 하는 곳인데, 그에게 있어 실험실은 이런 다양한 모습으로 보였던 것 같구나. 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능력. 그것은 과학자로서 좋은 능력인 것 같아. 그리고 과학에 관련된 글을 쓰면서도 인문적인 시선과 감성적인 문체도 들어 있었어. 예전에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 진짜 유명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글도 잘 써야 한다고 말이야. 아무리 연구 실적이 좋아도 글을 잘 못쓰면 좁은 범위에 국한될 수 밖에 없지만 글을 잘 써서 자신이 연구한 내용을 잘 포장까지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영역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라고 말이야. 현대에 와서 유명한 과학자로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하나같이 글들도 작가만큼 잘 쓴단다.

이 책의 지은이 호프 자런이 평생에 걸쳐 한 연구는 나무에 관련된 내용이란다. 나무에 관한 연구를 한 사람들이 뭐, 한두 명이겠니. 하지만 이렇게 일반 대중에게까지 알려진 과학자들은 그리 많을 거야. 호프 자런도 이 책을 쓰지 않았다면 그렇게 유명해지지 않았겠지?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연구를 했는지도 알지 못했을 거야. 물론 그의 글쓰기가 자신의 업적과 노력을 알리는데 목적만 있었던 것은 아닐 거야. 그는 이 책을 통해 일반 대중들이 나무에 대한 관심을 더 많이 가져주길 바랬을 거야. 그리고 신비한 나무의 삶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싶을 것이고또 누군가는 그의 연구하는 자세를 보고, 자신도 그런 과학자가 되어야겠다고 꿈을 심는 사람도 있겠지과학에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이나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것은 좋은 습관인 것 같아. 너희들도 그런 습관을 가지면 좋겠지만, 기대는 안 할래^^

아빠는 이 책을 통해서 나무의 신비한 삶을 많이 알게 되어 먼저 좋았단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빠가 발췌한 부분을 직접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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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씨앗은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 안다. 대부분의 씨앗은 자라기 시작하기 전 적어도 1년은 기다린다. 체리 씨앗은 아무 문제없이 100년을 기다리기도 한다. 각각의 씨앗이 정확히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그 씨앗만이 안다. 씨앗이 성정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 그 기회를 타고 깊은 물속으로 뛰어들 듯 싹을 틔우려면 그 씨앗이 기다리고 있던 온도와 수분, 빛의 적절한 조합과 다른 많은 조건이 맞아떨어졌다는 신호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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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첫 뿌리가 감수하는 위험만큼 더 두려운 것은 없다. 운이 좋은 뿌리는 결국 물을 찾겠지만 첫 뿌리의 첫 임무는 닻을 내리는 것이다. 닻을 내려 떡잎을 한곳에 고정시키는 순간부터 그때까지 누리던 수동적인 이동 생활에 영원히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일단 첫 뿌리를 뻗고 나면 그 식물은 덜 추운 곳으로, 덜 건조한 곳으로, 덜 위험한 곳으로 옮길 희망(그 희망이 아무리 미약한 것이었다 할지라도)을 포기해야 한다. 서리와 가뭄과 굶주린 입이 찾아와도 그로부터 도망갈 가능성 없이 모든 것을 직면해야 한다. 그 작은 뿌리는 자기가 앉아 있는 그 장소에 몇 년,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의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길지를 점칠 기회를 딱 한 번 가진다. 뿌리는 그 순간의 빛과 습도를 감지하고 자기 속에 내재된 프로그램으로 정보를 점검한 다음 글자 그대로 몸을 던져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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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배아 안에는 떡잎이 들어 있다. 이미 만들어진 두 개의 적은 이파리인 떡잎은 구명용 보트처럼 비상시 부풀려서 임시로 사용할 수 있는 생명 유지 장치다. 가장 가까운 자동차 수리점 정도까지만 갈 수 있게 만들어진 스페어 타이어와 마찬가지로 떡잎도 작고 빈약하다. 수액이 들어가 팽창이 되면 겨우 초록빛 물이 조금 든 이 떡잎들은 겨울날 고물차에 시동을 걸 듯 광합성을 시작한다. 조잡한 구조의 떡잎은 절뚝거리면서도 진짜 이파리를 만들어낼 준비가 될 때까지 식물 전체를 지탱하다가 시들어서 떨어진다. 식물이 만들어낼 이파리 모양과도 전혀 다른 모양을 띤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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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목재는 강하고, 가볍고, 유연하고, 무독성이며, 날씨의 변화에 강하다. 수천 년 동안 발전한 인류 문명에도 우리는 이보다 더 나은 다목적 건축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같은 면적이라면 목재 기둥은 강철만큼 강하고, 신축성은 열 배이면서도 무게는 10분의 1에 불과하다. 고도의 기술을 적용한 인공 물질이 많이 나왔음에도 주택을 지을 때 가장 인기 있는 자재는 목재다. 미국에서만 지난 20년 사이에 사용된 나무 판자를 나열하면 지구에서 화성까지 다리를 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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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살지 않아야 할 곳에서 사는 식물은 골칫덩어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살지 않아야 할 곳에서 번창하는 식물이 잡초다. 우리는 잡초의 대담성에 화를 내지는 않는다. 모든 씨앗은 대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화를 내는 것은 잡초들의 눈부신 성공이다. 인간들은 잡초밖에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놓고 잡초가 많이 자란 것을 보면 충격을 받은 척, 화가 나는 척한다. 우리가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은 사실 아무 상관이 없다. 식물의 세계에서는 이미 혁명이 일어나서 인간이 개입한 모든 공간에서는 침입자들이 쉽게 원주민들을 내쫓고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가 아무 힘도 없이 그저 입으로만 잡초를 욕해봤자 이 혁명을 멈추지는 못한다. 지금 목격하고 있는 혁명은 우리가 원한 것이 아니라 촉발한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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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눈 속에서 사는 식물들에게 겨울은 여행이다. 식물은 우리처럼 공간을 이동하면서 여행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식물은 장소를 이동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사건을 하나하나 경험하고 견뎌내면서 시간을 통한 여행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겨울은 특히 긴 여행이다. 나무들은 오지를 긴 시간 여행하는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조언과 똑 같은 조언을 따른다. 짐을 단단히 싸라는 조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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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8)

지구에 존재하는 물의 총량을 올림픽 규격 수영장에 비유한다면, 흙속에서 식물들이 취할 수 있는 물의 양은 청량음료 병 하나를 채우지도 못하는 양이다. 나무들은 너무도 많은 양의 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이파리 한 줌 만들어내는 데에도 1 갤런 이상이 필요하다) 뿌리가 능동적으로 흙을 빨아대는 상상을 하고 싶어질 정도다. 그러나 현실은 상당히 다르다. 나무의 뿐리는 전적으로 수동적이다. 물은 낮 동안 수동적으로 뿌리 안으로 흘러들어가고, 밤 동안 수동적으로 뿌리 밖으로 흘러나온다. 달의 영향을 받아 벌어지는 바다의 조수간만만큼이나 정확하다. 뿌리 조직은 스펀지처럼 작동한다. 엎지른 우유에 마른 스펀지를 대면 자동적으로 부피가 커지면서 액체를 빨아들인다. 그 축축한 스펀지를 건조한 시멘트에 올려놓으면 얼마 가지 않아 액체가 흘러나와 시멘트 위에 얼룩이 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디서 땅을 파더라도 기반암에 가까워질수록 흙은 더 축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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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호프 자런은 과학자라고 했잖아. 그렇게 과학자라고 하면 끝인데, 우리 세상은 여자인 경우에는 앞에 여성을 붙여서 여성 과학자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단다. 과학계에서는 아직 여성에 대한 편견이 많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어. 호프 자런이 1969년이면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과학자인데, 자신이 오늘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받은 차별 등이 많이 있었대. 지난 세기 많은 여성 과학자들이 업적을 가로채기 당했다는 이야기는 이제 비밀도 아닌 것 같구나.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그런 것이 존재하다니.. 그것도 스스로 선진국이라고 이야기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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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7)

나는 남의 말을 듣는 데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을 잘 한다. 나는 똑똑하다는 말을 들었고, 단순하다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너무 많은 일을 하려 한다는 말을 들었고, 내가 해낸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도 들었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고,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내가 한 일을 할 수 있었다는 말도 들었다. 나는 영생을 얻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고,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일찍 죽을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너무 여성적이라는 꾸지람을 들었는가 하면 너무 남성적이어서 못 믿겠다는 말도 들었다. 내가 너무 예민하다는 경고를 받은 적도 있고, 비정하고 무감각하다는 비난도 들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은 모두 나만큼이나 현재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래를 보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그런 말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내가 여성 과학자이기 때문에 누구도 도대체 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따라서 상황이 닥치면 그때그때 내가 무엇인지를 만들어나가면 되는 값진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동료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나도 그들에게 충고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음 두 문장을 되뇐다. 이 일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야만 할 때를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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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책의 또 다른 큰 줄기는 호프 자런의 지금까지의 살아온 이야기란다. 아직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그의 삶의 전반전까지 정리한 자서전이라고 할까. 그리고 자신의 성장을 식물의 성장에 빗대어 설명한 것 같았어. 그래서 책을 시작하면서 사람은 식물과 같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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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사람은 식물과 같다. 빛을 향해 자라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과학을 선택한 것은 과학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의미의 집, 다시 말해 안전함을 느끼는 장소를 내게 제공해준 것이 과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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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프 자런의 업적에 지대한 업적은 파트너 과학자가 있으니 빌이라는 사람이란다. 호프가 대학원 조교를 하던 시절에 만난 사람인데, 그에게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었어. 과학자가 갖추어야 할 끈기와 열정이 있었단다. 이후 그들은 줄곧 같이 연구를 하였단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졌어. 그리고 많은 업적도 냈단다. 아빠는 책을 읽으면서 한편으로 그들이 과학자의 동료뿐만 아니라 인생의 반려자로 사랑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들의 성격도 잘 맞았고, 과학 연구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도 가장 먼저 찾곤 했거든. 아빠의 편견이었나?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친구가 될 수가 없다는…. 그런 것 치고는 너무나 오랫동안, 그리고 너무 가까이 지냈는데…. 호프 자런이 클린트라는 다른 과학자와 사랑에 빠졌을 때 아빠는 지은이에게 좀 실망을 했단다.

아빠가 빌과 호프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 모르겠지만, 책에서 이야기한 것으로만 보면 빌은 호프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했던 빌이 아니라 클린트라니그러면서 클린트와 사랑은 금방 깨지고 결국은 빌과 함께 할 거라는 예측을 하면서 책을 읽어나갔지만 결국은…. 클린트와 결혼을 하고 아기도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미게 된단다. 그리고 빌과는 여전히 절친 동료로써 같이 연구를 했어. 더욱이 빌은 결혼도 안하고 연구에만 몰두를 하는데…. 이 책이 출간된 이후라도 빌도 진정한 사랑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절로 드는구나. 혹시 빌은 과학과 결혼한 것일까?^^

이런아빠가 과학 교양 서적을 읽으면서 사랑 타령이나 하고 있구나.^^ 호프 자런이 생각하는 과학 이야기를 해볼까. 호프에게 과학이란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레시피라고 했어. 그래서 그렇게 평생 과학과 함께 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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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시간은, , 내 나무에 대한 나의 눈, 그리고 내 나무가 자신을 보는 눈에 대한 나의 눈을 변화시켰다. 과학은 나에게 모든 것이 처음 추측하는 것보다 복잡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을 발견하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레시피라는 것을 가르쳐줬다. 과학은 또 한때 벌어졌거나 존재했지만 이제 존재하지 않는 모든 중요한 것을 주의 깊게 적어두는 것이야말로 망각에 대한 유일한 방어라도 것도 가르쳐줬다. 나보다 더 오래 살았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내 나무도 그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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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연구하는 과학자. 아무래도 지구의 환경도 연관 지어 생각하는 사람이었어. 지구의 녹색은 점점 줄어들고우리 자손들에게 황폐한 폐허만 남기고 떠날 것에 대한 두려움그런 것은 호프 자런도 느끼고 있어. 녹색…. 녹색이라는 단어는자란다라는 동사와 어원을 같이 한다고 하는구나. 원문은 영어로 썼을 테니, 녹색은 green, ‘자란다 grow…. 일 것 같구나. 녹색이라고 하면 편안함과 평화, 자연 등 좋은 것들만 연상이 되잖아. 그런 녹색이 지구에서 줄어들고 있으니많은 사람들이 그 걱정을 같이 하고 어떻게 하면 녹색을 늘릴 수 있을 수 같이 고민하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구나. 이제 6월만 되어도 찌는 더위가 시작되곤 하는구나. 정말 지구는 점점 불타오르는 기분이야. 이런 문제점에 대해 세계 모든 나라의 정부에서 심각하게 걱정을 했으면 좋겠는데아직도 성장과 경쟁만 찾고 있으니안타깝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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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

전 세계 어디를 가나녹색이라는 단어는자란다라는 동사와 어원을 같이한다. 자유 연상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은녹색이라는 단어와 자연, 휴식, 평화, 긍정이라는 개념을 연관 지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녹색을 잠시 스쳐 지나가는 식으로라도 접하면 단순한 임무를 수행하는 데서도 창의력을 향상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우주에서 본 지구는 해마다 조금씩 녹색이 줄어가고 있다. 컨디션이 나쁜 날이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이 전 지구적인 문제들이 악화되고만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늘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 즉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자손들을 황폐한 폐허에 남겨두고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 지금까지 어느 때보다 더 병들고, 굶주리고, 전쟁에 시달리고, 심지어 녹색이 주는 소박한 위안마저도 박탈당한 채 사는 세상을 남기고 떠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이 문제에 대해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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