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하지만 기후변화라는 엄혹한 시대를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불과 몇 인치이지만 그것 없이는 지상의 모든 생명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한 흙(토양)이 지금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2차대전 후 지금까지 전세계 표토의 절반이 사라졌다는 연구도 있다. 우리는 흙의 대량 소실이라는 이 현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깊게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흙이 잘 보존되고 가꾸어진다면 기후변화에 대해서도 상당한 정도의 대응은 가능하고,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허용될 수 있을 것이다.

(11)

시골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도시인들 탓으로 돌리면 기분이 좋아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골과 도시의 대립이라는 오래된 도식은 물론 여전히 진실이며, 시골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도시의 식민지가 되어 있는 오늘날에는 경제적인 의미에서는 더욱 진실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문제를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단순하다. 실제로 시골사람들도 갈수록 도시인들처럼 살고 있고, 따라서 도시인들과 공범이 되어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기 때문이다. 점점 더 많은 시골사람들은 도시인들처럼 텔레비전과 세일즈맨, 외부 전문가들이 설정한 경제적, 사회적 기준을 자기들의 생활에 적용하고 있다. 우리의 쓰레기는 시골 매립장에서 뉴저지의 쓰레기들과 뒤섞여 있고,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구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13)

저 옛사람들의 후손들은 지금 대부분 멀리로 떠나버렸다. 그 원인은 부분적으로 내가 조금 전에 언급했던 문화적 경제적 실패에 있다. 어쨌든 그들은 더 이상 저녁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그들 중 대부분은 잠잘 때까지 텔레비전을 보면서 매 수간을 광고를 듣는 데 쓰고 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광고의 메시지는, 시청자가 다른 사람들처럼 되어야 하고 그러자면 무엇이든 필요한 것을 사야 한다는 것이다.

(36)

농사를 살리는 것은 당면 위기에 대한 지혜로운 대응일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난제 중의 난제, 즉 수도권 과밀현상과 지역균형발전 문제의 해결에도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중앙의 주요 기관 지방 이전이라는 방식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지역경제가 우선 살아나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역경제의 핵심이 농사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이다. 농사를 살리면 지역의 토착 소상공업이 살아나고, 지역사회와 마을문화가 활기를 찾고, 거기에 뿌리를 박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연히 늘어나게 마련이다.

(53~54)

분단체제는 다른 체제로 체제전환(system transformation)됨으로써 사라진다. 분단체제 안에서 성장해온 힘이 이 체제의 작동을 정지시키면서 새로운 체제로 전환해가는 것이다. ‘촛불혁명이야말로 바로 이러한 체제전환의 계기, 출발점이 되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분단체제가 체제전환을 통해 환골탈태해야 한다면, 그 환골탈태한 새 체제란 과연 무엇일까? 남북의 적대가 해소되어 평화롭게 공존하는 체제 아니겠는가? 그래야 독재가 민주를 회수하는 마의 순환고리가 이윽고 끊기지 않겠는가? 그것이 한국과 조선이 서로를 인정하여 수교하는 양국체제, 즉 양국 평화체제, 양국 공존체제 아닌가? 그것이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의 체제전환인 것이고, 이것이 촛불을 진정 혁명으로 만드는 징표가 되지 않겠는가? 이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과연 분단체제론은 어떻게 생각할까?

(81)

1999 8현대의료를 생각하는 모임회원 아홉 명은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바르바샤의 게토 유적, 그리고 독일 베를린으로 답사여행을 떠났다. 일본과 자주 비교가 되기도 하지만, 독일 또한 전쟁 당시 나치에 의해 의학범죄가 행해졌던 나라이다. 그러나 일본은 전쟁 중의 의학적 범죄에 대해서 조금도 반성하거나 돌아보려고 하지 않는 데 비해서, 독일의 경우에는 나치 의학이 저지른 범죄들에 대해 반성하고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다. <인간의 가치 - 1918년부터 1945년까지의 독일 의학>은 나치 당시의 독일 의학을 반성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독일의사회가 발행한 보고서이다. 여기에는 과거의 나치 독일 치하에서의 의학범죄 사실들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의 경우에는 일본의사회를 비롯해서 아무 데서도 이러한 노력이 조금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128)

대학은 과학에 대해서 무엇을 해왔는가? 대학은 대학의 경비 염출을 위해서 과학을 피투성이가 되도록 희생시켰다. 대학은 과학을 싸구려로 만들고,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통속적으로 만들었다. 대학에 의해서 과학은 홍보용 속임수 수단이 되었다. 이런 종류의 교육에 의해서 나온 산물이 그래도 좋은 물건이 되어 있다면, 그것은 젊은이들의 정신이 아직 건강한 탄력성을 잃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하지만 많은 젊은이들은 회복 불가능할 만큼 손상을 입고 있다.

(129)

오늘의 과학은 공적 지원에 너무나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보조금을 받지 않고는 연구를 수행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과학자들의 연구비 신청이 거부된다면, 가장 젊고 원기 넘치는 조교수들조차도 하던 일을 모두 중단하고 신청서를 작성하는 일에 모든 시간을 바쳐야 한다. 이와 같이 연구비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끊임없이 열리고 닫히다 보면, 그것은 일종의 파블로프형 조건반사 작용을 낳고, 과학을 돌이킬 수 없이 손상시키는 일반 신경쇠약 증상을 초래한다. 그러고 보면 너무 가난해지기 전에 너무 부유해지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법하다. 왜냐하면 그사이에 실현될 가능성도 별로 없는 길로 많은 젊은이들이 유혹을 받고 끌려 들어왔기 때문이다.

(229)

따라서 자본주의시스템에서 모든 개인은 중독시스템을 구성하는 기본세포이다. 이 세포의 성장은 중독시스템으로서의 자본주의를 확대재생산한다. 아니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이 세포는 계속 성장해야만 한다. 결국 세포, 그들이 속한 다양한 조직인 학교, 가족, 노조, 기업, 정부 그리고 이것들을 품에 안고 작동하는 사회 전체가 하나의 중독시스템으로 완성된다. 잘 짜인 연결망으로 서로를 얽매어 중독이라는 단일한 작동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괴물체, 저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독 과정을 영속화하는 병든 시스템이 바로 자본주의사회인 것이다.

(233)

중독시스템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가? 물론 그 출발은 나 자신이 (동반) 중독자라는 사실을 시인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를 위해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지향하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소유보다 존재를 지향하는, 결과보다 과정을 지향하는, 그리고 외면보다 내면을 지향하는 삶으로서의 방향전환이 그것이다. 이러한 방향전환을 토대로 중독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의 시스템을 상상해볼 수 있다. 저자들은 기계의 원리인 자동성, 획일성, 무한성이 지배하는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파괴를 특성으로 하는 근대성 패러다임의 극복을 말하는데, 야생성, 다양성, 순환성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 자연의 원리와 계획성, 창의성, 윤리성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 인위적 원리의 중간 어디쯤에서 새로운 시스템의 기본 원리를 찾을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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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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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손원평의 <서른의 반격>이라는 소설이 재미있다는 소문을 들었어. 그런데 망설였단다. 제목에 서른이 들어가 있어서 말이야. 아빠는 서른을 한참 전에 건너와서 말이지그러다가 문득 그럼 김광석의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는 안 들을 건가? 재미있으면 그냥 읽으면 되지, 나이 따져 가면서 읽을 필요 있는가? 그렇지?

소문대로 재미있더구나. 또 한 명의 실력 있는 소설가도 만나고 말이야. 얼마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우리나라에 유능한 젊은 작가들이 꽤 많구나. 우리나라 문학에 희망을 볼 수 있겠어. 많은 사람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면 말이야. 이 책은 제주 4.3 평화문화상이라는 의미 있는 상도 받은 작품이란다.

 

1.

몇 년 전부터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이 있어. 그런데 이 소설에는 88년생 김지혜가 등장한단다. 88년생 김지혜는 82년생 김지영과는 또 다른 오늘을 살아가고 있어. 88년생 김지혜의 이야기를 해줄게.

김지혜, 흔하디 흔한 이름은 잘못하면 김추봉이라는, 여자로서는 갖기에 민망한 이름을 가질 뻔했어. 할아버지가 유언은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이름을 김추봉이라고 정하고 돌아가셨거든. 엄마는 임신한 아이가 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다음부터 이 이름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고, 남편한테 강력하게 항의해서 여자 이름을 지었으니, 흔하디 흔한 김지혜이라는 이름이었단다.

문득 여자 이름 치고는 특이한 지은이의 이름이 떠오르더구나. 손원평. 여자 이름 같지 않는 자신의 이름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만들었으려나?^^ 그런데, 지은이 손원평이라는 이름은 개성 있어 보이는 이름이라 좋더구나. 외우기도 쉽고 말이야.

아무튼 평범한 이름을 가진 김지혜는 어렸을 때부터 같은 반에 두어 명은 꼭 있었대. 심지어 성까지 똑같아서 김지혜A, 김지혜B로 부르기도 했대. 지혜는 어른이 되어 DM그룹의 디아망 아카데미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어. 박창식 교수라는 유명한 사람이 디아망 아카데미에서 강연을 하고 두고 간 핸드폰을 전해주려고 카페에 갔어. 그런데 그곳에서 박창식 교수를 큰소리로 흉보는 어떤 젊은이를 만났단다. 그 젊은이는 박창식 교수를 향해서 성추행 사건과 짜깁기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사라졌어. 순간이었지만 박창식 교수는 창피와 굴욕을 당해야 했지.

그런데 얼마 뒤 아카데미에서 새로 인턴을 뽑았는데, 그 사람이 다름 아님 그때 그 카페에서 만난, 멀대 같이 키 큰 젊은이였어. 이름은 이규옥. 그는 약간 특이한 사람이었어.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했어. 전기줄에 쌓인, 아무도 관심 없는 먼지 같은 것을 닦아냈어. 그리고 일도 아주 열심이었지. 하지만 시스템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어. 규옥은 지혜에게 같이 우쿠렐라 수업을 듣자고 했어. 아카데미에서 인턴 사원들에게 공짜로 강의 하나를 들을 수 있는데, 가장 비싸다는 이유로 규옥은 우쿠렐라 수업을 듣자고 했던 거야.

우쿠렐라 수업 뒤풀이에서 같이 수업을 들었던 남은 아저씨와 무인 아저씨를 만나게 되었고, 그들 넷은 자주 술자리를 가졌지. 지혜와 규옥은 그들의 상사 김부장에 대한 뒷담화를 했는데, 규옥은 김부장의 꼰대질에 망신을 주자고 했어. 규옥은 금방 실행에 옮겼어. 김부장의 책상에 그를 파자(破字)를 이용해서 그를 흉봤단다. 김부장은 굴욕을 당했지만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없었어.

 

2.

그들은 그것을 시작으로 부당한 권위에 맞서자고 의기투합했단다. 그들은 부당한 권위에 면박을 주고 불편하게 했단다. 남은 아저씨는 자신의 레시피를 빼앗아간 유명 요리사 겸 국회의원한테 계란 세례를 했어. 그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사회 유명 인사들에게도 반격을 보여주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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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우리는 배금주의와 세습적 행정으로 악명 높은 목사가 있는 교회에 가서 그 목사가 복도를 지나칠 때 목탁을 두들기며 나무아미타불을 외치기도 했고, 장애인이라고 손님을 쫓아낸 힙한 레스토랑에 넝마 같은 옷을 입고 가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근로자들에게 임금을 체불한 대형마트에서 지점장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지불하라라고 쓰여있는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춤을 추며 짧은 노래를 부른 뒤 일 분 만에 사라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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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이런 작은 행동이 사회를 확 바꿀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부당한 권위를 휘두른 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게 할 수는 있었을 거야.

어느 날 김부장님이 지혜를 찾았어. 자신은 이제 잘린다면서 지혜를 정직원으로 추천했대. 그러면서 돌아서는 김부장. 꼰대인줄만 알았던 김부장도 사실은 젊은 시절, 뜨거운 반항의 피가 있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어. 사회에 적응하고, 나이에 순응하면서 그렇게 변했던 것이었어. 김부장의 뒷모습에 왜 이리 짠하던지

=====================================

(141)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김 부장이 정신을 차린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점점 작아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광장을 메웠을 패기 어린 젊은이가 그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상상해봤다. 그러나 둥글게 허물어진 어깨 안에서 그 청년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늙어버린 시민이 멀어져가고 있을 뿐이었다.

=====================================

 

3.

지혜가 정직원이 되고 나서 첫 번째 한 일은 공윤이라는 유명한 여자를 강사로 섭외하는 거야. 공윤은 자기계발서를 여러 권 낸 베스트셀러 작가였어. 이메일로 섭외 요청을 하고 만났는데, 아니, 이게 누구야? 고등학교 때 친구였어. 공윤의 본명은 김지혜. 주인공과 이름 같아서 친구 김지혜는 김지혜A. 주인공 김지혜는 고등학교 때 김지혜B로 불렀어. 처음에는 둘이 친하게 지냈지만, 얼마 안 가서 김지혜A는 지혜를 하인 부리듯 했고, 자신이 도둑질 한 것까지 뒤집어 씌어서 고등학교 내내 도둑으로 낙인 찍히게 한 애였어. 한마디로 원수였지.

반갑게 아는 척하면서 인사하는 공윤을 지혜는 역겨워했어. 그래도 자신의 일이라 섭외는 했지. 공윤의 강의 태도는 불성실하고, 온갖 심부름을 시키는 등 재수 없는 이의 표본이었지. 지혜는 부당한 권위를 휘두르는 공윤에게 반격하기로 했어. 공윤의 사인회장에 가서 그녀에게 잘못한 것을 호통치고 작은 소란을 피웠어. 그 장소에 지혜를 따라온 규옥이 있었고, 규옥이 지혜를 위로해 주었고, 사랑 고백을 했어.. 짧은 키스와 함께. 오히려 그 일이 있고 둘 사이는 어색함이 생겨났지.

아무튼 사인회장에서 그 일이 있고 지혜는 공윤에게 더 당당해질 수 있었어. 그리고 계속해서 불성실한 강의 태도를 보인 공윤은 결국 강의를 중단했단다.

.

우쿠렐라 뒤풀이 모임으로 시작해서 부당한 권위를 반격하던 그들의 모임은 몇 가지 일로 와해되었단다. 어떤 일이 있었냐 하면무인 아저씨는 유명하지 않은 작가였는데, DM그룹한테 영화 시나리오를 빼앗겼다고 했어. 자신이 응모한 시나리오를 탈락시키고 나서 나중에 그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었던 거야. 억울하지만, 그것을 증명할 방법은 없었고, DM그룹은 너무 거대했어. 그들은 영화시사회장에 가면을 쓰고 DM그룹이 빼앗아간 시나리오를 가져갔다고 소란을 벌였으나 경호원들에 의해 가면이 벗겨지고 얼굴이 만천하에 드러났어. DM그룹은 지혜에게 있어 자신이 다니던 DM 디아망 아카데미의 모회사잖아.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지.

그리고 규옥의 정체도 밝혀졌어. 갑부집 아들이었지. 뭐야, 약자 코스프레였던 거야? 이런 일들로 그들의 모임도 와해되고 그들도 연락이 끊겼어. 시간이 흐르고 그들이 했던 반격들이 추억이 되어갈 즈음, 규옥이 지혜를 찾아왔단다. 그들은 서로 다른 모습을 만나서 지난 시절의 갈등을 뒤로 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했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주인공들의 캐릭터들이 참 마음에 들더구나. 곰곰이 생각해 봤어. 아빠는 그들처럼 반항하지 못하고, 반격하지 못하고, 시대에 순응하면서 김부장처럼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가끔은 부당한 권위에 큰소리 칠 수 있는 그런 뜨거운 피가 아직 남아 있을까? 아니 그런 피가 있기나 했었나?

 

PS:

책의 첫 문장 : 내가 태어날 무렵 우리나라엔 코가 큰 남자가 한 명 살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애초에 그건 언제나 사실이었다는 거다.


(13)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마라톤 행렬 중 어딘가에 속해 있었다. 숨이 턱에 닿도록 뛰면서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기만을 바라며, 어딘지도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모두의 틈에 섞여 바쁘게 발을 옮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특별히 슬프지 않다는 것이, 가끔은 담담히 미소를 지을 수도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49)
"꼭 이 강의실의 의자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의자의 마법’에 대해서 얘기하는 겁니다. 앞에 있는 의자에 앉으면 권위와 힘을 가진 줄 착각하는 마법에 걸리게 되죠. 그리고 수없이 깔린 의자에 앉으면 힘없는 대중이 되어 앞에 있는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마법에 걸립니다. 의자는 의자일 뿐이라는 걸 다들 까먹어버린단 소리예요."

(86-87)
"놀아보고 싶어요. 세상은 경직돼 있고 모두가 무기력증에 빠져 있죠. 난 반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치기 어리다고 욕 들어도 좋으니 적어도 반항을 해보고 싶다고요. 역사가 말해줬듯 급진적인 혁명은 실패할 겁니다. 세상은 점점 팍팍하고 딱딱해지고 있어서 겉으로 보이는 움직임은 통제되거나 검열되니까요. 난 통제나 검열이 불가능한 일들을 해보고 싶은 겁니다. 재미있게, 놀이처럼 말이죠."

(102)
"말했잖아, 보수화된다고. 그리고 학원 돌리는 거 아니면 답 없어. 그게 꼭 공부 때문이 아니라, 엄마가 쉬려면 애들은 학원을 다녀야 되는 거더라구. 나한테 유일한 소통창구가 지역 엄마 커뮤니티인데 거기 드나들면서 나만 독야청청하기 생각보다 쉽지 않다. 혼자 튀면 엄마들 사이에서 특이하다고 따 당할 준비해야 돼. 엄마들 따가 얼마나 교묘하고 은밀하고 무서운지 모르지? 그게 나만 당하면 상관없는데 애의 교우관계, 나아가서 유치원, 학교생활까지 영향 미친다. .너 이게 그냥 빈말 같고 다큐에서 나오는 별난 얘기 같지. 제삼자가 들으면 우리나라 미쳤다고 하는데, 그냥 그 안에서 직접 하루하루 겪으면 그렇게 드라마틱한 일도 아니더라."

(169)
"그래서 이젠 편안해지고 싶은 것뿐이에요. 꿈 같은 거, 하고 싶은 거 따위 생각할 필요 없이 남한테 치이지나 말고 하루하루 편안하게 살아보고 싶어요. 내가 제일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는 말이 뭔 줄 알아요? 치열하다는 말. 치열하게 살라는 말. 치열한 거 지겨워요. 치열하게 살았어요. 나름. 그런데도 이렇다구요. 치열했는데도 이 나이가 되도록 이래요. 그러면 이제 좀 그만 치열해도 되잖아요."

(175-176)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담아놓은 채 화살을 내 스스로에게 던지는 거요. 이렇게 돼버린 지 참 오래됐어요. 나 스스로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주제에 세상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게 참 우습네요. 그럴 주제도 안 되면서 혼자 하늘에 대고 삿대질하고 있었어요."

(219)
가진 게 없어도 모든 걸 그만둬야 할 때가 온다. 모든 것을 소거하고 오직 나 홀로인 시간으로 침잠할 시기가, 청춘의 배부른 핑계라 험담하는 이도 있을 거다. 그런데 그랬다. 혼자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는 그런 혼자 말고, 진짜 혼자의 시간이 필요했다. 유일한 핑계는 ‘누구나 한 번쯤 그런 때가 온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그게 지금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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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9 0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직함은 북홀릭님 따라잡을 수가 없네요 태백산맥 읽으면서 자주 북홀릭님 생각합니다🥰 이 문장들을 어찌 필사하셨을까 ㅎㅎㅎㅎ

bookholic 2019-02-09 10:41   좋아요 1 | URL
ㅎㅎ 우직하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봅니다. 고맙습니다~~~
즐˝태백산맥˝하시고 다 읽고나서 멋진 리뷰 부탁합니다~~~
추운 날씨 감기조심하시고요~~

조그만 메모수첩 2021-02-13 2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지혜가 점심시간에 가상의 남자친구 만나러 가는 장면에서 예전 제가 회사 다닐 때 생각이 났어요. 점심시간에조차 회사생활-대부분 동기나 상사랑 밥을 먹어야 하니까요-하는 게 싫어 그 시간에 피아노 학원을 다녔죠. 결과는 뭐..ㅎㅎ 재미있는 소설이었어요. 필사해주신 부분 읽으며 다시 이야기를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리뷰 감사합니다

bookholic 2021-02-13 23:45   좋아요 0 | URL
ㅎㅎ 점심 시간에 학원 다니는 이들의 이유가 그런 것이었군요..^^
조그만메모수첩님 덕분에 ˝서른의 반격˝의 줄거리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발췌한 글 읽으면서 그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재미가 다시 떠올라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남은 주말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강원국의 글쓰기 - 남과 다른 글은 어떻게 쓰는가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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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또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었구나. 얼마 전에 읽은 글쓰기에 관한 책도 글쓰기라는 주제보다, 그 책을 쓴 지은이 때문에 읽었는데, 이번에 읽은 책도 지은이 때문에 읽었어. 우연찮게 책의 주제가 글쓰기이구나. 이 책의 지은이 강원국. 그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보좌관으로 일했고, 그 때의 일화를 담은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어. 그랬다가 지난 대선 전에 팟캐스트 <파파이스>에 출현하여 재미있는 입담을 과시한 다음에 더욱 좋아하게 된 분이란다.

작년에는 좋은 기회가 생겨서 그 분의 강연을 듣기도 했어. 비록 강원국님은 아빠를 모르지만, 아빠에게는 더욱 친근감이 있는 분이란다. 그런 강원국님의 책이라서 읽게 된 것이란다. 강원국 본인은 예전에 자신은 부끄러움도 많고 글도 잘 못쓰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직업이 되고 절박감에 쓰다 보니 글 쓰는 사람이 되었고, 최근에는 그 글쓰기라는 것으로 밥벌이도 하고, 즐거운 일이 되었다고 했어. 그러면서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이 책의 주목적이란다.

얼마 전에 김민식의 <매일 아침 써봤니?>에 대한 독서편지를 쓰면서도 이야기했지만, 아빠도 책을 읽고 나서 너희들에게 편지 형식의 리뷰를 쓰고 있잖아. 비록 자기 만족을 위한 글쓰기이긴 하지만, 꾸준하게 글쓰기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지은이 강원국님이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들에 많은 공감이 있더구나.

 

1.

강원국님의 앞으로의 계획을 보면 다양한 계층의 글쓰기에 관한 책을 쓰시려는 것 같아. 그에 앞서 이 책은 아주 보편적인 글쓰기에 관한 내용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더구나. 아빠가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글쓰기에 관한 책들의 내용도 중복되어 있는 내용도 있었어.

글쓰기라고 하면 먼저 무엇을 쓰냐? 하는 쓸 거리를 생각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자기의 경험과 생각이 우선이겠지. 그리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라고 했어. 이것은 글쓰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야. 일반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른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것을 신경을 쓰다 보면 괜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단다. 그것을 알면서도 또 신경을 쓰게 되고글쓰기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으려고 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더구나. 그럴 때는에라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해도 좋고다른 사람들이 내 글을 얼마나 마음 속에 담아 두겠어, 하고 넘어가버리면 돼.

그리고 글을 쓸 때 자신감을 가지고 쓰라고 하는구나. 그런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매일 글을 쓰라고 해. 매일 글을 쓰는 것과 자신감과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매일 글을 쓰는 것은 나쁘지 않는 것 같아. 또 한 가지, 욕심을 버리라고 해글쓰기에까지 욕심 부릴 게 뭐 있다만

.

지은이는 매일 글쓰기의 동기를 위해 블로그를 했다고 하는구나. 얼마 전에 읽은 김민식님의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 블로그가 꾸준한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되나 보네. 그리고 매일 글쓰기에 대한 보상을 해주라고도 하는데, 뭐가 있을까?

글쓰기에 슬럼프가 있다? 이것은 아빠와 같은 아마추어도 공감이 가더구나. 어떨 때 보면 글쓰기는 것이 귀찮고, 써도 매끄럽지 않은 경우도 있어.(사실 대부분의 아빠 글들이 그렇지만…) 지은이는 이런 슬럼프가 오면 다른 장르에 관심을 두어 보라고 하고, 단순히 정보만 전달하는 글을 써보라고 하고, 그것도 아니면 한동한 절필을 해보라고 했어. 아빠는 그런 슬럼프를 어떻게 넘기냐고? 아빠의 글쓰기는 책 읽고 쓰는 리뷰가 전부이니까, 그냥 매끄럽지 않으면 매끄럽지 않은 대로 써 버린단다. 그리고 리뷰를 짧게 끝내. 책은 계속 읽으니, 괜히 절필하면 써야 할 리뷰만 밀리니까 말이야. 지금도 몇 권의 리뷰가 밀려있는지 모르겠구나. ㅎㅎ

 

2.

글을 잘 쓰려면아빠가 생각하기에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지많이 생각하고 쓴 글도 다시 다듬고 말이야. 하지만 아빠는 책 읽는 시간이 더 필요하고, 너희들과 노는 시간이 더 필요하니 글이 엉망인 경우가 많단다. 아빠의 졸필을 시간에 핑계되는 것 같기도 하네. 원래 그 실력인데 말이지…^^ 지은이 강원국님은 3관을 이야기하더구나. 관심, 관찰, 관계거기에 책 읽기를 빼놓지 않더구나. 책을 읽다 보면 생각할 거리들이 늘다 보니 글쓰기에 도움이 되겠지. 메모도 중요하다고 했어. 아빠도 공감~ 떠오르는 생각이나 궁금한 점을 메모해 놓는 것, 그것은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해. 또 하나, 글을 쓸 때 읽는 이의 공감능력을 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어.

글쓰기는 구어체가 좋을까? 문어체가 좋을까? 사람들마다 구어체가 좋다는 사람도 있고, 문어체가 좋다는 사람이 있대. 아빠는… 당연히 구어체가 좋다고 생각해. 예전에는 글이라는 것은 말과 다르기 때문에 문어체로 써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어. 하지만, 이오덕님의 책들을 읽고 난 다음부터는 구어체를 선호한단다. 그리고 아빠가 주로 쓰는 글은 너희들에게 쓰는 독서편지이다 보니 구어체를 더 많이 쓰게 되지.

좋은 문장을 위해서는 몇 가지 팁을 알려주었어. 단문으로 써라.. (이건 이오덕님도 강조하셨던 내용이었어아빠도 본받으려고 하고…) 수식어를 절제해라. (단문을 위해서는 수식어를 줄어야지..) 주어에 신경을 쓴다.. (주어에 관해서는 할말이 많지만…) 피동문을 피해라. 어미를 다양하게 해라. (이것도 이오덕님이 강조하셨었지.) 가급적 동사형 문장을 써라. 등등…

3.

글쓰기를 잘 하기 위한 방법이 있겠지만, 아빠 생각에작가로 데뷔할 생각이 없는 아마추어라면

굳이 잘 써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냥 꾸준하게 쓰면서 자기만족과 보람을 느끼는 글쓰기가 가장 좋은 글쓰기가 아닐까 싶구나.

아빠의 글쓰기는회사 스트레스를 잊기 위한 수단이고, 책 읽고 난 이후 까먹기 전에 적어두는 기억의 보조 수단이고, 너희들에게 아빠의 생각을 전해주기 위한 수단으로 만족하고 있단다. 그래도 이런 글쓰기의 책을 읽고 나면, 책에서 강조한 부분을 아빠의 글쓰기에 좀 녹여보려고 하겠지

그거면 충분할 것 같구나.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독서편지가 밀려 있어서 오늘의 독서편지만 이만 마치련다.

 

PS:

책의 첫 문장 : “이제 대통령은 그만 팔아먹지?” 간혹 듣는 소리다.

책의 끝 문장 : <공무원의 글쓰기>, <퇴직자의 글쓰기> 그 무엇이 됐든 말이다.


(14)
왜 어려운가. 쓰기 싫기 때문이다. 쓰기 싫은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뇌는 예측 불가하고 모호한 것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위험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안전 욕구가 본능적으로 있다. 그런데 글쓰기야말로 정체를 알 수 없다. 정답이 없다.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모호한 대상이다. 여기에다 끝까지 못 쓸까봐 불안하고, 못 썼다는 소릴 들을까봐 또 불안하다. 결국 피하고 본다.

(80)
생각을 만들기 위해서는 직접 말해봐야 한다. 그러면 들으면서도 생각이 난다. 누구나 남의 얘기를 듣다가 갑자기 생각이 떠올라서 상대 말을 끊고 자기 생각을 말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말하는 것 못지않게 상대의 말을 많이 듣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물고기가 잡힌다. 어찌 보면 말하는 것은 내 물고기를 나눠주는 행위이고, 듣는 것은 남의 물고기를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101)
재미있는 글을 쓰려면 우선 글 쓰는 사람이 즐거워야 한다. 내가 찾은 방법이 있다. 글과 함께 노는 것이다. 그러려면 매일 써야 한다. 학창 시절을 생각해보면 공부할 때가 가장 마음 편했다. 수업 빼먹고 연소자 관람불가 영화를 보고 다시 햇빛 아래 섰을 때 얼마나 안도했던가. 궤도를 이탈해 우주를 유영하다 지구에 안착한 기분. 글도 쓰기 전보다 쓰고 있을 때가 마음이 편안하다. 책상 앞에 앉기 전 망설일 때가 더 힘든 법. 마치 겨울 바다에 뛰어들까 말까 바닷가를 서성일 때처럼. 막상 물에 들어가면 안온하다. 일상적으로 쓰지 않는 사람은 늘 글쓰기 전 상태이고 글쓰기가 항상 힘들다.

(199)
글을 쓴다는 것은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이다. 살아 있는 것만이 거슬러 올라간다고 했다. 죽은 것은 그저 떠내려간다. 깨어 있는 사람은 기억을 거슬러 글을 쓴다. 기억은 또한 죽은 것도 살려낸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랬다. 사랑하는 사람은 무덤이 아니라 내 기억 속에 묻혔으니 내가 죽지 않는 한 그들도 죽지 않고 살아간다고. 인생에서 남는 것은 기억뿐이다. 글로 쓴 추억만 남는다.

(320)
삶과 글쓰기는 닮았다. 나는 매일 아침 할 일을 생각한다. 중요도 순으로 죽 열거한다. 하루 동안 할 일을 한다. 그리고 한 일에 관해 정리하고 평가한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모여 인생이 된다. 글을 쓸 때도 생각을 떠올린다. 덩어리 짓고 순서 정하는 것으로 생각을 구성한다. 쓰고 나서 이리저리 고친다. 그렇게 한 장 두 장이 모이면 한 권의 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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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19-02-08 0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리뷰가 훌륭해서 꼭 한번 읽어보고 서튼 글이나마 써보고 싶어지네요!ㅎ

bookholic 2019-02-08 08:48   좋아요 1 | URL
이런 졸필에 이런 칭찬의 댓글을 달아주시다니, 혹 막시무스님은 천사인가요? ^^
덕분에 기분좋은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목나무 2019-02-08 0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게 보내는 이런 독서편지야말로 진짜 살아있는 글이 아닐까 싶네요.^^
저 역시 쓰는 것보다는 읽는 것에 더 목마르다보니 시간 부족으로 글을 다듬지 않기 일쑤지만 그건 또 그 나름대로 생생하다 우겨봅니다. ㅋㅋ

bookholic 2019-02-09 00:00   좋아요 1 | URL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저도 오늘부터 제 글은 생생한 글이라고 위안삼아겠어요..^^
그런데 제가 읽었던 설해목님의 글들은 다듬지 않았다고 보기에는 너무 매끄럽고 자연스러웠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26~27)

원자와 같이 미시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너무나 이상했기 때문에, 뉴턴의 물리학을 대신할 수 있는 다른 이론을 찾기 위해 물리학자들은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원자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갖고 있던 상식적인 생각들을 모두 떨쳐 버려야만 했던 것이다. 마침내 1926년에 이르러 물질 내부의 전자가 취하고 있는전혀 새로운 형태의 운동을 설명해주는 비상식적인 이론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것은 언뜻 보기에 터무니없는 이론이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양자역학이라고 불리는 이론이 바로 그것이었다. ‘양자 quantum’라는 말 자체가 상식을 거스르는 이상한 자연현상을 지칭하고 있으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 이상한 자연현상에 관한 것이다.

(27)

양자역학은 모든 화학적 현상과 물질의 다양한 성질을 모두 설명할 수 있었으므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러나 빛과 물질 사이의 상호작용은 여전히 문제점으로 남아 있었다. , 전지와 자기에 관한 맥스웰의 이론도 양자역학이 제시한 새로운 원리에 부합되도록 수정이 가해져야 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양자역학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이 일단의 물리학자들에 의해 1929년 빛을 보게 되었으며, 거기에는 양자전기역학이라는 끔찍한 이름이 붙어졌다.

(30)

먼저 양자전기역학이 얼마나 많은 자연현상을 설명해낼 수 있는지를 상기해보자. 아니, 거꾸로 말하는 게 더 쉬울 것 같다. , 양자전기역학은 몇 가지를 제외한 모든 자연현상을 설명해주고 있다. 그 몇 가지의 예외란 여러분을 의자에 붙잡아두고 있는 중력현상과(물론 내 생각에는 중력과 연사에 대한 예의가 혼합된 현상이지만) 핵자의 에너지 준위를 변형시키는 방사능 현상이다. 만일 우리가 중력과 방사능(정확하게는 핵물리학)을 제외한다면, 자동차의 엔진에서 끓고 있는 가솔린, 거품 현상, 소금과 구리의 딱딱한 성질 및 강철의 견고한 구조 등은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생물학자들은 생명현상까지도 가능한 한 화학적 원리로써 설명하려고 하는데, 내가 이야기한 대로 화학보다 더욱 근간을 이루는 이론은 양자전기역학인 것이다.

(42)

빛이 유리면에서 반사되는 것은 사실 엄청나게 복잡한 현상이다. 실제로 조그만 유리조각 속에는 끔찍하게 많은 전자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여기에 광자 하나가 들어오면 그것은 유리표면에 있는 전자뿐만 아니라 유리 속에 있는 전자들과 상호작용을 주고받는다. 광자와 전자가 복잡 미묘한 춤을 추고 그 복잡한 중간 과정을 거쳐 나타나는 결과는 마치 광자가 유리의 표면에서 반사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당분가 빛이 유리의 표면에서반사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 문제를 쉽게 다루기 위한 편법이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70)

빛에 관한 또 하나의 중요한 성질은 단색광의 부분반사현상에서 볼 수 있는데, 이는 지난 첫 번째 강연에서 논의되었다. 유리판의 한 쪽면에서는 입사된 광자의 평균 4%가 반사되었다. 이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신비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광자가 유리면에서 반사될지, 아니면 통과할지를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유리판의 두 번째 표면, 즉 아랫면까지 고려한다면 문제는 더욱 어려워진다. 윗면에서 4%가 반사되고, 윗면을 통과한 96% 중의 4%가 아랫면에서 반사되어 반사된 광자의 전체 비율은 약 8%가 되리라는 상식적인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것은 유리판의 두께의 따라 0%에서 16% 사이를 오락가락 하였다.

(96)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빛은 직진한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에게 친숙한 현상을 편의에 따라 대충 서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거울에서 빛이 반사될 때 입사각과 반사각이 같다고 말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127)

오늘은 조금 어렵다고 할 수 있는 양자전기역학이론의 핵심을 다루기로 한다. 나의 두서없는 강의를 듣기 위해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지금 청중석에는 낯선 사람들도 여기저기 보이는 것 같다. 미안한 말이지만 처음 참석한 사람들은 어쩌면 이 강의가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참석한 사람들도 강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기는 피차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첫날 말했던 바와 같이, 자연을 설명하는 매커니즘 자체가 일반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것이므로 실망할 필요는 없다.

(133)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신비한 조화이다. 어느 길로 광자가 지나갔는지 알기 위해 별도의 검출기를 설치하면 광자의 경로는 알 수 있지만, 그 순간 경이로운 간섭효과는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광자가 지나간 길을 보여주는 검출기를 제거하면 간섭효과는 다시 나타난다! 정말로 신기한 일이다! 광자가 우리를 놀리고 있는 것일까?

(170)

이렇게 단순한 행위로부터 생성된 이 세계가 그토록 복잡 미묘한 이유는, 엄청나게 많은 광자들이 서로 뒤엉켜서 간섭현상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의 기본 행위는 단지 실제의 세계를 분석하는 출발점에 불과하다. 또한 계산이 불가능한 복잡한 광자 교환이 진행되고 있는 영역에서는 일어날 가능성이 큰 사건들을 구별해낼 수 있는 경험적 지식이 필요하다. 이리하여 우리는 자연의 깊숙한 배후에서 진행되고 있는 복잡한 과정을 근사적으로 묘사하는 굴절률, 압축률, 원자가 등의 거시적 개념들을 도입하게 되었다. 이것은 일종의 체스 게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체스 게임의 규칙은 단순하고 기본적이지만 게임을 잘 하기 위해서는 각 말의 특성과 배치 상황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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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나는 교수형을 당한 열두 명의 시녀와 페넬로페에게 화자의 역할을 맡겼다. 시녀들은 합창단이 되어 주로 두 가지 문제에 대하여 노래하거나 낭송한다. 그것은 <오디세이아>를 정독하고 나면 자연히 떠오르는 의문들이다. 시녀들이 교살된 까닭은 무엇인가? 페넬로페의 진짜 속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오디세이아>에 실린 이야기는 물샐틈없이 논리정연하지 않다.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너무 많다. 나는 줄곧 교살당한 그 시녀들을 잊을 수 없었는데, <페넬로피아드>에 등장하는 페넬로페도 그들을 잊지 못해 괴로워한다.

(23)

그런데 곤란한 것은 나에게 말할 수 있는 입이 없다는 점이다. 여러분의 세상, 즉 육신이 있고 혓바닥과 손가락이 있는 세상에 대고 내 생각을 전할 방법이 없다. 그리고 여러분이 살고 있는 그곳 강 건너편에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 별로 없다. 간혹 이상한 속삭임이나 가느다란 음성을 듣는 사람이 있더라도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바람결에 바스락거리는 마른 갈대나 해질녘 날아다니는 박쥐 소리, 또는 그저 나쁜 꿈이라고 여기며 지나쳐버리곤 한다.

(41)

마법사들이 나를 불러내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나도 꽤 유명한 여자였는데-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무슨 까닭에선지 사람들은 좀처럼 나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반면에 사촌언니 헬레네는 아주 인기가 좋다. 나로서는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나쁜 짓으로 유명해진 여자도 아니고 특히 성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헬레네는 이래저래 악명이 높은 여자인데 말이다. 물론 헬레네는 기막히게 아름답다. 그녀는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백조로 둔갑한 제우스 신이 그녀의 어머니 레다를 겁탈하여 잉태시킨 딸이기 때문이란다.

(44)

헬레네는 한 번도 벌을 받지 않았다. 도대체 이유가 뭔지 알고 싶다. 남들은 훨씬 더 가벼운 잘못을 저지르고도 바다뱀에 휘감겨 질식사하거나 폭풍우 속에서 익사하거나 거미로 변하거나 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기 일쑤였다. 이를테면 잡아먹지 말아야 할 소를 잡아먹었다든지, 교만하게 굴었다든지, 뭐 그런 사소한 잘못을 가지고 말이다. 그런데 헬레네는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에게 고통과 피해를 주었으니, 최소한 몽둥이찜질이라도 한번 야무지게 당했어야 마땅할 텐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

(52)

그러나 나는 마음씨 고운 소녀였다. 헬레네보다는 착했다. 적어도 내 생각엔 그랬다. 나는 뭐든 미모를 대신 할 다른 장점이라도 지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모두들 내가 영리하다고 했다. 그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지긋지긋할 정도였다. 그러나 남자들이 아내가 영리하기를 바라는 것은 마누라한테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뿐이다. 함께 있을 때는 영락없이 마음씨 고운 아내를 원하기 라면이다. 좀더 매력적인 다른 장점이 없는 한은.

(68)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물은 저항하지 않아. 물은 그냥 흐르지. 물 속에 손을 담가도 그저 그 손을 쓰다듬으며 지나갈 뿐이야. 물은 딱딱한 벽이 아니라서 아무도 가로막지 못해. 그렇지만 물은 언제나 제자 가고 싶은 곳으로 가고야 말지. 물은 끝까지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그리고 물은 참을성이 많아.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이 바위를 닳아 없어지게 하지. 그걸 잊지 마라. 내 딸아. 너도 절반은 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라. 장애물을 뚫고 갈 수 없다면 에둘러가는 거야. 물이 그러하듯이.”

(74~75)

우리가 마차를 타고 떠나려 하지 아버지가 몸소 달려나와 나에게 제발 가지 말라고 애원했으며, 그때 오디세우스가 나에게 자신과 함께 기꺼이 이타케로 가겠느냐, 아니면 아버지 곁에 남고 싶으냐, 하고 물었다는 이야기는 아마 여러분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나는 워낙 정숙한 여자라서 차마 남편을 따르겠다는 말을 대놓고 하진 못하고 너울로 얼굴로 가렸으며, 그후 사람들은 정숙함이라는 미덕을 기리기 위해 나의 석상을 만들어 세웠다고 한다.

(82)

한번은 그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감춰진 문을 하나씩 갖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마음으로 통하는 문이며, 그 문을 여는 손잡이들을 발견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마음은 열쇠인 동시에 자물쇠인데,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그들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곧 운명의 여신들을 다스리고 자신이 가진 운명의 끈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경지에 가까이 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서둘러 덧붙였다 그런 일을 실제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신들조차도 운명의 세 여신보다 더한 힘을 갖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여신들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았고, 불운을 피하기 위해 침을 뱉었다. 그리고 나는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생명의 실을 자아서 길이를 재고는 뚝뚝 끊어버리는 여신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몸서리쳤다.

(99)

이 침대 기둥은 막중한 비밀이었다. 그것에 대해 아는 사람은 오디세우스,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내 시녀 악토리스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뿐이었다. 오디세우스는 짐짓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면서, 만약 이 기둥에 대해 어떠한 소문이라도 나돌기 시작한다면 그건 틀림없이 내가 다른 사내와 동침했다는 증거일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 딴에는 장난스러운 표정이랍시고 눈살을 잔뜩 찌푸리면서,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몹시 화가 나서 나를 토막쳐버리거나 대들보에 목매달아 죽여버릴 거라고 했다.

(116)

나의 목표는 오디세우스의 재산을 불려 그가 돌아왔을 때는 떠날 때보다 더 큰 부자로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양도 더 많고, 소도 더 많고, 돼지도 더 많고, 밭도 더 많고, 노예도 더 많고…… 내 마음속에는 뚜렷하게 떠오르는 장면 하나가 있었다. 오디세우스가 돌아오고, 그동안 내가 흔히들 남자의 일이라고 여기는 일들을 얼마나 잘 해냈는지를 그에게 여자답게 겸손한 태도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물론 그를 대신하여 한 일이라고, 오로지 그를 위해 일했다는 말도 잊지 말고 덧붙이는 것이다. 그순간 그의 얼굴은 기쁨에 겨워 얼마나 환하게 빛날 것인가! 나를 얼마나 흡족히 여길 것인가! ‘헬레네를 천 명이나 준대도 당신과는 안 바꿀 거요.’ 그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어찌 아니랴? 그러고는 나를 다정하게 안아줄 것이다.

(128~129)

젊은 남자치고 돈 많고 유명한 과부와 결혼하기를 마다할 놈이 어디 있어? 과부들은 그짓을 하고 싶어 몸살을 앓는다는데, 특히 당신처럼 남편이 행방불명되거나 죽은 지 오래된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물론 당신이 헬레네는 아니지만 그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구. 어둠은 많은 것을 가려주니까! 우리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건 오히려 장점이었지. 우리보다 먼저 죽을 테니까. 물론 우리가 좀더 앞당겨줄 수도 있고. 그렇게만 된다면 당신의 재산도 물려받겠다. 젊고 아름다운 공주를 입맛대로 골라잡을 수 있잖아. 설마 우리가 정말로 사랑에 눈멀었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생긴 건 별볼일 없지만 예나 지금이나 아주 똑똑한 여자니까 말이야.”

(157)

그때부터 나는 내가받는보답이겨우이거냐, 어미가너때문에얼마나고생했는데, 어떤여자도그런고통을당해선안되는건데, 차라리죽는게낫지 운운하는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텔레마코스로서는 전에도 여러 번 들어본 소리였고, 그래서 그저 팔짱을 끼고 눈알을 굴리며 몹시 짜증스럽다는 표정으로 내 말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198)

물론 나는 텔레마코스가 잘되기를 바랐다. 그는 엄연히 내 아들이고, 따라서 나는 그가 정치 지도자나 전사나 그 밖에 또 뭐가 되고 싶어하든 간에 부디 성공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날 그 순간만은 차라리 트로이아 전쟁이라도 한 번 더 일어나서 녀석을 싸움터로 보내버렸으면 속이 다 시원하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겨운 수염이 나기 시작한 시내녀석들은 가끔 그렇게 눈엣가시처럼 보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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