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우리가 가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제부터 우리는 나무를 라고 부르기로 합시다. 그리고 비는 나무라고 부릅시다. , 주위를 둘러보세요. 무엇이 보입니까? 풍부한 비가 보이지 않습니까?”

모두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두말할 필요 없이 그들은 온통 비에 둘러싸여 있었다.

(60)

바깥세상과 마찬가지로 헤움 사람들도 한두 가지 걱정거리는 늘 있었다. 내일 해가 뜨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사람도 있고, 갑자기 월식이 일어나 달이 사라지면 어쩌나 걱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만간 큰 자연재해가 일어나 세상이 종말을 맞이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이도 있었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가 남자아이거나 여자아이거나 쌍둥이거나 더 나아가 세쌍둥이면 어쩌나 하는 고민도 있었다. 헤움 사람들은 누구보다 똑똑했기 때문에 문제를 발견하는 데도 뛰어났다.

(137-138)

하루는 내가 나이를 먹었나 보다고 느끼게 되었지. 사람들이 나한테 뭐라고 말하는데도 귀가 잘 들리지 않았거든. 아내가 걱정을 했고,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브제시치의 그 병원으로 가서 청력 전문의에게 진찰을 받아 보기로 했어. 그래서 둘이서 그곳으로 갔지. 당신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 온갖 기분 나쁘고 쓸데없는 검사를 한 다음에 의사는 결과를 장담할 순 없지만 내가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다면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했어. 검사 결과 내가 늙었기 때문에 한쪽 귀가 잘 안 들리게 되었다는 거야. 나는 입원을 할지 집으로 돌아갈지 잠시 망설였어. 그런데 갑자기 이 의사가 실로 멍청한 친구라는 판단이 드는 거야. 왜 그는 나의 양쪽 귀가 똑같은 나이라는 걸 모르는 저지? 내가 늙은 것이 문제라면 똑같은 나이인데 왜 한쪽 귀는 멀쩡하고 다른 한쪽 귀만 안 들리는 거지? 그런 판단이 서자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병원을 빠져나와 전속력으로 집에 돌아왔어. 그래서 그런 곳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가지 말라고 당신들에게 충고하는 거야.”

(167)

그 후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항아리 가까이 다가가 냄새를 맡고는 소리쳤다.

정말 구려! 구린 걸 보니 진실이 틀림없어!”

그렇게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그것이 정말로 진실 그 자체라고 소리쳤다.

진실이 맞아! 진실은 원래 심한 구린내가 나잖아!”

(172-173)

한번은 신이 그 천사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지상에 내려온 천사는 아기를 바라보며 짓는 엄마의 미소를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신은 매우 기뻐하며, 정말로 아름답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소중하진 않았습니다. 천사는 다시 지상에 내려와 꾀꼬리의 노래, 사랑하는 연인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등을 신에게 보여 주었지만 신의 눈에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포기하기 직전에 천사는 어느 초라한 집의 작은 부엌 한구석에서 들리는 나즈막한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누구에게서도 다정한 말을 듣지 못했던 가난한 여인이 누군가가 베푼 친절한 행위에 감동받아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천사는 그 눈물 한 방울을 가져다 신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신이 찾고 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은 그 기쁨의 눈물을 선사한 영혼들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178)

아들아, 우리가 어떻게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참견하고 지적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보다 가진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우리보다 가진 것이 없으면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보다 못한 존재라고 여긴단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다.”

(202)

내 생각에는 돌이 우리에게 해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헤움에 나타난 돌의 존재를 기념하기 위해서라도 그 자리에 그대로 놓아두도록 합시다. 돌 주위에 울타리를 쳐서 수레와 마차들이 우회해서 가게 합시다. 강물이 흘러가다 강 한복판에 갑자기 나타난 바위를 돌아서 흘러가듯이 말입니다. 이 돌은 이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과, 때로는 그 위치에 그대로 놓아두는 게 더 좋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줄 것입니다.”

모두가 베렉의 해석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 제안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곧이어 돌 주위에 울타리가 세워지고, 울타리 정면에 특별한 기념 명판이 걸렸다. 그 명판에는 이렇게 적혔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한 것은 아니다.’

(218)

찬애하는 고덱, 걱정하지 마시오. 이것은 매우 단순한 일이오. 모텍의 미래는 성공적일 겁니다. 한 바보가 그림에 묘사된 장면을 설명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나머지 바보들은 자신들의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모텍의 잘못이 분명 아닙니다. 그러니 집으로 가서 모텍이 처음의 영감에 따라 계속 그림 작업을 해 나가도록 격려해 주세요. 미학적으로 가치 있는 작업일 뿐 아니라 종교적인 의미도 있으니까요!”

(232-233)

베렉의 말에 모두 침묵에 잠겼다. 그의 주장은 매우 강력하고 설득력이 있었다. 하임을 포함한 의회 현자들 모두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의회는 이제부터 위기라는 단어의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그 대신 축복받은 환경으로 부르기로 결정했다.

의회의 결정 사항은 곧바로 공표되었으며, ‘위기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자 헤움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267)

시장에서 노래하는 눈먼 거지는 천사일지도 모른다네. 그리고 그대의 아내는 인생의 수수께끼를 풀 열쇠를 갖고 있을 수도 있어. 신의 계율을 압축하면 이것이라네. 지금 이 순간 눈앞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게.”

(276)

너무 상심하지 마, 아나톨. 나의 할머니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 있다고 늘 말씀하셨어. 헤움의 큰 사건들은 마을의 연대기에 기록되지만 날의 작은 일들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아. 그것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 만약 당신이 그 이야기들을 작품으로 쓴다면 당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일들이 문자로 기록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게 될 거야. 헤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해도 적어도 당신의 책 속에서는 언제까지나 생생히 살아 움직이게 될 거야.”

(280-281)

헤움 사람들은 버터 바른 빵이 바닥에 떨어지면 언제나 버터 바른 쪽이 아래를 향하도록 떨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돌에 새겨진 십계명이나 율법처럼 분명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빵은 왜 버터 바른 쪽이 위를 향하도록 떨어졌을까?

논리에 어긋나는 중대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즉시 현자들이 모였다. 긴 토론 끝에 의회 대표 베렉이 하와를 불러 결정문을 읽어 주었다.

친애하는 하와, 헤움 의회는 버터 바른 빵이 바닥에 떨어질 때 언제나 버터 바른 쪽이 아래 쪽으로 떨어진다는 데 동의한다. 따라서 그대가 떨어뜨린 버터 바른 빵은 잘못된 쪽으로 떨어진 것이거나, 아니면 그대가 실수로 빵의 반대쪽에 버터를 바른 것이다.”

(306)

그래서 식당 주인들은 손님에 대한 소유욕이 무척 강했다. 늘 외식을 하는 사람 중 한 명은 미혼인 남자 교사였다. 그는 언제나 도로 왼편에 위치한 베니오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그런데 어느 날 베니오는 그 교사가 도로 오른편에 위치한 오스왈드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베니오는 교사가 나올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그에게 자기 식당의 음식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지 물었다.

교사는 자신이 여전히 베니오의 음식을 가장 좋아하지만 지독한 치통 때문에 오스왈드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고 대답했다. 헤움에는 치과가 없어서 조언을 얻기 위해 랍비에게 갔는데, 랍비가 그에게 치통을 줄이려면 다른 쪽으로 먹으라고 조언해 주었다는 것이었다.

(320)

그런 다음 그는 사이즈 10의 새 구두 한 켤레를 달라고 했다. 슈물은 그 말을 듣고 사이즈 8의 신발을 건네주었다. 베니오가 이유를 묻자 슈물이 설명했다. 신발이 2사이즈나 작기 때문에 그것을 신는 동안 다른 문제들은 모두 잊을 거라고. 그리고 실제로 그러했다.

(331)

구두 수선공 요아브가 친구들과 앉아서 교리에 대해 토론하다가 갑자기 일어나며 집에 가서 약을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친구들이 걱정하자 요아브는 염려하지 말라고 하고 떠났다. 그러나 걱정이 된 친구들은 집으로 걸어가는 요아브를 지켜보았고, 그가 걸으면서 매우 격렬하게 온몸을 흔드는 것을 알아차렸다.

친구들은 서둘러 랍비에게 달려가 요아브가 중병에 걸렸다고 알렸다. 랍비 또한 걱정이 되어 요아브의 집으로 찾아가 몸 상태를 물었다. 요아브는 매우 평화롭게 별문제 없다고 말했다. 온몸을 흔든 이유를 묻자 그는 의사가 처방해 준 기침약 병에 적힌 설명을 읽어 주었다.

복용하기 전에 잘 흔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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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욱의 양자 공부 - 완전히 새로운 현대 물리학 입문
김상욱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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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관심 있어 하는 과학의 한 분야인 양자역학. 아주 가끔씩 양자역학에 관한 책들을 읽었어. 어려웠단다. 그러다가 작년에 김상욱님의 <과학하고 앉아있네 3 – 김상욱의 양자역학 콕 찔러보기>를 읽고 어렴풋하게 양자역학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 책을 읽고 나서 김상욱님의 책을 검색하다가 <김상욱의 양자 공부>란 책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김상욱의 양자 공부>란 책만 읽으면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김상욱님이 늘 리처드 파인만의 말을 들면서,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이야기 하시지만 말이야.

그렇게 김상욱님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김상욱님께서 <알쓸신잡 시즌3>에 나오시더구나.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반갑더구나. 올해는 양자역학에 관한 책들을 좀더 읽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그 첫 번째로 김상욱님의 <김상욱의 양자 공부>를 읽었단다. 알찼어.  그리고 양자역학이라고 하면 과학 분야인데, 김상욱님은 인문학적인 비유도 많이 하시고, 소설에 관한 이야기들도 많이 하셨어. 평소에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으시는 분 같았어. 그래서 그렇게 말을 깔끔하게 잘 정리해서 이야기 하나보다.

1.

요즘 너희들이 무쩍 자주 질문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원자잖아. 밥도 원자로 이루어졌어? 나도 원자로 이루어졌어? 그럼 원자가 원자를 먹는 거야? 등등그래, 이 세상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단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들, 그리고 텅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어. 얼마나 텅 빈 공간이냐면, 수소 원자 한 개를 서울시만큼 크게 확대를 해 놓으면 원자핵은 농구공만 하고, 전자는 서울의 외곽 부분에서 돌아다니고, 그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었다고 하는구나. 그런 모양이 원자야. 그런데 그 크기는 너무 작아서 눈이 보이질 않아.

그럼 양자역학은 무엇이냐그 원자의 운동, 특히 원자의 외곽을 돌고 있는 전자의 운동을 설명하는 것이 바로 양자역학이란다. 양자 역학이 등장하기 전에, 전자를 고전 역학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었다고 했어. 그러다가 이중 슬릿 시험을 통해서 전자가 파동의 성질인 중첩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어. 그 전까지는 당연히 전자는 입자라고 생각했는데, 이중 슬릿 실험은 전자가 파동성을 가진다는 결과가 나온 거야. 그러니까 과학자들은 멘붕이 올 수 밖에 없었어. 그 전까지는 입자성질과 파동성질을 모두 가진 물질은 없었거든.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전자 하나하나를 쳐다보고 있으면, 즉 측정을 하면 전자는 입자의 성질만 보이고 파동의 성질은 사라진다는 거야. 이것이 바로 양자역학에서는 유명한 코펜하겐 해석이란 것이란다. 코펜하겐에 보어라는 과학자가 이끄는 연구소에서 연구한 내용이라서 그렇게 불러. 이런 이중성은 전자와 같은 작은 입자에서 발견된다고 했어. 전자와 같이 작은 입자들의 세계인 미시세계에서는 고전역학이 통하지 않는다고 했어. 그래서 거시세계에는 뉴턴의 고전역학이, 미시세계에서는 양자역학에 의해 입자는 움직인다고 했어. 그러면 어느 크기까지 미시세계에 포함되는 것일까? 어디까지 양자역학으로 움직이고 어디부터 고전역학으로 움직이냐 말이지그래서 시험을 해봤대. 전자보다는 작지만 여전히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입자로 이중 슬릿 실험을 해보았대. 아주 간혹 중첩의 현상이 나왔다는 거야. 그러면 왜 파동의 성질이 적어진 것일까? 입자가 커지면 누군가에 의해 측정이 될 확률이 높았던 것이야. 측정의 주체는 인간이 아닌 이 세상의 모든 물질에 해당되는 것이거든. 이런 걸 결어긋남이라고 이야기하더구나. 그러니까 슈뢰딩거가 고양이를 예를 들어 양자역학을 비판하려고 했던 것도 설명이 가능해졌어. 고양이가 너무 커서 완벽하게 결어긋남이 일어나서 파동의 성질을 모두 잃어버린 것이야. (아빠가 중간중간 설명을 뛰어 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이 편지를 읽기 전에 작년에 <과학하고 앉아있네 3 – 김상욱의 양자역학 콕 찔러보기>를 읽고 쓴 독서편지를 한번 다시 읽고 읽어주길 바란다. 그걸 감안하고 이번 독서 편지를 쓰고 있는 거야.)

2.

전자처럼 입자성과 파동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게 또 있었어. 바로 빛이란다. 막스 플랑크라는 사람이 빛 에너지가 띄엄띄엄 불연속적이라는 발견하여 입자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아인슈타인이 빛이 입자라는 것을 발견하여 광양자설을 내놓고 그것으로 노벨상까지 탔단다. 처음에는 아인슈타인의 주장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모두 인정하게 되었단다. 빛은 입자이면서 파동이었어.

, 그럼 전자도 빛 에너지처럼 띄엄띄엄 존재하는가? 그렇단다. 전자는 에너지를 방출하거나 흡수하면 궤도를 이동하는데,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궤도로 바꿔버려.. 보어는 이 현상을 보고 점프한다고 했고, “양자도약이라는 말로 사용했어. 전자가 사라졌다가 다른 궤도에서 나타난다고? 이게 말이 되는가?

===========================

(67)

정상 상태는 불연속적이다. 쉽게 말해서 전자의 원운동 궤도가 공간적으로 띄엄띄엄하게 존재한다. 양자 역학이 원래 띄엄띄엄함의 학문이라 그 자체는 그래 놀랍지 않다. 문제는 띄엄띄엄한 궤도들 사이를 전자가 이동하는 방법이다. 전자는 오직 정상 상태의 궤도에만 존재할 수 있다. 이웃한 두 궤도를 넘나들 때, 그 사이에 공간에 존재하지 않으면서 지나가야 한다는 말이야. 태양계로 예를 들자면 지구 궤도에 있던 전자가 사라져서 화성 궤도에 짠 하고 나타나야 한다. 이런 운동은 기존의 물리학에서는 불가능하므로 역시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것을 양자 도약이라 부른다. 빛의 입자성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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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말이 안되지... 그것은 사람의 기준으로 생각하니까 그런 거야. 파동이면서 입자일 수 없다는 것이 우리 인간의 고정관념 때문이지, 왜 그것이 문제인가 말이야. 파동이면서 입자인 단어가 없었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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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파동이면서 입자다. 하나의 정상 상태에서 다른 정상 상태로 전자가 도약한다. 여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표현이 등장한다.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특수 상대성 이론도 직관과 맞지 않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상황을 상상해 보는 것은 가능하다. 반면 파동이면서 입자라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입자가 파동의 모습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양자 도약 하는 전자를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양자 역학은 정말 이상하다. 하지만 문제는 원자가 아니다. 문제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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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역학에서 중요한 사람 중에 한 명인 닐스 보어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단다. 문제는 우리가 가진 언어에 있다고 말이야. 우리의 언어는 입자와 파동을 분리된 상태로 이야기하고 있어 그렇다고 말이야.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가진 언어가 없다고 이야기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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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보어는 더 나아가 문제는 우리가 가진 언어에 있다고 지적했다. 상보적인 두 개념은 일상에서는 분리되어 보인다. 우리의 언어는 입자파동과 같이 이들을 분리된 상태로 기술할 뿐이다. 문제는 전자가 이중성을 가진다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에게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상보적으로 가지는 상태에 대한 언어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어휘 부재의 문제가 아니라 개념 부재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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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925 6월 양자역학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단다. 양자역학을 이야기할 때 닐스 보어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라는 사람들을 빼놓을 수 없단다. 닐스 보어는 양자역학에 대한 이론을 내놓았고, 그것을 수학적으로 처음 기술한 사람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였어. 이것은 갈릴레이의 이론을 뉴턴이 수학적으로 기술한 것도 비슷한 것이라고 했어.

하이젠베르크는 1901 125일에 독일에서 태어났어. 엄친아라고 생각하면 돼. 어렸을 때부터 모든 면에서 뛰어났어. 1922년 괴팅겐에서 보어를 처음 만난 이후, 하이젠베르크는 보어를 만나기 위해 그가 있는 코펜하겐에 자주 갔고, 나중에는 보어의 연구소에 합류했어. 그런데 건초열이라는 병이 걸려서 어떤 섬에서 요양을 하게 되었는데, 요양 중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는데 그것이 바로 양자역학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란다. 그의 나이 스물세 살 때였어. 그는 오직 관측 가능한 물리량만으로 양자역학을 기술을 했는데, 행렬을 이용했기 때문에 행렬역학이라고 부르기도 했어. 그런데 단점이 하나 있었어. 행렬 역학이라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같은 과학자들도 어렵게 생각했대.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슈뢰딩거라고 하는 평범한 과학자가 전자의 움직임을 파동으로 표현을 했다는 거야. (여담인데 슈뢰딩거가 여성편력이 무척 심했다고 하는구나. 파동방정식으로 유명해지고 나서는 이것을 여자들을 꼬시는데도 이용을 했대.)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도 양자 역학에 딱 들어맞는다고 했어. 거기에 과학자들에게 있어 파동방정식은 행렬 역학에 비해 무척 쉬운 것이어서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을 더 선호했다고 하는구나. 그러나 파동방정식은 한가지 단점을 가지고 있다고 했어. 전자의 양자도약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어. 즉 전자의 입자성을 설명하기 어려웠어.. 하지만,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과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이 양자역학의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단다.

, 그럼 앞부분에서 이야기했던 전자를 측정하게 되면 파동의 성질이 사라지는 것을 이야기해보자꾸나. 전자를 측정하려면 빛이라는 것이 필요하겠지.  물론 빛이 아니고 전자 등 다른 물질로 관측을 할 수도 있단다. 그런데 전자를 튕겨 보내서 전자를 측정하게 되면 두 전자가 튕겨나가 제대로 측정할 수가 없게 돼. 그러니까 빛으로 측정하는 것으로 해보자꾸나. 빛도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 에너지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란다. 일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물체를 움직일 수도 있다는 말이야. 하지만 일반적으로 빛 에너지는 너무 작아서 물체를 움직일 수는 없어. 하지만 전자처럼 아주 작은 입자는 어떻게 될까. 전자는 질량도 아주 작기 때문에 빛의 아주 작은 에너지로도 교란이 일어날 수 있는 거야. 관측을 하려고 빛을 보내면 그 빛 에너지로 인해 전자의 위치는 흩어지게 되는 것이야. 그래서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측정할 수 없게 된다는 하는구나,. 아하,, 그래서 측정을 하게 되면 파동성이 사라지는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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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아는 것이 왜 불가능할까? 고양이의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고양이를 보아야 한다. 본다는 것이 무엇일까? 여러 번 겪은 일이지만, 양자 역학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 당연한 것을 수도 없이 다시 되짚어야 한다. 본다는 것은 빛이 고양이에 충돌해서 튕겨 나와 그 일부가 내 눈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양자 역학적으로 빛은 입자이기도 하다. 빛에 맞으면 충격을 받는다는 말이다. 당신이나 고양이같이 큰 물체는 빛에 맞아도 아무렇지 않지만, 전자라면 사정이 다르다. 전자같이 작은 입자는 빛에 맞으면 휘청거린다. 전자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싶으면 짧은 파장의 빛을 사용해야 하는데, 파장이 짧을수록 전자가 받는 충격량이 커진다. 충격은 운동량을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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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라고 했어. 전자의 위치를 알 수 없으니까 말이야.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겠니. 확률로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어. 전자가 여기에 있을 확률 얼마저기에 있을 확률 얼마이렇게 말이야. 고전 역학에서는 결정론이 대세였어. 지금의 위치와 운동상태를 알고 있으면 과거의 상태를 알 수 있고, 미래의 상태를 예측할 수 있었지.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위치를 모르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할 수 없었어. 그래서 양자역학은 비결정론이라고 했어.

양자역학은 많은 과학자들에게 알려지면서 찬반론이 거셌단다. 1927년 솔베이 회의에서 그 논쟁은 정점이 되었단다. 솔베이 회의는 벨기에의 기업가인 솔베이가 만든 정기적인 학회였어. 1927년에 열린 제 5회 솔베이 회의는 당대 유명한 과학자들이 모두 모였고, 그 중에 17명이 노벨상 수상자였다고 하는구나. 당시 찍은 기념 사진에 포토샵으로 자신을 포함시키는 것은 과학자들의 재미있는 놀이라고 하더구나.

아무튼 1917년 솔베이 회의에서 아인슈타인은 양자 역학, 특히 불확정성 원리를 맹렬히 공격했대. 아인슈타인은 결정론을 신뢰했고, 입자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고 확률로 나타내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했어. 보어는 그런 아인슈타인의 공격을 모두 방어해냈어. 그렇게 코펜하겐해석의 승리로 끝이 났고,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는 말까지 했다고 하는구나.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이라는 진일보한 업적을 냈지만, 양자역학에 대해서는 너무 보수적인 자세를 취한 것이 조금 아쉽구나.

4.

이 책의 2부에서는 양자역학과 다른 학문과 관계, 우리 일상과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단다. 결론은 우리는 양자 역학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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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부터 확인한다. 이른 아침이라면 형광등부터 켜야 한다.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화학 섬유 옷을 입고, 유전 공학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먹으며 거리로 나선다. GPS를 이용한 네비게이터가 길을 안내한다. 편의점에서 음료수 하나를 집어 내밀자 점원이 레이저로 바코드를 읽는다. 자성을 이용한 신용 카드로 결제를 하고, 동작 감지 자동문을 지나 회사로 들어선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하여 세계 각지에서 온 이메일을 훑어본다. 이렇게 또 평범한 하루가 시작된다. 하지만 양자 역학이 없다면 이 글의 내용 중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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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상 뿐만 아니라 약간 거리가 있을 것 같은 생물 분야도 모두 양자 역학으로 설명된다고 하는구나. 그 중에 한가지 예를 들면 호흡을 통해 우리 몸 속에 들어온 산소의 에너지 대사 과정도 모두 양자 역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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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인간과 같은 다세포 생물은 막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반응성이 강한 산소를 이용하여 이 에너지를 얻는다. 이 과정을 호흡이라 한다. 원자력이 위험하지만 덕분에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산소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 단세포 생물의 단계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이다. 다른 분자들은 대개 혈액에 섞여 그냥 이동되지만, 산소는 헤모글로빈이라는 단백질에 실어 이동시킨다. 위험물 특별 호송이라 할 만하다. 실수로 산소가 빠져나가 몸속을 돌아다니면 치명적인 위험이 되기 때문이다. 산소와 헤모글로빈의 결합, 산소의 에너지 대사 과정 모두가 양자 역학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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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역학이라는 것은 최근에 컴퓨터에 접목하여 양자컴퓨터라는 것을 만들었어. 이 양자컴퓨터는 계산은 빠르지만 아직 범용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는구나. 범용컴퓨터까지 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고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했어.

이 책의 끝부분은 양자역학에 대한 책들을 많이 추천해 주었단다. 양자역학에 관심이 많은 아빠에게 참 도움이 될 것 같구나. 김상욱님이 추천한 모든 책들을 읽을 수 없겠지만, 몇몇 책은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추가를 했어. 급하지 않게 천천히, 틈틈이 양자역학에 대한 책을 읽어봐야겠구나. 너희들도 좀더 커서 같이 양자역학을 공부했으면 좋겠구나.

우리가 작년에 즐겨 본 <어벤져스> 시리즈 중에 <앤트맨>이 있었잖아. 거기 주인공들이 양자의 세계로 들어가고 그랬지? 과연 올해 개봉하는 <어벤져스 4> 예고편을 보면 양자의 세계에서 길을 잃었던 앤트맨이 되돌아왔잖아. 그래서 양자 역학이 <어벤져스 4>에서 어떤 큰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더구나. , 기다려보자꾸나

PS:

책의 첫 문장 : 영화 <터미네이터>를 보면 과학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암울한 미래가 잘 나타나 있다.

책의 끝 문장 : 무슨 책을 읽을지 당신이 고민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생각을 만들어 내는 당신 모의 모든 원자들은 양자 역학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15)
아직 세수도 못 했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을 이루고 있는 원자를 이해해야 한다. 원자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과학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인 양자 역학이다. 이쯤 되면 양자 역학이 궁금해질 법도 한데.

(31)

결국 원자를 이해하려면 전자의 운동을 이해해야 한다. 무거운 원자핵은 가만히 있고, 전자가 그 주위를 분주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다시 서울시만한 원자를 생각해 보자. 당신이 부산에서부터 원자를 향해 접근한다면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은 전자다. 농구공 크기의 원자핵은 사대문 안까지 들어가야 볼 수 있다. 전자가 당신을 싫어해서 밀어낸다면 원자핵을 보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실제 원자들끼리 만났을 때에도 먼저 마주치는 것은 언제나 상대방의 전자다. 전자들끼리는 서로 미워한다. 밀어낸다는 말이다. 따라서 원자핵끼리 만나기는 힘들다. 나중에 보겠지만, 언제나 서로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 함께하기도 하다. 원자가 결합을 이룰 수 있는 이유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존재할 수 없다.

(37)

이것으로 양자 역학의 핵심은 다 이야기했다. 하지만 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를 분들이 대부분이리라. 그건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다. 물리학자들도 처음에 어리둥절해 했으니까. 사실 이제부터 질문이 터져 나와야 정상이다. 대체 무엇 때문에 확률이라는 개념이 나와야 하는 것일까? 전자가 정말로 2개의 구멍을 동시에 지나가나? 하나의 전자가 둘로 쪼개졌다가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인가? 모두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앞으로 하나하나 짚어 볼 것이다. 일단 여기서는 전자라 확률의 파동이라는 것이 원자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만 이야기하자. 이 모든 것은 원자를 이해하려고 시작한 것이니까.

(65)

유일한 근거는 우리의 경험뿐이다. 과학의 역사가 우리에게 일관되게 들려주는 하나의 메시지가 있으니, 바로 경험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돌고, 우주는 팽창하며, 생명은 진화한다. 빛의 이중성은 경험과 직관의 빈약한 근거를 다시 한번 보여 준다.


(78-79)

플랑크가 씨 뿌리고 아인슈타인이 키운 이중성은 드 브로이에 이르러 꽃을 피우고 슈뢰딩거가 수확한다. 콤프턴 실험으로 빛의 입자성이라는 미친 생각이 갑자기 상식이 된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이제 루이 드 브로이(192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재)는 거침없이 질문한다. "전자는 입자인가?" 슈뢰딩거는 아예 전자의 파동 방정식을 만든다. 보어가 발견한 정상 상태와 양자 도약의 광맥은 하이젠베르크가 개발한다. 하이젠베르크가 만든 행렬 역학은 정상 상태를 구하는 수학적 방법을 제공한다. 그 이론에는 양자 도약이 자동 내장되어 있다.

(106)

왜 빛으로 측정하는가? 좋은 질문이다. 빛이 아닌 다른 물체, 예를 들어 전자를 이용해서 전자의 위치를 측정할 수도 있다. 전자 현미경이 그 예다. 이 경우도 똑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전자도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고 운동량과 파장이 드 브로이의 공식으로 기술된다. 전자 현미경의 정확도를 높이려면 전자의 파장을 작게 해야 하는데 그러면 전자의 운동량이 커야 한다. 운동량이 큰 전자는 충돌 시 큰 충격을 주어 측정당하는 전자의 운동량을 크게 교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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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안재성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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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 책은 작년에 신간 소개를 통해서 알게 된 책이란다. 지은이 안재성님이 반갑더구나. 아빠가 그 분의 책은 딱 한 권 밖에 읽지는 못했지만, 괜찮게 읽어서 이 책에 대한 관심도도 높이 올라갔었어. 안재성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약간 금기시하는 하는 공산주의자들에 관한 책들을 많이 쓰셨단다. 다른 작가들이 잘 다루지 않는 인물들을 쓴 이야기들이 많다 보니, 안재성님의 책들을 통해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많을 거야.

안재성님의 책을 읽었던 것이 2007년이었는데, 좋게 읽었음에도 그 동안 그의 책들을 찾아 읽지 못한 것 같구나. 앞으로 그의 책들을 찾아 읽어봐야겠구나. 이번에 읽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는 어떤 가슴 뜨거운 사람의 이야기란다. 소설의 제목처럼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 우연히 지은이의 손에 들어온 어떤 이의 수기. 수기를 쓴 이도 이미 오래 전에 죽었고, 원고지에 쓰여진 수기 또한 50년 세월에 낡았다고 하더구나. 그 수기를 지은이가 소설로 각색한 것이 바로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이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사람인지 그럼 그의 이야기를 전달해줄게.

1.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10여일 지났을 때, 평양의 한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정찬우는 긴급 명령을 받게 되었단다. 정찬우는 김일성 대학을 나온 수재였어. 자신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무작정 영남지방의 교육 의원으로 발령을 받았어. 남쪽에 내려가서 남쪽 인민들을 교화하라는 임무를 받았어. 정찬우에게 주어진 준비 시간은 두어 시간 뿐제대로 준비하지도 못하고 곧바로 출발했어. 하마터면 약혼녀인 허인숙과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갈 뻔했단다. 그런데 그 만남이 마지막이었음을 그때는 알았을까. 정찬우는 그렇게 짐을 간단히 싸고 다른 문화예술 의원들과 함께 남으로 갔단다. 인민군이 점령을 했다고 하지만, 미군기의 예고치 않은 공습은 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고, 길거리에도 많은 시신들이 세상을 원망하고 있었단다.

서울에 도착한 정찬우는 이옥련이라는 비서가 함께 하기 시작했어. 그들은 대전을 거쳐 진주까지 도착을 했단다. 당시 가장 치열한 전쟁터는 낙동강 전선이었는데, 진주라고 하면 그 낙동강 전선이 코 앞인 지역이었단다. 인민군은 낙동강 전선에서만 이기면 전쟁이 끝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싸웠단다. 그런데 9 25일 갑자기 퇴각 명령이 내려왔어. 조금만 더 하면 끝인데 말이야. 인천상륙작전으로 인천이 함락되었다고 했어. 그리고 서울도 곧 함락된다고 했어. 그러면 남쪽에 있는 인민군들은 잘못하면 독 안에 든 쥐가 되는 것이었어.

퇴각은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어서, 오합지졸에 각자도생이었단다. 정찬우는 비서 이옥련을 비롯하여 일행들과 함께 산을 타고 북상을 했어. 가는 길에 인민군들과 만나고 헤어지기도 했단다. 과연 북에 도착할 수 있을까. 문득 바라본 가을 하늘은 자신의 신세를 더욱 처량하게 만들었어.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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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맥없이 누워 있으려니 가을 새벽의 새파란 하늘이 올려다보였다. 하얀 양들이 푸른 들판을 천천히 걸어가는 것 같았다. 문득 고향이 그리워졌다. 한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추억들이 영화처럼 어른거렸다. 저절로 눈이 감기고 잠이 쏟아졌다. 고향에 대한 추억이 꿈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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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우는 산으로는 북으로 가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고 남으로 해서 바다를 통해 밀항선을 타고 북으로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정찬우 일행은 다시 남쪽으로 향했단다. 도피길이 길어지면서 일행들 중에 죽는 이들도 많았고, 수는 점점 줄어들었단다. 그리고 비서 이옥련과 함께 어려움을 겪으면서 서로 애틋한 감정이 생겨나기도 했어.

….

남쪽으로 향하던 그들은 지리산 자락 하동 지방에서 빨치산 부대인 이영회 부대를 만났단다. 원하지 않았지만, 이영회 부대에 합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 빨치산 부대에서 있으면서, 사소한 잘못으로 즉결심으로 처형을 당할 뻔한 인민군들을 교육의원의 권한과 설득으로 살려주기도 했어. 나중에 포로 수용소에서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이 정찬우를 도와주기도 했단다.

빨치산의 생활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어. 토벌대의 대대적인 공격이 있었거든다시 도망 시작뿔뿔이 흩어지고 하루가 지나면 동료들이 몇 명씩 죽어나갔어. 그 중에는 비서에서 사랑의 감정을 나누는 관계로 발전한 이옥련도 있었어. 그렇게 이옥련도 지리산 자락에서 죽고 말았단다. 이옥련이 전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 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서울 근처의 숲 속에서 몰래 숨어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자고서울에 집에 있던 이옥련은 자신이 몰래 먹을 것을 가지고 오면 된다고 했었어. 정찬우는 그럴 수 없다고 하고 이옥련은 그런 그를 따라 왔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등지다니정찬우는 깊은 슬픔과 죄책감에 빠졌단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전쟁이란 말인가. 무엇으로부터 도망이란 말인가. 추운 한겨울 지리산 동굴에서 숨어 지냈지만, 결국 그는 잡히고 말았단다.

2.

진주 임시 수용소에 갇혔다가 광주 포로수용소로 이송되었어. 그리고 그곳에서 2년을 지낸 후 재판을 받았어. 그리고 판결은 10. 청춘을 전쟁과 감옥에서 다 날려야 했어. 대구 교도소를 거쳐 목포 교도소로 이동했어. 당시 교도소의 삶은 고난의 삶이었어. 차마 죽지 못해 지내는 시간들그는 전향서도 쓰지 않았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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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젊은 배식담당의 살기 어린 고함에 감방은 조용해져버렸다. 정찬우는 문득 운전수 윤성남이 떠올랐다. 북이 옳은 건지, 남이 옳은 건지 분간을 할 수 없는 혼돈에 빠진 채 정신착란을 일으킨 듯 발광하며 굴 밖으로 뛰어나가 죽은 그의 최후가 떠올랐다. 젊은 배식담당과 운전수만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배운 사상이론은 단순했지만, 전쟁은 모든 사람의 생각을 헝클어놓았다. 선과 악의 경계를 오가던 이봉춘도 그랬고 박창섭도 그랬다. 어쩌면 정찬우 자신도 정신분열 상태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진리나 절대 선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북 아니면 남을 선택해야 하고, 공산주의 아니면 자본주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가 정신을 분열시켜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찬우는 그만 벽에 눈을 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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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

‘도대체 이남이나 이북이나 뭐가 서로 다르단 말인가? 제도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같아서, 돈과 권력을 차지한 악마 같은 인간들에게 지배당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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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우의 고향은 사실 남쪽이었어. 전라도 정읍이었지. 일제 시대에 가족들과 함께 만주로 이주해서 십대 중반의 나이에 조선의용군으로 항일 무장투쟁을 하기도 했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칠 줄 아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나이였지. 해방 후에 그는 고향이 아닌 평양에 정착하게 되었던 거야. 교도소에서 그는 혹시나 하고 옛 고향집으로 편지를 보냈어. 그리고 한참 만에 온 누이의 답장…. 가족들도 모두 고향으로 내려와 있었던 거야 그렇게 가족들과 연락이 닿은 정찬우…. 아버지가 면회를 와서 눈물의 재회를 하기도 했단다.

십 년 세월. 교도서의 삶을 그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하게 만들었어. 그리고 정찬우는 십 년 꼭 채우고 교도소 문을 나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났단다. 그의 약력을 보니, 1929년 출생 1970년 사망으로 나온단다. 교도소의 후유증 때문인지 그는 교도소에 출감한지 얼마 안되어 40년 삶을 뒤로 하고 세상을 등졌더구나.

너무 가슴이 아프구나. 그는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그가 시대를 잘 만났다면 자신의 명석한 두뇌로, 인류 발전에 기여를 했을 수도 있을 텐데…. 선택의 자유도 없이 명령에 의해 내려와서 한 것이라고는 도망 다닌 것뿐인데 말이야. 그렇다고 누가 그를 기억이나 하겠니안재성 같은 분이 그의 삶을 복원해내어 우리가 그를 기억하게 되는구나. 뜨거운 심장을 가졌던 어떤 청춘을 말이야

PS:

책의 첫 문장 : 정찬우는 학교에 출근하자마자 전화를 받았다. 조선노동당 부위원장 허가이의 전화였다.

책의 끝 문장 : 중얼거리던 정찬우는 팔정자를 향해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대로 흙 위에 엎어져 길고 긴 오열을 시작했다.


(82)

맥없이 누워 있으려니 가을 새벽의 새파란 하늘이 올려다보였다. 하얀 양들이 푸른 들판을 천천히 걸어가는 것 같았다. 문득 고향이 그리워졌다. 한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추억들이 영화처럼 어른거렸다. 저절로 눈이 감기고 잠이 쏟아졌다. 고향에 대한 추억이 꿈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103)

‘하루아침에 민심이 바뀌다니. 우리가 서울에서 보았던 민중들의 표정은 전부 거짓이었을까? 서울역 광장에 모여 있던 의용군은 모두 강제로 끌려나온 이들이었을까? 인민군이 다시 오면 이번에는 또 인민군 만세를 부를 것인가? 내가 도시마다 돌아다니며 떠들어댄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게 아닐까? 모두들 내 등 뒤의 다발총 앞에 굴복했던 것뿐이었을까?’

(227)

젊은 배식담당의 살기 어린 고함에 감방은 조용해져버렸다. 정찬우는 문득 운전수 윤성남이 떠올랐다. 북이 옳은 건지, 남이 옳은 건지 분간을 할 수 없는 혼돈에 빠진 채 정신착란을 일으킨 듯 발광하며 굴 밖으로 뛰어나가 죽은 그의 최후가 떠올랐다. 젊은 배식담당과 운전수만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배운 사상이론은 단순했지만, 전쟁은 모든 사람의 생각을 헝클어놓았다. 선과 악의 경계를 오가던 이봉춘도 그랬고 박창섭도 그랬다. 어쩌면 정찬우 자신도 정신분열 상태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진리나 절대 선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북 아니면 남을 선택해야 하고, 공산주의 아니면 자본주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가 정신을 분열시켜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찬우는 그만 벽에 눈을 감고 말았다.

(286)

‘도대체 이남이나 이북이나 뭐가 서로 다르단 말인가? 제도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같아서, 돈과 권력을 차지한 악마 같은 인간들에게 지배당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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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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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황현산님의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이란 책을 읽었단다. <밤이 선생이다> 이후 황현산님의 책은 이번이 두 번째였어. 아빠가 황현산님을 알게 된 것은 노회찬님 덕분이란다. 노회찬님이 청와대를 방문하면서 김정숙 영부인께 책 선물을 한 권 하셨는데, 그 책이 <밤이 선생이다>라는 책이었거든. 그래서 그 당시 아빠도 <밤이 선생이다>라는 책을 읽었어.  

2018년 여름 황현산님의 신간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안되어 아빠가 존경하는 노회찬님이 세상을 떠나셨고, 그리고 얼마 안 되어 황현산님도 지병으로 돌아가셨어. , 가슴이 아프구나. <밤이 선생이다>라는 책을 읽고 있을 때는 두 분다 생존해 계셨었고, 그들의 좋은 글들과 말씀을 오랫동안 만나길 기대했었는데….,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을 읽을 때는 두 분 모두 이 세상에 안 계시다니그렇게 생각하니 슬프고도, 세월의 무상함도 느껴지는구나. 두 분이 지금쯤 어딘가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고 계셨으면 좋겠구나.

 

1.

뒤늦게나마 황현산님을 기리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단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황현산님의 책은 이번이 두 번째였는데, 지난 번에 읽은 책보다 이번이 더 좋았단다. <밤이 선생이다>와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여러 매체에 실었던 글들을 모아 놓은 것이었어. 나이를 먹으면 보수적으로 변하기도 하는데, 황현산님은 그렇게 변하시지 않고, 우리 사회를 냉철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래 시대를 걱정을 해주시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분인 것 같았어.

이 책을 읽는데, 계속 떠오른 단어가정갈하다라는 말이었단다. 글이 정갈하다라는 뜻도 정확히 모르면서 그 단어가 계속 떠올랐단다. 정갈하다 : 깨끗하고 말쑥하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뜻이 정의되어 있더구나. 그러면 아빠가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감정을 제대로 느낀 것 같았어. 깨끗하고 말쑥한 글들이었어. 그리고 이 책은 이 시대의 역사라고 할 수도 있단다. 이 책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그의 글들이 실려 있단다. 역사라 이야기하기에는 5년은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참 많은 일들이 있어났던 기간이고, 암흑의 시대에서 빛의 시대로 대반전이 일어난 시기가 아니더냐. 아빠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써도 이 시절은 평생 잊지 못할 시기 중에 하나이니까 말이야.

이 책을 읽다 보면, 암흑의 시대에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시스템에 대한 날 선 비판들이었어. 그 암흑의 시대를 지나서 나서 그 글들을 읽으니, 분개가 덜 했던 것 같았어. 만약 암흑의 한 가운데서 언제 빛의 시대가 올 지 모르는 그 시절에 황현산님의 글들을 읽었다면 절대 공감을 하면서도 더욱 분개를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들었단다. 2013, 2014, 2015, 2016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들로 가슴 아프고, 억울해했었니.. 다시는 그런 암흑의 시대로 돌아가지 않도록 더욱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단다. 빛의 시대에 오래 살다 보면 빛의 고마움을 모르게 될 수도 있어. 그리고 많은 언론과 거짓 정치인의 입 발림에 속을 수도 있거든. 그들은 예전에도 그런 작전이 성공해서 암흑의 시대로 만든 기억을 아직 가지고 있고 말이지.

문득 황현산님을 비롯하여 나이를 먹음에도 보수적으로 변하지 않고 진보의 가치를 가지고 계신 분들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어. 그들의 공통점은 꾸준히 공부하고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쓰고 계시는 것 같았단다. 아빠도 그들처럼 나이 먹고 변하지 않고,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더욱 열심히 읽고 더욱 열심히 써보려고 한다.

.

게으름은 어떨까? 게으름과 진보의 관계는? 아빠가 게으름을 좀 고쳐보려고 하는데 쉽지 않거든 말이야.  이 책을 읽은 지가 언제인데, 이제서야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으니 말이야. 앞으로는 독서편지가 밀리지 않게 노력을 조금은 해볼게. 기억이 좀더 온전할 때 너희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말이야.

.

아참, 오늘은 책에 대한 내용은 많이 못해주었구나. 이 책에서 아빠가 인상적인 구절을 잔뜩 발췌해 놓은 글이 있으니 책에 대한 내용은 그 글로 대신하자꾸나.

 

PS:

책의 첫 문장 : 박새를 민간에서는 흔히 머슴새라고 부른다. 저녁 어스름이나 해가 뜰 무렵에 이랴낄낄! 이랴낄낄! 소를 몰아 밭 가는 소리로 크게 울어대기 때문에 붙은 별칭이다.

책의 끝 문장 : 장석남은 새해에 쉰셋이 된다.


(22-23)

긴말이 필요 없이 우리에게 전쟁은 민족의 공멸을 뜻한다. 남북의 삶이 뿌리까지 파괴되고 민족이 돌이킬 수 없는 불행에 빠지게 된다면 경제적으로 부를 쌓은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젊은 두뇌들이 학문을 연마하고 재주 많은 사람들이 문예의 꽃을 피운들 그게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민족의 한쪽이 나쁜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도와야 하는 것은 우리다. 남북은 가장 가까운 핏줄로 연결되어 있고, 수천 년 동안 같은 운명 앞에 거 있었고, 또다시 긴박한 위험을 목전에 두고 같은 운명을 고뇌하고 있다. 함께 번영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실천하는 지혜가 진정한 앎이며, 한쪽의 동포가 비극적인 결단을 내리지 않도록 도울 수 있는 힘이 진정한 국력이다. 거기에서가 아니라면 한 국가의 자존심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2013.4.13)

(44)

‘곤반불레’라는 풀이 있다. 눈이 녹고 밭고랑의 보리 순이 생기를 얻기 시작할 때, 우리네 들판 어디서나 파랗게 돋아나는 풀이다. 전라도 남쪽 지역에서는 초봄에 그 어린 풀을 보리 순과 섞어 된장국을 끓인다. 깊은 향취가 있다. 홍어 내장을 조금 넣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46)

문학의 언어는 고백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토론의 언어다. 이를테면 시의 여러 기능 가운데는 방언을 떠나서는 표현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의 은밀한 구석에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어주고 그것을 공공의 언어로 표현하는 일도 포함된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방언을 버리고 시를 써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한 사람에게 진실인 것은 어느 날 다른 사람에게도 진실이 되듯이, 지극히 은밀한 방언의 정서도 공공성의 빛 속으로 개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74)

악마는 용의주도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렇게 아우성을 쳤고 여전히 아우성을 치건만, 저 위험한 배를 비정규직들이 몰아도 그것을 예삿일로 여기도록 끝내 세상을 훈련시켰다. 악마는 제 시선을 벗어난 사람들이 그 몰상식을 고발하더라도 그들을 ‘종북 빨갱이’로 몰도록 프로그램된 사람들을 높은 자리, 낮은 자리에 뿌려놓았다. 악마의 친화성도 한몫을 했다. 기우뚱거리는 배에 수많은 사람을 태워 바라도 내보내는 회사에 그것을 감시해야 할 사람들이 상을 주었다. 감시해야 할 사람들과 또 그것을 감시해야 할 사람들을 악마가 차례차례 포섭한 것이다.

(97)

언어는 사람만큼 섬세하고, 사람이 살아온 역사만큼 복잡하다. 언어를 다루는 일과 도구가 또한 그러해야 할 것이다. 한글날의 위세를 업고 이 사소한 부탁을 한다. 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한다.

(101)

인간의 깊이란 의식적인 말이건 무의식적인 말이건 결국 말의 깊이인데, 한 인간이 가장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그 존재의 가장 내밀한 자리와 연결된 말에서만 그 깊이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문이, 특히 인문학이 제 나라 말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떤 언어로 표현된 생각은, 그 생각이 어떤 것이건, 그 언어의 질을 바꾸고, 마침내는 그 언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세상을 바꾼다. 정의라는 말이 없다면 우리의 인간관계와 제도가 달라졌을 터인데, 정의를 ‘저스티스’라고 한다고 해서 그 내용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를 세상에 실현하기 위해 쏟아 부은 온갖 역사적 노력과 그 말을 연결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학문에서 제 나라 말을 소외시킨다는 것은 제 삶과 역사를 소외시키는 것과 같다.(201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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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은 이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시대를 느꼈으며 그들의 언어로 정치를 해석하고 그들의 소망을 정치에 투영하려 분투했습니다. 인간사회에서 제일 이루기 어려운 그 일을, 오늘보다 내일 더 잘하기 위해 쉬지 않고 공부했고요. – 유시민 <추도의 글> 중에서

(22)

대한민국 헌법의 역사는 곧 헌법개정의 역사이다. 그리고 헌법 개정의 역사는 대부분 헌법정신 유린의 역사이다. 자신의 재선과 3선을 위해 1952, 1954년 두 차례나 변칙적인 헌법개정을 감행하고 헌법정신을 유린한 독재자 이승만이 헌법의 수호동상이 되어 제헌절 제56주년 행사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27)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은 정당의 지지율만큼 의석을 갖게 하는 것이다. 정당의 지지율은 정책, 노선, 인물에 대한 종합평가이다. 전체 유권자 중 3%, 100만 명이 지지하는 정당이 있다면 이 100만 명은 국회 내에 자신을 대변할 3%의 국회의원을 가져야 한다. 32%, 29%, 18%로 나타나는 최근의 지지율로 국회의석을 배정한다면 열린우리당 120, 한나라당 109, 민주노동당 68석 가량이 되어야 한다. 부산에서 열린우리당이 30%의 의석을 갖고 광주에서 한나라당이 최소 15%의 의석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포함하는 완전비례대표제만이 정답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선거제도이기도 하다. 차선책으로나마 이런 효과를 보려면 16개 광역시도를 각각 하나씩의 선거구로 하는 대선거구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36)

숲은 미래다.

숲은 관념이 아니라 과학이다.

숲이 병들면 미래가 병드는 것이다.

숲에서 지낸 7시간.

2004년 들어서서 가장 좋은 하루를 보냈다.

(144)

그와 헤어진 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바로 다음 날부터 목에서 가래가 사라졌고, 생방송 전화인터뷰 도중에 목소리가 갈라지는 낭패를 겪지 않아도 되었다. 보름쯤 지나서 라면을 끓여 먹는데 신라면 국물맛이 그렇게 깊은 줄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물론 박재갑 국립암센터 원장을 마주칠 때의 두려움도 사라졌다.

다른 사람들처럼 헤어진 그의 등에다 비난을 던질 생각은 없다. 내가 그를 버렸지, 그가 나를 거부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한 지난 30년을 후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정든 것들과 하나씩 이별하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64)

울산바위는 울산에 있어야 한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만든다며 저 육중한 바위를 울산에서 올라오게 만든 것은 조물주의 사려 깊지 못한 처사였다. 금강산 일만이천봉 속에 포함되었으면 아무도 찾지 않는 무영의 봉우리로 전락했을 저 바위가 그나마 설악산 근처에 머물게 되어 약간이라도 빛을 발하게 된 것은 불행 중 다행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저 잘생긴 바위가 본디 그대로 울산에 그냥 남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모르는 국민이 없는 명물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안식처를 제공하고 또 전국 각지의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을까.

(205)

오늘날 한국정치의 불안정성은 무엇보다도 낡은 정치구조의 문제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 한국정치의 비극은 정체성과 기본노선의 거의 비슷한 두 세력이 권력을 반분하고 대립하며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거대한 두 개의 보수정당이 권력을 담당해 온 역사는 깁니다.

(246)

잃어버린 10이란 허구가 낳은 허위의식 중 대표적인 것은 대미관계와 대북관계에 관한 것이다. 지난 10년간 좌파정권들때문에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졌고 또 북한에는 퍼주기만 하면서 끌려다녔다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인식이 낳은 첫 작품이 지난 4 18일 타결된 쇠고기수입협상이다. 향후 거래를 위해 원청회사에 한 턱 크게 써서 환심 사겠다는 사업가정신의 발로로밖에 볼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은 바로 검역주권, 국민건강권을 포기해서라도 미국과의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이들의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2008.07.13)

(301)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 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지금 현대자동차 그 고압선 철탑 위에 올라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3명씩 죽어나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용산에서 지금은 몇 년째 허허벌판으로 방치되고 있는 저 남일당 그 건물에서 사라져간 다섯 분도 다 투명인간입니다. (2012.10.21)

(302)

강물은 아래로 흘러갈수록 그 폭이 넓어집니다. 우리가 말하는 대중정당은 달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실현될 것입니다.

(313)

수첩을 읽는 게 아니라면 정치인의 말은 짧을수록 미덕이다. 허나 생각해보면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같은 뜻을 짧게 표현할 수 있다면 같은 시간에 더 많은 뜻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은가? 여느 사람이라면 자신이 살아온 역정을 밤새워 얘기해도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인생도 줄이고 또 줄이다 보면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3분 이내에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하냐고? 실험해보면 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쓴 뒤 그것을 계속 줄여보는 거다. 하다 보면 마침내 3분 분량으로까지 줄일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380)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이 최선의 선택인지 당장 알 수 없을 때에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라.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382)

어려서는 공부시간 세계 1, 커서는 노동시간 세계 1, 늙어서는 정년퇴직 후 노동시간 세계 1, 한국남성은 퇴직하고도 11.2년 더 일해야 한답니다. 오늘은 회의 2시간 외에는 좀 쉬어야겠습니다.

(388)

순간순간을 보면 역사가 후퇴할 때도 물론 있지요. 그러나 지그재그로 발전하는 것이 역사라고 알고 있습니다. 역사적 낙관주의! 저는 늘 이 바탕 위에 서 있습니다. 그래야 어려운 조건도 이겨낼 수 있으니까요. 물방울이 끝내 바위를 뚫는 자연의 섭리를 되새깁니다.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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