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김종철 : 그러니까 정치판에 단 한 사람도 농민의 대변자가 없는 셈이네요.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농사라는 게 우리들 모두의 존재의 기반 중에 기반인데 말이에요. 정말 한심한 현실입니다. 지금 중앙 언론의 간부들이나 기자들이 거의 전원이 도시 출신이고, 도시에서만 교육 받고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농촌에 대한 기억을 가진 언론인들은 이제 다 늙어서 은퇴했어요. 그리고 제가 지방에 있다가 서울로 옮긴 지도 15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서울에서 만나본 지식인들 중에서 농촌에 대해서 관심을 표명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녹색평론> 지면에서라도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어서, 이러다가는 책도 안 팔리고, 일반 독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주제인 줄 알면서도, 계속 농사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31)

김종철 : 참으로 어리석은 단견이에요. 지금 기후위기 시대에 앞으로 전 세계 농작물이 작황이 아주 나빠질 거라고 계속 연구가 나오는데,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농산물을 수입해서 먹고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국내의 자급 기반을 넓힐 생각은 안하고, 엉뚱한 짓만 하려고 하니 기가 찹니다. 지금 우리가 얼마나 지속 불가능한 산업구조를 유지하고 있는지,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인식이 없으니까요. 지금 쌀이 남아돈다고 하지만, 진짜 쌀농사를 많이 지어서 그런 게 아니잖아요. 외국에서 수입해온 다른 먹을거리들을 워낙 많이 소비하니까 그런 건데.

(41)

하여간 재생 불가능한 화석연료 자원 대신에 재생 가능한 자연적인 자원을 활용한 새로운 에너지시스템을 만들고,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유기농 농사법을 통해서 식량 자급을 도모하는 일은 당장 해야 할 긴급한 과제들입니다. 어제까지 가능했으니 내일에도 가능할 것이다, 라는 안이한 생각을 가지고, 계속해서 석유에 기반한 구태의연한 산업과 경제성장을 지향하다가는 어느 날 갑자기 나라 전체가 멸망할지도 모릅니다. 국가나 지방 자체체는 물론이고, 언론, 학계, 시민들, 농민들이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제대로 눈을 떠야 합니다.

(47)

사회에 끼친 객관적인 피해가 아니라 행위한 자의 주관적 의도를 기준으로 하는 재판은 법관의 양심에 따른 판결 원칙과 짝을 이루어 한국을 무법의 사법 마피아 왕국으로 전락시켰다. 양심에 따른 판결 원칙은 세상의 어떤 법치국가 헌법에도 규정되어 있지 않다. 21세기 한국에서는 18세기 베카리아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 채, 양심을 빌미로 법률로부터도 독립한 법관의 전제적 재판이 횡행하고 있다. 더욱이 기준 없는 봐주기식, 눈감아주기식 양심 판결의 오류에 대해 법관을 검증, 처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조차 갖추어져 있지 않다. 민중은 속수무책으로 신같이 무오류를 참칭하는 법관의 전횡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살아야 한다.

(53)

사법권력 분산의 차원에서 북한의 사법제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공산당 독재체제라고 비난받는 북한의 사법제도를 보면 의뢰로 민주적인 데가 있다. 사법권력이 민중에게도 주어져 있는 참심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심제는 용어부터 남쪽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 낯선데, 그것은 배심제와 다르다. 배심제는 법조인 판사가 형량을 결정하기 전에 유무죄를 시민 재판관, 즉 배심원이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참심제는 거기서 더 나아가 형량의 결정에도 시민이 참여하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재판관이 세 명으로 구성되는데, 한 명은 전문 법조인, 나머지 두 명은 민중이다. 이들 민중은 판사와 동등한 권리를 갖고 사건을 심리하고 판결하는 데 동참한다.

(63)

한국은 민주국가를 표방하면서도 민중의 권리와 동력을 인정하려 않고 관료 일변도의 권위주의 행정, 입법, 사법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풍토가 지금까지도 만연하게 된 주요 원인은 목숨이 아까워 겁내고 저항하지 못한 우리 자신에게 있다.

(70)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기후위기가 큰 딜레마라고 지적한다. 기후위기의 실상을 곧이곧대로 전달하면 사람들은 포기하거나 체념하고, 동기화된 망각기제를 발도시켜 끔찍한 메시지를 의식에서 밀어낸다. 자기중심적 위험 인식도 문제다. “설마내가 사는 동안은 괜찮겠지하는 식의 현재 편향과, 미래에 대한 과도한 가치폄하도 나타난다.

(71)

세대 간 정의의 문제도 있다. 기성세대의 행동(온실가스 누적) 및 무행동(온실가스 통제의 방임) 때문에 젊은 세대와 미래세대가 입을 피해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레타 툰베리가 유엔 연설에서 우리는 어른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말을 듣고 밤잠을 설친 어른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기성세대가 세대 간 연대의 정신으로 책임 있게 행동에 나서고, 기후위기의 고통을 더 오래 겪을 젊은 세대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청소년들의 참정권 확대 요구를 생명권-생존권 차원의 문제로까지 넓혀 인정해야 한다. 자녀들의 대학입시에 부모들이 퍼붓는 관심과 정성의 1%만 기후위기에 쏟아도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질 것이다.

(77~78)

2013 8, 도쿄전력은 고농도 오염수 저장탱크와 인근 배수구에서 높은 방사선 수치가 측정되었다고 발표했다. 당시 측정된 수치는 시간당 96mSv였다. 자연 상태의 방사선량이 시간당 0.0001~0.0003mSv 정도임을 고려할 때 수십만 배 이상 높은 방사선량이었다. 조사 결과 오염수 저장 탱크 인근에서 물이 흐른 흔적이 발견되었다. 저장탱크의 오염수 양을 계산해보니 고농도 오염수 300t이 유출되었다. 오염수 저장탱크 불량으로 누수가 생긴 것이다. 추가 조사 결과 저장탱크뿐만 아니라 운영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오염수 저장탱크 주변에는 오염수를 차단하는 콘크리트 차단벽을 설치해 놓았는데, 빗물을 빼기 위해 차단벽의 밸브를 계속 열어두고 있었다. 그 결과 차단벽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차단벽 밖의 토양으로 오염수가 스며들어 결국 바다로 오염수가 흘러간 것이다. 저장탱크와 바다는 직선거리로 50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이 사고로 유출된 방사성물질의 양은 24Bq로 추정되었다. 국제원자력기구(IEAE)는 이 사건이 심각한 사건이라는 입장을 발표했고,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국제핵시설사고등급(INES) 3등급으로 이 사고를 평가했다.

(93)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올바른 기술을 가지게 되면, 우리의 자유로운 이동 습관을 줄이거나 에너지 소비를 줄일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세계경제가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런 믿음은 그냥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은 아직도 기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을 뿐이다. 전기 자동차나 기타 녹색제품들은 우리의 심리를 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은 따지고 보면 인권유린과 환경훼손이 우리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도록-그리하여 불건강하고 임금이 싼 콩고나 내몽고 등의 광산으로-장소만 옮겨 놓는 음험한 책략이다. ‘녹색제품들은 그것들을 이용하는 부유한 자들에게는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것으로 보이겠지만, 결국 그것들은 증기기관의 발명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근시안적 세계관을 영구화하는 도구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환상을 기계물신주의라고 부르고 싶다.

(96)

오늘날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갖고 있는 기술에 대한 신앙은 우리를 구제해주지 못할 것이다. 지구상에서 생을 영위하는 우리들 모두에게 미래가 있으려면, 세계경제가 반드시 재설계되지 않으면 안된다. 문제는 자본주의나 성장논리보다 더 근원적인 데 있다. , 화폐와 그 화폐가 기술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하는 것이 더욱 근원적인 문제인 것이다.

(108~109)

모든 형태의 에너지 생산은 그 나름의 난제를 갖고 있다. ‘깨끗하고 재생가능한 에너지는 깨끗하지도, 재생가능하지도 않다. 우리가 무한한 에너지의 성장이라는 목표를 포기한다면, 모든 사람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다. 우리가 지침으로 삼아야 할 원칙은 진정한 청정에너지는 에너지를 덜 사용하는 형태로밖에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되어야 한다.

(143)

여기서 꼭 기억할 게 있다. 한국 국회의원들(300명 정도)에겐 있지만 스웨덴 의원들(350)에겐 없는 것 다섯 가지다. 첫째, 전용차 기사나 유류비 지원이 없다. 둘째, 월 보수처럼 받는 세비 외에 특별수당이 없다. , 무노동 임금이다. 셋째, 개인 비서나 고용 직원이 없다. 한국은 의원 한 명이 보좌관을 아홉 명까지 거느리나 스웨덴은 네 명의 의원 곁에 한 명의 보좌관만 있다. 대부분의 일을 스스로 한다. 넷째, 지역구 의원이 없다. 스웨덴 총선은 정당에만 투표한다. 다서째, 면책특권이나 불체포특권이 없다. 그러니 언행에 신중을 기한다. 물론, 자기 양심과 철학에 따른 소신 발언은 자유롭다.

(159)

독일 축구의 간판이었던 터키계 독일 선수 메수트 외질이 국가대표팀을 탈퇴한 것은 인종차별 때문이었다. 거기에다가 인터넷을 통한 대중의 폭력까지 더해졌다. 외질은 2014년 월드컵에서 독일을 우승으로 이끈 공로자로서 소위 국민 영웅이다. 그런 그가 독일축구연맹과 언론이 내가 터키 혈통이라고 차별했다.”고 항의하며 대표팀을 탈퇴했다. 독일축구연맹 회장은 (자신을) “이기면 독일인, 지면 이민자로 취급했다.”고 말했다. 그 말들이 지닌 아픔을 나는 공감할 수 있다. 독일 태생인 외질의 이런 말들은 국경을 넘어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공통된 마음이라는 것을 주류에 속한 다수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171~172)

금요시위에 나선 젊은이들은 투표 연령을 16세까지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몇 년밖에 생존해 있지 않은 80세의 고령자들이 투표를 통해서 지구의 환경조건을 결정하고 있는데도, 이 지구에서 앞으로 60년 이상을 살아간 다음 세대에게 투표권이 없는 것은 너무나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분명히 일리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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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1 - 태조에서 세종까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1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 민음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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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텔레비전을 잘 안보기 시작한 지 이제는 꽤 된 것 같구나. 예전에 텔레비전을 볼 때 가끔 역사 관련 교양 프로그램을 보곤 했어. KBS에서 끊이지 않고 역사 교양 프로그램을 했었던 것 같구나. 예전에 <역사스페셜>을 가끔 보곤 했는데, 그 이후에 거의 보질 않았어.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이유가, 이번에 아빠가 읽은 책이 KBS에서 했던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이라는 프로그램을 책으로 엮은 것이란다. TV로 이 프로그램을 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구나.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이 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 지금도 하나? 검색을 해보니 지금도 하는구나. 2013년부터 시작했으니 꽤 오래된 프로그램이구나. 이 프로그램을 책으로 엮어 시리즈로 꽤 되는 것 같은데, 아빠가 이번에 읽은 것은 1권이란다.

하루 24시간 다 똑 같은 날이 아니란다. 역사적인 사건들이 있었던 날들. 그 특정한 날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TV <역사저널 그날>이고, 책의 구성도 텔레비전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말들을 그대로 적었단다.. 1권에서는 조선 태조 이성계부터 세종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워낙 유명한 사건들도 많이 있었던 시기라서, 드라마라도 많이 만들어지고,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지는 그런 시기란다.

.

1.

첫 번째 그날은 정도전과 이성계가 만나는 그날을 이야기하고 있단다. 이성계는 파란만장한 삶을 산 만큼 역사적인 날들이 참 많을 텐데, 이 책에서는 정도전과 첫만남을 가진 날을 역사적인 그날로 뽑았단다. 두 명 모두 고려의 아웃사이더였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결국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단다.

===============================

(22)

어떻게 보면 정도전과 이성계 둘 다 고려의 아웃사이더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러던 이 둘이 만나서, 즉 붓과 칼, 사상과 무력이 만났기 때문에 이런 대업을 이룰 수 있었는데요.

저는 여기서 정도전이란 사람이 똑똑하다고 여겨지는 게, 자신이 갖고 있는 것과 잘하는 것(사상)을 알고 있는 것보다 자신이 못하는 것, 가지고 있지 않은 것(무력)을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이런 게 정도전의 천재성 같거든요. 자기가 갖고 있지 않은 걸 누가 갖고 있는지 알아내서 그 사람과 힘을 합쳤다. 이게 굉장히 인상적인 부분이었습니다.

===============================

..

여전히 이성계가 고려라는 자신의 나라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고, 위화도 회군이 정당한 것인가 질문을 던지는 이도 있단다. 하지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시킨 윗사람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가? 그것이 옳지 않은 것이고, 잘못하면 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 있는데 말이야. 아빠도 이성계의 입장이라면 많이 고민했을 것 같구나.

역사는 승자의 것.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승자의 붓으로 옳은 판단이었다고 쓰여지고 있단다. 하지만 위화도 회군을 하고 나서 고려라는 나라까지 뒤엎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했을까? 아빠는 어쩌면 정몽주처럼 고려라는 나라 틀 안에서 개혁을 해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것 같구나. 정몽주, 정도전 이 두 사람은 이색이라는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한 동문이고, 개혁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같이 같고 있었지만, 방법의 차이로 남남이 된다. 심지어 정몽주는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에게 살해당하고 만난다. 이 이야기는 너희들도 앞으로 많이 접하게 될 아주 유명한 이야기라서, 이만 생략할게.

아무튼 1392 7 17일 이성계는 조선을 세운단다. 왕위 자리를 몇 차례 사양하다가 어쩔 수 없는 맡는 식으로 왕위에 오른단다. 다 정해진 수순이었겠지만

그리고 수도를 한양으로 옮겼어. 신천 일대의 무악이라는 지역과 북악산 아래 한양이라는 지역을 두고 저울질하다가 교통의 요충지이고 방어하기 좋은 한양으로 정하게 되었어. 조선의 시스템은 정도전이 쓴 <조선경국전>에 기초를 했단다. 정도전이 꿈꾸던 나라는 민의를 중시하는 나라로 당시 전세계 그 어느 곳도 없었던 이상적인 나라였다고 하는구나. 책에서 약간 부풀려 이야기한 점도 없지만 말이야.

===============================

(75)

15세기 세계 다른 지역의 역사와 비교해 볼 때, 지배층이 위민(爲民)이라는 분명한 목표와 그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점, 또 그걸 실천할 수 있는 여러 제도적인 장치를 잘 만들었다는 점에서, 저는 당시에 조선 말고는 그런 것들을 성취한 나라가 없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군사적으로 강력한 나라는 아니었지만 정말 백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 15세기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였다고 생각합니다.

===============================

새로운 나라에 민심도 흔들리지 않고 지지하는 분위기였어. 금방 새로운 나라에 정착을 하는 것처럼 보였단다.

.

2.

하지만, 또 하나 영화와 드라마의 좋은 소재가 된 왕자의 난이라고 부르는 역사적인,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단다. 그것도 두 번이나이성계의 넷째 아들 이방원의 권력에 대한 욕심. 이성계의 실책. 아무리 새로 얻은 부인이 예쁘다고 해도, 열한 살 밖에 안된 이방석을 세자로 앉혔단 말인가. 목적을 위해서는 정몽주 같은 거물도 서슴없이 죽이는 이방원을 보고도 말인가. 자신과 가장 닮은 이방원을 세자로 후계자로 정해서 새로운 나라의 초기 정국을 안정되게 가지고 가야지 말이야.

연 이은 두 번의 왕자들 간의 칼부림에 몸서리를 친 이성계는 왕 자리를 내놓고 함흥땅으로 가버렸단다. 개국 공신 정도전도 이방원에 칼에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단다. 그렇게 왕위에 오른 태종은 흩어진 민심을 얻고자 노력을 했단다. 백성들에게는 잘 대하려고 했지만, 권력에 눈독 들이는 이들에게는 가차 없었단다. 특히 외척에 대한 숙청은 마치 트라우마가 있는 듯 했단다. 외척들은 씨를 말릴 정도로 죽였고, 나중에 사돈지간인 세종의 장인어른 심온도 죽였단다.

.

3.

태종은 안정적인 왕위 세습을 위해 세자도 일찌감치 가장 정당한 이로 정했어. 큰아들이자 자신과 많이 많은 양녕대군. 양녕대군의 삶 또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단다. 14년 동안 세자의 교육을 받은 양녕대군은 끝내 폐위되었단다. 폐위된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세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구나. 야사에는 자신보다 뛰어난 세종을 위해 일부러 양보했다는 설도 있지만, 그것은 아닌 것 같고 여자 문제, 세자 공부를 소홀했던 문제 등 이유가 있었다고 하는구나. 한편으로 그것이 폐위당할 만큼 잘못한 일이었냐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단다. 양녕대군이 폐위당하지 않고, 왕위에 올랐다고 해도 평균 정도의 왕 역할은 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란다.

하지만 그가 왕위에 올랐다면 세종이라는 평균 이상 최고 만렙 수준의 왕을 만나 볼 수 없었겠지. 무슨 이유가 되었던 양녕대군의 폐위는 세종이라는 위대한 왕이 나올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단다. 세종이 왕이 되고 나서 조선이라는 나라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단다. 세종의 업적들은 너희들이 앞으로 많이 배울 것이기에 여기서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으련다.

세종이라는 왕을 생각해보면, 한 사람의 철인이 나라를 운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세종이 한 일들 중에 의외의 일이 하나 있어 소개해줄게. 바로 그 시절에 국민투표를 실시했다는 거란다. 말도 안된고 하겠지만, 당시 공법을 도입하기 위해 조선이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고 하는구나. 그 놀라운 것은 의견이 모였어도 바로 실시하는 것이 아니고, 반대하는 이들의 의견도 들어보는 등 신중을 기하고, 시범지역을 적용한 후 전국적으로 확대했다고 하는구나. 의견 조사부터 실시까지 15년이 걸렸대.

===============================

(211)

아무리 좋은 취지와 내용을 가졌더라도 모든 변화는 일단 불편하다. 제도와 규모와 중요성이 클수록 변화의 내용과 불편의 정도도 커지게 마련이다. 국가 경제의 줄기라는 측면에서 공법의 도입은 지대하고 지난한 문제였다. 이런 사정은 전근대 한국사에서 독특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그 전까지 한 번도 시행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대규모의 의견 조사가 실시된 것이다. 조정은 1430 5개월 동안 전국 17만여 명에게 찬반 의견을 물었다. 그 때의 교통, 통신 같은 기술력과 행정력을 생각하면 인구 4분의 1을 대상으로 한 그야말로 방대하고 지난한 조사였다. 결과는 찬성 9 8000여 명, 반대 7 4000여 명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전라도와 경상도가 크게 찬성한 데 견주어 함길도와 평안도는 반대가 우세했다. 찬성이 더 많았지만 세종과 신하들은 공법을 서둘러 도입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루할 정도로 오래고 집요하게 제도의 장단점을 논의했다. 그런 과정을 거친 뒤에야 1441년 앞서 찬성이 우세했던 전라도와 경상도로부터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3년 뒤에 전국적으로 실시했다. 의견 조사부터 전국적 실시까지 15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것이다.

===============================

오늘날 정책 결정과는 판이하게 다르구나. 임기를 가지고 있는 정치인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어쩔 수 없지 않냐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빠는 그런 오랜 시간의 정책들은 4년짜리 직업 정치인이 결정하면 안되고, 국민들 중에 무작위 선출로 뽑은 이들이 결정하면 가능하고 생각한단다. 아이고, 이야기가 딴 데로 샜구나.

아무튼 세종이라는 왕이 있었다는 것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구나. 양녕대군이 그대로 왕위에 올랐다면 한글이 만들어졌을까? 옆에서 세종이 부추겼을까? 한글을 만들자고? 아니면 다른 이들에 의해서 한글이 만들어졌을까? 지금 한글이 아닌 다른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해보려 하지만, .. 상상이 안 가는구나.

, 오늘은 이만 마칠게,

.

PS:

책의 첫 문장 : 삶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 가운데 하나는 만남이다.

책의 끝 문장 : 창덕궁과 창경궁 남쪽의 종묘까지 완벽하게 이어질 그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도전이 이성계를 찾아갔을 때 두 사람의 처지는 사뭇 달랐다. 이성계는 그동안 눈부신 전공을 세워 고려를 대표하는 무장으로 자리를 굳힌 상태였다. 그러나 정도전은 반대였다. 그 또한 뛰어난 능력을 갖춘 젊은 관원으로 중앙 정치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1375년 이인임 등이 이끈 친원배명(親元排明) 정책에 반대하다가 전라도 나주로 유배되었다. 3년 만에 풀려났지만, 그는 관직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이리저리 떠돌고 있었다. 그러니까 정도전은 9년이라는 짧지 않은 낙백(落魄)의 시간을 보낸 뒤 이성계를 찾아간 것이다. - P13

네, 사대문의 이름을 보면 인의예지가 다 들어가 있죠.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의 ‘인(仁)’, 돈의문(敦義門, 서대문)의 ‘의(義)’, 숭례문(崇禮門, 남대문)의 ‘예(禮)’까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智)’가 있어야 하는데, 이 숙정문(肅靖門, 북대문)의 ‘정(靖)’자에 ‘꾀한다’는 뜻도 있어서 이게 지혜 ‘지(智)’자를 대신해서 쓰인 게 아닐까 추정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중앙에 보신각(普信閣, 종각)의 ‘신(信)’자까지 들어가서 ‘인의예지신’이 완성되는 거죠. - P58

정도전의 생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한다’ 이것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면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하려면 어떻게 애햐 하느냐? 모든 것을 왕에게 맡겨 둘 수는 없다. 능력 있고 깨끗한 사람이 권력을 장악해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이런 대원칙이 서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재상 중심의 정치(관료정치)라는 것이 <조선경국전>에 분명하게 제시되었던 것입니다. - P67

저는 이렇습니다. ‘양녕대군은 조선 최고의 전성기 세종 시대를 연출한 최고의 조연이었다.’ 결국 양녕대군의 등장이 세종을 훨씬 더 빛나게 해 줬고, 또 양녕 자신이 세종의 마음을 상당히 편안하게 해 준 점도 인정해야 합니다. 만약 양녕대군이 정치적 변란에 휩쓸렸거나 역모 사건 같은 게 일어났다면 세종도 마음껏 정치를 펼치지 못했을 것니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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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소맥을 말 때 숟가락으로 유리잔의 바닥을 내리치는 소리는 유난스워러서 싫지만, 젓가락으로 아랫술을 윗술 쪽으로 휘젓는 소리는 좋다. 샴페인 뚜껑이 펑 하고 날아가는 소리는 무서워서 싫지만, 잔에 따라진 샴페인에서 기포가 보글대며 힘차게 움직이는 소리는 좋다. 축구를 하고 난 후 목이 탄 축구팀 언니들이 여기저기서 다급하게 맥주 캔 따는 소리는 그렇게 경쾌할 수가 없고, 단숨에 들이켜지는 맥주가 목울대를 넘어가는 소리는 그렇게 호쾌할 수가 없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좋아하는 소리는 소주병을 따로 첫 잔을 따를 때 나는 소리다. 똘똘똘똘과 꼴꼴꼴꼴 사이 어디쯤에 있는, 초미니 서브 우퍼로 약간의 울림을 더한 것 같은 이 청아한 소리는 들을 때마다 마음까지 맑아진다.

(60)

나는 어려서부터 힘내라는 말을 싫어했다. 힘내라는 말은 대개 도저히 힘을 낼 수도, 힘도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서야 다정하지만 너무 느지막하거나 무심해서 잔인하게 건네지곤 했고, 나를 힘없게 만드는 주범인 바로 그 사람이 건넬 때도 많았다. 나는 너에게 병도 줬지만 약도 줬으니, 힘내. 힘들겠지만 어쨌든 알아서, 힘내. 세상에 힘내라는 말처럼 힘없는 말이 또 있을까. 하지만 이때만큼은 힘내라는 말이 내 혀끝에서 만들어지는 순간, 매일매일 술이나 마시고 다니던 그 시간들 속에서 사실 나는 이 말이 듣고 싶었다는 걸,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다. 누가 무슨 의도로 말했든 상관없이. 그냥 그 말 그대로,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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