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관내분실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 + 마지막 로그 + 라디오 장례식 + 독립의 오단계
김초엽 외 지음 / 허블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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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가끔 문학상 수상작들을 읽곤 하는데, 우리나라에 이런 문학상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단다. 과학문학,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SF 소설에 대한 문학상이 우리나라에 있다니처음에는 책표지에 커다랗게 써 있는 관내분실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싶어 책을 살펴 보았단다. 그리고 그 옆에 써있는 이 책의 정체. 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우리나라에 이런 문학상도 있구나, 이 상을 만든 사람들에게 우선 박수를 보내고 싶구나. 과학문학의 신예작가를 발굴한다는 취지의 상이라고 하는구나.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아빠가 우리나라 작가가 쓴 정통 SF소설을 읽은 기억이 없는 것 같더구나. 김영탁님의 <곰탕> SF 소설이라고 할 수 있나? 아무튼, 정통 한국 SF 소설을 읽은 기억이 없구나. 외국 작가의 SF 소설들은 몇몇 읽은 것 같은데.,. 그래서 한번 읽어보자고 생각했어. 한국 SF 소설을 응원한다는 생각으로 말이야. 그리고 신예 작가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었단다. 가끔 매끄럽지 않은 이야기 전개도 있었고, 약간 억지가 느껴지기도 한 작품도 있었지만 읽을 만 했단다. 한국 문학의 불모지를 개척하려는 의지도 살짝 엿보이기도 했단다.


1.

대상 수상작은 김초엽님의 <관내분실>이라는 작품이란다. 김초엽님은 대상뿐만 아니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작품으로 가작도 동시 수상했단다. 김초엽님은 최근에 자신의 작품을 모은 단편집도 출간했어. 아빠의 이목을 끌었던 관내분실이라는 제목좀 자세히 풀어 이야기하면 도서관 안에서 분실했다는 뜻이었단다. 가까운 미래의 도서관은 더 이상 책을 보관하고 빌려주는 곳이 아니었어. 죽은 이의 마인드를 보관하는 곳이었단다. 죽은 이의 마인드를 업로딩하여 보관을 하고, 유가족들은 도서관에 와서 죽은 이의 마인드를 꺼내어 만날(?) 수 있었단다. 그러면 실제 죽은 이를 만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단다.

주인공 송지민은 최근에 임신을 하고, 3년 전 돌아가신 엄마를 처음 만나려고 도서관에 왔어. 그런데, 송지민의 어머니 김은하는 사라졌어. 누군가 엄마의 index를 제거했다는 거야. 그렇게 권한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가족 밖에 없다고 했어. 그래서 송지민은 동생 유민에게 연락을 해보니 자신은 아니라고 했어. 그렇다면 남은 이는 연락 끊고 지낸 아버지뿐이었어. 연락을 해보니 역시 아버지였어. 그런데 어머니의 유언이라고 했어. 그래서 그랬다고아버지와 짧은 만남을 통해 지민이 모르고 있던 젊은 시절 엄마의 열정과 꿈을 들을 수 있었어.

도서관에서 index를 잃어 버린 경우를 대비해서 새로운 검색 엔진을 개발하고 있다고 했어. 우여곡절 끝에 잃어버린 어머니의 index를 찾아서 만나게 된단다. 어머니와 생전에 하지 못했던 말은 전하고 소설은 끝을 맺었어.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어. 인간 본연의 모습은 과학 발전으로 변화시킬 수 없을 거야.

김초엽의 가작 작품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제목이 이야기를 반쯤 먹고 들어가는 듯 했단다. 주인공 안나는 딥프리징을 개발하는 과학자였어. 딥프리징은 영어로 deep freezing겠지. 우주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리니까, 생명의 시간을 멈추게 하는 방법이 필요했어. 그래서 개발한 것인 딥프리징이야. 그래야 멀고 먼 우주 여행을 할 수 있으니까. 안나는 연구를 마치고 가족들과 슬렌포니아 행성으로 이주해서 살기로 했어. 남편과 아들은 먼저 출발하고, 안나는 진행하고 있는 연구가 끝나면 뒤따르려고 했어. 그런데 연구가 좀 길어지게 되었고, 그 사이에 말로만 듣던 웜홀통로가 발견되었어. 이 웜홀로 우주여행을 하면 그동안 우주여행의 방법이었던 와프항법이 필요 없었어. 와프 공법은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었지만, 웜홀은 그렇지 않았거든. 우주의 웜홀에 그냥 몸을 실으면 우주 저편에 도착할 수 있었거든. 웜홀은 단점은 웜홀을 발견한 지점으로만 갈 수 있다는 것이야. 그런데 안나가 가고자 하는 슬렌포니아에는 아직 웜홀이 발견되지 않았어. 그런데 웜홀이 발견된 이후에 더 이상 와프 항법도 운행하지 않았어. 너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 그러니까 안나는 가족들이 있는 슬렌포니아에 갈 수 없었어. 결국 슬렌포니아에 다시 갈 수 있는 날까지 죽지 않고 기다려 했어. 딥 프리징을 하고 말이야. 그렇게 170살이 되었어과연 안나는 슬렌포니아를 갈 수 있을까? 그런데, 진짜 웜홀을 통하면 공간 이동이 가능할까?


2.

아빠는 대상 수상작보다는 김혜진님의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라는 작품이 가장 좋았단다. 인공지능을 갖춘 간병로봇에 관한 이야기였어. 성한은 10년째 뇌경색으로 쓰러진 엄마를 돌보고 있었고, 7년 전부터는 간병로봇 TRS가 도와주고 있었어. TRS는 엄마뿐만 아니라, 성한도 체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어. TRS는 성한이 엄마 치료에 힘들어하는 것을 걱정하곤 했어. 오랫동안 가족을 돌보다가 우울증에 걸려 자살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성한이 바로 그런 우울증에 걸려 있었어. 성한이 한동안 병원에 오지 않았어. TRS는 성한이 위험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성한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엄마가 죽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성한의 우울증의 원인은 바로 오랜 엄마의 병이었으니까.

인공 지능을 가진 TRS에게 병든 엄마와 젊은 성한 중 선택하라고 하면 당연히 젊은 성한을 선택하는 것이 그의 답이었지. TRS는 성한을 살리기 위해 엄마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냈어. 자살을 하려던 성한은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향했어. 인공 지능을 갖춘 TRS는 몸만 기계이지, 거의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갖추고 있었고, 자아를 인식하는 단계에 이르고, 나중에는 자살까지 원했어.

앞으로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AI가 그 직업을 대신한다는 이야기가 있단다. 이미 그렇게 된 직업도 많고 말이야. 인공지능의 발전은 한계가 있을까? 결국 인간의 감정까지 구현한 인공지능이 나온다면 어떤 세상이 될까? 영화 터미네이터가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

그 밖에 수상작으로는 미래의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오정연님의 <마지막 로그>, 종말 이후의 세상을 이야기한 김선호님의 <라디오 장례식>, 인간 지능과 인간이 혼합된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이루카님의 <독립의 오단계>가 있었단다.

….

전체적으로 확 끌리는 작품은 없었지만, 이런 SF 문학이 좀더 활성화되어 우리나라에도 아이작 아시모프나 필립 K. 딕과 같은 SF 작가들이 출현하기를 바라면서 오늘 독서 편지를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 “관내 분실인 것 같습니다.”

책의 끝 문장 : 그렇게 나는 나에게 오단계라는 이름을 주었고, 나는 내 이름이 매우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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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술 -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무튼 시리즈 20
김혼비 지음 / 제철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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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프로야구에는 2년차 징크스라는 것이 있단다. 잘 나가던 신인이 2년차에는 성적이 그리 좋지 않은 경우를 이야기하는 거야. 그런 2년차 징크스 비슷한 것이 작가들에게도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 책을 읽었단다. 김혼비님의 <아무튼, >. 김혼비님의 첫 번째 책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읽고 아빠가 얼마나 극찬을 했었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구나. 지인들에게도 선물을 했던 책. 그런 김혼비님이 두 번째로 내 놓은 책이니 얼마나 기대를 했겠니? 책의 이야깃거리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할 수 있는 술에 대한 이야기였어. 평범한 축구 이야기도 그렇게 환상적인 양념을 곁들여 이야기해 주었으니, 이미 많은 작가들이 술에 관한 책을 썼지만, 김혼비님은 어떻게 술에 환상적인 양념을 곁들일까 기대를 했단다.

아빠가 너무 기대를 했나? 아니면 술에 대해 아빠가 공감을 잘 못할 정도로 멀리해서일까. 실망을 했단다. 200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에 책의 편집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어. 마치 약속한 출간일을 맞추기 위해 작가와 편집자가 급하게 책을 만들어낸 듯한 기분마저 들었단다. 하지만, 이건 순전히 기대를 너무 많이 했던 아빠의 높은 기준에 의한 평가라는 점을 감안해 주길 바래. 많은 이들이 여전히 이 책에 주고 높은 평점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책에 대한 아빠의 박한 평가가 아빠의 편견에 의한 평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프로야구 선수의 2년차 징크스로 인해 그 선수를 미워하지 않는 것처럼 아빠 또한 두 번째 책에 아빠가 실망을 했다고 해서 김혼비님의 책을 외면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다음 책들을 기대해 봐야지.


1.

술 없이는 못사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책을 가득 채우고 있단다. 아빠도 유리와 같은 20대에는 고주망태가 될 정도를 마신 적도 있어.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그런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말이야. 그런데 언젠가부터 술을 먹고 난 다음날 술병으로 고생을 하고,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게 되어 술을 줄였단다. 특히 소주는 조금만 먹어도 다음날 두통으로 하루 종일 고생을 해서, 아예 입을 대지 않게 되었고, 시원함으로 마시던 맥주도 요즘에는 평일에는 거의 먹질 않는단다. 물론 회사 회식 때나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게 되면 한 잔 가볍게 걸치긴 하지.

책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는데, 어쩌다 보니 아빠의 술 이야기를 했구나.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다 보면, 다들 자신의 술에 관한 이야기를 쓰지 않을까 싶구나. 그만큼 술이라는 것에 대해 자신의 경험담이 없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비록 책 한 권을 쓸 정도는 아니더라도 말이야. 아빠도 사실 찬찬히 술에 관한 에피소드를 기억해 내서 다 이야기하자면, 꽤 한참을 이야기하겠지만, 썩 좋은 기억만 있은 것은 아니라서…. 그리고 또 하다 보면 영웅담처럼 미화될 수도 있으니

지은이 김혼비님이 이 책에 쓴 내용이 모두 자신의 경험담이라면, 건강에 걱정이 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시더구나. 그리고 약간은 영웅담 이야기하듯이 술 마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직 성인이 안된 독자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음주가 약간은 미화된 듯한 느낌도 들었거든. 과음이 내는 사고는 정말 무서운 사건 사고들이 많은데 말이야.

김혼비님의 첫 번째 책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는 읽고 나서 다른 이들에게 선물도 하곤 했는데, 이 책은 위와 같은 이유로 선물이나 추천은 하지 못하겠더구나. 부디 세 번째 책은 다른 이들에게 적극 추천할 수 있는 책을 써주길 바란다. 비록 비주류 책이라도 말이야.

책의 두께가 얇은 만큼 독서편지도 짧게 마치련다.


PS:

책의 첫 문장: 대체 어디서 듣고 입에 딱 붙여왔는지 언젠가부터 엄마가 마이너-메이저’, ‘비주류-주류같은 말을 쓰기 시작했다.

책의 끝 문장: , 이제 술 마시러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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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01-24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즐거운 연휴 보내시고 새해복많이받으세요.

bookholic 2020-01-24 19:33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행복하고 여유롭고 즐거운 설 명절 되십시오.
늘 때마다 인사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시한번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22)

경험을 통해 스스로 가짜와 진짜를 알아보는 눈을 갖는 일은 어떤 조언보다 값지다.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의 판단력을 갖게 된 사람은 남을 의심하거나 절망하느라 삶을 낭비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그 길에 이르는 과정을 섣부른 충고나 설익은 지혜로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 경험하지 않고 얻은 해답은 펼쳐지지 않은 날개와 같다. 삶의 문제는 삶으로 풀어야 한다.


(24-25)

삶은 설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경험은 우리 안의 불순물을 태워 버린다. 만약 그 친구가 필요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면 랑탕 트레킹은 내 혼에 그토록 깊이 각인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때 그 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믿는다. 경험자들의 조언에 내달려 살아가려는 나를 직접 불확실성과 껴안게 하려고. 미지의 영역에 들어설 때 안내가 아니라 눈앞의 실체와 만나게 하려고. 결국 삶은 답을 알려줄 것이므로. ‘새는 날아서 어디로 가게 될지 몰라도 나는 법을 배운다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30)

지금 내 마음에 얼마나 많은 생각의 눈송이들이 소리 없이 쌓이고 있는가. 생각만큼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은 없다. 마음은 한 개의 해답을 찾으면 금방 천 개의 문제를 만들어 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뛰어난 상상력을 가진 작가이다. 마음이 자기와 전쟁을 벌이지 않을 때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31)

행복한 일이든 불행한 일이든 이것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그것을 그렇게 큰일로 만들지 말라.’

물론 이런 조언은 함부로 흉내 내선 안 된다. 만약 큰 성공으로 행복해하거나 불의의 상실로 고통받거나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이에게 그것을 그렇게 큰일로 만들지 말라고 조언했다간 당신은 당장 쫓겨나거나 절교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 조언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적용할 때 의미가 있다.


(36)

마음속에서 하는 말을 조심하라는 격언이 있다.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해도 자기 자신이 듣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단어는 무의식 속에서 정신을 부패시키고, 어떤 단어는 기도처럼 마음의 이랑에 떨어져 희망과 의지를 발효시킨다. 부패와 발효는 똑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어떤 미생물이 작용하는가에 따라 해로운 변질과 이로운 변화로 나뉜다.


(40-41)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에 대해 페라이어는 가슴 시린 해석을 내린다.

많은 학자들이 <월광 소나타>는 달빛과는 상관없다고,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경매에서 이 곡을 작곡하기 직전 베토벤이 쓴 에올리언 하프를 사야겠다는 메모가 발견되었다. 바람이 하프의 현에 닿아 소리를 만들면, 바람의 신 아이올리스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에올리언 하프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젊은 연인이 세상을 떠나면 달빛만 있는 행성에 간다는 전설이 있다. 이들이 사는 고독한 섬과 같은 슬픔이 에올리언 하프를 울려 우리에게 전달된다는 생각을 베토벤은 <월광 소나타>에 담은 것이다.’


(47)

영적 교사 페마 초드론은 말한다.

안전하고 확실한 것에만 투자하는 데 관심이 있다면 당신은 행성을 잘못 선택한 것이다.”


(59)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삶의 여정에서 막힌 길은 하나의 계시이다. 길이 막히는 것은 내면에서 그 길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존재는 그런 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곤 한다. 삶이 때로 우리의 계획과는 다른 길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길이 우리 가슴이 원하는 길이다. 파도는 그냥 치지 않는다. 어떤 파도는 축복이다. 머리로는 이 방식을 이해할 수 없으니 가슴은 안다.


(97)

다만 매장

의 차이는 있다고 나는 믿는다. 생의 한때에 자신이 캄캄한 암흑 속에 매장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어둠 속을 전력질주해도 빛이 보이지 않을 때가. 그러나 사실 그때 우리는 어둠의 층에 매장된 것이 아니라 파종된 것이다. 청각과 후각을 키우고 저 밑바닥으로 뿌리를 내려 계절이 되었을 때 꽃을 피우고 삶에 열릴 수 있도록. 세상이 자신을 매장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파종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매장이 아닌 파종을 받아들인다면 불행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105)

미국 시인 마야 안젤루는 썼다.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과 당신이 한 행동을 잊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어떻게 느끼게 했는가는 잊지 않는다.”

나 자신이 실제로 누구인가는 감추거나 꾸미는 것이 불가능하다. 나는 부지불식간에 그것을 드러내며, 내가 주장하는 사상이나 철학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행동이 나에 대해 가장 잘 말해 준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사람인가? 그것이 가장 진실된 나의 모습에 가깝다.


(116)

고정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명칭은 역할에 따른 약속 명사일 뿐이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할 때만 의사이며, 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만 교수이다. 밖에 나오면 그 역시 승객이고, 길 가는 행인이며, 관광객이고, 손님일 뿐이다. 만약 그가 의사, 교수라는 명사로 자신을 고정시킨다면 그는 자기 규정에 갇혀 존재가 가진 수많은 가능성과 역동성을 잃는다.


(121)

에게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면 허무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의 역동성에 눈뜨게 된다. 그때 지금 이 순간 속에서 열심히 놀이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다른 놀이로 옮겨 간다.


(124-125)

, 이 나무는 걱정을 걸어 두는 나무입니다. 일하면서 문제가 없을 수 없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그 문제들을 집 안의 아내와 아이들에게까지 데리고 들어갈 순 없습니다. 그래서 저녁때 집에 오면 이 나무에 문제들을 걸어 두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아침에 다시 그 문제들을 가지고 일터로 갑니다. 그런데 아침이 되면 문제들이 밤사이 바람에 날아갔는지 많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176)

모든 일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어나며,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도 이유가 있어서 만난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모든 만남에는 의미가 있으며, 누구도 우리의 삶에 우연히 나타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내 삶에 왔다가 금방 떠나고 누군가는 오래 곁에 머물지만, 그들 모두 내 가슴에 크고 작은 자국을 남겨 나는 어느덧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179-180)

소설가 보르헤스는 썼다.

우리 삶을 스쳐 지나가는 모든 이들은 각각 특별한 존재이다. 누구든 항상 그의 무언가를 남기고, 또 우리의 무언가를 가져간다. 많은 것을 남긴 사람도 적은 것을 남긴 사람도 있지만, 무엇도 남기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누구든 단순한 우연에 의해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증거이다.”


(205)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덩이를 더 파는 것이 아니라 구덩이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그것이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일이다. 티베트 속담은 말한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209)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얼마만큼 아는 것을 의미할까? ‘안다처럼 정반대의 말과 같은 의미인 단어가 또 있을까? 가까운 관계라 해도 어떤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에 가깝다. 섣부른 판단으로 우리는 누군가를 잃어 간다. 관계가 공허해지는 것은 서로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이 향하는 방향만 볼 뿐, 그가 어떤 지하수를 길어 올리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 진실한 관계를 맞는다는 것은 자신의 편견을 깨고 그와 함께 계단 끝까지 내려가는 숙제를 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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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의 비극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서계인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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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예전에 인터넷 서점을 서핑하다 보면, X의 비극이니 Y의 비극이니가끔 이런 책을 보곤 했었어.  제목이 독특하네, 이러면서 책 소개를 대충 보니, 책제목에서도 눈치챌 수 있듯이 추리 소설이었단다. 나중에 기회 되면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러다가 이번에 보게 되었어. 아빠가 위에서 이야기한 2권의 책을 예전에 사두었거든. 아무래도 X가 알파벳 순서상 먼저니까 <X의 비극>을 먼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

소설을 읽기 전에 이번에는 책에 대한 소개와 이 책을 쓴 지은이에 대해 자세히 읽어봤어. 아빠는 엘러리 퀸이라는 분의 소설은 처음이거든. 그런데, 놀랍게도 엘러리 퀸은 두 사람이더구나. 그러니까, 엘러리 퀸은 필명인데, 만프레드 리와 프레더릭 다네이라는 두 사촌 형제가 공동 집필한 소설의 필명이야. , 놀랍구나. 그들 둘이 쓴 첫 번째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 엘러리 퀸이었는데, 그 주인공을 필명으로 해서 소설을 출간했다고 하는구나. 독특하면서 기발하신 분들이구나.

이번에 아빠가 읽은 <X의 비극>은 드루리 레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4부작 중에 첫 번째 소설이란다. X의 비극, Y의 비극 말고 Z의 비극도 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마지막 4부는 <드루리 레인 최후의 사건>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어.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4부작이 처음 출간될 당시에는 엘러리 퀸이 아닌 바너비 로스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대. 만프레드 리와 프레더릭 다네이는 또 다른 필명으로 출간한 것이야. 엘리리 퀸이라는 필명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는데, 그 필명을 숨기고 새로운 필명으로 소설을 내다니… X의 비극이 출간(1932)이 된 지 8년 뒤 재출간할 때 지은이는 엘러리 퀸이라고 정체를 밝혔다고 하는구나.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분들이구나. 그런데 한 소설을 두 사람이 같이 집필하면 어떤 식으로 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사촌 지간이더라도 사이가 좋지 않으면 같이 한 소설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말이야. 정말 놀라운 분들이구나. , 그럼 이제 X의 비극이라는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게.


1.

이 소설의 주인공은 60살의 원로 연극 배우 드루리 레인이라는 사람이란다. 추리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하니, 이 사람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탐정 같은 사람이야. 단지 직업이 은퇴한 원로배우라는 것이지. 이 사람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라고 하면, 나이 먹은 셜록 홈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드루리 레인이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이제 한 권 읽었지만, 이 소설에 드루리 레인이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이 셜록 홈즈와 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소설 속 셜록 홈즈가 나이 먹게 되면 드루리 레인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브루노라고 하는 지방 검사와 섬 경감은 햄릿 저택에 살고 있는 드루리 레인을 찾아왔어. 예전에도 드루리 레인이 사건에 도움을 준 적이 있었거든. 최근에 발생한 롱스트리트 살인 사건에 도움을 청하려고 왔어. 아참, 드루리 레인은 나이를 먹으면서 귀머거리가 되어서 사람들의 입술 모양을 보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하는구나. 아무래도 오랫동안 연극을 해서 그렇지 않을까 싶어. 입 모양을 보지 못하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지만, 멀리서 이야기하는 것이 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입 모양만 보인다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단다.

그럼 다시롱스트리트 살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게. 할리 롱스트리트라는 주식 중개인이자 사업가가 체리 브라운이라고 하는 젊은 여배우와 약혼 발표를 위한 파티를 열었어. 동업자인 존 드위트를 비롯하여 지인들과 함께 하는 자리였는데, 호텔에서 파티를 열던 그들은 롱스트리트의 집에 가서 만찬을 하자면서 집으로 이동을 했단다. 오늘날 같으면 고급승용차를 타고 이동을 했겠지만, 이 소설의 배경은 1930년대 초반이란다.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 전차를 타고 이동했어. 그런데 전차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찼지. 할리 롱스크리트는 무심 결에 자켓의 왼쪽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무엇인가에 찔린 기분이 들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되었고 2~3분만에 죽고 말았어. 이 전차에 경위 한 명이 타고 있어서 단순한 사고가 아닌 살인 사건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빨리 수습하였고, 승객들을 내리지 못하게 하고 차고로 이동했어. 섬 경감에게 연락을 해서 섬 경감이 이 사건을 맡게 된 거야.

섬 경감과 경찰들은 전차 내부를 조사하고, 손님들을 일대일 조사를 했어. 특히 롱 스트리트의 일행들은 별도 조사를 했단다. 하지만 특이점이나 단서를 찾지 못했단다. 롱스트리트의 주머니에는 누가 넣었는지 모른 밤송이 같이 생긴 물건이 있었는데, 그 물건에 독이 묻어 있었고 그 독에 찔려 죽은 것은 보였어.


2.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섬 경감은 조사를 하기 시작했어. 롱스트리트의 동업자인 존 드위트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존 드위트가 용의자 선상에 오르게 되었지. 사건 당시 같은 전차 안에 있었고, 접근하기도 가장 쉬웠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사이가 좋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거액의 돈을 빌려주기도 했어. 그리고 롱스트리트가 존 드위트의 부인과도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어. 여러모로 존 드위트가 의심스러웠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단다. 며칠 뒤 익명의 투서가 날아왔어. 전차 안에서 일어난 사건의 범인에 대해 알고 있고, 그가 한 짓도 봤다는 내용이야. 며칠 뒤 선착장에서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어. 이런 일련의 내용을 섬 경감은 드루리 레인에게 이야기를 해주었어.

그리고 며칠 뒤 선착장에서 경찰들은 몰래 대기를 했어. 드루리 레인도 그곳에 있었단다. 약속 시간이 살짝 지난 즈음 선착장으로 들어오는 배가 하나 있었는데, 갑자기 그 배의 상판에서 한 사람이 바다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어. 그런데 그 사고는 사고가 아니고 살인 사건이었단다. 떨어진 사람을 건져 올렸더니, 얼굴에 흉측하게 공격을 당하여 죽은 이였어. 그리고 그는 다름 아닌 롱스트리트가 죽었을 당시 전차를 몰았던 운전사 찰스 우드라는 사람이었어.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배에 존 드위트도 타고 있었단다. 강력한 용의자 존 드위트 말이야.

, 이제 그럼이 그려지니? 찰스 우드가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다고 편지를 익명으로 보냈고, 찰스 우드는 경찰을 만나러 가는 배 안에서 살해를 당했어. 그리고 그 배에는 롱스트리트 살인 사건의 용의자 존 드위트가 타고 있었고 말이야. 찰스 우드의 주머니에서는 존 드위트의 담배 종이였나? (아빠의 기억 가물가물) 아무튼 존 드위트의 것이 있었어. 이런 정황으로 존 드위트는 범인으로 기소했어. 물론 드루리 레인은 성급한 판단을 하지 말라고 섬 경감에게 조언을 했지.. 존 드위트는 범인이 아니고, 자신이 조사하고 있는데, 확신이 설 때 이야기해준다고그런데도 존 드위트는 그대로 기소가 되었단다.

존 드위트의 변호사 라이먼이 레인을 찾아왔어. 아무래도 존 드위트는 불리한 상황이었어. 레인은 그 불리한 상황을 한방에 뒤집어 엎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단다. 존 드위트가 범인이 아닌 명백한 증거. 그 도움은 재판장에서 변호사 라이먼의 입을 통해서 전달되었고, 검사 측에서 시인을 할 수 밖에 없었단다. 그렇게 존 드위트는 무죄로 풀려 나게 되었어.

무죄로 풀려났으면 그냥 조용히 집에서 지내고 있지, 무죄로 풀려난 것을 기념한다고 존 드위트는 축하파티를 했어. 레인도 초대되어 갔는데일행이 다 같이 집으로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그만 존 드위트가 또 죽고 만 거야. 이번에 가슴에 총을 받고 죽었단다. 마지막으로 존 드위트와 일대일로 대면한 사람이 마이클 콜린스라는 사람이었어. 마이클 콜린스는 롱스트리트와 사업을 하고 손해를 본 사람인데, 롱스트리트가 죽자 동업자인 존 드위트에게 손해 배상을 요청했건 거야. 마이클 콜린스와 마지막 만남을 갖고 죽었으니 이번에는 마이클 롤린스가 용의자로 몰리는 것은 당연했단다.


3.

다음날 집에 머물고 있다가 마이클 콜린스는 경찰에 잡히게 된다. 마이클 콜린스는 당연히 무죄를 주장했단다. 읽은 이들도 그가 범인이라고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을 거야. 추리 소설에서 당연히 범인일 것 같은 사람은 범인이 아니거든. (그걸 역이용해서 당연히 범인일 것 같은 사람이 결국 범인으로 결론 짓는 소설을 쓴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단다.)

, 그럼 도대체 범인은 누구일까? 범인이 아닐 것 같은 사람이 범인일 텐데.. 그 범인을 찾으려면, 먼 과거를 뒤져야 한단다. 롱스트리트와 존 드위트가 사업을 하기 전부터 캐야 하는 거야. 그들이 우루과이에 있었을 때부터 말이야. 이 부분을 자세히 이야기하면 완전 스포일러가 되는데나중에 아빠의 기억력이 사라졌을 때를 대비해서 스포일러지만 짧게 이야기해볼게.

스토프스라는 사람이 있었어. 그가 망간 광산을 발견되어, 크로켓, 롱스트리트, 드위드와 동업을 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동업자 중에 크로켓이라는 사람이 스토프스의 아내를 죽이고 스토프스에게 누명을 씌웠어. 그래서 스토프스라는 감옥에 가게 되었지. 후에 감옥을 탈옥한 스토프스는 복수를 위해 미국에 오게 되었단다. 롱스트리트와 드위트의 죽음은 이런 스토프스의 복수극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거야. 스토프스가 미국에서 본명으로 돌아다니지 않았겠지.. 얼굴도 변장하고 이름도 가짜 이름으로 다녔겠지. 그렇겠지? 아빠가 오늘 이야기를 하면서 소설 속 등장 인물은 많이 소개하지 않았지만, 오늘 소개한 사람들 중에 한 명이 바로 범인이란다. 오늘 이야기한 사람들 중에 가장 범인이 아닐 것 같은 사람, 좀더 큰 힌트를 주면 범인일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바로 범인이란다..^^

….

X의 비극생각보다 괜찮았단다. 아참, 왜 제목이 X의 비극이냐? 존 드위크가 죽으면서 손가락을 x모양으로 하고 죽었기 때문이야. 그것은 죽으면서도 범인을 가리키는 단서를 남기고 싶었던 거지.. 나중에 Y의 비극을 비롯하여 드루리 레인 4부작을 모두 읽어봐야겠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눈 아래 저 멀리서 우울한 안개에 싸인 허드슨 강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섬 경감과 본인이 내일 아침 10 30분 심심한 감사를 표함과 동시에 비공식적으로 롱스트리트 살인 사건에 관한 귀하의 의견을 묻고자 방문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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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때로는 이런 장애를 모두 잊으려고 했지만, 청각장애는 이중으로 쓰라린 경험을 맛보게 했다. 잘 들리지 않으니 더 크게 이야기해주시오, 외쳐달라고, 어찌 이야기하겠는가. 다른 누구보다도 완벽해야 할 내 귀에 장애가 있다고 어떻게 남에게 털어놓는단 말인가. , 난 그럴 수 없어. 한때는 어떤 음악가보다도 완벽했던 내 귀의 장애 때문에, 사람들과 즐겨 어울리고 싶어도 자리를 피해야 한다. 사회에서 어울리지도 못하고, 벗들과 생각을 나누고 세련된 대화를 할 수 없어 세간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꼭 필요할 때만 사람들과 지내고, 거의 홀로 마치 추방된 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사람들과 가까이할 때면, 내 비참한 상태가 알려질까 봐 몹시 불안해진다.


(68)

내 안에 있는 것을 모두 표현해낼 때까진 세상을 떠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 비참한, 정말로 비참한 삶을 참아내고 있다. 내 육체는 아주 사소한 변화에도 나를 최상의 상태에서 최악의 상태로 전락시킬 만큼 예민하다. 인내. 그것을 내 지침으로 삼아야 했다. 그렇게 참아왔고, 운명의 여신이 내 생명의 밧줄을 끊을 때까지 저항의지를 간직하길 바라왔다. 스물여덟 살에 이미 모든 것을 달관한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예술가에게는 더욱 그렇다.


(92)

, 사랑하는 요제피네, 아는 그저 이성관계로서 그대에게 끌리는 것이 아니오, 나는 당신 그 자체, 우리 앞의 모든 걸림돌을 비롯해 당신의 전부를 사랑하오. 내 모든 감성이 그대에게 사로잡혀 있고. 당신을 만난 그때부터 내 가습은 다른 어떤 사랑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소. 당신은 나를 정복했소. 당신이 나를 원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대답을 듣고 싶소. 내가 얼마나 당신을 생각하며, 내 가습이 얼마나 뛰는지. , 신이여, 어떻게 말을 해야 합니까.


(144)

음악가도 일종의 시인이라오. 두 눈의 마술이, 불현듯 음악가를 위대한 영혼이 노니는 아름다운 세계로 옮겨가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게 하는 거라오. 당신과 함께 지내는 동안 내게 떠오른 영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소. 잠시 동안이었지만, 그 아름답던 비 내리는 5월은 내게 충만한 순간이었소. 아름다운 주제가 당신의 눈에서 내 가습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언젠가 베토벤이 죽은 뒤에도 그 음악은 세상을 매혹할 거요. 하느님이 시간을 더 허락해주신다면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겠지. 그리운, 그리운 베티나,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엔 거짓이 없다오. 우리는 서로의 정신까지 사랑하지 않소? 나는 언제까지나 그대의 정신을 구하오. 당신이 인정해주는 것은 온 세상 그 무엇보다 기쁜 일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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